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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21:40:46

제21보병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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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보병사단
第二十一步兵師團
The 21st Infantry Di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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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ruby(白, ruby=백)][ruby(頭, ruby=두)][ruby(人, ruby=인)]은 영원한 [ruby(白, ruby=백)][ruby(頭, ruby=두)][ruby(人, ruby=인)]
<colbgcolor=#004098><colcolor=#fff> 창설일 <colbgcolor=#fff,#191919>1953년 1월 15일
상징명칭 백두산(白頭山)부대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제3군단
경례구호 충성
규모 사단
역할 중동부전선(양구군) 지역 일대 수색 및 경계
사단장 소장 남진오 (3사 30기)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 양구읍 안대리

1. 개요2. 역사3. 예하부대4. 과거부대
4.1. 사단직할대4.2. 보병연대4.3. 포병연대
5. 출신인물
5.1. 사단장5.2. 장교5.3. 병
6. 특징
6.1. 근무환경6.2. 훈련6.3. 사단가6.4. 구호6.5. 부대영상
7. 사건 사고8. 여담

[clearfix]

1. 개요

사단령
제1조(설치) ① 육군에 사단을 둔다. ② 사단은 관할구역의 작전·훈련 및 군 행정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다.
국군육군 보병사단. 부대 상징명칭은 백두산이다. 부대구호는 '한번 백두인은 영원한 백두인'.

제12보병사단, 제22보병사단과 함께 제3군단 예하 보병사단으로 2022년 기준 총 14회의 대통령부대표창을 수상했다.[1]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 일대를 홀로 담당하기에 동부전선 중 가장 긴 섹터를 경계하고 있으며, 일부 부지가 삼청교육대로도 쓰였다.

파일:백두산부대 입간판 3bc654edb12f62bb16ff9080ac28de88.jpg

2. 역사

6.25 전쟁 말엽인 1953년 1월 15일 국군의 2차 전력증강계획에 따라 제20보병사단과 함께 창설되었으며 부대명은 이승만 대통령이 백두산에 깃발을 꽂으라는 뜻에서 지어줬다고 한다. 창설 뒤 강원도 인제, 원통 방어선에 투입되어 방어전을 수행하다 휴전을 맞이하였다.

6.25 전쟁 휴전 이후 양구군으로 거점을 이동하여 국군 7사단, 국군 8사단, 국군 20사단백석산 전투,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 M-1고지 전투로 쟁탈해 낸 양구 서쪽지역(65여단), 그리고 미군 2사단과 국군 5사단피의 능선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가칠봉 전투로 쟁탈해 낸 양구 동쪽지역(66여단)을 경계하게 되었다. 이후 남하한 무장공비들과 수 차례 교전을 벌여가며 북한군의 도발을 방어하였으며 현재도 굳건히 양구를 지키고 있다.

북한의 금강산댐에 대비해 ​1986년 파로호 상류에 착공하여 1989년에 완공된 평화의 댐의 일부분을 관리하고 있다. 댐을 건설할 당시 양구의 백두산 부대와 화천의 칠성 부대 장병들의 협업이 큰 보탬이 되었다.

​1990년 3월 3일에 북한이 파놓은 제4땅굴을 발견하여 북한의 남침도발을 선제적으로 차단하였다. 제4땅굴은 안보교육의 일환으로 민간인에게도 부분 개방하고 있으며, 특히 청소년 학생들이 분단현실을 체감할 수 있는 역사 교육의 장으로써 좋은 본보기 역할을 하고 있다.

3. 예하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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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보병사단 예하부대
제31보병여단 제65보병여단 제66보병여단
포병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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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단 신병교육대는 제21보병사단/신병교육대 참고.

3.1. 사단직할대

3.2. 제31보병여단 백호[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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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제65보병여단 백석산(G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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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66보병여단 천봉(G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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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포병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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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신병교육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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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과거부대

4.1. 사단직할대

4.2. 보병연대

4.2.1. 제63보병연대 천지담[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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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포병연대

5. 출신인물

사단장, 장교, 병으로 구분하여 해당 항목 아래에 서술할 것.

5.1. 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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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육군
제21보병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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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대
민기식
제2대
백남권
제3대
최석
제4대
민병권
제5대
이주일
제6대
양중호
제7대
양찬우
제8대
박남표
제9대
서재관
제10대
정규한
제11대
양인석
제12대
최일영
제13대
박찬긍
제14대
박승옥
제15대
안철원
제16대
이재희
제17대
박병억
제18대
신치구
제19대
이진삼
제20대
용영일
제21대
고용복
제22대
이준
제23대
유회국
제24대
서충일
제25대
정남기
제26대
강기창
제27대
권일상
제28대
엄항석
제29대
최용주
제30대
김기수
제31대
황영수
제32대
강한석
제33대
장준규
제34대
정항래
제35대
안수태
제36대
김혁수
제37대
황병태
제38대
장현주
제39대
이상렬
제40대
남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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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드체대장 진급이 된 사단장.
역대 제21보병사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민기식 예) 대장 군영 1기 2군단장, 제1야전군사령관, 육군참모총장 1953.1 - 1954.6
2대 백남권 예) 소장 군영 1기 3사단장, 육군보병학교장, 육군사관학교장, 육군제2훈련소1954.6 - 1955.6
3대 최석 예) 중장 군영 1기 3사단장, 9사단장, 육군보병학교장, 1군단장, 3군단장 1955.6 - 1956.7
4대 민병권 예) 중장 군영 1기 육본 인사국장, 국방부 병무국장, 교통부장관 1956.7 - 1957.8
5대 이주일 예) 대장 육사 특별7기 6사단장, 12사단장, 제2야전군 참모장,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 1957.8 - 1959.6
6대 양중호 예) 준장 육사 2기 37사단장, 25사단1959.6 - 1959.12
7대 양찬우 예) 소장 육사 3기 32사단장, 내무부장관 1959.12 - 1961.8
8대 박남표 예) 소장 육사 2기 국방대학원 부원장, 육군제2훈련소1961.8 - 1963.8
9대 서재관 예) 준장 육사 2기 육본 작전참모차장 1963.8 - 1965.7
10대 정규한 예) 소장 육사 5기 9사단장, 제2야전군 부사령관 1965.7 - 1967.7
11대 양인석 예) 소장 육사 5기 육본 작전참모부장, 육군대학 총장 1967.7 - 1969.3
12대 최일영 예) 소장 육사 7기 국방대학원 부원장, 육군종합행정학교1969.3
13대 박찬긍 예) 중장 육사 7기 제1야전군 부사령관, 육군군수사령관, 국방부차관, 총무처장관 1971
14대 박승옥 예) 소장 육사 9기 육군포병학교장, 제1야전군 부사령관 1973
15대 안철원 예) 소장 육사 8기 육본 작전참모부 필승공사계획단 통제단장, 작전참모차장 1975
16대 이재희 예) 소장 생도 2기 육군군수사령부 참모장, 육군종합행정학교장, 제3야전군 부사령관 1977.7 - 1979.8
17대 박병억 예) 소장 포병간부 9기 육본 군수참모부 차장, 육군포병학교장, 육군교육사령부 부사령관 1979.8 - 1981.1
18대 신치구 예) 중장 갑종 22기 3군단장, 육군교육사령부 사령관, 국방부차관 1981.1 - 1982.12
19대 이진삼 예) 대장 육사 15기 3군단장, 제1야전군사령관, 육군참모총장, 체육청소년부장관 1982.12 - 1985.1
20대 용영일 예) 중장 육사 16기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국장, 국방부 정보본부장 1985.1
21대 고용복 예) 소장 육사 18기 학생중앙군사학교1987
22대 이준 예) 대장 육사 19기 국방부 군수본부장, 제1야전군사령관, 국방부장관 1988
23대 유회국 예) 소장 육사 22기 제1야전군 참모장, 학생중앙군사학교1991
24대 서충일 예) 소장 육사 23기 사단장 재직 중 보직해임/전역 1993.1 - 1993.8
25대 정남기 예) 소장 갑종 182기 육군교육사령부 전력개발부장, 육군제2훈련소1993.8 - 1995.10
26대 강기창 예) 소장 갑종 202기 육본 지휘통신참모부장, 육군종합행정학교1995.10 - 1997.10
27대 권일상 예) 소장 육사 27기 육군보병학교장, 육군교육사령부 전력개발부장 1997.10 - 1999.11
28대 엄항석 예) 소장 육사 28기 학생중앙군사학교장, 육본 정보작전참모부장 1999.11 - 2001.11
29대 최용주 예) 중장 3사 4기 제2야전군 참모장, 3군단장, 육군항공작전사령부 사령관 2001.11 - 2003.10
30대 김기수 예) 중장 육사 31기 수도군단장, 합참 전략기획본부장 2003.10 - 2005.5
31대 황영수 예) 소장 육사 32기 前 육군전투발전단장 2005.5 - 2007.5
32대 강한석 예) 소장 육사 34기 제3야전군 참모장, 육군미사일사령부 사령관 2007.5 - 2009.4
33대 장준규 예) 대장 육사 36기 육군특수전사령관, 제1야전군사령관, 육군참모총장 2009.4 - 2011.4
34대 정항래 예) 중장 육사 38기 한미연합사 군수참모부장, 육본 군수참모부장, 육군군수사령관 2011.4 - 2013.4
35대 안수태 예) 소장 학군 22기 육군보병학교장, 육군교육사령부 교육훈련부장 2013.4 - 2015.4
36대 김혁수 예) 중장 육사 42기 제1야전군 참모장, 2군단장, 대테러센터장 2015.4 - 2017.9
37대 황병태 예) 소장 육사 44기 제2작전사령부 참모장, 육군부사관학교장, 교육사 교리발전부장 2017.9 - 2019.5
38대 장현주 예) 소장 육사 46기 육본 기획관리참모부장 2019.5 - 2021.12
39대 이상렬 소장 학군 31기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2021.12 - 2023.11
40대 남진오 소장 3사 30기 사단장 2023.11

5.2. 장교

장성급 장교, 정무직 공무원, 4년제 종합대학 전임 교수, 사회적 파급력 있는 행동을 한 인물들만 게시.

5.3.

6.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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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P 경계임무를 맡고 있는 대한민국 육군의 전투 보병사단. 한국 전쟁 당시 1953년에 창설한 최전방 보병사단 중 하나이다. 병사, 부사관, 장교 구분없이 이구동성으로 극악의 근무환경을 지닌 곳으로 평하는 강원도 양구에 주둔하고 있으며 특히 혹독한 기후조건[84]과 평지가 별로 없는 산악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기피 부대로 악명높다.[85] 이웃 부대인 제12보병사단 병사들이 반농담삼아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에서) 못 살겠네. 그래도 양구보다는 나으리"라는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한다. 제21보병사단 상징명칭백두산부대이며 영문명칭은 The 21st Infantry Division이다.

백두산부대 부대명은 이승만 대통령이 창설 당시 백두산에 깃발을 꽂으라는 의미로 지어줬다고 한다. 부대마크를 구성하는 7자모양의 세 봉우리는 각각 백두산, 금강산, 한라산을 상징하며 이를 합하여 21사단[86]이라 부른다는 설도 있다.

다른 전방사단과 동일하게 3개의 보병여단인 66, 65, 31[87]여단과 포병여단, 사단직할대로 구성되어있다. GOP 작계지역 대부분이 1,000m 이상 고지에 위치한 험준한 산악지대이며 전방사단 중에서 가장 길고 넓은 섹터의 철책선을 담당하고 있다. 험악한 근무여건과 빡센 군기 때문에 한국전쟁 후반기에 창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메이커 사단[88] 버금가는 부대 중의 하나로 평가되기도 한다.

2020년 국방개혁으로 인해 12월 1일부로 예하 제31보병연대, 제65보병연대, 제66보병연대, 및 포병연대들이 여단으로 승격되었다.

65여단과 66여단이 GOP를 담당하고, 31여단이 후방지원을 담당하고 있다. 과거에는 (구)63연대가 후방지원을 담당했으나, (구)제2보병사단 해체로 31연대가 21사단으로 이관되면서 해체된 63연대의 임무를 승계했다.

​경례구호가 한 때 '단결, 찾고잡자'였을 만큼 적의 도발을 선봉에서 막고자 하는 투지가 강한 부대다. 이러한 특성에 어울리게 21사단 신병교육대의 교육훈련 수준 또한 대단히 강도가 높은 편이며 전반적으로 장병들의 자긍심이 높고 군인정신이 강한 정예 상비사단이다.

경례구호는 초창기에는 당백이었다가, '단결, 찾고 잡자' 였다가, '충성'으로 바뀌었다.[89] 이후 사단 내에서 사고가 잦던 2018년 여름, 당시 사단장이었던 황병태 소장에 의해 '충성, 사랑합니다' 로 경례구호가 변경되었다가 2024년부터 ‘충성’을 사용하는 추세이다

6.1. 근무환경

파일:백두산부대 06.jpg

파일:백두산부대 07.jpg

파일:백두산부대 08.jpg

현역과 예비역을 가리지 않고 최악의 주둔지로 손꼽는 강원도 양구가 거점이다.[90] 여타 전방사단들과 마찬가지로 보병여단 셋에 포병여단 하나, 그 외 사단직할대들을 두고 있다.

부대시설은 예하부대 몇몇 부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신막사이다. 2019년 이전 2사단이 예비사단으로 양구에 주둔하고 있을 때는 21사단의 부대시설이 상대적으로 낙후되었으나, 2사단이 해체되고 사단에서 부대개편을 진행하면서 (구)2사단 시설로 부대이전을 한 곳이 많아졌다. 하지만 양구 최전방에 있는 부대는 시설을 개선하거나 신축하는데 어려움이 있어서 아직도 부대시설이 열악한 곳들이 몇 군데 있다.

GOP 작전환경은 7사단과 더불어 최악으로 평가받는다.[91] 특히 일부 구간의 경우 워낙 지형이 험악해서 몇 달 근무하고 보면 다리 한 군데가 망가지는 일은 예사다.

바람이 어찌나 센지, 섹터 내의 대공초소 지붕이 칼바람에 뜯겨나가 철책선 바깥으로 날아갔던 적도 있었을 정도다.

육군 GOP 소초 가운데 가장 높은 곳(1,241m)에 위치한 가칠봉OP[92]를 관할하고 있으며, 도솔대대도 육군 대대 주둔지들 중 가장 고지대에 있다. 다만 동쪽 12사단 향로봉 독립중대가 1,296m에 있기에 육군 최고 주둔지 타이틀은 아니다. 게다가 해/공군까지 포함하면 공군 화악산(1,468.3m) 관제부대에게도 밀린다.

21사단 각급부대 중 그나마 후방에 위치한 양구읍내 부근에 있는 주둔지는 평지가 많고, 인근 산도 거의 언덕 정도다 보니 이곳으로 면회 온 가족들이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여기겠지만 그 북쪽의 주둔지들은 기본 1,000m 이상인 대암산과 백석산[93] 일대라 험준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연대, 대대, 중대들이 민통선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94]

또한 보병사단들 중 제일 넓은 면적을 가진 사단이다 보니 민통선 위에 위치한 고지들부터 양구 중심까지 직선으로 쭉 간다고 해도 그 거리로만 최소 20~30km다. 꼬불꼬불한 길과 경사진 산길을 감안하면 답이 없다. 게다가 통상 훈련이 시작되면 각자의 거점으로 올라가 사수하다 양구 남쪽으로 내려간 뒤 다시 북상하며 공격하다 원대 복귀하는 게 대부분이다 보니 100km 가량 이동한다. 그래서 어저간해선 양구 밖까지 이동하지 않는다.

참고로 신병교육대에서 행군 훈련 도중이나 양구에서 벗어날 경우 “양구에 오시면 10년이 젊어집니다”라는 안내판을 볼 수 있는데 (구)2사단, 21사단 소속이었던 사람들 중 이걸 본 사람 모두 10년이 늙어지면 늙었지 젊어지진 않는다고 말한다. 오죽하면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02보충대에서 기간병들이 "신교대 갈 때 배를 안 타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 줄 알아라."라고 할 정도였다.[95] 심지어 21사, 12사, 22사단 3곳으로만 나뉘어도 일단 21사단이 아니면 고마운 일이라고 했단다.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 거주자가 이 부대로 가면 휴가 때마다 잔고가 거덜난다. KTX 요금이 5~6만 원 정도이고 버스요금도 2~3만원 가까이를 쓰기 때문이다.

주둔지가 양구군이라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연가 3일을 더 받는다. 거주지가 남쪽 지역인 경우 1, 2급지는 연가에 3일을 더 준다.

같은 3군단 소속의 12사단과 함께 65/66연대가 GP/GOP 경계를 담당하고 있고, 국군 전부대 중에서 가장 긴 섹터를 담당하고 있어서 GOP 경계근무 난이도는 최악레벨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96] 게다가 2010년 들어 대부분의 GOP 소초가 침대형 생활관으로 바뀌고 있는 와중에 몇몇 소초는 지형적으로 신축이 불가능해 아직도 소대형 침상 생활관을 쓰는 곳도 있다.

지형적 특성상 많은 부대가 민통선 내의 속에 자리잡고 있어서 보병 특기로 여기 떨어지면 지옥을 맛볼 수 있다. 일례로 다른 부대에서 10km 행군이라고 하면 평지에서 10km를 뜻하지만 이 동네는 앞뒤좌우 전부 산이다. 즉 40km 행군이면 산길 40km 행군을 뜻하는 것이다.[97] 게다가 겨울에는 영하 30°C 까지 떨어지는데다 산비탈과 정상에 미칠듯이 휘몰아치는 '양구 똥바람'까지 겹치면[98][99] 그야말로 장진호 전투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부대 마크의 산맥이 전부 하얀색인 것처럼 눈이 한번 오면 15cm가 기본이라 제설작전도 그야말로 환적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눈이 환장할 정도로 많이 온다는 건 윗분들도 알고 있기에 사람키만큼 많이 쌓이면 불도저와 제설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급경사나 얼음이 낀 곳은 차량이 올라가지 못해 송풍기와 무수히 많은 인력으로만 처리해야 한다. 초여름인 6월에는 새벽에 야간근무 나가면 영상 5°C 까지 떨어져 야상을 입고 근무를 서지만 한낮에는 영상 35°C 까지 올라가는 일교차 30°C 연교차 60~70°C 를 찍는 무서운 동네다. 그리고 GOP 기준 10월 말에서 5월 초까지 눈이 내린다. 5월에는 금방 녹고 또 양도 적지만 4월 말까지는 제설작전을 나가는게 보통이다. 대암선점제설 작전(대암로)은 최악이다. 대대400고지 출발-800고지까지 한 시간 만에 산눈길 돌파 중간모임 및 휴식, 800고지-1300고지 까지 3개 중대가 제설작전에 투입된다. 폭설예정 시 조기취침 뒤 6시에 조기기상해 눈쓸러 간다. 65/66연대가 못갈땐 신병교육대와 66연대를 담당하는 63연대가 지원을 나가 죽어라 근무하고 왔었다.[100]

환경이 하도 이렇다보니 예비군이 되면 같은 사단마크를 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친근감과 함께 동지의식이 생길 수 있는 것은 물론, 심지어 제3군단 소속[101]이라는 것만으로도 양구의 살인적인 날씨와 물가에 대한 썰을 공유하기에 동질감이 생긴다.

제4땅굴 탐사 및 소탕 작전 당시, 이 부대 소속 군견 '헌트'가 땅굴 내부에 설치된 목함지뢰를 터뜨리고 순국했다. 이 군견은 사후 전과를 인정받아 인헌무공훈장을 받고 소위로 추서되었는데, 한국군 사상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위관급 군견으로 기록되어 있다. 심지어 동상도 만들어져 있고, 땅굴견학 때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여주기도 한다.

청정병영 운동이라는 내무부조리 척결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인 첫번째 부대였고, 그 캠페인 때문에 많은 선임들이 소원수리 폭발로 영창에 갔다는 얘기가 있다. 그래서인지 부대와 시기에 따라 차이가 나긴 하지만 내무부조리가 후방부대에 비해서 그나마 약간 적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유야 물론 근무 환경이 워낙 척박하다보니... '몸이 힘들면 정신이 편하고, 몸이 편하면 정신이 힘들다'는 이야기에서 전자에 해당되는 곳이다. 애초에 전방사단같이 근무강도가 높은 곳은 내무부조리가 상당히 덜한 편이고, 후방사단같이 근무강도가 낮은 곳은 반대로 내무부조리가 넘친다. 일단 훈련이나 작업등으로 X빠지게 고생하고 나면 대부분 내무부조리를 저지를 시간에 잠을 자기 때문이다. 물론 임병장 사건처럼 그 와중에도 선/후임을 괴롭히는 독종들이 있는 만큼 없다고는 못하지만. 일반 보병사단 최초로 천리행군을 실시한 첫번째 부대이기도 하다.

21사단 소속 부대에서 유격훈련을 할 시 동면 월운리에 위치한 훈련장에서 훈련을 받게 되는데, 이 월운리 훈련장은 유격훈련 숙영지와 소총사격장, 자주포 사격장 등이 한데 붙어있는 기묘한 곳이다. 때문에 운이 좋으면 2사단 소속 부대 중 월운리 부근에 있는 일부 부대가 이 유격장을 사용하는데, 자주 벌어지는 일은 아니지만 유격시즌 막바지에 일정이 겹쳐 버리면 유격이 취소되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 실제로 2003년 63연대 예하의 한 대대가 이런 사유로 인해 유격 훈련이 사라져 버린 일이 있다.

반대로 운이 없을 경우엔 혹한기+연대 RCT+대대 ATT 훈련을 합쳐 훈련받는 그야말로 대참사가 벌어질 때도 있다. 2013년 혹한기 훈련 당시에 있었던 실화로, 3개의 훈련이 신막사 건축으로 인해 밀리고 밀리다 63연대가 그간 밀린 훈련을 한 주 만에 모조리 다 받았다.

가벼운 부상일 경우 백두병원으로 가지만[102], 중부상을 입은 경우에는 춘천에 있는 국군춘천병원으로 후송을 간다.[103]

제2사단 노도부대와 작계지가 겹친다. 그래선지 2사단에서는 "최전방에서 추위에 떠는 불쌍한 아저씨" 21사단에서는 "허구한 날 구르는 불쌍한 아저씨"들로 서로를 안쓰러워 했다. 이걸 가지고 사단장들이 가끔 개드립을 날리는 경우도 있다. 3X 사단이었으면 민관협조가 필요한 사안에서 도지사와 독대를 할 텐데, 여기선 사단장 둘이 함께 군수 만나러 간다고 한다. 외박시에 위수지역이 같아 종종 충돌이 일어나는 편이였으며 2000년경 양구 터미널 근처에서 양측 사단 장병들과 수색중대, 대대원들이 대치하여 난투극을 벌이는 일이 발생한 적도 있다. 또한 헌병들이 수색대, 화학지원대 인원들을 이유없이 검문하고 연행하기도 했었다. (유격 때문에)

양구는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는 내륙의 오지다 보니 2사단과 21사단 장병들 덕분에 먹고산다고 볼 수 있는데, 상인들의 염치없는 상행위로 이하여 물가가 비싼편. 게다가 택시비도 양구버스터미널에서 신병교육대까지 간다 치면 동서울~양구 버스비보다 더 비싸게 받는다.[104]

게다가 교통이 불편했던 과거 위수지역은 양구시내도 불허했을 정도로 좁았다. 가령 팔랑리 동면일대의 연대와 대대 일부는 팔랑리 밖으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가게들이 팔랑리에 형성되어 팔랑베가스로도 불리웠었는데, 위수지역이 양구읍까지 확대되자 그나마 얼마 안 되는 가게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105]

그리고 양구 고등학생 군인 집단 폭행 사건이 벌어지자 21사단은 가해자들을 옹호하는 양구 여론, 살인적인 물가, 춘천시와의 교통망이 발달된 점을 감안해 위수지역을 춘천까지 넓히려 했지만, 양구 상인들의 극구 반대로 인해 도돌이표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2019년 기준으로는 출타자의 35% 이내에 한하여 위수지역이 부대 복귀 2시간 이내 거리까지 확대되었다. 그래도 위수 지역이 양구 시내로 제한된 건 마찬가지이고, 양구에서 즐길 거라곤 여전히 당구장, PC방, 모텔 방에서 술을 마시는 것 말고는 없다.

6.2. 훈련





6.3. 사단가

힘차게 솟아나는[106] 태양을 안고 눈보라 휘날리는 설악위에서
멸공의 역군으로 굳굳히 뭉친 씩씩하다 백두산 부대 21사단

늠름한 투지로서 가는 곳마다 승리의 나팔 소리 힘차게 울려
그이름 높이떨친 국군의 자랑 용감하다 백두산부대 21사단

오천만 우리국민 굳게 지켜서 남북의 통일 위해 선봉이되어
백두산 천지 위에 태극기 날린 장하도다 백두산 부대 21사단

영원한 백두용사 산악에 산다 불굴의 백두정신 통일을 위해
오늘도 골육지정 드높은 기상 자랑하자 백두산부대 21사단||

6.4. 구호

통일의 선봉장
백두산에 태극기를
백두산부대 화이팅 화이팅 화이팅

6.5. 부대영상

KBS 일요스페셜 국군의 날 기획 "동부전선 가칠봉의 수호천사들" (2001년 9월 30일 방송)


G1강원민방 GTB 특명 내무반을 열어라! (2002년 10월 30일 방송)


KBS "청춘 신고합니다" 육군 백두산부대편 (2003년 9월 1일 방송)


춘천 MBC '신나군' (2008년 2월 18일 방송)


KBS 수요기획 국군의 날 특집 “DMZ 특수수색대 - 전사로 거듭나다” (2008년 10월 1일 방송)


[국방부] 육군 21사단 GOP 경계작전


춘천 MBC '신나군' (2014년 5월 24일 방송)


국방TV [제3회 국방부장관상 군가합창대회] 전선을 간다 - 육군 제21보병사단 (장려상 수상)


국방TV [우리는 전우] 승리를 향한 전진 - 박효선 교수와 전우들

7. 사건 사고

1967년 모 연대 부연대장이었던 홍두표 중령과 그의 딸, 처형이 괴한에게 살해당한 사건이다. 홍 중령은 괴한과 격투를 벌이며 저항하다가 괴한이 쏜 권총탄에 순직했고, 아내도 도망치던 중 총탄에 맞았으나 구사일생으로 홀로 살아남았다. 아직도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미제 사건이다. 다만 휴전선 부근에서 피묻은 거즈 등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물품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당시 비일비재했던 남파 무장공비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여담으로 이 사건이 와전되어 "밤중에 북한군이 소리소문 없이 중령의 목을 베어갔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일종의 군대괴담. 자매품으로 불고기 벙커 괴담도 존재한다.
1997년에 일어난 사건으로, 병영부조리가 원인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듬해인 1998년 제21보병사단 정찰대는 해체되었다.
2011년 3월 양구군에서 10여 명의 고등학생들이 외박나온 사단 소속 용사에게 집단으로 폭행을 가한 사건. 해당 용사나 사단 책임은 전혀 없지만 워낙 유명한 사건이기에 기술한다.

폭행에 가담한 10여 명의 고등학생 중 1명은 전 66연대 주임원사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2014년 6월 18일, 강원도 최전방 21사단 비무장지대(DMZ)에서 불모지작전 수행 도중 지뢰사고로 곽 중사가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도 국방부에서 대놓고 은폐하려다가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을 통해 덩달아 알려지게 되었는데, 부상정도가 4번 수술을 받고도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 수준이다. 이때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과 마찬가지로 치료비 문제가 불거졌는데 치료비가 1,750만 원이 나왔으나, 국방부는 1달치 치료비인 1,000만원만 줄 수 있다고 해서[107] 나머지 금액인 750만 원은 곽 중사의 중대장이 치료비를 대신 내줘서 퇴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방부 감찰단은 곽 중사의 중대장이 치료비를 대신 낸 부분을 문제삼으며 곽 중사 어머니께서 나머지 금액 750만 원을 다시 중대장에게 되돌려줬다고 한다. 곽 중사 어머니가 심상정 의원에게 보낸 편지

논란이 커지자 국방부 측은 곽 중사의 치료비를 전액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약속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8년 1월 2일에 21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훈련병 외진 복귀 도중에 도고터널 근처에서 군용버스 추락 사고가 났다.
2018년 11월 16일, 양구 동부전선 전방 GP 내 화장실에서 김모(21) 일병이 머리에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되었고,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사망한 사건이다.
2019년 9월 14일 22시 44분 경 66연대 1대대 본부중대 소속 권모씨가 저녁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AMB로 긴급 야간후송 중 양구읍 도사리 31번 국도에서 AMB가 전도되는 사건 발생.

같이 출동했던 66연대 의무중대 의무병 1명이 사망하고 같이 탑승했던 4명은 부상을 입은 사건. 뉴스링크

사건의 시발점은 AMB를 점검도 안하고 밤중에 급한 나머지 통제계통에서 출발시킨 것이였다.
2021년 3월 9일, 동기 2명과 평일외출을 나온 A일병이 양구읍의 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반주를 했는데, 복귀 전에 택시를 타기 위해서 주택가를 지나던 중 개가 크게 짖는다고 담벼락을 툭툭 차던 도중 근처를 지나던 타 중대 간부가 술 냄새가 난다면서 신상에 대해 묻고 행정보급관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는 도중에 A일병이 골목길로 도주해서 1톤 트럭 밑에 숨었다가 트럭이 출발하면서 압사당해 사망한 사고이다.

사망한 A일병의 유족은 해당 간부가 강하게 훈계한 탓에 겁에 질려 사고가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뉴스링크
2021년 6월 16일, 제31보병여단 1대대장[108]이 모 병사가 단체 이동 중 자신에게 경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당 병사에 대해 막무가내 징계를 진행하고,[109] 해당 병사의 민간인 부모를 불러 외부에 제보할 시 아들을 형사처벌하겠다는 협박을 가했으며[110] 병사의 징계 항고권도 침해당했다는 의혹이 군인권센터를 통해 제기되었다. 뉴스링크 군인권센터 보도자료

결국 논란이 되자, 억지로 끼워맞춘 군기교육대 입소를 연기하고 군단 차원에서 감찰에 들어갔다고 한다(17일).

그러나 육군 21사단 병사 아버지 각서 요구 사건, 군은 이미 알고 있었다(6월 22일). 병사의 가족은 수차례 문제를 제기했지만, 묵살당한 셈이다.
2022년 7월경 1대대인 GOP에서 수류탄으로 자살시도를 하였다.
2022년 10월 31일 21사단 안보전시관에서 간부의 지시로 뇌관이 살아있는 폭발물을 운반하던 병사 2명이 폭발물이 폭발하면서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하는 중상을 입은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병사들은 사건 이후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되어 생명에 큰 지장은 없었지만 하반신에 큰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와 같은 국가적으로 큰 사건이 터진 상황으로 봉화 광산 붕괴 사고처럼 묻히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하여 해당 부대에서 근무하는 모 병사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관련 사고 글을 올렸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제21보병사단 안보전시관 폭발물 폭발사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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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27일 강원도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야촌리 인근에서 "차량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다."는 주민 신고를 받고 경찰과 소방당국이 출동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결국 차량에 있던 남성은 숨진채 발견 되었는데, 차량에서 번개탄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남성은 이 사단 소속 20대 위관급 장교로 확인되어 군 당국에 인계하였다.

5월 27일은 이곳에 입대하는 훈련병들이 들어오는 날이기도하였다.

8. 여담

8.1. 상문고등학교

서울의 상문고등학교와 1995년부터 2013년까지 자매결연을 맺어(당시 상문고등학교 교장과 제21보병사단의 상급 부대인 제3군단장이 형제 관계였다.), 매년 5월 경에 상문고등학교 특정학년[113] 전교생들을 이 부대로 강제 입대시켜 2박 3일간의 병영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했었다. 일반적인 극기 훈련 식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강도가 훨씬 더 센 편으로, 실제 최전방 GOP 지역에서 군복무중인 장병들의 각종 훈련과 근무를 직접 체험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제식훈련은 기본이고 몸굴리기 가장 좋은 계절인 봄에 맞추어 PT체조를 포함한 유격 훈련까지 체험하며, 마일즈 장비를 이용한 분소대 공격과 방어훈련에, GOP 현장체험의 일환으로 주간 행군을 하여 가칠봉 전망대를 비롯한 GOP 지역에 올라가 심할 경우 야간에 철책선 경계도 직접 체험하는데다, 야간 취침시에 부대 장병의 통솔하에 점호 및 불침번 근무까지도 하는 등 그야말로 최전방 현역 복무가 어떤 것인지 고등학생으로서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그 밖에 부대가 보유한 각종 화기들의 소개 및 시범행사[114]와, 펀치볼 지역과 제4땅굴 견학 등의 다소 즐거운 프로그램도 있었다고 한다.

파일:external/www.chamnews.net/26449_10612_957.jpg

학생들만 고생한 게 아니다. 이 부대 장병들도 엄청나게 고생했다. 매년 병영체험 행사가 있을 때마다 수백명의 고등학생들을 군부대에 수용하고 보급품 지급은 물론이거니와 인원통제도 해야 하는지라 상당히 고달픈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병영체험 행사 1주일 전부터 보급품 준비하느라 등골빠지고, 통제 안 되는 고딩들을 다루면서도 군대처럼 깔 수도 없어서 골 때리는 건 물론이거니와, 게다가 자신들의 내무반을 상문고 학생들을 위해 내어주고 다른 부대에서 깍두기 신세로 있거나 최악의 경우 부대 주변에 텐트를 치고 숙영지 생활을 해야 하는 등 무척이나 고생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상문고를 졸업하고서 나중에 군입대시에 지지리 복도 없이 이 곳 21사단으로 자대배치를 받으면 단지 상문고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곳 선임들의 갈굼크리가 완벽히 보장되었다는 후문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오랜 전통같은 악연도 2013년 10월에 자매결연 군부대 강제 위문금과, 표창장 남발 문제로 인해 뉴스에 보도되며 2014학년도부터 병영체험이 전격 폐지되면서 이젠 추억속으로 사라졌다.
[1] 전체 부대 중 2번째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1위는 15차례 수상한 제9보병사단이다.[2] 정비대대와 보급수송대대가 새로 통합된 대대이다.[3] 화생방지원대에서 화생방대대로 개편, 2011년 이전에는 화학지원대였다.[4] 백두병원[5] 군사경찰대에서 개편, 본부대와 유이한 영내 직할대[6] 국방개혁 2.0으로 해체된 3군단 직할 제2전차대대 1중대, (구)제2보병사단 전차중대 편입후 전차대대로 개편 (K1 전차)[7] 방공중대에서 개편[8] 자대배치를 위한 임시 생활 시설이다.[9] (구)제2보병사단에서 제21보병사단으로 이관.[10] 백두산신병교육대. (구)노도신병교육대에 주둔해 있다.[11] 2사단에서 21사단으로 예속전환, 육군 최초창설 포병대대.[12] 2사단에서 21사단으로 예속전환[13] 1997년 불미스러운 사고로 인해 이듬해 해체되었다.[14] 육군항공작전사령부로 통합되어 사라졌다[15] 예비연대로 2019년을 끝으로 제31보병연대로 통합되어 연대 해체[16] (구)백두산신병교육대대. 이 부대는 해체되고 원래 2사단 신병교육대였던 31보병여단 1대대가 이 부대를 흡수했다.[17] (구)제2신병교육대대[18] (구)제3포병여단 922포병대대. 현재는 31포병대[19] 65포병대로 개편[20] 66포병대로 개편[21] 육군사관학교 49기 임관. 국방부 군사보좌관실 정책관리담당관, 국방부 정책기획과장, 육군교육사령부 전투발전개념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역임.[22] 육군사관학교 29기 임관. 제3보병사단장, (구)제6군단 부군단장, 육군교육사령부 부사령관 역임.[23] 제25대 (구)제3야전군사령관[24] 육군3사관학교 14기 임관. 제5군단 군수참모, 제52군수지원단장, 육군본부 군수참모부 환경과장, 제9공수특전여단장, 제5군수지원사령부 사령관 역임.[25] 육군종합학교1기 임관. 주월남 한국군 사령부 작전참모, 제2야전군 정보처장 역임. 육군 준장 예편[26] 육군사관학교 34기 임관. (구)제1야전군사령부 감찰참모, 육군특수전사령부 전투발전처장, 육군3사관학교 교수부장 역임. 부친인 김촌성 예비역 육군 준장이 1966년 제14대 63연대장으로 복무하였다. 부자가 같은 연대의 연대장으로 33년의 시차를 두고 부임하여 화제가 되었다.[27] 제23대 (구)제3야전군사령관, 제42대 육군참모총장으로 재직 하였다.[28] 육군사관학교 2기 임관. 육군본부 통신감, 육군통신학교장, 제37보병사단장, 국방부 정책기획국장 역임. 예비역 육군 중장 차기문 장군의 장인이다. 흥미롭게도 사위인 차기문 장군도 제37보병사단장으로 재임했었다.[29] 육군사관학교 28기 임관. 제37보병사단장 역임.[30] 제29대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제43대 합동참모의장[31] 제39대 제2작전사령관, 제45대 육군참모총장[32] 육군사관학교 49기 임관. 제5보병사단 36연대장, 동원전력사령부 참모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인사관리/복지차장[33] 제28대 (구)제3야전군사령관, 초대 지상작전사령관[34] 육군사관학교 27기 임관. 국군체육부대장, 제52보병사단장, 육군본부 감찰감, 육군특수전사령관, 제2야전군사령부 부사령관 역임[35] 육군사관학교 35기 임관. 제56보병사단장, 국방부 동원기획관 역임[36] 육군사관학교 8기 임관. 예비역 육군 준장. 고려대학교 승마부에 재학중이던 1948년 육군에 입대하여 49년 기병 소위로 임관하였다. LA 올림픽 한국승마선수단 감독, 서울 올림픽 승마경기 국제심판으로 활동했다.[37] 학군 19기 임관(원광대). 現 원광대학교 군사학과 교수. 제39보병사단 참모장, 3군단 작전참모, 제11공수특전여단장, 학생중앙군사학교 참모장, 제60보병사단장, 1군단 부군단장 역임[38] 제2대 지상작전사령관, 이후 학군 출신 최초로 제49대 육군참모총장에 임명.[39] 육군3사관학교 18기 임관. 육본 인사행정처장 겸 부관병과장 역임. 울릉도 출신 최초 장군진급자다.[40] 제14대 (구)제3야전군사령관, 제32대 육군참모총장[41] 육군사관학교 41기 임관. 육군사관학교 인사행정처장, 육군특수전사령부 기획실장 역임. 2012년 국군복지단 사업관리처장 재직 시절 입찰비리의 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검찰에 고발한 용기있는 공익제보자다. 그가 폭로한 입찰 비리 등은 2014년 검찰 수사에서 대부분 사실로 밝혀졌다.[42] 학군 10기 임관(조선대). 제2훈련소 참모장, 제37보병사단장, 육군종합행정학교장, (구)제11군단 부군단장 역임[43] 육사 36기 임관. 특전사 참모장, 인사사령부 인사운영처장, 육군종합행정학교장, 육군훈련소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44] 육사 23기 임관. 25사단장, 1군단장, 육군참모차장[45] 학군 21기 임관(성균관대). 제7군단 인사참모, 육군본부 전직지원과장 역임. 現 청주대학교 군사학과 교수.[46] 육사 31기 임관. 제66보병사단장 역임. 1993년 4월 교육사령부 지원처장(대령)으로 근무하던 시절 서울 모 군인아파트 일대에서 하나회 명단을 살포한 일로 유명하다.[47] 제48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이후 제47대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에 임명[48] 육사 37기 임관. 現 한성대학교 국방과학대학원 안보정책학과 교수. 1사단 15연대장, 501보병여단장, 울산대 학군단장, 31사단 행정부사단장, 국방대학교 교수 역임.[49] 육사 24기 임관. 합참 818 후속추진기획단장, 합참 심리전참모부 차장 역임.[50] 학군 33기 임관(금오공과대학교). 제1포병여단[51] 육사 42기 임관. 자이툰부대 민사협력본부장, 6포병여단장, 한미연합군사령부 화력처장, 국방정신전력원장 역임.[52] 육사 45기 임관. 육본 작전교훈차장, 제3보병사단장, 제2작전사령부 참모장, 제5군단 부군단장, 육군교육사령부 교육훈련부장 역임.[53] 3사 11기 임관. 1군단 참모장, 육본 인사참모부 인사근무처장, 학생중앙군사학교 부교장 역임.[54] 육사 38기 임관. 現 청주대학교 군사학과 교수. 3공수여단장, 합참 작전처장 역임. 제34대 사단장 정항래 예비역 중장과 청주고등학교, 육사 동기다. 유능한 작전통에 준장 1차진급자이지만 합참 작전처장 재직 시절 발생한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인해 더 이상 진급하지 못했다.[55] 육사 36기 임관. 現 동원대학교 부사관학과 교수. 육본 기획홍보과장, 육본 정책기획과장, 육군리더십센터장, 육군군사연구소장 역임.[56] 육사 38기 임관. 28사단장, 육군포병학교장, 합참 민군작전부장 역임.[57] 갑종 229기 임관. 20기계화보병사단 포병여단장, 국방부 감사과장, 육본 군수참모부 체제발전과장, 수도포병여단장, 제3야전군 군수처장, 제2군수지원사령부 사령관 역임.[58] 육사 4기 임관. 6포병단장, 주미 한국대사관 수석무관 역임. 69년 소장 에편.[59] 육사 38기 임관. 6포병여단장, 방위사업청 화력탄약사업부장, 계획운영부장, 분석시험평가국장 역임.[60] 제19대 제3야전군사령관, 제32대 합참의장, 제41대 대한민국 국방부장관[61] 육종 5기 임관. 6포병여단장, 울산경비사령부 사령관 역임.[62] 육사 12기 임관. 국방부 품질검사소장, 국방부 방산국장[63] 학사 19기 임관(전주대). 2사단 17연대장, 27사단 참모장, 2군단 작전처장 역임. 2021년 3월11일 준장으로 진급하였으나 다음날인 3월12일 급성위암으로 별세했다.[64] 육사 40기 임관. 2사단장, 제7기동군단장, 합동참모차장, 제48대 국방부장관[65] 육사 50기 임관. 국방부 인사기획관리과장, 육사 생도대장[66] 육사 16기 임관. 육군보병학교장, 수도군단 부군단장 역임.[67] 군영 1기 임관. 초대 육본 통신감, 제11보병사단장 역임.[68] 육사 7기 임관. 3군단 통신참모, 제1통신단 단장, 육군통신학교장, 육본 통신감, 합참 통신전자국장 역임. 육군 소장 예편 후 삼성반도체통신 사장, 삼성석유화학 사장, 제일합섬 사장, 삼성에버랜드 사장, 조선호텔 사장 등을 역임했다.[69] 육사 19기 임관. 제1101 야전공병단장, 제6공병여단장, 육본 공병감 역임.[70] 육사 21기 임관. 68사단장, 육군정보학교장 역임.[71] 육사 8기 임관. 38사단 116연대장, 육본 병비국 교육과장, 감사원 감사위원 역임. 육군준장 예편.[72] 생도2기 임관. 제6보병사단 19연대장, 3사관학교 교수부장, 육본 감찰감 역임.[73] 학군 31기 임관(조선대). 2022년 현재 7포병여단장 재임 중이다.[74] 제31대 제1야전군사령관[75] 갑종 157기 임관. 7사단장, 보병학교장, 국방부 인사국장, 육군대학 총장 역임.[76] 제38대 제2작전사령관, 제43대 육군참모총장[77] 학군 6기 임관(한양대). 9공수특전여단장, 2사단장, 육본 지휘통신참모부장 역임.[78] 포병간부 6기 임관. 제2군관구사령부 참모장. 제2야전군 군수처장.[79] 갑종 2기 임관. 3군단 부관참모, 제1야전군 부관차장, 육본 부관감 역임.[80] 육사 42기 임관. 8군단 작전참모, 제1야전군 작전과장, 제1야전군 감찰참모, 합동군사대학교 지상전술처장,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장 역임.[81] 육사 6기 임관. 6군단 참모장, 육군 방첩부대 부사령관, 26사단장, 합참 전략정보국장, 제2훈련소장 역임.[82] 한국계 일본인으로, 군 복무 당시에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가 전역 이후에 국적을 일본으로 바꾼 듯하다.[83] 김대한은 제60보병사단으로 입대했다.[84] 전방의 경우 한 겨울 최저 체감온도가 영하 58도에 달하기도 한다. 언론 보도 내용[85]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진에 “북한 위협으로부터 가장 위험한 부대를 가겠다. 혹한에 시달리는 험준한 산악의 초소를 찾아보라”고 지시한 후 청와대 참모진들이 최전방인 육군 3사단 또는 15사단의 OP를 방문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이명박 대통령이“더 위험한 곳을 찾아보라”고 지시하여 방문지로 최종 선택된 곳이 가칠봉의 21사단 정상관측소(OP)다. 언론 보도 내용[86] 7x3=21[87] (구)63연대[88] 병사들 사이에서 반농담삼아 최악의 빡센부대를 가리키는 말로 "젓가락(11사단)을 든 오뚜기(8사단)가 백마(9사단)를 타고 백두산(21사단)에 올라 이기자(27사단 2022년 11월 30일 해체)를 외치다 백골(3사단)이 되었네"라는 구절이 전해지기도 했다.[89] GOP 대대는 '충성, 찾고 잡자'를 사용했다. 이는 ‘땅굴’을 찾고, ‘간첩’을 잡자는 의미이다.[90] 여담으로 "양구는 6.25 당시 북한이 '이곳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을 거 같다'고 판단하고 버린 땅"이라는 말이 부대 안에 있다고 한다.[91] 7사단의 경우 화천 GOP 지역을 15사단과 함께 담당하므로 담당 면적은 적은 편이나 섹터의 경사가 굉장히 심하다. 반면 21사단은 그 정도로 가파르진 않으나 섹터의 길이가 가장 길다.[92] 참고로 이곳은 대북 심리전의 최전선이기도 해 1991년 4월부터 6월까지 1억 5,000만원으로 인근 능선에 수영장을 지어 1992년 미스코리아 수영복 대회를 열기도 하였으며, 서울 충현교회와 자매결연을 맺어 대형 철십자 탑을 추가로 짓기도 했다. 이것들은 지금도 유지보수되고 있지만 수영장의 경우 물이 부족하고 GOP 근무교대 특성상 장병들은 간단히 즐길 수 있는 풋살경기장으로나 쓰고 있다. 게다가 안정적인 전력 수급을 위해 풍력발전기와 태양광 발전기까지 추가로 설치했다.[93] 참고로 백석산은 화천 파로호까지 감제할 수 있는 고산이어서 이를 두고 백석산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다.[94] 도솔중대, 선점중대 등[95] 그 당시 춘천에서 배로 이동할 만한 곳은 소양호를 통해 이어진 양구밖에 없다.[96] 간단하게 말해서 다른 사단의 각 소초 책임경계구역에 비해서 2배라고 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97] 참고로 육군교범에서는 산악행군 1km 면 평지행군 3km 를 실시한 것으로 치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중반 군단장이 "부대이름이 산악부대인데 행군도 산악행군으로 해야 하지 않겠나. 행군코스에 산악지형을 필히 포함하라."고 지시해서 각급 부대 작전과 간부들이 "여기서 더 뭘 어떻게 하라고..."라는 식으로 한탄했던 일이 있다.[98] 예컨데 초속 5m/s 정도의 바람이 불면 체감온도는 영하 45°C 에 수렴한다.[99] 그 밖에도 해안면으로 가는 453번 지방도를 걸어서 올라가다보면(행군) 특정 지역에서부터 갑자기 체감온도가 쭉 떨어지는 구간이 존재한다. 군바리들은 이런 곳을 통틀어 '동장군 주둔지'라고 불렀다. 별 수 없는 게 산봉우리와 산봉우리 사이에 위치한 계곡 같은 지형이라 바람이 심하게 불 수밖에 없다. 물론 여름엔 열풍이 불어와 쪄 죽는다.[100] 예비연대의 역할도 하기때문에 GOP 지원과 대대 탄약고 근무지원도 많이 갔다.[101] (구)2, 12, 21사단 및 군단직할대[102] 과거 208이동외과병원과 같이 있었다.[103] 데3군단 예하부대는 국군홍천병원으로 가는 게 정상이지만 양구군의 경우는 춘천병원이 더 가깝기 때문에 2군단 예하 춘천병원으로 간다.[104] 물론 버스도 추천되나 하루 운행회수가 많지 않으므로 시간대를 미리 확인해야 한다.[105] 2000년대 초반만해도 팔랑리 일대는 죽은 동네라고 봐도 될 정도로 폐업한 과거의 모텔과 업소 간판들이 즐비했다.[106] 원래는 '빛나는 동해 바다'였는데 개사했다.[107] 그 와중에 1,000만원은 21사단 내에서 용사들의 월급에서 격려금 명목으로 자율로 모금하자는 의도였으나, 사실상 반강제로 징수했다고 한다.[108] 제21보병사단 신병교육대를 맡고 있는 부대이다. 現 대대장 중령 신정환[109] 군필자들은 다 아는 사항이지만 3인 이상 단체로 이동 중에는 계속 이동하면서 단체를 인솔하는 최선임 병사 또는 간부만 대표로 경례하는 것이 규정이다. 오히려 규정을 어긴 것은 대대장이다.[110] 군인의 민간인 협박 및 폭행, 상해 등은 군법에 의해 강력한 처벌이 내려진다.[111] 3년 뒤 육군특전사령관 역임 때도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상했다.[112] 2004년 말에 홍천소방서에서 춘천소방서로 편제가 바뀌었다가 2019년 6월 4일 양구소방서 신설로 춘천소방서로부터 분리되면서 양구119안전센터는 양구소방서의 직속센터로 이관되었다.[113] 과거에는 2학년이었으나 이후 1학년으로 바뀐다.[114] 심지어는 현역 장병들의 K-1 등의 개인화기의 분해/조립 시범과 상문고등학교 학생들이 직접 총기를 분해/조립하는 체험행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