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치 타다히토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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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PB 일본 시리즈 우승반지 | |||||||||||||||||||||||||||||||||||||||||||||||||||||||||||||||||||||||||||||||||||||||||||||||||||||||||||||||||||||||||||||||||||||||||||||||||||||||||||
1999 | 2003 | 2010 |
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 |
2005 | 2008[1] |
1996 애틀랜타 올림픽 {{{#8c8c8c 은메달}}} |
2001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2루수 부문 베스트나인 | ||||
오오시마 코이치 (오릭스 블루웨이브) | → | 이구치 타다히토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 → | 타카기 히로유키 (세이부 라이온즈) |
2003, 2004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2루수 부문 베스트나인 | ||||
타카기 히로유키 (세이부 라이온즈) | → | 이구치 타다히토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 → | 호리 코이치 (치바 롯데 마린즈) |
2001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 ||||
오오시마 코이치 (오릭스 블루웨이브) | → | 이구치 타다히토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 → | 타카기 히로유키 (세이부 라이온즈) |
2003, 2004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 ||||
타카기 히로유키 (세이부 라이온즈) | → | 이구치 타다히토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 → | 니시오카 츠요시 (치바 롯데 마린즈) |
2001, 2003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 리그 최다 도루 |
보유 기록(NPB) | |
1경기 최다 2루타 | 4개 |
최다 연속경기 맹타상 | 5연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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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치 타다히토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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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f6b00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등번호 7번}}} | ||||||||||||||||||||||||||||||||||||||||||||||||
이시게 히로미치 (1996) | → | 이구치 타다히토 (1997~2004) | → | 오무라 나오유키 (2005~2008) | |||||||||||||||||||||||||||||||||||||||||||||
시카고 화이트삭스 등번호 15번 | |||||||||||||||||||||||||||||||||||||||||||||||||
샌디 알로마 주니어 (2001~2004) | → | 이구치 타다히토 (2005~2007) | → | 윌슨 베테밋 (2009) | |||||||||||||||||||||||||||||||||||||||||||||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번호 12번 | |||||||||||||||||||||||||||||||||||||||||||||||||
랜달 사이먼 (2006) | → | 이구치 타다히토 (2007) | → | T.J. 본 (2008) |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번호 10번 | |||||||||||||||||||||||||||||||||||||||||||||||||
크레이그 스탠스베리 (2007) | → | 이구치 타다히토 (2008) | → | 미겔 테하다 (2010) | |||||||||||||||||||||||||||||||||||||||||||||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번호 9번 | |||||||||||||||||||||||||||||||||||||||||||||||||
마이클 본 (2006~2007) | → | 이구치 타다히토 (2008) | → | 크리스 스넬링 (2008) | |||||||||||||||||||||||||||||||||||||||||||||
{{{#fff [[치바 롯데 마린즈|치바 롯데 마린즈]] 등번호 6번}}} | |||||||||||||||||||||||||||||||||||||||||||||||||
하츠시바 키요시 (1994~2005) | → | 이구치 타다히토 (2009~2022) | → | 결번 |
이구치 타다히토 井口資仁[2]이구치 타다히토(井口忠仁).] | Tadahito Iguchi | |
출생 | 1974년 12월 4일 ([age(1974-12-04)]세) |
도쿄도 다나시시 (現 도쿄도 니시토쿄시)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78cm, 91kg, O형 |
학력 | 고쿠가쿠인대학 쿠가야마 고교 (도쿄) - 아오야마가쿠인대학 |
포지션 | 2루수, 유격수, 1루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6년 드래프트 1라운드 (다이에)[역지명] |
소속팀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1997~2004) 시카고 화이트삭스 (2005~2007) 필라델피아 필리스 (2007)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08) 필라델피아 필리스 (2008) 치바 롯데 마린즈 (2009~2017) |
지도자 | 치바 롯데 마린즈 감독 (2018~2022) |
해설위원 | NHK 야구 해설위원 (2023~) |
국가대표 |
|
응원가 | Air - kids are alright |
SNS | [4]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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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일본프로야구 선수, 지도자.일본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에서 공수주를 모두 갖춘 내야수로서 활약하며 일본시리즈 우승 3회와 MLB에서 월드시리즈 우승 1회[6], 총 4번의 우승횟수를 자랑한다.
감독으로는 초창기에는 전형적인 OOTP 플레이어 수준의 운영을 하면서 온갖 실책을 했으나[7] 3년만에 꼴찌팀을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보낼 정도로 빠르게 성장시키면서 야잘잘이 코칭스태프에서도 실현되는 것 아니냐는 평가를 들었다. 특히 야수 출신 감독인데도 투수 혹사를 최대한 지양하고 몸관리를 철저히 시키는 점이 장점이었다. 다만 우승에 도전하던 3, 4년차 모두 2위에 머무르며 끝내 성공을 거두진 못했고 5년차엔 다시 리그 5위에 그쳐 우승 경력 없이 아쉽게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2023년부터 NHK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 선수 생활
2.1. 아마추어 시절
고등학교 입학 전까진 포수로 뛰었으나, 고등학교 입학 후 유격수로 전향했다. 고등학교 시절엔 2학년 때 하계 코시엔에 참가하기도 했으며, 그해 가을부터 3학년 때까지 야구부의 주장을 맡았다.그 후 아오야마가쿠인 대학으로 진학하고 나서도 통산 101시합 출장, 366타수 103안타 타율 .281, 24홈런 61타점 32도루, MVP 2회, 베스트나인 4회를 기록하며 대학 최고의 유격수로 이름을 날렸으며,[8],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일본 야구 국가대표[9]에 발탁되어 은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10][11]
그리고 199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의 1순위 지명(역지명)을 받아 프로 무대에 입성한다.
2.2. 다이에 시절
프로 첫 해인 1997년 시범경기에서 부상을 당한 이구치는 5월에 데뷔전을 가졌는데, 첫번째 타석에서 프로 첫 안타를 때려냈고, 3번째 타석에서는 만루홈런을 때리며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데뷔전에서 만루홈런을 기록한 신인 선수가 된다. 하지만 이후 프로의 한계에 부딪치며 .203라는 영 좋지 않은 타율로 시즌을 마감했다. 1998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팀의 주전 유격수로 뛰게 되는데, 타율과 출루율은 떨어지지만 일발장타를 앞세워 하위 타순의 뇌관 역할을 맡았고 1999년 다이에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에는 어깨 수술을 받으며 시즌을 거의 날려버렸는데, 그 사이에 뛰어난 수비력을 가진 토리고에 유스케[12]가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그 때까지도 내세울 거라고는 어쩌다가 터지는 일발장타뿐, 타율과 출루율이 너무 낮아서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대형 유격수」라던 입단당시와의 평가와는 달리 하위타선의 공갈포의 길을 걸으면서 또 한명의 드래프트 1순위 먹튀로 전락하는 듯 했다.
결국 자기의 포지션이던 유격수를 토리고에에게 뺏기고 2001년 시즌부터 포지션을 2루수로 옮기게 된다. 그런데 포지션 변경이 본인에게 전환점이 되었는지 2루수로 자리로 옮긴 이구치는 대오각성하여 .261 30홈런 97타점 44도루(리그 1위)를 기록하며 30-30 클럽에 가입했고 붙박이 3번 타자로 자리잡았다. 이 해 베스트나인과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면서 입단당시 받았던 대형 내야수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시작한다. 이듬해인 2002년에는 부상의 영향으로 .259 18홈런 53타점 21도루로 다소 주춤하면서 2001년의 활약이 1년 반짝으로 끝나는가 했지만 2003년 .340 27홈런 109타점 42도루(리그 1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며 완벽하게 타격에 눈을 뜬 모습을 보였고, 당시 역대 최강이었던 다이에 타선을 상징하는 100타점 4인방[13]의 일각을 차지하며 다시 베스트나인과 골든글러브를 싹쓸이했다. 2004년에도 .333 24홈런 89타점 18도루로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며 또다시 베스트나인과 골든글러브를 수상한다.
시즌이 끝난 뒤 이구치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고,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2년 470만 달러에 계약을 맺는다.
메이저리그 진출과정에서 잡음이 좀 있었다. 원래 해외진출 자격이 없었지만 구단과의 이면계약[14]으로 구단의 경영 주체가 바뀌거나 당시 구단주가 사임하는 경우 자유계약으로 풀어주는 건이 계약서에 들어 있었다. 구단의 모기업이 다이에에서 소프트뱅크로 바뀌면서 구단주가 사임하게 되자, 바로 옵션을 사용하여 'FA 자격'으로 메이저리그로 진출했다. 호크스 팬들은 삽질하고 성적 나쁠 때 참고 기다려줬는데 이제 좀 쓸만해지려고 하니까 돌연 해외 진출을 선언하면서 뒤통수를 쳤다면서 배신감을 느꼈다는 팬들도 있었다고 한다.
2.3. 메이저리그 시절
시카고 화이트삭스 시절.
필라델피아 필리스 시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시절.
2년 470만 달러라는 염가계약을 한 이구치는 2005 시즌 이구치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뛰게 된다. 유격수 후안 유리베와 함께 키스톤 콤비를, 리드오프 스캇 포세드닉을 보좌하는 2번 타자 역할로 준수한 테이블 세터로 활약했다. 데뷔 첫 해부터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손에 넣는 감격을 누리며 아시아인 내야수 최초의 월드시리즈 우승자라는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시즌 성적은 .278 15홈런 71타점 15도루 BWAR 2.8[15]으로, 아메리칸리그 신인왕 투표 4위에 오르기도 했다.
2006시즌에도 .281 18홈런 67타점으로 꾸준한 모습을 보였으나, 2007시즌에는 부상이 겹치며 지난 2년보다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두고 있던 도중 체이스 어틀리의 부상으로 2루수 자리에 공백이 생긴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된다. 2007시즌 통합 성적은 .267 9홈런 43타점.
이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1년 계약을 맺었는데, 2008시즌 중반 주루 도중 어깨 부상을 당하며 메이저리그 입성 후 최초로 부상자 명단에 오르게 된다. 부상에서 돌아온 이후 극심한 슬럼프에 빠지며 결국 9월 초에 팀에서 방출되었고, 그 해 9월 5일 다시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계약을 맺으며 4경기를 뛰었다. 입단 시기가 늦은 바람에 포스트시즌 엔트리에는 포함되지 못했으나, 필리스가 그 해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두번째 우승 반지를 손에 넣게 된다.
주전 3루수였던 페드로 펠리즈의 활약에 만족하지 못했던 필리스는 이구치와 재계약을 한 뒤 3루수로 쓰려 했으나, 2루 자리에 애착이 강했던 이구치는 치바 롯데 마린즈와 3년 계약을 맺으며 일본 무대로 돌아가게 된다.
메이저리그에서 커리어를 정리하자면 fWAR은 6.6, bWAR은 6.4로 2023시즌 종료 기준으로 fWAR과 bWAR 모두 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16] 2개의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획득한 것으로도 미루어 보아 김하성의 등장 이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성공한 아시아 내야수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부상이 발목을 많이 잡았으며 구단측에서 계약을 제기했음에도 불과하고 조기 복귀한 아쉬운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2.4. 치바 롯데 시절
다이에 시절 사장이었던 세토야마 류조가 구단 사장을 맡은 롯데에 입단했다.[17] NPB 복귀 첫 해 .281 19홈런 65타점 OPS .866으로 건재를 과시한 이구치는 2010년에는 .294 17홈런 103타점으로 맹활약하며 팀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견인했다.
공인구의 영향으로 리그 전체가 투신타병이 되어버린 2011년과 2012년에는 각각 9홈런, 11홈런에 머물렀지만, 포지션을 1루수로 옮긴 2013년에는 .297 23홈런 83타점 OPS .902로 다시 부활했다. 특히 이 해 7월 26일 라쿠텐 골든이글스 전에서 다나카 마사히로를 상대로 홈런을 때려내며 미일 통산 2000안타 기록을 달성한다.
2014 시즌에는 손가락 부상이 겹치며 .238 10홈런 49타점이라는 다소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 후 나이는 속일 수 없어서 점점 출장횟수가 줄어들었고 그에 비례해서 성적과 장타력도 하락했다. 게다가 발도 느려져서 이미 주 포지션인 2루는 불가능하고 1루와 지명타자로만 나서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롯데는 1루에 똑딱이 스타일인 후쿠우라 카즈야라는 프랜차이즈 플레이어가 있어서[18] 똑딱이화 된 이구치는 포지션이 중복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되었으며 장타력이 부족한 팀에 거포 용병을 데려오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19]
결국 2017년 교류전이 끝난 6월 20일 2017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고 표명했다. 다만 커리어는 시즌 종료 때까지 이어간다.
2017년 9월 24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홈경기가 그의 은퇴 경기날이자 은퇴식 날이었다. 이날 그는 지명타자로 선발출장하여 3대1로 끌려가던 9회 말에 극적인 동점 투런 홈런을 치는 데 성공하며 경기를 연장전으로 끌고간다! 이것이 그의 선수로서 마지막 안타가 되었다. 그 후 본인의 동점 홈런 덕분에 11회말에 한 타석이 더 돌아왔으나 우익수 플라이로 마지막 타석을 마감했다. 팀은 연장 12회 말 스즈키 다이치의 결승타로 기적적인 역전승을 했다.
여담으로 이 홈런은 이구치의 시즌 2호 홈런이었다. 즉 이 극적인 동점 홈런 전까지는 1시즌 내내 홈런이 달랑 1개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마지막 타석에 우주의 기운을 받아서 기적을 일으킨 셈이다.
3. 치바 롯데 감독 시절
은퇴 이후 코치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치바 롯데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초고속 승진을 이뤄냈다. 등번호는 선수시절과 동일한 6번. 선수 은퇴 후 바로 1군 감독이 되는 것이니 파격적인 승진인 셈. 하지만 선수 은퇴후 지도자 경험 없이 바로 감독으로 승진한 케이스라 이 사람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아무리 선수 시절에 팀 리더로서 리더십을 발휘했다고는 하지만 선수로서 팀을 이끄는 리더십과 감독으로서 팀을 지휘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서.[20]현재 2022년 기준 NPB 최연소 감독이다.
3.1. 2018 시즌
팀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데 선수들을 쓸놈쓸을 시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기회를 못 받는 케이스가 오카다 요시후미, 맷 도밍게스, 에무라 나오야, 네모토 슌이치, 오미네 쇼타[21], 이시미네 쇼타 요시다 유타, 호소야 케이 등이 있다. 뭐 저 선수들 간간이 타석 올라오는거 보면 왜 안 쓰는지 알겠지만 이것은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이어져서 외국인 선수 쿼터 4명을 다 채운 경기가 거의 없다. 외국인의 경우는 쓸놈쓸인 일본인 선수와 반대로 조급한 운영을 보이면서 한 1주일 못하면 바로 내리는 등의 운영을 보이는 중. 반대로 철밥통으로 공수 상관없이 무조건 100% 주전으로 나오는 케이스는 후지오카 유다이, 스즈키 다이치, 타무라 타츠히로. 특히 스즈키는 전 경기 선발출장이며 그 외에 나카무라 쇼고도 개근 중이다.그 외엔 그래도 초보감독치고 괜찮은 운영을 보이는 중. 어느 날 1,2회에만 번트실패를 3번이나 하자 다음날에는 무사2루에서도 강공을 하는 등 변칙적인 작전도 선보였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도루를 상당히 많이 시킨다. 나카무라 쇼고의 도루갯수가 급증한 것도 감독이 바뀐 것이 큰 듯. 문제는 나카무라 쇼고, 후지오카 유다이 등 발은 빠르지만 도루센스가 안 좋은 선수들도 마구마구 도루를 시키는 바람에 도루 성공률이 사망했다.[22]
3.2. 2019 시즌
2019년에도 똥행야구는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브랜든 레어드와 후지와라 쿄타의 등장 때문에 2018년에 양아들마냥 전 경기 선발출장하던 오기노 타카시와 스즈키 다이치가 벤치에 처박히고 있다. 이놈의 똥행야구 덕분에 개막전을 이긴 후 3경기를 내리 지자 팬들 사이에서도 말이 나오는 중. 특히 타격감이 나쁘지 않은데 대타로밖에 못 나오는 스즈키 다이치[23], 포텐셜이 뛰어난 1라운드 지명자인데 대수비로만 돌리고 있는 히라사와 타이가를 너무 안 쓰는 것은 팬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다.이 빌어먹을 똥행야구는 4월 들어 더욱 심해져서 4월 21일 현재는 이기기만 하면 아무리 못 치는 타자도 믿고 보고 있다. 아슬아슬하게 지고 있는 득점권 상황에서 타무라 타츠히로, 후지오카 유다이, 미키 료 등의 타격감이 바닥인 타자들을 그대로 고집했다가 점수를 못 내는 일이 하루이틀이 아니다. 김기태의 똥행야구도 대타, 대주자 등의 선수교체는 자주 하는데 이 인간은 그냥 베스트 나인 9명만 딱 고집하고 있으니 정말 답이 없는 상황.
이젠 투수한테까지 똥행야구 중이다. 4월 23일 경기에서는 카라카와 유키가 1아웃밖에 못 잡고 4실점을 할 때까지 안 내렸다. 8:5의 상황에서 8:6, 8:7, 심지어는 8:8이 될 때 까지 안 내리더니 8:9로 역전당해야 그제서야 패전처리 타나카 야스히로로 교체. 결국 다 이긴 경기를 무승부로 만들고 말았다. 김기태가 감독해도 이거보단 나을 것 같다.
결국 세이부한테 10경기 연속 무승을 내줬다. 공동 4위를 차지하며 A클래스 턱밑까지 갔다가 다시 단독 6위로 처박혔다.
그리고 이구치 유다이, 이구치 타츠히로는 주구장창 기용하고 쓰지도 않을 에무라 나오야와 호소야 케이는 이럴 거면 뭐하러 1군에 올려놓고 있는지 모르며 오키 타카마사, 미케 카즈마, 야스다 히사노리, 이시미네 쇼타, 타카하마 타쿠야, 카츠키 카즈야는 왜 1군에 절대로 안 올리는 지 궁금하다. 투수진에서도 이구치 유키, 이구치 토모히토, 이구치 유지 등은 죽어라 믿고 써대면서 마츠나가 타카히로, 나리타 카케루, 아베 카즈나리, 오오타니 토모히사, 천관위 등은 아예 1군에 안 올리거나 1군에서 잘 못 믿으면서 이상한 순간에만 내보내고 있다. 자기한테 아부하는 선수만 계속 쓰는 건지 의심간다.[24]
이제는 뜬금없이 번트에 꽂혔는지 1사 1루에서 번트를 시키질 않나... 쓰리 번트를 시키다가 아웃당하질 않나... 심지어 5월 2일 경기에서는 무사 1루에서 카토 쇼헤이가 쓰리번트 아웃을 당하자 다음 타자 요시다 유타에게 1사 1루에서 번트를 시켰다. 요시다의 번트성공으로 2사 2루가 된 후 이 날 안타가 없는 이구치 유다이를 대타 한 번 안쓰고 그대로 타석에 올렸다. 그리고 후지오카는 초구 2땅아웃. 정말 무슨 생각으로 작전을 펼치는 지 모르겠다.
2019년 시즌이 계속되면서 나타나는 특징인데 이구치 세이야, 이구치 카츠야, 이구치 쇼고, 이구치 다이치 타석에서는 하늘이 두 쪽 나도 대타를 쓰지 않는다. 단 이노우에 세이야의 경우는 가끔 대타가 나오기도 한다. 문제는 이 경우 100% 번트용 대타라서 상대팀이 번트 작전임을 다 간파하는 바람에 성공률이 낮다! [25]
5월 6일에도 1사 1루에서 번트시키다가 실패했다. 왜 이렇게 1사 번트에서 꽂혔는지 5월 16일에는 타무라의 부상으로 다시 1군에 올라온 이구치 나오야가 이날 득점권 병살을 포함 병살과 삼진만 기록한 상황이었는데도 끝까지 대타 없이 에무라를 썼다. 결국 이 날 에무라는 1병살에 2삼진으로 경기의 맥을 끊어먹으며 패배의 1등공신이 되었다.
5월 18일 카라카와 유키가 3점차에서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못 잡고 4실점하는 동안 투수코치조차도 올리지 않았다. 그 다음타자 젤러스 휠러가 안타를 치고 나서야 그제야 교체. 카라카와는 하루만에 평균자책점이 3점대 초반에서 5점대가 되었다. 심지어 연투도 아니고 이틀쉬고 나왔는데 저 모양이다.[26] 근데 이구치의 성향상 양아들이니까 2군으로 안 내릴 것이 명백하다. 지금 롯데가 A클래스 경쟁하는 것은 타 팀이 못해서이지 본인이 잘해서가 아닌데 이 놈은 다 지가 운영을 잘해서 순위가 잘 나오는 줄 아는 대책 없는 명장병자다. 순위가 잘 나오니 사퇴할 리도 없고 정말 속수무책인 상황이다.[27]
결국 4위로 탈락.[28] 그래놓고 내년 시즌에 더 잘하겠다는 둥 개소리만 하고 있다. 그 와중에 자기랑 친하다는 이유로 토리타니 타카시를 데려오고 싶다고 해서 프런트와 갈등을 빚는 중. 근데 웃기는 건 프런트는 또다른 노장 유격수인 오오비키 케이지나 니시오카 츠요시를 데려오려고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그 오오비키와 니시오카는 각각 은퇴와 독립리그 생활 연장을 택하면서 이마저도 실패했다.
하지만 신인드래프트 제비뽑기에서 사사키 로키를 뽑아버리는 기막힌 운빨을 보여줬다.[29]
3.3. 2020 시즌
2020년 시즌 직전에 토리타니 타카시를 데려왔다. 프런트랑 구단 OB들이 다 회의적으로 보던 것을[30] 본인이 강력하게 우겨서 데려왔다.[31]일본인 선발진[32] 중 유독 후타키 코타에게만 박한 모습을 보여준다. 용병이 아닌 다른 선수들의 경우 1이닝 10실점 수준이 아닌 이상 4~5이닝까지는 놔두는데 후타키만 조금 털린다 싶으면 퀵후크. 근데 문제는 후타키가 주자를 남겨놓은 상황에서는 항상 패전처리를 올린다보니 분식회계가 나버린다. 반대로 후타키가 5~6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면 항상 무리하게 더 쓰려고 1이닝 더 올리다가 여기서 3~4실점을 해서 ERA를 올려버리고, 시범경기에서 잘 못하면 칼같이 2군에 보내버리는 등[33] 국내 선발 중 후타키만 차별하는 모습을 매우 보여주고 있다. 다만 땜빵선발들의 경우는 퀵후크를 꽤 하며, 소프트뱅크 상대로 선발 등판 전패를 기록한 나카무라 토시야를 2이닝만에[34] 퀵후크하는 등 이런 차별도 조금씩은 바뀌고 있다.
2020년 시즌에는 작년같은 1사 1루 번트질이나, 불펜 투수가 역전할 때까지 절대 안 내리는 이상한 투수기용은 하지 않으면서 그나마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챠타니 켄타를 1군에 올려놓고 대수비로도 안 쓰는 바람에 득점권에서 양아들이자 최고의 식물타자 후지오카 유다이를 그대로 내다가 팀이 패배하는 등의 똥행야구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 챠타니는 1군에 올려놓고 1달 만에 처음으로 1타석 나올 정도로 1군에 밥 먹이러 불러올린 수준이다. 챠타니 뿐만 아니라 와다 코시로 등의 다른 유망주도 1군에 올려놓고 거의 쓰지 않는 수준이다. 그래놓고 초반에 오릭스 상대로 6연승을 하자 우승 적기라는 등 기고만장해있다가 7월 19일 결국 3위까지 DTD를 하고 7월 21일 경기에서 승차없는 3위가 되면서 4위 DTD가 눈앞에 다가왔으나 귀신같은 UTU로 소프트뱅크와 리그우승을 다투고 있는 중이다. 되려 투수진이 씹창난 세이부가 귀신같은 DTD를 시전하고 있다.
또한 3년째 감독을 하면서 보이는 또 다른 특징으로, 경기에서 졌을 때 자기 잘못이라고 절대 하지 않는다. 무조건 선수 ~가 ~하면 안된다, 선수 ~가 ~한게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 라는 식으로 선수 탓을 돌리고, 자신의 양아들이 했을 때는 쓴소리 한마디로 넘어가지만 자기가 보기에 찍은 선수가 그러면 그런 말과 함께 칼같이 2군에 내린다. 그나마 경기에서 이겼을 때는 선수들을 칭찬해주기는 하지만 1사 1루 번트는 거의 안 하지만, 쓰리번트에 갑자기 꽂혀서 올해는 무조건 쓰리번트를 시킨다. 그리고 번트실패가 나와서 1사가 되면 또 1사 번트를 시킨다. 그나마 작년처럼 무조건 1사에 번트를 대진 않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이상한 습관이 하나 더 생겼다.[35]
다만 1~2년차 때 했던 뻘짓들이 3년차가 되면서 아주 안 한다고는 말 못하지만 확 줄었고, 불펜진을 철저하게 관리시키고 패전처리를 홀드/세이브 상황에 내보내는 한이 있어도 3연투를 넘기지 않는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여전히 믿음의 야구 성향이 강한 점은 우려되는 것 중 하나. 이구치가 지금까지 한 번도 감독으로 포스트시즌 경험을 한 적이 없다 보니 10월 20일 기준 리그 2위로 클라이막스 시리즈 막차를[36] 탈 가능성이 높은데 상대는 단기전 끝판왕 쿠도 키미야스라서 전술에 말려들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거기다가 중심타자와 1~3선발, 필승조는 절대로 중도 교체를 하지 않는 이구치와 투수코치들 특성상 상위선발들이나 중심타선들이 침묵해도 언젠가는 해주겠지 하고 고집하다가 재작년, 작년의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처럼 폭삭 망할 수도 있는 상황.[37] 거기다가 현재 롯데의 1~2선발은 전부 ERA가 4점대다. ERA가 좋은 오지마 카즈야, 후타키 코타의 경우는 규정이닝 돌입이 사실상 요원한 상황이라 하위선발로 밀릴 것이 분명한 상황이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이구치가 명장이 될지, 아니면 명장이 되느냐 졸장이 되느냐의 갈림길에 또 서게 될지가 정해질듯 하다. 다만 2020년의 호성적 덕분에 재계약 자체는 기정사실화되어서 올해 클막에서 처참하게 망한다고 해도 내년이나 내후년에 성과를 내면 이구치가 성공적인 감독으로 남을 상황이긴 하다. 현재 롯데는 즉전감보다는 팜에서 포텐이 높은 유망주를 쌓아놓은 구조이기도 하다.[38]
결국 dtd 끝에 시즌 막판의 3연승으로 겨우 진출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2연패로 탈락에 투수교체 미스까지 내면서 좋은 평가를 못 들었다. 다만 재계약은 무난히 성공했다.
결론적으로는 1~2년차 때는 초짜감독 티가 제대로 나면서 꽤 까였지만 3년차에 들어서면서는 오히려 평균 이상의 감독 소리를 듣고 있다. 특히 센트럴리그 초짜감독들이랑 많이 비교당하면서 칭찬을 듣는다.
3.4. 2021 시즌
시즌 중반에는 팀을 탑데로 올려놓으면서 리그우승과 일본시리즈 우승을 노렸으나 시즌 막판 니혼햄의 고춧가루 세례가 결정타가 되면서 정규시즌 우승은 실패하고 말았다.그리고 2년 연속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패퇴.[39]전형적인 정규시즌 운영은 좋지만 단기전에 약한 감독 테크를 타고 있다. 그래도 2018~2020년 시즌 초까지 했던 거랑 비교하면 자기 색깔 잘 잡고 운영 잘 하고 있는 것이라 한동안은 이구치 체제로 갈 듯. 대신 매년 이런 가을야구 호구 컨셉이 반복되거나, 다시 바닥을 긁는 성적으로 떨어지면 결국 매몰차게 쫓겨날 가능성도 높아보인다. 거기다가 구단 입장에서는 이미 후임으로 내정된 구단 성골 중의 성골 후쿠우라 카즈야도 감독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3.5. 2022 시즌
6월까지 4~5위를 전전하다 7월에 잠시나마 반등하여 오릭스, 소프트뱅크, 라쿠텐, 세이부와 1위 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단 1번도 1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채 8월 이후 재차 하락세를 타며 끝내 반등하지 못하고 5위로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고, 10월 2일 최종전에서 사의를 표명하며 5년 간의 롯데 감독 경력을 끝마쳤다.한편 감독으로써의 마지막 경기이자 시즌 최종전이었던 10월 2일 경기가 공교롭게도 자신의 데뷔팀이었던 다이에의 후신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의 경기였는데 이 경기와 같은 날 오릭스-라쿠텐 전의 승패 여하에 따라[40] 소뱅의 우승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최종전에서 3:5 역전승을 거두며 호크스의 우승 실패에
4. 기타
- NPB 시절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상대로 매우 강한 모습을 보였다.(타율 .365 3홈런) 다만 메이저리그 무대에서는 2타수 무안타 1볼넷을 기록했다.
-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출전 당시 쿠바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꿈꾸게 되었다고 한다.
- 2017년 부로 현역 일본프로야구의 야수 중에서 최고령이 되었다. 퍼시픽리그 내국인 선수 중에서도 최고령이며, 양대리그의 투수를 포함해도 3번째로 나이가 많다. 그의 위로는 이와세 히토키가 있다. 그러나 2017년 시즌이 끝나고 은퇴를 선언함으로써 최고령 타이틀을 오래 보유하지는 못하게 됐다.
- 젊은 시절의 외모가 묘하게 임준섭과 닮았다.
- 선수단 기강을 잡기 위해 선수들을 강한 군기로 휘어잡는 스타일로 보인다. 닛폰햄 때 덕아웃에서 대놓고 또라이짓을 하던 오카 히로미가 얌전해진 것으로 보아... 또한 구단의 신임이 어마어마하고 성골까지는 아니지만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게 투수교체를 할 때 요시이 마사토 투수코치는 허수아비고 이구치가 직접 교체를 지시한다는 말이 있다.[41] 거기다가 후쿠우라 카즈야가 감독직을 하기 전까지 이구치를 장기집권시키겠다는 구단 수뇌부의 인터뷰도 있었다. 어쩌면 술상무 스타일일지도 모른다.[42]
- 약간 감독 스타일이 한국에 두산 베어스 김태형이랑 비슷하다. 선수단 기강을 잘 잡는 스타일. 또 하나는 바로 양아들 기용도 있다. 대표적으로 이구치 양아들인 후지오카 유다이, 타무라 타츠히로, 김태형 양아들인 오재원, 김재호가 성적이 꼬라박는데도 계속 쓰는 부분에서도 두 감독 스타일이 비슷하다.
- NHK 해설위원을 역임하면서 서울시리즈 중계를 하러 고척돔을 찾았는데, 고척돔 그라운드를 배경으로 고척돔에서 파는 크림새우 먹방을 선보였다. 정말 맛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인 것은 덤(...).
5. 연도별 기록
역대 기록(NPB)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WAR | |
1997 | 다이에 | 76 | 252 | 44 | 6 | 3 | 8 | 31 | 23 | 3 | 24 | 67 | .203 | .304 | .369 | .673 | 0.1 | |
1998 | 135 | 476 | 93 | 18 | 4 | 21 | 58 | 66 | 12 | 28 | 121 | .221 | .280 | .432 | .712 | 1.5 | ||
1999 | 116 | 424 | 83 | 15 | 1 | 14 | 38 | 47 | 14 | 38 | 113 | .224 | .310 | .384 | .693 | 0.8 | ||
2000 | 54 | 185 | 40 | 9 | 2 | 7 | 21 | 23 | 5 | 15 | 29 | .247 | .317 | .457 | .773 | 0.8 | ||
2001 | 140 | 636 | 144 | 26 | 1 | 30 | 104 | 97 | 44 | 61 | 117 | .261 | .346 | .475 | .821 | 4 | ||
2002 | 114 | 475 | 111 | 14 | 1 | 18 | 64 | 53 | 21 | 27 | 84 | .259 | .317 | .423 | .740 | 3.1 | ||
2003 | 135 | 617 | 175 | 37 | 1 | 27 | 112 | 109 | 42 | 81 | 81 | .340 | .438 | .573 | 1.010 | 8.6 | ||
2004 | 124 | 574 | 170 | 34 | 2 | 24 | 96 | 89 | 18 | 47 | 90 | .333 | .394 | .539 | .943 | 5.6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WAR | |
2009 | 롯데 | 123 | 530 | 126 | 24 | 1 | 19 | 71 | 65 | 4 | 68 | 101 | .281 | .391 | .475 | .866 | 3.6 | |
2010 | 143 | 650 | 156 | 44 | 1 | 17 | 88 | 103 | 2 | 98 | 114 | .294 | .412 | .476 | .889 | 5 | ||
2011 | 140 | 597 | 135 | 23 | 3 | 9 | 52 | 73 | 1 | 72 | 96 | .269 | .362 | .375 | .737 | 2.1 | ||
2012 | 140 | 578 | 129 | 30 | 1 | 11 | 58 | 60 | 3 | 53 | 99 | .255 | .343 | .384 | .727 | 3.7 | ||
2013 | 135 | 566 | 144 | 31 | 2 | 23 | 68 | 83 | 4 | 67 | 81 | .297 | .390 | .511 | .902 | 4.7 | ||
2014 | 109 | 408 | 85 | 24 | 0 | 10 | 35 | 49 | 1 | 40 | 74 | .238 | .326 | .389 | .715 | 0.7 | ||
2015 | 87 | 250 | 56 | 17 | 1 | 6 | 21 | 28 | 1 | 21 | 65 | .247 | .316 | .410 | .726 | -0.1 | ||
2016 | 79 | 176 | 39 | 8 | 0 | 5 | 13 | 34 | 1 | 19 | 50 | .257 | .341 | .408 | .749 | 0.3 | ||
2017 | 65 | 144 | 30 | 7 | 0 | 2 | 9 | 15 | 0 | 19 | 27 | .244 | .340 | .350 | .690 | 0.2 | ||
NPB 통산 (17시즌) | 1915 | 7535 | 1760 | 367 | 26 | 251 | 939 | 1017 | 176 | 778 | 1409 | .270 | .358 | .450 | .808 | 44.7 |
역대 기록(MLB)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fWAR | |
2005 | CHW | 135 | 582 | 142 | 25 | 6 | 15 | 74 | 71 | 15 | 47 | 114 | .278 | .342 | .438 | .780 | 3.3 | |
2006 | 138 | 627 | 156 | 24 | 0 | 18 | 97 | 67 | 11 | 59 | 110 | .281 | .352 | .422 | .774 | 1.8 | ||
<rowcolor=#ffffff>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fWAR | |
2007 | CHW/PHI | 135 | 553 | 124 | 27 | 4 | 9 | 67 | 43 | 14 | 57 | 88 | .267 | .347 | .400 | .747 | 1.6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fWAR | |
2008 | SD/PHI | 85 | 337 | 72 | 15 | 4 | 2 | 29 | 24 | 8 | 26 | 75 | .232 | .292 | .306 | .598 | 0 | |
MLB 통산 (4시즌) | 493 | 2079 | 494 | 91 | 11 | 44 | 267 | 205 | 48 | 189 | 387 | .268 | .338 | .401 | .739 | 6.6 |
6. 관련 문서
[1] 2008년 월드시리즈는 시리즈 로스터에 빠져 있었기에 공식적으로는 인정받지 않았지만 팀의 구성원으로서 우승반지는 받았다.[2] 본명은 발음은 동일하나 이름 부분의 한자가 일부 다른[역지명] [4] 공식 홈페이지. 접속은 되지만 현역 시절이었던 2015년 이후 업데이트가 멈춰있다.[5] 공식 블로그. 홈페이지와 마찬가지로 접속은 되지만 현역 시절이었던 2015년 이후 업데이트가 멈춰있다.[6] Baseball Refernece 참고. 200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만 월드시리즈 우승에 해당된다. 2008년 필라델피아는 월드시리즈 엔트리에 들지 못했기 때문에 반지는 받았지만 우승기록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김병현의 우승이 2001년 애리조나에서의 우승만 인정되고 2004년 보스턴 시절이 우승기록에 포함이 안된 것과 같은 케이스다.[7] 선수 시절 인터뷰를 보면 감독들이 하는 행동에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아마 1, 2년차 때 뻘짓을 많이 하다가 3년차때 많이 수정된 것은 이전 감독들의 행동에 불만을 품고 자기 마음대로 운영을 했다가 개판이 나자 자신의 방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새로운 방식으로 운영을 시도한 것으로 보이며 애초에 1년차와 2년차에 한 뻘짓이 과도한 쓸놈쓸 빼고는 많이 다르다. 참고로 쓸놈쓸은 이구치가 호평을 받는 3년차에 정작 가장 많이 지적을 받았다. 그 이유는 후반의 DTD 때문이다. 1~2년차에 쓸놈쓸이 더 심했지만 막장인 팀 상황+감독 경험 부족 보정을 받아서 별로 안 까였는데 호성적을 내다가 꼴아박게 된 3년차가 되고 나서야 이구치의 쓸놈쓸 문제점이 일반 팬들에게도 주목받게 된 것이다.[8] 당시 아오야마가쿠인 대학 야구팀이 소속된 리그인 동도대학 리그에서 무려 사상 유일의 삼관왕을 획득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통산 24홈런과 대학 시절 최다 기록인 시즌 8홈런은 지금도 동도대학 리그 역대 최다 기록이다.[9] 대학생 신분이었던 이구치와 이마오카 마코토, 사회인야구 출신으로 대표팀에 발탁된 후쿠도메 코스케나 타니 요시토모, 이구치의 다이에 시절 동료이던 마츠나카 노부히코 등 일본프로야구에서 대형 타자로 활약한 선수들이 많았다.[10] 당시 한국 대표팀과의 경기에서도 맹활약해 14:4 콜드승을 이끌어 냈다.[11] 이 때 금메달을 획득한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의 플레이에 충격을 받아,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12] 주니치(1994~1999), 다이에/소프트뱅크(1999~2006)에서 뛴 내야수다. 소프트뱅크에서 2007~2017년에 코치로 활동했고 2018년부터는 치바 롯데에서 코치 생활을 하고 있다. 1997년 주니치에서 유격수로 뛰며 수비율 .997을 찍었다. 189cm의 장신, 체력부담이 많은 유격수를 소화했음에도 견실한 수비력을 보여주었다.[13] 이구치-마쓰나카 노부히코-조지마 겐지-페드로 발데스. 여기에 과거의 도루왕 무라마츠 아리히토와 미래의 도루왕 카와사키 무네노리가 밥상을 깔고, 다음 해 40홈런을 칠 거포 훌리오 줄레타가 7번을 치며, 3할 타자인 오미치 노리요시나 시바하라 히로시가 자리가 없어서 8번을 치는 무시무시한 타선이었다. 거기다가 전 해까지의 4번타자인 고쿠보 히로키는 부상으로 아예 시즌을 날려 버렸는데도 팀타율 .297로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워 버렸다.[14] 이 당시 다이에 프런트는 막장 경영으로 유명했다. 고쿠보 히로키 문서 참조.[15] 이때 신인이라는 한계도 있어 130여 게임밖에 뛰지 못했는데 만약 풀시즌을 치렀더라면 20-20도 가능했던 페이스 였다.[16] 원래 2021년까지 모두 1위였으나 2022년 기준 김하성이 fWAR 4.2, bWAR 7.1을 기록하며 BWAR에서 넘어서고, 2023년의 활약으로 fWAR에서도 뛰어넘었다. 강정호는 fWAR 4.9, bWAR 5.8을 기록했으며 마쓰이 가즈오와 이와무라의 fWAR은 각각 5.3, 5.1이다.[17] 당시 감독이던 바비 발렌타인은 유망주 네모토 슌이치를 주전 2루수로 키우려 했기에 이 무브에 반대했다고 한다. 이구치가 건재한 성적을 올리며 이 건에 대한 발렌타인의 불만도 들어가기는 했지만, 이외에도 발렌타인과 세토야마는 사사건건 대립했고 결국 발렌타인의 쵸노 히사요시 강행지명을 계기로 불화가 폭발해 2009년 시즌 초부터 대놓고 프론트에서 감독 해임을 거론하는 등 팀 케미스트리가 박살났다.[18] 사실 똑딱이화도 2011년 이후 일이지, 원래 후쿠우라 카즈야도 한 시즌에 20홈런 이상 친 적이 있고 2루타도 많이 생산해내는 중장거리 타자였다.[19] 거기다가 2014~2016년까지는 알프레도 데스파이네가, 2017년에는 윌리 모 페냐가 지명타자 자리를 거의 고정적으로 차지했고, 1루수 자리도 2017년 새 용병 지미 파레디스가 주로 출장하고 있기 때문에 후쿠우라 카즈야조차 백업 신세였다.[20] 참고로 이구치는 선수 시절부터 전임 감독 이토 츠토무의 팀 운영을 탐탁지 않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감독 선임 이후 인터뷰에서 '선수 시절의 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감독이 이래서는 안 된다. 내가 감독이 되면 팀 운영법을 개혁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는 뉘앙스의 발언을 대놓고 했다.[21] 같은 팀 투수 오미네 유타의 동생. 시즌 중 금전문제로 은퇴.[22] 나카무라 쇼고는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도루 성공률이 65% 안팎에 그치며 부진하다가 후반에 좀 관리를 해서 70%를 간신히 넘기긴 했다. 그러나 후지오카 유다이는 14도루를 했지만 성공률이 50% 수준밖에 안 되며 정말 안 하느니만 못한 도루를 보여줬다. 그 외에도 타무라를 도루시키다가 도루자를 당하게 하고, 발이 빠르지만 도루 갯수는 적던 히라사와의 도루갯수도 많이 늘어났고, 중간 수준의 주력이던 호소야와 미키에게도 도루를 시켰다.[23] 심지어 위기감을 주겠답시고 몇 년 째 연속출장을 이어가던 다이치의 연속출장을 마음대로 끊어버렸고, 이 일과 함께 대타, 3루, 1루, 지명타자, 좌익수까지 고정된 자리를 주지 않고 땜빵 취급하면서 포지션을 마구 돌리는 이구치의 운용법을 참지 못한 다이치는 시즌 후 FA를 선언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24] 이뿐만 아니라 지금은 2군에 내렸지만 히라사와 타이가는 3~4일마다 대수비로 가끔 올리는 데 그쳤으며(이 선수는 2016년 드래프트에서 고졸 타자 최대어였는데도!) 이구치 케이스케는 중요한 상황에서 뜬금없이 올렸다가 계속 상대방에게 쐐기점을 내주는 짓만 해대는데도 미친듯이 중용하다가 결국 못 참았는지 2군행을 지시했다.[25] 사실 2019년 5월에 한 번 스즈키 다이치의 대타로 호소야 케이를 썼는데 호소야가 땅볼아웃이 됐으며 아마 다시 봉인할것으로 보인다.[26] 이틀 전에도 카라카와는 1실점했다.[27] 실제로 정규시즌 우승팀인 세이부는 구린 투수진을 갖고도 강타선빨로 우승하고 밑에 소뱅도 야나기타의 부상이후 침체된 팀타선을 가질뿐더러 라쿠텐은 롯데랑 전력도 비슷한 편이기도 하고 그 밑에있는 팀들은 죄다 가망이 없어 바닥을 깔아주는지라 그야말로 기회였다.[28] 그나마 간신히 4위로 끝나서 망정이지 그 밑에 있던 닛폰햄이 8월에만 20패를 찍으면서 상상이상의 DTD를 시전하고 꼴등인 오릭스도 막판 9연패만 안했다면 2년 연속으로 최하위 자리였다.[29] 다만 사사키는 치바롯데로 교섭권이 넘어가자 울상을 지었다. 치바롯데가 인기 구단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30] 에나츠 유타카의 인터뷰를 보면 구단 관계자와 OB들이 토리타니 영입에 반대해서 무산됐다는데, 그걸 이구치가 기어이 뒤늦게 뒤엎고 데려온 것이다.[31] 한신 출신이었고 토리타니와 친했던 2군 감독 이마오카 마코토가 이구치랑 같이 토리타니 영입을 주장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이 사람도 본인의 은퇴 파티 때 "토리타니의 은퇴경기를 우리(본인과 이구치)에게 맡겨달라."는 말을 했던 사람이다.[32] 용병선발에 대해서는 더 깐깐해서 할 말이 없다.[33] 2018년 2019년 모두 그랬다.[34] 이날도 2이닝 3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35] 다만 번트에 관해서는 센트럴리그에서는 1사 번트도 쓰리 번트도 줄창 시키다보니 일본 현지, 혹은 한국의 센트럴리그 팀 팬들 사이에서는 별로 문제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KBO 리그에서는 1사번트와 쓰리번트가 시도 자체로 까이다보니까 KBO 리그와 퍼시픽리그만 보는 사람 사이에서 유독 문제점처럼 취급될것으로 보인다.[36] 2020년은 코로나 19로 인하여 파리그는 클라이막스 파이널 스테이지만 진행한다.(세리그의 경우는 아예 진행하지 않는다.)[37] 10월에 1군에서 터진 코로나 집단감염으로 백업급이 다 2군으로 빠졌을때의 이구치는 억지로 2군 선수들을 올리기는 했지만 코어 유망주 소수나 투수를 제외하면 아무리 크게 지는 상황에서조차도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3~4명이 1군에서 호텔밥만 먹다가 출장 기록 없이(혹은 호소야 케이나 요시다 유타처럼 출전은 해도 타수 기록 없이) 2군으로 조용히 말소되었다.[38] 물론 즉전감 지명도 꽤 하는데 이렇게 지명한 선수들도 대체로 고졸들이랑 같이 2군에서 육성수업 받고 있다. 또한 2010년대 중반부터 롯데의 2군 투수코칭 능력은 정평이 나 있다. 고등학교 때는 140 겨우 던지는 선수를 데려와서 150을 던지는 파이어볼러를 만들거나, 구속은 140대에서 안 늘어도 칼제구와 수싸움을 익혀서 훌륭한 피네스 피쳐가 되어있거나 둘중에 하나다.[39] 공교롭게도 2020년과 2021년 모두 2패로 광탈했다. 그나마 1~2차전 모두 소뱅에게 일방적으로 털린 2020년과는 달리 2021년은 그래도 오릭스 상대로 2차전에서 접전끝에 패배한 게 차이점.[40] 사실 경우의 수는 간단했는데, 오릭스가 이기고 소뱅이 지는 경우 이외엔 어떤 결과가 나오든 무조건 소뱅이 우승했다. 그런데 그 설마했던 경우의 수가 나와 버린 것.[41] 이러면 비정상적으로 특정 투수만 쓸놈쓸을 해서 혹사시키고 패전처리급 선수는 1시즌 내내 4~5이닝 써보고 한번 맞으면 문책성이랍시고 바로 내려버리는데다가 필승조는 역전을 당할때까지 안 내리는 이상한 투수기용 방식이 이해가 된다. 요시이 마사토는 닛폰햄 시절 오타니 쇼헤이를 키운 꽤 능력이 있고 경험도 많은 투수코치이기 때문에 저렇게까지 투수진 운용을 처음 해보는 사람의 기용법을 쓸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라는 예측이 있었으나 요시이 마사토가 이닝 쪼개기를 매우 싫어한다고 한다. 즉 요시이가 그렇게까지 허수아비가 아니고 1이닝 4실점 이 난리는 요시이가 자초한 것도 있다는 것.[42] 그러나 일본야구에 정통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본 꼴런트도 한국 꼴런트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이구치가 생각보다 실권이 없다는 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