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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3-10 17:30:37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사건의 경위3. 논란과 비판4. 영향
4.1. 개신교의 평판 저하 가속화4.2. 태상호 기자의 증언4.3. 국외 반응
4.3.1. 아리프 아쉬츠, 이스탄불에서 온 장미도둑4.3.2. 국외 인터넷에서의 반응4.3.3. 종교계 반응
4.4. 이 사건 보도에 대한 논란
4.4.1. 보수언론의 과장 왜곡 보도
5. 기타
5.1. 다시 간다?5.2. 후일담... 그리고

1. 개요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잠언 12장 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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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한국 개신교의 최악의 흑역사로 꼽히는 사건으로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어떻게 국가이미지와 세금을 축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건.

한국의 일부 개신교인들이 정부의 엄중경고를 무시하고 이슬람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이유로 분쟁지역인 아프가니스탄에 무단으로 입국했다가 결국 현지 과격단체인 탈레반에게 인질로 붙잡힌 사건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위험지역에 뛰어드는 국민들을 법으로라도 막기 위해 기존의 여행유의-여행자제-여행제한(이후 '철수 권고'로 변경) 제도를 고쳐 여행금지제도라는 걸 만들게 되었다. 이에 대해선 해당 문서에 자세히 나와 있다.

2. 사건의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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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13일 분당샘물교회 배형규 목사 외 분당샘물교회 남녀 교인 19명이 아프가니스탄 단기선교 목적으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 베이징두바이를 거쳐 14일에 카불에 도착했다. 출국 인원은 (배 목사 포함) 20명이었으며 현지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선교사 3명이 통역 및 안내 목적으로 합류해서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동안 총 23명이 움직였다. 이들은 7월 22일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출국하여 23일에 인천공항으로 입국할 예정이었다. 7월 19일 오후 이들이 카불에서 칸다하르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카불에서 170여 km 거리에 있는 가즈니 주 카라바그 지역에서 탈레반이 이들을 납치했다. 참고로 당시 월간 군사잡지 플래툰의 기사에서는 이들이 지나갔던 길을 촬영했는데, 해당 지역을 호위차량들 없이 버스 한 대만으로 움직이는 건 자살행위라고 평가했다.

7월 20일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 파견한 한국군을 21일 정오까지 전원 철군할 것"과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수감한 탈레반 인원을 전원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7월 20일부터 22일까지 계룡대의 별장에서 군 관계자들과 골프 모임 등을 할 예정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은 21일 새벽, 급히 상경하여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후 탈레반은 협상 시간을 하루하루 연장했다. 25일 탈레반은 협상이 결렬됐음을 선언하고 인질 중 남자 1명을 살해하였음을 밝혔다. 또한 26일까지 한국 정부가 아무 반응이 없을 경우 남은 인질들을 살해하겠다 협박했다. 26일 정부는 피살자가 배형규 목사(42세)임을 확인했다. 탈레반은 이후로도 협상 시간을 하루씩 연장하다가 30일 심성민 씨(29세)도 살해했다.

8월 7일 외교통상부아프가니스탄을 여행금지국으로 지정했다. 10일에 처음으로 대한민국 정부탈레반이 대면 협상을 시작했으며 13일에 탈레반은 건강이 악화되던 여성 인질 2명을 석방했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중재하여 8월 29일 인질 12명이 석방됐고 30일에는 남은 7명이 석방됐다. 피랍된 지 42일 만이었다. 먼저 석방된 2명을 제외한 나머지 생존 인원 19명은 9월 2일에 한국에 도착했다.

한국 정부는 대한민국 육군 특전사를 투입하여 구출해 오는 방법과 협상 중에서 고민을 많이 한 모양이고, 미군 역시 구출을 위해 특수부대를 준비시켰다. 하지만 현지의 미군과 신생 아프간군도 함부로 못 들어가는 첩첩산중의 땅굴 속으로 병력을 투입하면 말 그대로 대규모 대 게릴라전이 되어, 인질은 인질대로 다수 죽고 특수부대는 특수부대대로 피해를 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성공한다 해도 상당한 피해를 각오해야 했으므로, 결국 협상을 통해 인질들을 빼오는 길을 택했다. 그나마 이라크에서 날뛰면서 터무니 없는 요구를 하고는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질의 목을 자르는 유일신과 성전이라는 이라크 무장단체와는 달리, 당시의 탈레반은 최소한의 협상의 여지는 있었던 게 불행 중 다행.

실제로 특전사 대테러요원들이 아프가니스탄 현지에 급파돼서 인질 구출 작전 준비를 했었다는 게 훗날 밝혀졌다. 아카이브. 결국 협상 타결로 인질들이 석방돼서 실작전 투입은 안 됐지만, 구출계획 구상을 위한 억류 지역의 지형 정보 조사, 탈레반 무장세력의 이동 경로 및 은거지, 동향 등의 첩보 수집과 무기 분석 등의 임무를 수행했던 게 인질이 무사히 풀려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한 공로로 인정받아 그 특전사 대원들 중 일부가 훈장 및 표창을 받았다. 아카이브. 정부의 인질 석방 노력을 적극 지원토록 카불로 파견된 군사협조단 또한 공로를 인정받아 카불 군사협조단장을 맡은 육군 준장 전인범 장군 등은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그리고 아예 특전사 1~2개 여단을 투입해서 현지에 있는 미군, 아프간 정부군, 국제안보지원군의 협력을 받으며 가즈니 주의 탈레반을 소탕해버리려는 작전도 합참이 구상했었고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까지 이런 방안이 보고됐었다는 게 밝혀지기도 했다. 아카이브.

대한민국 정부 대표반과 탈레반의 협상이 성공적으로 타결되어 아프간 파견 한국군의 연내 철수와 아프간에 개신교 선교단 파견을 중지한다는 등의 5개 항에 합의한 뒤, 남은 19명의 한국인 인질에 대한 전원 석방 결정이 공표되었다.

납치 주체인 탈레반아프가니스탄을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실제로 통치한 엘리트 무장 세력으로서 협상 전술이나 언론 관계, 대중 심리전 등에 능숙했다. 또한 납치된 2007년 7월 19일부터 풀려난 후 대한민국에 입국하는(사건이 완전히 종료되는) 9월 2일까지 기간이 44일이나 되었던 점, 인원이 23명이나 되었던 점, 한국의 개신교계가 엄청난 관심을 가졌던 점 등이 고려되어 언론사에서는 국내 단일 사건 사고로는 사상 최대로 추정되는 엄청난 보도 물량을 쏟아냈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수많은 각종 의혹 및 해명이 있었는데 07년 9월 당시 포스팅 및 기사 모음을 참고. 아카이브.

3. 논란과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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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의 근원지였던 분당샘물교회. 이 사건으로 인해 '물교회', 'X물교회' 라고 비꼬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 교회가 있는 건물인 정자동 한솔프라자는 두 동으로 지어졌다. 샘물교회가 한 층을 쓰던 건물은 샘물교회와 1층의 식당 등 몇 업체 덕분에, 죽은 건물을 근근이 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프간 피랍 사태를 계기로 샘물교회가 오히려 세력을 불려 건물 전체를 접수했다. 그래서 지금은 건물 간판 자체가 샘물교회. 나머지 한 동은 일종의 폐건물 비스무리하게 되어버린 건물이다. 리모델링 공사를 하다가 중지된 지 오래고, 2009년에는 건물 자재에서 석면이 검출되어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다. 결국 교회 이외에는 텅텅 빈 건물이 되어버렸다. 2015년 현재 리모델링 후 분양 중이다. 여기 샤오미 공식 스토어가 들어온다는 점을 주요 홍보 포인트로 삼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중동 외교의 실패의 결과라는 의견도 있는데, 일반인들이 정부 경고에도 불구하고 현지인과 현지 정부조차도 못 오게 하는데도 '무법천지' 아프간에 닥돌해서 극성 테러 단체에 납치된 이상, 정부로서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정부가 이들 구하려고 군대 수만 깔아서 선전포고할 수도 없는 일이고 군대를 보내서 구출하는 게 확실하면 모를까 그렇게 해서 살아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다. 물론 탈레반을 다수 사살하고 납치 주도한 급의 간부들은 잡아다 국내 재판에 세워 교도소 평생 수용을 명하는 식으로 보복을 할 수는 있겠지만, 탈레반 100명, 1,000명을 죽인들, 몇만 명을 잡아다 가둔들 우리 국민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스스로 순교하겠다며 갔으니 그냥 죽어라'고 방치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고...[3] 그리고 애초에 탈레반(넓은 범위의)이 그리 쉽게 소탕 가능했다면 이미 털리고 물러난 소련군이나 천조국 군대라 불리는 미군이 지금까지 아프간에서 저러고 있을까?

이 일이 있기 이전 이라크에서 일하다 한국군의 이라크 철수를 요구한 무장 세력에 의해 납치되어 결국 참수당한 김선일의 경우와 비교해볼 만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근처에서 알짱거리던 한국인'이란 사실은 다르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여론도, 정부의 대응도 크게 달랐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다를 수밖에 없다. "근처에서 알짱거리던 한국인이니 마찬가지"라고 할 수 없는 것이 김 씨는 선교목적이 있긴 했었어도 기본적으로 일하러 간 것이다. 무역 상사의 직원으로서 합법적으로 출국하고 취직했다가 변을 당했다. 편법으로 몰래 입국해서 위험지역에서 나 잡아가라는 등 최소한의 안전조치도 없이 돌아다닌 사람들과 다르다. 김선일도 선교할 생각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가 무슬림들에게 성경 들이밀고 찬송가 불러서 잡혀갔다는 증거가 없는 이상 그는 (위험하긴 하지만) 합법적인 직장 생활을 하다가 납치당한 불쌍한 사람이다. 반면 샘물교회 인간들은 무단으로 위험국가에 들어가 스스로 보호하려는 조치도 없이 대놓고 선교한다고 다니다가 잡혔다. 당연히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다. 심지어 김선일 사건 이후의 일이다. 선례가 있으니 당연히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대놓고 무시했다. 즉, 김선일이 갈 때만 해도 중동선교는 "위험한 행동" 수준이라면, 샘물교회인들이 갈 때는 "하다가 죽을 수도 있는 행동"이 된 상황이었다. 오히려 김선일 사건 이전까지는 중동 파병을 병역도 마무리하고 돈도 벌 수 있다고 반기는 병사들도 있었다. 사고 당시 괜히 국가에서 이들의 출국을 막은 게 아니었다. 근데 불법적으로 몰래 간 것도 모자라 여행제한국가 표지 앞에서 비웃듯이 기념사진을 찍은 것만 봐도 이들이 이 위험성에 대해 얼마나 무감각하고 한없이 가벼운 태도로 갔는지 알 수 있다.

이글루스에서 정치, 역사 관련으로 파워 블로거였던 Sonnet은 이 사건과 아프간 침공 당시 CIA의 요원 중 1명이 남긴 회고록을 비교하며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재미있는 물가를 하나 발견할 수 있다. 다년간의 전투 경험을 가진 무자헤딘 1만 5,000명을 거느린 아프간 최대 계파 보스를 동원해 탈레반을 치게 만들고 그 정권을 붕괴시켰을 때, 작전대가로 치른 금액이 현찰박치기 500만 달러라는 것이다.

2007년 여름 벌어졌던 한국 단기선교단 납치 사건 당시 인질의 몸값으로 치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비용이 100만에서 4,000만 달러까지 다양한데, 어느 것이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밝혀지든 간에, 이 500만 달러와 비교해서 감을 잡으면 좋을 거라고 본다. 원문, 아카이브.
다시 말해 만약 이들을 빼내오려고 돈을 준 게 사실이라면, 당시 이들의 몸값으로 탈레반에게 건넨 돈은 미군이 15,000명 규모의 아프가니스탄 최대 군벌 하나를 통째로 매수하는 데 든 돈에 거의 근접하거나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는 엄청난 액수라는 말이 된다.

사족을 달자면 이 사건에서의 탈레반 무장 단체는 땅굴에서 숨어지내거나 점조직같이 움직이는 게릴라성의 무장 집단이지, 정권을 지키고 있는 그 당시의 탈레반이 아니다. 어느 한곳을 지키고 있는 세력은 뛰어난 방어 요새라도 갖고 있지 않는 한 토벌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게다가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의 지나치게 잦은 언론 등장, '썬글라스 맨' 으로 통칭된 국정원 요원 협상자의 귀중한 인력 정보 노출 등 국정원 자체도 대단한 손실+비판을 면치 못했다. 김만복 국정원장은 그 외에 여러 것으로도 까였다.

또한, 기본적으로 해외 선교 활동에 긍정적인 열성적 개신교도들의 경우도 이 사건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인 경우가 많다. 해외 선교 활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라도, 아프가니스탄처럼 극도로 위험한 지역에 신학적 지식과 전문 지식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학생 중심의 선교단을 1주일 정도의 단기로 보내는 것은, 선교 활동이 아니라 그냥 쇼미친 짓으로 치부한다. 아프가니스탄처럼 극단적인 위험이 상존하는 지역에는[4] 선교단 파송을 포기해야 한다거나, 파견할 거라면 장기간에 걸쳐 철저한 교육과 준비를 거친 전문적인 선교사 중심의 정예팀을 꾸려 보내야 한다는 것이 이 사람들의 입장이다.

개중에는 이 문제를 일종의 세대론과 권력관계 문제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샘물교회 내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나이 든 사람들이 위험지역 아프가니스탄에 선교단을 보냈다는 명예는 갖고 싶은데 자신들이 진짜 가기는 무서우니 철 없는 젊은 사람들을 충동질해서 사지로 내몬 것 아니냐고 하는 것. 재미있는 것은, 이는 '노인들이 젊은이를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세대 갈등론에 기반한 주장이지만, 이런 주장을 하거나 동의하는 사람 중에는 나이 지긋한 사람의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군대와 비슷하다. 전장과 관련 없는 정치인, 고위직=구 세대가 전장에 젊은 군인들을 내보낸다.

4.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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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개신교의 평판 저하 가속화

2007년 당시 개신교는 대내외적인 불신과 이미지 추락 가운데 한국의 개신교 초기의 부흥운동을 본받은 의욕적인 부흥운동[5]을 펼쳤지만, 되려 이 사태가 찬물을 제대로 부어버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개신교 내부에서도 일방주의적인 선교를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늘 그렇듯 개혁적 목소리는 비주류인 탓에 묵살당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으나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이 사건이 일어나기 바로 얼마 전에 출판되었는데, 이 사건으로 반기독교, 무신론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덩달아 '만들어진 신'도 꽤 잘 팔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1980년대 초에 시작해서 2000년대에 단군상 절단인증 사건에 의한 반발여론 이후 PC통신을 시작으로 서서히 관심을 모으고 있던 반기독교 운동은 이 사건을 계기로 2007년 전후에 급격히 팽창하였다. 요새 반기독교 세력들이 이렇게도 늘어난 계기가 바로 요 사건이라 봐도 무방하긴 하다. 뭐 그 전에도 여러 가지 사건사고들로 이미지가 매우 나빠지긴 했지만.

사실 이들을 보낸 특정 교회만의 문제가 아닌 게, 한국 선교사들 상당수가 해외 극빈지역으로 가서는 현지 사정이나 반감을 눈꼽만큼도 배려 않고 막무가내로 개신교 선교를 시도하여 도리어 개신교도에 대한 반감을 키운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2007년 피랍사건 당시에도 샘물교회 봉사단이 들어오기 몇 년 전부터 이미 아프가니스탄아프가니스탄 평화 축제 사건을 비롯한 온갖 병크 때문에 한국이라면 치를 떠는 상황이었다고.

더욱이 이슬람교는 비신자를 멸시하고 배교자라면 죽여도 된다고 본다. 이 때문에 배교자는 사람으로 안 여기고 망명 뒤에도 온갖 테러를 할 정도. 국가적으로도 종교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물론 개종자를 잔혹하게 대하는 이런 행태는 개신교를 까는 것과는 별도로 이슬람 근본주의 문서에 들어가 있듯이, 무슬림들을 경멸의 대상으로 분류하게 하는 데 아주 큰 몫을 한다. 상황이 이런데 이슬람을 대상으로 한 선교를 쉽게 보면 아주 큰일 나는 거다. 애초에 비개신교인인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도 별 재미를 못 보는 게 현재 한국 개신교인데, 배교=피살 인 이슬람교도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하겠다는 게 웃기는 소리다. 이자들은 쿠란을 제멋대로 해석해서 테러를 일삼는 ISIL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

4.2. 태상호 기자의 증언

호비스트출판사플래툰의 태상호 기자가 아프가니스탄에 종군 취재 목적으로 갔을 때였다.[6] 그가 50㎞ 거리를 이동하는데 미군장갑 험비 5대로 에스코트해줘야 했다. 본인도 자신이 죽더라도 아무런 보상과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각서를 쓰고, 자비로 구매한[7] 방탄복방탄모를 착용한 이후, 인적이 드문 새벽을 이용해 이동했다.

카불 시내에 도착했는데, 아프간 호텔에서 한국인이라고 하자 주변 분위기가 싸해지면서 호텔에서 내쫓았다고 했다. 결국 독일 기자단 숙소에 얹혀 살아야 했는데, 독일인 기자가 그 이유를 설명하길 "한국에서 온 개신교 단체들의 선교를 목적으로 한 행사로 인해, 한국에 대한 현지인들의 반감이 극히 심해졌다"고 했다고 한다. 현지 공무원에겐 '운동축제'로 신고했다고. 더군다나 그 설명을 하며 보여준 아프간 국내 신문에 그 이야기가 1면으로 나와 있었다.

그 때문에 태상호 기자를 포함한 한국 국적의 자원봉사자 혹은 왕진 가방 하나와 성경을 들고 봉사활동과 선교 활동을 하던 그나마 좀 나았던[8][9] 선교사들은 현지인들에게 자신의 국적을 그나마 상대적으로 평판이 나았던 중국인이라고 해야 했다.[10]

그런데 이런 곳에 가겠다고 한 샘물교회의 여행 계획을 알게 된 정부에서 이들의 비행권을 강제로 취소하여 출국을 막았는데 위에 나와 있듯이 베이징두바이를 거쳐 억지로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갔다. 심지어 이들은 위험지역임을 알리는 간판 앞에서 웃으면서 기념 사진까지 찍었다. 그래놓고선 납치되자 뒤늦게 "엄마 보고 싶어요, 밥이 먹고 싶어요" 이러면서 애걸복걸한 것은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웃기는 상황이다. 결국 이들을 구하려고 고생한 건 한국 정부였고, 인질들 몸 값은 국민 세금이었다.

여담으로 이 사태를 해결하는 데 활약한 강성주 아프간 대사는 얼마 뒤 도미니카 공화국 특명 전권 대사로 갔는데, 거기서 옆나라인 (관할 지역) 2010년 아이티 지진을 맞게 된다. 한술 더 떠서 아이티 지진 구조대 보도 논란까지 겪어야 했으니 그야말로 멘붕이다. 김전일인가... 코난일지도...

4.3. 국외 반응

4.3.1. 아리프 아쉬츠, 이스탄불에서 온 장미도둑

터키 사진 작가인 아리프 아쉬츠가 한국을 1년 동안 여행하고 지내면서 쓴 책인 '이스탄불에서 온 장미도둑' 을 보면, 이 사건이 터키에서도 꽤나 화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터키에서의 반응도 역시나 '쟤들 왜 저러냐?' 비웃기 일쑤였다고. 터키의 철저한 정교분리 정책 때문에[11] 무슬림도 터키 길거리에서 저 모양으로 이슬람교를 선교한답시고 한국인 개신교 선교사들처럼 굴면, 졸지에 이슬람 과격파로 몰려 정치범수용소에 갇힌다고 글로 쓰면서 비아냥거렸다.

아랍, 그 가운데서도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천하의 근본주의 이슬람 국가조차도 길거리에서 이슬람만 천국, 다른 종교 죄다 지옥 이 따위 짓하면 순식간에 잡혀들어간다. 그것도 그냥 정치범수용소가 아니라 테러리스트와 진배 없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믿으려면 조용히 믿자' 는 어디서나 진리다.

더불어 터키 곳곳에서 성지순례 온 한국인들이 허구헌 날 터키인들에게 자기들 교회 믿어라 그런다는 소리도 첨가했다. 그리고 이 책자에서 이걸 다룬 부분에 마지막으로 다룬 게 '이 샘물교회가 듣자하니 네팔 쪽으로 갔다는데, 거기라고 그런 광신적 선교를 좋아하겠느냐?'라고. 한마디로 국제망신 인증.

4.3.2. 국외 인터넷에서의 반응

피랍 소식은 국외 인터넷에서도 화제였는데 대부분은 조롱조였다. 미국인들은 "우리네 일부 먹사들보다도 더한 자들이 있어서 청출어람 한 시름 놓았다."는 의견이 꽤 있었고 나머지 나라들에서도 너무 미개한 종교관이라며 비웃음 일색. 졸지에 대한민국예수쟁이들이 넘쳐나는 전근대적 개신교 국가로 찍히고 말았다. 일본 혐한들은 쾌재를 불렀다. 심지어 예수쟁이들은 칭찬으로 여긴다.

실제로 한국에 인구대비 개신교 예배당이 많다는 사실은 한인 개신교 목사 설교에서 자주 나오는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심지어 어떤 교회들은 예수의 고난에 빗대어 전도, 선교 과정에서 듣는 비난을 자랑스러워하라고 가르친다. 예수쟁이들이 끼치는 민폐의 근원이 되는 것도 이런 마인드. 하지만 이런 사건은 우리가 흔히 겪는 사소한(?) 민폐와는 차원이 다르다.

4.3.3. 종교계 반응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피랍자들의 신변 안전 및 무사 귀환을 바란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발표했고, 세계 각국의 이슬람 지도자들 역시 탈레반 측에 피랍자들의 안전 보장 및 조속한 석방을 촉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4.4. 이 사건 보도에 대한 논란

4.4.1. 보수언론의 과장 왜곡 보도

2009년 3월과 6월 예멘에서, 역시 무개념 개신교 선교 활동에 대한 현지의 격앙된 감정[12]이 원인이 되어, 한국인을 노린 자살 폭탄 테러 사건과 간호사로 일하던 독일인과 한국인이 납치당해 피살된 사건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 사건은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랑 달리 아주 묻혔다.

때문에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 아프가니스탄 일을 더 깊게 파고들어 확대했다는 비난이나 분석도 있었다. 모든 신문사에서 이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를 두고 '노무현 정권 외교 실패'라 보도하고, 월간조선은 2년이 지나서도 이 사건을 심심하면 재방송하며 노무현을 질리도록 깠는데, 예멘 테러로 죽은 한국 여성 엄영선에 대하여는 몇 번 보도하고 철저하게 파묻었으며 이 예멘 사태가 터지자 이후로 아프가니스탄 관련 보도도 덮어버렸다. 오죽하면 죽은 엄영선 유족조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때는 언론이 그리도 많이 보도하고 관심을 가져다주더니만 한국의 개신교 단체들도 교회들도 엄영선에 대해선 언급을 피하더라"면서 당시 울분을 토했을 정도였다.

헌데 독일에서조차 마찬가지라서 예멘 가서 지나가는 현지인들에게 '야만 종교 이슬람 믿지 말고 우리 교회 믿으라능~!' 이런 말한 독일인 목사가 독일에서 더 욕을 처먹고 자업자득이라며 묻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노무현 지지자들이 왜 노무현만 욕하냐며 정치적인 의도로 논란을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었다. 왜냐하면 피랍과 테러 사망은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라크에서 노동자 1명이 테러 공격으로 사망했다면 기사에 단신으로 보도되고 묻혔을 만한 사안이나, 김선일 씨를 납치하여 인질극을 벌이며 협상을 제시하자 모든 공중파 방송에서 대서특필로 실시간으로 다루지 않았던가? 김선일 씨 1명으로도 그 정도였을 정도인데, 하물며 수십 명이 단체로 납치당해서 인질극 협상을 벌이는 상황이니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사안이며 어느 정도였냐 하면, 당시 이렇게 많은 인질이 한꺼번에 잡힌 건 워낙 드물어서 다른 나라에서도 관심을 가졌다는 주장이다.

인질극 협상이니까(그것도 유례없는 수십 명 인질) 정부의 외교 사안도 시험대에 올랐던 것이고 정부에 대한 비판도 나왔던 것인데, 그냥 외국에 머물던 한국인이 테러로 사망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사안이다. 원한을 가진 사람이 우발적으로 살해하면 기사에 단신으로 보도되거나 아예 보도가 안 될 수도 있으나, 만약 인질로 잡아서 수십 명의 사람을 다 죽이겠다며 협상을 벌이면 언론에 생중계로 보도되고 정부의 대처 능력이 시험대에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기서 보도를 축소하라는 말이냐며 선동과 왜곡질를 하는 일파가 있었는데 말도 안되는 허수아비식 오류일 뿐이다. 상술되있고 또 아래에도 하술되듯 당시 정부는 인질 석방을 위해 다방면으로 안보작전을 펼쳤고 중동의 다국어가 가능한 특수요원을 통해 적지 한가운데 들어가 협상을 하는 한편 특전사 여단을 파견해 다국적군 연합작전으로 해당지역 탈레반을 아예 소탕해버리는 작전까지도 준비하는 등 많은 노력을 가했고 결국 결과는 초반에 으름장 놓으려고 죽인 몇 명 빼고는 모두 무사귀환이라는 작전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당시의 보수 언론들은 이 사건이 공개되자마자 협상이나 구출작전이 어떻게 진행되는가 보다는 논설, 사설까지 동원해 정부가 무능하며 아무 대처도 안하고 있다며 비난하고 왜곡하는 보도만 쏟아냈다는 것이 문제. 해당 사건은 국제적 이목을 끌 수밖에 없으니 보도자료가 많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언론에 대한 비판이 이는 것은 그것을 보도한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 때문에 사실관계와는 상관없이 비난과 모욕일색으로 일관했기 때문.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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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이곳 참조.아카이브. 현재 이 기사는 대부분 삭제 처리 되어가고 있고 이곳에 남은 것이 유일하다.

거기다가 유서를 쓰고 아프간에 선교를 갔다는 것이 루머라며 소송을 한다 난리를 쳤지만, 결국 모든 사실이 밝혀져버리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이곳 참조[13]

5.1. 다시 간다?

2010년 8월 샘물교회에서 또 정부 몰래 선교사를 파견할 예정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2011년 2월에도 또 아프간에 간다고 한다. 게다가 선교를 위하여 아프간을 여행금지국가에서 해제해달라는 요청까지 해버렸다. 당연하지만 이 요청은 기각되었다.

사실 교회 입장에서는 참 구미가 당기는 아이템일 것이다. 교회도 일종의 장사라고 보면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교도들의 본진에 가서 포교를 하는 것은 가장 돈이 되는 고객(=광신도)들에게 가장 어필할 수 있는 황금 콘텐츠이기 때문. 예수의 채찍이 시급합니다보내는 윗대가리들 입장에서는 무사히 다녀오면 그걸로도 '위험한 곳에 선교하러 다녀왔다'는 일종의 업적이 되고, 지난번 피랍 사태처럼 일이 터지면 죽은 사람은 순교자라고 치켜 세워주고 무사히 돌아온 사람은 하나님의 가호(?)를 받아서 그런 거라고 하면 그만, 즉 잃을 게 없는 장사다. 실제로 샘물교회는 지난 피랍사태 이후로 언론과 국민의 폭풍 같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세를 크게 불렸다.

좌우지간 이 피랍 사태의 영향이 너무 커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또다시 일어나면 정부도 이번에는 순순히 몸값만 지불하고 끝나진 않을 거라는 게 중론. 한국은 국제호구 인증을 단단히 했고 한국인은 테러범들에게 손쉬운 먹잇감으로 인식되어 버렸다.이렇게 이를 간 끝에 결국 2011년 1월 15일 아덴만에서 우리 국민을 납치한 해적들을 지하세계로 보내버렸다. 정신 못 차린 예수쟁이들이 자기네들 멋대로 선교하겠다고 부득부득 우기고 갔다가 또 잡혀서 울고불고 하는 날에는 이번에는 국민들이 직접 나서서 송환을 거부하라고 압력을 넣을지도 모른다. 잡힌 예수쟁이들 몸값과 협상 과정에서 들어가는 비용은 다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으로 내는 거다.

사실 아프간 피랍 당시에도 "자기들 멋대로 간 걸 왜 우리가 돈을 주고 빼와야 하나? 협상 불가!" 라는 의견과 "간 건 충분히 괘씸하지만 그래도 우리 국민인데 어떻게 내버려 두나. 미워도 자식 새끼인데, 살려놓고 두들겨 패든지 해야 할 것 아닌가" 측으로 여론이 갈렸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이들을 괘씸하게 생각한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또 이런 일이 났다가는 구출은 해준다고 해도 이후 대가는 철저하게 치르게 할 것이 분명하다. 덕분에 2014년 2월 시나이 반도 버스 폭탄테러 사건이 터지자 여론에서 '또냐?' 라며 아주 싸늘한 반응을 얻었다.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이거랑 많이 다른 일임에도 이렇게 비난을 들을 정도로 해외 선교는 그야말로 천하의 바보짓 취급 받는 셈이다.

한편 이와 별도로 이슬람에 대한 감정도 엄청나게 나빠졌다. 이미 김선일 피살 사건으로 이슬람권에 대한 감정이 이전보다 훨씬 나빠진 상태였는데,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를 계기로 피랍자들도 비난을 받았지만 동시에 이슬람교에 대한 평판이 매우 나빠졌고 심지어 '과격한 종교', '테러를 옹호하고 인질을 잡아 살해하는 게 당연한 종교' 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도 자리잡게 된 것이다. 결국 개신교뿐만 아니라 이슬람교의 평판도 이 사건으로 땅에 떨어져 버렸으며, 이런 상황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5.2. 후일담...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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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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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발 당일 찍은 사진으로 이 사람들이 얼마나 위험성을 간과했는지를 보여준다.[2] 참고로 저 사진과 관련하여 10년이 지난 지금도 게시 중단/블라인드 처리가 진행 중이다. 블라인드 당한 사람의 포스팅 참조., 아카이브. 이 이글루스 댓글에도 언급하듯 반성은커녕 지금도 개신교 측은 이러고 있다.[3] 실제로 잡혀간 작자들의 정신나간 행동 때문에 분개한 많은 사람들이 "순교한다고 한 말 그대로 죽게 놔둬라"고 했지만 진짜 그렇게 한다면 국가는 국민의 보호란 주요 임무 중 하나를 저버리는 셈이 된다. 국민이 병역의 의무, 납세의 의무 등을 다해서 국가를 지원하듯이 국가는 기본적으로 자국민을 보호할 임무가 있는 양방향의 관계다. 아무리 개념 없는 자국민이라고 해도...[4] 할레드 호세이니연을 쫓는 아이천 개의 찬란한 태양만 봐도 탈레반들이 어떻게 아프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온갖 반인륜적인 짓거리를 저질렀는지 견적이 나온다.[5] 1907년 평양에서 대대적인 부흥운동을 벌인 것을 100주년이라며 기념했다.[6] 아프간 피랍이 일어나기 몇년 전이다.[7] 만약 미군이 방탄복이나 방탄모를 빌려준다면, 해당 장비가 적절한 방호력을 제공해 주지 못할 경우 문제가 커지기 때문이다. 종군기자들 역시 방탄장비는 스스로 갖춘다.[8] 의료선교사들의 경우, 의료기술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곳에서 엄청난 기여를 하는 사람들이다. 의료선교사들은 다소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활동지역의 지역 사회에서도 환영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모든 의료선교사들이 그렇다고 할 순 없겠으나...[9] 사실 의료 선교도 선교가 목적이라 하지만 처음 부터 포교를 하지 않고 의료 봉사등으로 현지인들과 교류하는 환경을 만든 뒤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나눈다. 절대 안하무인하고 무지몽매한 활동이 아니다.[10] 그런데 사실 중국인들도 현지에서 매춘이나 금지품 밀수에 돼지고기 판매, 재건사업 관련 일자리 독점으로 미움을 받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그렇지, 종교 선교가 아니라 철저하게 돈벌이가 목적임에도 중국인들도 미움을 많이 받고 아프간에서 꽤 많이 죽었다. 2004년 유엔평화유지군 소속으로 간 채수문 중령의 글을 보면, 중국인 노동자 숙소에 폭탄이 터져 25명이 그 자리에서 살해당했던 일이 거론된 바 있다.[11] 종교적 광신 자체를 국가에 해악이 된다고 치를 떨던 아타튀르크의 영향이 크다. 아타튀르크는 정교분리 원칙을 확고히 한 인물로도 유명하다.[12] 예멘 항목을 참조하면 알 수 있는데, 무턱대고 우리 종교 믿으라던 선교사들이 자초했다.[13] 그래서 베댓도 "없다던 유서가 왜 생겨나냐"고 비판하는 댓글들이다.[14] 하지만 병원의 발표가 여신도들이 성폭행을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의 근거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설사 여신도들이 실제 성폭행을 당했다 한들, 병원측에서 이를 사실대로 발표할 리가 있겠는가? 여신도들이 성폭행을 당했든 당하지 않았든, 병원측은 무조건 성폭행을 당하지 않았다고 발표할 수밖에 없다.[15] 국내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가해자의 처벌을 위해, 피해자의 신원을 보호한 상태에서 사실대로 발표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전혀 불가능하고, 피해자들의 신원이 모두 알려진 상태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피해내용을 사실대로 밝히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사실이든 아니든 성폭행은 없었다고 발표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다.[16] 미션라이프 기자. 앞 기사를 쓴 바로 그 기자이다. 이 기사를 보면 피랍된 개신교인들이 무슨 순교자처럼 보인다.[17] 분당샘물교회 정도 되는 규모의 교회가 돈이 없다는 것이 더 말이 되지 않는다. 통상 그 정도 규모의 교회라면 1년 예산이 수십억 단위는 그냥 넘어설 것이다.[18] 정작 같이 피랍당하고 살해된 목사의 유족들은 교회의 배상을 받았다. 단, 보상액수에 대한 양측의 의견차 때문일 수 있으므로 자세한 정보 추가바람.[19] 참고로 이 영화의 연출자는 원로 영화감독인 이장호 감독. 물론 이장호 감독은 이전에도 '낮은 데로 임하소서' 등 여러 편의 개신교 관련 영화를 제작한 바 있지만, 그가 이런 개신교계의 흑역사를 미화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영화의 연출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대표작이자 70년대 한국 영화의 명작으로 꼽히는 '별들의 고향' 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여러 모로 씁쓸할 노릇이다.[20] 장소는 동남아로 각색한 듯. 캄보디아에서 촬영했다고.[21] 블로거는 구글이 운영하며, 게시중단요청은 해외 업체 상대로는 소용이 없다. 해외 업체는 국내법을 따를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