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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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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1. 개요

수계()는 불교에서 재가(在家)신도든 출가(出家) 수행승이든 계(戒), 또는 율(律)을 지키겠다고 승려 앞에서 형식을 갖추어 공적으로 서약하는 예식이다. 그리스도교에서 세례가 그러하듯, 불교에서는 수계가 입문례 역할을 한다.

계를 받는다 하여 받을 수(受) 자를 써서 '수계'라 한다. 따라서 '수계했다.' 또는 '계를 받았다.'라고 말하고 써야 자연스럽다. '수계를 받았다.'라고 말하면 겹말이 된다. 그 외에도 '계를 수지(受持)한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1] 어떤 사람이 유효하게 수계한 것을 두고 교학적인 용어로는 '계체(戒體)를 얻었다.' 파계하였다면 '계체를 잃었다.'라고 표현한다.

2. 상세

불교는 본래 계(戒)와 율(律)을 명확히 구분한다. 계는 지키기를 권장하는 자기 맹세, 율은 어기면 어떠어떠한 처벌을 한다고 명시한 강제성 있는 법률이다. 계는 모든 불교 신자들이 받을 수 있지만 율은 반드시 출가 수행자들만 받는다. 율은 출가 수행자들의 기강을 잡고자 정한 규율이기 때문이다. 산스크리트어로도 계는 실라(Sila), 율은 위나야(Vinaya)라 하여 명확히 구분하지만, 한자 문화권 불교에서는 보통은 계와 율을 구분하지 않고 '계', 또는 '계율'이란 말로 퉁친다.

계든 율이든 단순히 그 내용을 알고 지키면 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자격 있는 승려로부터 정해진 형식을 갖추어 전수받는 의식을 치러야만 불교적으로 여법하다.[2] 그래서 받을 수(受) 자를 써서 '수계'라 표현한다.

그런데 계나 율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에 수계 또한 그만큼 있다. 현대 한국 불교를 기준으로 통용되는 계와 율은 다음과 같다.
계(戒) 삼귀의계(三歸依戒) / 오계(五戒) / 십선계(十善戒) / 보살계(菩薩戒)
율(律) 사미(沙彌)ㆍ사미니계(沙彌尼戒)[3] / 식차마나계(式叉摩那戒)[4] / 비구(比丘)ㆍ비구니계(比丘尼戒)[5]
(아래쪽은 모두 율이지만, 한자 문화권 불교에서는 다들 편하게 '계'로 부르므로 그에 따름.)

이중 삼귀의계와 오계불교 신자라고 자칭하려면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이다.[6] 불경에서도 재가불자가 되는 최소한의 조건을 삼보(三寶)[7]에 귀의하고 오계를 수지하는(받는) 것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불자라고 자칭하더라도 삼귀의계와 오계를 받지 않았다면, 아직 정식 불자가 아니다. 열심한 재가신자들은 오계를 준수하려는 노력 이외에도 다른 신행활동[8]을 더 하지만, 최소한의 조건은 오계까지는 수지하여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에서 말하는) 최소한의 불교적인 도덕에 동의한다.'고 승려 앞에서 공적으로 맹세하는 것이다. 이렇듯 불자를 자칭하려면 반드시 삼귀의계와 오계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불교계 내부에서도 '을 오래 다녔는데도 막상 삼귀의도, 오계도 받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한탄이 나온다. #

그 외에 십선계나 보살계는 대승불교권에만 있는데, 대승의 불자라면 받아도 좋지만 꼭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9]

승려로 출가하는 이들은 먼저 사미(니)계를 받는다. 최소한 이것은 받아야 비로소 '출가'했다고 말할 수 있고, 법명도 받을 자격이 생긴다. 그리고 일정 기간 행자 생활을 마친 뒤 비구계를 받는다. 여자는 사미니계를 받은 뒤로도 식차마나계를 한 번 더 수계한 뒤에야 비로소 비구니계를 받을 수 있다. 비구계와 비구니계를 통틀어 구족계(具足戒)라고도 부르는데, 모든 조항을 빠짐없이 구족(具足, 모든 것을 갖춤)했다는 뜻이다. 이렇게 구족계까지 받아야 비로소 정식 승려라고 할 수 있다. '율장'은 계율과 관련된 사항을 모은 문서이다.
구족계는 석가모니가 승단을 이끌면서 어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한 규칙의 모음이다. 즉, 석가모니가 처음부터 구족계 전체를 승단에 명령한 것은 아니다. 석가모니가 열반할 즈음, 시봉하던 제자 아난다에게 "소소계(사소한 계율)는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다." 하고 일렀지만 아난다는 그 '소소계'가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석가모니 입멸 후 마하가섭이 좌장이 되어 주도한 제1차 결집에서 이 부분은 아난다가 책망받는 한 가지 요소였다. 결국 1차 결집에서 '소소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므로' 석가모니가 정한 계율 전체를 그대로 지킨다는 방침을 세웠다.

석가모니 입멸 이후 약 100년쯤 뒤 인도의 불교 교단 사이에서도 교리와 율장의 해석을 두고 의견이 갈려 부파불교로 나뉘었다. 대승불교가 생긴 서력기원 원년 무렵에는 대략 스무 가지 부파가 있었다고 하는데, 각 부파마다 저마다 달라진 구족계를 전승했다. 중국에도 여러 부파의 율장이 번역되어 들어왔는데, 설일체유부의 십송율(十誦律), 대중부의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 화지부의 오분율(五分律), 법장부의 사분율(四分律)이 영향력이 커서 사대광률(四大廣律)이라고 부른다. 중국 불교계에서는 불교가 전파된 이래 오랫동안 사대광률이 병행되었다. 그것도 종단이나 법맥에 따라 특정한 율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는 십송율, 저기서는 사분율 하는 식으로 혼합해서 사용하는 형편이었다.

그러다가 북위의 율사로서 율장을 연구한 법총(法聰, 468-559)은 중국 승려들이 구족계를 법장부의 사분율로 받음으로써 계체를 얻기 때문에 사분율을 통일된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이후로 조금씩 사분율이 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나라 때까지 중국 강남 지역에선 십송율이 흔하게 쓰였지만, 700년대에 당중종이 십송율 사용을 금지하여 결국 중국 불교계는 사분율로 통일되었다. 중국의 사분율 계맥은 한국이나 일본으로도 전파되었다.

현재 상좌부 불교는 분별설부의 율장을, 티베트 불교는 근본설일체유부의 율장을,[10] 동아시아 불교계는 법장부의 율장을 사용한다. 서로 다른 부파의 율장을 받아들였다면, 지켜야 할 율장의 조목이 세부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다른 편에서 구족계를 수계한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지 여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국 불교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조계종은 구족계를 받는 모든 사람들이 보살계를 함께 받도록 정하였는데, 보살계에 상좌부 불교의 율장을 거부하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상좌부와 공유하는) 구족계나 오계를 보살계와 함께 받음은 모순이라는 주장도 있다. #

대한불교천태종에서는 승려로 출가하는 이들조차도 사미계구족계 등을 받지 않고 오직 십선계만 받는다. 따라서 전통적인 불교의 관점에 따르면, 대한불교천태종의 승려들은 사실 '출가사문'이 아니다.

수계식에서 계를 주는 승려를 전계화상(傳戒和尙), 받는 이를 수계자라 부른다. 현대 한국에서는 거의 안 쓰이는 말이지만, 오계를 받은 이를 오계제자(五戒弟子), 보살계를 받은 이를 보살계제자(菩薩戒弟子)라 칭했다. 특히 불교가 왕성했던 고려시대에는 보살계를 받은 사람이 매우 흔해서, 강감찬도 1021년 개성에 있는 흥국사(興國寺)에 석탑을 세우며 '보살계제자 강감찬이 세웁니다.'라는 내용으로 명문을 남겼다. 고려 임금들도 보살계를 흔하게 받았고, 심지어 인종은 기록상으로만 16번이나 받았을 정도였다. 그리하여 왕이 불교행사에서 올리는 제문에 스스로를 '보살계제자'라고 칭했다.

고려 시절의 행동이 관례화되어 심지어 조선 초기에도 조선 임금들이 불교행사 중 글에서 '보살계제자 조선국왕'이라고 자신을 칭했다. 세종 6년(1424), 태종의 기신재(忌晨齋)[11]를 지낼 때 올리는 글에 '보살계제자 조선국왕'이라고 쓰는 문제를 두고, 허조가 "(보살계를 받지 않아) 제자가 아니면서 제자라고 칭하면 옳지 않으니 빼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는 의견을 내었지만, 세종은 예전처럼 하라고 지시했다.

그 이후로도 직접 '보살계제자'라고 칭하진 않았지만, 마치 조선국왕이 불보살의 제자인 듯이 표현하는 관습은 성종 때까지 이어졌다. 성종 8년(1477)에 기신재에 올리는 글에 "보살(菩薩)이 제자(弟子) 조선국왕(朝鮮國王) 성휘(姓諱)를[12] 계율(戒律)한다." 하는 구절이 있음을 문제 삼았다. 실제로는 보살계를 받지 않았으면서도, 마치 보살계를 받은 제자인 듯이 표현한 것이다. 대신들은 아예 기신재를 없애버리자고 주장했지만, 성종은 '기신재는 왕가의 가법이 되었으므로 없앨 수는 없고, 다만 임금을 불보살의 제자인 양 표현하지 말라.'고 하였다.[13]

계나 율을 전해줄 적에 어떤 형식을 갖추어야 '여법'한지는 각 계/율마다 다르다. 극단적으로 삼귀의계나 오계는 그저 비구나 비구니 앞에서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의 내용을 지키겠다고 맹세하기만 해도 된다. 그러나 정식 승려가 되는 기준인 '구족계'는 준수해야 할 조건이 매우 복잡하다. 전계화상과 도와줄 승려[14]까지 3명, 증인이 될 승려 7명까지 최소한 10명은 있어야 하는데, 이를 삼사칠증(三師七證)이라 부른다. 게다가 삼사칠증이 될 승려들은 당연히 모두 비구/비구니여야 하며, 법랍[15]은 몇 년 이상이어야 한다는 식으로 조건이 까다롭다. 또한 삼사칠증을 도저히 갖출 수 없는 지역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비구 4명은 모여야만 한다.

숭유억불이 지속된 조선왕조 시절에는 구족계를 제대로 줄 수 있는 비구(니) 10명을 모으지 못하여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평생 사미(니)로만 사는 승려들이 속출하여, 승려들이 '이대로 가면 조선의 승가가 붕괴한다.'고 걱정했을 정도였다.[16]

우리나라에서 오계나 보살계, 구족계 등 각종 수계식에 참석하면 연비(燃臂)라 하여 팔 안쪽에 향빵(?)을 받는다.[17] 태울 연(燃)에 팔 비(臂)를 써서 '팔을 태운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정말로 심지를 가져다 대어 나름대로 큼직한 화상 자국을 내었다고 하고, 중국불교계는 마치 을 뜨듯이 심지를 뭉쳐 팔에 올리고 불을 붙여 천천히 화상 자국을 내지만, 현대 한국불교계는 선(면발처럼 가느다란 향)에 불을 붙여 수계자의 팔에 콕 찍어주는 것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비구/비구니 구족계 수계식에서는 뜸 뜨듯이 심지를 팔에 올리고 선향으로 찍어 화상을 내기도 하지만, 중국불교보다는 심지의 크기가 많이 작다. 연비는 중국불교에서 유래한 관습으로 육신의 고통을 참으면서 계를 지키겠다는 맹세, 또는 결의의 표시이다.

그러나 아무리 간소화했다고 해도 화상은 화상이라 아프고 흉터가 남기 때문에 꺼리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연비 대신 팔에 도장을 찍기로 대신하기도 하고[18], 밀교의식인 관정(灌頂)[19]을 따라하여 물을 뿌려주는 승려들도 있지만, 아직은 선향으로 콕 찍는 연비가 한국불교계에서 보편적이다.

누가 가장 많이 오계를 받을까? 군인들이다. 군인들이 사관생도/부사관후보생/훈련병 시절에 일상생활이 엄격히 통제되다 보니 주말에 제대로 쉬자는 의미에서 종교활동을 열심히 하는데, 그 과정에서 많이들 수계하는 듯하다.[20] 육군훈련소 기준으로 훈련병 1명 당 초코파이 한 박스와 음료수 한 통을 준다! 논산훈련소에서는 수계식에 연예인도 오기 때문에 보러 오는 군인들이 많다.[21] 물론 이들이 전역하고 나서 사회 불가에서 제대로 종교활동을 시작한다면 10명 중 9명은 법명을 바꾼다.[22] 군승이 좋은 법명을 지어줬더라도 전역 후 인연이 된 은사스님의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은사스님으로부터 가르침을 계속 받겠다는 의미이다. 주로 은사스님으로부터 새로 수계를 받으면서 바꾼다. 그래서 독실한 불자 중 군필자들은 법명이 2개인 경우가 많다.

합장 형식 중 '장궤합장'은 수계식 때 주로 한다. 이 자세에서 참회진언[23]을 외운다.


[1] 불경을 가지고 다니며 읽고 뜻을 새기는 것도 똑같이 수지(受持)한다고 표현한다. '불경을 수지독송한다.'라는 표현이 불자들이라면 익숙할 것이다.[2] 여법(如法)은 불교의 법도에 맞는다는 뜻이다. 일상적인 한국어로 바꾼다면 '합법'과 같다.[3] 한국 불교에서는 5급 승가고시에 합격해야 받을 수 있다.[4] 식차마나니계(式叉摩那尼戒)라고도 부른다. 여자만 받을 수 있으며, 여자는 이걸 받아야 구족계를 받을 수 있다.[5] 이 2개를 합쳐 '구족계'라고 부른다. 한국 불교에서는 4급 승가고시에 합격해야 받을 수 있다.[6] 그리스도교에 비유하자면 세례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7] '3가지 보물'이란 뜻으로 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 승가를 모두 일컫는 불교용어. 범어로는 Triratna라고 한다.[8] 대표적으로 사경(寫經).[9] 가톨릭에 비유하자면 견진성사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10] '근본설일체유부'와 '설일체유부'가 같은 부파인지는 불교학계에서도 논쟁이 있다. 일단 중국에 전해진 설일체유부의 십송율과 (티베트 불교가 사용하는) 근본설일체유부의 율은 매우 유사하긴 하지만 똑같지는 않다.[11] 조선왕조 초기까지 선왕의 영혼을 위해 지내는 불교식 제례를 말한다. 선왕의 기일에 지내는 재(齎)라 하여 '기신재'라 불렀다.[12] 군주의 이름은 피휘하기 때문에 이름을 적어야 하는 곳에는 성휘(姓:성 諱:이름)라고만 적는다.[13] 기신재를 지내는 관습은 중종 때까지 지속되었다가 결국 유교적인 제례로 바꾸었지만, 명칭은 계속 기신재라 하였다.[14] 갈마아사리, 교수아사리. 아사리는 범어 Acarya에서 왔다.[15] 法臘. 구족계를 받은 해로부터 헤아리는 승려의 나이.[16] 이 걱정은 결국 현실화되었고 일제강점기에 더욱 심해졌다. 광복 이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조계종에서는 1981년에 합동으로 구족계 수계식을 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구족계 수계가 유효한지 의심할 만한 요소가 있다.[17] 사찰이나 의식을 주관하는 승려에 따라 어느 팔에 연비를 하는지가 다르다. 왼팔에 하기도 하고 오른팔에 하기도 하며, 성별에 따라 구분하여 남자는 왼팔, 여자는 오른팔에 하기도 한다. 어느 팔에 연비를 한다는 명문화된 규정이 따로 없는 듯하다.[18] 동국대학교 산하의 종립학교(주로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조계종 로고가 있는 도장으로 연비를 대신하기도 한다.[19] 밀교에서 특정한 수행을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의식. 관정을 하지 않고 특정한 밀교수행을 하는 것은 독단적이고 위험한 행위로 간주된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재가불자들도 간단한 관정의식을 받는 경우가 많다.[20] 불교 수계 뿐만 아니라 개신교천주교의 세례도 군인들이 많이 받는다.[21] 육군사관학교육군부사관학교에는 그딴 거 없다. 훈련병들과 달리 군대에 자원했고, 사관학교에서는 주말에 컴퓨터 및 핸드폰을 사용하거나 외출 및 외박을 할 수 있으며, 방학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언제 순국할지도 모르는 직업 특성상 민간인들보다는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비율이 많은 편이다.[22] 가톨릭에서도 법명과 비슷한 개념인 세례명이 있는데, 세례명은 법명과는 달리 한번 정하면 다시는 바꾸지 못한다는 차이점이 있다.[23]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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