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6-04-27 16:15:51

배상일


파일:건국포장 약장.png
건국포장 수훈자
{{{#!wiki style="margin: 0 -10px;"
{{{#fede58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0px;"
{{{#555555,#aaaaaa
파일:건국포장 정장.png
강경옥 강군평 강낙원 강대성 강명하 강몽호 강수영
강신혁 강일구 곽수빈 곽한소 구철성 권오돈 권중혁
김갑수 김교창 김구현 김기준 김낙현 김마리아 김봉현
김재진 김창세 김학득 김홍규 나병렬 나용균 남두희
남상복 남승순 남승철 남왈성 남태영 남형우 낭완근
노백용 노병욱 노상직 데이지 호킹 류달영 류인목 류재영
류훈상 마뇌병 마도현 마중국 마춘봉 맹정희 명순조
문또라 문무술 문상흡 문석주 문용 문창모 미네르바 루이즈 구타펠
민병두 박계남 박규호 박노순 박동규 박동희 박병두
박병득 박봉길 박봉래 박서양 박순동 박순호 박신원
박영순 박윤근 박익찬 박재근 박종식 박주학 박창규
박채희 박현숙 박화실 방정환 배경진 배봉수 배상일
배희직 변기학 변승기 부덕량 부장환 부춘화 서건수
서윤제 선우섭 손기욱 손진인 송계월 송남헌 송병일
송석준 송석형 송홍래 승계련 신동욱 신동호 신용기
신원범 신을노 신의웅 신익한 신정숙 신정완 신창희
신표성 신필호 신하균 신현창 심관지 심능규 심능장
안기석 안맥결 안병손 안상용 안순필 안영희 안용봉
안자정 안재창 안창대 안치대 안치준 양방매 어강주
어상선 엄기선 엄준섭 염택눌 오남학 오석보 오임탁
오재영 오재현 오평윤 오희원 우경동 우기돈 우성동
우승기 우찬기 유영석 유춘갑 유택하 윤동만 윤량식
윤성하 윤영원 윤종명 윤충식 이강래 이광춘 이규창
이규해 이긍연 이배함 이사벨라 멘지스 이수일 이영호 이원기
이이익 이효정 임교재 임병대 임수명 임헌근 장무호
장병옥 장연송 장주환 장철 전무영 전영창 전인발
전정석 전태현 전홍표 정규환 정명섭 정영한 정원득
정원택 정윤흥 정재관 정제형 정종엽 정진도 정철기
정현수 제갈관오 제임스 헨리 로버츠 크롬웰 조기수 조성규 조순옥 조시제
조아라 주종건 진순익 차경창 차대유 차봉환 차재정
찰스 스폴딩 토마스 채관우 채득필 채섬환 최달수 최동균 최봉성
최봉엽 최선재 최성학 최세득 최원순 최철 최태열
탁명숙 탁영재 태동춘 프랭크 얼 크랜스턴 윌리엄스 피문성 한기석 한성걸
한장리 함병현 함석헌 허간 현덕신 현영조 현용묵
현용주 현준이 형광욱 호근덕 홍건 홍목 홍연흠
홍영우 홍창흠 황계주 황의영 황진생 }}}}}}}}}}}}}}}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889년 3월 23일
전라도 정읍현 남이면 접지리
(現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접지리 772번지)
사망 1946년 3월 4일 (향년 56세)
전라북도 정읍군
(現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본관 분성 배씨 (盆城 裵氏)
상훈 2011년 건국포장 추서

1. 개요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11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2. 생애

그는 1938년 음력 11월 전라북도 정읍군에서 보천교 계열의 '신종교'에 입교했다. 그가 입교한 신종교는 정읍군 입암면 마석리 김언수가 창시한 것으로, 최수운을 교조로 하는 시천교강증산을 교조로 하는 증산교 두 교의에 기초해 유불선을 통합한 민족종교였다. 이 신종교는 표면적으로 시천교를 포교한다고 하면서 내면적으로는 민족독립을 위해 활동을 전개하였다.

'신종교'에 입교한 후 배상일은 1940년 5월 10일 정읍군 덕천면 신월리 황의붕의 집에서 김언수, 배상일, 신영화 등과 모임을 가졌다. 이때 '신종교'의 창시자 김언수가 말하기를, '신도 12,000명에게 신통력을 가진 도통군자가 되는 수양을 시키는데 있으며, 강증산의 유저인 대순전교에 의하면 가까운 시일에 전 세계에 병재, 전재, 흉재의 3재가 발생하여 부자, 지자, 권력계급은 모두 사멸하고 일본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은 멸망에 임박할 것이다. 그때 위의 도통군자 12,000명은 그 신통력으로 인하여 생존하고 조선을 독립시켜 장래에 오래도록 조선건국의 큰 공로자로 우대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후 배상일은 6임에 임명되어 함경남도 책임자가 되었으며 1940년 5월 11일 오전 1시부터 증산교 본궐에서 결사조직의 맹서식을 갖고 민족독립과 건국사업에 헌신하자고 결의했다.

위와 같은 활동을 하던 그는 1940년 12월 19일 일제에 의해 체포되어 1943년 8월 3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아 함흥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44년 8월 11일 출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