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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9 23:57:55

강일구(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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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강일구.jpg
출생 1910년 9월 23일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
사망 1950년 5월 25일 (향년 39세)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
서훈 2009년 건국포장
1. 개요2. 생애3. 참고 문헌

1. 개요

한국독립운동가. 2009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910년 9월 23일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서 출생했다. 부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의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만주와 일본을 돌아다니다 1931년 8월 귀향했다. 이후 최재봉이 경영하는 조선일보 부여지국에서 일하면서 구룡면 금사리 야학교 교사를 겸임했다. 이 시기 사회과학 서적을 구독하면서 사회주의에 경도되었고, 1931년 10월 5일 구룡면 금사리 산중에서 동지들과 함께 공산주의연구협의회를 결성하고 교양부를 담당했다.

1933년 3월 23일 적극적인 사회주의 운동실천을 위해 공산주의연구협의회를 해체하고 공산주의자협의회를 결성한 뒤 평의원으로 활동했다. 공산주의자협의회는 각 부락에 야학을 개설하여 연극, 강연 등을 개최해서 농민의 계몽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그해 4월 중순경에는 '칠모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야학운영과 사회주의 사상 보급에 힘썼다. 그러나 5월 부여군 장암면의 야학담당자로서 활동하던 중 일경에 체포되었다.

1935년 11월 25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에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소련 영사관에 자주 출입하다가 체포되어 조사받기도 했다.[1] 이후 대전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0년 5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강일구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2010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3. 참고 문헌



[1] 경종경고비 제13087호, '사상에 관한 정보 8' <소련 주총영사관 출입자 검거의 건>(1938년 1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