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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1 14:04:21

심능장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장옥(章玉)
출생 1855년 8월 5일
경상도 청송도호부 부서면 하덕천동
(현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하덕천마을)[1]
사망 1903년 6월 10일[2] (향년 47세)
경상북도 청송군
본관 청송 심씨[3]
묘소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하덕천마을
상훈 건국포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7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855년 8월 5일 경상도 청송도호부 부서면 하덕천동(현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하덕천마을)에서 아버지 심낙지(沈洛之, 1834 ~ 1886. 7. 16)와 어머니 경주 김씨(1831 ~ 1885. 10. 10) 김창우(金昌佑)의 딸 사이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896년 1월 안동부 청송군에서 의병을 일으킨 심성지 의진에 입대하여 척후(斥候) 및 소모장(召募將)에 선임되었다. 그해 4월 심성지 의진이 김하락 의진, 김상종(金象鍾) 의진과 연계 하에 의병 활동을 할 때 참전했다가, 현내면 감은동(현 안덕면 감은리) 뒷산 기슭에서 일본군과 마주쳐 교전 끝에 병사 7~8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는 데 일조했다.

그 뒤 부동면 상평동(현 주왕산면 상평리) 마평(馬坪)과 경주군 등지에서 교전하였지만 중과부적으로 패전하였고, 얼마 뒤에 좌익장 권성하 등과 함께 영덕의진을 지원하기도 했으나 곧 해산되었다.

의진이 해산된 뒤에는 청송군에서 은거하다가 1903년 6월 10일 사망했다.

199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1] #[2] 청송심씨족보 2권 886쪽에는 6월 19일에 사망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3] 악은공파-석촌공 효상(孝尙)파 20세 능(能)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