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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6 15:58:32

권성하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족보명 권병성 (權丙成)
자 / 호 태언 (泰彦) / 양파 (良坡)
출생 1852년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임하현 기사리
(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기사리)
사망 1914년 3월 25일 (향년 62세)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면 부곡리
본관 안동 권씨[1]
상훈 건국포장

1. 개요2. 생애3.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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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04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852년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임하현 기사리(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기사리)에서 부친 권재기(權載紀)[2]와 모친 안동 김씨 김기순(金基淳)의 딸 사이의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889년 1월 30일 의금부 도사(都事:종6품)에 제수되었으나 을미사변 후 낙향하여 경상도 청송도호부 부내면 율곡동(현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부곡리 감평마을)에 이주하여 살았다.

1896년 3월 16일 심성지 등이 일으킨 청송의진에 가담하여 우익장에 선임되었다. 4월 10일 후방장 장무호, 참모 조광규 등과 함께 포군 3초(哨)를 이끌고 영덕으로 출진하여 영덕의진을 구원하려 했으나, 영덕의진이 이미 패퇴하자 철수하였다.

이후 4월 13일 청송의진이 지역에 따라 분진될 때 외방장을 맡아 부내면 방면의 책임을 맡았다. 청송의진이 해산된 뒤엔 향리에 은거하였고, 1914년 3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권성하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3. 참고 문헌


[1] 복야공파 수구(守矩)계 31세 병(丙) 항렬.[2] 초명 권병순(權秉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