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 경주 최씨[1] |
출생 | 1916년 2월 21일 |
경상남도 양산군 읍내면 남부동 (현 경상남도 양산시 남부동) | |
사망 | 1962년 5월 5일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순지리 | |
상훈 | 건국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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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7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최달수는 1916년 2월 21일 경상남도 양산군 읍내면 남부동(현 양산시 남부동)에서 아버지 최성운(崔聖運)과 어머니 이금옥(李今玉)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그는 1931년 4월 창립한 양산농민조합(梁山農民組合)에 가입하여 양산지역 농민운동에 참여하였다. 1932년 2월 양산농민조합 정기총회에서 소년부와 청년부로 조직을 확대 개편했는데, 이 때 최달수는 소년부에 속하였다. 소작료 분쟁이 전년부터 이어지는 가운데 양산농민조합원들은 무고하게 수감된 조합원들을 구하기 위해 양산경찰서를 습격하였다. 조합원 중 한 명이 일경이 쏜 총탄에 맞아 사망한 후 농민들의 반발은 더욱 커져 3월 17일 일경에 붙잡힌 조합원만도 170명에 달하였다.
최달수도 이때 체포되었고, 1932년 7월 23일 부산지방법원 검사국에서의 예심에서 소위 소요 혐의로 공판에 회부되었으며, 그해 10월 13일 1심에서 징역 10개월(미결 구류일수 통산 90일)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3년 5월 출옥한 뒤에는 양산군 하북면 순지리로 이주하여 조용히 지내다 1962년 5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최달수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