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40:47

문상흡

<colcolor=#fff><colbgcolor=#0047a0> 봉의(鳳儀)
안곡(安谷), 오포(梧圃)
본관 남평 문씨[1]
출생 1876년 5월 24일
평안도 정주목 마산통 옥야리
(현 평안북도 운전군 옥야리)
사망 1944년 6월 5일
평안북도 정주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위패
상훈 건국포장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6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문상흡은 1876년 5월 24일 평안도 정주목 마산통 옥야리(현 평안북도 운전군 옥야리)에서 아버지 문재서(文在瑞)와 어머니 연안 김씨 김시열(金時烈)의 딸 사이의 무녀독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20년경 만주에서 박장호를 중심으로 조직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입하였으며, 대한독립단이 전국 각도에 도지단(道支團)을, 각군에는 군지단(郡支團), 면에는 면지단(面支團)을 설치하여 군자금 모집과 독립군 국내진공작전을 활성화할 때 평안북도 정주군 마산면 단장에 임명되어 활동했다. 또한 1920년 11월 28일에는 권총을 휴대하고 국내로 들어온 양승우와 독립단원 4명의 국내 활동을 돕는 등 주로 독립군의 국내 연락과 관련된 일에 종사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21년 5월 3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상고하였으나 그해 7월 7일 고등법원 형사부에서 소위 다이쇼 8년(1919) 제령 제7호 위반 혐의에 대해 상고가 기각되면서# 형이 확정, 옥고를 치렀다.

이후 정주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4년 6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문상흡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4년 국립대전현충원에 그를 기리는 위패를 세웠다.


[1] 의안공파-이곡-참의공-정주파 35세 상(相)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