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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2-24 17:37:28

태동춘

<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협계 태씨[1]
출생 1913년 3월 30일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 안하리[2]
사망 1975년 9월 1일
전라북도 임실군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제1충혼당 1층-108실-194호
상훈 건국포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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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18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태동춘은 1913년 3월 30일 전라북도 임실군 지사면 안하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1년 12월 임실군 지사면 안하리에 있는 윤동천(尹東天)의 집에서 홍웅아(洪熊兒)·이갑두(李甲斗)·이홍섭(李弘燮) 등과 함께 항일비밀결사인 '순풍회'를 조직했다. 뒤이어 1932년 1월 중순에는 이갑두의 집에서 홍웅아·이홍섭과 모여서 공산주의 등 신사상 이론을 연구하기 위한 '독서회'를 조직하여 활동했다.

이후 1932년 5월 3일 이기택(李起澤)·전명석(全明石) 등이 임실군에서 결성한 '대구 조선공산당협의회' 후속조직과 당시 보통학교 교사·면(面) 서기·농회(農會) 기수(技手)·학생·신문기자 등 임실군 내 각계각층을 망라하여 조직된 몇몇 비밀결사들과 관계를 맺고 활동했다.

그러나 일제 경찰이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과 전북적색교원 사건 관련자들을 색출하는 통에 그 또한 1933년 7월 체포되었고 동지들과 함께 재판을 받았다. 그리고 1935년 10월 25일 전주지방법원 형사부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1935년 10월 28일 전주형무소에서 출옥했다.

출옥 후에는 임실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5년 9월 1일에 별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태동춘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21년 8월 31일 그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 제1충혼당 1층 108실 194호에 이장했다.

[1] #[2] 협계 태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