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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 1911년 11월 5일 |
전라남도 제주군 구좌면 하도리 (現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1] 1700번지) | |
사망 | 1939년[2] 10월 4일 (향년 27세) |
본관 | 제주 부씨[3] |
묘소 | 국립제주호국원 |
상훈 | 건국포장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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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도강습소 제1회 졸업기념 사진. 두 번째 줄 오른쪽으로 두 번째가 부덕량. |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해녀.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911년 11월 5일 전라남도 제주군 구좌면 하도리(現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1700번지)에서 아버지 부계준(夫啓俊, 1860 ~ 1935. 2. 23)과 어머니 평택 임씨(1861 ~ 1921. 4. 18)[4] 사이의 장녀로 태어났다.그녀는 해녀로서 생계를 유지했는데, 당시 제주에는 관제조합인 해녀어업조합의 부정으로 해녀들이 극심한 피해를 보고 있었다. 이에 그녀를 비롯한 제주도 해녀들은 자생적으로 해녀회를 조직하고 부당한 해녀어업조합에 맞서 나갔는데, 이는 곧 시위투쟁으로 발전하였고 특히 구좌면에서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다.
1932년 1월 7일 및 12일 구좌면 세화리 장터에서는 부덕량의 주도 하에 1천여 명의 해녀들이 세화주재소의 저지를 뚫고 호미와 비창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시위가 끝난 후 같은 달 24일경, 그녀는 일본 경찰이 제주도 출신 민족운동가들을 체포하려는 것을 몸으로 맞서 저지하려다가 체포되었고, 제주도경찰서 유치장에 투옥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32년 6월 17일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출옥했으나, 그 뒤 고문 후유증으로 심신이 극도로 쇠약해졌고 이는 폐병으로 이어졌다. 결국 1939년 10월 4일 별세했다. 향년 27세.
200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