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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16 12:11:03

구좌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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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구좌읍
舊左邑 | Gujwa-eup
<colbgcolor=#939499><colcolor=#fff> 광역자치단체 제주특별자치도
행정시 제주시
행정표준코드 5011025600
관할 법정리 12리
하위 행정구역 12행정리 220반
면적 185.93㎢
인구 15,243명[1]
인구밀도 81.93명/㎢
정치 {{{#!wiki style="margin:-0px -11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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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 제주시 을

김한규 (재선)
제주특별자치도의원 | 구좌읍·우도면 선거구

김경학 (3선) }}}}}}}}}
읍사무소 일주동로 3116[2]
구좌읍사무소
1. 개요
1.1. 관할 리
2. 출신 인물3. 기타

1. 개요

파일:제주시-구좌읍-지도.png

1980년 12월 1일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제주도 동북부에 위치한다. 읍소재지는 세화리이다.

세계유산 거문오름 용암동굴계[3](만장굴, 김녕사굴, 용천동굴 등)과 비자림, 해녀박물관 등의 명소가 있다. 세화리 뿐만 아니라 김녕해수욕장을 낀 김녕리도 제법 큰 마을이다. 읍의 동쪽 하도리에는 조선시대의 하도성지와 별방진이 있다.

제주도 읍면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에 쓰던 면 이름과 똑같다. 조선시대에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세 고을을 각각 좌(左)면, 중(中)면, 우(右)면으로 나눠서 면을 만들었는데, 고종 때, 제주목 좌면과 우면을 둘로 나누면서 신(新)과 구(舊)를 붙여 신우면, 구우면, 신좌면, 구좌면으로 개칭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세 고을을 통합하면서도 면명은 대부분 그대로 유지해서 휘하 면들이 이름이 비슷비슷한 카오스가 열려버렸다. 그나마 통폐합 당시 제주군 중면(현 제주시내)은 제주면, 대정군 우면(현 대정읍)은 대정면, 정의군 좌면(현 성산읍)은 정의면으로 바꿨고, 좌중우가 들어간 나머지 면도 1935년에 면소재지 등의 지명을 따서 구우면→한림면, 신우면→애월면, 신좌면→조천면으로 개칭 하였으나 어째서인지 구좌면만은 그대로 두었고, 그게 읍 승격 이후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다른 곳과 비슷한 원리로 개칭했다면 세화면→세화읍이 되었을 것이다.[4] 구좌읍은 읍의 중앙부 해안마을인 행원리에 스마트그리드(풍력발전단지)와 구좌행원농공단지가 있고, 한동리에 제주용암해수산업단지가 운영되고 있음을 볼 때 제주도 관내에서는 좀 드물게 제조업 및 발전산업 같은 2차산업 육성지가 될 확률이 높은 곳이다. 제주도의 총체적 여건으로 볼 때 2차산업 육성이 매우 힘들지만.

2019년 12월 26일에는 동복리에 있는 제주환경자원순환센터 준공식을 가지면서 봉개동에 있는 매립시설과 소각시설을 대체하게 되었다.

2021년 7월에 블루보틀의 제주도 첫 매장인 제주 카페가 생겼다.

1.1. 관할 리

왼쪽은 법정리, 오른쪽은 법정리에 소속된 (행정리)로 정리하였다.
나름 굴곡의 역사가 있는 곳으로, 구한말 철도가 생길 뻔도 하였고 일제시대때 동/서김녕리로 나뉘었다가 비교적 최근에야 통합한 적도 있으며 동복,덕천,월정리를 포함한 구좌읍사무소 김녕출장소로 어느 정도 독립된 적도 있었던 곳이다.
현재도 이동민원실 형태로 출장소는 남아있고 동부보건소 및 중학교도 남아있으며 구좌읍 내 마을 인구수 1위는 여전히 김녕인 만큼, 지역 내에선 나름 방귀 좀 뀌는 동네. 농협도 구 김녕출장소를 관할로 해서 따로 존재한다.
만장굴 등 화산동굴이 많으며 해수욕장도 있지만, 입산봉 같이 특이한 곳들도 있는 편.

2. 출신 인물

3. 기타


[1] 2024년 8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통계[2] 세화리 1561-7[3] 10여km에 걸치며 옆동네 조천읍의 거문오름 분화 때문에 생겼다.[4] 4.3 사건 이전에 구좌면사무소는 평대리에 있었으나 4.3 사건 당시에 무장대에 습격당해 불타서 경찰지서와 군대가 있던 옆마을 세화로 이전 이후 다시 옮기지 않고 계속 세화에 남아 있었다. 이런 연유로 읍승격시 중심마을인 세화읍이라 하려고 하였으나 평대리에서 반대하여 조선시대 행정명칭인 구좌를 계속 사용한 것이다.[5] 김녕 김씨의 관향은 이 곳이 아니라 김해 김씨와 마찬가지로 경상남도 김해시이다. 차이가 있다면 계통이 신라김해냐의 차이.[6] 세화리에는 세화해변에서 약 7㎞ 떨어진 아끈다랑쉬오름부터 마을까지 이어지는 가느다란 숲을 '가는 곶'이라 불렀는데(곶은 제주어로 숲을 뜻한다.), 이를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곶을 꽃으로 해석해 ‘가는 꽃', 세화(細花)가 됐다고 한다.[7] 이 경우에는 세화1리, 세화2리, 세화3리라고 검색해야 나온다.[8] 참고로 201번 버스가 유일하게 표선면 세화리와 구좌읍 세화리 두 군데를 경유한다.[9] 법정사 항일운동, 조천만세운동과 더불어 제주3대 항일운동으로 불린다.[10] 단, 이곳은 사유지라 허가 없이 출입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