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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10 20:49:07

김녕 김씨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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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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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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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9062f> 관향 경상남도 김해시
비조 김알지(金閼智)
도시조 경순왕
시조 김시흥(金時興)
중시조 김향(金珦), 김순(金珣)
집성촌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군위군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경상북도
경주시, 김천시, 상주시
경상남도
창원시[1], 진주시, 의령군, 합천군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순창군
전라남도
고흥군, 함평군, 광양시,무안군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방축리
황해도
신계군 다미면 중산리
인구 578,233명(2017년)[2]|국내 13위
웹사이트 중앙 종친회
충의공파 대종회
분성군파 대종회

1. 개요2. 역사 및 특이사항3. 분파4. 항렬표5. 인명
5.1. 고려/조선시대 인물5.2. 25세손5.3. 26세손5.4. 27세손5.5. 28세손5.6. 29세손5.7. 30세손5.8. 미상 혹은 항렬 미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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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녕 김씨(金寧 金氏)는 경상남도 김해시의 옛 지명인 김녕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인구 수는 2000년 조사 기준으로 약 51만명으로 전체 13위. 김해 김씨, 경주 김씨, 광산 김씨 다음으로 많고 안동 김씨보다 더 많다. 부산광역시경상남도 지역에 상당히 많다. 서울특별시경기도 지역에서는 금녕 김씨라 부르기도 한다.

2. 역사 및 특이사항

본관 김녕은 김해 지역이지만 가야 계통이 아닌 신라 계통 본관이다. 시조 김시흥(金時興)은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후예로 고려 인종 때 한림원을 거쳐 광록대부 평장사(光祿大夫 平章事) 금주군(金州君)에 봉해지고 문열공(文烈公)에 추증되었다. 김녕은 현재의 김해시 지역으로[3], 이 때문에 김녕의 지명이 김해로 바뀌자 졸지에 김해 김씨가 되어버린 김녕 김씨들은 많은 혼란을 겪었다고 한다.
파일:金時興.jpg

결국 김해 김씨가 선김(先金), 김녕 김씨가 후김(後金)으로 불리는 걸로 적당히 합의했다가, 김녕 김씨 쪽에서 본관을 그냥 옛 이름인 김녕으로 되돌리기로 조선 헌종~고종 때에서야 결정되었다. 그 전에는 중간에 사성 김해 김씨까지 생기면서 헷갈리는 게 상당히 심해서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한편 일부 계통은 김녕 김씨로 갈아타지 않고, 그냥 김해 김씨[4]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다. 따라서 김녕 김씨 집안 중 일부는 기본증명서나 가족관계증명서상에서는 김해 김씨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같은 후김이었으나 조선시대에 분관된, 시조를 김인찬으로 하는 익화파(익화 김씨, 양근 김씨), 종남파, 법흥파(법흥 김씨)[5], 종민파와는 과거 통혼을 하지 않았으며, 동성동본 통혼 이후에도 가풍이 엄한 집안에서는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6] 이외에도 결성 김씨, 분성 김씨도 같은 계통이라 통혼하지 않았다.

조선 시대에는 크게 빛을 발하지는 못했는데, 이는 사육신 사건 때 김문기가 단종 절신으로 순절하면서 집안이 풍비박산 나버렸기 때문이다.[7] 그렇게 단종 복위 운동 때 반역으로 죽은 사람들이 훗날 모두 신원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저기서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신이 김문기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났다고 한다. 이게 얼마나 심했으면 상기한 바와 같이 헌종~고종 때 본관을 김녕 김씨로 되돌린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되었을 정도. 심지어 김문기의 후손도 김녕 김씨 충의공파(忠毅公派), 경주 김씨 백촌공파(白村公派), 김해 김씨 백촌공파(白村公派)로 갈라졌다.[8]

3. 분파

김시흥(金時興)에게는 김향(金珦), 김순(金珣)의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후손들이 34개파로 분파되었다.

34파로 계파를 이루고 있다.

4. 항렬표

<rowcolor=#ece5b6> 세수 항렬자
23世 용○(溶○)|문○(汶○)|광○(洸○)
24世 ○권(○權)|○모(○模)|○주(○柱)
25世 형○(炯○)|병○(炳○)|현○(炫○)
26世 ○규(○圭)|○기(○基)|○규(○奎)
27世 진○(鎭○)|종○(鍾○)|연○(鍊○)
28世 ○연(○淵)|○수(○洙)|○태(○泰)
29世 정○(楨○)|동○(東○)|병○(秉○)
30世 ○엽(○燁)|○섭(○燮)|○열(○烈)
31世 재○(在○)|채○(採○)|지○(址○)
32世 ○호(○鎬)|○현(○鉉)|○건(○鍵)
33世 영○(泳○)|준○(浚○)|호○(浩○)
34世 ○근(○根)|○병(○柄)|○상(○相)
35世 희○(熺○)|환○(煥○)|희○(熙○)
36世 ○곤(○坤)|○준(○埈)|○균(○均)
37世 동○(銅○)|용○(鏞○)|옥○(鈺○)
38世 ○락(○洛)|○한(○漢)|○영(○永)
39世 래○(來○)|병○(柄○)
40世 ○경(○景)

5. 인명

신분과 직위를 넘어서 나열하며, 특정 인물의 강조 표기를 금지한다.

5.1. 고려/조선시대 인물

5.2. 25세손

5.3. 26세손


5.4. 27세손


5.5. 28세손

5.6. 29세손

5.7. 30세손


5.8. 미상 혹은 항렬 미사용


[1] 60년대까지는 존재하였으나 이후 창원시가 개발되면서 사라졌다. 당시에는 창원시청과 창원폴리텍대학 사이에 존재했다고 알려진다.[2] 김녕 김씨 290,092명 + 금녕 김씨 287,701명 = 578,233명[3] 금관으로 불리다가 신라 통일 이후에 김해라는 이름을 얻었고 고려 때 잠시 김녕이라는 지명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김해로 바뀐 뒤 오늘에 이른다.[4] 실제로 북한에서 본관을 '김해'로 쓰는 김씨 집성촌 대다수가 실제로는 '김녕' 김씨 계열이다. 이북 지역의 김씨들은 본관의 명칭을 되돌리지 않은 것. 예컨대 김홍일 장군의 집안도 김녕으로 바꾸지 않고 김해 그대로 쓴다.[5] 다만, 법흥 김씨는 족보가 복잡하게 꼬인 상태이다. 법흥 김씨에서는 김염을 시조로 두고, 김녕 김씨의 관조인 김시흥과 법흥 김씨의 시조인 김춘을 중시조로 본다.[6] 위의 파 모두 다 김녕 김씨로 바꾸지 않은 것은 아니고 집안에 따라 김해 김씨로 쓰는 집도 있고, 김녕 김씨로 쓰는 집안도 있다.[7] 실제로 김녕 김씨의 파조 중 대부분은 단종 복위 운동에 가담한 인물들이다.[8] 심지어 전주 김씨 족보나 수원 김씨 족보에도 김문기의 이름이 나온다.[9] 전서공파(典書公派) 김명로(金命路)[10] 이모부는 정치인, 배우 이덕화다.[11] 국가유공자의 자손이다.[12] 부인은 여배우 최명길이다.[13] 보수당 선거에 편집공신으로 불렸던 1세대 PD 김상근의 아들이다.[14] 자신을 금녕 김씨로 소개한다. 2분 46초부터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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