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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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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읍의 역사3. 읍의 설치 기준4. 크고 작은 읍들과 과대 읍 문제5. 읍을 갖지 않는 도농복합시, 군6. 지방자치단체의 청사소재지인 읍
6.1. 도청소재지인 읍6.2. 시청소재지인 읍6.3. 군청소재지인 읍
7. 북한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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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Eup / Town

대한민국읍면동단위 행정구역이다. 기초자치단체도농복합시 또는 아래에 둘 수 있다. 면과 동일하게, 읍의 하위 행정단위로는 하나 이상의 리를 가진다.

오늘날의 읍은 1917년 10월 1일 실시된 일본인이 많이 사는 면이라 불렸던 지정면에서 유래되었다. 따라서 현재도 면보다 격이 높은 행정단위로 여겨지며 인구 2만 이상인 면을 읍으로 변경시킬 수 있도록 제도가 이루어져 있다. 면과 마찬가지로, 농어촌 지역으로 분류하며 이에 따른 농어촌 관련 혜택을 주고 있다.

단어 자체는 중국 춘추시대부터 대부의 영지를 나타내는 의미(가령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은 추읍의 대부였다)로 사용되어 행정단위를 나타내는 의미로 서서히 바뀐 것으로, 매우 유서깊은 단어이다.

2. 읍의 역사

원래 조선시대에는 '읍'이라는 말은 '고을'과 같은 의미였다. 뜻부터가 '고을 읍'이다. 즉 오늘날 도나 광역시 아래의 시군구를 기초자치단체라고 부르듯이 조선의 도 아래 행정구역인 부목군현을 통틀어서 '읍'이라고 불렀다. 고을 관아가 있는 곳을 뜻하는 '읍치'(邑治), 읍치 주변을 둘러 쌓은 성인 '읍성'(邑城), 고을 이름인 '읍호'(邑號), 고을 격을 나타내는 접미사 호칭(, , , )인 읍격(邑格), 그리고 전국에 산재한 '읍내리' 또는 '읍내동'[1]이 존재, 또 읍내가 사실상 군 중심지를 뜻하는 말로 쓰이는 것이 그 흔적이다. 또 (부군면 통폐합으로 철폐된) ○○군 ///읍내면을 ○○읍으로 불렀다. 이후 1931년 일제가 지정면 제도를 개칭하면서, 지정면이 군의 중심지에 설치된 경우가 많으므로 '읍치', '읍내'라는 의미를 담아 '읍'이라고 하여 현재의 쓰임이 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금의 읍과 그 개념이 좀 다를 수 있는데, 저 당시 읍은 인구도 많아야 했고, 일본인이 어느정도 숫자나 비율 이상 살아야 했으며, 나름대로 도시 기능도 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다보니 모든 군마다 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인구가 많아도 읍으로 승격할 수도 없었다. 1930년대 중반 당시 읍들을 보면 지금의 ''보다 수도 적았고, 나름대로 그 지역에서 중심지 역할을 하던 곳들이었다. 그리고 읍보다 규모가 더 크고, 보다 더 넓은 권역의 중심지가 될 만 한 곳은 읍보다 격이 더 높은 ''로 승격시켜 아예 군에서 분리하였다. 일제는 이 부읍면을 행정 기본단위로 삼아 종국적으로는 일본 본토의 시정촌 체제와 유사하게 조선에도 군을 단순 지역구분으로만 남기고 부읍면 체제를 완전히 정착시키려 했다.

부읍면 체제는 광복 이후에도 한동안 존속되어 제1공화국 시기에 지방자치제를 도입하면서 (1949년 8월 15일 이전에는 부)·읍·기초자치단체로 삼았다. 따라서 이 당시에는 읍장과 읍의회 의원을 주민 직선으로 선출했으며, 군은 행정기구로서의 역할만 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제3공화국 시기에 읍·면이 아닌 군이 기초자치단체의 지위를 갖도록 지방자치법을 개정했다.[2]

1979년 이전에는 군청 소재지라 할지라도 인구 2만 명이 넘지 못하면 읍이 될 수 없었기에, 당시까지만 해도 읍이 단 한 곳도 없는 군도 상당히 있었으며 읍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시가지를 가리켰다. 그래서 '읍급도시'[3]라는 표현도 1990년대까지 빈번히 사용되었다. 지금도 보다 설치요건이 까다로워 하나의 기초자치단체(자치구 제외)당 읍을 한 곳씩만 가지고 있거나 많아야 2개 내지 3개의 읍을 갖는 것이 보통이지만, 간혹 더 많은 곳도 있다. 그렇다 보니 대체로 지역의 중심지이거나 군청 소재지인 경우가 많다. 혹은 지역이 개발되며 인구가 늘어 읍으로 승격되거나(이렇게 승격된 경우가 흔함), 도농복합으로 시와 군이 통합되거나 군이 도농복합시로 승격될 때 면이 바로 읍으로 승격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면이 읍을 거치지 않고 바로 시로 승격하는 경우도 있다. 1973년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대왕면, 돌마면, 낙생면이 합쳐져 성남시로 승격되었다. 1995년에 도농복합시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는 면이 곧바로 분동되는 경우도 있다. 경남 김해시 장유1·2·3동(행정동), 경기도 화성시 동탄1~9동이 대표적인 예다.

경남 거제시충남 계룡시를 제외한 도농복합시(옹진군을 제외)도 절대다수가 법(지방자치법) 규정으로 인해 읍을 적어도 하나씩은 두고 있다.

항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읍 역시 에 비해 면적이 상당히 넓은 편이다. 남한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읍은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인제읍(316.33㎢)으로 서울특별시 면적의 절반에 해당한다. 이북 5도 행정구역까지 포함한다면 함경북도 경성군 주을읍이 772㎢로 가장 넓고, 평안남도 양덕군 양덕읍이 322.2㎢로 두번째다. 이남인 인제읍은 세번째로 넓은 읍으로 밀려난다.[4] 반대로 면적이 가장 좁은 읍은 남양주시 퇴계원읍(3.25㎢으로 퇴계원면 시절에도 전국에서 가장 좁은 면이었다)이다. 앞서 언급한 인제읍 면적과 자그마치 100배 차이, 주을읍(이북5도)과 200배 차이다. 읍은 면의 연장선상에 있는 행정구역이기 때문에 과 마찬가지로 읍의 하위 행정구역으로 최소 1개부터 최대 수십 개까지의 평균적으로 10개 안팎의 가 있다.[5]

읍 소재의 약국에서는 소재의 약국과 같이 처방전 없이 약을 조제할 수 있다. 대체로 과 함께 세금 혜택이나 대입 농어촌 특별전형 등 농어촌 혜택을 누리지만 교육부의 '농산어촌 연중 돌봄 학교' 지원과 관련, 교육부는 면 단위 행정구역의 소재지에 있는 초등학교와 병설 유치원에만 특별교부세를 지원하고 있고 지역에 따라서 면에 비해서 농어촌 혜택이 적은 곳이 있다. 건축물에 대해 적용되는 건축법 중 대지와 도로와의 관계, 건축선에 의한 건축제한 등 몇몇 제한요건 완화도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면 지역에만 적용된다.

이러한 면으로서 혜택을 계속 누리기 위해, 면 주제에 인구가 무려 13만까지 늘어 결국 2013년 7월 1일에 3개 행정동으로 쪼개져 버린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면 같이 읍 승격 요건을 갖추어도 읍 승격을 거부하거나, 충청남도 계룡시의 경우 1개 면 정도에 불과한 면적이지만 최소한의 시가지 지역만 금암동으로 전환하고 나머지 지역은 두마면과 남선면(현 신도안면)으로 분리했다가 두마면의 인구가 읍 승격 요건인 인구 2만 명을 넘자 두마면과 엄사면으로 재분면한 경우도 있다. 애초에 계룡시가 논산시 두마면 하나가 승격된 것이다.

현재 남아있는 읍들 중 가장 오래된 읍은 1931년 4월 1일 승격된 철원군 철원읍, 세종특별자치시(구 연기군) 조치원읍, 논산시 강경읍 3곳이다. 이외 이북5도 행정구역인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읍,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읍, 평안북도 정주군 정주읍, 평안북도 선천군 선천읍, 평안북도 강계군 강계읍, 함경남도 북청군 북청읍, 함경북도 경흥군 웅기읍도 있다. 같은 시기 승격된 나머지 읍들은 모두 시로 승격되거나 인근 시에 편입된 것과 대조적이다.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읍은 현재 부산광역시 동래구, 경기도 시흥군 영등포읍은 현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이며, 심지어 충청남도 대전군 대전읍은 훗날 대전시를 거쳐 대전광역시가 되었다.

이북 지역(이북5도 기준)까지 살펴본다면 황해도 해주군 해주읍은 해주시로, 함경남도 함주군 흥남읍은 흥남시(북한 행정구역함경남도 함흥시 흥남구역)로, 함경북도 경흥군 나진읍과 같은 도 성진군 성진읍도 각각 나진시성진시가 되었다. 이북5도상으로는 읍이지만 북한 행정구역인 곳은 평안남도 안주시(안주군 안주읍), 평안북도 정주시(정주군 정주읍), 자강도(평안북도(이북5도위원회)) 강계시(강계군 강계읍)다. 함경북도 경흥군 웅기읍은 현재 북중러 국경에 접한 라선시(라진·선봉경제특구) 선봉구역이 되었다.

목록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통합 이후 폐지되어 사라진 군의 중심지였던 지역들은 대부분 각종 행정기관들이 빠져나가며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거나 더더욱 쇠락하여 대부분 인구 1만 명 이하의 면으로 남아 있다. 물론 좀 더 파고 들어보면 이런 통합시의 폐지된 군들의 시/군 분리 이전 원래 중심지는 경상북도 구미시 등의 예외[6]를 제외하고는 보통 함께 통합대상이 된 '시' 지역이었다.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구 승주군 쌍암면→승주읍)처럼 시/군 분리 기간 동안에 군청을 이전하며 중심지로 키우려다가 시/군 재통합으로 군청이 폐지되면서 이도저도 아닌 신세가 된 것. 당연히 순천시와 승주군의 원래 중심지는 순천읍이었다.

신도시 개발 등으로 갑자기 승격된 일부 읍 등을 제외한 전통적인 읍(의 중심지를)을 읍내라고 표현한다. 사실 옛날부터 있어온 읍이라고 해도 규모가 작아서 중심지 역할을 못 하는 경우 읍내라 부르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조선시대 때의 의미인 '고을의 중심지'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실제 쓰임에 더 가깝다. 특이 케이스로 동 출신 성분을 가진 남양읍도 있다.

단순히 '방위(동, 서, 남, 북, 전, 후, 좌, 우, 상, 하, 중, 내, 외)'만 넣어 지은 이름이 면에 비해 매우 적다. 있는 예가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상동읍[7]이나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마산회원구 내서읍나 옛 경기도 광주군 동부읍 정도가 있다. 방위명을 포함한 명칭을 모두 뽑아보면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이 있다. 한글자짜리 방향 지명이면 아무래도 어감 때문인지 경기도 고양군 중면(일산읍), 경기도 시흥군 서면(소하읍), 남면(군포읍)이나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울릉읍), 충청북도 청원군 강외면(오송읍)처럼 방위명 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중심지 지명을 붙여 개칭하는 경우가 많다.

군청 소재지인 읍과 군명이 같은 경우가 많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생각보다 많이 있는데 그 사례는 아래에서 참조할 것.

2024년 현재 전국에는 290개의 읍이 존재하며 서울특별시, 광주광역시, 대전광역시를 제외한 모든 광역자치단체에 읍이 존재한다. 양산시 동면, 달성군 구지면, 예천군 호명면 등 일부 면 지역을 읍으로 승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서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반대로 양산시 물금읍이나 남양주시, 화성시 소속인 인구가 많은 과대 읍들이 동으로 전환되면 줄어들 수도 있다.

3. 읍의 설치 기준

지방자치법 및 시행령 각 7조에 규정되어 있다.
지방자치법 제10조(시·읍의 설치기준 등)
③ 읍은 그 대부분이 도시의 형태를 갖추고 인구 2만 이상이 되어야 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인구 2만 미만인 경우에도 읍으로 할 수 있다.
1. 군사무소 소재지의 면[8]
1. 읍이 없는 도농 복합 형태의 시에서 그 면 중 1개 면[9]

④시·읍의 설치에 관한 세부기준은 대통령령(지방자치법 시행령)으로 정한다.


지방자치법 시행령 제9조(시ㆍ읍의 설치기준)
③ 법 제10조제3항 본문에 따라 읍으로 되려면 다음 각 호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1. 해당 지역의 시가지를 구성하는 지역 안에 거주하는 인구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40퍼센트 이상일 것
1. 해당 지역의 상업ㆍ공업, 그 밖의 도시적 산업에 종사하는 가구의 비율이 전체 가구의 40퍼센트 이상일 것

기초자치단체(도농복합시, )의 하부 행정구역으로서 1개 면의 인구가 2만 이상일 경우 승격할 수 있으나, 인구가 2만이 안 되더라도 군의 경우 군청소재지인 면, 도농복합시는 1곳에 한해서 조건없이 읍으로 승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도농복합시에 읍이 하나씩은 있다. 현재 읍이 없는 지역은 인천광역시 옹진군, 충청남도 계룡시, 경상남도 거제시가 있다.

위의 법령 조항을 보면 알겠지만, 읍 승격이 가능할 뿐 반드시 해야 하는 강제조항이 아니라서, 함안군 칠원면의 경우 2014년 1월 현재 아직 인구 2만이 되지 않았는데도 조만간 2만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되기에 미리미리 읍 승격을 준비하기도 하고 2015년 1월 2일 부로 진짜 읍으로 승격해버리는 반면 이미 인구 5만이 넘는 순천시 해룡면 같은 경우는[10] 아직 읍 승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용인시의 모현면이동면의 경우도 위의 읍 설치 기준에 모두 부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읍 승격이 미뤄지다가,[11] 2017년 12월 11일에 비로소 승격이 되었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김해시 장유면의 경우로, 이미 2000년대 초반에 읍 설치 요건을 갖추었으나 주민들이 나서서 면을 계속 유지해줄 것을 요청했고, 면인 상태로 인구수가 십만대를 돌파하다가 논란 끝에 인구 13만명이 넘은 2013년 7월에 읍을 거치지 않고[12] 바로 3개 행정동으로 전환되었다. 2019년 1월 기준으로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이 5만 1천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면이다. 해룡면 외에도 아산시 탕정면, 둔포면, 신창면, 음봉면, 통영시 광도면 등이 인구 2만 명이 넘은 면이지만, 아직까지 읍으로 승격하지 않았다. 부산 기장군 정관면도 위의 장유면 이후에 과대 면이었지만, 7만 명이 넘어서면서 결국 2015년 9월 23일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4. 크고 작은 읍들과 과대 읍 문제

농촌 인구의 감소와 산업 구조의 변화로 인해 인구가 2만 명이 안 되는 읍이 상당히 많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상동읍. 상동읍의 인구는 가장 적었을 때 1,200명 이하로 떨어졌다가 2012년 무렵부터 조금씩 늘어나 1,200여명이 되고 있었지만 다시 떨어져서 1000명대가 붕괴되었다. 상동읍은 1960~80년대 상동의 텅스텐 광산이 활발히 채굴될 때에는 광부와 그 가족 등의 인구가 많아 읍이 되었지만 1980년대 이후 채굴이 중단되며 그들이 외지로 떠나가 3만 명이 넘던 인구가 크게 줄어들어 유령도시에 가까울 정도가 되며 일부 면보다 인구가 적어졌으나, 현행 지방자치법상 읍이 다시 면으로 환원되는 조항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읍이 되는 경우는 있었다.[13]

그 외에는 군청 소재지 특례를 적용받아 승격한 읍이나, 평해읍처럼 읍 승격 후에 읍이 분할되어 인구가 승격 기준 아래로 떨어진 읍들이 인구 2만에 못 미치는 경우가 있다.

한편 과소읍에 대한 재편은 군청 소재지를 읍으로 둘 수 있다는 특례 때문에 자칫 형평성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성군 벌교읍의 경우, 과소읍의 면 환원이 이루어질 경우 벌교읍 인구가 1만 4천이 약간 못 되어 벌교면으로 환원되지만, 보성군의 군청 소재지인 보성읍은 9천 5백 명으로 벌교보다 인구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군청 소재지는 인구수에 상관 없이 읍으로 할 수 있다'는 조항 때문에 그대로 읍을 유지할 수 있게 되고, 이는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과 함께 벌교읍 소외 논란을 다시 수면 위로 올릴 수 있다. 실제로 벌교에 군청만 없다 할 뿐이지 여느 군청 소재지와 다르지 않은 모습의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반대로 완주군의 용진읍이나 신안군의 압해읍처럼 군내 중심지가 아닌 곳에 군청을 설치해서 사실상 허허벌판인 군청 소재지도 있다. 둘 다 인구 2만 명 이상에는 미달이나 군청 소재지 특례로 읍 승격이 된 곳이다.

과대읍에 관한 내용은 과대읍 문서 참고.

5. 읍을 갖지 않는 도농복합시, 군

인구 기준을 충족하지 않아도 군청소재지인 면과 도농복합시의 면 중 하나를 읍으로 승격시킬 수 있다고 규정한 전술한 지방자치법 10조3항으로 인해, 인천 옹진군, 충남 계룡시, 경남 거제시를 제외한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도농복합시에는 최소 1개 이상의 읍이 설치되어 있다.

인천광역시 옹진군의 경우는 남북분단[14]옛 부천군[15]의 도서지역 분리 정책에 의해 현재 대한민국의 지배하에 있는 구역은 일부 섬들 뿐이라 중심지라 할 지역이 군 내에 딱히 없는 데다가 군청 역시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위치해 있기 때문에 읍이 없다. 그렇다고 단독으로 인구 2만에 근접할 가능성이 있는 면이 있나 하면 그것도 아니어서 군 전체를 영끌해야 간신히 2만이다(…).

충청남도 계룡시는 시 승격 요건인 인구 5만에도 못 미치는 상태에서 특별법에 의해 탄생한, 전국에서 규모가 제일 작은 시다 보니 처음부터 2면 1동으로 출발하였고 그나마 두마면이 읍 승격 요건에 해당하는 인구수 2만을 넘기자 면 지역으로서 받는 농어촌 혜택을 지속적으로 누리기 위해 두마면과 엄사면으로 쪼개어 버리면서 3면 1동으로 남게 되어 읍이 없다.

경상남도 거제시의 경우 과거 신현읍이 있었으나, 2008년 4개의 동으로 분동되었다. 신현읍이 폐지되자 다시 전술한 '도농복합시 내 하나의 읍을 둘 수 있게 하는 법'을 이용하여 나머지 거제면[16], 연초면, 사등면 등이 서로 읍이 되겠다며 다투고 있다. 너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어디를 선택해도 말이 나올게 분명하다보니 거제시에서는 아예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솔로몬의 선택을 하고 있다.

6. 지방자치단체의 청사소재지인 읍

6.1. 도청소재지인 읍

6.2. 시청소재지인 읍

화성시청의 소재지인 남양읍봉담읍, 그리고 향남읍이 있다. 남양읍의 경우 원래는 남양동이었으나 농어촌특별전형 혜택을 위한 주민들의 요구로 2014년 10월 20일 읍으로 전환되었다.

6.3. 군청소재지인 읍

군청소재지는 인구수에 관계없이 읍으로 승격 가능하다는 특례가 있으므로 모든 군청소재지가 읍이다. 이 때문에 유일하게 군청이 관내에 없는 옹진군은 읍이 전혀 없다.

이 군이 시로 승격되면 대부분 동으로 분동된다.[17] 다만 광양시 광양읍이나 사천시 사천읍처럼 군청소재지가 시로 분리승격하지 못한 경우는 여전히 읍으로 남아있다.[18]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로.

7.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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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는 면이 없고 읍은 군의 하위 행정구역인 리, 로동자구와 같은 단계이다. 1946년 읍 제도를 폐지하면서 읍을 전부 면으로 바꿨다가 1952년 군면리 대폐합으로 면을 전부 없애고 2~3개의 동, 리를 리로 통합했다. 그 중에서 군소재지가 있는 리는 읍으로 하게 되면서 읍 제도를 부활시켰다. 요건을 충족하면 면에서 승격되는 남한와 달리, 북한의 읍은 오로지 군 소재지에만 군의 이름을 따 지정한다. 때문에 군 하나당 하나의 읍만 설치되며, 만일 군청 소재지가 바뀌면 새로운 군청 소재지가 읍으로 지정되고 기존의 읍은 리나 로동자구로 바뀐다.

8. 관련 문서



[1] 는 큰마을 또는 마을 여럿이고 동은 자연마을 한개이기 때문에 리보다 동의 규모가 더 작았다. 1895년 전국의 부목군현이 군으로 통일되면서 일부가 군내리, 군내동으로 명칭이 바뀌기도 했다. 이 명칭은 일제강점기 시작과 더불어 다시 소속군명으로 바뀌었다. 예를 들면 시흥군에 있는 군내동이 시흥군 시흥리로 바뀐 것. 여담으로 이 지역은 오늘날의 시흥동이다.[2] 물론 조항만 저렇게 개정해 놓았을 뿐 실제로는 남북통일 이후로 지방자치를 유보한다는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으로 지방자치를 무력화시키고 정부에서 직접 자치단체장을 임명하는 관선제가 실시되었다.[3] 특히 일산과 함께 독자 시 승격을 앞에두고 있던 경기도 고양군 원당읍, 지도읍(현 고양시 덕양구)이 읍급도시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4] 만약 이북 5도 지역에도 군청 소재지인 면을 읍으로 승격한다는 지방자치법 규정을 적용한다면 경성군 경성면 690.02㎢, 후창군 후창면 508.47㎢, 창성군 창성면 502.54㎢, 장진군 장진면 501.92㎢, 풍산군 풍산면 485.11㎢, 부령군 부령면 396.07㎢ 등이어서 인제읍은 9위로 밀려난다.[5]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고한읍과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읍은 1개 리(둘 다 읍 이름과 같음)로만 구성되어 있다. 법정리가 1개이고 행정리는 고한1리부터 고한19리까지, 퇴계원 1리부터 28리까지 있다.[6] 원래 군의 중심지가 아니었던 곳이 더 성장해버린 케이스이다. 구미시의 경우 예로부터 현 선산읍 지역이 중심이었고, 군 이름도 선산군이었다.[7] 영월읍 방향으로 옆에 중동면도 있고, 더 가면 지금은 김삿갓면으로 개명된 하동면도 있다.[8] 1981년 신설되었다. 이전에는 군청 소재지라도 인구 2만 명 이상이 아니면 읍으로 승격될 수 없었으나, 1979년 임시 조치로 군청 소재지인 면들을 일괄적으로 읍으로 승격시켰다. # 다만, 군청과 달리 시청은 해당되지 않아서 사천시의 경우는 면에 시청이 있다.[9] 1995년 도농복합시 출범과 함께 신설되었다. # 이 조항 중 2만 명을 넘겼던 읍은 지금은 울산광역시 북구로 편입된 농소읍과, 원주시문막읍과 훗날 창원시로 통합되는 마산시 내서읍이 있다. 그 중 문막읍은 세 읍중 시 승격 기준에 미달되며 또 2만명 미만으로 떨어졌다.[10] 최근 증가하는 인구의 대부분도 2차나 3차 산업 종사 가구이다. 전체 가구의 40%가 안 될 리가 없다. 만약 승격되면 1개의 읍과 2개의 면으로 나뉠지도 모른다.[11] 같은 시기 읍 승격을 요청한 평택시의 청북면은 무난하게 읍으로 승격되었기 때문에 더욱 의문스러운 상황이었다.[12] 13만짜리 읍이나 13만짜리 면이나 별반 차이가 없고 분동만이 해답이었기 때문에 만약 어차피 분동될 지역에 대해서 읍 승격작업으로 이중혈세를 날렸다면 욕먹었을지도 모른다.[13] 이 경우도 해당 지역 주민들의 농어촌에 대한 혜택을 포기 하기 싫어서 지속적으로 요청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며, 원래의 지방자치법 상에는 기존 동 지역을 읍으로 환원시킬 근거가 없다. 또한 해당 지역은 남양뉴타운송산그린시티가 조성되고 있어서 차후 동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14] 정확히는 해방 이후에는 옹진반도 전체가 38선 이남에 있어서 남한에 속했으나, 6.25 전쟁 휴전 이후에는 서해 5도 빼고 모두 북한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북한 옹진군과는 사실상 이름만 같을 뿐이지 남한의 옹진군은 부천군의 계보를 잇는다고 봐야 한다.[15] 1973년 폐지되어 부천시로 승격한 곳을 제외한 남은 면들이 인근 군(김포군, 시흥군)으로 흩어졌다. 따라서 도서 지역들도 거리상 가까운 옹진군으로 넘긴 것.[16]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조선 후기에는 이곳이 거제군의 중심지였다.[17] 화성시 남양읍도 도농복합시 승격 당시에는 동으로 전환됐다. 1개 면이 1개 동으로 바뀐 것이니 엄밀히 말하면 '분'동은 아니다.[18] 사천군에서 분리승격한 삼천포시, 광양군에서 분리승격한 동광양시 모두 중심지가 아닌 다른 지역이 따로 떨어져나갔다. 다만 광양읍은 5만명에 임박하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분동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