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부 참사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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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6년 9월 21일 |
사망 | 1943년 9월 9일 (향년 57세) |
묘소 | 국립서울현충원 |
가족 | 손녀 정명희 외증손자 강동호 |
서훈 | 건국포장 추서 (201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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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이다.2. 생애
1919년 11월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내무부 참 사로 임명되어 1920년 독판부 및 국내상황 시찰을 위하여 평안도로 파견되었고,1921년 3월 대한민국임시정부 간도파견원으로 간도와 블라디보스토크 등지에서 독립운동단체 지도자들과 회합하여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방침을 전달하였다.
1919년 11월 14일 중국 상해(上海) 소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내무부 참사(參 事)로 임명되어 1921년 2월까지 재직하였으며, 1920년 1월 21일 임시정부의 명 령으로 독판부 및 국내상황 시찰을 위하여 평안도로 파견되자, 안동현(安東縣) 에서 1주일간 체류하며 독판부(督辦府) 간부 등과 회합하고 평안도 일대의 상황 을 시찰한 뒤, 4월 14일 귀환하였다.
1921년 2월 중순 임시정부 간도파견원으로 선임되어 5명의 파견원과 함께 연 길현(延吉縣)을 방문하여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등 독립운동단체 지도자들과 만나 국내에 결사대를 파견하여 일본 요인 처단 및 일제 관공서 파괴, 일본과 중국간의 국교 교란, 러시아 적군(赤軍)과의 연대, 미국 각지에 지부 설치 등 임 시정부의 특명을 전달하고 28일 간도를 출발하여 러시아로 향하였다.
1929년에는 중국 복건성(福建省) 하문(厦門)에서 태백산삼행(太白山參行)이란 인삼가게를 운영하면서 독립운동의 연락처로 활용하는 한편, 흥사단(興士團) 재 정 후원과 흥사단보(興士團報) 배포 임무를 맡아 활동하였다.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