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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19:11:37

매국노/예시/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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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등재 기준

  1. 일제강점기의 매국노는 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 中 '매국, 수관' 등을 차용할 것
  2. 일제강점기 이후의 매국노는 주권, 이권의 해석을 최대한 좁게 보아 외환죄(외환유치죄, 여적죄, 간첩죄, 간첩방조죄, 군사상기밀누설죄 등)에 연루된 사건을 사안에 따라 개별적으로 토론할 것을 권함
  3. 정상참작이 가능한 경우, 애매한 경우나 관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경우에는 ☆표시||

2. 목록

2.1. 고조선

2.2. 고구려

2.3. 최씨낙랑국

2.4. 백제

2.5. 신라

2.6. 발해

2.7. 후백제

2.8. 고려

2.9. 조선 ~ 대한제국

2.10. 대한민국



[1] 거기다 마침 우거왕의 계략으로 항복한다는 말에 속아 철군하려던 양복이 순제와 다투다가 감금당한 때였기 때문에 한나라군의 지휘체계는 두동강이 난 상태였다.[2] 참고로 이들 중 장항은 왕의 아들, 그러니까 고조선의 왕자였다.[3] 절대 싸우다가 항복하거나 도망간 것이 아니다.[4] 심지어 6.25 전쟁 시기까지 이 지역에 재가승이라고 불리는 천민 계층들이 갖은 차별에 시달리며 살았고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현대 북한에서도 함경도 출신자들을 차별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고 한다.[5] 다만 명성황후도 우범선과 이두황이 이끄는 조선군훈련대를 강제로 해산시키려고 하는 등 강압적인 행동을 해서 어느정도 자업자득인 측면이 있다.[6] 반면 우범선의 아들은 한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7] 정미특사는 표면적으로 순종이 사면령을 내렸지만 일본이 배후에서 압박을 가해서 이루어졌을 것이다.[8] 이후 이두황의 무덤은 6.25 전쟁독립운동가 출신이던 차일혁에게 파묘당하며 죽은 뒤에라도 매국행위에 대한 죗값을 제대로 치렀다.[9] 반면 그 아들인 구용서(초대 한국은행 총재)는 친일 행위에 전혀 가담하지 않았다.[10] 이들 중 악질이 아닌 자들이 없지만(다만 후술하듯 이근택과 을사조약 당시의 박제순만큼은 참작 여지가 있다) 이들 중에서도 우별나게 악질적인 매국노들은 볼드체로 표기한다.[11] 게다가 그 아들 역시 해방된 조국에서 대법원장을 역임하며 사법살인에 가담했다.[12] 공식 용어는 아니다.[13] 전자의 둘은 독립운동에 가담한 사실이 들통나서 작위를 내던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했고 후자는 독립운동가임이 밝혀지면서 체포된 후에 혹독한 고문을 당해 사망했다. 물론 조선귀족 출신 독립운동가들 입장에서는 작위를 가지고 있는 게 침투 및 대일 공작활동 등에 용이하기 때문에 국정원 블랙요원 마냥 내던지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14] 선술한 민태곤의 남동생으로, 형이 독립운동가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체포된 후 본인은 강제로 일본군에 징집되어 태평양 전쟁의 전선으로 보내지고 습작을 강요당했다. 때문에 이들 형제는 각종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서 제외되었을 뿐만 아니라 민태곤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15] 하지만 막상 지금 당장 북한에 가서 살라고 하면 그건 싫다고 말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인다. 정말로 북한에 가겠다고 하는 열성 종북주의자도 있지만 대다수는 북한 가라고 하면 싫다고 한다. 이들에게 북한은 북한의 실상과는 무관하게 현대 한국에 없는 이웃의 따뜻함과 인간성이 살아있는 이상적인 유토피아이고 자신들도 북한이 실제로는 유토피아가 아님을 알면서도 한국이 너무 싫어서 애써 현실을 보지 않는 것이다. 이 글 참조.[16] 일제강점기 근대화 때문에 "지금"도 경제발전의 과실을 누린다는 주장이다. 정작 일제가 남한보다 더 공업화에 열중한 북한은 현재 세계 최하위권 최빈국이다.(...)[17]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거나 존재는 인정하지만 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경우.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후자의 입장이다.[18] 일본에서도 소설가 마야마 히토시가 2016년에 쓴 미스터리 소설 <매국>에서 '매국'으로 언급한 행위가 바로 일본의 우주 개발 기술을 미국에 팔아넘기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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