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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교회 Russian Orthodox Church | Русская православная церковь[1] | ||
<colbgcolor=#ffc224> 규모 | 약 1억 명 | |
모스크바 총대주교 | 키릴 (제17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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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스크바 총대주교좌를 보유하는 그리스도교 교단. 전 세계 정교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러시아의 그리스도교단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신자 수는 약 9천만 명에서 1억 명 수준으로 추정한다.러시아 제국의 국교(國敎)[2]로서 전세계 정교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자치 교회였고 한국 정교회도 19세기 무렵 선교가 이루어진 러시아 정교회가 시초였다.
정교회 자치교회 서열로 따지면 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총대주교구에 이어 5번째 총대주교 관할교회였지만 2018년 정교회 분열[3]로 세계총대주교좌와의 일치가 끊어진 상태이므로 이러한 순위는 현재로서는 유명무실하다.
2. 역사
988년 그리스 정교회의 선교로 블라디미르 1세가 세례를 받으면서[4]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다만 블라디미르 1세는 그리스도교를 공식적으로 공인했을 뿐 그리스도교 신앙은 하층민과 고위층을 막론하고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는것이 정설이다. 때문에 오히려 러시아 정교회의 시초를 실질적으로 그리스도교를 퍼뜨린 불가리아 정교회로부터 여기는 경우도 있다. 초창기에는 평민들이 슬라브 다신교와 그리스도교가 혼합된 이중신앙을 가졌는데, 때문에 이런 슬라브 이교적 전통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1589년에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로부터 독립교회의 지위를 인정받았다. 현재의 총대주교좌(總大主敎座)는 모스크바에 있다.17세기 중반에는 토착화된 전례를 비잔티움 전례 양식을 참고해서 바꾼 니콘 총대주교의 전례 개혁에 반발한 세력이 구 전례를 따르는 고의식파(古儀式派)로 독립했다.[5] 표트르 대제 치세에서는 신성통치종무원[6]에서 총대주교좌 업무를 대신하다가 러시아 혁명 때 신성통치종무원이 폐지되면서 성 티혼이 총대주교로 선출되어 착좌했다. 하지만 곧바로 소련이 정교회를 박해하면서 러시아 정교회는 소련의 박해를 피해 해외로 탈출한 해외 러시아 정교회와 소련에 남은 러시아 정교회로 분리되었다.
소련 치하에서는 수많은 아름다운 성당들이 파괴되거나 무신론 박물관 등으로 개조되는 수모를 겪고,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이 고초를 겪는 등 박해를 받았다. 이는 역으로 소련 붕괴 후 들어선 신 러시아 정부와 교회가 더욱 밀착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으며, 특히 푸틴 정부는 교회를 정치에 적극 활용하고 교회 역시 이에 순응하면서 비판과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8년 우크라이나 정교회 독립교회 인정 문제로 일방적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등과 성사 교류 단절을 선언함으로 인해 정교회의 분열이 시작되었다. 이로써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자기네 신도들에게 콘스탄티노폴리스 및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산하 정교회 성찬예배 및 성사 참여를 금지하기 때문에 가톨릭과 정교회가 상호 성사 참여가 특수상황을 제외하고는 불법이듯 콘스탄티노폴리스와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및 아테네 대주교 산하 정교회와 별도 교단으로 분리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러시아 정교회 내 우크라이나 정교회마저 본교와의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 2024년 우크라이나 의회가 러시아 정교회의 활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의결하고 대통령이 서명했다.# 다만 이 법안은 우크라이나 내에서 과도하다는 논란이 있어 일부 반대표가 나왔다.
3. 특징
정교회권 밖에서는 그레고리력을 따라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로 정했지만 러시아에서는 율리우스력을 기준으로 잡는 정교회 전례력에 따라 1월 7일이다. 다른 나라와 차이가 나지만 러시아 정교회는 바꾸지 않겠다고 밝혔다. #러시아 정교회의 관할지역은 구 동구권 지역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서유럽 등 과거 제1세계 지역에 속했던 나라들까지도 포함하는데, 소련 성립 직후 많은 정교회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망명했기 때문이다. 또 미국의 경우 원래 알래스카가 러시아 제국 것이었던 시절도 있었거니와, 미국 독립 이전 하와이와 미 본토에 한때 정부군인 황립 러시아 제국군 요새들까지 설치된 적도 있어서 그 영향으로 이전부터 이미 들어와 있었던 점도 있을 것이다.
4. 비판
2022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키릴 총대주교가 러시아의 '특별군사작전'을 지지하고 러시아의 침공을 적그리스도에 대항하는 성스러운 투쟁이라는 논평을 내놓자 바르톨로메오스 1세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한 세계 보편교회 지도자들 다수로부터 비판에 직면했다. 2018년 정교회 분열 사태에서 사실 러시아 정교회의 우군은 적지 않았는데 세계총대주교는 정교회에서 어디까지나 대표적인 인물이지 로마 교황처럼 실질적 수위권을 행사하는 존재는 아니었고 러시아 정교회 관할에 속하는 우크라이나 정교회 관구를 환수하고 독립시킨다는 행동을 다른 정교회에서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러시아 정교회가 러시아 정부 및 군부를 지지하며 이 전쟁을 성전으로 포장하기 시작하자 모스크바를 지지하던 다른 정교회들이 돌아서서 비판적인 스탠스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후 러시아 정교회에서 연쇄적으로 모스크바로부터의 이탈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발생했는데 러시아에 인접한 교구들은 모두 독립을 준비 중이고 라트비아 정교회는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5. 같이 보기
[1] Rússkaja pravoslávnaja cérkovʹ. 약칭은 에르페체(РПЦ).[2] 다만 최상위 국교는 정교회였지만 제2 국교로써 여러 종교들이 존재했다.[3] 2018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스 1세가 본디 러시아 정교회 산하에 있던 우크라이나 정교회에 독립교회 지위를 부여한 것에 모스크바 총대주교좌가 반발하여 일방적으로 세계총대주교좌와의 성사 교류 단절을 선언한 사건이다.[4] 같은 역할을 한 콘스탄티누스 1세가 진심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졌다는데 중점을 맞추는 것과는 달리 블라디미르 1세가 진심으로 그리스도인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어쨌든 그리스도교 공인의 목적은 비잔티움 전제정 체제를 이식하는 정치적 이유었다는게 정설이다. 실제로 그리스도교 개종을 거부하는 호족들을 제거했다.[5] 고의식파는 성직 인정파와 성직 부정파로 다시 분리되었고 일부는 20세기 후반에 다시 러시아 정교회와 일치했다.[6] Святейший правительствующий синод(1721 - 1918). 소련 붕괴 후에 신설된 신성종무원과 달리 신성통치종무원은 총대주교 없이 황제가 직접 관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