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6-05 15:11:10

자비 마립간

자비왕에서 넘어옴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A2646, #4a2d5b 20%, #4a2d5b 80%, #3A2646); color:#fbe673"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be673>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남해 차차웅 유리 이사금 탈해 이사금
<rowcolor=#fbe673>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파사 이사금 지마 이사금 일성 이사금
<rowcolor=#fbe673>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벌휴 이사금 내해 이사금 조분 이사금 첨해 이사금
<rowcolor=#fbe673>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미추 이사금 유례 이사금 기림 이사금 흘해 이사금
<rowcolor=#fbe673>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내물 마립간 실성 마립간 눌지 마립간 자비 마립간
<rowcolor=#fbe673>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소지 마립간 지증왕 법흥왕 진흥왕
<rowcolor=#fbe673> 제25대 제26대 제27대 제28대
진지왕 진평왕 선덕여왕 진덕여왕
<rowcolor=#fbe673> 제29대 제30대 제31대 제32대
태종 무열왕 문무왕 신문왕 효소왕
<rowcolor=#fbe673> 제33대 제34대 제35대 제36대
성덕왕 효성왕 경덕왕 혜공왕
<rowcolor=#fbe673> 제37대 제38대 제39대 제40대
선덕왕 열조 원성왕 소성왕 애장왕
<rowcolor=#fbe673> 제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헌덕왕 흥덕왕 희강왕 민애왕
<rowcolor=#fbe673> 제45대 제46대 제47대 제48대
신무왕 문성왕 헌안왕 경문왕
<rowcolor=#fbe673> 제49대 제50대 제51대 제52대
헌강왕 정강왕 진성여왕 효공왕
<rowcolor=#fbe673> 제53대 제54대 제55대 제56대
신덕왕 경명왕 경애왕 경순왕
}}}}}}}}}}}}

자비 마립간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신라의 왕자
[[틀:신라의 왕자/혁거세 거서간 ~ 문흥왕|{{{#!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ackground: #fbe673; border-radius: 3px; font-size: .8em"
[ 펼치기 · 접기 ]
유리 이사금 · 일지 갈문왕 · 박나로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be673; font-size: .7em"
석골정 · 이칠 갈문왕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be673; font-size: .7em"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be673; font-size: .7em"
미추 이사금 · 김말구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be673; font-size: .7em"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be673; font-size: .7em"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be673; font-size: .7em"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be673; font-size: .7em"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A2646, #4A2D5B 20%, #4A2D5B 80%, #3A2646)"{{{#!wiki style="margin:-10px"<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4A2D5B><tablebgcolor=#4A2D5B> 파일: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png황남대총
皇南大塚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bgcolor=#4A2D5B,#2d2f34><colcolor=#fbe673,#f9d537> 남분 추정 피장자 <colbgcolor=#fff,#1f2023>내물 마립간 · 실성 마립간 · 눌지 마립간
북분 추정 피장자 보반부인 · 아류부인 · 차로부인 · 자비 마립간
북분 출토 유물
[ 펼치기 · 접기 ]
황남대총 금귀걸이 · 황남대총 북분 고구려식 금동못신 · 황남대총 북분 금관 · 황남대총 북분 금목걸이 · 황남대총 북분 금은제 그릇 일괄 · 황남대총 북분 금제 고배 ·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 및 금반지 · 황남대총 북분 유리구슬 거푸집 · 황남대총 북분 유리잔 · 황남대총 북분 은잔 · 황남대총 북분 은제 관식 · 황남대총 은제 허리띠 · 황남대총 북분 청동 세발솥 · 황남대총 북분 커트장식 유리잔 · 황남대총 야광조개국자
남분 출토 유물
[ 펼치기 · 접기 ]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 황남대총 금귀걸이 · 황남대총 금맞새김판장식 · 황남대총 남분 금동관 · 황남대총 남분 금동신발 ·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 황남대총 남분 금반지 · 황남대총 남분 금제 관식 · 황남대총 남분 금제 허리띠 · 황남대총 남분 도기줄무늬 유병 · 황남대총 남분 '마랑'명 주칠기 바둑알 통 · 황남대총 남분 앵무조개잔 · 황남대총 남분 유리잔 · 황남대총 남분 유리제곡옥부 목걸이 · 황남대총 남분 은관 · 황남대총 남분 은관모 · 황남대총 남분 은반지 · 황남대총 남분 은제 국자 ·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 · 황남대총 은제 허리띠 · 황남대총 비단벌레 장식 금동 말띠드리개 · 황남대총 비단벌레 장식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 · 황남대총 비단벌레 장식 금동 발걸이 · 황남대총 비단벌레 장식 금동 허리띠 꾸미개 · 황남대총 비단벌레 장식 금동 화살통 장신구 및 멜빵 · 황남대총 청동거울 · 황남대총 환두대도
}}}}}}}}} ||
<colbgcolor=#4A2D5B><colcolor=#fbe673>
신라 제20대 국왕
자비 마립간 | 慈悲 麻立干
파일:Daerungwon_-_Hwangnam_Daechong.jpg
황남대총 전경.
출생
(음력)
410년대 추정[1]
사로국 서라벌
사망 479년 3월 12일[A] (향년 60대 추정)
사로국 서라벌 명활성
능묘 황남대총(皇南大塚) (추정)
재위기간 신라 제20대 국왕
458년 음력 8월 ~ 479년 3월 12일[A] (20년 7개월)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4a2d5b><colcolor=#fbe673> 본관 경주 김씨
자비(慈悲)
부모 부왕 눌지 마립간
모후 차로부인 김씨
형제자매 조생부인, 성국공주(?)[4]
왕후 왕후 김씨[5], 왕후 김씨[6]
자녀 1남
[ 펼치기 · 접기 ]
김소지
신장 143cm[7]
왕호 자비 마립간(慈悲 麻立干) }}}}}}}}}

1. 개요2. 생애3. 기타4. 《삼국사기》 기록5. 조상6. 대중매체에서7.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신라의 제20대 왕.

칭호는 마립간. 이름은 김자비. 고(구)려의 정복 군주인 장수왕의 남진 정책에 맞서 신라를 수호하고, 북변에 방어와 진출을 위한 성을 쌓은 수성의 군주이다.

2. 생애

눌지 마립간의 장남으로 어머니는 실성 마립간의 딸 차로부인이다. 자비(사랑하고 불쌍히 여김)와 한자까지 같아서 눌지 마립간이 노렸거나 고구려의 제2대 유리명왕과 같이 실제 이름은 한자가 달랐는데 발음이 비슷하고 뜻이 좋은 글자를 택했을 가능성도 있다.

본래 신라는 지속적으로 사위왕위에 오르는 모습을 자주 보여왔고, 이 때문에 왕위 계승이 복잡하게 꼬여서 치열한 왕위 쟁탈전이 벌어지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지만 자비 마립간부터는 눌지 마립간에 의해 확립된 부자 상속제에 따라 큰 다툼없이 즉위했다. 461년 2월에는 왕비 김씨와 혼인했는데 이 때 김씨는 왕의 숙부인 미사흔의 딸로 추정되며, 사촌과 혼인한 것이 된다. 또 다른 기록에서는 파호 갈문왕의 딸과 혼인했는데 파호 갈문왕은 대체적으로 복호로 여겨지며 복호 역시 자비 마립간의 숙부이다. 여러모로 내물 마립간계 왕위 계승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요소로 서로 간의 혼인을 통한 결합을 맺은 것으로 추정된다.

눌지 마립간 시대에 고구려에 대한 적대 노선을 명확히 정했기에 자비 마립간의 재위기에는 유독 고구려와 왜의 침략이 잦았다. 즉위 2년차인 459년 4월에 왜가 100여 척에 달하는 대함대를 이끌고 신라의 동쪽 변경을 습격했다. 신라의 수도 서라벌동해 바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탓에 금방 경주 월성이 포위당했다. 이후 왕성을 굳게 지키며 병력을 내보내 싸우게 하자 왜가 북쪽 바다로 도망갔는데 자비 마립간은 이를 추격했고 이때 왜인들 중 물에 빠져죽은 자가 반이 넘었다고 한다.

462년 5월 왜군이 활개성을 침입하여 신라군이 패배해 1,000명이 포로가 되었다. 463년 2월에 왜가 남쪽 삽량성(歃良城, 오늘날 경상남도 양산시)으로 침입했지만 벌지(伐智)와 덕지(德智) 두 장군에게 군사를 주고 복병을 숨겨두어 기습 공격을 해 승리를 거두었는데 두 장군은 473년 각각 좌장군우장군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지속적인 공격이 와서 변경 두 곳에 성을 쌓았고, 463년 7월에는 군대를 순시했다고 한다. 467년에는 전함의 수리를 명령해 전통적으로 신라의 약점이었던 수군을 보강했다. 신라인은 왜군에 비해 해전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언급이 《삼국사기》에 자주 등장하는데 당장 자비 마립간 재위기에도 왜구가 여러 번 침략했을 정도이니 신라에 수군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

468년 고구려의 장수왕말갈병 10,000명과 함께 신라 북쪽 변경의 실직성(오늘날 강원도 삼척시)을 공격해 함락시켰다. 이 루트는 동해안가를 따라 남진해 신라의 수도 서라벌을 공격하는 경로다. 장수왕의 신라 공격은 《삼국사기》에는 없지만 《일본서기》에서 찾을 수 있는 사건에서 기인한 걸로 보인다. 《일본서기》 464년 기록에 의하면
'신라 왕이 집안의 수탉을 잡아죽이게 했다.'
는 이상한 기록이 등장하는데 이때 신라 왕은 자비 마립간이다. 일국의 왕이 닭 1마리 잡은 게 기록될 리는 만무하고 이는 암호로 봐야하는데 고구려인들이 쓰고 다니던 절풍모자를 수탉의 볏으로 보아[8] 자비 마립간이 경주에 주둔한 고구려군을 습격해 섬멸한 것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다는 해석이 중론이다. 자비 마립간은 처음부터 반고구려 노선을 정하고, 고구려 주둔군을 몰살시키는 것으로 고구려에 대한 예속을 끊는다는 선언을 분명히 했으며 장수왕은 이에 대한 보복에다 차후 백제 공세 때 후방을 안정시키려는 목적에서 언제든지 서라벌을 노릴 수 있는 실직성을 빼앗은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 때 백제의 개로왕은 신라의 지원군을 빌릴 수 있다는 상황에 자신감이 생겼는지 469년 고구려를 공격했는데 광개토대왕 이후 처음으로 백제가 고구려를 공격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475년 고구려의 대규모 백제 침공 때 개로왕의 친동생 부여문주가 원군을 요청하러 신라에 왔고, 나제동맹에 따라 개로왕을 구원하기 위해 군사를 파견했으나 신라 지원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한성은 함락당하고, 개로왕은 전장 한복판에서 처형당하고 말았다. 다만 신라 지원군은 수도를 잃은 백제를 지원해 남하하는 고구려군을 차단했고, 결국 돈좌시켜 백제의 완전 멸망을 막는 데 성공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자비 마립간은 전성기를 맞은 강대한 고구려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아직 약한 신라가 할 수 있는 건 축성만이 답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 같은데 이 때부터 성을 쌓는 기록이 대폭 늘어나기 때문이다. 훗날 고구려도 수나라당나라의 침략에 철벽 수비로 대항했듯 대포가 발달하기 전까지 국력차를 상쇄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수성전이었다. 국경 최전방이었던 죽령, 조령, 동해안 경로를 중심으로 지금의 충청도경상도 각지에 여러 산성을 쌓았으며, 고구려 기병의 성을 건너뛰는 기습 공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는지 자비 마립간 본인도 475년 서라벌 인근 명활산의 명활성궁전을 옮겨 살았다고 한다. 474년 개로왕이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이 전해졌을테고 고구려 앞에 신라도 안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국에 성들을 만들면서 이를 바탕으로 변방 지역에 대한 지배권도 확립했고, 수도권지방간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지방에서 이주해온 주민들에 의해 서라벌의 인구가 늘어나 469년 수도의 행정 구역을 조정하기도 했다.

476년 6월과 477년 5월에도 왜의 침략이 있었으나 모두 물리쳤다고 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인지 《삼국사기》기록의 절반이 축성 관련 이야기다. 지금도 크고 아름다운 자태가 남아있는 삼년산성이 축성된 것도 이 왕의 재위기간이다. 물론 이 시기는 백제 정도만 나제동맹 덕분에 사이가 좋았지 북•동•남 세 방향으로 고구려와 왜의 침공에 계속 시달렸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방책이었지만 자비 마립간 치세에 쌓인 성들은 뒷날 신라가 진흥왕 때 영토를 확장할 때나 삼국통일전쟁 때 백제에게 공격당할 때에도 큰 역할을 수행했다. 자비 마립간 최고의 작품인 이 방어 라인은 소지 마립간, 지증왕 등의 개축과 보완을 거쳐 난공불락으로 거듭났던 것이다. 다만 이렇게 대백제 전선에 축성했던 성들이 약 450년 후에 후백제에게 넘어가 거꾸로 신라를 겨누는 가장 무서운 칼이 되고 말았던 건 웃지 못할 일.[9][10]

즉위 12년(469년)에는 서라벌을 지역적으로 구분하여 방리명(坊里名)을 확정해 서라벌을 기존의 부족 연합적 성격에서 행정적 성격으로 바꾸었다.

왕릉은 문헌상 비정되는 곳은 없으나, 왕비의 무덤으로 추정된 황남대총 북분이 왕비가 아니라 왕인 자비의 왕릉이라는 설이 있다.##

3. 기타

4.삼국사기》 기록

삼국사기(三國史紀)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word-break: keep-all; min-height:(25/18*1em + 5px)"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4a2d5b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6px -1px -10px"
1권 「신라 1권 (新羅 一)」 2권 「신라 2권 (新羅 二)」
혁거세 · 남해 · 유리 · 석탈해 · 파사 · 지마 · 일성 아달라 · 벌휴 · 내해 · 조분 · 첨해 · 미추 · 유례 · 기림 · 흘해
3권 「신라 3권 (新羅 三)」 4권 「신라 4권 (新羅 四)」 5권 「신라 5권 (新羅 五)」
내물 · 실성 · 눌지 · 자비 · 소지 지대로 · 원종 · 김삼맥종 · 김사륜 · 김백정 김덕만 · 김승만 · 김춘추
6-7권 「신라 6-7권 (新羅 六-七)」 8권 「신라 8권 (新羅 八)」 9권 「신라 9권 (新羅 九)」
김법민 김정명 · 김이홍 · 김융기 김승경 · 김헌영 · 김건영 · 김양상
10권 「신라 10권 (新羅 十)」 11권 「신라 11권 (新羅 十一)」
김경신 · 김준옹 · 김청명 · 김언승 · 김수종 · 김제융 · 김명 · 김우징 김경응 · 김의정 · 김응렴 · 김정 · 김황 · 김만
12권 「신라 12권 (新羅 十二)」 13권 「고구려 1권 (高句麗 一)」 14권 「고구려 2권 (高句麗 二)」
김요 · 박경휘 · 박승영 · 박위응 · 김부 고주몽 · 고유리 고무휼 · 고색주 · 고해우
15권 「고구려 3권 (高句麗 三)」 16권 「고구려 4권 (高句麗 四)」 17권 「고구려 5권 (高句麗 五)」
고궁 · 고수성 고백고 · 고남무 · 고연우 고우위거 · 고연불 · 고약로 · 고상부 · 고을불
18권 「고구려 6권 (高句麗 六)」 19권 「고구려 7권 (高句麗 七)」 20권 「고구려 8권 (高句麗 八)」
고사유 · 고구부 · 고이련 · 고담덕 · 고거련 고나운 · 고흥안 · 고보연 · 고평성 · 고양성 고원 · 고건무
21-22권 「고구려 9-10권 (高句麗 九-十)」 23권 「백제 1권 (百濟 一)」
고장 부여온조 · 부여다루 · 부여기루 · 부여개루 · 부여초고
24권 「백제 2권 (百濟 二)」
부여구수 · 부여사반 · 부여고이 · 부여책계 · 부여분서 · 부여비류 · 부여계 · 부여구 · 부여수 · 부여침류
25권 「백제 3권 (百濟 三)」
부여진사 · 부여아신 · 부여전지 · 부여구이신 · 부여비유 · 부여경사
26권 「백제 4권 (百濟 四)」 27권 「백제 5권 (百濟 五)」 28권 「백제 6권 (百濟 六)」
부여문주 · 부여삼근 · 부여모대 · 부여사마 · 부여명농 부여창 · 부여계 · 부여선 · 부여장 부여의자
금석문 및 문헌기록상 신라 최초로 성씨를 사용한 왕은 진흥왕임
* 29~31권까지 연표
* 32~40권까지 잡지
}}}}}}}}}}}}
{{{#!folding [ 열전(列傳) ]
}}} ||

《삼국사기》 <자비 마립간 본기>
一年秋八月 자비 마립간이 즉위하다
二年春二月 시조묘에 배알하다
二年夏四月 왜인이 쳐들오자 이를 물리치다
四年春二月 서불한 미사흔의 딸을 왕비로 삼다
四年夏四月 용이 금성의 우물에 나타나다
五年夏五月 왜인이 활개성을 습격하다
六年春二月 왜인을 벌지와 덕지가 매복하여 물리치다
六年秋七月 군대를 사열하다
八年夏四月 물난리가 나서 산이 무너지다
八年夏五月 사벌군에 누리의 피해가 나다
十年 전함을 수리하도록 하다
十年秋九月 큰 별이 북쪽에서 동남쪽으로 흘러가다
十一年 고구려와 말갈이 실직성을 습격하다
十一年秋九月 하슬라 사람을 징발해 이하에 성을 쌓다
十二年春一月 서울의 방·리 이름을 정하다
十二年夏四月 나라 서쪽에 큰 물난리가 났다
十二年秋七月 물난리를 당한 주·군을 다니며 위로하다
十三年 삼년산성을 쌓다
十四年春二月 모로성을 쌓다
十四年春三月 서울에 땅이 갈라지고 탁한 물이 솟아오르다
十四年冬十月 전염병이 크게 돌다
十六年春一月 아찬 벌지와 급찬 덕지를 좌·우장군으로 삼다
十六年秋七月 명활성을 수리하다
十七年 일모·사시·광석·답달·구례·좌라 등의 성을 쌓다
十七年秋七月 고구려 왕 거련이 백제를 공격해 한성을 함락하고 백제 왕을 죽이다
十八年春一月 왕이 명활성으로 옮겨 거주하다
十九年夏六月 왜인이 동쪽 변경에 침입하여 장군 덕지가 이를 물리치다
二十年夏五月 왜인이 침입해 왔다가 돌아가다
二十一年春二月 밤에 붉은 빛이 하늘까지 뻗치다
二十一年冬十月 서울에 지진이 일어나다
二十二年春二月三日 왕이 죽다

5.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자비 마립간
(慈悲 麻立干)
눌지 마립간
(訥祇 麻立干)
내물 마립간
(奈勿 麻立干)
김말구
(金末仇)
휴례부인
(休禮夫人)
보반부인
(保反夫人)
미추 이사금
(味鄒 尼師今)
광명부인
(光明夫人)
차로부인
(次老夫人)
실성 마립간
(實聖 麻立干)
김대서지
(金大西知)
이리부인
(伊利夫人)
아류부인
(阿留夫人)
미추 이사금
(味鄒 尼師今)
광명부인
(光明夫人)

6. 대중매체에서

7. 둘러보기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3A2646, #4a2d5b 20%, #4a2d5b 80%, #3A2646); color: #fbe673;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000,#DDD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font-size:0.85em; letter-spacing: -1.5px"
선도성모 은열왕 문열왕 감문왕 문의왕 장무왕 장렬왕
 
朴1
시조 혁거세왕
알영
 
 
 
朴2
남해왕
운제 청평군 박민 세조 알지왕 사요왕
 
 
 
 
 
朴3
유리왕
아효
昔4
시조 탈해왕
지소례왕 일지왕 태조 성한왕 사요왕의 딸
 
 
 
 
 
朴7
일성왕
朴5
파사왕
석구추 김아도 허루왕
 
 
 
 
朴8
아달라왕
朴6
지마왕
昔9
벌휴왕
김수류 마제왕
 
 
 
 
 
 
아도왕 세신왕 이칠왕 김욱보
 
 
 
 
 
 
 
昔11
조분왕
昔12
첨해왕
昔10
내해왕
술례부인
구도왕
 
 
 
 
 
 
 
 
 
 
 
 
 
 
 
昔14
유례왕
석걸숙 내음왕 석우로 광명부인
金13
미추왕
김말구
 
 
 
 
 
 
昔15
기림왕
昔16
흘해왕
金17
내물왕
김대서지
 
 
 
 
 
 
金19
눌지왕
파호왕
 
 
김미사흔 金18
실성왕
 
 
 
 
金20
자비왕
습보왕
 
 
김내숙
 
 
 
 
 
 
 
 
金21
소지왕
金22
지증왕
 
 
선혜부인 김물력
 
 
 
 
 
 
 
聖23
법흥왕
입종왕
 
 
김거칠부
 
 
 
 
聖24
진흥왕
김숙흘종
 
 
 
 
 
 
 
 
복승왕 동륜왕 만천왕 聖25
진지왕
 
 
김만명
 
 장인
 
 
 
 
 
 
 
 
 
마야부인
김행의
聖26
진평왕
진정왕 진안왕
문흥왕 김마차
 
 
 
 
 
 
 
 
 
 
 
 
 
 
 
聖27
선덕왕
김천명 비담 聖28
진덕왕
김알천 眞29
태종 무열왕
현성왕 흥무왕
 
 
 
 
 
眞30
문무왕
김인문 무열왕의 딸
신영왕
 
 
 
眞31
신문왕
 
흥평왕
 
 
 
 
 
 
眞32
효소왕
眞33
성덕왕
 
명덕왕
 
 
 
 
 
 
 
 
개성왕
김사소 효상태자 眞34
효성왕
眞35
경덕왕
김주원 眞38
열조 원성왕
 
 
 
 
 
 
 
 
 
眞37
선덕왕
眞36
혜공왕
김헌창 혜충왕 헌평태자 혜강왕
 
 
 
 
 
 
眞39
소성왕
眞41
헌덕왕
眞42
흥덕왕
선강왕 익성왕 성덕왕
 
 
 
 
 
 
 
 
 
 
 
 
眞40
애장왕
헌덕왕태자 ? 眞44
민애왕
眞43
희강왕
眞45
신무왕
眞47
헌안왕
 
 
 
 
 
의공왕 眞46
문성왕
궁예(?)
 
 
 
 
 
 
 
성무왕 ? 眞48
경문왕
혜성왕 문성왕태자 문성왕의 딸
 
 
 
 
 
 
 
선성왕 흥렴왕
박정화 眞49
헌강왕
眞50
정강왕
眞51
진성왕
의흥왕
 
양부 
 
 
 
 
 
 
 
朴53
신덕왕
김의성 김계아 眞52
효공왕
김억렴 신흥왕
 
 
 
 
朴54
경명왕
朴55
경애왕
眞56
경순왕
 
 
 
 
박언창 박언침 마의태자
{{{#!wiki style="margin:-5px -10px"[왕조 보기]
[朴] 밀양 박씨 왕조 [聖] 경주 김씨 성골왕조
[昔] 경주 석씨 왕조 [眞] 경주 김씨 진골왕조
[金] 경주 김씨 마립간조 추존 국왕 및 왕족
[범례]
세로선(│) : 부자, 사위관계 / 가로선(─): 형제, 자매관계 / 혼인관계: 붉은 두줄#= }}} }}}}}}}}}}}}




[1] 생년은 미상이지만 조카 지증왕의 나이를 감안해서 학계에서는 자비 마립간이 최소 410년대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한다.#[A] 율리우스력 3월 11일, 음력 2월 3일[A] [4] 조생부인과 동일인물일 가능성 있음.[5] 김복호의 딸.[6] 김미사흔의 딸. 소지 마립간의 어머니.[7] 출처 황남대총의 북분 주인의 머리부터 발까지의 길이로 추정한 키인데 황남대총 북분의 주인이 자비 마립간이라고 가정하면 자비 마립간의 키는 143cm가 된다.[8] 고구려인들은 양쪽에 새의 깃털을 꽂은 모자를 쓰고 다녔다.[9] 근데 그마저도 결코 후백제가 군사력으로 함락했던 게 아니었다. 견훤이 이 어려운 방어막을 어떻게 해서 수중에 넣었는지는 상황이 불분명하여, 김헌창처럼 설득, 회유, 협박으로 판도에 편입했을 개연성만 있을 뿐. 고려왕건 또한 후백제와의 쟁패 과정에서 자비 마립간~지증왕이 축성했던 방어 라인만은 자력으로 뚫어내지 못했다.[10] 물론 4세기 반에 가까운 먼 미래 일까지 그의 실책이라고 볼 순 없다. 이건 후백제통일신라의 군사적 자산을 후삼국시대 신라보다도 더욱 많이 계승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역사의 아이러니다.[11] 확실하지 않으나 지금의 군위 효령면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