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15:24:02

해전

파일:paphistoryofgreeknation.png 파일:/image/081/2005/02/26/SSI_20050225181613.jpg
기원전 480년 9월 살라미스 해전 1592년 8월 14일에 발생한 한산도 대첩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BattleOfVirginiaCapes.jpg 파일:hTWJEef.jpg
1781년 9월 5일에 발생한 체사피크 만 해전의 모습: 왼편이 프랑스 해군, 오른편이 영국 해군 1916년 5월 31일에 발생한 유틀란트 해전
파일:midway.png 파일:external/news.bbc.co.uk/_1414411_sheff300.jpg
1942년 6월 4일에 발생한 미드웨이 해전 1982년 5월 4일 포클랜드 전쟁에서 엑조세 대함미사일에 피격되어 침몰하는 42형 구축함 HMS 쉐필드[1]
파일:제1연평해전.jpg 파일:FQlEjIoXwAYLYpS.jpg
1999년 6월 15일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제1연평해전 2022년 4월 1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R-360 넵튠 대함미사일에 피격되어 침몰하는 슬라바급 순양함 모스크바
1. 개요
1.1. 명칭 논란
2. 전투 양식3. 해전 목록4. 관련 문서5. 관련 항목
5.1. 해전을 다루는 관련 비디오 게임
5.1.1. 아케이드적 전술전투를 다룬 게임5.1.2. 시뮬레이터5.1.3. 전략 시뮬레이션5.1.4. 워게임5.1.5. 기타 해상전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는 게임

1. 개요

/ Naval warfare, Naval battle

바다에서의 전투, 전쟁 행위를 지칭한다.

몽둥이나 짱돌로 치고 받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육상전에 비해, 해전은 기본적으로 항해가 가능한 선박 위에 승선하여 치러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육상전보다는 늦게 출현하였다. 고대 이집트에서 최초로 추정되는 해전의 기록이 있고, 기원전 5세기에 이미 그리스 해군이 페르시아 해군과 싸우는 등, 해상활동이 본격화되고 이를 통한 군사력 전환이 본격화되면서 해전이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현대에는 강대국의 함대 하나가 마음만 먹으면 어지간한 개발도상국은 전복시킬 수 있을 만큼 당연히 제해권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나 전근대 기술로는 멀리 맘놓고 대양 항해하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일이었다. 따라서 주로 사람과 사람의 인적, 물적 교류도 육지나 연안 해역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래서 보통 국가의 군대는 육군을 바탕으로 하였고 해군을 조직하더라도 연안 해양을 수호하는 해군 정도만 만들었다. 그런데도 인류가 거대한 대양을 넘나드는 해군을 조직하고 해전을 발전시켜 왔던 이유는 아래와 같은데,

1. 지구에서 바다가 덮고 있는 면적이 육지보다 훨씬 더 많고, 바다는 모두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해군을 갖추면 아메리카에서 아시아로 보내든, 유럽에서 아시아로 보내든 병력을 멀리까지 보낼 수 있다. 명나라 정화의 남해원정이나 영국의 아편전쟁이 가능했던 이유도 해군이 있어서다. 아메리카가 유럽인들에게 점령된 것도 해군의 존재 때문이다.

2. 바다는 강과 비교할 수 없이 넓고, 큰 선박을 이용할 수 있기에 물자 수송의 중심이 된다. 바다를 이용해 육지에서는 운용하지 못하는 거대한 물자를 쉽게 운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물자와 인력을 운송할 때 육지에 비해 저비용으로 고효율의 운송효과를 얻을 수 있다. 선박의 발명 이후로 항공기, 비행선, 열차 등 수많은 경쟁자가 등장해서 선박의 위치를 위협했으나, 그 누구도 화물 운송 효율에선 아직 선박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3. 해전으로 적의 해군력을 약화시키면 적의 보급을 막고, 바닷길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육지와 마찬가지로 바다에도 인문환경이나 해류, 육지의 형태 등으로 생겨나는 몇몇 요충지가 있고 그 요충지를 장악할 경우 얻는 이익은 막대하다. 대표적인 요충지로 스프래틀리 군도수에즈 운하가 있다.

위의 이유들로 인해 해전은 인류가 배를 발명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잠수함같이 적군의 바닷길 이용을 방해하는 무기들이나 상륙용 헬기 같은 것이 개발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무기들 조차도 해군을 보조하는 수준이고, 해군 운용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너무나도 크다. 강력한 해군력의 유무가 제국의 흥망성쇠를 결정하고, 해전 한 번으로 전쟁의 판도가 뒤집히는 사례가 굉장히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조선이 왜군에게 점령당할 뻔했다가 해군 운용으로 보급을 끊어 막아낸 임진왜란이다.

게다가 현대에는 국제법에 의해 섬이 많으면 영해가 넓어지고, 이는 자연스럽게 육지에 대한 수비에도 이점을 만든다. 뿐만 아니라 대륙붕과 섬에는 육지에는 없거나 희박한 천연자원이 대량으로 매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망가니즈 단괴, 가스 하이드레이트 등, 해저에 매장된 자원이 가져다 주는 이득은 막대하다. 이런 가치가 큰 섬과 대륙붕을 방위하기 위해서, 그리고 나아가 적으로부터 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강력한 해군력이 필요하다.

1.1. 명칭 논란

한국어로는 단순히 해전이라 칭하는 전투들이, 생각외로 영미권에서는 해전이라 칭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단 해전의 영문 번역은 Naval battle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문제는 그냥 단순히 바다 위에서 벌어지면 해전이라 칭하는 한국과 다르게 영미권의 naval battle은 분류 과정이 복잡하다는 것이다.

먼저 Naval battle이 성립하려면 교전 과정에서 반드시 "함선 대 함선" 교전이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함선 대 항공기", 혹은 "함선 대 미사일" 식으로 교전에 참여한 양측에 함선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naval battle이라는 용어가 쓰이지 않는다. 따라서 일본 해군이 함선은 일체 투입하지 않고 항공기만 투입해 영국 해군을 공격한 말레이 해전의 경우는 한국에서는 해전이라 불리지만 영미권에서는 Sinking of Prince of Wales and Repulse 라고 불리며 실제로 영문 위키백과 문서명도 그 쪽으로 되어 있다. 비슷하게,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 해군의 구축함 셰필드가 아르헨티나 해군 항공대에게 공격받고 격침당한 사건은 한국 기준에서는 해전이라 부를 수 있지만 영미권에는 그냥 Sinking of HMS Shefield 라고만 부른다.

이 외에도 함대함 교전은 벌어졌는데 양측 모두 교전에 참여하지 않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공격했다면 역시 naval battle이라 불리지 않는다. 가령, 잠수함 A가 탐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축함 B를 공격해 격침시켰다면 이건 naval battle이 아니지만, 잠수함 A가 공격 이전에 탐지되었고 구축함 B가 폭뢰를 사용하여 A를 공격하였으나 끝내 A가 어뢰로 B를 격침시켰다면 이건 naval battle의 요건을 충족한다. 유명한 사례는 역시 포클랜드 전쟁에서 있었는데, 영국 해군의 잠수함 HMS 컨커러가 어뢰로 아르헨티나 해군의 순양함 헤네랄 벨그라노를 격침시킨 것은 영미권에서 naval battle이라 부르지 않는다. 헤네랄 벨그라도를 컨커러를 탐지하지 못했고 컨커러에 대해 아무런 반격이나 공격 행위를 수행하지 못하고 격침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천안함 피격 사건도 당시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을 탐지하거나 잠수정에 대한 반격 행위를 수행하지 못했던 관계로 해전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두 차례의 연평해전대청해전이 모두 해전의 기준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것과는 대조적.

이 점은 현대에 들어와서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데, 더 이상 함대함 교전은 잘 벌어지지 않고 대신 미사일과 항공기, 드론 등이 주축이 되는 현대 해전에서 이 기준을 그대로 적용시키면 전투는 전투대로 벌어졌는데 해전이라 칭할 수 있는 전투는 하나도 없는 황당한 경우가 생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례로, 위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된 포클랜드 전쟁은 아르헨티나 해군 함선과 영국 해군 함선이 한 번도 교전하지 않았기에 엄밀한 기준에 부합하는 naval battle은 한 번도 벌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함선은 여러 척 가라앉은 괴상한 전쟁이 되었다.

2. 전투 양식

그 역사가 오래된 만큼 해전의 전투 방식은 시간을 두고 서서히 변화해 왔다.

그리스부터 로마까지 벌어진 고대 해전의 경우에는 원거리 전투가 근본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2] 대부분이 근접하여 갑판전을 벌이는 형태가 주류를 이루었고, 이에 맞춰 발전한 것은 충각 전술이다. 지중해를 예로 든다면 이당시 운용하던 함선들의 대부분은 다량의 노를 가지고 흘수가 얕고 길이가 긴 갤리선 계열이었고 바람의 영향보다는 속도나 조향을 비교적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상대편 함선에 올라타기전 충각을 이용한 충격으로 적 함선에 피해를 입히는 것만으로도 상대 함선에 큰 피해를 줄수 있고 있었고 충격시 요동으로 탑승 전투원을 줄이는 부수효과도 얻을수 있었다. 대표적인 해전은 살라미스 해전이 있다. [3]

로마 서부 붕괴 이후의 중세의 경우에는 로마 제국의 그리스의 불 등 특기할만한 무기체계는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이전의 전투방식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화약이 전해지고 함포 탑재가 가능해지면서 해전 역시 변화하기 시작한다. 함포의 사용이 서서히 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확실하게 가른 것은 레판토 해전이다. 오스만 제국과 기독교 연합함대가 붙은 해전으로, 이때 서양에서 처음으로 대량의 함포가 사용되어 전투의 승패를 결정짓게 된다. 다만 특기할 점은 이때에도 여전히 갤리선으로 대표되는 충각 전술과 백병전위주의 함선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갤리어스로 대표되는 과도적인 포함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갤리선에 일부 함포를 올린형태에 지나지 않았기때문에 포문수나 명중율 화력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일예로 기독함대의 승리는 상대편 기함에 쳐들어가서 육박전끝에 승리를 거둠으로서 최종적으로 결정지어졌다. 하지만 기독교연합함대가 최종적으로 해당 해전을 승리하였고, 여러 요인 중의 하나가 함포를 이용해서 함선에 피해를 가하고 갑판에 있던 수병들을 쓸어버리면서 전체적으로 전세를 유리하게 이끈점이 크게 주목받게 된다.

대항해시대의 해전은 이전과는 많이 다른 해전 양상을 보인다. 먼저 주력함선이 갤리선에서 범선으로 이동하면서 순간속도와 조함을 바탕으로 하는 충각전술은 대규모해전에서는 그 자취를 감추게 된다.[4] 또 이와 맞물려 측면에 배치된 대량의 화포가 전투의 중심이 되면서 이전까지는 육전과 거의 같이 전면을 서로 바라보는 횡대진형이 주류였으나 이제는 종대진형으로 서로 나란히 측면을 바라보며 서서 화력을 극대화 하여 전투를 벌이는 형식이 나타난다. 이러한 대량의 화포를 이용한 전열전투가 발전하였고 이를 위한 전열함이라는 유래없는 중무장한 전투함까지 등장하면서 전투방식를 고착화시키는 결과로 나타난다. 이렇게 대량의 화포와 대규모 화력이 동원되는 상황이었지만 상대편 전함으로 건너가서 근접전으로 상대함선을 제압하는 형식의 전투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이 당시의 화포는 원거리 전투에서 함선에 큰 피해를 입힐정도로 파괴력이 강하지도 않았고 명중율 역시 형편 없었기때문에 화력효과를 높이기는 위해서는 서로 접근을 해야 했고 이때 상대편의 갑판을 점거할수 있다면 화력을 급감시키고 함선을 탈취까지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전투방식중 하나였다. 단 1급 전열함이 다수 동원된 대규모 해전에서는 순수 화력만으로 배를 박살내는 상황[5]이 나오기는 하였다. 대표적인 해전은 트라팔가 해전이며 범선 시대의 해전 묘사를 제대로 묘사한 소설로는 오브리-머투린 시리즈혼블로워가 있다.

웹툰 플린트 락 머스킷 나폴레옹의 바다에서 이런 식의 해전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 #

철갑선이 출현하고 범선이 쇠퇴하는 근대 전투에서는 더이상 해병이 다른 배로 건너가서 전투를 벌이는 해전은 벌어지지 않았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근대적인 함선체계가 확립되고 순수 함포와 전술로 전투의 승패가 갈리는 시대가 열린다. 이후 쓰시마 해전의 교훈에 힘입어 드레드노트로 대표되는 전함의 출현으로 거함거포주의의 시대가 열린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해전은 1차 대전 중 벌어진 유틀란트 해전으로, 전함이 양측 도합 무려 44척이나 투입되었다.[6]

그리고 불과 수십년만에 전함의 시대는 가고 항공모함항공기가 해전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된다. 2차 대전 중 태평양 전선은 가장 활발한 해전이 벌어졌던 지역으로 미드웨이 해전 이후의 전개는 해전의 중심을 전함에서 항공기로 바꾸어놓았다. 함포는 맞추기만 한다면 적함을 확실하게 타격할수 있는 수단이었지만, 현대 탄도학과 정밀한 조준 장치를 적용하더라도 근본적으로 해상에 떠다니는 목표물을 맞추는 것 자체는 여전히 매우 높은 숙련도를 요구하는 행위였다. 이 문제는 특히 거함거포 주의로 등장한 대구경 함포에서 심각하게 발생하였는데 기나긴 사정거리를 활용하려면 지구의 자전까지 예상하여 착탄 지점을 계산하는, 기하학 수준의 수학 영역이 되어버리고, 확실하게 맞출수 있는 거리까지 접근하면 함포보다 무서운 어뢰가 큰 위협으로 다가왔기에 거대한 전함을 운용하는 메리트가 급속도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여 항공모함에서 줄줄이 발진시킨 함재기는 전함과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저렴한 반면, 상공에서 함포를 쏟아붓는거나 다름없는 폭격과 그 무서운 어뢰를 확실한 명중률이 보장하는 거리에서 쏴제낄수 있었다. 때문에 함재기와 항공모함의 등장으로 거함거포주의는 빠르게 몰락하였다. 그래도 각국의 고유 전함들은 존재자체만으로 상징적으로나, 규모적으로나 큰 쓸모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으며[7], 2차 대전을 기점으로 전함과 항공모함 등의 화력 주축을 규모와 경제적으로 타협이 이뤄진 구축함, 순양함 등으로 호위하는 편제가 완성되었다.

2차 대전이 끝난후 더욱 진보한 무장을 갖춘 제트 함재기와 정밀 유도 미사일이 등장하면서 현대 해전은 그러한 화력 모듈을 갖추는 동시에 자체적인 방어 수단을 확보한 공방 일체형의 첨단 함선들이 주류가 되었다. 그런 신예 화력수단은 공통적으로 큰 공간을 요구하지 않았기에 함체는 자연스레 피탄면적을 줄이기 위해 작아지기 시작했고, 함포 역시 자기보호 수단으로 용도가 축소되어 20cm가 넘어가는 함포는 현대전에서 보기 힘들어졌다. 이들 역시 공통적으로 유효사거리 내에서 적함을 확실하게 파괴하기 위해 정밀한 조준 능력과 속사 능력을 중점으로 진화하였기에 소규모 국지전 양상에서는 자기보호수단이라고 마냥 무시하기 힘든 존재감을 뽐내었다.

동시에, 레이더에 의존하는 원거리 타격수단의 특성상 이를 회피하기 위해 스텔스 처리나 여러 전파방해 장비가 등장했으며, 해상전 역시 현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전자전의 양상을 띄기 시작하였다.

후술할 강대국간의 대규모 해상 충돌이 없던 점 때문에 해전은 대게 소국간 분쟁지역에서 경비정 등이 벌이는 작은 규모의 국지전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수병들은 갑판 위 적병을 사살하기 위해 무기를 들고 다시 바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은 꽤나 큰 아이러니한 점이다. 이와 같은 소규모 국지전 묘사는 연평해전에서 잘 묘사되어 있다.

유럽의 경우 각국이 절대왕정 시기를 거쳐 국가의 전쟁수행 체계가 정비되어 간 16세기 이후 해전의 수가 크게 늘어나며, 특히 해상 항로의 보호, 유지, 확대 즉 제해권이 국가의 세력 팽창과 경제 발달에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되면서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이 조직적인 해군을 육성하고 경합하였다. 그리고 이 경합에서 최후의 승자가 된 영국은 19세기 중국의 전근대적인 함대를 가루로 만들면서 소위 '팍스 브리타니카' 시대를 열었으나,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친 끝에 크게 약화되었고 이후 미국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미국은 늘 세계 최강의 해군국 지위를 유지하여 왔으며, 지금도 이는 변함 없다.

한편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에는 세계적 수준의 해군력을 가진 나라들끼리의 충돌은 지양되고 있어 대전 종결 이후 약 70여 년 동안 특기할 만한 대규모 해전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중간에 스틱스 쇼크도 있었고, 포클랜드 전쟁에서 원자력 잠수함에 의한 최초의 실전 격침사례[8]엑조세 쇼크[9] 같은 대사건이 나오기도 했지만, 대규모 원정 함대가 동원된 본격적인 해전은 2차대전 이래 포클랜드 전쟁이 유일했다. 특히 포클랜드 해전의 경우, 함대함 교전은 한 번도 벌어지지 않은 반면 그 동안 함선을 보조하는 역할로만 여겨졌던 항공기, 미사일, 잠수함 등이 적극적으로 투입되어 세계의 이목을 끌었고 현재도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편 드론의 발달하면서 드론이 해전에 투입되는 경우도 생겨났다. 대표적으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무인 자폭 드론을 활용해 러시아 해군을 상대로 공격을 가하고 있고, 이에 맞서 러시아는 헬기와 경비함들을 투입하여 드론을 방어하는 양상의 해전이 보이고 있다. 다만, 드론의 경우에는 기본적인 교전 원리 자체는 어뢰정과 어뢰를 합친 것에 가깝기에 항공기나 어뢰, 미사일처럼 해전의 패러다임을 아예 뒤바꿀 정도는 아니라고 평가받는다.

중국 같은 경우 장강이라는 내륙에 배가 돌아다닐 정도로 커다란 강이 흐르는 국가들은 수전(水戰)이라고 하며 수전에서 싸우는 군대를 해군이 아닌 수군이라고 불렀다. 대표적으로 적벽대전은 강에서 싸운 수전이며, 그 외에도 여러 수전들의 경우 장강 일대에서 싸운 경우가 많다.

3. 해전 목록

4. 관련 문서

5. 관련 항목

5.1. 해전을 다루는 관련 비디오 게임

해전을 다루는 게임은 의외로 꾸준히 많이 나오는 편이나, 현실적인 해상전을 게임으로 구현하기가 어려운 점이 많은지, 해상전을 주로 다루는 비디오게임들은 보통 아케이드적 요소를 많이 강화해 접근성을 높이거나 아니면 아예 진지한 워게임 스타일로 하드코어 팬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비슷한 이유로 배경도 주로 냉전기 미사일이 해전의 주력 무장으로 자리잡기 이전이나 아예 항공기가 해전의 주요 요소로 등장하기 이전 시대를 그리는 경향이 많았으나, 최근 개발중인 여러 작품에서 항공모함 위주 전투나 미사일 시대의 전투를 구현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5.1.1. 아케이드적 전술전투를 다룬 게임

5.1.2. 시뮬레이터

5.1.3. 전략 시뮬레이션

5.1.4. 워게임

5.1.5. 기타 해상전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는 게임


[1] 다만 이는 해전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자세한 이유는 후술.[2] 캐터펄트나 화살등을 이용해서 불가능 하지는 않았는데, 정확도나 위력, 그리고 함선 배치등의 문제로 인해서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붙기전에 한 번 쏴주는 정도. 그냥 땅에 서서 가만 있는 과녁을 맞추는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심하게 바람이 부는 바다 위를 요동치며 움직이는 선박 위에서 마찬가지로 움직이고 있는 상대 선박 위의 사람을 맞추는건 오죽하였겠는가. 명중률이 확보될 거리에서 쏴제낀다 한들 적함의 충각이 더 빨랐다. 아예 적함에 불을 지를 용도로 불화살을 운용하기도 했으나, 인식과 달리 나무라는게 의외로 불을 갔다댄다고 마냥 타는 소재가 아니며, 이를 염두에 두어 방염처리를 할 경우 큰 피해를 기대하기 힘들었기에 역시 주류가 되진 못했다. 때문에 위력을 보장하기 힘든 궁병보다 백병전 준비를 갖춘 수병들을 갑판에 집결시켜 놓는 것이 대부분이었다.[3] 살라미스 해전보다 약 700년 전의 람세스 3세바다 민족과 해전으로 싸울 때 도선전으로 결판을 냈다고 한다.[4] 충각 자체는 부상한 적 잠수함이나 소형 함선들을 상대로 2차 세계대전무렵까지도 남아있었다.[5] 침수와 함께 돛과 키의 손상[6] 참고로 저건 순양전함이나 전노급 전함은 제외한건데도 규모가 저 정도다. 유틀란트 해전에서 저들과 별개로 순양전함은 14척, 전노급 전함은 6척이 동원되었다.[7] 기본적으로 크고 웅장한 전함은 아군에겐 사기를, 적군에겐 공포를 선사했다. 통상 400mm가 넘어가는 초월적인 구경의 포탄은 직접적으로 함체에 떨어지지 않더라도 상상을 초월한 요동과 물보라를 일으키며 수병들을 위축시켰고, 착탄이라도 하는 순간 선체가 반으로 쪼게지기 일쑤였다. 또한 육군이 운용하는 야포와는 체급이 달라 지상 지원 임무에서도 매우 요긴하게 쓰였다.[8] HMS 컨커러의 중순양함 헤네랄 벨그라노 격침[9] 쉬페르 에탕다르의 구축함 HMS 셰필드 격침[10] 미국과 일본 양 측 함대 총 배수량 약 250만 톤.[11] 영국과 독일 양 측의 드레드노트급 전함만 44척이 동원되었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