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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13 13:11:38

수사반장 1958/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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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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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수사반장 1958 등장인물 박영한.jpg파일:수사반장 1958 등장인물 김상순.jpg파일:수사반장 1958 등장인물 조경환.jpg파일:수사반장 1958 등장인물 서호정.jpg파일:수사반장 1958 등장인물 이혜주.jpg
그 외 등장인물 및 특별출연은 등장인물 문서 참고.
[ 회차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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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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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지피지기 백전백승
]]
서은광
(BTOB)

2024. 04. 19.
[[수사반장 1958/음악#s-2.2|
Part 2

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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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월
2024. 0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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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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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여전히 그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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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휘
2024. mm. dd.
그 외 삽입곡 및 오리지널 스코어는 음악 문서 참고.
[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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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 음악 수사반장

1. 개요2. 시대 재현
2.1. 작중 배경2.2. 주요 배경 및 소품2.3. 회차별
2.3.1. 1회2.3.2. 2회2.3.3. 3회2.3.4. 4회2.3.5. 5회2.3.6. 6회2.3.7. 7회2.3.8. 8회2.3.9. 9회2.3.10. 10회
2.4. 오류
2.4.1. 1회2.4.2. 2회2.4.3. 3회2.4.4. 4회2.4.5. 5회2.4.6. 6회2.4.7. 7회2.4.8. 8회2.4.9. 9회2.4.10. 10회
2.5. 타임라인
2.5.1. 1회2.5.2. 2회2.5.3. 3회2.5.4. 4회2.5.5. 5회2.5.6. 6회2.5.7. 7회2.5.8. 8회2.5.9. 9회2.5.10. 10회
3. 레퍼런스 및 오마주
3.1. 1회3.2. 2회3.3. 3회3.4. 4회3.5. 5회3.6. 6회3.7. 7회3.8. 8회3.9. 9회3.10. 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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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MBC 금토 드라마수사반장 1958〉의 탐구에 대한 문서이다.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2. 시대 재현

2.1. 작중 배경

2.2. 주요 배경 및 소품

파일:수사반장빽차1.jpg
파일:수사반장빽차2.jpg파일:수사반장빽차3.jpg
파일:수사반장빽차4.jpg파일:수사반장빽차5.jpg
파일:수사반장시발택시1.jpg파일:수사반장시발택시2.jpg
파일:수사반장서장시발차.jpg파일:수사반장시발차1.jpg
파일:수사반장미군제무시1.jpg파일:수사반장미군제무시2.jpg
파일:수사반장미군짚.jpg
파일:수사반장 1958 캐릭터 포스터 서호정.jpg
파일:수사반장개런드1.jpg파일:수사반장칼빈2.jpg
파일:수사반장M364.jpg

2.3. 회차별

2.3.1. 1회

2.3.2. 2회

2.3.3. 3회

2.3.4. 4회

2.3.5. 5회

2.3.6. 6회

2.3.7. 7회

2.3.8. 8회

2.3.9. 9회

2.3.10. 10회

2.4. 오류

2.4.1. 1회

2.4.2. 2회

2.4.3. 3회

2.4.4. 4회

2.4.5. 5회

2.4.6. 6회

2.4.7. 7회

2.4.8. 8회

2.4.9. 9회

2.4.10. 10회

2.5. 타임라인

종남서 실내에 일력이 비치되어 있고, 그 외 박영한의 하숙방 등 다른 곳에도 달력이 걸려 있어 일부 사건의 날짜를 알 수 있다.

2.5.1. 1회

2.5.2. 2회

2.5.3. 3회

2.5.4. 4회

2.5.5. 5회

2.5.6. 6회

2.5.7. 7회

2.5.8. 8회

2.5.9. 9회

2.5.10. 10회

*

*

3. 레퍼런스 및 오마주

3.1. 1회

3.2. 2회

3.3. 3회

3.4. 4회

3.5. 5회

3.6. 6회

3.7. 7회

3.8. 8회

3.9. 9회

3.10. 10회


[1] 작중 배경인 1958년 당시 서울에는 종로구, 중구, 용산구, 성동구, 동대문구, 성북구, 서대문구, 마포구, 영등포구 총 9개 구가 있었으며, 이후 1973년에 와서야 도봉구관악구가 신설되었다.[2] 1회에 특별출연한 최불암의 고향이 인천광역시이다.[3] 이는 해병대 등 다른 자원병력도 마찬가지였는데, 전쟁의 영향으로 1950년대에는 이런 전투경험 있는 여성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유명한 황해도 구월산 유격대에도 여성 중대장이 있었다.[4] 대한민국의 경우, "홍길동씨, 귀하를(선생님을/당신을) 현 시각(○○년 O월 O일 xx시 xx분) 부로 ○○ 혐의로 (긴급/현행범)체포합니다. 변호사를(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으며, 변명의 기회가 있고,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으며, 체포적부심을 법원에 신청할 수 있습니다."라고 미란다의 법칙 의무고지한다.[5]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 개정으로 2021년 1월부터 진술거부권도 미란다 원칙 의무고지에 추가되어 현재의 미란다의 원칙 의무고지가 되었다.[6] #[7] 관련 법인 형사소송법 제200조3과 4는 1995년 12월 29일 본조신설된 상태였다. 이후 2007년 6월 1일 개정했다.[8] 2015년 이후 현재는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로 명칭이 바뀌었다.[9] 실제 인물인 김영옥을 모티프로 한 것으로 보인다.[10] 미국인 소위가 하극상을 저질렀다. 실제로, 1세대 이민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백인우월주의가 강해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보면 외형적으로 자신들과 다르고, 서로의 문화도 달라 이유없이 인종차별을 했다고 한다. 현재도 인종차별은 진행 중이다.[11]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으나, 미국 정부는 당시 한국 형사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대전협정 및 마이어 협정에 보장된 특권을 유지하고자 이마저도 회피했다. 이후 1967년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이 발효가 시작된다. 이전까지는 주한미군 범죄는 오로지 미군 당국이 단독으로 사법권을 행사했다. 그러나, 초반 협정 조항이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점점 협정 조항을 개정하여 현재, 대한민국에서 범죄를 저지를 경우, 대한민국의 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12]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관이다. 현 단성골드주얼리센터로 명칭이 바뀌었다. 단성사를 기념하기 위해 2019년 10월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단성사영화역사관이 개관했다.#[13] 단성사는 1907년 6월 종로3가에 ‘연예단성사’로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영화관이 아닌 극장으로 열었는데, 그러다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는 최초로 한국인에 의해 국내 자본으로 만들어진 '의리적 구토'를 상영했다. 이후 매년 10월 27일을 ‘영화의 날’로 제정하였다. 이후 시대가 바뀌면서 멀티플렉스의 체인을 이기지 못하고 폐업했지만, 단성사를 기념하기 위해 2019년 10월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단성사영화역사관이 개관했다.#[14] 당시 실제 사건 모티프로 리버티뉴스 283호에 의하면 (1958년 12월) 상업은행 부산지점 은행강도 김종인 서울 국제극장서 체포해 당시 담당형사였던 최무근, 정기연 형사를 1계급 특진한 사건을 따온 것으로 보여 시대적으로 맞는 고증이다.#[15] 최근에도 은행강도 사건이 일어났다. 2023년 8월 18일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신협에 강도가 침입해 현금 3900만 원을 들고 달아난 사건(일명 대전 신협 강도 사건이다.#)으로, 범인은 사건이 일어난 뒤 바로 베트남으로 향해 잡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기사에서 피의자는 현지 교민의 신고로 베트남 현지에서 체포되어 한 달 만에 국내 송환이 이루어져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구형받았지만, 이를 불복해 항소했다.#[16] 일명 대구 총포사 살인 사건이다.#[17] 일명 대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이다. 이후 2002년 9월 20일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금암2파출소 소속 백선기 경사가 괴한에게 피살된 사건, 일명 백선기 경사 피살 사건으로 당시 전북 지역 주요 장기 미제 사건이 일어났는데 동일 인물인 피의자 이정학(1971년 생, 대구)이 한 것으로 드러났다.#[18]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의하면 검거 이후 이 둘은 대구광역시의 한 고등학교 동창 사이로 밝혀졌다.[19] 사실, 도로교통법도 19621월 17일에 제정됨과 동시에 시행되었다.#[20] 도로교통법도 계속해서 개정되어 2018년 9월부터 시행됐다.# 이행하지 않을시, 범칙금 3만원이 부과된다. 동승자가 13세 미만 어린이인 경우 과태료가 6만 원으로(2배) 늘어난다. 안전벨트 장착 의무화 최초 도입은 1978년에 시행이 되었다. 이때 의무화된 것은 ‘안전벨트’라는 안전장치의 장착이지 착용에 대한 의무화는 아니었다. 최근에는 착용까지 의무화 하는 추세로 이어진다. 국내에서는 1986년에 자동차전용도로에서 안전벨트를 착용할 것을 의무화 도입이 되었다. 또한 2012년에는 시외버스, 택시 승객에도 안전벨트 착용을 의무화 도입#이 되었다.[21] 6회에서 이 상관의 정체가 당시 대위였던 백도석으로 밝혀진다.[22] 1956년, 영화 '단종애사'라는 작품으로 데뷔했다. 배우로서 왕성히 활동하다 신성일과 결혼하여 배우 활동을 접었다. 이후 90년대 아침마당에서 부부문제 상담코너 패널로 활동을 시작, 제2의 전성기를 맞으며 현재는 각종 프로그램 패널로, 심지어 모 결혼정보회사의 컨설턴트로도 활동 중이다.[23] 1957년에 영화 '황혼열차'라는 작품으로 데뷔했다. 데뷔 초, 뛰어난 미모로 화제가 되었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같은 시기에 일했던 동료들은 2진으로 물러나게 되었지만, 정작 자신은 1990년대까지 왕성하게 활동했고, 지금도 배우로서 활동하고 있다. 배우로 왕성히 활동하면서도 영화 제작사인 '지미 필름'을 차려 영화 제작사 대표까지 역임했다.[24] 1회에서 동대문파 방울뱀이 종남시장 상인들에게 자릿세 내라고 하는 장면에서 채소가게 딸 금옥을 보게 되는데, 얼굴이 김지미 닮았다고 하는 장면과 3회 은행강도에게 인질로 붙잡힌 혜주가 영한의 정체를 의심하고 복면을 벗기려는 찰나, 버림받은 미친 여자 연기를 보이면서 강도들을 당황케 하고, 사건이 일다락 된 후에 영한이 버림받은 미친 여자 연기를 보여 준 혜주에게 정신 돌아온 거냐는 말에 연기였다고 하는 혜주의 말에 연기가 엄앵란도 울고 갈 신들린 연기력이라고 하는 장면으로 당시 왕성하게 활동한 여배우들을 언급했다.[25] 1953년부터 1962년까지 유통시킨 통화. 통화에관한특별조치령에 의거하여 통용되다가, 긴급통화조치법이 제정, 시행됨에 따라 통용이 금지되었다.#[26] 1955년 3월 25일 내무부 장관 소속하에 독립된 위치에서 감정 및 연구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으로 발족했다. 현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사용하고 있다.(2010년부터 사용하고 있다.) 이후 1958년 7월, 부검감정서 감정 인쇄를 시작했다. 설립 초창기에는 집도의사가 초안을 작성하면 다른 직원들이 정서하거나 활자식 공타로 감정서를 작성했다. 1958년부터는 활자인쇄가 가능해져 부검집도의가 직접 기입했으면 발송할 때는 보조요원들이 정서를 했다.#[27] 교주인 전용해가 스스로를 '신의 아들'이라 자칭하며 불로장생과 부귀영화를 미끼로 신도들에게 과도한 헌금을 요구하는 등 사기행각을 벌이며, 예쁜 딸을 가진 부모들을 골라서 백백교에 입교시킨 뒤 그 딸을 전용해의 시녀로 바치게 하여 성폭행했는데 전용해는 이렇게 끌어들인 젊은 여자들을 항상 첩으로 거느리다가 싫증나면 죽이는 것을 능사로 삼았다. 심지어 여신도가 임신했을 경우 비밀이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여신도와 태아까지 전부 살해했다. 이에 더불어 배교자, 교단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도 함께 살해했다. 나중에는 이것이 더 심해져서 신자가 너무 많이 몰려서 먹여 살리기 힘들다고 죽이기도 하였고 경찰에게 들킬까봐 죽이기도 했다. 또한 내부 다툼으로 부교주를 살해하고 매장까지 했다. 당시 수사의 한계로 백백교에 대해서 완전히 조사하지 못한 부분이 있지만 광복 이전과 이후를 포함해도 전무후무한 살인 종교단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28] 이 부분은 대한민국의 어두운 면으로 자리잡았다.[29] 기독교계의 사이비종교이다.[30] 영상 제공은 KTV 국민방송이다.[31] 이 시기부터 군사독재정권(1961.05.06. - 1987.6.29.)이 열렸다는 말을 표현한다. 이후 박정희는 1979년 10월 26일(일명 10.26 사건으로 불린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현 국정원장)에 의해 암살당한다.[32] 한주대 모티프를 서울대로 한 것으로 보인다.#[33] S&W M36으로 혼동할 수 있는데 M36은 5연발이고 총열과 총몸 상부가 일직선이며 손잡이에 있는 제조사 마크도 더 작다. 게다가 1950년에 개발되어 1958년에는 아직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다.[34] 실제로 19585월 2일 민의원 선거가 치뤄졌다.#[35] 만년필보다 앞서 나온 펜이다.[36] 포스터에 명시된 인물 중 윤보선이 들어있는데, 그는 종로구 갑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37] 1966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확립된 원칙이다.[38] 시대가 시대인 만큼, 전쟁이 끝난 지 5년밖에 되지 않은 시기였고, 이후 1961년 12월 13일 '총포화약류단속법'이라는 제명으로 공포되어, 1962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39] 실제로, 1958년 4월에 방한했다.#[40] 해당 장면은 이승만 정권에 부역할 경찰들을 모집하는걸 풍자한 장면이라 봐야한다.[41] 실제로 성심당 창립 연도가 1956년이다.[42] 6.25 전쟁 직후에 개업하여 1997년 폐업한 태극당(서울에 존재하는 동명의 기업과는 다르다.)이라는 추측도 있다.[43]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관이다. 현재는 단성골드주얼리센터로 명칭이 바뀌었다. 단성사를 기념하기 위해 2019년 10월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단성사영화역사관이 개관했다.#[44] 도로교통법19621월 17일에 제정됨과 동시에 시행되었다.# 그리고 안전벨트 장착 의무화 최초 도입은 1978년에 시행이 되었다.[45] 상순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생긴 해프닝이다.[46] 이때 전쟁으로 인한 고아들이 급진적인 증가로 인해 정부에서 1954년 전쟁고아 대책의 하나로 해외 입양 사업을 시작하였다. 해외 입양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아동양호회(1954년 설립, 현재의 대한사회복지회), 가톨릭구제회(1955년), 안식교성육양자회(1955년), 홀트양자회(1956년, 현재의 홀트아동복지회).[47] 현재의 성조기는 하와이가 주로 승격되고 난 뒤인 1960년 7월 4일부터 사용되었다.[48] 여담으로 '통행금지'는 실질적으로 1981년 12월 31일까지 시행되었는데, 이는 그 다음날부터 신정 연휴였기 때문이었다.[49] 1955년 3월 25일 내무부 장관 소속하에 독립된 위치에서 감정 및 연구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으로 발족했다. 지금의 이름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010년부터 사용하고 있다.[50] 우리 연구소는 정부조직법 제4조에 의거해 1955년 3월25일 대통령령 제1021호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직제’를 제정·공포함으로써 내무부 장관 소속하에 독립된 위치에서 감정 및 연구업무를 수행 하는 기관으로 발족됐다.#[51] 일제강점기1920년대부터 1930년대 사이에 경기도 가평군에서 창궐한 사이비 종교이다.[52] 실제로, 백인엽은 군납비리를 저지렀다. 1962년 1월 29일 "6군단장 군사 독직 사건"으로 5.16 군사정변을 일으킨 일명 ‘혁명정부’에 의해 구속돼 무기징역과 함께 거금 7,247만 1,723환 추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전쟁 이전 여수·순천 10.19 사건에 관련된 인물이기도 하다.#[53] 영상 출처는 KTV 국민방송이다.[54] 일명 5.16 군사정변[55] 박정희를 위시한 5.16 군사정변 세력이 대한민국 제2공화국제5대 국회를 해산하고 세운 통치기구이다. 1961년 설립해 1963년 해산했다.[56] 경기도북부경찰서[57] 조경환과 서호정이 수사1반으로 들어온 날[58] 지방 시골의 경우 1980년대 말, 오지 산간마을의 경우는 더 심하면 90년대까지도 이랬다.[59] 그날 밤 김상순이 강아지를 데리고 소원을 비는 장면에서 보름달이 나오는데, 이 날은 음력으로는 7월 14일로 실제 보름달에 가까운 달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60] 부패한 종남서 간부들이 미군과 결탁해 밀수사건을 일으킨 날이다. 벽장에서 자다 깬 김상순의 시점에서 본 서류 정리 중인 박영한 뒤에 '4291年 9月 2日'이라 적힌 칠판이 보이는 장면이 있다. '화요일인데 목욕탕에 간다니 거짓말이다'라는 식의 내용이 나오는데 실제 이 날은 화요일이었다.[61] 정확한 날짜가 나오는 것은 아니나, 수사1반의 구성이 완성된 뒤이고 수원 은행강도 사건보다는 전이므로 가능한 날짜는 이 둘 뿐이다.[62] 9월 16일 또는 17일.[63] 신고가 접수된 때가 10월 27일이었다. 이후 나오는 장면에서 사건 현장인 떡집에는 계속 일력이 26일로 되어 있는데 이는 가족과도 같은 성칠을 잃은 할머니의 경황없음을 나타내는 장치로 보인다.[64] 착공식 배경의 현수막에 적혀 있다.[65] 6일자 신문에 나온 내용을 읽는 장면이 있으므로 검거된 때는 5일로 보아야 한다.[66] 영한이 프로포즈를 하고 난 뒤, 눈이 내리는 것으로 보아 최소 12월에 결혼한 것으로 보인다.[67] 후반부에 대한뉴스 영상으로 등장한다.[68] 대사로만 짤막하게 언급된다.[69] 마지막에 자막으로 언급된다. 이와 관련해 5월 8일 화요일을 묘사한 장면이 있었으나 다음날 재방송에서는 잘렸다.[70] '흑흑흑 의의의 백백백 음과 양으로 감응하시어 만사형통이 하시옵소서'[71] 약한 사람들의 편에 서란 마음에서 어머니가 지은 이름이다.[72] 이 작품에서는 주요 인물인 빈센조 까사노와 자신의 딸 홍차영을 조력하는 변호사로 나왔으나, 바벨그룹 소속 바벨 제약의 신약 RDU-90 개발에 얽힌 소송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던 중 바벨그룹의 사주로 추정되는 교통사고로 결국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