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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베사라비아·북부코비나 점령 Soviet Occupation of Bessarabia and Northern Bukovina Присоединение Бессарабии и Северной Буковины к СССР | |
제2차 세계 대전의 일부 | |
기간 | |
1940년 6월 28일 ~ 7월 3일 | |
장소 | |
루마니아 왕국 내 베사라비아, 부코비나 공국, 헤르차 | |
교전국 | |
[[틀:깃발| | ]][[틀:깃발| ]][[소련| ]][[틀:깃발| | ]][[틀:깃발| ]][[루마니아 왕국| ]]
지원국 | |
[[나치 독일| ]][[틀:국기| ]][[틀:국기| ]] | |
지휘관 | |
[[틀:깃발| [[틀:깃발| ]][[틀:깃발| ]][[게오르기 주코프| ]] | ]][[틀:깃발| ]][[이오시프 스탈린| ]][[틀:깃발| [[틀:깃발| ]][[틀:깃발| ]][[게오르게 터터레스쿠| ]] | ]][[틀:깃발| ]][[카롤 2세| ]]
전력 | |
32개 보병사단 2개 기계화보병사단 6개 기갑사단 11개 기갑여단 3개 공정여단 34개 포병여단 | 55~60개 보병사단 1개 전차대대 |
피해 | |
29명 사망 69명 부상 | 40,000명 포로 |
결과 | |
소련의 승리 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설립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북부코비나, 북베사라비아, 부자크, 헤르차 지역 합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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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40년 6월 26일 소련이 루마니아 왕국에 무력 사용을 할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보낸 후 6월 29일부터 7월 3일까지 벌어진 전투.2. 배경
1939년 8월 2일, 소련과 나치 독일은 독소 불가침조약에 서명하면서 비밀 협약에 동유럽에 경계선을 그으면서 베사라비아 지역이 소련의 관심지역이라는 것을 확인했다.9월 1일, 독일이 폴란드 침공을 진행하고 9월 17일에는 소련도 폴란드를 침공했고 10월 6일에 폴란드 제2공화국은 멸망한다. 당시 폴란드의 큰 지원자였던 루마니아 왕국의 아르만드 컬리네스쿠 총리가 9월 21일에 부쿠레슈티에서 나치의 후원을 받던 철위대의 일원에 의해 암살당했다.[1]
1940년 6월 2일, 독일은 루마니아 정부에 영토 보존을 위해서 소련과 협상을 진행할 것을 권고했다. 한편, 6월 14일부터 6월 17일까지 소련은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에 최후통첩을 보냈고 발트 3국 점령을 강행했다. 게다가 루마니아의 지원국인 프랑스가 프랑스 침공이 시작된 지 약 한 달만에 나치 독일에게 굴복했다. 이로 인해 루마니아를 지원할 수 있는 국가가 크게 줄어들었다.
3. 상세
6월 26일, 오후 10시 소련의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인민위원장이 루마니아의 외교관 게오르게 다비데스쿠에게 최후통첩을 보내 베사라비아와 부코비나 북부 지역[2]에서 군인들과 시민들의 대피를 지시했다. 해당 최후통첩에는 베사라비아 지역이 우크라이나인들이 대부분 살고 있다며 주장하며 소련에 합병될 것을 요구했다.[3]6월 27일, 카롤 2세 루마니아 국왕은 루마니아군에 동원령을 집행하고 게오르게 터터레스쿠 총리 등 관료들과 회의를 갖는다. 몰로토프 소련 인민위원장은 루마니아에 요구를 거절할 시 소련군을 진격시키겠다고 선언했고 24시간 내에 답변을 요구했다.
6월 28일, 독일과 이탈리아 왕국의 조언에 따라 소련의 요구를 들어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와 동시에 소련은 협상 대상이었던 베사라비아와 부코비나 지역도 아닌 헤르차 지방[4]을 합병하면서 이를 군사적 실수라고 전했다.
이날 밤, 의회에서 열린 베사라비아와 북부코비나 지방에서 병력을 철수하는 건에 대한 투표에서 6명의 반대표와 1명의 기권표를 제외하고 모두 찬성을 한다.
루마니아가 소련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소련은 곧바로 소련군을 루마니아에 진격시켰고 한달간의 군사 점령이 있은 후, 8월 2일 몰도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설립되면서 합병 지역을 통치하도록 했고 여러 지방을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할양되었다.
[1] 해당 암살 사건은 나치 독일의 승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2] 오늘날의 체르니우치주 일대. 합스부르크 제국의 부코비나 공국 설립에서 시작하는 부코비나는 본래 루마니아 왕국의 전신 중 하나였던 몰다비아 공국의 영토였으나 합스부르크 제국에게 빼앗긴 후 낙후된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으로부터 많은 우크라이나인이 넘어가 1910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인구조사에서는 우크라이나인의 숫자가 루마니아인을 넘어섰다. 다만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부코비나가 루마니아 왕국에 병합된 이후에는 루마니아화가 진행되어 유대인, 루마니아인, 독일인 순으로 인구가 많았다.[3] 1930년대 루마니아 왕국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베사라비아 인구의 대부분은 루마니아인이었고 그나마 소련이 우크라이나인 거주 구역을 들먹일만한 곳은 북부의 호틴이나 남쪽 부자크 정도였다. 러시아 제국 영토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오시프 스탈린이 생떼 쓴 것에 가깝다.[4] 참고로 헤르차 지방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크라이나에서 루마니아인 다수 거주 구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