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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프랑스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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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프랑스 침공
시기
1940년 6월 10일 ~ 6월 25일
장소
남프랑스 알프스 산맥
  교전국1 교전국2
교전국 프랑스 제3공화국 이탈리아 왕국
나치 독일
지휘관 르네 앙리 올리 움베르토 디 사보이아
결과
프랑스 제3공화국,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 강화 협상
기타
프랑스 항복 후 알프스 지역 일부분 영토 획득

1. 개요2. 원인3. 전개4. 결과5. 기타

[clearfix]

1. 개요

1940년 6월 10일부터 25일까지 벌어진 이탈리아 왕국의 프랑스 침공.

2. 원인

1940년, 이탈리아제1차 세계 대전처럼 폴란드 침공때까지 중립을 유지하면서 연합국-추축국 간에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군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는데, 일단 이탈리아 경제는 형편없어 보급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원자재가 부족하여 대부분 영국, 미국에 의존해야 했었다. 대부분의 장군들은 1942년 후까지 전쟁을 벌이면 안된다고 호소했다. 그리고 당시 연합국의 눈치로 인해 독일을 도울 수 없었고, 알프스 지역에도 별 조치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독일의 성공적인 아르덴 돌파로 연합군이 고립되어 35만명이 철수하고 연합군이 사실상 붕괴되자 무솔리니는 프랑스가 항복하면 그 땅은 나치 독일 것이 되거나 괴뢰정부 것이 될 것이고 지금이 호기라 생각하며 준비도 안 된채 프랑스에 선전포고하고 알프스 지역을 침공하려고 했다. 이를 들은 수많은 참모들은 경악하여 절대로 전쟁을 벌여서는 안된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무솔리니는 자만심에 빠져 6월 10일 정식으로 연합국에 선전포고를 하여 전쟁에 참여하였고 이탈리아군 졸전기록을 작성하게 되는 참사를 낸다.

3. 전개

이탈리아군은 갑작스런 선전포고로 인해 급하게 알프스로 보내져서 혼란 그 자체였다. 또한 6월이지만 당시 알프스 지역은 만년설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탈리아군은 허둥지둥 움직이느라 방한용 장비도 제대로 챙기지 못해 첫날부터 동상자가 발생하게 되었다.

4~5일간 이탈리아군이 알프스 지역을 행진하는 동안 프랑스는 공격에 대비해 총 85,000명의 프랑스군, 산악 사단 1사단, 보병사단 4사단, 세네갈 사단까지 포함하여 알프스 지역의 방어에 나섰다. 이들은 '알프스 선'이라는 방어선을 구축하여 미리 이탈리아군의 공격을 철저히 대비하고 있었다. 한편 이탈리아의 장군 피에트로 바돌리오는 급하게 이루어지는 대규모 병력 이동, 장비, 보급 문제로 대대적인 공격은 25일에 감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무솔리니의 욕심은 끝도 없었고 무조건 23일에 공격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23일까지 준비하고 있었으나... 18일날에 무솔리니는 히틀러와 협상을 하면서 이탈리아가 공격하기 전까지는 프랑스와 강화 협상을 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지만 히틀러는 당연히 거절했다. 그리고 로마로 돌아오면서 프랑스 정부와 독일간에 항복 협상이 시작했다는 뉴스를 듣자 무솔리니는 또다시 23일에서 21일 새벽으로 공격하라 명령했고 결국 21일 새벽으로 앞 당겨졌다.

파일:이탈리아의 프랑스 침공.png
21일 새벽, 이탈리아군은 세갈래로 나뉘어 북쪽을 제4군이, 중부와 남부를 제1군이 맡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프랑스군은 철저히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고 결국 전투 첫날부터 이탈리아군은 강력한 저항을 맞게 된다. 장비들은 추운 날씨로 인해 대부분 버려지면서 순수 보병이 진격해야 했고, 무엇보다 이탈리아군 측은 해군과 공군이 육군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아 진격 상황은 더 막막하기만 했다. 게다가 알프스 선 요새들의 맹공격과 곳곳에 숨어있던 저격수 때문에 전진이 더 이상 불가능했다. 결국 북부와 중부는 프랑스군 저항에 붕괴되어 8km만 진격하고 그쳤다. 남부 지역만이 해안가에 따라 침투하여 방어선을 돌파하고 멘톤지역을 점령한 게 끝이다.

4. 결과

결국 무솔리니의 똥고집+욕심과 자만심으로 이탈리아군은 별 이득도 못보고 피해는 고스란히 다 입게 되었고 24일, 프랑스 항복으로 이탈리아는 소수 알프스 지역 영토만을 획득했다. 이탈리아군이 전멸한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군의 승리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독일이 프랑스를 멸망 직전으로 몰아넣고 빠르게 항복시켜서 망정이지 프랑스 정부의 항복이 며칠만 늦었더라도 이탈리아 본토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던 프랑스군에게 본진을 털리고 멸망 직전의 나라에게 덤볐다가 역으로 본토가 공격당한 졸전의 달인이라는 타이틀을 달 뻔했다.

'인물로 읽는 세계사' 무솔리니 편에 따르면, 이탈리아군은 600명 이상의 병력을 잃었고, 고작 13개 마을만 함락했다. 반면 프랑스군의 인명 손실은 37명이었다고 한다.

5.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