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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02:22:53

제방

방죽에서 넘어옴

파일:친환경 바이오폴리머 제방 보강 공법.jpg
일반적인 제방(강둑)의 모습.[1]

堤防

1. 개요2. 제방의 종류3. 대한민국의 제방4. 붕괴 사고5. 기타6. 언어별 명칭

1. 개요

치수간척, 농업용수 공급 등의 목적을 위해 ·바다·호수·저수지 가에 둘러 쌓는 시설물. 둑 혹은 방죽이라고도 한다.

인류가 농업을 시작한 이래 농업용수를 공급할 수 있는 강과 호수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홍수가 날 경우 매우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으므로 물이 넘쳐 거주지로 흘러드는 것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게 되었다. 또 가뭄 때에도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할 수 있도록 물을 모아서 저수지를 만드는 역할을 하였다. 많은 양의 흙과 돌을 동원해 튼튼하게 쌓아야 하므로 대규모의 인력과 자원이 동원되었다. 대한민국에 대표적으로 남아있는 고대 저수지로 벽골제가 있다.

2. 제방의 종류

사실 인간이 쌓아야만 제방이 생기는 것은 아니고 평야를 흐르는 강에는 자연제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강이 흐르면서 강변에는 토사가 퇴적되는데, 이것 때문에 강의 양쪽은 자연스럽게 고도가 약간 높아진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약간 높은 정도라서 너무 많은 양의 비가 내리면 쉽게 넘쳐버리기 일쑤였으므로 안정적인 치수를 위해 여기에 둑을 추가로 건설하는 것이다.

어디에 쌓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기도 한다. 의 하구를 막아 건설하면 하굿둑[2], 바다를 막으면 방조제 같은 식. 심지어 도 넓은 의미의 둑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댐과 방조제의 경우 수력 발전조력 발전에 각각 공헌하기도 해 제방은 치수 외에 간척과 전력발전의 목적도 수행하고 있다.
파일:Northwest_at_Jordanelle_Dam_from_Jordanelle_State_Park_Overlook,_Apr_16.jpg
이와 같은 사력식 도 넓은 의미의 제방으로 볼 수 있다.


각종 제방 및 방파제 시설물들의 효과를 실험한 것.

현대에 들어와 제방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제방 자체의 홍수 억제 능력이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잘못 지은 제방들이 오히려 홍수를 더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과거에는 제방을 강에 밀착해서 짓고 그 과정에서 강을 직선화하는데, 강의 유속이 빨라지고 면적이 좁아지면서 홍수시 강의 수위가 더욱 빠르게 오르게 되며, 병목현상으로 상류지역에 더 큰 홍수를 일으키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현대에는 범람원 구역을 추가로 두고 제방을 후방에 건설하여, 강 주변에는 자연적인 둔치나 백사장이 생기게 하여 부분적으로나마 강이 좀더 곡류를 흐르면서 흐르게 하는 방식으로 건축방식이 발전하고 있다. 특히 유럽과 동아시아 지역에서 이런 전환이 빠르게 일어났는데, 일본의 경우는 20세기 초중반 콘크리트가 최고의 건축 재료로 여겨지던 시절에 전국의 사회인프라(SOC)를 재정비했는지라[3] 온 천지의 강과 하천을 콘크리트로 처발라버려서, 세월이 지나 21세기에는 풍수해 등 그 부작용을 아직까지도 톡톡히 겪고 있는 중이다. 이 때문에 하천 복원에 또 다시 많은 돈을 들여 자연으로 되돌리고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아직도 과거 방식으로 제방을 짓는 곳이 많고 게다가 토목 재원이 국가 레벨이 아니라 주 단위, 심지어 각 시/카운티 같은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자체적으로 건설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에 돈이 없어 제방을 정비하지 못한 지역은 두 배 세 배로 홍수 피해를 입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연방정부 단위로 추진된 테네시 강 종합개발사업(TVA) 등이 오히려 특이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물론 토목/수리/수문학 등의 기술 레벨은 미국이 세계 최고다. 단지 모든 것이 자본주의 논리로 돌아가는 동네인지라 지방정부에 투입되는 공공 재원이 없을 뿐이다. 돈 많은 LA 같은 곳의 용수로는 콘크리트를 덕지덕지 발라 아예 시스템을 짜놨다. 터미네이터 2 전반부의 유명한 추격 씬 배경이 바로 이 콘크리트 방수로다. 여담으로, 여기에서 파생된 익스트림 스포츠가 바로 하프파이프다.

중국의 경우, 도강언처럼 고대에 만들어진 수리 시설이 오늘날까지 크게 농업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경우가 있다. 반면 황하의 경우 제방을 다스리는 것이 곧 국가 경영의 모든 것일 정도로 고대 중국에서는 중요한 일이었지만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전통적으로 중국의 제방은 사람이 발로 밟아 다진 판축식 공법에 잘 말린 고량이라는 식물 줄기를 섞어[4] 쌓아올렸다. 이 방법은 효과적이긴 하지만 수십 년만에 한 번 오는 대규모 홍수를 버텨내지는 못해서 중국은 황하, 장강, 회하 등 전통적인 강의 범람에 엄청난 피해를 입고 심지어 강줄기 방향이 바뀌어버리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황하 문서에 더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으니 참조. 현대 중국 공산당 정부가 선전매체를 동원해서 대규모 토목공사를 자랑하는 이유가 다 있는 셈. 공산당 정권[5] 시기 이전에는 '치수'가 잘못되면 진짜 나라 망할 위기를 겪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는 아스완댐(아스완 하이 댐)으로 나일강의 치수에 성공한 이집트도 마찬가지라 나세르 정권도 홍보에 써먹었고, 아래 후술하듯 대한민국의 경우도 박정희, 전두환 시기 한강종합개발사업으로 많이 홍보에 써먹었다.

3. 대한민국의 제방

한강변의 제방이 일제 정비가 완료된 것은 1980년대의 일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강변도로가 건설되기 전 한강에는 넓은 백사장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강수욕을 즐겼다.[6] 한강의 모양 또한 매우 구불구불하고 유로도 불규칙했다. 특히 제방 또한 부실했기 때문에 폭우만 쏟아졌다 하면 서울시민들이 적지 않은 홍수 피해를 입었다. 특히 1966년 서울 물난리 당시에는 한강의 범람이 청계천 등 서울 도심까지 밀고올라와서, 당시 박정희 정부와 김현옥 서울시장에게 경종을 울렸다.

강변에 도로를 짓고 콘크리트 제방을 세운 것은 1980년대의 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은 한강 유역만 따질 경우에는 거의 100년 가까이 된 사업이다. 우선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서울 근교의 제방들은 근대적 형상을 갖추었지만[7] 서울을 벗어난 곳은 여전히 전근대적 자연 제방 형상이 많았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는 잠실도의 형상을 바꾸어버렸고 신석기 시대 서울 암사동 유적이 몇천 년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1960년대 서울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면 옛날 용산 이촌동 앞 넓은 백사장과 뚝섬 유원지의 자연하천 앞에서 물놀이를 하는 행락객들을 볼 수 있다. 부천 상동 지역, 현재의 일산신도시 외곽인 장항동 등지에는 한강물이 조석간만의 영향으로[8] 잘 빠지지 않아 거대한 습지를 이루고 있었고 이 중 일부는 현재도 남아있을 정도다.

한반도는 여름에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기후 특성상 여름에 하천의 수량이 급격히 불어나고 때에 따라서는 주변 범람원으로 물이 넘치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하천 범람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강변에 대대적인 제방 축조 사업을 펼쳤다. 특히 해방 이후 산업화와 그로 인한 국토 개발 과정에서 강변 곳곳에 제방 등 치수시설이 많이 건설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특별시 한강에 있는 여의도 여의동로-여의서로, 강 북쪽의 강변북로-강 남쪽의 올림픽대로, 강변 둔치인 한강공원이다. 이 도로와 공원은 그 자리 자체제방의 역할을 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서울을 대표하는 부도심 중 하나가 된 여의도는 원래 여름마다 홍수가 잦았던 섬이었다. 여의도에 기지를 뒀던 대한민국 공군이 매년 여름마다 짐을 싸서 김포국제공항여의도공항을 들락날락했던 것도 홍수에 취약한 여의도의 지형적 사정 때문이었다. 결국 1970년대에 밤섬을 폭파하고 여기서 생긴 돌과 모래로 여의도 둘레에 제방을 쌓아 오늘날의 여의도 형태를 만들었다. 매년 봄에 열리는 '여의도 윤중로 벚꽃축제'의 '윤중'이라는 표현이 일본식 제방을 뜻하는 '와주(わじゅう)'다. 쉽게 말하면 여의도 제방 위에 만들어진 길이라는 뜻이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 중반 영등포 북부에 고속도로(현 노들길)를 놓으면서 한강 제방 정비 사업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상술한 1966년 서울 물난리의 근본적 대책을 세위기 위해 서울시 당국[9]이 한강 유역을 여기저기 손대기 시작했고 육군 공병단, 서울대학교 등 학계, 국내외 건설사들이 각기 따로따로 사업에 참여, 많은 부분에서 연구가 진척된다. 유명한 밤섬 폭파와 상술한 여의도 윤중제 건설을 비롯한 여의도 개발 등이 다 이 때 진행된 사업이다. 특히 노들길을 놓으면서 공유수면 매립을 했더니 수천 정보에 이르는 땅이 공짜로 생겨난 것을 깨닫게 된 서울시는 숫제 눈이 돌아갔는데,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이 벌인 온갖 토목공사 때문에 공무원 월급 주기도 간당간당하던 서울시 재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 김현옥 후임 양택식 서울시장은 여의도 땅 팔아서 지하철 적자를 메꿨다고 한다.

1981년 서울에 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서울의 상징인 한강을 깨끗하게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한강종합개발사업을 진행한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한강 저수로와 주변 범람원에 대한 정비가 이뤄졌고 올림픽대로가 건설되면서 현재 한강의 모습이 갖추어졌다. 특히 1984년, 1990년 두 번의 큰 홍수와 이에 따른 제방 붕괴는 산업화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한 서울이란 대도시를 크게 할퀴었으며[10] 이 때 피해를 입은 망원동 등에 대규모 빗물펌프장이 들어서고 한강 제방은 22.5미터 높이까지 크게 쌓아올렸다.

그러나 현재의 행주산성 서쪽으로는 일제강점기 제방이 그대로였고, 결국 1990년 대홍수 때 현재 자유로JC 일대에 있던 제방이 무너진다. 이로 인해 현재의 일산신도시가 들어서 있는 구 고양군 일대가 엄청난 침수 피해를 입었다. 일설에는 1984년의 망원동 범람을 막기 위해 인구가 적던 일산신도시 예정지 쪽을 노리고 일부러 터뜨렸다고도 한다. 이 당시 범람은 현재의 주엽역 인근까지 차올랐다고 한다. 주엽동의 한자가 '注葉'인 것을 보면 과거에도 큰물이 들었을 시 이 부근까지는 차올랐을 거란 추측이 가능한데, 실제로 1914년 제작한 지형도를 국토지리정보원 온라인에서 찾아보면 습지와 농경지가 반반이고 자연하천이 곡류를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이 제방을 원래대로 복구하면서 수도권 서북지역의 서울 이동 편의 제공과 향후 남북통일 대비용 도로 조성 차원에서 제방 폭을 수십 미터로 늘리고 그 위에 간선도로를 건설하기로 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길이 오늘의 자유로다.[11]

이 사업 때문에 백사장은 거의 사라졌으며 서울 유역의 하중도여의도를 제외하면 완전히 사라지거나[12] 밤섬처럼 무인도로 남게 되었다. 물론 이 사업 때문에 한강변이 온통 콘크리트로 채워져서 흉측하게 변해버렸다는 비판도 존재하지만 어쨌든 강변의 크고 아름다운 제방이 없다면 신사동, 여의도, 이촌동, 잠실 같은 지역이 홍수 때마다 물바다로 변해버릴지도 모른다. 특히 21세기 이후 핫플레이스가 된 성수동합정동, 망원동은 전통적인 홍수 취약 지역이다.

타 지역의 경우, 특히 황해에 인접한 평야지역의 경우 조수간만의 차가 워낙 커서 바닷물이 종종 강으로 역류해서 염해를 유발했으므로 금강, 영산강, 삽교천, 안성천 같은 곳에 하굿둑방조제를 건설하게 되었고 간척으로 국토 면적을 늘리기 위해 온갖 곳에 크고 작은 제방(방조제)이 건설되었다. 실제로 70년대 이전의 한국 지도를 보면 현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해안선이 구불구불했는데 현재의 모습은 그나마 많이 직선화된 편이다. 경기도는 말할 것도 없으며 충청남도당진시, 서산시, 태안군 연안이 눈에 띄게 직선화되었다. 특히 현 새만금 간척지의 첫 사례가 되었던 전북 부안군의 계화도 간척지는 여의도의 6배에 달하는 농토를 얻으면서 당시 정부 사업의 성공사례로 교과서에 빠짐없이 실렸다. 한국이 보릿고개를 타파하고 완전히 식량의 자급자족을 달성한 1977년부터 불과 10년도 안 되어 성취한 사례였기 때문이다. 이 당시 정주영의 유조선을 가라앉혀 유속이 빠른 바닷물을 막고 제방을 완성하는 일명 '유조선 공법'도 덩달하 유명한 사례로 남아있다.

다만 방조제의 경우 과거 건설 당시에는 미처 상정하지 못했던 점으로 시화호의 사례에서 보듯 방조제 건설은 환경오염이라는 문제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국의 특징 중 하나로 치수를 위해 국토면적에 비해 유난히 큰 댐들이 건설된다던가... 한국의 댐은 다목적댐 위주로 지어져 국가의 사이즈에 비해 댐의 크기가 매우 큰 편이다.

4. 붕괴 사고

제방이 붕괴되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 폭우 시에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 제방이 터져버리면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열리는데, 상술한 1990년 9월 집중호우 사태나 황하 문서에 서술된 내용처럼 제방이 터지면 쓰나미의 경우와 거의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그저 강물이냐 바닷물이냐 차이만 있을 뿐 인프라가 광범위하게 파괴된다는 점에서 큰 재앙이다.

이를 이용해 전쟁에서는 둑을 터뜨리는 수공이 하나의 전략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최근의 예로는 1937년 중일전쟁 당시 정저우가 함락당하자, 당시 임시 수도였던 우한을 점령당할 것을 우려한 국민군이 일본군의 침공을 막기 위해 황하를 터뜨린 사례가 있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시에도 돈바스 지역의 저지를 위해 강을 터뜨렸다.

2015년에는 일본 도치기현이바라키현에서 키누가와 강의 제방이 터져서 2층집이 통째로 떠내려가는 등 동일본 대지진 때의 쓰나미를 방불케 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처럼 무너질 경우 심각한 피해를 초래함은 물론 복구도 곤란한 것이 제방이기 때문에 지을 때 매우 튼튼하게 지어야 하며, 제방 붕괴 피해를 막기 위한 토목·수리학적 연구도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문서 첫머리에 서술되어 있듯 제방의 붕괴는 흔히 만화 등에서 묘사되듯 둑이 뻥 하고 터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나 네덜란드의 유명한 동화 "둑을 지킨 소년"[13] 때문에 더 그런 인식이 강한데, 실제로는 구멍이 뚫려 터지는 것보다 제방 위를 물이 넘치면서 월류가 일어나 V자로 제방을 급격히 깎아내며 위에서부터 와르르 무너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문서 상단 사진의 검은색 코팅도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공법 중 하나다. 옛날에는 커다란 호박돌을 굵은 철사로 묶은 돌무더기를 일렬로 쌓아 홍수에 대응했고, 이후 소재공법이 발달한 후에는 아예 철근 콘크리트로 높게 가벽을 세우거나 혹은 제방 규모 자체를 증설해버리거나 한다. 전자는 낙동강 유역의 지류하천에서 흔히 볼 수 있고(특히 경상남도), 후자는 서울 지역의 한강 제방이 그러하다.

5. 기타

파일:안동 하천실험센터.jpg
여담으로 경상북도 안동시 낙동강변에는 이처럼 인공 제방 시설을 축조하여 하천 홍수를 연구하는 시설(하천실험센터)이 있다. 사진에서 직류, 지그재그 등 여러 하천의 모양에 따른 홍수 측정도를 시험할 수 있는데, 현재는 위성 사진만 보고도 북한 지역 청천강 수계의 홍수 정도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수준으로 홍수 관련 고도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과거 1981년 당시에는 홍릉에 있었던 국립 연구소에 한강종합개발사업 모형을 지어놓고 연구하기도 했다.#

상술하였듯 제방과 치수(治水)는 국가의 존망을 건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제방을 연구하는 기관이 많다. 미국의 SwRI, 일본의 JICE, 중국의 IWHR, 네덜란드의 Deltares 등이 유명하다.

6. 언어별 명칭

【언어별 명칭】
<colbgcolor=#CCC> 한국어 둑, 제방, 방죽
한자어 堤防, 防―[14]
영어 Levee(美), Embankment, Dike, Dyke(해안가에 있는)
중국어 堤坝(dībà)[15]

[1] 가운데 검은색 코팅은 친환경 바이오폴리머 소재로 표면을 입힌 것이다. 홍수 시 제방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옆으로 터지기보다는 월류(越流) 발생 시 제방 위쪽부터 무너져내리면서 깎여나가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수자원하천연구본부 하천실험센터에서 개발한 신 공법이다.[2] 이 경우 바닷물이 강물로 역류해서 농지에 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아준다. 대표적으로 금강낙동강의 하구둑이 있다.[3] 일본 총리 다나카 가쿠에이가 "열도 개조(列島改造)"라고 부를 정도였다.[4] 현대의 철근 콘크리트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 물론 현대적인 철근 콘크리트에 비해서는 굉장히 부실하다.[5] 중국 현지에서는 1949년 이후를 구 중국 체제와 구분하여 '신중국'으로 칭한다.[6] 순우리말로는 '미역(멱)을 감는다'라고 표현하는데, 표준어로는 멱을 감는다가 맞고 미역은 서울 사투리다.[7] 후술할 1990년 대홍수 시 제방 붕괴가 이 때 쌓은 것이다.[8] 과거에는 마포나루까지 조석 간만의 영향이 미쳤었다.[9] 사업주체는 서울특별시였지만 사실상 대통령 관심사업이었다. 당장 청와대부터 서울에 소재하고 있었는지라...[10] 당시 신문에서 태풍 등이 내습했을 시 심심찮게 헤드라인에 쓰던 표현으로, 일본 신문을 따라 한 것이다. 현재는 성차별적이라고 해서 잘 사용하지 않는다.[11] 현재는 77번 국도로 지정되어 있으나, 통일이 될 경우에는 강변북로와 함께 고속도로로 승격되어 경부고속도로와 북측의 개성평양간 고속도로를 잇는 역할을 하게 된다.[12] 난지도, 잠실도, 뚝섬 등.[13] 제방에 구멍이 뚫린 걸 본 소년이 자신의 팔뚝을 구멍에 집어넣어 홍수를 막았고 본인은 사망.[14] 방(防)은 한자이지만 죽은 한자가 아니다.[15] 댐과 둑을 총칭하는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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