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에를 기르던 방
과거 합성 모직이나 양모를 얻기 어려웠던 시절에 누에로 실을 얻어 베를 짜기 위해 누에를 사육하던 방을 잠실(蠶室)이라고 불렀다. 조선 시대부터 일제강점기, 그 이후인 1950년대까지도 일부 촌락에서 두루 쓰였다. 가옥을 건설할 때 잠실을 함께 마련하려면 따로 허가를 받아야 하였으며, 건축물 대장에 따로 잠실로 분류되어 기록된다. 현재는 섬유나 모의 공급이 원활하여 거의 사용되지 않는 장소지만, 시골의 일부 가옥에서 잠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서울에 얼음을 보관했던 서빙고와 동빙고가 있듯, 서울에 누에를 사육하던 서잠실과 동잠실과 신잠실이 있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 및 연세대학교 앞에 서잠실[1], 송파구 잠실 지역에 동잠실[2], 서초구 잠원동에 신잠실이 있었다.[3]
아래 단락인 지명 잠실동/잠실도의 유래다.
2. 서울특별시 송파구의 지역
한강의 섬 | |||
백마도 | 선유도 | 밤섬 | 여의도 |
노들섬 | 서래섬인공섬 | 세빛섬인공섬 | 당정섬 |
사라진 섬 | |||
난지도 | 저자도 | 잠실도 | 무동도 |
잠실 蠶室 | Jamsil | |
법정동 경계 | 행정동 경계 |
2.1. 개요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과 신천동을 아우르는 지역으로, 서울의 부도심 중 하나이자, 송파구의 중심지이다. 행정동으로는 잠실본동·잠실2동·잠실3동·잠실4동·잠실6동·잠실7동의 6개 행정동이 있다.잠실동과 신천동은 과거 한강의 하중도였던 잠실도에 속하여 역사를 같이 하였으며, 행정동 잠실동이 행정동 자양동에서 분리된 1973년 7월 1일 이전까지는 송파구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광진구와 역사를 함께하던 곳이다. 자양동에서 분리된 이후에도 잠실동과 신천동은 행정동 잠실동의 관할 구역이었으며, 이후 행정동 잠실동이 여러 개의 행정동으로 분동되면서도 신천동에 속하는 2개의 행정동은 잠실4동과 잠실6동이 되었다. 현재까지도 이 두 개 법정동은 잠실역을 중심으로 하는 같은 생활권에 속한다. 따라서 본 문서에서는 잠실동에 대한 내용과 신천동에 대한 내용을 같이 서술한다.
2.2. 지명 유래
잠실의 이름은 조선 시대에 누에를 치던 #s-1이 이곳에 있었다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운영하던 잠실은 한성부와 그 근교에 세 군데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이곳에 있었고, 다른 두 곳은 지금의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 자리에 있었던 연희궁과 지금의 서초구 잠원동에 있었다. 이 세 곳의 잠실을 각각 구분하기 위하여 연희궁의 잠실은 서잠실(西蠶室), 이곳의 잠실은 동잠실(東蠶室), 잠원동의 잠실은 신잠실(新蠶室)이라 불렸다.[4]이곳에 동잠실이 세워진 것은 조선 성종, 혹은 연산군 때로 추정된다. 누에는 뽕나무 잎을 먹고 자라므로, 이곳에 잠실을 설치하면서 뽕나무를 대대적으로 심었다. 때문에 이곳을 상림(桑林, 뽕나무 숲)이라고도 하였으며, 1861년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에서 한성부와 그 근교 지역을 나타낸 지도인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에서도 이 지역을 상림이라고 표기해 놓았다.
본래 이곳은 지금의 광진구 자양동에 붙어 있던 육지였으나, 1520년(조선 중종 15년)에 한강에 큰 홍수가 발생하며 자양동에서 떨어져 나와 하중도(河中島)가 되었다. 이때부터 잠실도(蠶室島)라고 불렸으며, 잠실도는 홍수가 발생할 때마다 마치 물에 떠 있는 마을처럼 보인다 하여 부리도(浮里島), 또는 물에 떠내려 온 섬 같다 하여 부래도(浮來島)라고도 불렸다.
잠실도는 보통 때에는 하나의 섬이었으나, 한강의 수위가 올라가면 섬 가운데로 작은 물줄기가 가로지르며 두 개의 섬으로 나뉘었는데, 훗날에는 아예 두 개의 섬으로 나뉘었다. 이때 잠실도 본섬과 구분하여 하류 쪽의 작은 섬을 부리도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부리도는 지금의 잠실본동과 잠실7동의 일부에 해당하며, 잠실7동 아시아공원 안에 옛 부리도 주민들이 세운 부리도 기념탑이 있다. 다만 부리도는 원래 광주군 언주면-강남구 삼성동 소속이었다가 잠실 개발 과정에서 잠실동에 편입된 곳이다.
2.3. 지역 특징
잠실동과 신천동은 송파대로를 기준으로 서쪽과 동쪽으로 나뉘지만 예전부터 혼선이 있다. 구 신천역(현 잠실새내역)은 잠실동에 위치했었고, 서울신천초등학교와 신천중학교는 잠실동에 위치하고 있다. 반대로 서울잠실초등학교, 잠실중학교, 잠실고등학교는 모두 신천동에 위치하고 있다.잠실종합운동장(잠실 야구장 포함), 롯데월드, 롯데월드타워 등의 대형 시설이 많아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동네 중 하나라고 봐도 좋다. 아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지명 가운데 하나다. 종합운동장이 있어 야구, 축구 팬들을 비롯하여 아이돌 팬들이나 롯데월드에 소풍(수도권 지역)이나 수학여행(지방 지역) 오는 학생들은 다 들어봤을 지명이다. 시골에 사는 노인들도 1988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곳으로 다들 알고있을 것이다. 송파구에서 나머지 지역의 인지도가 낮은지라 아예 송파구=잠실 로 인식하는 사람도 많다.[5]
송파구가 워낙 인구수가 많은데 잠실도 매머드급 아파트 단지들과 2026년 1월 입주하는 통합 4500세대 규모의 잠실 래미안 아이파크,잠실 르엘 그리고 2031년 입주를 목표로 재건축을 추진 중인 잠실우성123차, 잠실우성4차, 2034년 입주를 목표로 재건축을 추진인 잠실장미, 잠실주공5단지 등의 매머드급 단지로 인해 인구 수가 많고 잠실과 그 아래의 송파구 나머지 지역의 경제적 수준이 꽤 차이가 나서 한때 잠실 본동, 2·3·4·6·7동을 하나로 묶어 잠실구라는 명칭으로 송파구에서 분구시키자는 의견도 있었다. 세무서는 이미 잠실 세무서와 송파 세무서(입구 및 주차장 공유)로 나뉘었다.
2.4. 역사
오늘날에는 한강 이남, 즉 강남에 해당되지만 원래는 한강 이북이었고 행정이나 생활권으로도 송파구가 아닌 광진구와 맥을 같이 하던 지역이었다. 때문에 잠실 지역은 역사적으로 한강 이남의 광주 고을이 아닌, 한강 이북의 양주 고을에 속해 있었다. 구한말까지 현 광진구 및 잠실 지역을 관할하던 면의 이름도 고양주면(古楊州面)이었다.[6] 이후 1914년 일제가 부군면 통폐합으로 행정구역 개편을 할 당시에 고양군에 편입되어 현 광진구 및 성동구 동부 지역, 동대문구 장안동, 중랑구 면목동과 함께 뚝섬면(纛島面; 독도면 / 둑도면 / 뚝도면)으로 편제되었다가, 1949년에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었다.위의 강으로 둘러싸인 곳이 잠실도. |
잠실과 신천은 원래 여의도와 같은 한강 상 하중도로, 현재의 한강 본류에 해당하는 신천강과 원래의 한강 본류(현재의 석촌호수)에 해당되는 송파강으로 둘러싸인 섬이었다.[7] 특히 신천강은 현재 여의도의 샛강보다도 더 수류가 없는 거의 건천에 가까운 물길이었으나, '을축년 대홍수'(1925년 장마철)로 상시 물이 흐르는 강이 되었다. 이때에 암사동 선사유적지가 드러났다.
60년대 당시 잠실섬의 생활상을 알리는 기사에 따르면 모래밭이었던 이곳은 뱃사공 아니면 채소농사로 연명하는 수준 이하의 생활에 심지어 전깃불도 없어서 등잔불을 켜고 살았고 TV, 전화는 물론이고 동사무소와 파출소도 없는 서울의 낙도였다. 홍수가 났는데 전화도 없어서 수장될 뻔하다가 미군의 헬리콥터로 구조된 사연도 있다.
옛날 잠실은 현재의 광진구쪽에 반도 형태로 붙어 있었으나, 조선시대 때 한강에 대홍수가 나서 당시의 본류[8] 이외에 북쪽으로 한 갈래의 작은 물줄기가 더 생겨났다. 그때부터 그 강을 새로 생긴 강, 즉 '신천'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며 잠실은 섬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을축년 대홍수(1925년)로 신천은 강폭이 더욱 넓어지며 지류가 아닌 본류화가 진행되었다.
70년대 잠실지구 공사 이전까지만 해도 잠실도에는 2개의 마을이 있었는데 북쪽은 신천리, 남쪽은 잠실리라 불렸으나 잠실지구 공사때 신천을 본류로 만들어 한강의 폭을 넓히면서 신천리(새내마을)는 수몰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이때 한강의 본류였던 옛 송파강은 좌우를 막아 1971년 4월 15일 육지와 연결 되었고 이후 석촌호수로 조성되었다.
신천리 원주민들은 지금의 잠실새내역(구 신천역) 쪽으로 이주시켰고 잠실새내역 인근의 새마을시장이 바로 신천리 주민들이 이주해서 만든 마을이란 의미에서 새마을을 붙인것이다. 이때문에 당시 구 신천리 주민들이 많이 거주해서 신천역이라고 붙이게 된 것이었다.
수몰된 신천리 마을은 현재의 엘스, 리센츠아파트의 한강변 지역이었다. 신천리는 수몰되었고 대부분의 땅이 송파강 매립용 토사로 쓰여 사실상 역사속으로 사라졌으며 신천동이란 상징적인 이름만 남겨놓았다. 현재의 잠실동과 신천동 지역은 대부분 옛 잠실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며, 법정동 경계도 개발에 따라 조정된 것이기 때문에 원래의 경계와는 달라졌다.
2.5. 교통
서울 지하철 2호선과 서울 지하철 8호선이 환승하는 잠실역과 서울 지하철 2호선 잠실새내역, 서울 지하철 2호선과 서울 지하철 9호선이 환승하는 종합운동장역, 2호선 잠실나루역, 서울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이 이 곳에 위치한다.올림픽대로가 동의 북쪽에 위치하고 송파대로가 동의 동쪽에 위치하여 잠실대교를 통해 강북과 이어지며 남으로는 송파IC를 통해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로 이어지거나 성남시로 이어진다. 올림픽로는 잠실동을 동서로 관통하며 강남구와 강동구로 이어진다. 동부간선도로가 탄천변에 있어 강북과 분당과 이어진다.
버스는 주로 광주, 성남, 하남, 구리, 남양주, 수원, 용인으로 가는 버스가 많다. 잠실역 인근 송파대로 지하에는 터미널형 대중교통 환승 센터인 잠실광역환승센터가 있으며, 잠실역에서 회차하는 경기도 버스 노선 30여개가 이 곳에 정차한다.
2.6. 환경
잠실 전체가 거대한 평지이다. 때문에 탁 트인 시야와 깔끔하게 잘 정돈된 건물이 특징이며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에도 좋다. 이북으로는 한강, 서로는 탄천, 동으로는 올림픽공원, 남으로는 석촌호수가 있고 잠실 전체에 공원이 많아 상당히 쾌적하다.2.7. 정치
제20대 대통령선거 개표 결과 | |||
정당 | 더불어민주당 | 국민의힘 | 격차 |
후보 | 이재명 | 윤석열 | |
득표수 (득표율) | 26,371 (30.46%) | 58,100 (67.10%) | -31,729 (▼36.64) |
잠실본동 | 44.43% | 52.14% | ▼7.71 |
잠실2동 | 29.56% | 68.18% | ▼38.62 |
잠실3동 | 24.56% | 73.17% | ▼48.61 |
잠실4동 | 29.82% | 67.92% | ▼38.10 |
잠실6동 | 27.68% | 70.24% | ▼42.56 |
잠실7동 | 23.09% | 74.88% | ▼51.79 |
부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부촌이다보니 보수적인 지역이다. 이 지역이 있기에 송파구가 강남3구의 멤버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9][10] 잠실하고 오륜동(올림픽선수기자촌)과 헬리오시티, 올림픽훼미리타운을 빼면 송파구는 강동구하고 성향이 크게 다르지 않다.[11]
16대 총선까지는 잠실동과 신천동이 풍납동 등과 함께 송파구 갑 선거구를 구성했다. 정확히는 13대 총선과 14대 총선에서는 송파구가 2개 선거구로 나뉘어, 주변 지역도 송파구 갑 선거구에 포함되었다. 15대 총선에서는 인구 증가로 인해 송파구가 3개 선거구로 나뉘면서 잠실동과 신천동, 풍납동만이 송파구 갑 선거구를 이루었으나, 16대 총선에서는 다시 남북 2개 선거구로 바뀌면서 잠실신천 풍납동 이외의 다른 지역과 함께 송파구 갑 선거구를 이루었다.
17대 총선부터 잠실동은 송파대로 이서지역과 함께 송파구 을 선거구를 이루고, 신천동은 송파구 갑 선거구를 이룬다.
젊은 층이 많이 살며 아파트가 없고 다세대 주택, 빌라 중심으로 이루어진 잠실본동은 잠실 전체 동네 중 보수진영의 득표율이 가장 낮은 곳이다. [12] 아시아선수촌아파트와 우성아파트만 있는 잠실7동의 경우 동네가 형성될 때부터 모인 부유층+노년층의 영향으로 이미 보수진영의 득표율이 서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특히나 잠실7동은 오세훈 무상급식 투표율 서울 전체 1위를 했을 정도이다.# 입주민들 대부분이 중산층 이상인 아파트인 잠실주공5단지가 있던 5동이나 장미아파트 및 주상복합아파트가 있던 6동 역시 마찬가지. 나머지 구 잠실1동, 2동, 3동, 4동의 경우 주공아파트와 시영아파트의 영향으로 보수진영 득표율이 높지 않다가 2008년 재건축 이후 한나라당 성향으로 변해갔다.
다만 이명박 집권 후 치러진 선거부터는 젊은 층의 연이은 이주 등으로 성향이 다시 변하기 시작하여 주요 아파트촌에서도 점점 진보진영의 득표율이 올라가더니 2016년 총선에서 잠실 재건축 5대장 중 파크리오를 제외한 4단지와 대치와 인접한 아시아선수촌아파트까지 포함된 송파구 을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했으며, 그나마 파크리오와 미성, 진주, 장미아파트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가 있는 송파구 갑에서 엎치락뒤치락 하던 끝에 겨우 신승해서 보수 텃밭의 체면을 지킬 수 있었으나 그동안 보수당 강세였던 송파구가 출구조사에선 전패, 결과로는 각각 신승과 패배로 오히려 보수당이 불리한 지역이 되어 버린 사실에 보수당 입장에선 충공깽이였다.[13] 이후 2018년 재보궐선거에서 MBC 간판 아나운서와 대선후보 출신이자 당대표를 앞세워 전력투구한 송파구 을에서 처참한 패배를 기록하며 보수세를 잃은 모습을 보였지만...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종부세 인상과 같은 부동산 정책으로 인해 잠실 지역이 속한 송파구 갑과 송파구 을에서 보수 정당인 미래통합당의 김웅 후보와 배현진 후보가 승리했다. 특히 두 지역구 모두 잠실 지역의 몰표가 당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잠실의 보수세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음을 보여주었다.
2.8. 교육시설
- 서울신천초등학교
- 서울잠실초등학교
- 잠실중학교
- 잠실고등학교
- 서울잠신초등학교
- 잠신중학교
- 잠신고등학교
- 서울잠일초등학교
- 신천중학교
- 잠일고등학교
- 서울버들초등학교
- 영동일고등학교
- 아주중학교
- 정신여자고등학교
- 서울잠전초등학교
- 서울송전초등학교
- 서울아주초등학교
- 정신여자중학교
- 서울잠동초등학교
- 서울잠현초등학교
잠실여자고등학교는 행정구역상 잠실에 위치하지 않으니 주의.
2.9. 기타
80년대 후반, 아직 일대가 한창 개발 중이던 때에는 종합운동장과 야구장에서 야간 경기가 있을 때면 동서울 일대의 잡벌레들이 경기장의 빛을 보고 몰려들었다가 경기가 끝나면 삼성동과 잠실동 일대로 퍼져 특히 여름철에는 헬게이트를 만들곤 했다. 물론 현재는 주변이 모두 개발되며 벌레 서식지가 사라지고 밤에도 환해졌기 때문에 거의 느끼지 못한다.삼성동과 가깝기 때문에 삼성동 거주 사회복무요원 대상자들이 잠실에 있는 근무지를 선택하거나, 잠실에 사는 사회복무요원 대상자들이 삼성동에 있는 근무지를 선택하기도 한다.
무한도전에서는 롯데월드를 '잠실 테마파크'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는 세븐 특집 미션 중 잠실 테마파크 매표소에서 티켓을 받으라는것 때문이었다.[14][15]
삼전도의 굴욕으로 세워진 삼전도비가 잠실에 있다. 롯데월드 건너편.
6.17 부동산 대책에 따라 잠실동에 1년간 토지거래허가제가 시행되기 때문에, 잠실동에서 부동산을 사려면 송파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반면 신천동은 해당되지 않는다.
새마을시장 일대는 지방에서 올라온 롯데월드 캐스트들이 자취를 많이 하는 곳이기도 하다.
2023년 12월 24일 오후 7시 기준 9만 8000~10만 명이 오간 것으로 분석되어 서울 내 혼잡도 3위로 집계됐다. 오후 5시에 10만 5000~11만 명이 몰려 가장 혼잡했다. #
[1] 본래 세조가 이 곳에 연희궁이란 궁궐을 짓고 상왕으로 물러나 그 곳에서 기거하려고 했으나 해충과 독사가 많아 기거할 수 없게 되었고 훗날 연희궁 내에 서잠실을 설치한 것이다. 현재의 연희동 동명은 연희궁에서 따온 것이다[2] 현재 누에사육방의 의미로 그냥 잠실이라고만 부르면 보통 이곳 동잠실을 가리킨다.[3] 서초구 잠원동도 옛 시흥군 신동면 시절에는 잠실리였다가, 1960년대에 서울에 편입되면서 송파구 잠실과 구분하기 위해 잠원동으로 개칭했다.[4] 잠원동 역시 본래는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 잠실리였으나, 1963년에 서울특별시로 편입되면서 당시 성동구 잠실동과 구분하기 위하여 잠원동(蠶院洞)으로 개칭되었다.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된 잠실리 뽕나무는 송파구 잠실동이 아닌 서초구 잠원동에 있다.[5] 여담으로 잠실 외에도 매체와 언론을 통해 많이 언급되는 서울의 지명은 종로, 여의도, 상암, 목동, 청담, 반포, 압구정, 홍대, 성수동 등이 있다. 다들 살면서 어쩔 수 없이 한 번쯤은 듣게 되는 지명. 수험생 한정으론 대치동과 노량진도 유명하다. 수도권으로 범위를 넓힌다면 판교신도시, 송도국제도시, 일산신도시 등이 주로 뽑히고 비수도권까지 가자면 아마 여름철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관광지를 고를 수 있겠다.[6] 양주 관아가 조선 초기 현재의 양주시 쪽으로 이전하기 전, 현재의 광진구 쪽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으로 명명되었다.[7] 섬이 두 개였는데 동북쪽의 큰 섬은 잠실도, 서남쪽의 작은 섬은 부리도라고 불렸다.[8] 현재의 석촌호수 라인.[9] 물론 같은 부유층이 많이 거주하는 아파트인 아시아선수촌아파트와 시그니엘 서울의 영향도 있다.[10] 일명 거마로 불리는 거여동, 마천동은 상기(上記)한 부촌들과 같은 송파구로 묶는 데 괴리감이 생길 정도로 정반대의 지역성향을 보인다. 보수당이 압승을 거뒀던 총선에서도 거여, 마천이 속한 송파구 병은 항상 민주당을 택했다. 이런 정반대의 성향 때문에 강남에 버금가는 잠실을 보유한 송파구는 항상 나름 두 당이 비슷한 성적을 거뒀다.[11] 물론 "거마"지역과 장지동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보수 성향이 높다.[12] 사실 참여정부 이후 이명박 집권 당시에는 잠실본동은 물론 서울 대부분 지역에서 전부 우세였다. 잠실본동도 그 시류에 있던 동네였을 뿐.[13] 다만 송파구 을의 경우, 당시 김무성 대표의 옥새런 파동으로 인해 새누리당은 최종 후보 등록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무소속 후보 2명이 난립하게 되어서 새누리당이 제대로 된 선거를 치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14] 물론 진짜 미션은 롯데월드 자이로드롭을 타고 수학 문제를 풀어 힌트를 얻는 것(...)이었다.[15] 정확한 이유는 에버랜드를 E 동물원으로 부르듯, PPL 우려로 인해 장소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는 한국의 방송 특징 때문이다. 딱 보면 어딘지 다 나오는데 굳이 숨겨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