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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계 아르헨티나인들은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는 독일 출신 후손들을 의미한다.독일계 아르헨티나인은 이탈리아계, 스페인계, 프랑스계 다음으로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약 350만명의 아르헨티나인들이 독일계 혈통을 가지고 있는 추정된다. 이 중 러시아에서 이민 온 볼가 독일인의 후손이 200만명 이상으로 독일계 아르헨티나인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독일과 러시아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서 온 독일계 유대인들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독일계는 주로 아르헨티나 남부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문화
독일계 이민자들을 통해 프로이센 왕국의 교육 시스템이 아르헨티나의 교육 시스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프랑스 문화를 선호하는 편이긴 했으나 19세기 당시 보통 교육 제도는 프로이센이 프랑스보다 훨씬 우월했기 때문에,[1] 아르헨티나에서는 교육 관련 직종에서 프로이센 출신을 우대하던 편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바는 아르헨티나의 의료 체계로도 이어져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병원의 건축도 독일계 건축가가 담당하였을 정도라고 한다.이미 아르헨티나 독립 이전 부에노스아이레스 항구에는 예수회에 소속된 독일인 선교사들이 여러가지 업무에 종사하면서 독일의 문화와 과학기술을 아르헨티나 일대에 전수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당시 예수회 선교사로 파견되는 인물들 중에서는 마테오 리치나 아담 샬 주세페 카스틸리오네 등등 만능박사 수준의 다재다능한 인재들이 많았는데 이 중에는 독일인들도 드물지 않았던 것
독일인들이 아르헨티나 문화에 기여한 바가 적지않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독일계 아르헨티나인들은 일상 사회 생활에서는 거의 다 아르헨티나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상황이다. 독일계 이주민들의 출신 배경이 워낙 다양한 편이라 독일계 아르헨티나인들 사이에서 사용하는 방언이 각기 다른 편인데다가, 결정적으로 2차대전 당시 독일인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아졌고, 결국 상당수의 독일계 이주민들이 독일어를 고수하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아직도 독일계 아르헨티나인 개인 가정 혹은 독일계들이 모여사는 농촌을 중심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3. 이민사
위키피디아 독일계 아르헨티나인 스페인어판 문서#에서는 독일인들의 아르헨티나 이민은 크게 아르헨티나로의 크게 초창기(1870년 이전) 프로이센에서의 대량 이민 및 러시아계 독일인들의 이민(1870년에서 1914년)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 독일인들의 이민(1918 년에서 1933년), 나치정권 당시 유대인 혹은 병역거부자들의 망명(1933년에서 1940년), 1945년 이후 이렇게 다섯 단계로 나눈다.19세기 초반 독립 당시 아르헨티나는 인구는 적었지만 활용 가능한 비옥한 옥토가 널려있었고 또한 당시에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민하는 인구의 사망률이 급감하자 이를 바탕으로 유럽 각지에서 이주민 및 사업가와 용병들이 아르헨티나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독립 이후 아르헨티나는 마푸체 원주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수행하고 1864년부터 1870년에는 삼국동맹전쟁으로 이웃국가 파라과이를 박살냄과 동시에 우루과이 독립 전쟁을 지원하는 등 전쟁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 과정에서 독일인 혹은 헝가리인 출신 장교들이 아르헨티나군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프로이센의 경우 전역한 장교들에 대한 연금이 쥐꼬리만큼 나왔기 때문에 많은 퇴역 군인들이 빈곤 문제에 시달렸고 이들 중 상당수가 아르헨티나로 가서 일했기 때문이다.
3국동맹전쟁이 아르헨티나의 승리로 종결된 이후 1870년부터 아르헨티나는 팜파스에서 밀과 소고기 생산 및 수출을 늘리며 호황에 접어들었는데,[2] 이를 계기로 상당수의 독일인 농민들이 미국 외에도 남미 아르헨티나로 이민하기 시작했다. 이 기간동안 이민 온 사람들 중에서는 프로이센 출신이 많았지만 스위스 출신 독일어 사용자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독일계 러시아인들의 아르헨티나 이민도 많았다. 18세기 러시아 제국에서는 볼가 강 일대의 노가이인, 칼미크인들을 추방하거나 거주 지역을 축소시키고 해당 지역을 개간하기 위해서 병역 면제 및 종교의 자유를 미끼로 독일인 농부들을 초청하였는데, 독일인들이 볼가 강 유역을 옥토로 개간하고 인구가 급증하자 19세기 다시 이들에게 병역을 부과한 것이 이유였다. 이렇게 러시아를 떠난 독일인 농부들 중에서 개신교 신자들은 대개 미국이나 캐나다, 가톨릭 신도들은 대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을 이민 목적지로 선택하였다. 엔트레 리오스 지방의 크레스포, 부에노스 아이레스 근교의 코로넬 수아레스, 차코 지방의 후안 호세 카스테이 인구 상당수는 독일계 러시아인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제1차 세계 대전을 계기로 독일인들의 인기 이민 목적지였던 미국과 캐나다에서 반독감정이 생기고, 이 때문에 일부 독일인들은 북미 대신에 중남미를 이민 목적지로 선택한다. 그러나 당시 이미 브라질에서는 농장주들이 이주노동자들을 흑인 노예를 부리던 습관 그대로 구타와 학대가 만연하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상황이었고 결국 상당수의 독일인들은 아르헨티나를 이민 목적지로 선택하게 되었다. 1차대전 말부터 1932년까지 즉 전간기동안 아르헨티나로 입국하는 이민자 중 2.9~6.4% 가량은 독일계였다. 1905년부터 1933년까지 독일인들을 위한 학교가 59개에서 176개로 증가했다고 한다.
1933년부터는 2차대전 종전 이전까지는 나치 독일의 유대인 박해를 피하거나 혹은 독일인 중에서 징집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아르헨티나로 이민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독일-아르헨티나 관계 문서의 2.1번 항목 참조.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유럽에서 아르헨티나로 이민 오는 인구 중 28%는 독일 여권을 들고 왔다. 당시 이민 온 독일인들은 농민보다는 지식인 계층이 많았고 아르헨티나 내륙 농장지대에서 일하는 대신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정착하여 직업을 찾는 편이었다. 종전 직후에는 나치 전범들이 신분을 위장하고 아르헨티나로 숨는 경우도 있었는데,[3] 이는 아돌프 히틀러가 정체를 위장한 체 아르헨티나에 숨었다는 도시전설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4. 관련 항목
[1]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당시 프로이센 측 군인들은 문맹이 드물었던 반면 프랑스군은 상당수가 문맹이었고 이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당시 프랑스군의 패배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2] 3국동맹전쟁 시대까지는 밀을 해외에서 수입하던 아르헨티나는 1880년대부터는 세계 주요 밀 수출국으로 부상한다.[3] 아돌프 아이히만, 요제프 멩겔레, 아리베르트 하임, 한스 울리히 루델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