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선거 | |
<colcolor=#005ba6,#59b3ff><colbgcolor=#f0f0f0,#191919> 후보 | <colbgcolor=#fff,#1f2023>대권주자 · 경선 (더불어민주당 / 후보 · 국민의힘 / 후보 · 정의당 / 후보) · 후보 교체론 · 최종 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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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타임라인 · 3월 재보궐선거 · 코로나19 확진 선거인의 투표 관리 위법 논란 |
대한민국의 주요선거 |
1. 개요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한 후보들이다.2. 후보자
2.1. 윤석열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윤석열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f2023><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1f2023> ||<:><bgcolor=#E61E2B>윤석열 (尹錫悅)||
<colbgcolor=#e61e2b><colcolor=#ffffff> | |
출생 | 1960년 12월 18일,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
캠프 | 국민캠프 |
슬로건 | 정권교체의 유일한 선택,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 |
현직 |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후보 |
국민과의 약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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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검찰총장이다. 참여정부 인사의 정치자금법 위반, BBK 특검,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명박 대통령 비리, 사법 농단, 조국 사태까지, 굵직한 사건들의 수사를 지휘한 것으로 유명하다. 살아있는 권력을 좌천까지 당하면서 수사하는 강직한 검사라는 평가와 검찰 조직에 충성하여 정치적으로 수사한다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여야 양측 권력 핵심을 수사한 경력 때문에 윤석열에게 호의를 가진 사람과 반감을 가진 사람이 여야 지지자 모두에게 있다. 양쪽 모두에게 지지를 받을 수도 있고 양쪽 모두에게 거부당할 수 있는 입장이다. 조국과 유사하게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과 조국 사태에 대해 선거권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윤석열의 최종적인 입지가 결정될 것이다.
다만, 최근 추미애 법무부장관과의 갈등으로 인해 대중적 인지도가 급격히 상승하며 대권주자로 급부상하기는 하였으나 사실상 정치 경력, 특히 선출제 정무직 공무원 경력이나 정당인으로서 당직 경력이 없다는 점이 중대한 한계가 될 가능성이 있다. 즉 정치적 지명도는 높지만 아직 정치인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말하자면 현재의 윤석열은 '여야 안 가리고 살아있는 권력에게 맞서는' 검찰총장, 문재인 정부의 대항마로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지 정치인 윤석열로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실제 정치권에 들어왔을 때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외부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정치권에 들어왔다가 크게 혼이 나며 대선주자군에서 낙마한 대표적인 예시로는 반기문이 있다. 반기문은 유엔 사무총장이란 경력을 바탕으로 높은 인기를 자랑하며 정치권에 들어왔으나 정작 정치인으로서 대중의 선택을 받는 정치행위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점이 뒤늦게 드러났고, 결국 각종 논란 끝에 스스로 대권 도전을 포기하고 만 것이다. 이처럼 당장은 윤석열이 높은 지지율을 자랑하고 있으나 실제 정치권으로 들어와서 대권 행보를 시작하며 미숙함을 보인 사례가 한 둘이 아니기에 야권 역시 윤석열에게 러브콜을 보내면서도 한 편으로는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1][2]
보수 진영에서 이렇다 할 대권주자 후보가 안 보이자[3] 조국 사태 이후 일부 보수층에서는 윤석열 총장을 대권후보로 지지하는 여론이 생겼다. 하지만, 윤석열도 결국 이명박과 박근혜를 감옥으로 보낸 장본인이기에 친이계, 친박계에서는 윤석열을 보수 후보로 세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었으나,[4] 친박의 대표적 인물인 김재원도 정권교체를 위해 윤석열과도 손잡을 수 있다며 포용적인 자세를 보였다.# 또한 국민의힘 지지자들도 윤석열의 입당에 매우 우호적이므로 보수층에서의 반발의 위험성은 적다.
즉, 윤석열이 대선 도전에 성공하기 위해선 정치에 입문하면서부터 반기문과 고건 등의 실패를 잘 거울삼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지지세력과의 교감에 힘쓰며 부족한 세력을 메꾸는데 노력해야 한다.
만약 정치에 입문한다면 충청 대망론을 타고 충청권이 지역기반이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윤석열 본인은 서울 출생이지만, 부친이 충청남도 논산시 출생이기 때문. 윤석열 대망론 항목도 참고하면 좋다.
3월 4일, 검찰총장직을 사퇴하면서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라고 발언하며 사실상 정치 입문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사퇴 이후 정치 원로들과 만나고, 공부를 하며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정계 진출이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잠행이 길어지며 국민의힘에서 불안한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2021년 6월 29일,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2021년 7월 12일, 무소속 상태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선 예비후보 등록을 하였다. 7월 30일,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했다.#
만약 당선이 된다면 첫 1960년대생 대통령이자 헌정 사상 최초로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대통령이 된다.[5] 그리고 민주화 이후 국회의원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된 최초의 대통령[6]이 된다.
2021년 11월 5일, 제2차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통해 47.85%의 득표율로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2.2. 원희룡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원희룡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f2023><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1f2023> ||<:><bgcolor=#E61E2B>원희룡 (元喜龍)||
<colbgcolor=#e61e2b><colcolor=#ffffff> | |
출생 | 1964년 2월 14일, 제주도 남제주군[7] |
슬로건 | 깨끗한 힘! 원희룡이 바꿉니다 |
캠프 | 원팀캠프 |
현직 | 국민의힘 제4차 전당대회 당대표 후보자 |
17대 대선 | 한나라당 경선 3위 |
국민과의 약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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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43세였던 2007년, 한나라당에서 대선 경선에 참여하여 이명박, 박근혜에 이어 3위를 한 바 있다. 이후 보수진영에서 가장 유력한 인물로 떠오르기도 했던 홍준표를 한때 꺾었던 것이다. 이후 2012년 19대 총선 불출마 이후 한동안 중앙정계에서 멀어졌고, 2014년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된 이후에도 중앙정치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잠룡으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19대 대선 당시에는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했었다. 아마도 대권구도상 문재인을 이길 수 있을 가능성이 없다고 미리 판단해 다음을 기약한 듯하다. 남경필과 함께 대선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애초부터 도지사직을 다 마치고 출마하겠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지방선거 출마 당시에는 고향인 제주도에서 4년간 행정경험을 쌓고 21대 총선에 출마해 국회로 복귀한 뒤 2022년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계획임을 내보였었지만 최근 정무라인을 복원하는 등의 행보로 제주도지사 재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 나왔고 제주도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나 자유한국당이나 다 제주도지사 후보들이 지지부진했기 때문에 원희룡은 그대로 재선에 성공했다. 제주도가 비록 인구 100만도 안 되는 작은 광역단체이긴 하지만 특별자치도로서 행정자율성이 높은 데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기 때문에 도정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낸다면 대권주자로 새롭게 떠오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야권 대권 주자들이 21대 총선에서 치명상을 입으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원희룡 입장에서는 대권 도전에 비교적 좋은 상황이 만들어졌다. 코로나 19의 대처도 안정적으로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수진영의 대권후보들이 전멸하면서 당내 초선들은 부상 없이 멀쩡한 원희룡에게 거는 기대가 커지기도 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8명의 통합당-미래한국당 초선 의원이 오세훈, 황교안, 유승민 등의 후보를 제치고 그를 유력 주자로 뽑았다는 것이다. 다만 "없다"가 12명으로서 대부분의 초선들은 여전히 신중론 상태로 아직 원희룡이 완벽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판단하기는 힘들다.
대선에서의 경쟁력이라면 원조 소장파라는 이미지와 국회의원과 도지사를 역임하며 쌓인 행정능력, 바닥부터 시작해서 정상에 오른 스토리가 있어 잠재력이 뛰어나다는 점이지만 단점이라면 낮은 젊은층 인지도 및 지지도와 대선후보로서 관심을 받기 힘든 제주도라는 지역 기반의 한계가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원희룡 본인도 중앙정치에 매우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각종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지만 지지율은 요지부동인 상황.
2020년 10월 15일, 대선 출마를 직접 시사했고# 2021년 7월 25일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7월 27일에는 국민의힘 경선준비위원회에 예비후보 등록을 하였다.# 이후 8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사퇴를 선언하고 8월 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방문하여 예비후보 등록을 하였다.#[8]
이후 국민의힘 제2차 전당대회에서 4등으로 대선후보로의행보를 마무리했다.
이후 국민의힘 제4차 전당대회에서 당대표후보로 등록했다.
2.3. 유승민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유승민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f2023><bgcolor=#fff,#1f2023> ||<:><bgcolor=#E61E2B>유승민 (劉承旼)||
<colbgcolor=#e61e2b><colcolor=#ffffff> | |
출생 | 1958년 1월 7일, 경상북도 대구시[9] |
캠프 | 희망22 |
슬로건 | 민주당에 강하다 |
현직 | 평당원 |
19대 대선 | 본선 4위 (6.76%, 바른정당) |
국민과의 약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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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친박으로 꼽히던 인물이었으나, 박근혜 당시 후보의 증세없는 복지 발언에 대한 비판으로 인해 비박 성향으로 탈바꿈하였고 개혁보수를 내건 바른미래당에서 활동 하다 손학규와의 갈등으로 탈당 후, 새로운보수당 창당, 이후 미래통합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19대 대선에서 바른정당 후보로 출마해 6.76% 의 득표율로 4위로 낙선했다.
21대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하고 공천이 다 끝날 때까지 칩거. 매년 빠짐없이 참석하던 천안함 추모행사에 참여하여 다시 정치행보를 이어나갔다. 또한 계파를 따지지 않고 후보자의 선거유세를 돕겠다며 미래통합당 후보들을 지원을 하고 있다.# 이후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참패했지만, 이는 유승민의 대권 도전에는 호재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황교안은 이낙연에게 큰 차이로 패배했고, 나경원과 오세훈은 아예 정치 신인들인 이수진과 고민정에게 각각 패하면서 당 내 대권 경쟁자들이 모두 치명상을 입었다.
김종인 비대위 이후, 유승민 중심으로 당이 개편될 수 있으니 유승민 입장에서는 오히려 자신이 중심이 되어 보수재건을 꿈꿀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친유계 인사가 적게나마 수도권에서 생환한데다 유승민에 대해 배신자 이미지가 뿌리박힌 대구경북에서도 원조 친유들이 대거 원내에 재입성했고, 유승민 본인이 계파를 가리지 않고 지원을 요청하는 대로 수도권 유세를 돌았던 덕분에 유승민에게 먼저 손을 뻗은 타 계파 의원중에도 적어도 유승민이란 후보를 나쁘게 보는 후보는 적다.
이렇게 되면 총선에 불출마한 대신에 유승민은 대구에서의 비토 정서를 덜어내고 수도권에서 생환한 적지않은 범친유를 양성한데다 류성걸 등 핵심 친유들도 상당수 살려내 당내 기반을 마련한 성공을 거둔 셈이다. 당내 세력이 동원력, 대세론 등에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걸 고려하면, 21대 총선에서의 약진으로 상대적으로 가장 큰 계파의 수장이 된 유승민은 당장은 몰라도 대선 체제에 본격적으로 돌입할 때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된 장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21년 3월 8일부터 국민의힘 중앙선대위의 요직인 중앙선거대책상임부위원장을 맡게 되며 2021년 재보궐선거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게 되었다. 만약 재보선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그 공이 유승민에게도 배분되어 기세를 몰아 대선행보에 탄력이 붙겠지만 패배할 경우 그 책임 역시 배분되기에 타격이 불가피 할 것이다. 이후 오세훈 후보가 당선되면서 타격을 입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현재 유승민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노년 보수층에서 꽤 강하게 박힌 배신자 이미지를 극복하는 것이며,[10] 한 자리수의 낮은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아무리 당내 세력이 강해도 대선지지율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제 힘을 발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승민의 대선 도전의 성공 여부는 지지율을 일시에 끌어올릴 결정적 모멘텀을 만들어내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2020년 5월 26일, 비공식적으로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7월 12일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 등록을 하였다.# 이후 8월 26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2.4. 홍준표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홍준표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f2023><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1f2023> ||<:><bgcolor=#E61E2B>홍준표 (洪準杓)||
<colbgcolor=#e61e2b><colcolor=#ffffff> | |
출생 | 1954년 12월 5일[11], 경상남도 창녕군 |
캠프 | jp희망캠프 |
슬로건 | G7 선진국 시대를 열겠습니다! |
현직 | 국회의원 (대구 수성구 을[12]) |
17대 대선 | 한나라당 경선 4위 |
19대 대선 | 본선 2위 (24.03%, 자유한국당) |
국민과의 약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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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경상남도지사이자 현 5선 국회의원으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중 가장 많은 직책을 거친 인물이다. 서울특별시에서 4선을 했고, 재선 도지사, 원내대표 1회, 당대표 2회[13]를 거쳐 대선 후보로 출마한 적도 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최종 2위를 했다. 하지만 이후 당 대표가 되어 지휘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심을 읽지 못하고 강경 일변도 노선을 미는 바람에 당을 참패로 이끌며 추락하였다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며 명예를 회복하였다.
이미 한 번 낙선한 대권후보이지만, 김대중이나 김영삼, 문재인처럼 여러 차례의 재도전 끝에 당선될 수도 있다.[14] 혹은 이회창처럼 재도전을 했다가 또 다시 패배를 하거나 또는 정동영처럼 한 번 출마한 이후로 영영 대권 도전을 포기할 수도 있다.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가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를 상대한 후보가 문재인이었기에, 대항마적 이미지를 가져가서 문재인이 당내 경선을 뚫고, 최종적으로 대선 승리를 하였다는 분석도 있다. 문재인 정부 4년차에 접어들면서 많은 사건사고들이 터져나오는데, 만약 편안한 임기 마무리를 하지 못한다면, 문재인의 대항마적 이미지로 홍준표가 유리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2017년 대선 당시 최순실 게이트를 일으킨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의 후보였던 데다 돼지발정제 목격 논란, 막말 논란 등에 휘말렸는데도 최종적으로 2위를 하는 기염을 토한 만큼 국민들 사이에서는 좋든 나쁘든 홍준표의 인지도 자체는 야권 내에서 가장 높은 편에 드는데다 문재인의 라이벌, 대항마로서의 이미지가 3위를 한 안철수나 4위를 한 유승민에 비해 강하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에 대한 비토가 임기 말에 이르러 지금보다도 훨씬 강해진다면 홍준표가 다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2020년 하반기 이후로 문재인 대항마 이미지를 윤석열이 통째로 삼켜버리는 바람에, 대항마 포지션을 제대로 취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2021년 9월 이후로는 주요 여론조사에서 야권 후보로 윤석열과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다.
홍준표의 경상남도지사 시절 실적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양립한다.
- 긍정적으로 보는 측: 당시 홍준표와 경상남도 측이 언론에 밝힌 바에 따르면 홍준표의 도정 운영은 성공적이었다. 우선 도지사로 있던 3년 6개월 동안 총 1조 4천억 원의 채무를 도의 자산 매각 없이 행정개혁, 재정개혁만으로 청산하여 경상남도를 전국 최초의 흑자 광역지자체로 만들었으며, 전국 광역지자체 청렴도 조사에서 2012년 15위, 2013년 14위로 만년 최하위권에 머물던 경상남도는 홍준표 취임 후로 수직 상승하여 2014년 3위, 2015년 2위, 2016년 1위를 차지하도록 이끌었다. 홍준표 도정 아래 경상남도는 대한상공회의소에 의해 2년 연속으로 기업가 입장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지자체로 선정되었으며, 사천[15]과 진주에 항공우주 산업단지를, 밀양에 나노 산업단지를, 거제도에 해양 플랜트 산업단지를 유치하였고, 무상급식을 폐지한 대신 저소득층 자녀들이 ‘여민동락' 카드를 통해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서민자녀 교육지원 4단계 사업을 성공시켰다. 서울로 상경한 대학생들을 위해 쾌적하고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는 기숙사인 남명학사 역시 지금도 많은 경남 출신의 학생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고 한다.#
- 부정적으로 보는 측: 홍준표의 후임자이자 정적인 김경수가 주장한 바에 따르면 홍준표가 경상남도의 채무를 없애긴 했으나 부채는 5000억 원을 남겼다. 또한 무리하게 채무를 없애기 위해 경제 발전을 위해 필요한 재정 투자를 취소하거나, 축소하거나, 미뤄버리는 바람에 이전까지 연 평균 4.04%로 전국에서 최상위권이던 경상남도의 경제 성장률이 홍준표 재임 기간에는 0.52%로 곤두박질쳤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홍준표의 후임 자리를 놓고 김경수와 경쟁한 김태호 자유한국당 경남지사 후보마저 “채무 제로는 당면한 시급한 현안에 투자를 감소했다는 뜻도 있다"며 김경수 측의 공격을 인정했을 정도다.[16] 그런가 하면 오히려 투자를 했다가 실패한 정책도 있었는데, 91억원을 들여 하동군에 애버딘 대학교 한국 캠퍼스 개교를 추진하고 건물들까지 미리 세워뒀으나 졸속 MOU 체결 등의 문제 끝에 무산된 것#, 역시 수억원을 들인 진해글로벌테마파크 추진 실패##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다보니 홍준표의 경상남도지사 임기 말 지지율은 폭락하였고, 전국 광역단체장 직무 평가 여론조사에서 수차례 꼴찌를 하거나 최하위권에 올랐다.# # #
두 차례 당 대표를 역임하며 보여준 성적이 신통치 못했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는 2011년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를, 자유한국당 대표 시절에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패배로 이끌었다. 특히 제7회 지방선거 당시에는 민심을 파악하지 못하는 강경 일변도 노선으로 당의 이미지를 비호감으로 만든다는 빈축을 샀는데, 당의 공식 지방선거 슬로건을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라는 공격적이고 보기에 따라서는 색깔론에 편승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문구를 쓴 것이 대표적이었다.[17] 결국 수많은 자유한국당 소속 후보자들이 홍준표에게 자신들의 유세에 와주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었다.# # # # #
홍준표가 대선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중도층을 잡을 수 있는 본인만의 강점을 어필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나마 중도층을 잡을 희망이 있다면 19대 대선 후보 당시 사형제 부활과 군가산점 제도 부활을 공약으로 내세웠다는 것. 20대 대선 출마 시 해당 공약을 그대로 쓴다면 사형제 부활은 조두순 같은 흉악 범죄자가 출소함에 따라 여론이 홍준표의 의견에 힘을 줄 수도 있고, 2021년 젠더 이슈가 급부상함에 따라 군가산점 부활로 젊은 남성들의 표를 대폭 가져올 수 있다. 2021년 4월 말 리서치뷰 정기조사 '범보수진영 차기 대권주자 적합도'에서 안철수를 제치고 윤석열에 이어 2위에 올랐다. 특이한 점은 4년 전과는 달리, 남성 18/20대에서 윤석열과 오차범위 내에서 경쟁하고 있다는 것.[18] 또한 30대 남성 유권자에게서 윤석열과 유이하게 20%대 지지율을 얻었다. 다만 홍준표는 2021년 9월 16일 국민의힘 경선 후보 토론회에서 조국 전 법무장관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정치적인 과잉 수사였다고 발언했으며, 논란이 되자 페이스북에 올린 두 입장문에서도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따라서 조국 이슈에 민감한 청년층으로부터 지지가 깎일 가능성이 있다. 다만 홍준표의 첫번째 입장문에는 "조국 수사가 부당 했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과했다."고 써있어 조국을 무조건적으로 두둔하는 것은 아니라고 볼 여지가 있으며, 두번째 입장문에서는 국민들의 여론을 감안하여 입장을 바꿀 용의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19][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총선 승리를 위해 중진들의 수도권 등 험지 출마를 요구한 공천관리위원회와 갈등 끝에 미래통합당을 탈당하여 무소속 출마를 선언, 이후 험지가 아닌 보수의 대표적 텃밭 지역인 대구의 수성구 을 지역구에 출마해 정치 신인과 맞붙어 당선되고 8년 만에 원내에 재입성했다. 본래 당선 후 미래통합당으로 복당할 것이라고 했으나, 김종인 비대위 체제로 들어가면서 당내에서도 홍준표의 복당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 많아지면서 미래통합당이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꾼 뒤에도 복당하지 못하였다. 이후 2021년 재보궐선거 승리 후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종료되면서 6월 24일 복당하였다.
홍준표의 복당을 두고 당내 핵심지지층을 결집시킬 수도 있기에 반기는 분위기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간신히 당을 정상구도로 올려 놓았는데 홍준표로 인해 도로 자유한국당 이미지가 부활할까 걱정하는 당내 기류도 감지된다.
다만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별개로 홍준표 개인의 역량으로 평가하면 결코 나쁘지 않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사태가 발생해서 대통령 보궐선거라는 기상천외한 선거를 하게 되었을 당시 홍준표는 탄핵당한 대통령을 가진 정당에서 출마한 대통령 후보라는 최악의 디메리트를[21] 떠안은 채로 출마했으나 되려 유력한 당선후보인 문재인과 지지율 호각을 찍어가며 차세대 대통령감이라고 극찬을 받던 안철수를 누르고[22], 저 디메리트를 등에 업은 채 2위라는 낙선했지만 쾌거를 이룩한 바 있다. 낙선할 게 뻔한 대선에 출마하고 보수 지지층을 결집 시키면서 자유한국당이 재기할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실제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온갖 막말을 뿌린 것은 광역단체장과 지차제장들이 친박 일색이였기 때문에 이를 축출하기 위함이였던 것이라는 의견도 보인다. 실제로 경기지사, 인천시장, 부산시장, 울산시장, 경남지사까지 모두 민주당에게 넘어갔는데 여기서 낙선한 후보 중 일부는 친박계[23]였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이였던 황교안 대표 체제로 치러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공천관리위원회의 험지 출마 요구[24]를 거부하고 공천에 대한 불만으로 탈당하여 보수의 텃밭인 수성구 을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홍준표 이름 석자가 유일한 무기인 상태에서 당시의 미래통합당을 등에 업은 정치 신인 이인선을 꺾고 당선되었다.[25]
6월 29일 대선 후보 경선 일정이 나오면 예비후보로 등록하겠다고 기자들 앞에서 공언했다. 결국 8월 1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 등록을 하였다.#
2021년 8월 17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만약 당선이 된다면 헌정 사상 두 번째로 동대문구 지역구 국회의원 출신[26]이자 최초의 경상남도지사 출신 대통령이 되고, 그의 모교 고려대학교는 이명박에 이어 두 번째로 대통령을 배출한 학교가 된다. 세 번째로 개명한 대통령도 된다.[27]
3. 컷오프 / 사퇴 / 불출마
3.1. 2차 컷오프
====# 안상수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안상수(인천)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1f2023><bgcolor=#fff,#1f2023> ||<:><bgcolor=#E61E2B>안상수 (安相洙)||
<colbgcolor=#e61e2b><colcolor=#ffffff> | |
출생 | 1946년 5월 28일,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
슬로건 | 국민 모두가 걱정없는 삶! 안상수가 만들겠습니다 |
현직 | 평당원 |
19대 대선 | 자유한국당 경선 2차 컷오프 |
국민과의 약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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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인천광역시장, 3선 국회의원. 前 창원시장 안상수와는 동명이인이다.[28]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새누리당 경선에 참여했으나 5명 중 꼴찌인 5위로 탈락했고, 연달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자유한국당 예비경선 후보에도 참여했으나 1차 컷오프를 넘기고, 2차에서 컷오프 되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윤상현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남영희 후보에게 큰 표차로 밀리며 15.57%로 선거비 보전만 겨우 받으며 낙선했다.[29]
월미은하레일와 151 인천타워로 대표되는 인천광역시장 시절의 정치적 무리수와 실패들로 인천광역시에서의 이미지가 이미 영 좋지 않다는 점은 안상수 후보의 확실한 약점이다. 이를 입증하듯, 윤상현과 남영희의 개인기와 별개로 전직 시장, 3선 의원이 15%를 겨우 받기도 했다.
낙선 이후 정치활동이 없었으나, 최근 새 책을 내며 정치 활동에 다시 들어갈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브레이크뉴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국민의힘 대선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 2021년 6월 26일 대권 출마를 선언했다.# 7월 15일,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을 방문하여 예비후보 등록을 했다..#
====# 최재형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최재형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f2023><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1f2023> ||<:><bgcolor=#E61E2B>최재형 (崔在亨)||
<colbgcolor=#e61e2b><colcolor=#ffffff> | |
출생 | 1956년 9월 2일, 경상남도 진해시[30] |
캠프 | |
슬로건 | 당당한 대한민국 |
현직 | 평당원 |
국민과의 약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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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첫 감사원장으로 30여 년간 판사로 재직한 법조인 출신이다.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감사 과정에서 일부 화제에 올랐다. 이후 민주당 송갑석 의원이 최재형 감사원장 측이 "대선에서 41%의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의 국정과제가 국민의 합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 라고 발언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논란이 집중되었는데, 최 감사원장 측에서는 이는 정부의 정통성에 대한 의견을 개진한 것이 아니라 국민적 합의가 도출되었다는 의견에 국민 대다수가 일반화될 수 있느냐 라는 반론을 제기했다고 해명했다.
다만 논란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최재형 감사원장 측이 정치적 발언을 한 것이 아니며, 문재인 정부의 사람이다 라고 감싸주며 논란은 사그라 들었다. 이후부터는 이회창 등 선대 감사원장 출신 대권후보의 영향을 받아, 대권주자로 간간히 불리고 있었다. 2021년 5월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 측에서 김동연, 윤석열과 함께 언급하며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대권주자로 분류되었고, 이후 여론조사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리며 대권주자 선호도에 포함되었다.
윤석열이 출마를 선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장모가 사기 혐의로 구속되는 등 주춤하자 최재형이 새로운 대안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리고 얼마 안가 누군가가 잘못되는 것이, 자신의 이익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며 누군가의 대안보다 자기 자신으로 평가받고 싶단 말을 하며 사실상의 출마를 시사하였다. #
7월 7일, 정계 입문을 선언하였다.#
당초에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나 성향을 밝히지 않고 있는 상황인지라 야당 후보인지 여당 후보인지, 출마 의도는 있는지 자체가 미지수라는 평이 있었으나[32], 7월 15일,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하면서 이 부분에 대한 의구심은 사그라들었다.# 7월 26일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 등록을 하였다.#
8월 4일, 온라인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만약 당선이 된다면 최초의 감사원장 출신 대통령이 된다. 또한 최재형의 모교인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은 최초로 대통령을 배출한 셈이 된다.[33] 그런데 민주당까지 포함하면 서울법대 출신 경선후보만 4명이다.
====# 하태경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하태경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f2023><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1f2023> ||<:><bgcolor=#E61E2B>하태경 (河泰慶)||
<colbgcolor=#e61e2b><colcolor=#ffffff> | |
출생 | 1968년 4월 26일, 부산직할시 동구 수정동 |
슬로건 | 시대교체 하태경! 미래착취 사회에서 미래투자 사회로! |
현직 | 국회의원 (부산 해운대구 갑) |
국민과의 약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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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 국회의원으로 당 내 소장파로 분류되는 대표적 인물이다. 젊은 시절 학생운동을 하며 NL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나 전향하여 보수정당으로 오게 된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각종 라디오 채널에 출연하여 인지도를 높였다. 간간히 디시인사이드 등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등장하여 사용자들의 의견을 물어보곤 한다.
2021년 6월 15일,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 황교안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황교안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f2023><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1f2023> ||<:><bgcolor=#E61E2B>황교안 (黃敎安)||
<colbgcolor=#e61e2b><colcolor=#ffffff> | |
출생 | 1957년 4월 15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
슬로건 | 행동하는 정의! 대한민국을 초일류 정상국가로! |
현직 | 평당원 |
국민과의 약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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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무총리이자, 전 대통령 권한대행자, 전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대표.
황교안의 강점은 법무부장관 시절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는 등 보수층에게 강력한 어필 요소가 있고, 특유의 점잖은 말투와 온화한 인상이 중도층을 공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인해 대통령 권한대행을 도맡아 국정을 수행해온 바 있어 탄핵 국면에서 보수 지지자들의 희망후보로 물망되었다.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냈고 무려 5개월이나 되는 기간 동안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며 국정을 운영해보았다는 경험이 장점이다.
다만 중도층에서 박근혜 정부의 부역자라는 이미지가 있어[34] 비토층도 존재한다. 또한 선거로 당선된 선출직 공무원이 아니라 관료로만 일을 해왔기 때문에 정치인으로서의 대중성이나 정치력 등은 부족할 수 있다는 점도 단점이 될 수 있다. 권한대행 시절 의전 관련으로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2019년 1월 15일에 자유한국당에 입당했다. 입당 후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 당대표 선거 출마선언을 했다. 당대표 선거 구도는 비박계의 오세훈, 친박계의 황교안 그리고 태극기 부대를 뒤에 입은 김진태의 삼파전이다. 최종적으로 50%의 득표를 성공해 당대표가 되는 것에 성공했다. 3월 첫째주 기준으로 자유한국당이 탄핵 국면 이후 처음으로 30%대에 들어가고 황교안이 제일 지지율이 높은 대권주자로 꼽히는 등, 정치입문 후 상황이 황교안에게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2019년, 선거 기간 동안에 방을 빌려 열심히 선거운동을 한 본인이 처음 이끈 선거에서 1:1의 결과를 얻었다. 정의당에 내준 1석도 민주당이 정의당과 단일화한 끝에 내준 간발의 차여서, 나쁘지 않은 결과라고 봤다. 그런데..
21대 총선에서 정치 1번지 종로에서 이낙연과 매치를 치렀는데, 사실상 여당과 제1야당의 대표 주자, 두 전직 국무총리들이 격돌한 21대 총선 최고의 빅매치였다. 결국 선거에서 패배하며 패배함과 동시에 당대표에서 물러났다. 황교안에 대한 평가는 관료 출신이 친박의 지지아래 갑작스레 거대 정당의 당대표가 되면서 한계를 명확하게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지지 근본은 친박이라 극우 지지자를 챙겨야 하는데 막상 그렇게 하니 중도층을 잡지 못하게 되어 패배가 뻔히 보이게 되는 상황이라는 점이 그렇다. 본인도 그 한계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기에 바른정당 탈당파들을 다시 끌어와 미래통합당으로 합쳐보기도 하고 김종인 전 국민의당 개혁공동정부준비위원장을 선대위원장으로 영입까지 하며 그것을 어떻게든 극복해보려 했으나, 결국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35]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 대표로써 인물 배치를 너무 못하는 바람에 더불어민주당에게 180석이라는 거의 일당제에서나 나올 법한 승리를 안겨주었으며, 본인도 종로에 출마했다가 이낙연을 상대로 삼청동과 가회동을 내주고 사직동과 평창동에서 겨우 승리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대표적인 잘못된 공천으로는 이혜훈 전 바른정당 대표를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을에 출마시킨 것[36]·이언주 전 미래를향한전진4.0 대표를 부산광역시 남구 을에 전략공천한 것[37]·인천광역시 부평구 갑에 정유섭 의원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갑에 문병호 전 의원을 출마시킨 것[38]·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를 경상남도 양산시 을에서 컷오프한 것[39]·정병국 전 바른정당 대표를 경기도 여주시·양평군에서 컷오프한 것[40] 등이 꼽힌다.[41][42]
이렇게 우파진영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였지만, 21대 총선 대패로 인해 현재 여론조사에서도 지지 여론이 아주 약해진 상태이다. 총선 이후 잠행 중이던 행보에서 최근 복귀하려는 듯한 행보를 걷고 있다.# 몇 개월 간 잠적하는 중인데도 여론조사에 따라 원희룡, 주호영, 김종인 등보단 높게 나오는 걸로 보아 콘크리트 지지층이 조금은 있는 모양이다.
황교안은 앞에 언급한 것처럼 통진당을 직접 해산시킨 바 있고, 또 특유의 점잖은 말투와 온화한 인상으로 보수 지지층을 공략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총선 이전에만해도 이낙연과 투톱을 이루는 강력한 대권후보였던 것인데, 당대표를 하며 기대와는 달리 강성보수 성향 목소리를 내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고, 결국 총선 참패와 함께 당대표에서 사퇴했으며 본인 또한 종로에서 이낙연에게 밀렸다.
또한 2021년 재보궐선거를 통해 친박세력 없이도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에 친박의 대표주자 황교안의 대선 출마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김종인 대표가 국민의힘을 떠나고 황교안이 다시 몸풀기에 나섰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당내에서는 부정적인 기류가 매우 강하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이 직접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시하기도 하였다.#
이후 황교안에게는 정치인보다는 공무원에 어울리는 인간형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히 공안검사 출신으로, 명령과 복종에 철저해서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판을 짜는 당대표직을 수행하기에는 어려웠을 거라는 의견이다. 이런 유형의 인간은 장관, 차관 등 주어진 일을 열심히 수행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어서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관직에는 좀 무리가 있는 인물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021년 7월 1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7월 2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 등록을 하였다.#
만약 당선이 된다면 박정희, 최규하에 이은 3번째 대통령 권한대행 출신 대통령이 된다.
3.2. 1차 컷오프
====# 박진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박진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f2023><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1f2023> ||<:><bgcolor=#E61E2B>박진 (朴振)||
<colbgcolor=#e61e2b><colcolor=#ffffff> | |
출생 | 1956년 9월 16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
슬로건 | 선진국형 ‘외교안보대통령’ 박진 |
현직 | 국회의원 (서울 강남구 을) |
국민과의 약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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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소속의 정치인으로 정치 1번지 종로구에서 16대~18대 3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8년간 원외에 있다가 21대 총선에서 강남구 을의 국회의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21대 국회 기준 서울 지역구 국민의힘 의원들 중 권영세와 더불어 유이한 4선 중진 의원이다.
우리나라에서 선거구로서의 종로구의 위치는 그야말로 어마무시한데[43], 무려 그 종로구를 정치적 이해관계도 아니고 연고지로 인한 지역구로 삼고 있었던 꽤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2021년 7월 13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7월 28일에는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을 방문하여 예비후보 등록을 하였다.#
====# 장기표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장기표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f2023><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1f2023> ||<:><bgcolor=#E61E2B>장기표 (張基杓)||
<colbgcolor=#e61e2b><colcolor=#ffffff> | |
출생 | 1945년 12월 27일, 경상남도 밀양군 |
슬로건 | 자아실현의 기쁨과 보람을 누리는 행복한 삶 |
현직 | 국민의힘 김해시 을 당협위원장 |
국민과의 약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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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야운동가 출신 정치인. 본래는 진보진영 재야운동계의 거두 중 하나였으나 민중당의 실패와 낙선 이후 민주당계 정당, 보수정당으로 옮겨 통합민주당, 민주국민당, 새천년민주당 등을 전전한다. 이후 정통민주당을 창당했으나 정통민주당은 홍희덕, 천호선 등 진보정당 정치인들과 일부 민주당 정치인들을 오히려 낙선 시키게 되는 역효과만 내며 새누리당을 돕게 돼 비판 받게 된다. 이후 제19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으나 실질적으로 출마를 하지 못했고, 이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소리당 창준위를 결성,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 전진당과 함께 미래통합당을 창당해 김해을에 단수 공천 받았다. 하지만, 김해 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김해 갑과 혼동하는 등 실수를 범하며 7번째 낙선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국민의힘의 김해시 을 당협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처음으로 국민의힘에 자리를 잡은 듯 하며, 앞으로 다음 선거를 노릴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고 결국 2021년 6월 22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7월 26일에는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을 방문하여 예비후보로 등록하였다.
장기표의 단점이라면 여러 정당을 전전하며 생긴 '철새' 이미지와 낮은 인지도. 더불어 장기표를 알고 있는 시민 대부분은 장기표를 비판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점에 있다.[44]
====# 장성민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장성민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E61E2B><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1f2023> ||<:><bgcolor=#E61E2B>장성민 (張誠珉)||
<colbgcolor=#e61e2b><colcolor=#ffffff> | |
출생 | 1963년 9월 5일, 전라남도 고흥군 |
슬로건 | 내일이 기다려지는 오늘, 5천만 모두 별의 순간을 잡는 희망국가 |
현직 |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이사장 |
19대 대선 | 본선 9위 (0.06%, 국민대통합당) |
국민과의 약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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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교동계 출신 정치인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총무비서를 거쳐 국정상황실장을 맡았으며 이후 16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7대 대선 과정에서 국민 선택이라는 정당을 창당하여 대선에 출마하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TV조선에서 장성민의 시사탱크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으나 역사왜곡 사건인 5.18 북한개입설 보도사건으로 물의를 빚었으며, 진행 능력에 논란이 제기되면서 하차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대통합당이라는 극우 정당을 창당해 출마했으나 본선에서 9위로 낙선했다.
이후 재야에 있었으나 7월에 반문 빅텐트를 기치로 출마하겠다며 비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국민의힘 측에서 접촉할 것으로 보인다는 기사가 나왔고#, 7월 30일 저녁 국민의힘 대외협력팀장 권영세 의원과의 회동 자리에서 입당을 결정하였다.
2021년 8월 15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3.3. 후보 등록 반려
====# 오성균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f2023><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1f2023><colbgcolor=#e61e2b><colcolor=#ffffff><width=100> ||<:><bgcolor=#E61E2B>오성균||
7월 12일부터 8월 29일까지 진행된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 등록 때는 등록하지 않았으나 8월 30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정식 등록 때는 등록하였다.
1차 경선 진출 후보 심사에서 탈락했다.
====# 오승철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오승철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f2023><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1f2023><colbgcolor=#e61e2b><colcolor=#ffffff> ||<:><bgcolor=#E61E2B>오승철 (吳昇哲)||
출생 | 1957년 9월 30일, 경상남도 부산시[45] |
현직 | 정치리더십연구회 회장 |
슬로건 | 국민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 대통령 |
대한인성학회와 부산복지21총봉사회를 설립했던 인물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진구 갑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3위로 낙선했다.[46]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부산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당시 새누리당의 공천에 반발해 탈당한 이종혁 전 의원과 단일화하며 후보를 사퇴했다. 이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국민의힘에 입당해 경선을 치르려 했으나 서병수 전 시장이 전략공천되었다. 반발해 탈당한 정근 후보와 달리 서병수 시장을 지지하며 당에 남았다.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는 부산광역시장 후보에 등록했으나 경선 과정에서 컷오프 당하며 고배를 마셨다. 이후 제20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에 등록했다.
약점은 역시 낮은 인지도다. 부산권에서만 알려진 인지도 때문에 경선을 통과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강성현 후보를 제외하면 사실상 국민의힘 대권 경선후보 중 최약체 후보기도 하다.
7월 1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예비후보 등록을 하였으나, 7월 12일부터 8월 29일까지 진행된 국민의힘의 자체적인 예비후보 등록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8월 30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정식 등록 때는 등록하였다.
후보 등록이 반려되었다.
3.4. 사퇴
====# 김태호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김태호(1962)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f2023><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1f2023> ||<:><bgcolor=#E61E2B>김태호 (金台鎬)||
<colbgcolor=#e61e2b><colcolor=#ffffff> | |
출생 | 1962년 8월 21일, 경상남도 거창군 |
슬로건 | 공존(共存),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입니다 |
현직 | 국회의원 (경남 산청군·함양군·거창군·합천군) |
18대 대선 | 새누리당 경선 3위 |
국민과의 약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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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경남지사, 전 새누리당 최고위원. 18대 대통령 새누리당 후보 경선에 나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대선에서도 대권 도전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 이명박 정부 때 국무총리 내정자로 지명 되었을 때에는 경남도민들을 제외한 전국적 인지도는 매우 낮았지만 국무총리 임명 무산 후 정치적 재기에 성공하고 그 이후 새누리당 최고위원등 당내 중요 직책등을 역임하면서 당과 친박 내의 비중과 무게감이 지속적으로 높아져 인지도 역시 국무총리 후보 지명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올라간 상황. 최연소 기초자치단체장, 광역자치단체장을 역임한 점에서 알 수 있듯 50대 초,중반의 젊은 나이도 어느정도 장점으로 손꼽히고 있을 뿐더러 또한 정치적으로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 정치에 입문, 발탁되어 PK로 분류됨에도 새누리 내부에서 PK와 알력 다툼을 하고 있는 TK와도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어 TK에서도 통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여겨진다. 이는 김 최고위원의 정치적 기반이 TK와 가까운 북부 경남이기 때문이다.[47]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대권 도전에 선을 긋는 듯한 발언을 했지만 바로 그 다음날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고 경남지사 재임 시절부터 대권에 대한 포부를 밝혀왔던 만큼 차기, 혹은 못해도 차차기에 대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2017년 3월 14일 불출마 선언을 하였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미래통합당의 텃밭이자 자신의 고향인 거창이 포함된 산청군·함양군·거창군·합천군 지역구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였으나, 자유한국당 중앙당에서는 중진 험지 출마론을 내세워 대립했다. 2020년 3월 5일 홍준표와 함께 미래통합당 공천에서 컷오프당했고,링크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현역 강석진[48] 후보를 꺾고 4년만에 원내복귀에 성공했다.
대통령으로서의 대표적인 사상과 정책으로 개헌을 통한 의원내각제 실현과 이를 통한 협치형 정치를 내세웠다. 이를 위해 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로 교체하고 해 롤모델론 독일의 기민련, 사민당의 사례를 들었는데 과거 대통령 중임제를 주장한 것에 비해 생각이 많이 바뀐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대선후보로서의 장점은 야권에서 거의 유일한 PK 잠룡으로서 이를 바탕으로 세몰이가 가능하다는 점. 다른 PK 후보로서 홍준표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현재의 홍준표는 TK에 지역구를 두고 스스로 TK 진골이라고 자칭하며 사실상 TK권 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상태이기에 사실상 국민의힘 안에서 유일한 PK 잠룡이다. 대선 경선에 들어가면 PK의 지지와 PK 지역구 의원들의 지지를 받아낼 여력이 있다.
단점으로는 낮은 인지도와 부족한 브랜드. 김태호는 국무총리 후보자 시절과 새누리당 최고위원 시기를 제외하곤 중앙정치와는 거리를 두어 인지도가 경쟁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고 할 말은 하는 보수, 성공한 벤처기업가, 개혁보수라는 자신만의 브랜드와 이미지가 있는 다른 경쟁자들과 다르게 김태호는 이 점에 있어서 뚜렷한 특징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보다 강력한 경쟁력을 지니기 위해선 이 부분에 대한 보강이 필요해 보인다.
2020년 10월 29일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주도하는 마포포럼에 참석하여, 대통령 출마를 시사했다.
2021년 7월 15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8월 17일 "분열은 필패의 길"이라며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 박찬주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박찬주(군인)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f2023><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1f2023> ||<:><bgcolor=#E61E2B>박찬주 (朴贊珠)||
<colbgcolor=#e61e2b><colcolor=#ffffff> | |
출생 | 1958년 10월 17일, 천안시 |
슬로건 | 자유회복, 미래지향, 안전보장 |
현직 | 국민의힘 국책자문위원회 부위원장 바른군인권연구소 전문위원장 |
국민과의 약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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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육군의 전 군인 출신 정치인이다. 보병 병과가 아닌 기갑 병과 출신으로는 최초로 대장까지 진급하여 능력이 출중한 군인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공관병 등을 상대로 한 본인과 아내의 악행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현역 육군대장 2호 피의자[49]라는 타이틀을 달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때 미래통합당 후보로 천안시 을 지역에 출마하려 했으나 컷오프를 당했다.
2020년 7월 미래통합당 충청남도당 위원장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2020년 9월 국민의힘 충청남도당 위원장을 역임했다. 2022년 있을 지방선거에서 충청남도지사 후보군으로 꼽히고 있다.
2021년 8월 6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8월 17일 국민의힘 당사를 방문하여 예비후보 등록 서류를 제출하였으며, 20일 예비후보 등록이 승인되었다.
하지만 1차 경선 도중인 갑자기 2021년 9월 12일 국민시그널 공개면접 발표가 끝나고 직후에 홍준표 후보를 지지하면서 후보직 사퇴를 했다.박찬주 사퇴 기사
====# 윤희숙 #====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윤희숙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f2023><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1f2023> ||<:><bgcolor=#E61E2B>윤희숙 (尹喜淑)||
<colbgcolor=#e61e2b><colcolor=#ffffff> | |
출생 | 1970년 2월 7일, 서울특별시 |
슬로건 | 희망으로 미래로 |
현직 | 국민의힘 서초구 갑 당협위원장 |
국민과의 약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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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일 출마선언 할 예정이다.# 7월 2일 오전 10시에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출마 선언을 했다.
8월 24일 권익위가 발표한 부동산 불법 투기 관련 국민의힘 소속 의원 12명 중 하나로 지목되어 사퇴하였다.
3.5. 불출마
====# 홍성우 #====해당 주자에 대한 내용은 홍성우(1941) 문서 참고하십시오.
||<tablebordercolor=#E61E2B><tablebgcolor=#fff,#1f2023><tablewidth=450px><tablealign=center><bgcolor=#fff,#1f2023> ||<:><bgcolor=#E61E2B>홍성우 (洪性宇)||
<colbgcolor=#e61e2b><colcolor=#ffffff> | |
출생 | 1941년 2월 20일, 경기도 안성군[50] |
현직 | 없음[51] |
전 국회의원이자 배우.
연예인 출신 1호 국회의원으로,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12대까지 내리 3선을 했으나 불출마 이후 복귀한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이후부터는 다시 배우 생활로 돌아갔던 인물이다.
2021년 2월 8일 오랜만에 정계 복귀를 선언하며 동시에 국회 헌정회 회의실에서 대권 출마를 선언했다. 홍성우는 “현 시국으로서는 미래를 지향할 수 없으며 다음세대에 오히려 막대한 부담만 안겨주는 정권이라고 칭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그 동안 삶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며 출마 의도를 밝혔다.##
당 내 다른 후보들에 비해 인지도가 많이 낮은 편이고[52] 30년 가까이 정치권을 떠나 있던 데다가 나이도 너무 많아 국민의힘 후보로 나올 확률은 낮다. 대부분의 군소후보들이 그렇듯 실제 당선을 목적으로 출마를 했다기보다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출마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김대중[53]을 뛰어넘는 최고령 당선자가 된다.[54]
정식으로 출마 철회를 선언하진 않았으나 7월 12일부터 8월 29일까지 진행된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 등록 기간 동안 예비후보 등록을 하지 않은 것에 이어 결국 8월 30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등록 기간 동안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아 불출마가 확정되었다.
이후 2021년 12월 2일 혈액암으로 별세했다. 출마 선언 이후 실제로 경선에 참여하지 않고 잠적했던 것은 투병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 선출직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당장 현재 여권의 대표적인 대권주자 중 한 명이고 당시에도 언변이 뛰어나기로 유명했던 이낙연도 첫 정치에 입문하였을 때 많은 실수를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쉽지 않은 자리가 선출직이다. 민주당의 정신적 지주인 노무현 또한 좋은 비전을 가지고 있었으나, 짧은 정치 경력과 전무한 행정경력(해수부 장관 경력이 있긴 하지만, 해수부 장관은 행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다.) 때문에 정치력이 거의 낙제점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당장은 국정감사에서 여당의 공세를 무사히 방어해내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대선 국면으로 들어온다면 검사로서의 커리어뿐만이 아니라 경제, 안보,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뚜렷한 생각을 밝힐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의 윤석열은 정치 경험이 전무하기에 이러한 분야에서 얼마나 고심을 했고 자신의 의견을 술술 불어낼 수 있을 정도의 확고한 신념을 가졌는지 알 수 없는 상태이다. 검찰총장이 선출직인 미국과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인 빌 클린턴은 아칸소 검찰총장 이후 아칸소 주지사를 12년 동안 더 지내면서 국정능력을 키웠다. 외국에서도 외부 인사가 정치 경험 없이 성공적으로 대통령이 된 경우는 미군 원수에서 바로 대통령 후보가 된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인데, 민주당의 20년 장기 집권에 질려가던 참인 데다가, 아이젠하워는 군인이지만 대인관계를 맺는 법을 정말 잘 알았고, 정치에도 능해서 두 지랄맞은 장군(버나드 로 몽고메리, 조지 S. 패튼)을 성공적으로 중재한 천상 정치인이었다.[2] 대선 경선이 임박한 상황에서 특정 주자의 지지율이 20%를 돌파할 경우 다른 주자들로선 더 이상 지지율을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만약에 윤석열이 지지율 20%를 바탕으로 국민의힘에 들어와 대선 행보를 걷던 도중 반기문 마냥 도중하차하는 일이라도 벌어진다면 국민의힘에게 있어선 최악의 한 수가 될 것이다.[3] 홍준표는 막말로 파멸한 것과 친박계들의 내분으로 유리하지 못하고, 황교안은 21대 국회의원 선거의 실패, 김무성 역시 힘이 빠져버렸고, 그 외에는 김진태 같은 막장 친박계에 이준석 같이 겨우 정치계에서 두각을 드러낸 신진 정치인들 투성이이다.[4] #[5] 대한민국은 '서울 공화국'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수도권 인구 과포화가 심한 상태지만, 이는 1970년대 이촌향도 현상으로 많은 인구가 서울로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가장 연배가 어린 문재인 대통령이 1953년 생인데, 이와 비슷하게 대통령을 바라볼 수준의 세대인 5~60년대 생 중에는 '서울 태생'이 많지 않다.[6]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모두 대한민국 국회의원 출신이다.[7] 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8] 지사직을 사퇴하기 전까지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중앙선관위에 예비후보 등록을 할 수 없었다. 참고로 공식적으로는 8월 11일까지 지사직을 유지하긴 했으나, 8월 2일 제주특별자치도의회에 지사직 사임통지서를 접수했으므로 8월 5일 예비후보 등록을 하는 것이 허용되었다.[9] 현 대구광역시 중구[10] 과거 박근혜 대통령과의 충돌로 빚어진 배신자 프레임에 현재까지도 강하게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역으로 노년 보수층이 아닌 일반 보수층과 중도층에게는 탈친박이라는 이미지가 남아있는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11] 주민등록상 생년월일이며, 실제 생년월일은 1953년 11월 20일이다.[12] 당협위원장 겸직[13] 한나라당 시절에는 여당, 자유한국당 시절에는 제1야당 대표였다.[14] 김대중은 4번, 문재인과 김영삼은 2번씩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끝에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15] 사천은 KAI의 본사와 공장이 있는 등 원래부터 항공우주 산업이 발달된 지역이다.[16] 또한 홍준표 지사 시절 경제가 안 좋았다는 공격 역시 좋았다고 반박하는 게 아니라 “제가 도지사 재직시절인 2006년에는 경남 경제가 제일 좋았다"고 반박하고, 홍준표가 없앤 무상급식을 전면 확대 시행하겠다고 공약하는 등 홍준표 도정을 실드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 다만 당시 김태호 후보가 홍준표와 선긋기를 한 것은 홍준표 도정이 실패했다고 생각해서보다는 홍준표가 당 대표로써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인 것 때문에 거리두기를 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17] 젊은이들에게는 문재인 정부는 좌파다, 종북이다 하고 말하는 것은 전혀 효과적이지 않고 문재인 정부의 불공정 및 경제 정책 실패 등을 꼬집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2021년 재보궐선거 등을 통해 입증되었다.[18] 윤석열 23%, 홍준표 19%.[19] 두번째 페이스북 게시글에 "정권을 안정시키는 것도 검찰총장의 책무라고 하면서 조국 수사는 문정권 안정을 위해서 한 것"이라고 윤석열이 자인한 적이 있다는 주장을 넣은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홍준표는 자신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이자 조국 수사를 지휘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저격하기 위해 이같은 발언을 한 것이다. 다만 원희룡 후보 등은 홍준표가 국민의힘 경선에 참여할지도 모르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의 표심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분석하였다. 당장 민주당 경선만 보더라도, 역선택을 딱히 문제 삼지 않는다. 역선택 방지 조항을 찬성하는 건 윤석열과 최재형 둘 뿐.[20] 사실 이는 홍준표가 조국을 옹호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 시절 초기 박연차 게이트가 터졌을 당시 참여정부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를 했는데 첫 검찰 조사 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과 언론의 공격이 점점 범죄자로 유죄추정을 하는 등으로 수사를 질질 끌자, "대통령 망신주려고 수사하냐?"며, 검찰을 비판한 적도 있을 정도로 수사를 질질 끌고 유죄를 만들어 무죄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조리돌림을 당하는 걸 굉장히 안 좋아한다. 그가 참여정부 저격수 역할을 했었기에 당시 참여정부 지지층에서 "이 말을 홍준표가???"라며 놀라움을 표현했을 정도. 따라서 윤석열의 조국 수사가 잘못된 게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수사를 질질 끌어댔던 게 문제라고 보는 것이 맞다.[21] 이 당시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탄핵 직전 박근혜 정부와 같은 4%였다. 그 정동영 보다도 못 얻고 낙선할 수 있다는 비관론까지 나왔었다.[22] 이는 MB아바타 발언 등 안철수 본인의 역량이 심각하게 미숙한 모습만 보여줘 스스로 자멸했던 점도 한 몫했다.[23] 남경필, 유정복, 서병수. 김태호, 김기현은 지역 특성상 비박일 수밖에 없었다.[24] 무려 구로구 을이였다고 한다. 경력도 일천한 후보가 종로구를 첫 스타트로 끊은 황교안에 대한 반발심이 컸던 모양. 알다시피 홍준표는 서울에서만 4선을 했다.[25] 수성구 을은 주호영의 지역구인데, 대구에서도 부촌으로 통하는 지역이다. 주호영의 공약이행률이 90%를 넘는다고 평가 받는 상황에서 황교안 체제의 지도부가 반강제로 주호영의 지역구를 옮기게 했으니 유권자들이 반발해 무소속 야권후보로 나온 주호영의 손을 들어줬듯이 이번에도 무소속 야권후보인 홍준표의 손을 들어준 것.[26] 첫 동대문구 지역구 국회의원 출신 대통령은 첫 대통령인 이승만으로 이승만은 동대문구 갑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다. 홍준표는 동대문구 을 지역구에서 3선 국회의원을 했다.[27] 김대중(仲→中으로 '중'의 한자만 바꿈), 이명박(이상정→이명박), 홍준표(홍이표→홍판표→홍준표).[28] 두 사람은 이름과 정당은 물론, 나이도 같고 심지어 대학도 같고 본관도 같다.[29] 윤상현 후보는 171표 차표로 생존한지라, 윤 후보의 입장에서는 안상수 후보가 조금이라도 더 분전했다면 남영희 후보가 이기게 되는 아슬아슬한 접전이었다.[30] 現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해체] 9월 14일 최 후보가 캠프 해체를 선언했다. 단 경선 레이스를 중도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한다.[32] 사실 비교되고 있는 이회창은 문민정부의 감사원장, 국무총리 출신으로 당시 대통령 김영삼, 여당이었던 신한국당 등과 번번이 충돌하며 야당 주자로 불리기도 했지만 결국 신한국당에 입당해 국회의원 생활을 하고 대선을 치렀다.[33] 부통령으로서는 함태영이 감사원장의 전신인 심계원장을 지냈던 적이 있으며 서울법대의 전신인 법관양성소를 수석으로 졸업한 이력이 있다. 고로 함 전 부통령은 심계원장 출신 이력과 서울법대 출신 이력을 동시에 갖고 있다.[34] 박근혜 정부 시절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35] 패스트트랙 정국에서의 삭발과 단식, 총선을 앞두고 각종 실언과 공천파동 등 안 좋은 이미지가 누적된 결과로도 볼 수 있다.[36] 이혜훈은 서초구 갑에서 3선을 지냈고 동대문구 을에는 연고가 없었다. 심지어 서초구 갑과 동대문구 을은 주민들의 정치적 성향이 정 반대이다.[37] 이언주는 경기도 광명시 을에서 재선을 한 인물로 부산에서는 태어나 자랐을 뿐 그쪽에 정치적 기반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나마 처음엔 고향이기라도 한 중구·영도구에 전략공천하려다 당협위원들과 김무성 전 의원 등이 반발하자 옆동네로 보내버린 것. 이언주는 부산 전체가 자신의 고향이니 상관 없다는 식으로 말하긴 했지만 결과는...[38] 원래 정유섭과 문병호 모두 부평구 갑 출마를 희망했는데, 지역구 주민들에게 민심을 잃은 상태였던 정유섭을 선택하고 정작 경쟁력 있던 문병호는 연고도 없는 영등포로 보내버린 것.[39] 유력 차기 대권 주자이며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다 쓰러져가던 당을 이끌고 기적적으로 2위를 달성한 홍준표를 공천 배제하고 인지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나동연을 공천하였다. 참고로 홍준표는 원래 밀양시·의령군·함안군·창녕군에 출마할 생각이었으나,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양산시 을에 출마한 김두관을 잡겠다며 출마 희망 지역을 바꾼 것이었다.[40] 정병국은 여주·양평에서 5선을 지낸 잠재적 대선주자 급의 중진 의원으로, 의정생활 동안 석불역 개통, 경강선 KTX 개통,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등을 성공시킨 바 있어 지역구에서 인망이 높았다. 그런 사람을 컷오프하고 친박·친황계의 김선교 전 양평군수를 공천했는데 김선교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공천 실패 및 여러 가지 논란 탓에 이미지가 나빴다. 아무래도 정병국은 차차기 대선을 노릴 수 있는데다 유승민, 원희룡, 오세훈과 가까워 황교안이 컷오프한 게 아니냐는 시각이 나온다.[41] 특히 홍준표, 정병국 등을 컷오프한 것은 미래에 대권을 두고 자신과 경쟁할 수 있는 잠재적 대권 주자들을 견제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로 그리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많았다.[42] 결국 이혜훈, 이언주, 정유섭, 문병호, 나동연 후보는 모두 낙선했으며, 공천 탈락 후 무소속 출마한 홍준표 등은 당선되었고, 전체적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하였다. 그리고 김선교는 당선되었지만 국민의힘의 우세 지역인 여주시·양평군에서 50%를 겨우 받는 망신을 당했다.[43] 이 지역구 국회의원 출신 대한민국 대통령이 3명이나 나왔다. 윤보선 (3대, 4대, 5대), 이명박 (15대), 노무현 (15대, 재보궐 선거)[44] 사실 장기표는 김문수, 이재오 등 먼저 보수정당으로 온 운동가도 이인영, 우상호 등 민주당으로 간 운동가도 심상정, 노회찬 등 진보정당으로 간 운동가도 우현, 안내상 등 아예 예술계로 빠진 운동가도 아니기 때문에 대중적 인지도는 앞서 언급된 이들보다도 낮고 그를 알고 있는 진보진영, 민주당계 활동가들은 대부분 그와 대척점에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마이너스 요소다.[45] 현 부산광역시[46] 이 때 득표율이 3.91%로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후보와 새누리당 나성린 후보의 3.1%의 표차를 넘는 득표를 했다. 즉, 오승철 후보와 나성린 후보가 단일화를 했다면 나성린 후보가 당선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오승철 후보의 득표율이 고스란히 나성린 후보에게 갈지 자체도 미지수기에 확실하지는 않다.[47] 거창군, 합천군, 창녕군은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상남도이지만 대구광역시와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대경권과의 물적, 인적 교류가 많았던 지역이고, 때문에 북경남 출신 지역 정치인들 중에서는 학연, 지연으로 얽힌 TK와 밀접한 경우가 많다. 아예 홍준표 경남지사처럼 본인을 PK라 부르기를 거부하고 TK로 여기는 경우도 있고.[48] 민선 3~4기 거창군수 출신으로 김태호가 경남지사 출마를 위해 거창군수 직에서 사퇴하면서 궐석이 된 자리에 보궐선거로 당선된 바 있다. 이후 20대 총선에서 이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49] 1호는 前한미연합군부사령관 신일순 대장[50] 현 경기도 안성시.[51] 사망[52] 예외적으로 노년층에게는 인지도가 높다.[53] 당선 당시 74세.[54] 2022년 기준 8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