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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00:48:24

충청 대망론


별도의 문서 또는 문단이 있는 정치권 대망론
충청 대망론 강원 대망론 호남 대망론 영남후보론 안철수 대망론 반기문 대망론 윤석열 대망론


1. 개요2. 등장 배경3. 한계
3.1. 지역 성향에 따른 한계3.2. 인구 측면의 한계
4. 역대 충청 대망론 회자 인물
4.1. 성공
4.1.1. 반론
4.2. 과거 회자 인물4.3. 번외4.4. 진행 중
5. 역대 충청권 지역 정당6. 논쟁7. 같이보기

1. 개요



대한민국에서 본인이 충청도 출신이거나 가족 등 간접적 관련성이 있는 정치인이 대통령직을 노리거나 의원내각제 개헌국무총리직에 도전하는 경우[1] 나오는 용어이다. 대권 주자를 뒷받침해 줄 충분한 인구가 있으면서도 여태까지 대통령 중심제에서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한[2] 충청도에서 대통령을 만들고자 하는 염원이 있어서 자주 회자된다. 정치권의 '~~ 대망론' 시리즈의 원조가 이 충청 대망론이다.

2. 등장 배경

충청대망론이 나오는 배경에는 충청도 특유의 캐스팅보트 성향도 한몫한다. 호남/영남 지역과는 달리 충청도는 각종 여론조사나 선거 구도에서 진보/보수, 민주당계 정당/보수 정당 중 어느 한쪽으로 확실히 쏠리지 않고 표심이 상당히 유동적인 경합지역이다. 따라서 충청도에서 승기를 잡은 후보/정당이 전체 선거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는 징크스가 상당히 강한 편이다.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충청도 출신 정치인이 정치권에서 관심을 받게 되는 것이다.

3. 한계

충청 대망론의 주인공이었던 인물이 정치 스캔들 등으로 몰락하면 언론 등에서 충청 大으로 희화화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충청 대망론 기대주였던 이완구가 국무총리에 취임한 지 얼마 안 되어 성완종 리스트로 낙마하자 채널A 뉴스 TOP 10에서 이 주제를 다룰 때 대놓고 화면 상단에 충청 大亡론이라고 적었었다(...).

3.1. 지역 성향에 따른 한계

충청지역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이 가장 큰 장벽으로 작용하는데,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충남 부여군이 고향인 김종필 후보가 다른 후보들이 텃밭에서 득표한 데 비해 초라한 득표율로 1위를 했고, 특히 충청남도에서는 그나마 1등을 차지했지만, 충청북도에서는 노태우에 지고 말았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충남 논산시가 고향인 이인제 후보는 충청남도에서 보수정치의 적자로 일컬어지던 이회창 후보보다 겨우 2.6% 높은 득표율을 보였다(...).[3] 또한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의 선영이 예산군에 있는 이회창 후보는 기초자치단체 단위에서는 이겼지만 시도단위로 보자면 이명박 후보에게 밀려 2위를 기록했다.. 안 그래도 인구도 적은데다가 타 지역 사람들이 지지해 줄지도 불확실한데 출신지역 내에서도 표가 모이지 않으니, 계산이 서지 않는 것.

3.2. 인구 측면의 한계

인구 측면을 고려하면 대통령 직선제 체제에서 충청 대망론은 당분간은 실현되기가 쉽지 않다. 2021년 기준으로 충청남도의 인구가 212만명, 충청북도가 160만명, 대전광역시가 145만명, 세종특별자치시가 37만명으로 다 합쳐도 약 550만명인데, 한국 보수정치의 총본산인 대구광역시의 인구가 238만명, 경상북도의 인구가 262만명으로 광역자치단체 딱 두군데를 합쳐서 500만명 정도 된다. 충청지역 전체의 표를 다 모아도 TK지역 한군데와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4] 아래에 언급된 충청권 보수정당에서도 보이듯이 충청에서 대통령 선거에 도전할만한 정치인은 대부분 보수진영에 있었는데, 항상 영남지역 출신들이 주도권을 행사해 온 보수진영에서는 우선 충청도 사람이 당내 경선을 뚫고 대선후보가 되기도 어려운데다, 인구가 많은 경상도 지역 유권자들이 충청 출신 후보를 지지해 줄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기 때문.

한국 정치의 고질적 문제들인 영남-비영남의 인구 차이(충청과 호남의 인구를 합쳐도 영남보다 적다)와, 이에 근거한 지역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이 문제는 당분간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과 이인제의 관계를 분석해 보면 충청 대망론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심지어 이제 인구는 충청이 호남을 추월했지만, 여전히 정치적 입지는 낮은데 이는 아직 출신지로 본 인구에서는 호남이 앞서며,[5] 앞에서 말했듯 충청도는 정치적 입장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데 반해, 호남 지역은 민주당계 정당 지지로 단일한 입장을 낸다는 점에서 오는 차이로 보인다. 특히 이 점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호남의 경우도 2024년 기준 '호남 출신 대통령'으로 배출한 것은 김대중 딱 한명뿐이다. 하지만 '호남 지역에서 지지한 대통령'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까지 세 명이다. 이는 호남 지역의 정치적 입장은 후보가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냐의 측면이 아니라 '민주당계 정당 지지'로 표현되기 때문에 타 지역 출신의 인물이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서 승리해도 그것을 '호남의 승리'로 여길 수 있지만 특정 정당 지지로 표현되지 않는 충청권의 정치적 입장은 '충청 출신의 후보', 아니면 최소한 '충청권과 강한 연고를 가진 후보'가 나와서 승리해야만 그것을 '충청의 승리'로 볼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특히 위의 3명중에서 2명인 노무현과 문재인이 PK권(부울경남권) 출신이라는 것은, 민주당계 정당의 공격적 선거전략중 하나인 '동진전략', 즉 영남의 양대 권역중에서 TK권(대구경북권)보다 비교적 보수정당 몰빵세가 약하며 출신지역보다는 정책이나 성향, 사안에 따른 투표를 하는 유권자가 많은 PK권의 표심을 공략하는 전략이 유효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일부 민주당 지지자, 특히 호남 출신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는 "민주당이 대통령을 배출하려면 부산경남 출신 인사를 후보로 내세우는 방법밖에 없다"는 씁쓸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어쨌건 해당 지역이 원하는 정치적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이며, 이는 한국 정치사에서 상당히 큰 의미를 가진다. IMF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최초로 김대중 대통령을 통하여 건국이후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루어 낸 한국이 다시 군사독재시절과 같은 보수 일당독재의 국가로 돌아가지 않고 사실상 양당제가 자리잡게 된 배경에는 해당 전략의 성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대표적인 캐스팅보터 지역'으로 손꼽히는 충청권 표심을 얻기 위해 양대 정당이 충청 지역 출신 후보를 내놓도록 할 수 있느냐고 하면, 사실은 그것도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위에서도 지적된 바와 같이 인구 때문이다. 이는 20대 대선의 사례를 보면 극명히 드러난다. 텃밭 승부에서는 영호남 자체의 체급 승부때문에 윤석열이 20만표가량 우세를 점했는데 이는 이재명이 제주에서 4만여표, 인천에서 3만 5천여표, 재외국민 투표에서 3만 3천여표 등 소규모 경합지역 승부에서 번 우세를 다 막아내고도 9만표쯤 남는 큰 격차이다. 그리고 이외의 주요 경합지역 승부에서는 이재명이 경기 한 곳에서만 이기고 윤석열은 서울과 충청권, 강원에서 모두 이겼으니 윤석열이 완승을 거둔 것처럼 보이는데... 어랍쇼? 이재명은 경기 한 곳에서 뽑아낸 우세(대략 46만표)로 충북+충남+대전=충청권에서의 열세(약 15만표)를 모두 메꾸고, 강원도에서의 열세(약 12만 5천표)도 모두 메꾸고, 텃밭 승부에서 밀렸던 표를 소규모 경합지역에서 미처 못 메꿨던 9만여표도 다 메꾸고, 그러고도 표가 남아서 서울에서의 열세(약 31만표)보다 작은 격차(약 25만표)로 패배했다. 그렇다고 경기도가 텃밭 지역 수준으로 이재명에게 몰표를 준 것도 아니고 충청권과 비슷하게 5% 정도의 득표율 격차가 났을 뿐이다. 즉 충청권 3개 지자체에 깍두기로 강원도까지 함께 덤벼도 경기도에게 꽈짓 밟혀버릴 정도의 체급 차이가 난다.

충청권 캐스팅보터론 자체가 선거 판세(특히 대선 판세)를 자꾸 권역별로 나눠서 분석하다보니 발생한 일종의 착시때문에 과장되게 받아들여지는 면이 있다. 선거인단 제도처럼 권역별 승패가 선거의 승패에 직결되는 선거제도면 모를까, 전 인구의 1인 일표가 동등한 대통령 선거 제도 하에서는 캐스팅보터 지역이 가지는 영향력이 제한적인 것이다. 다른 지역을 보면 PK 지역은 거의 항상 보수정당이 이기는 지역이라곤 하지만 충청권보다 인구규모가 큰 지역(사실은 수도권을 제외하면 최대의 인구를 가진 지역)이면서 TK만큼 압도적으로 보수정당 지지로 쏠려있는 지역은 아니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표가 어느정도 민주당으로 흘러가는지는 대선의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까 민주당계 정당의 입장에서는 충청권 표심 전략보다는 동진 전략을 우선적으로 채택하게 되어, 보수 콘크리트 지지 지역인 대경권은 어쩔 수 없더라도 실질적으로 인구와 체급을 가진 부울경 표심 전략을 먼저 고려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보수정당 역시 이 지역의 표심 단속에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또 수도권은 비수도권 전체를 합친것 이상의 거대한 표밭이다. (그나마 수도권의 표심은 타 지역만큼 지역 감정 이슈의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그러니 양당 모두 둘 다 캐스팅보터 지역이라고 해도 최소한 대선 무대에서는 충청권보다는 수도권 표심에 훨씬 큰 관심을 기울일수밖에 없다. 그런데 충청권 표심을 잡기 위해 대선 후보의 출신 지역까지 신경쓸 정도로 여기에 집중할만큼 여유있는 상황이 쉽게 나오리라 생각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요새는 충청도의 인구 성장세가 영호남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는 이유로 다시금 회자 되고 있다.[6]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데, 부정적으로 보는 쪽은 충청도의 인구가 늘어난다고는 해도 수백만 이상 더 많은 영남을 실질적으로 따라잡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 그리고 충청도에서 인구가 가장 빠르게 늘고 있는 충남 북부나 대전권, 세종시 지역등은 비 충청도 출신 이주민의 증가와 수도권과의 연계 강화(사실상의 메가 수도권화)등으로 인해 성장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 주민들이 충청권의 지역주의에 대해 공감할 유인이 별로 없다는 점, 게다가 세대적으로도 '우리 지역 출신 인물도 대통령을 한번 해 봐야지!' 식의 향촌 소속감에 기반한 지역주의 정치 정서에 대해 젊은이들은 별다른 공감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 등을 들어 더이상 충청 대망론이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또 이 외에도 '지역 발전 이슈에서는 지역 소속감을 가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충청권의 인구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지역 개발이 결국은 서울-대전 메갈로폴리스의 확장이나 다름없는 수도권 개발 이슈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상 충청도의 독립적인 지역 개발 이슈와는 다른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충청 대망론 자체가 상당부분 영남-호남 대립구도 사이에서 '충청도 사람들은 뭐 핫바지냐?[7] 식의 정서에 기반해서 나타난, 그리고 20세기 중반의 인구구조를 기반으로 나타났던 현상인데 이 인구와 사회구조가 한번 해체된 뒤에 다시 충청권에 인구가 모여든다고 해서 과거의 정서와 현상이 그대로 재현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과도한 기대라고 반론하기도 한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보는 쪽은 새로 증가하는 인구가 충청도 출신으로서의 정체성은 다소 떨어질 수 있어도 지역발전 측면에서는 정체성을 가질 수 있고, 충청도와 전라도, 대경권간의 인구차이 60~70만 명은 더이상 비슷하다고 묶을 정도의 차이는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즉 영남에서도 대경권과 부울경권은 정치적으로 분명히 구분되는 권역인데 이 둘을 묶어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으므로 충청권의 정치적 영향력도 지속적으로 커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4. 역대 충청 대망론 회자 인물

4.1. 성공

# 실제로 한국갤럽의 법무장관 및 검찰총장 직무수행 여론조사, 리얼미터의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도 충청도 사람들은 윤석열에 대해 긍정적 평가가 많았다. 한국갤럽, 리얼미터. 이렇게 지지율이 높기에 현재 가장 현실적인 충청 대망론 주자이다. 다만 아버지의 고향이 충남 공주일 뿐이지 본인은 직접적으로 충청도와 연고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충청 대망론이라기에는 상당히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하다. 오늘날 시간이 지날수록 등록기준지(구 본적지)의 인식이 옅어져 가기에 발생하는 현상이다.[10] 윤석열 대망론 문서 참고. 그리고 제20대 대통령 선거로 당선되면서 충청 대망론이 통한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물론 위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본인이 직접 충청도와 연고가 있지는 않지만 대선 과정에서 충청도 연고를 강조했고 실제 득표율에서도 세종특별자치시[11]를 제외한 충청도 지역에서 모두 전국 평균보다 높은 득표율로 승리한만큼 충청 대망론이 실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12]

또한 대통령 윤석열의 허니문 선거였던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충청도 광역자치단체장 4석을 모두 석권하면서 충청권이 윤석열 정부에 확실하게 힘을 실어 주었는데, 12년만에 충북-충남-대전[13]이 보수정당의 손에 돌아왔고 호남-제주에 버금가는 보수정당의 험지 세종특별자치시마저 여당의 손을 들어 주었다는 것은 그만큼 윤석열 개인이 충청권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증거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충청권 보수정당이 무너진 이후 충청도는 대부분 전국선거의 판세를 그대로 따라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는 아니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경향이 강할 것으로 예상되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의 충청권 결과를 봐야 확실한 결론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논쟁의 근본 원인은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윤석열이 출마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선거였다는 데에 있다. 지역 대망론의 핵심이 정치인이 지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성장하고, 스스로를 그 지역의 대표자로 인식하는 데에 있다고 한다면 이전에 회자되었던 인물들과 달리 윤석열에게 충청인들의 마음이 온전히 옮겨가기에는 다소 시간이 촉박했다.

4.1.1. 반론

윤석열의 경우 본인과 충청도의 인연은 아버지의 고향이 충남이라는 것과, 본인이 논산지청장으로 10개월[14], 대전고검 검사로 1년 4개월[15] 근무한 게 전부다. 그래서 충청 대망론의 실제 사례라고 보기엔 연고가 미약하다는 이야기가 항상 있었다. 게다가 본인이 충청도를 사랑해서 자청해서 근무한 것도 아니고, 좌천당한 후 검찰의 순환근무제도로 잠깐 산 것이다.

이런 윤석열의 사례를 이회창과 비슷한 케이스라고 하는 것은 1935년생인 이회창과 1960년생인 윤석열 사이에는 한 세대의 시대적 간격이 있고, 그 시간동안 한국 사회도 그만큼 격심하게 변화했음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겉모습이 비슷하니까 비슷한 케이스라고 단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일단 이회창이 주로 활동하던 시기의 한국 사회는 그 이후 시기에 비해 고향에 대한 소속감이 훨씬 더 강력했다는 점부터 생각해야 한다. "당신 어디 사람입니까?" 내지는 "당신 고향이 어딥니까?" 라는 질문이 그만큼 중요한 시대였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회창에게는 엄밀히 말하면 고향, 즉 그가 '나고 자란 곳'이 없다. 이는 단순히 그가 실향민이라서 그렇다는 뜻이 아니다. 그의 출생지인 황해도 서흥군은 법조인[16]이었던 아버지 이홍규의 임지였고, 따라서 이후 어린시절과 학창시절을 외가가 있는 전라도나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광주(호남), 청주, 서울등을 옮겨가며 보냈던 것이다. 그러니까 실향민들은 오히려 "지금은 북한에 있어서 갈 수 없게 된 어디어디가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오" 라고 인식하는데 비해 이회창에게는 당시의 개념으로 보면 '출생지'는 있어도 자신이 성장하면서 그 지역에서 연고와 애착을 형성했다는 의미의 '고향'은 딱히 없는 셈이다. 따라서 이회창이 충남 예산군을 자신의 '연고지'로 내세운 것은 단순히 '충청도의 표심을 모으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 정도로만 볼 것은 아니다. 본적지를 중시하고 집안(가문)을 중시하던 당시의 관념에서 <아버지의 고향+선산이 있는 곳+친척들도 많이 사는 곳> 이라는 것은 곧 '자기 집안(친가)의 근거지'라는 뜻이기에 (이회창 자신이 장기거주한 적은 없어서 좀 낮뜨겁기는 해도) '이곳이 내 연고지이다, 고향에 가까운 곳이다' 라고 말할만한 근거는 있었던 셈인 것.

하지만 이회창보다 한세대 뒤 사람인 윤석열의 시대에는 사회상 자체가 달라졌다. 본 문서에서도 지적하듯 '어느 지역 사람이 대통령을 한번 해 봐야 한다'는 관념이 구시대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처럼 고향(출신지)를 중요시하고 그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는 관념도 점차 약해지고 있으며 이에 발맞춰 본적이나 집안(가문)을 중요시하는 관념 역시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한 시대상속에서 활동한 윤석열에게 '아버지 고향'은 말 그대로 '아버지 고향'이고 '등록기준지'는 옛날에 '본적지'라 불리던 개념일 뿐이지 이회창의 시대와 같이 강한 구속력을 가지는 '가문의 근거지'가 아니다. 게다가 이회창의 경우 "나는 선뜻 고향이라 할 만한 곳이 없고, 그나마 출신지도 이젠 갈 수 없는 곳이 되었지만 그 대신 충남 예산이 선영과 친족들이 있는 연고지이다" 라는 논리라도 성립하지, 윤석열은 말 그대로 그냥 서울이 고향이다. 선거 와중에 충청권 유세나 행사에서 자신이 '충청의 아들'이라고 외친 것을 두고 본인의 충청도 연고를 강조했다고 하기에는 원래 정치인은 어떤 지역에 유세를 가면 그 지역과 없던 연고도 만들어내서 지역 유권자들과 친한척 해야 하는 직업이다. 아버지 고향이 충청권인데 그정도 수사법도 쓰지 않는다면 그건 그냥 정치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이회창이 '충청 대망론'의 주인공 중 하나이자 김종필의 뒤를 이어 '충청권 맹주'의 자리를 어느 정도나마 계승한 인물 중 하나라고 인정받는 이유는 그가 단순히 선거운동에서 자신의 연고지가 충남 예산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위에서 설명된 것처럼) 그 주장이 당시 사회상에서 그만큼 강한 설등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단지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연고지를 내세우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충청권 보수정당계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자유선진당의 창당을 비롯하여 충청 지역에서 받는 지지를 기반으로 한 정치활동을 꾸준히 시도했기 때문이다. 물론 윤석열은 '대선 3수' 이회창과 달리 정치경력에서 처음 도전한 선거가 대선이었는데 거기서 당선되어버렸다는 진기록을 세운 인물이므로 이회창이나 다른 정치인들과 같이 장기간에 걸친 정치활동을 기준으로 판단하자고 말할수는 없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출마한 그 1회의 선거(20대 대선)에서조차 지역 표심을 얻기 위해 친가의 연고를 어필한 것 이외에는 특별히 '충청권 맹주'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정치적 행보를 보였다고 말할 수 없는 윤석열을 '충청 대망론 주자' 라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 아닌가, 또는 새로운 충청 대망론 주자와 대망론의 성공사례를 찾아내기 위해 억지로 끼워맞춘 것이 아닌가 반문을 제기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실제 선거 결과를 보더라도 대선 당시 윤석열이 충청권에서 거둔 우세는 그리 눈에 띄는 정도는 아니다. 경북 안동 출신에 본인은 물론 친가에도 충청도와 연고가 있는 사람이 없는[17] 이재명과 표차가 고작 충남 8만표, 충북 5만 6천표, 대전 2만 9천표에 불과하며, 세종에서는 세종에서는 1만 7천표 차로 지기까지 했으며, 비율로 따지면 충남에서 약 6%, 충북에서 약 5%, 대전에서 약 3% 정도의 우세를 거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함정은, 20대 대선과 유사하게 보수계/민주당계의 극단적인 양강 구도 대결로 갔던 18대 대선에서 박근혜가 충청권에서 거둔 우세가 이보다 훨씬 더 컸다는 점이다. 대전에서는 불과 0.3% 차이의 박빙 신승이었지만 충남에서 13%, 충북에서 14%에 이르는 압도적인 우세였다. 그러면 마침 육영수의 고향이 충북 옥천군이기도 하니 박근혜도 '충청의 딸'인가? 충청 대망론 주자 목록에 박근혜 추가해도 되는가? 물론 보다 합리적인 대답은 윤석열이 충청권에서 거둔 우세는 양강 구도의 경합 선거에서 캐스팅보터 지역이라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수준의 격차였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영호남권의 텃밭을 제외하고 다른 경합 지역 승부에서 이재명이 경기, 인천, 제주를, 윤석열이 서울, 충청권, 강원을 먹은 결과 윤석열이 이긴 선거였던 것이지 특별히 충청권이 윤석열의 근거지였다고 볼 선거는 아니었다는 것.

실제 충청 대망론이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대선 이후 윤석열과 여당 국민의힘의 정책을 보면 딱히 충청권에서 이득을 봤다고 할만한 것이 거의 없다. 오히려 과학계 R&D 예산 삭감, 정부기관 세종시 이전의 지지부진, 우주항공청 입지 문제 등에서 여러모로 손해만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제로 22대 총선에서는 대전 7개 선거구 모두, 세종시 2개 선거구 모두, 충남 11개 선거구 중 8개, 충북 8개 선거구 중 5개가 민주당+새로운미래 김종민이 승리하면서 윤석열의 충청대망론은 힘을 잃었다.

4.2. 과거 회자 인물

다음은 충청 대망론의 주인공으로 회자되었던 인물들이다. 사망, 정계 은퇴나 정치 스캔들로 몰락한 경우도 기재한다.

4.3. 번외

4.4. 진행 중

김종필 - 이회창 - 이인제 - 안희정으로 이어지는 탄탄했던 주자가 부재하자 여러 후보들이 난무했으며 개중에는 정진석, 박병석[19]처럼 대권 의지조차 확실치 않은 이들도 언급되었다.

5. 역대 충청권 지역 정당

충청 대망론의 산실(産室) 역할을 한 지역 정당들은 충청권 보수정당 참조.

6. 논쟁

다른 지역의 대망론처럼 지역감정을 유발해서 대통령 해먹거나 지역 이익 챙기고 싶은 것을 "충청도에서 대통령 만들때가 됐다."같은 식으로 포장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게 원칙인데 무슨 할당제도 아니고 젊은 세대 사이에선 어디 출신의 대통령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가 구시대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볼 수 있다.

한편 지역주의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관점에서는 유독 TK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오래 집권해온 한국 정치사에서[20] 충청도 주민들은 정치적으로 '소외'되어 왔고, 따라서 대망론 그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도 있다. 특정 지역으로의 정치력 편중을 먼저 지적하지 않고 '소외된' 지역의 대망론을 지역주의로 비판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TK 지역에 관해서는 "대망론"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데, 대경권 쪽은 박정희 정권 이후 항상 한국의 보수정치를 주도하고 있으며, 매번 유력한 대통령 후보나 진짜 대통령을 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7. 같이보기


[1] 내각제가 도입되면 대통령은 상징적인 국가원수로 밀려 나고 실세 정부수반은 수상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단 내각제 개헌을 노렸던 충청권 주자는 김종필 뿐이었다. 안 그래도 한국은 제2공화국의 실패와 민주화 과정에서 내각제가 독재 정권의 집권 연장 꼼수로서 도입될 뻔했었기 때문에 이래저래 내각제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았다. 그런데다가 김종필의 내각제 개헌 시도가 실패한 이래로 내각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더 추가돼 버렸기에 정치인들이 쉽사리 이 노선을 택하긴 힘들다. 그래서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내각제 개헌이 옳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국민들의 국회 혐오정서 탓에 감히 소신을 밝히지 못하고 이원집정부제 개헌이나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이라고 돌려 말할 지경이다.[2] 충남 아산 출신의 윤보선 대통령이 있었지만, 정작 재임 당시에는 의원내각제로 실권이 없었다. 이후 대통령 중심제하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지만 박정희에게 져, 실권이 없는 대통령으로 남았기에 사실상 세지 않는다. 참고로, 윤보선 대통령 재임 당시 총리였던 장면은 서울 출신이다.[3] 다만 당시 이회창 후보는 본인은 이북 출신이지만 본적이 충청도라는 점을 내세워 충청표를 얻는데 성공했다.[4] 참고로 부울경지역의 인구는 약 770만명이다.[5]산업화이촌향도 현상으로 인한 인구 유출이 호남에서 더 심했다는 뜻이다.[6] 정확히는 충청도도 인구가 약간씩 늘고 있는 정도이지만 아예 급감하고 있는 영호남에 비해서는 훨씬 나은 상황이다. 따라서 비수도권에서 충청도의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7] feat. 김종필[8] 유년기 시절도 충남 공주에서 보냈다고 한다.[9] 이회창도 본인이 정치입문 전까지 예산에 거주한 적이 없음에도 아버지의 고향이 예산이라는 점에서 충청권 인사로 분류되었다.[10] 이와 유사한 사례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이회창 역시 황해도에서 태어났고, 엄밀히 따지면 충청도 출신은 아니지만 충남 예산군에 선대의 선영이 있었기에 충청도 유권자들은 이회창을 사실상 고향 사람으로 인식했다. 예산의 이회창家[11] 여긴 중앙에서 내려온 공무원들이 많은 행정 도시라 기존 충청도민들과 달리 민주당 텃밭이다.[12] 다만 윤석열이 승리한 지역으로 범위를 좁히면 인구가 많아 격차가 벌어지기 힘든 서울을 제외하면 가장 근소한 격차로 승리한 것이 흠이다.[13] 다만 대전은 5대 지선 당시 자유선진당이 당선자를 냈으므로 민주당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건 단 8년이다.[14] 2008년 3월~2009년 1월.[15] 2016년 1월~2017년 5월.[16] 일제시대에는 법원서기, 광복 이후 검사.[17] 다만 이재명의 부인 김혜경이 충북 출신이기에 윤석열을 '충청의 아들'이라고 하는 논리로 치면 이재명도 '충청의 사위' 이긴 하다.[18]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비례대표 1번이었으나 비례대표 의석 배분 기준인 3%를 넘지 못하고 낙선했다.[19] 박병석의 경우 충청 대망론에 대해 박범계를 지지하는 의사를 보였다.[20] 박정희 16년, 전두환 8년, 노태우 5년, 이명박 5년, 박근혜 4년씩이었다. 반면 부울경은 15년(김영삼, 노무현, 문재인), 호남은 5년(김대중)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