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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16:03:18

고종(송)


송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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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北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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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태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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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 초대 황제
고종 | 高宗
파일:Gaozong_Of_Song.jpg
출생 1107년 6월 12일
북송 동경 개봉부 변경 황궁
(現 허난성 카이펑시 구러우구)
즉위 1127년 6월 12일
남송 응천부
(現 허난성 상추시 쑤양구)
사망 1187년 11월 9일 (향년 80세)
남송 임안부 황궁 덕수궁
(現 저장성 항저우시 린안구)
능묘 영사릉(永思陵)
재위기간 남송 황제
1127년 6월 12일 ~ 1129년 3월 23일
남송 황제 (복위)
1129년 4월 20일 ~ 1162년 7월 4일
남송 태상황
1162년 7월 4일 ~ 1187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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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e8b57><colcolor=#ece5b6> 성씨 조(趙)
구(構)
부모 부황 휘종
모후 현인황후
형제자매 35남 34녀 중 9남
배우자 헌절황후, 헌성자열황후
자녀 1남 5녀 (양자 2남)
덕기(德基)
작호 촉국공(蜀國公) → 광평군왕(廣平郡王) → 강왕(康王)
묘호 고종(高宗)
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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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요수성헌천체도성인성덕경무
(光堯壽聖憲天體道性仁誠德經武)
위문소업흥통명모성렬태상황제
(緯文紹業興統明謨盛烈太上皇帝)
시호 수명중흥전공지덕성신무문소인헌효황제
(受命中興全功至德聖神武文昭仁憲孝皇帝)
연호 건염(建炎, 1127년 ~ 1130년)
소흥(紹興, 1131년 ~ 1162년)
절일 천신절(天申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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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황제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송나라 재건2.2. 황제 시절과 가족 송환, 양위 후의 삶2.3. 고려와의 관계
3. 평가4. 대중매체에서5. 둘러보기(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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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송나라의 제10대[1] 황제이자, 남송의 초대 황제. 묘호는 고종(高宗), 시호는 수명중흥전공지덕성신무문소인헌효황제(受命中興全功至德聖神武文昭仁憲孝皇帝). 휘는 구(構), 자는 덕기(德基).

2. 생애

2.1. 황제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송나라 재건

송휘종의 9남이자 송흠종의 이복동생으로 휘종과 현인황후 위씨(顯仁皇后 韋氏) 사이에서 첫째아들로 태어났다. 휘는 구(構)이며 광평왕(廣平王)에 책봉되었다가 이후 강왕에 책봉되어 즉위 전까지는 강왕이라고 불렸다. 고종이 강왕이던 시절, 아버지 휘종이 금나라와 강화 협상을 할 때 인질로 그를 보냈다. 그런데 워낙 담대하고 떳떳해서 금나라가 이 사람을 궁중에서 곱게 자란 황자라고 믿지 않고 다른 황족을 보내달라고 하는 바람에 돌아올 수 있었다.

금나라에 의해 수도 개봉이 함락되고 송나라 황족들이 금나라로 끌려간 정강의 변이 일어날 당시, 조구 본인은 수도 개봉이 아니라 제주(濟州)에 있었기 때문에 수도가 함락되었음에도 금나라로 끌려가는 일은 운좋게 피했고, 수도가 함락됐다는 소식을 전해듣자 곧바로 강남(중국)으로 도망쳤다. 건강(建康)[2]에 도착한 이후 조구는 개봉에서 탈출하여 남쪽으로 내려온 신료들의 추대로 황제 자리에 올랐고, 철종의 황후였던 원우황후 맹씨가 보낸 "어서 빨리 즉위하여 나라와 종묘사직을 구하라."는 조서를 하늘에 읽어 이를 고한 뒤 무너진 송나라(남송)를 재건하고 연호를 건염(建炎)으로 하였다.

사실 휘종의 9남으로 태어나서 위로는 황제로 즉위한 이복형 흠종 말고도 여러 명의 이복형이 있었고, 맏형 흠종한테도 차기 황위 계승자인 11살짜리 황태자가 있었던 만큼 조구 본인은 황제 자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휘종의 아들은 총 35명이고, 이중 정강의 변 이후에 태어난 3명과 정강의 변 이전 요절한 7명을 제외하면 정강의 변 당시 살아있던 휘종의 황자는 총 25명이다. 이들 모두가 강남(중국)에서 송나라가 재건될 때 황제 자리에 오를 만한 경쟁자가 될 수 있었으므로, 남명의 제위 계승 문제가 송나라에서도 터질 법도 했는데, 휘종과 흠종을 비롯해서 조구를 제외한 송나라 황자들을 모조리 금나라가 잡아갔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강왕 조구가 송나라의 남은 신료들과 백성들의 구심점이 되어 남송 조정을 조직할 적에 문제가 되고도 남았던 제위 계승 분란이 아예 생기지도 않았다. 어떻게 보면 금나라가 송나라의 재건을 도와준 셈이다.

2.2. 황제 시절과 가족 송환, 양위 후의 삶

고종의 양자인 효종이 뒤를 이었지만 원래는 고종에게 1남 5녀의 자녀가 있었다.

고종도 아버지 휘종만큼은 아니지만 후비가 많았다. 정비였던 헌절황후임신한 채 정강의 변으로 금나라로 끌려갈 때 말에서 떨어져 유산하고 말았다. 헌절황후는 남송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금나라의 세의원에서 사망했으며, 고종의 모후인 현인황후가 남송으로 돌아올 때 이 소식을 전했다.[3]

자칭 유복공주라는 사람이 자신이 금나라에서 탈출한 고종의 누이라고 사칭한 이야기가 인터넷에 퍼져있는데 이것은 정사가 아니라 야사이다. 송사 환관 풍익전에 유복공주를 사칭한 사람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나머지 자세한 이야기는 그냥 민담이다.

현비 반씨가 낳은 외아들 원의태자 조부가 있었다. 1130년, 묘부와 유정언 등이 고종을 협박하여 강제로 퇴위시키고 어린 조부를 황제로 옹립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이 바로 묘유병변으로, 묘부와 유정언 등은 재상 장준에 의해 제거되고 고종이 복위하였다. 조부는 위국공으로 강등되었고, 이때의 충격으로 인해 불과 3세의 나이에 요절하였다.

이후 고종은 아이를 갖지 못했다. 황위에 있는 동안 다시다난했기 때문에 스트레스 때문에 불임이 된 걸 수도 있다. 양주 행궁에서 후궁들과 즐기다가 금나라 군대가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놀라 장강을 건너 도망친 적도 있다. 금나라의 정예군이 장강을 넘어와 항주를 함락시키자 단신으로 남중국해로 도망쳐서 망망대해를 떠돈 일도 있었다.

조부를 잃은 후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등 갖은 노력에도 자녀를 얻지 못한 고종은 종실 중에서 양자를 들여서 황태자로 삼아야 했다. 송태종의 자손은 유독 귀했다. 태종의 아들이 요절한 경우도 많았고, 정강의 변으로 태종의 후손이 금나라로 많이 끌려갔다.[4] 태종의 후손들이 귀했던 상황에서 금나라를 다녀왔던 신하들이 금태종의 모습이 생전 태조 조광윤과 닮았다고 말했다. 나라에서는 죽은 태조가 동생 태종에게 빼앗긴 제위를 되찾으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고종은 이를 하늘의 뜻으로 생각하고 태종의 형 송태조의 자손에게 황위를 돌려주기로 결정하였다. 따라서 태조의 후손 중 2명을 선별하여 자신과 헌성자열황후 오씨의 양자로 입적시켰다. 이때 태조의 차남 조덕방의 6세손 조백종(趙伯琮)을 조신으로 개명시키고 양자로 삼았고, 조백구(趙伯玖)도 양자로 삼고 조거로 개명시켰는데 이중 조신이 그나마 남송의 중흥을 이끈 효종이다. 의도야 어찌됐건, 안보 불안이 심각했던 상황에서 사후 중대한 문제가 될 수 있었던 후계 문제를 생전에 확정하여 정통성을 확립하고 양위를 통해 안정적으로 승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음은 분명 적절한 판단이었다.

고종은 정통성 문제로 친아버지 휘종과 이복형 흠종은 물론 다른 황실 가족의 송환에 소극적이었다. 심지어 친어머니 위씨도 처음에는 송환을 그닥 반가워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정강의 변 이후 생각보다 빨리 고종이 즉위하고 임안을 수도로 삼아 새로 조정을 꾸리고 송나라가 재건되자 금나라는 포로로 이용 가치가 떨어진 휘종과 흠종을 조용히 송환하려고 했는데, 고종은 이 제안도 거절했다.

이는 이해가 충분히 되는 일이다. 엄격한 적장자 상속제와 예율을 적용하는 유교국가 송나라에서 상황인 아버지 휘종과 적장자[5]인 이복형 흠종은 고종에게 위협이 될 수 있었다. 휘종이야 자기가 때려쳤으니 그렇다 쳐도 적장자로 태어나서 황태자로 있다가 제위를 적법하게 이어받은 흠종은 별다른 결격사유가 없으므로, 복귀하면 흠종이 원하지 않아도 황위를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위기 상황에서 포로로 끌려가는 아버지와 형을 내팽겨치고 함부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고 문책당하고 재수없다면 황위 참칭자로 비참하게 죽을 수도 있다는 등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훗날, 명나라 시절 정통제토목의 변으로 잡혀갔을 때 이복동생 경태제가 등극해 위기를 수습했지만, 송환된 정통제가 경태제의 와병을 틈타 복벽을 단행하고 경태제는 폐위당한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더군다나 정통제는 황위에 복귀한 뒤 경태제 옹립에 공이 큰 우겸[6]을 죽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송 고종을 옹립한 신하들 역시 휘종과 흠종의 귀환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송나라가 금나라와 강화한 뒤 휘종의 시신만 귀환하였다. 고종의 정통성에 걸림돌이 되는 형 흠종과 적모 현숙황후 정씨는 죽어서도 고국 땅에 돌아오지 못했다. 고종의 친모 위씨는 이때 송나라로 귀환했고 임안의 궁궐에서 20여 년 동안 호화롭게 살았다.

이후 해릉양왕이 변량으로 천도했고 남송을 공격하기 위한 준비를 하였음에도, 고종은 전혀 이에 대비하지 않았다. 이후 채석기 전투에서 승리하였고, 효종 시기에는 북벌을 위해 노력한 우윤문이 금에 사신으로 갔을 때 금군이 배를 통해 변경 지역으로 물자를 운송하는 것을 보고 금군의 남침을 간파했으나 남송 조정에 의해 무시당하였다.

위씨는 휘종의 후비로 금나라 오국성에 있을 때 휘종의 다른 후비였던 귀비 교씨와 의자매였다. 송환이 결정되자 교씨는 위씨를 축하해 주었다. 교씨는 울면서 자기는 돌아가진 못해도 위씨에게 이곳에서의 생활과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말했다. 위씨는 잊지 않겠다고 말했고 다음날 아침에 금나라 군대의 호위를 받아 송나라로 가는 마차에 올랐다. 이 때 흠종 역시 서모 위씨에게 송나라로 돌아가면 동생 고종에게 자신은 '황제 자리 따윈 필요없고 그냥 평범하게 살겠으니 제발 고향 땅에 돌아가게만 해달라.'고 울면서 말했다. 위씨는 흠종에게 그러겠다고 말하고 마침내 귀향길에 올랐다. 당시는 한여름이라 무척 더웠는데 짜증이 난 금나라 군사들이 그냥 다 때려치우고 돌아가려고 했다. 위씨는 이대로 돌아가면 다시는 탈출할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여 "송나라에 도착하면 은상을 베풀겠다"고 약속하고 사자를 보내 장준에게 재물을 빌려달라 요청했다.

그러나 장준은 "함부로 나라의 재산을 쓸 수 없다"면서 거절했다. 위씨는 간신히 송나라로 돌아와서 약속한 은상을 겨우 베풀 수 있었다. 그리고 마중 나온 고종에게 이 사실을 고자질했다. 분노한 고종은 장준을 죽이려고 했지만 좌우의 만류로 포기했다.

위씨는 돌아와서 연일 호화 잔치를 열었는데 차츰 고달프고 힘들었던 금나라에서의 연금 생활과 교씨, 흠종 같은 문제는 잊어버렸다. 처음에는 흠종 송환을 몇 번 얘기했지만, 나중에는 그냥 덮었다. 흠종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고 오국성에서 생을 마감했다. 관에 실려 돌아온 휘종은 영우릉에 안장되었다. 위씨는 아들 고종과 호화로운 잔치를 열면서 남편 휘종이 어쩌다가 나라를 잃었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죽은 후에도 호화로운 장례로 영우릉에 합장되었다.

고종은 1162년에 양위했으며 1187년에 죽을 때까지 25년 동안 상황으로 지내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겼다. 죽은 후에는 영사릉에 안장되었는데 다른 남송의 황릉들처럼 남송이 망하고 1285년 양련진가도굴했다. 당연히 이때 황제와 후비들의 유해는 황야에 버려졌는데 휘종과 위씨가 합장된 영우릉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이건 원나라에서도 문제가 되었고, 양련진가는 결국 처형당했다. 원나라 황실의 입장에서도 황족의 무덤을 맘대로 도굴하는 짓은 곧 자신들의 황권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를 사전에 처단하기 위해 도굴꾼들을 적발하여 수시로 처형시켰다.

자칭 유복공주라는 사람이 자신이 금나라에서 탈출한 고종의 누이라고 사칭했다는 이야기가 인터넷에 있는데 정사가 아니라 야사이다. 송사 환관 풍익전에 유복공주를 사칭한 사람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나머지 자세한 이야기는 그냥 민담이다.

2.3. 고려와의 관계

1127년 정강의 변으로 수도 개봉이 함락되고 이후 고종이 송나라를 재건하여 남송 시대에 접어든 이듬해(1128), 남송 조정에서 절동로 마보군도총관 양응성이 고종에게 “제가 고려로 가서 우호를 돈독히 하고 금나라로 잡혀간 전 황제와 상황을 구할 기회를 도모하겠습니다.”라고 청하니, 고종이 양응성을 고려에 사신으로 파견했다.

고려사》에 따르면 6월 양응성이 고려 국왕 인종에게 어록을 올려 “여진(금나라)으로 가는 길을 빌려주십시오”라고 했고, 인종이 이에 답장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거절했다고 한다. 이 내용은 《송사》에 더 자세히 나와 있는데 남송의 양응성이 인종을 알현하여 여진(금나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고 설득하자 인종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대조(송나라)는 본시 산동에 길이 있는데 어찌 등주를 경유하여 여진으로 가지 아니하는가? <송사>

인종이 “그냥 송나라 등주를 경유해서 가면 되잖아?”라 하고 거절하자 양응성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귀국(고려)의 길이 가깝기 때문입니다. <송사>

당연히 고려 조정과 인종은 이런 대답에 어이없다고 생각했는데, 《송사》에서도 인종이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고 기록할 정도였다. 이후 인종은 문하시랑 전일을 양응성에게 보냈는데, 여기에서도 양응성을 만난 전일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고려가 송나라 일에 끼여들 수 없고, 고려가 해줄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양응성이 “여진은 수전에 익숙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니, 전일은 “여진은 항상 바닷길로 왕래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여진은 옛날 신하로서 본국(고려)을 섬겼지만 지금은 우리가 도리어 신하로서 여진을 섬기고 있으니[7] 그 강함과 약함을 알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 <송사>

이후에도 인종은 며칠 후 다시 중서시랑 최홍재와 지추밀원 김부식 등까지 보내서 고려의 입장을 재확인힌다.
이성(휘종, 흠종)께서 현재 연운에 계신 이상, 대조(송)에서 국토를 여진에게 모조리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이성을 맞아 올 수 있다고 할 수가 없을 겁니다. 어찌해서 병사를 훈련시켜 여진과 싸우지 않습니까? <송사>

위 말처럼 고려는 양응천에게 “지금 잡혀간 두 황제는 송나라가 나라 전체를 여진(금나라)에게 들어서 바쳐도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고, 끼어들 이유도 없다. 그러니까 너희 나라에서 군사를 훈련시키고 금나라를 공격해라.”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이후 양응성은 별 소득도 얻지 못하고 2달여간 고려에 머물다가, 인종에게 표문을 받아 남송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양응성이 10월 귀국해서 보고하며 고려 측 입장을 전하자, 고종은 ‘고려가 은혜를 저버렸다.’면서 크게 화를 내었다. 이에 우복야였던 황잠선은 고종에게 ‘우리가 큰 함선에 정예병 수만 명을 태우고 가서 고려 수도를 공격하면 두려워할 겁니다.’라고 고려 침공을 건의하기도 했다.

다만 이 말은 당시 남송의 상황을 생각해볼 때 현실성 없는 주장이었다. 심지어 금과도 사이가 나쁘지 않던 고려까지 송의 적으로 돌려버리는 그야말로 자충수가 될 수도 있었다. 즉, 남송 멸망 크리를 각오하고 시행해야 하는 무리수였던 것. 따라서 황잠선의 이 발언은 애당초 자신들조차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화는 나니 울분을 토한 표현 정도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현실성이 없다고 판단한 상서우승 주승비가 ‘바다를 건너가서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된다.’고 말하며 자존심 상한 고종의 화를 풀어주어 고종이 화를 가라앉혔다.

이후 고려는 11월 남송에 사신을 보내 이를 사과했다. 이후 조공품을 보내거나 고려로 도망갔던 송나라 사람들을 되돌려보내는 등 노력을 했음에도 전처럼 사이가 좋아지진 못했다. 1163년 이후로는 양국 모두 사신을 보내지 않았고 사실상 단교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고려도 할 말은 있었다. 과거 고려가 거란족과의 3차례 걸친 전쟁에서 송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송이 3차례 모두 거절한 과거가 있는 만큼, 고려 또한 송을 신뢰하지 못했고 먼저 신의를 깬 쪽은 송이었다.

3. 평가

예술가, 서화가, 서예가로서는 독보적이고 창의적이었던 휘종의 아들답게 고종은 서화 감상에 능하였으며 특히 서예에 뛰어났다고 한다. 능력은 당연히 휘종보다는 훨씬 나았었고 나라를 다시금 세웠지만 아버지 휘종이 간신 채경을 총애했듯 진회를 총애해 악비를 처형하는 등 진회의 20여 년 공포정치를 방관해버렸다. 반대로 아들인 효종은 즉위하자마자 악비를 바로 신원하여 왕으로 추존하고, 이를 갈며 증오하던 진회의 일족을 모조리 멸족시켜 버린다.

결론적으로는 나라를 다시금 세운 만큼 능력은 있었으나, 그 능력이 후대까지 좋게 이어져 성장하기엔 좀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예시로는 동진사마예, 후연모용수 그리고 본인과 묘호가 같은 고려의 고종 등이 있다.

송고종을 옹호하자면 악비한세충 같은 군벌은 황제의 만류에도 군벌들끼리 치고 받는 싸움이 자주 있었고, 사병을 갖고 있어 황제 입장에선 위협 요소였다. 이들의 군권을 회수할 필요성이 있었다. 또 남송 지역에 발생하던 반란 세력도 진압해야 하는 상황에서 북벌을 주장하는 악비의 뜻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 당시 강남(중국)은 불과 1120년에 방랍의 난이 있었던 지역이고, 이때의 강경 진압으로 3백만 명 내외로 추정되는 희생자가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은 송 조정에 대한 반감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휘종의 9남이었고 태자와 태손이 이미 있는 상황이라 아주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황제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인물이었는데, 대규모 혼란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즉위했다는 점도 고려의 여지가 있다. 거기다 악비말대로 충분히 개봉수복이 가능했다면 송고종은 자신의 정통성 강화를 위해서 개봉수복을 적극 지지했을 것이다.

휘종에 비해 다행인 것은 금나라의 대대적인 공습을 채석기 전투 등에서 막아냈고, 금에 칭신하며 조공을 바치는 등 굴욕적인 조약을 맺어 체면을 구기긴 했지만 금과 화친을 맺어 어찌됐든 남송을 지켜냈다는 점이다. 고종 입장에선 상기된 고려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듯 금을 처단하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았겠지만 현실적으로 안 된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8] 무엇보다 악비의 활약이 전부 사실이라면 이순신과 권율이 조선에서 왜군을 몰아냈는데 선조가 갑자기 이순신과 권율을 처형하고 조선 4도를 일본에 준 꼴인데, 송고종이 아무리 멍청하다해도 이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종은 채석기 전투 이후 몇 개월 안 가 양자 송효종에게 양위하고 본인은 25년 동안 상황(上皇)으로서 유유자적했다. 이때 사치스로운 생활로 인한 비판도 있지만, 그래도 고종의 뒤를 이은 효종이 남송 시절 재위했던 역대 황제 중에선 가장 뛰어난 명군이라 남송은 내실을 정비할 수 있었다.[9] 후계자 잘 둔 덕분에 다른 고종 시호를 받은 쪽보다는 사정이 나았다는 말도 있다.[10]

조선선조와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초기에는 악비에게 집을 하사하고 정충이라는 시호를 내리며 아꼈고, 선조 역시 이순신을 대신들의 반대에도 7계급이나 파격 승진을 시키며 아꼈지만 고종은 악비가, 선조는 이순신이 공을 세우자 질투하는 쪼잔한 모습을 보인 거 역시 비슷하다. 게다가 선조, 고종 모두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좋은 평가를 받았고 장수들이 군벌화 될까봐 걱정했던 것도 비슷하다.

송고종을 선조보다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송고종이 악비 뿐만 아니라 악비의 측근 가족까지 보복을 가했다는 것을 주 요인으로 들고 있다. 그에 비해 선조는 일선의 장수들과 의병장들은 경계했지만 최소한 목숨은 거두지 않고[11] 철저히 죄를 따져 처벌했다. 그리고 군벌로 변질될 수 있는 의병들을 중앙군의 편제에 넣으며 유연하게 통제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 죽을 때까지 전후복구를 위해 힘썼다.

반대로 고종이 비록 정치적으로 악비를 숙청하면서 군벌 숙청의 희생양으로 삼았지만, 정강의 변 이후 대륙의 군벌세력들은 조선의 장군들과는 차원이 다른 권력을 쥐고 있었으며, 실제로 군벌 세력들은 항저우까지 포위하기도 하는 등 금나라보다 더욱 큰 위협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내부 안정을 중시한 고종이 왕실에 칼을 들이민 군벌들에 대한 경계심이 선조보다 컸으면 컸지 작을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둘이 겪은 상황과 배경 자체가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배제한 채 겉으로만 드러나는 행적을 보고 판단할 수없다. 그리고 전후 처리에 있어서 고종도 노력을 안한 것은 아니다. 금나라군의 양쯔 강 도하를 막기 위해 해군력을 강화시켰음은 물론, 내부 안정을 다지는데 주력했음은 변함이 없다. 임진왜란 이후 해군력이 발전하지 못한 조선과 달리 남송의 해군은 남송-몽골 전쟁 초중반까지 동아시아 최강의 해군으로 군림하게 된다.

4. 대중매체에서

수호전의 후속작인 수호후전 후반부에도 등장한다. 금나라의 침입으로 위기를 맞았을 때 섬라국에 있던 양산박 호걸들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뒤에 이준을 섬라국왕으로 봉한 것을 비롯해 생존한 호걸들 모두에게 벼슬을 주었고 송강, 노준의 등 사망한 호걸들에게도 작위를 내렸다. 살아 있기는 했지만 섬라국으로 가지 않고 육화사에 남은 무송에게도 형식적이기는 했지만 벼슬을 내렸다.

총69부작으로 제작된 중국 사극 정충악비에서 등장한다. 고종 조구 역할을 맡은 배우는 딩쯔쥔. 드라마 초기에는 황족으로서의 위엄을 보여 금나라 사신의 기를 죽이고 정강의 변 후에는 북벌을 기치로 황제가 되었으나 송나라의 국력에 비해 넘사벽인 금나라의 현실과 송나라 군부의 폭주인 묘부의 변으로 일시적으로 폐위되면서 초심을 잃고 사치에 빠진 암군이 되었고 북벌을 주장하는 악비와 크게 갈등하다가 끝내는 진회의 세뇌에 넘어가 악비를 처형하고 만다.

만화 소녀침경(화타위전)에서 백성들에게서 떠도는 소문에 처형당한 악비가 살아있다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며, 진회가 금나라에 화친을 한다면서 바칠 공물에 대해 이야기하자 1년은 고사하고 당장에 준비하기 힘들다고 했다. 또한 금나라 황제 앞에서 신하의 예를 갖추어 금나라가 송나라의 주인임을 공표해야 한다고 하자 치욕적이라면서 악비의 말을 듣고 같이 싸워야 했다고 후회한다. 그리고 진회에게 책임을 물려고 했다가 진회가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자 파직을 선언한다. 그러나 그 순간 송 고종의 몸이 썩고 눈알이 튀어나온다. 송 고종은 이미 죽은 사람이었던 것. 진회가 송 고종에게 허수아비는 그냥 그 자리에 앉아있기만 하면 된다면서 부하들에게 시켜서 금황구침으로 송 고종을 다시 살려놓게 한다.

5. 둘러보기(계보)

송사(宋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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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권 「공주전(公主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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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권 「범질등전(范質等傳)」 250권 「석수신등전(石守信等傳)」
범질 · 왕부 · 위인포 석수신 · 왕심기 · 고회덕 · 한중윤 · 장령탁 · 나언괴 · 왕언승
251권 「한령곤등전(韓令坤等傳)」 252권 「왕경등전(王景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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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권 「절덕의등전(折德扆等傳)」 254권 「후익등전(侯益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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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권 「학질등전(郝質等傳)」
학질 · 가규 · 두순경 · 유창조 · 노정 · 연달 · 요시 · 양수 · 유순경 · 송수약
350권 「묘수등전(苗授等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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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권 「조정지등전(趙挺之等傳)」
조정지 · 장상영 · 유정부 · 하집중 · 정거중 · 안요신 · 장강국 · 주악 · 유규 · 임터 · 관사인 · 후몽
352권 「당각등전(唐恪等傳)」
당각 · 이방언 ,여심 설앙 오민 왕안중 왕양 조야 조보(曹輔) 경남중 왕우(王㝢),
353권 「하율등전(何㮚等傳)」
하율 · 손부 · 진과정 · 장숙야 · 섭창 · 장각(張閣) · 장근(張近) · 정근 · 우문창령 · 허기 · 정지소 · 공원 · 최공도 · 포유
354권 「심수등전(沈銖等傳)」
심수 · 노창형 · 사문관 · 육온 · 황식 · 요우 · 누이 · 심적중 · 이백종 · 왕해 · 하상 · 엽조흡 · 시언 · 최단우 · 유율 · 채의
355권 「가역등전(賈易等傳)」
가역 · 동돈일 · 상관균 · 내지소 · 엽도 · 양외 · 최태부 · 양급 · 여가문 · 이남공 · 동필 · 우책 · 곽지장
356권 「유증등전(劉拯等傳)」
유증 · 전휼 · 석예 · 좌부 · 허돈인 · 오집중 · 오재 · 유병 · 송교년 · 강연명 · 채거후 · 유사명 · 장정(蔣靜) · 가위절 · 최언 · 장근(張根) · 임량 · 주상
357권 「하관등전(何灌等傳)」 358·359권 「이강전(李綱傳)」
하관 · 이희정 · 왕운 · 담세적 · 매집례 · 정진(程振) · 유연경 이강
360권 「종택등전(宗澤等傳)」 361권 「장준전(張浚傳)」
종택 · 조정(趙鼎) 장준(張浚)
362권 「주승비등전(朱勝非等傳)」 363권 「이광등전(李光等傳)」
주승비 · 여이호 · 범종윤 · 범치허 · 여호문 이광 · 허한 · 허경형 · 장각(張愨) · 장소(張所) · 진화 · 장유(蔣猷)
364권 「한세충전(韓世忠傳)」 365권 「악비전(岳飛傳)」 366권 「유기등전(劉錡等傳)」
한세충 악비 유기(劉錡) · 오개 · 오린
367권 「이현충등전(李顯忠等傳)」 368권 「왕덕등전(王德等傳)」
이현충 · 양존중 · 곽호(郭浩) · 양정(楊政) 왕덕 · 왕언 · 위승 · 장헌 · 양재흥 · 우고 · 호굉휴
369권 「장준등전(張俊等傳)」 370권 「왕우직등전(王友直等傳)」
장준(張俊) · 장종안 · 유광세 · 왕연(王淵) · 해원 · 곡단 왕우직 · 이보 · 성민 · 조밀 · 유자우 · 여지 · 호세장 · 정강중
371권 「백시중등전(白時中等傳)」
백시중 · 서처인 · 풍해 · 왕륜(王倫) · 우문허중 · 탕사퇴
372권 「주탁등전(朱倬等傳)」
주탁 · 왕륜(王綸) · 윤색 · 왕지망 · 서부 · 심여구 · 적여문 · 왕서(王庶) · 신병
373권 「주변등전(朱弁等傳)」 374권 「장구성등전(張九成等傳)」
주변 · 정망지 · 장소(張邵) · 홍호 장구성 · 호전 · 요강 · 이태(李迨) · 조개(趙開)
375권 「등숙등전(鄧肅等傳)」 376권 「상동등전(常同等傳)」
등숙 · 이병 · 등강 · 장수 · 부직유 · 풍강국 상동 · 장치원 · 설휘언 · 진연 · 위강 · 반량귀 · 여본중
377권 「상자인등전(向子諲等傳)」
상자인 · 진규(陳規) · 이릉 · 노지원 · 이구(李璆) · 이박 · 왕상 · 왕의 · 진각
378권 「위부민등전(衞膚敏等傳)」
위부민 · 유각 · 호순척 · 심해 · 유일지 · 호교수 · 기숭례
379권 「장의등전(章誼等傳)」
장의 · 한초주 · 진공보 · 장학 · 호송년 · 조훈(曹勛) · 이직(李稙) · 한공예
380권 「하주등전(何鑄等傳)」
하주 · 왕차옹 · 범동 · 양원 · 누소 · 구룡여연 · 설필 · 나여즙 · 소진
381권 「범여규등전(范如圭等傳)」
범여규 · 오표신 · 왕거정 · 안돈복 · 황귀년 · 정우(程瑀) · 장천 · 홍의 · 조규(趙逵)
382권 「장도등전(張燾等傳)」 383권 「진준경등전(陳俊卿等傳)」
장도 · 황중 · 손도부 · 증기 · 구도 · 이미손 진준경 · 우윤문 · 신차응
384권 「진강백등전(陳康伯等傳)」 385권 「갈필등전(葛邲等傳)」
진강백 · 양극가 · 왕철 · 엽의문 · 장패 · 엽옹 · 엽형 갈필 · 전단례 · 위기 · 주규 · 시사점 · 소수 · 공무량
386권 「유공등전(劉珙等傳)」 387권 「황흡등전(黃洽等傳)」
유공 · 왕린 · 황조순 · 왕대보 · 금안절 · 왕강중 · 이언영 · 범성대 황흡 · 왕응진 · 왕십붕 · 오패 · 진량한 · 두신로
388권 「주집고등전(周執羔等傳)」 389권 「우무등전(尤袤等傳)」
주집고 · 왕희여 · 진양우 · 이호 · 진탁 · 호기 · 당문약 · 이도(李燾) 우무 · 사악 · 안사로 · 원추 · 이춘 · 유의봉 · 장효상
390권 「이형등전(李衡等傳)」
이형 · 왕자중 · 가원 · 장강 · 장대경 · 채광 · 막몽 · 주종 · 유장 · 심작빈
391권 「주필대등전(周必大等傳)」 392권 「조여우전(趙汝愚傳)」
주필대 · 유정 · 호진신 조여우
393권 「팽귀년등전(彭龜年等傳)」
팽귀년 · 황상 · 나점 · 황도 ,주남, 임대중 · 진규(陳騤) · 황보 · 첨체인
394권 「호굉등전(胡紘等傳)」
호굉 · 하담(何澹) · 임율 · 고문호 · 진자강 · 정병 · 경당 · 사심보 · 허급지 · 양여가
395권 「누약등전(樓鑰等傳)」
누약 · 이대성 · 임희이 · 서응룡 · 장하 · 왕원 · 왕질 · 육유 · 방신유 · 왕남
396권 「사호등전(史浩等傳)」 397권 「서의등전(徐誼等傳)」
사호 · 왕회(王淮) · 조웅 · 권방언 · 정송 · 진겸 · 장암 서의 · 오렵 · 항안세 · 설숙사 · 유갑 · 양보 · 유광조
398권 「여단례등전(余端禮等傳)」 399권 「정각등전(鄭瑴等傳)」
여단례 · 이벽 · 구화 · 예사 · 우문소절 · 이번(李蘩) 정각 · 왕정수 · 구여 · 고등 · 누인량 · 송여위
400권 「왕신등전(王信等傳)」
왕신(王信) · 왕대유 · 원섭 · 오유승 · 유중홍 · 이상(李祥) · 왕개 · 송덕지 · 양대전
401권 「신기질등전(辛棄疾等傳)」 402권 「진민등전(陳敏等傳)」
신기질 · 하이 · 유재(劉宰) · 유약(劉爚) · 시중행 · 이맹전 진민 · 장조(張詔) · 필재우 · 안병 · 양거원 · 이호의
403권 「조방등전(趙方等傳)」 404권 「왕약해등전(汪若海等傳)」
조방 · 가섭 · 호재흥 · 맹종정 · 장위 왕약해 · 장운 · 유약(柳約) · 이순신 · 손봉길 · 장영(章穎) · 상비경 · 유영 · 서방헌
405권 「이종면등전(李宗勉等傳)」 406권 「최여지등전(崔與之等傳)」 407권 「두범등전(杜範等傳)」
이종면 · 원보 · 유불 · 왕안거 최여지 · 홍자기 · 허혁 · 진거인 · 유한필 두범 · 양간 · 전시 · 장복 · 여오
408권 「오창예등전(呉昌裔等傳)」 409권 「고정자등전(高定子等傳)」 410권 「누기등전(婁機等傳)」
오창예 · 왕강 · 진복 · 왕정 고정자 · 고사득 · 장충서 · 당린 누기 · 심환 · 조언약 · 범응령 · 서경손
411권 「탕숙등전(湯璹等傳)」 412권 「맹공등전(孟珙等傳)」
탕숙 · 장중진 · 모자재 · 주비손 · 구양수도 맹공 · 두고 · 왕등 · 양섬 · 장유효 · 진함
413권 「조여담등전(趙汝談等傳)」 414권 「사미원등전(史彌遠等傳)」
조여담 · 조여당 · 조희관 · 조언눌 · 조선상 · 조여환 · 조필원 사미원 · 정청지 · 사숭지 · 동괴 · 엽몽정 · 마정란
415권 「부백성등전(傅伯成等傳)」
부백성 · 갈홍 · 증삼복 · 황주약 · 원소 · 위진(危稹) · 정공허 · 나필원 · 왕수(王遂)
416권 「오연등전(吳淵等傳)」
오연 · 여개 · 왕입신 · 상사벽 · 호영 · 냉응징 · 조숙원 · 왕만 · 마광조
417권 「교행간등전(喬行簡等傳)」 418권 「오잠등전(呉潛等傳)」
교행간 · 범종 · 유사 · 조규 · 사방숙 오잠 · 정원봉 · 강만리 · 왕약 · 장감(章鑑) · 진의중 · 문천상
419권 「선증등전(宣繒等傳)」
선증 · 설극 · 진귀의 · 증종룡 · 정성지 · 이명복 · 추응룡 · 여천석 · 허응룡 · 임략 · 서영수 · 별지걸 · 유백정 · 김연 · 이성전 · 진위 · 최복
420권 「왕백대등전(王伯大等傳)」
왕백대 · 정채 · 응요 · 서청수 · 이증백 · 왕야 · 채항 · 장반 · 마천기 · 주습 · 요호신 · 대경가 · 피룡영 · 심염
421권 「양동등전(楊棟等傳)」
양동 · 요희득 · 포회 · 상정 · 진종례 · 상무 · 가현옹 · 이정지
422권 「임훈등전(林勳等傳)」
임훈 · 유재소 · 허흔 · 응맹명 · 증삼빙 · 서교 · 도정 · 정필 · 우대년 · 진중미 · 양성대 · 이지효
423권 「오영등전(吳泳等傳)」
오영(吳泳) · 서범 · 이소 · 왕매 · 사미공 · 진훈 · 조여주 · 이대동 · 황순 · 양대이
424권 「육지지등전(陸持之等傳)」
육지지 · 서록경 · 조봉룡 · 조여등 · 손몽관 · 홍천석 · 황사옹 · 서원걸 · 손자수 · 이백옥
425권 「유응룡등전(劉應龍等傳)」
유응룡 · 반방 · 홍근 · 조경위 · 풍거비 · 서림 · 서종인 · 위소덕 · 진개 · 양문중 · 사방득
426권 「순리전(循吏傳)」
진정 · 장륜 · 소엽 · 최립 · 노유개 · 장일 · 오준로 · 조상관 · 고부 · 정사맹 · 한진경 · 엽강직
427·428·429·430권 「도학전(道學傳)」
주돈이 · 정호 · 정이 · 장재 · 소옹 · 유현 · 이유 · 사량좌 · 유초 · 장역 · 소병 · 윤돈 · 양시 · 나종언 · 이동 · 주희 · 장식 · 황간 · 이번(李燔) · 장흡 · 진순 · 이방자 · 황호
431·432·433·434·435·436·437·438권 「유학전(儒學傳)」
섭숭의 · 형병 · 손기 · 왕소소 · 공유 · 공의 · 최송 · 윤졸 · 전민 · 신문열 · 이각 · 최이정 · 이지재 · 호탄 · 가동 · 유안(劉顔) · 고변 · 손복 · 석개 · 호원 · 유희수 · 임개 · 이구(李覯) · 하섭 · 왕회(王回) · 주요경 · 왕당 · 진양(陳暘) · 소백온 · 유저 · 홍흥조 · 고항 · 정대창 · 임지기 · 임광조 · 양만리 · 유자휘 · 여조겸 · 채원정 · 육구령 · 육구연 · 설계선 · 진부량 · 엽적 · 대계 · 채유학 · 양태지 · 범충 · 주진 · 호안국 · 진량 · 정초 · 이도전 · 정형 · 유청지 · 진덕수 · 위료옹 · 요덕명 · 탕한 · 하기 · 왕백 · 서몽신 · 이심전 · 엽미도 · 왕응린 · 황진(黃進)
439·440·441·442·443·444·445권 「문원전(文苑傳)」
송백 · 양주한 · 주앙 · 조인기 · 정기 · 곽욱 · 마응 · 화현 · 풍길 · 고적(高頔) · 이도(李度) · 한부 · 국상 · 송준 · 유개 · 하후가정 · 나처약 · 안덕유 · 전희 · 진충 · 오숙 · 황이간 · 서현 · 구중정 · 증치요 · 조간 · 요현 · 이건중 · 홍담 · 노진 · 최준도 · 진월 · 목수 · 석연년 · 소관 · 소순흠 · 윤원 · 황항 · 황감 · 양파 · 안태초 · 곽충서 · 매요신 · 강휴복 · 소순 · 장망지 · 왕봉 · 손당경 · 당경 · 문동 · 양걸 · 하주 · 유경 · 포유 · 황백사 · 황정견 · 조보지 · 진관(秦觀) · 장뢰 · 진사도 · 이치 · 유서 · 왕무구 · 채조 · 이격비 · 여남공 · 곽상정 · 미패 · 유선 · 예도 · 이공린 · 주방언 · 주장문 · 유엄 · 진여의 · 왕조 · 엽몽득 · 정구 · 장얼 · 한구 · 주돈유 · 갈승중 · 웅극 · 장즉지
446·447·448·449·450·451·452·453·454·455권 「충의전(忠義傳)」
강보예 · 마수 · 동원형 · 조근 · 소함 · 진전서 · 첨량신 · 이약수 · 유겹 · 부찰 · 양진 · 장극전 · 장확 · 주소 · 사항 · 손익(孫翊) · 곽안국 · 이연 · 이막 · 서규 · 진구 · 조불시 · 조령성 · 당중 · 서휘언 · 상자소 · 양방예 · 증고 · 유급 · 정양 · 여유성 · 곽영 · 한호 · 구양순 · 장충보 · 이언선 · 조립 · 왕충식 · 당기 · 이진 · 진구도 · 최종 · 임충지 · 등무실 · 위행가 · 염진 · 조사가 · 역청 · 호빈 · 범왕 · 마준 · 양진중 · 고가 · 조우문 · 진인 · 허표손 · 진륭지 · 왕익 · 이성지 · 진원규 · 장순 · 범천순 · 우부 · 변거의 · 진소 · 윤옥 · 이불 · 윤곡 · 조묘발 · 당진(唐震) · 조여석 · 조회 · 조양순 · 강재 · 마기 · 밀우 · 장세걸 · 육수부 · 서응표 · 진문룡 · 등득우 · 장각(張珏) · 고민 · 경사충 · 왕기 · 장흥조 · 곽호(郭滸) · 오혁 · 이익 · 조사륭 · 진쉬 · 황우 · 학중련 · 유유보 · 우호 · 위언명 · 유사영 · 적흥 · 주필 · 공즙 · 이긍 · 능당좌 · 양수중 · 강예 · 곽선 · 사마몽구 · 임공재 · 황개 · 손익(孫益) · 왕선 · 오초재 · 이성대 · 도거인 · 고영년 · 국사복 · 손소원 · 증효서 · 조백진 · 왕사언 · 설경 · 손휘 · 송창조 · 이정(李政) · 강수 · 유선 · 굴견 · 정담 · 요흥 · 장기(張玘) · 왕공 · 유태 · 손봉 · 유화원 · 호당로 · 왕주 · 유안(劉晏) · 정진(鄭振) · 맹언경 · 고담 · 연만부 · 설양현 · 당민구 · 왕사도 · 조시상 · 조희계 · 유자천 · 여문신 · 종계옥 · 경세안 · 정보 · 미립 · 후핍 · 왕효충 · 고응송 · 장선옹 · 황신 · 진달 · 소뇌룡 · 추붕 · 유사소 · 진동 · 구양철 · 마신 · 여조검 · 양굉중 · 화악 · 등약수 · 진보 · 모겸지 · 서도명
456권 「효우전(孝友傳)」
이린 · 서승규 · 유효충 · 여승 · 나거통 · 제득일 · 이한징 · 형신류 · 허조 · 호중요 · 진긍 · 홍문무 · 역연경 · 동도명 · 곽종 · 고흔 · 주태 · 성상 · 진사도 · 방강 · 방천우 · 유빈 · 번경온 · 영서민 · 기위 · 하보지 · 이빈(李玭) · 후의 · 왕광제 · 강백 · 구승순 · 상진 · 두의(杜誼) · 요종명 · 등중화 · 모안여 · 이방(李訪) · 주수창 · 후가 · 신적중 · 학인 · 지점 · 등종고 · 심선 · 소경문 · 태형 · 앙흔 · 조백심 · 팽유 · 모순 · 양경(楊慶) · 진종 · 곽의 · 신세녕 · 구여령 · 왕주(王珠) · 안후 · 장백위 · 채정(蔡定) · 정기
457·458·459권 「은일·탁행전(隱逸卓行傳)」
척동문 · 진단 · 충방 · 만적 · 이독 · 위야 · 형돈 · 임포(林逋) · 고역 · 서복 · 공민 · 하군 · 왕초(王樵) · 장유(張愈) · 황희 · 주계명 · 대연 · 진열 · 손모 · 유역 · 강잠 · 연서 · 장찰 · 유여상 · 양효본 · 등고보 · 우문지소 · 오영(吳瑛) · 송강어옹 · 두생 · 순창선인 · 남안옹 · 장여 · 서중행 · 소운경 · 초정 · 왕충민 · 유면지 · 호헌 · 곽옹 · 유우(劉愚) · 위섬지 · 안세통 · 유정식 · 소곡 · 서적(徐積) · 증숙경 · 유영일
460권 「열녀전(列女傳)」
주아 · 학절아 · 진당전 · 여양자 · 동팔나 · 한희맹 · 모석석
461·462권 「방기전(方伎傳)」
조수기 · 왕처눌 · 묘훈 · 마소 · 초지란 · 한현부 · 사서 · 주극명 · 유한 · 왕회은 · 조자화 · 풍문지 · 홍온 · 소징은 · 정소미 · 조자연 · 하란서진 · 시통현 · 견서진 · 초연 · 지언 · 회병 · 허희 · 방안시 · 전을 · 지연 · 곽천신 · 위한진 · 왕노지 · 왕자석 · 임령소 · 황보탄 · 왕극명 · 사의도인 · 손수영
463·464·465권 「외척전(外戚傳)」
두심기 · 하영도 · 왕계훈 · 유지신 · 유문유 · 유미 · 곽숭인 · 양경종 · 부유충 · 시종경 · 장요좌 · 왕이영 · 이소량 · 이용화 · 이준욱 · 조일 · 고준유 · 상전범 · 장돈례 · 임택 · 맹충후 · 위연 · 전침 · 형환 · 반영사 · 오익 · 이도(李道) · 정흥예 · 양차산
466·467·468·469권 「환자전(宦者傳)」
두신보 · 왕인예 · 왕계은 · 이신복 · 유승규 · 염승한 · 진한 · 주회정 · 장귀숭 · 장계능 · 위소흠 · 석지옹 · 등수은 · 양수진 · 한수영 · 남계종 · 장유길 · 감소길 · 노수근 · 왕수규 · 이헌 · 장무칙 · 송용신 · 왕중정 · 이순거 · 석득일 · 양종길 · 유유간 · 이상(李祥) · 진연 · 풍세녕 · 이계화 · 고거간 · 정방 · 소이섭 · 뇌윤공 · 염문응 · 임수충 · 동관 · 양사성 · 양전(楊戩) · 소성장 · 남규 · 풍익 · 마거위 · 진원 · 감변 · 왕덕겸 · 관례 · 동송신
470권 「영행전(佞幸傳)」
미덕초 · 후막진리용 · 조찬 · 왕보 · 주면 · 왕계선 · 증적 · 장설 · 왕변 · 강특립
471·472·473·474권 「간신전(姦臣傳)」
채확 · 형서 · 여혜경 · 장돈 · 증포 · 안돈 · 채경 · 조양사 · 장각(張覺) · 곽약사 · 황잠선 · 왕백언 · 진회 · 묵기설 · 한탁주 · 정대전 · 가사도
475·476·477권 「반신전(叛臣傳)」
장방창 · 유예 · 묘부 · 두충 · 오희 · 이전
478권 「남당세가(南唐世家)」 479권 「서촉세가(西蜀世家)」 480권 「오월세가(吳越世家)」
이경(李景) 맹창 전홍숙
481권 「남한세가(南漢世家)」 482권 「북한세가(北漢世家)」 483권 「호남·형남·장천·진세가(湖南荊南漳泉陳世家)」
유창(劉鋹) 유계원 주행봉 · 고보융 · 유종효 · 진홍진
484권 「주3신전(周三臣傳)」
한통 · 이균 · 이중진
485·486·487·488·489·490·491·492권 「외국전(外國傳)」
서하 · 고려 · 교지(정조전여조이조진조) · 대리 · 점성 · 진랍 · 포감 · 막려 · 삼불제 · 도파 · 발니 · 주련 · 단미류 · 천축국 · 우전 · 고창 · 회골 · 대식국 · 층단국 · 구차 · 사주 · 불름국 · 유구국 · 정안국 · 발해 · 일본 · 당항 · 토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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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동만 · 매산동만 · 성주만 · 휘주만 · 남단주만 · 무수주만 · 황원주만 · 여동만 · 환주만 · 서남이 · 여주만 · 공부천 · 풍파만 · 보새만 · 미강만 · 동만 · 석문부 · 남광만 · 보패만 · 무주부 · 유주만 · 검주만 · 시주만 · 고주만 · 육수만 · 준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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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송남송은 같은 왕조이므로 여기서는 10대로 표기한다.[2] 지금의 난징시.[3] 휘종의 아내들을 비롯한 많은 황족 여성이 세의원(洗衣院)으로 보내졌다. 세의원이 금나라의 기방이고, 금나라에서 모욕을 주기 위해 송나라 황족 여성들을 이곳으로 보내 창기(娼妓)로 만들었다는 내용이 널리 퍼져있다. 하지만 송사나 금사에 기록된 내용이 아니다. 정사가 아닌 야사이다.[4] 대가 끊긴 것이 아니라 황위 계통이 끊긴 것이다. 당장 태종의 후손으로는 남송의 재상이었던 조여우가 있는데 이 사람은 태종의 폐태자 조원좌의 후손이었다.[5] 고종의 모후였던 현인황후는 입궁할 당시 휘종의 궁녀였다. 1107년에 휘종과 현인황후 사이에 고종이 태어날 때 고종은 휘종의 서자였다.[6] 우겸은 위기 수습을 잘해낸데다 청렴하고 나라에 충성하여 정통제가 죽인 뒤에 후회할 정도로 훌륭한 신하였지만, 정통제에게는 역적일 수밖에 없었다.[7] 금이 칭신을 요구하자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이자겸 일파가 요구를 수락했다. 이자겸 일파가 쫓겨난 후에도 계속 칭신하였다.[8] 실제로 송 고종 사후 국력을 회복한 남송은 여러 차레 북벌을 시도하였으나 그때마다 대다수는 처참하게 패했다. 심지어 금나라몽골 제국에게 무너지는 와중에도 북벌했다가 역으로 박살났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9] 효종도 영토수복에 대한 의지가 있어 북벌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당시 금 역시 금 세종이 즉위하며 리즈 시절이었던터라 사실상 실패하고 만다.[10] 물론 고종이라도 청 고종 건륭제처럼 뛰어난 인물도 있긴 했다. 건륭제가 말년으로 갈수록 청나라가 망하는 단초를 제공했다고 비판받기도 하지만, 어찌됐든 송 고종보다야 뛰어난 인물이었다.[11] 예외는 이산겸김덕령 정도인데, 이산겸은 군사를 모아 놓고 왜군을 토벌하러 움직이지 않아 송유진의 난 전부터 의심을 받고 있었고 김덕령은 이몽학의 난 가담자 다수로부터 공통적으로 이름이 거론되어 같은 당파인 서인에서조차 극형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