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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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 왕따 · 은따 · 일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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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사자의 개인적 문제
학교폭력의 원인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가장 많은 원인이 자신의 힘을 자랑하려는 과시욕이고, 자신보다 공부를 잘하거나 또는 내가 좋아하는 이성과 사귀는 사람을 제거하려는 경쟁심리나 또는 나를 째려보는 인간이나 코골이가 심한 인간 등 자신을 거슬리게 하는 사람에 대한 분풀이도 주요 원인이다.1.1. 가해자의 도덕성 부족
폭력을 통해 느끼는 피해자에 대한 우월감이 그 원인이다. 이는 폭력을 가하여 상대를 내가 원하는 대로 반응하게 만드는 행위이기에 원초적인 권력욕의 발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사회병질자들의 가학심은 일반인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일반 사회에서는 이런 원초적인 권력욕을 발현할 수 없도록 법, 주거 이전의 자유, CCTV 등에 의한 필터링이 펼쳐지게 마련인데, 그런 필터링이 잘 작동하지 않는 닫힌 사회가 몇 군데 있다. 문제는 대한민국의 사회 환경 때문에 특히나 유년기~청소년기에 닫힌 사회를 집중적으로 겪게되는 것이다. 어린이집부터 시작해 유치원, 학교, 군대까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회적 시선에서 숨겨버릴 수 있는 사각지대[1]가 대한민국의 청소년 성장 환경에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이다. 이찬희 문서 참조.가해자가 자신의 행위가 잘못이라고 인지 자체를 하지 못하는 몰지각함에도 원인이 있다. 사실 이게 학교폭력 원인의 거의 대부분이다. 자신이 잘못된 언행을 하며 타인에게 폭언을 하며 폭행을 휘두르는 민폐를 끼쳐놓고도 본인이 민폐라는 것을 전혀 모른다. 때문에 미성년자 시절에는 가해 행위를 실컷 해놓고도 정작 성인이 돼서는 갑자기 사회 도덕과 정의를 주장하며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가해자에 대해 비난하는 내로남불적인 인식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2021년 학교폭력 폭로 사건/배구계 참조.
또한, 가해자들은 두뇌가 일반인하고 전혀 다르다. 일단 학교폭력을 일삼는 가해자들은 공감능력을 관장하는 두뇌의 편도핵의 기능이 현저히 퇴보되어 있다. 편도핵의 기능저하로 인한 혈류 증가로 인해 가해자들은 일반인들은 상상도 못할 교묘한 수법으로 피해자를 괴롭히면서도 피해자가 느끼는 고통과 공포를 느끼고 공감하지 못하는것. 상술했듯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괴롭히면서 희열과 우월감을 느끼는데, 이 또한 충동성을 조절하는 전두엽의 퇴화가 원인이다. 즉 선천적으로 뇌 기능 자체가 망가진 상태로 태어나서 정상적인 감정과 사고를 펼치기가 불가능하다는 소리이며 사실상 사이코패스들의 뇌 구조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링크 주로 가정폭력을 당했거나 적절하지 못한 가정교육과 과잉보호를 받아 옳고 그름을 못 배운 아이가 학폭 가해자로 많이 빠진다.
하물며, 두뇌가 한창 성장 중인 아동, 청소년일수록 성장하면서 겪는 과정과 환경, 대인관계가 두뇌에 끼치는 영향은 성인에 비해 상상을 초월한다. 범죄심리학에서도 두뇌에 관련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는데, 일단 학교폭력도 심리적인 원인에서 일어나는 엄연한 범죄이기도 하므로 가해자들의 두뇌도 다른 범죄자들과 마찬가지로 기능이 결어되었으며, 특히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학대를 일삼는 사람들의 두뇌와 비슷한 구조이다. 이러한 가해자들이 나중에 성인이 되어 정신차리고 어찌해서 성공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감정과 생각을 컨트롤 못하고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버리지 못해 사회성이나 대인관계에도 차질을 빚게 될 수도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어린 나이일수록 타인에 대한 공감을 통한 교육과 심리치료가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폭력은 사전에 철저한 교육과 심리상담으로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아이가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부모나 교사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따라서 가해자들을 응징하기 전에 가해자들을 이렇게 만든 사회와 가정 환경에도 비판할 여지가 있다.
1.2. 인간의 선천적 공격성에 대한 문제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르면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 성적 충동이나 공격적 충동이라고 한다.[2] 프로이트의 이론을 근거로 삼지 않더라도 생활 속에서 체감할 수 있듯이 개인별 격차는 있지만 누구나 선천적으로 어느 정도 타인에 대한 공격성을 갖고 살아간다. 게임이 대부분 몬스터를 죽이거나 적군을 죽이는 등 공격성과 관련된 이유도 사람들에겐 선천적인 공격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해소시키면서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람이 속해있는 영장류는 대다수가 매우 사납고 흉포(凶暴)하다.[3][4] 단순히 피부가 약하기에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원래 성격이 저런 경우도 드물지 않다.진화심리학적으로 보면 또래 동성 집단에서 모자라 보이는 사람을 숙청하는 행위는 군집생활 동물에서 상당히 자주 발생한다. 사실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드문데, 집단에 평균 수준에 현저히 미달하는 개체가 제거되지 않는다면 꾸준히 집단에 부담이 되고 번식까지 한다면 후손에게까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주로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사람들은 비위생적, 장애인, 저지능 등의 문제를 가진 경우가 많고 육체적으로도 강인하지 않고 공격성에 맞서서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줄 모르는 사람들이 그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학교폭력은 왜 일어나는가
사실 이 "동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게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공학 학교에서 남학생이 거의 무조건 만만한 남학생을 지속적으로 괴롭히지 가끔 이성간에 말다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여학생을 괴롭힐 힘이 있는데도 여학생을 지속적으로 괴롭히진 않는다.(폐쇄적인 공간에서야 남성이 여성을 괴롭히는 경우는 꽤 많아도 공개된 장소에는 극히 드물다.)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만만한 동성 경쟁자를 더 사회에서 정신이상자로 만들고 낙오시키고 제거 시킬수록 그에 따라 자신은 더 많은 이성과 짝짓기를 할수 있는 확률이 증가 되기에 학교폭력이라는것도 결국 경쟁자 제거 매커니즘의 일환이라고 볼수도 있다.
국가 입장에선 조금 부족한 사람이라도 잘 다독여 사회에서 단순노무직 이라도 성실히 시켜 노동력으로 써먹는게 이득이지만[5] 개인 입장에선 알빠 아니고 이렇게 이기적으로 행동 하는것이 자신에게 좋으니까 서로 이해관계가 상충이 되는것.
반대로 육체적인 능력이 떨어지거나 너무나 얌전해서 폭력에조차 저항하지 못하고 순응하는 성격 역시 그 개인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들을 부리는 권력자나 사회 입장에서는 매우 훌륭한 자질이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는 개체단위의 진화심리학적 숙청 목표와 사회 단계에서의 숙청 목표가 상반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또래 동성집단의 숙청활동이 발생하지 않도록 통제해야할 필요가 있었고 통제되고 있었다. 과거 교사의 통제력이 매우 강했을 때는 교사가 폭력과 강압으로 숙청을 저지하는 척은 하기도 했다.[6]
하지만 학교인권조례 등의 발달로 인해 교사나 사회의 청소년에 대한 장악력이 크게 감소했다. 따라서 또래집단의 자치적인 권력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막기 어려워졌고 이들이 본능적인 수준에서 또래집단에서의 숙청을 발생시키고 있는데 이것이 학교폭력이 증가한 원인이 된 것이다. 이제와서 교사가 학생들을 그들이 이해하는 수준의 법칙, 즉 폭력과 협박으로 장악하는 건 여러 가지 문제로 기대하기 어렵고 여교사 비중이 높아져서 그것을 허용한다손 치더라도 실행하기 어렵다. 따라서 경찰과 학부모회 등 사회가 공식적으로 개입하여 어차피 성인이 되어봐야 교도소에 갈 가해자들을 좀 더 빠르게 소년원에 격리시키고 학교에서 추방하는 등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더 높아지고 있다.
1.3. 피해자가 된 가해자
의외지만 학폭 사례 중 해당 사례도 드물지 않다. 물론 아무 잘못 없이 학폭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지만 학폭 사례를 초반부터 자세히 조사하면 최종 학폭 피해자가 초반에는 학폭 가해자였던 사례도 있다.초반에 자신보다 약한 아이한테 학폭을 저지름[7] →
같은 반 아이들 다수한테 원한을 사버리게 됨 →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아이들 등에게 반대로 학폭을 당하여 초반에 학교폭력 가해자였다가 학교폭력 피해자가 된다.
같은 반 아이들 다수한테 원한을 사버리게 됨 →
자신보다 서열이 높은 아이들 등에게 반대로 학폭을 당하여 초반에 학교폭력 가해자였다가 학교폭력 피해자가 된다.
또 다른 사례
다수의 가해자들이 피해자한테 학교폭력을 저지름 →
피해자가 전학을 가거나, 다음 해에 가해자 애들과 다른반으로 배정 →
그 이후엔 다수의 가해자들 중에서 가장 서열이 낮은 애가 나머지 다수의 가해자들에게 학교폭력을 당한다.[8]
다수의 가해자들이 피해자한테 학교폭력을 저지름 →
피해자가 전학을 가거나, 다음 해에 가해자 애들과 다른반으로 배정 →
그 이후엔 다수의 가해자들 중에서 가장 서열이 낮은 애가 나머지 다수의 가해자들에게 학교폭력을 당한다.[8]
따라서 이 경우에는 학폭 가해자가 단독범이 아닌 같은반 아이들 다수이며, 같은 반 아이들 대부분의 진술을 참고하면 이구동성으로 우리한테 학폭 당한 애가 초반에 학폭 가해자였어요 라고 진술하는 경우가 대부분. 그리고 실제로 이들의 진술을 참고하면 이 경우에는 최종 학폭 피해자가 초반에 잘못하긴 했다는 것이 기정 사실이다. 물론 그렇다고 학폭을 똑같은 학폭으로 갚는 행동은 엄연히 잘못된 행동이고, 학폭위 지도 하에 원칙에 따라 처벌을 하는게 옳은 해결방식이다.[9]
이 경우에는 최종 학폭 피해자(초반에 학폭 가해자)의 부모가 이 사실을 아는 경우 본인의 자녀를 1년간 등교정지(유급)시킨 후 행동교정 및 심리치료를 받게 하여 최종 학폭 피해자(초반에 학폭 가해자)를 1년 후 다시 학교를 보내는 것이 일반적으로는 가장 좋은 해결 방식이다.[10]
해당 사례에서는 상황을 방치한 담임과 최종 학폭 피해자한테 보복성 학폭을 가한 반 아이들 다수 그리고 상황을 제대로 분석하려 하지 않고 자녀를 강제등교를 시킨 최종 학폭 피해자(초반의 가해자)의 부모가 가해자이다.
만약 본인이 해당 케이스이고 부모한테 이 사실을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강제등교 당하는 상황인 경우[11] 온라인 상담을 통하여 도움을 받든지 아니면 청소년쉼터 및 기타 학대피해 아동 지원 시설을 찾아가라.[12] 그리고 청소년 쉼터 뿐만 아니라 청소년 종합 지원센터 꿈드림에 도움을 청하면 현재 본인 상황에 맞는 다양한 보호시설을 연계 받을 수 있다.
2. 학생에 대한 외부 개입의 부재
2.1. 제도적 개입 부재
학교가 사회에서 격리되어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현 교육 시스템은 공교육, 사교육을 막론하고 근본은 어른들 출근해 일할 동안 아이들을 어디 사고 안 칠만한 곳에 몰아서 수용해놓고 퇴근하면 찾으러 가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 과정에서 오로지 값싸고 부담이 적은 방식으로만 진화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뭘 하든 사고만 안치면 된다는 식으로 방치한 것이다.다만 이와는 다른 분석도 존재한다. 한국의 현 교육 시스템이 만들어진 60년대 중후반 산업화가 한창인 시절에는 일제 강점기 및 6.25전쟁 여파에 인하여 너무 사람들이 굶주린 나머지 오로지 돈 많이 벌어 잘 먹고 잘 살자가 인생 목표의 전부인 시절이었고, 그 시절에는 사회 구조상 오로지 높은 학벌을 쌓는 것만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슨 일을 당하든 어른들 시각에는 훗날 자녀가 고학력을 쌓아 돈 많이 버는 고급 인재가 되는 것만을 추구하여 학폭은 안중에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오로지 재산 축적에만 올인하다 보니 자녀의 사생활까지 생각할 여유는 존재하지 않은 해당 세대의 전통이 그대로 세습된 것이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그렇게 학교가 소수의 관계자만 내부의 상태를 볼 수 있는 닫힌 사회가 되고, 아직 사회의 윤리,규범 함양도 되지않은 미성숙한 아이들이 폐쇄적인 학급 안에서 자기들끼리의 질서를 세우는 과정에서 근현대 사회의 정의라고 할 수 있는 법과 규칙은 무시되고 인간의 원초적인 폭력성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2.1.1. 반사회적 성향의 아이를 분리시키지 않음
학교라는 시스템은 개개인의 성향에 대한 구분없이 연령대에 맞는 아이들을 모두 한 공간에 몰아넣는다. 사회화가 덜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학폭이 발생한다면 그런 청소년들이 모여있는 학교라는 곳은 완전 정글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아니 정글을 초월해 등활지옥이나 다름없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대다수의 학생들은 학폭을 하지않고 무난하게 잘 살아간다. 그 말인 즉슨 사회화 여부보다 태초에 가진 선천적 기질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그러면 어디서 문제가 생기는 거냐를 놓고 봤을 때 입학할 때 거름망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성인들의 사회에서는 인적성검사, 면접 등을 통해 부적격자들을 어느정도 걸러낸다. 설령 부적격자가 거름망을 통과해 조직에 침투하더라도 다수의 사회회된 인간들이 억제기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학교는 이런 식으로 사람을 걸러내지 않는다. 폭력성이 강한 학생과 약한 학생이 같은 공간에서 마주하게 되고 그로 인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자연스레 높아진다. 폭력성이 강한 학생들끼리 무리를 이뤄 집단을 형성하게 되면 그 성향은 더욱 짙어지게 된다. 오히려 의무교육으로 인해 중학교까지는 어거지로 전부 학교에 보내야 하며, 고등학교도 사회적 인식 때문에 어거지로 보내기에 이런 경향이 더욱 짙다. 거기다 여기에 통합교육(다양성 교육)[15]까지 더한다면 문제가 더더욱 심각해진다. 변질된 평등이 오히려 학폭을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청소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만 생기는 문제가 아니고 성향 구분없이 다양한 사람들을 한 곳에 쑤셔넣을 경우 성인들에게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군대이다. 이찬희 같은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이 걸러지지 않고 매일 마주해야되는 환경이라고 생각해보자. 그 속에선 무조건 피해자가 나올 수 밖에 없다. 특히 현역 판정률이 90%를 넘어가는 요즘은 군대에 적합하지 않는 사람 조차 억지로 군대로 밀어넣고 있다.
2.1.2. 경찰의 소극적 개입
물론 학교폭력에 1차적 책임을 지게 되는 조직은 학교지만 학교폭력은 근본적으로 범죄며, 학교 조직은 자체 치안조직인 군사경찰을 두고 있는 군대와 달리 경찰의 치안권 아래에 있다. 따라서 학교폭력이 발생할 경우 경찰, 검찰 등의 치안기관에서 적극 개입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공기관, 회사에서 범죄사건이 벌어져도 경찰이 수사하는데, 학교에서라고 다를 필요도, 법적 근거도 없다.그러나 학교폭력을 그저 학생간 사소한 갈등으로 인식하는 경찰들이 많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이런 경찰의 시각은 최근 벌어진 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 사건, 강릉 여고생 폭행 사건에서도 여과없이 드러났다. '애기들이 해 봐야 얼마나 하겠느냐?', '친구들끼리는 싸우면서 크는 거야'라는 등의 근거 없는 믿음에서 온 경우가 많다. 실제로는 강간죄, 강도죄[16], 살인죄, 성적 수탈[17] 등 온갖 강력범죄의 온상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매우 소극적 자세를 보인다. 학교전담경찰관 제도가 있으나 유명무실하다는 평가가 많다.
이는 국내 경찰 조직이 가정폭력, 학교폭력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실적은 크지 않은 반면 잘못 개입할 경우 생기는 망신살은 엄청 크다는 점(하이리스크 로우리턴), 전통적으로 외부 개입을 '불필요한 개입 및 비겁한 수단'으로 치부한다는 공통점이 있어 구조상 개입하고 싶지 않은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진들이 그 지역 성인 조직폭력배와 연결고리가 있는 경우가 많고, 조직폭력배들 중에는 정치권 등과도 유착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경찰이 함부로 못건드리는 요소일 수도 있다. 드물지만 학교폭력 가해자 쪽 집안이 현직/전직/예비[18] 경찰인 사례도 소수 있는 것 역시 연관이 없지 않을 수도 있다.
2.1.3. 어린 나이로 인해 형사 처벌이 불가함
이른바 촉법소년. 현행법에서는 형사미성년자 기준이 만 14세이나, 미성년자 범죄의 심각성 때문에 이를 만 13세로 낮추는 법 개정을 대한민국 법무부에서 추진 중이다. 기사하지만, 소년법 자체를 폐지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오늘날의 국민 정서이며, 실제로 소년법을 폐지해 달라는 청와대 청원도 있었지만, 국제법상 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연령 기준만 낮추는 방향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19] 즉, 초등학교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은 앞으로도 법의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중고등학교라고 심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말로 괴롭히다가 열받아서 피해자가 날린 주먹에 맞든, 서로 기싸움 끝에 쌈박질 벌리는 수준이 아닌[20], 아예 금품갈취에 장기간 사람 괴롭히는 것 같이 갈 데까지 가는 수준으로 가버리면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한다는 처벌을 받는 점이 브레이크가 되어주는 반면 초등학교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는 것. 물론 학교에서 벌어지는 범죄자체가 성인 범죄보다 덮고, 또 묻히기가 쉬우며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당하고, 가해자는 가해자대로 학교폭력을 저지르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건 달라지는 것이 없다.
매스컴에 보도되는 것은 피해자가 중상을 입거나 자살을 한 경우이니, 피해 정도가 그보다 가벼운 경우는 가해자가 선출직 공무원에 출마하거나 아이돌로 데뷔하지 않는 한 드러나지 않고 묻힌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설령, 어려서 몰라서 그렇다 하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되는 게,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예측하지 못해 오히려 어른보다 더 큰 사고를 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초딩들은 더더욱 촉법소년만 믿고 나대기에, 어떤 면에서는 초등학교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이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것보다 더욱 위험하고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실제로 학교폭력(특히 신체적 폭력)을 가한 가해자의 상당수가 촉법소년이라고 한다.
2.1.4. 학교 수련회
자세한 내용은 학교 수련회/비판 문서 참고하십시오.2.2. 부모의 개입 부재
2.2.1. 과잉보호
우리 애는 착해요, 그럴 리가 없어요. 우리 애는 착한데 친구를 잘못 만났어요 등으로 자식을 오냐오냐 키우는 경우 자식을 가해자로 만들 수 있다. 아이에게 나쁜 행동을 해서는 안되고 그저 자기자식이니 마냥 예뻐하기만 한다면 후에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자라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2.2.2. 부모의 무관심
부모가 일에 바쁘면 자식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학교에 찾아가 해결을 할 수가 없으며, 부모가 자식에게 무관심한 경우, 학폭 가해자, 피해자가 되어도 모르고 지나치기도 한다.[21] 다만, 이는 워킹맘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므로 주의해서 판단해야 할 부분이다. 오히려 자식에게 더욱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워킹맘도 많다. 후술하겠지만, 맞벌이 세대가 적었던 시절에도 학교 폭력은 심각했다. 다만 인식 부족으로 인해 매스컴에 보도되지 않았을 뿐이다. 부모가 돈벌이에 바쁜 것이 자녀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이 지금보다 낮았던 시절에는 얼추 맞는 얘기였으나, 21세기에 들어서는 급격한 환경 변화로 인해 양상이 다소 다르다.첫 번째는 현재 30~40대 사이에서 확산된 개인주의 성향이 있다. 물론 개인주의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나, 그중에 이기주의를 개인주의로 포장하는 사람들이 섞여 있다는 게 문제다. 물론 엄마가 집에서 애를 지속적으로 잘 돌본다 하더라도 문제가 안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90년대 말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된 문제이다. 전업 주부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브런치 카페에서 수다를 떤다는 식의 얘기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걸 보면, 과거와는 달리 자녀에게 신경을 쓰는 분위기가 약해졌다 볼 수 있다. 게다가 과거에 어머니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한 것에 대한 반발심으로 인해, 전업주부가 기본 의무를 저버리는 것을 지적하기도 어려운 분위기가 된 것이 사실이다.
두 번째는 인터넷 문화의 급속한 확산과 변질이 있다. 정인이 사건의 경우처럼, 맘카페에서 착한 엄마 코스프레를 하고 다닌다든지, 맘카페 엄마들이 악성루머를 퍼트리는 맘충 행각을 벌이는 일들이 현재의 30~40대 젊은 엄마 세대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이들이 인터넷에 과몰입하기 쉬운 세대임을 생각하면, 맞벌이 엄마들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인스타그램 같은 SNS 과시 문화에 영향을 받는 것이 이 세대인데, 이건 맞벌이 여부와는 상관이 없으며, 정작 업무에 바쁜 맞벌이 부부들은 인터넷에 과몰입하기가 어렵다.
사실, 무개념 부모는 경제 수준, 맞벌이 여부와는 상관없이 어디서나 존재한다. 그나마 경제적으로 약자인 경우는 정상 참작이라도 되지만, 정인이 사건의 경우처럼 아이를 잘 키울 만한 환경적 조건이 갖춰졌음에도, 아이에 무관심하거나 학대하는 경우가 있다는 게 문제다.[22]
심지어 부모가 학창시절의 학교폭력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자녀가 당한 것을 공감해주기는 커녕, 당한게 네 탓이라는 막장 부모들도 있다.[23] 그리고 해당 이야기가 굉장히 중요한 이유는 부모가 능력이 없어 해결을 할 수가 없다면은 얘기가 다르지만 아이가 학폭을 굉장히 심하게 당하는 상황을 알면서도 불구하고 학구열에 휘말려 무작정 강제등교 시키는 행위 때문에 아이는 계속 학폭을 당한다, 따라서 긴급 등교 정지만 시켜주면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강제등교 시키는 피해자의 부모 때문에 아이는 계속 학폭을 당할 수밖에 없다. 이는 피해자 부모의 잘못이 상당히 크다는 것은 부정 불가의 사실이다.
2.2.3. 부모 세대와 아이 세대의 세대차이
세대차이로 인해 신종 수법에 대한 이해가 미흡한 것도 문제다. 지금의 학폭은 과거와는 달리 소수의 아이들끼리 철없이 몸싸움이나 말싸움을 하는 단순한 유형의 다툼이 아니다.단순히 철없는 행동이라 보기에는 너무나 지능적이고 악랄한 수법이 많으며, 다수가 한 명을 찍어 다구리하는 수법도 많다.자신들의 어린시절에 흔히 있었던 다툼이라면 상대 아이의 부모님과 대화로 잘 풀어서 해결할 여지가 있으나, 이러한 수법이면 항의하는 피해 학생의 부모님만 이상한 사람으로 몰리기도 쉽고, 가해자가 여럿일 경우 일일이 만나서 대화로 해결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리고 피해 학생의 부모님이 여럿의 가해자들과 만나서 대화하더라도 초등학생 정도의 나잇대인 가해자들한테나 두려움을 안겨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학생 정도부터는 피해학생의 부모님이 가해자들에게 거칠게 혼을 내도 집안에 돈이 많거나 인맥이 좋지 않은 이상 가해자들이 두려워하거나 겁을 먹기보다는 오히려 피해학생의 부모님을 만만한 상대로 여겨 얕잡아보거나 비웃고 대들기도 하며 심지어는 욕설, 폭행을 하거나, 피해자 부모가 자영업자나 사회에서 그렇게 돋보이지 않는 직군일 경우 약점을 찾아내[24] 스스로 혹은 부모 빽으로 피해자 집안을 와해시키는(!) 인간말종인 가해자도 있다.
또한 피해자인 자식이 자신을 괴롭히거나 위해를 가하는 가해자에 대해 정당하게 맞서 싸워도 현실적으로 봤을 때도 학교폭력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고 귀찮아하는 교사들이 널리고 널리고 심지어는 학생들이 교사를 만만하게 보거나 얕잡아보는 경우가 많은데도 자신들의 학창시절에 경험만 떠올리면서 교사나 부모님한테만 말하면 무조건 해결된다고만 믿으면서 차라리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말할 것이지 왜 싸웠냐고 하면서 자식의 기를 죽이는 경우도 흔하다.
실제로 2021년 학교폭력 폭로 사건에서도 부모세대와 아이세대 간 의견 싸움이 크게 일어나 세대 갈등을 더욱 부추겼다.
2.2.3.1. 피해자 부모의 강제 등교
학교폭력의 정도가 너무 심각하고 상황이 급박하며 피해 학생이 원하는 경우 일단 피해자의 부모가 자신의 자녀(피해자)를 등교 정지 시키면 일단은 자녀가 학폭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학폭을 당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빠지는 것을 죄악시하여 자녀를 강제등교시키면 자녀는 계속 학폭을 당하게 되며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따라서 상황을 제대로 분석하려 하지 않고 자녀를 강제 등교 시킨다면 자녀의 피해를 확대시킬 뿐이다.따라서 해당 상황에서는 학교폭력 가해자 즉시분리 및 등교정지 요청을 하고 만약 정황상 그게 불가능한 경우에는 피해자라도 일단은 등교를 정지하고 차근 차근 단계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25][26]
만약 본인이 해당 상황인데 강제 등교 당하는 경우 대처법은 1.3 문단 하단 내용 참조, 그리고 상술한 각주 처럼 반대의 경우(부모는 등교 정지 시키려 하지만 오히려 자녀가 고집을 부리는 경우)는 가족 복지 센터를 방문하여 심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자.
2.2.4. 가정폭력
2.2.4.1. 가해학생 부모의 아동 학대
아동학대 피해자가 성장하면서 또래에 비해 힘이 강하고 외향적인 성격인 경우 일진이 되는 경우도 있고, 이에 학교가서 분풀이 목적으로 학교폭력을 가해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한마디로 아동학대를 당한 학교폭력 가해학생은 학교폭력 피해학생을 학대당한 자신의 울분을 배설하기 위한 화풀이용 변기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27] 실제로 가해학생이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또는 집에서 부모님한테 꾸중을 들은 후 피해학생에 대한 괴롭힘 강도를 이전보다 더 높이는 경우가 많다.[28]쉽게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들자면 어떤 학생이 학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알코올 중독자인 가족에 의해 구타를 당한다. 그 학생은 이에 기분이 나빠지게 된다. 여기서 몇 갈래가 나뉜다. 정당하게 화를 내거나[29] 친구와의 수다, 취미, 스포츠, 여행, 학업, 미식, 예술 활동, 연애, 소비 등으로 건전한 해결책을 실천하는 학생들은 올바른 탈출구가 존재하므로 문제없다. 폭식이나 강박, 자해, 자책, 니코틴, 알코올, 설탕, 마약, 검증되지 않거나 의사의 처방이 없는 의약품, 몇몇 유해 매체, 안전 대책이 갖춰지지 않은 신체적 활동[30], 운전, 도박, 채무가 동반된 과소비 등을 이용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괴롭히거나 위험에 빠뜨리는 학생들은 어쨌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니다. 감정을 해결하지 않고 마음 속에 쌓아 둔다면 나중에 말할 수 없이 무섭고 학교폭력보다 끔찍한 방법으로 분출될 수 있지만, 이것 역시 당장은 남이 피해를 입지 않는다. 하지만 이 해결책을 만만한 학생에게 폭력이라는 잘못된 방법으로 돌린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실제 아버지들의 경우 일터에서 상사나 원청업체 직원 등에게 꾸지람을 듣거나 갑질당하고 집에 와서 가족들을 갈구는 사례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또 다른 예가 있다면 초등학생인 가해자에게 한살짜리 늦둥이 동생이 있고, 그 동생이 아직 아기라 울고 보채는 게 일상인 바람에 가해자의 어머니는 육아 스트레스를 받고, 육아 스트레스를 받은 어머니는 가해자에게 아동학대를 가하고, 그 학대받은 가해자는 그 다음날 학교에서 피해 학생을 무자비하게 구타한 사례도 있다. 실제로 일진이 이전보다 피해학생에 대한 괴롭힘 강도를 더욱 높인 것도 알고 보니 그 일진이 전날 아버지로부터 심하게 갈굼당한 것이 원인인 사례는 의외로 많다.[31]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 플로리다주 여중생 자살 사건 때 가해자의 부모가 체포되었다. 평소 아동학대를 저질렀던 게 원인이 되었기 때문.(#)
물론 이런 불우한 과거가 있다한들 학교폭력을 가해하는 것은 옳은 방법도 전혀 아닐 뿐더러, 이런 가해자가 잘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보통의 학생들이 폭력없는 학교를 원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본인의 행동은 학생들을 위한 것이 전혀 아닌, 그저 개인의 울분을 해소시키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에 불과하다.
2.2.4.2. 피해학생 부모의 아동학대
학교폭력 가해자 외에 피해자의 경우에도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가정 폭력을 겪으며 자라온 경우가 드물지 않다. 정상적인 부모에게서 자랐다면 겪지 않았을 폭력과 학대를 경험하며 자라왔을 경우, 학교에서도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행동하거나 심적으로 유약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32] 대표적으로 이은석의 사례가 끔찍한 가정폭력으로 인해 발생한 대인기피증이 학교폭력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대표적인 예시다.2.3. 여론적 간섭의 부재
한국 심의체계를 들어보면, 성에 관련된 장면보다 폭력성에 관련된 장면이 덜 규제를 받는 경향이 있다.[33] 사람을 피가 터지도록 잔혹하게 두들겨패는 모습이 묘사되는 작품이라도 청소년 허가가 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전쟁물의 경우 그보다 더한 잔인함도 용납되는 경우가 있다. 총기 문화가 발달함에도 불구하고 아동을 대상으로 한 매체에는 실총 대신 레이저 총을 등장시키는 미국의 경우와, 어른을 주 타겟층으로 잡는 게임조차 폭력성에 매우 민감하게 심의해서 자국 게이머들이 "우리나라에 들여오는 게임은 죄다 총에서 꽃다발이나 날린다"며 자조하는 독일의 경우와 비교해보자.그 원인 중 하나가 일제강점기가 있는데, 일본 제국 및 일본군은 사람을 1회용으로 여길 정도로 인명경시풍조가 만연해 있었고 그때문에 구타 및 가혹행위, 똥군기가 극에 달했다. 문제는 거기서 고관대작을 하던 친일파들이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정권을 잡고 그들이 일제강점기로부터 배운 인명경시풍조를 기반으로 한 사고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한 탓에 대한민국 사회가 폭력에 대해서 무감해진 것이다. 결국 일본이 한국을 침략, 정복한 것은 표면적으로 탄압, 수탈, 살육, 강제징용, 위안부 등의 가해를 가하기도 했지만 이런 더러운 문화를 구축시킨 것 역시 누적된다.
어린애들이 서로 싸우는 걸 보며 어른들이 흔히 하는 말이 "어린애들은 원래 싸우면서 크는 거다"라고 말하곤 한다.[34] 사회의 인식 자체가 이런 판에 학교폭력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다.[35][36] 유소년~청년 시기에 폭력을 당해 몸이 상할 경우 골병이 빨리 들거나 지병이 많아지고 심하면 치매가 빨리 오는 등 평균수명 자체가 단축된다고 한다. 애들끼리 대등하게 싸워도 위험한데 하물며 학교폭력은 한쪽이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가하는 폭력이다. 당연히 반격당할 걱정 없이 마음놓고 폭행하는데다, 폭행자의 가학심에 따라 싸울 때보다 더 심한 폭력이 가해진다.
2.4. 교사의 개입 부재
교사들은 학생들의 보호와 육성에 있어 사회적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며, 학생들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롤 모델 중 하나이다. 직업의식이 투철한 교사라면 응당 자신의 체면이나 평판, 임금 등에서 불이익을 받더라도 학교폭력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것이나, 현실적으로는 사고가 터지면 기본적인 관리 부실로 제일 먼저 책임소재의 대상이 되고, 학교 이미지나 진학률 등을 이유로 학교 조직이나 학부모 조직의 압력을 받는 등 여러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에 적지 않은 교사가 사건 해결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현 교육현장의 실태이다.이런 현상이 지속되는 이유를 몇 가지 고찰해 볼 수 있다.
- 학생의 고통은 교사 본인이 겪는 문제가 아니다.
교사들이 학교폭력 문제 해결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 교사 본인이 학창시절 학교폭력의 피해자로 고통받아본 경우라면 그나마 낫지만[37],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왕따 피해자의 고통을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명심하자. 교사도 직장인일 뿐이다. 절대 학생들의 수호천사가 아니다!
- 학교폭력 해결이 '성과'가 아니라 '과실'로 처리됨
교사들이 학교폭력 사태를 인지하고, 해결에 노력해도 보통 성과보다는 과실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사회에서 학폭을 두고 교사의 대응을 볼 때 '일이 터졌지만 잘 해결하였다.'로 보기 보다는, '일이 터졌다고? 그 학교/교사 수준 알만하네.'로 보기 때문이다. 사실 성인들의 사회에서도 툭하면 중범죄가 일어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에서 폭력사건이 안 터지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사건의 원인이 교사에게 없고, 사태가 동네 바보라도 모를 수 없을 정도로 장기화된 것이 아니라면, 학폭을 조기 발견해 철저히 처리한 것은 분명 잘 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음에도, 사고를 영리하게 해결한 교사에게는 어떤 보상도 없으며,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다.
이런 문제는 사회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군대의 사례가 있다. 가령 동상자가 발생하였을 경우 지휘관이 이를 조기발견하여 훈련 중에라도 국군 병원에 보내든가, 의무실, 급할 경우 병원 응급실에 보내어 처리하면 꽤나 훌륭하게 처리했다고 볼 수 있다. 혹한기 훈련을 하면서 동상자가 안 나오는 것이 매우 이상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군 내부에서는 '애당초 왜 동상자가 나왔나? 병력 관리 부실 아니야?'라며 지휘책임을 묻거나 인사고과에 악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지휘관에게는 병사들의 고통이나 상처에 적극 대응하는 것보다, '너 이 새끼. 꾀병 아니야? 분대장 얘 관리 안 하고 뭐해?'라며 윽박지르고 책임전가를 하는 것이 편하다.
앞서 사례에서, 불가피했거나 적어도 관리자가 최대한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벌어진 문제였다면, 잘 해결한 것을 성과로 보아 긍정적 피드백을 주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학교현장은 여전하다.
- 학년 진급에 따른 반별 학생 교체
교사의 태만을 일으키는 또 다른 원인. 우리나라의 경우 학년이 올라가면 반이 해체되고, 반을 재편성하게 된다. 따라서 교사와 학생의 거리가 크게 가깝지 않은 편이다. 1년이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강력한 라포[38] 형성, 교사의 책임감 증진에는 분명 부족한 시간이다. 당장 학교보다 더 병력 관리 체계가 철저한 군대에서 업무 숙련도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보병도 줄어드는 징집기간 때문에 숙련도와 군기가 떨어진다는 말이 나오는데, 보다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미성년자를 훈육하고, 교육하는 교육현장의 경우는 어떨까?
또한 1년은 '관할'의 문제이기도 하다. 가령 온갖 사고가 터진 문민정부 시절을 보자. 당시 사고 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고가 터졌으며, 성수대교 붕괴 사고 당시 김영삼 정부는 '시공 잘못'이라 했다가 박지원에게 "경복궁이 무너지면 대원군 책임이냐."라는 말을 들었다. 성수대교가 건설된 시점은 군사정권 당시였고, 관리감독을 이어나가게 된 것은 문민정부였기 때문에 이런 촌극이 발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군사정권 당시 성수대교는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에 해당 사고들은 문민정부에서 독박을 써야 했다. 그런데 과연 시공 허가를 내 준 군사정권의 책임이 없을까? 물론 관리책임 및 사고 후 대처에 대해 문민정부의 책임이 없다고야 할 수 없지만, 가장 큰 원인(시공허가)을 제공한 것은 단연 군사정권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 '관할'이 달라졌기 때문에 욕은 김영삼이 다 먹었다.
이를 교사 입장에서 보면 반에 어떤 문제 상황이 있다 하더라도 1년 후면 내 관할이 아니다. 따라서 귀찮게 이거 해결하고 저거 해결한다면서 설치느니, 적당히 1년 버티는 것이 낫다. 사건이 터진 후에는 내 관할도 아니니 입 싹 씻으면 그만이며, 후임 담임이 대신 욕 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교폭력을 다루는 기사나 여론 반응을 보면, 전임 담임에 대한 이야기나 비판을 찾기 어렵다. 사건이 얼마나 장기화 되었든, 언제 어떤 일이 벌어졌든 오직 현임 담임이 욕을 먹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학교폭력 사건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이 바보다.
따라서 강력한 교사/학생간 라포형성, 교사의 책임감 증진 등을 위해 학년별 반 재배정 철폐, 기간 증대라는 카드를 살펴볼 필요도 있어 보인다.
- 담임교사에게 주어지는 과중한 업무와 담임 기피 현상
가령 한 반에 30명의 학생이 있다고 가정하자. 담임교사가 한 명당 10분씩 면담해도 300분이 필요하며, 이는 5시간이다. 학생들의 수업도 있고, 담임교사의 수업도 있기 때문에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다. 학생과 상담하는 것만 해도 이런 시간이 필요한데, 담임교사는 각종 서류업무, 지도업무, 자신의 수업시수 때문에 시간을 많이 빼앗긴다.
따라서 평교사의 상당수는 담임 업무를 기피하며, 특히 손이 많이 가는 각급 학교 저학년 담임의 경우 선배 교사들이 후배 교사들에게 떠맡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초등학교 같은 경우에는 너무 심해서 사회문제가 되다시피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이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인지는 모르나 한국에는 '부담임'이라는 제도도 있는데, 부담임제도는 말만 부담임으로, 어쩌다 담임이 결근하게 되는 경우, 같이 서류를 꾸며야 할 경우에나 약간 바쁠 뿐, 실질적으로는 부장 맡기에는 경력이 그렇게 독보적이거나 길지는 않고, 담임 맡기는 귀찮은 교사들이 지나가는 자리이다.
담임교사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담임에게는 사적으로 학생을 만날 시간이 거의 없다. 그나마 특수교과를 제외하면 수업을 담임이 직접 담당하는 초등학교에서는 다르나, 중학교와 고등학교 같은 중등학교에선 담임은 조례와 종례를 알리는 신호기, 특이사항이 있으면 학생들에게 알려주는 메신저, 가끔 학교 밖으로 나가거나 학교 행사가 있을 때 학생들을 지휘하는 지휘봉 역할이 되어버린지 오래이다.
보다 현장경력이 많은 베테랑 선배 교사들이 담임 자리를 기피하는 것도 문제이다. 담임수당 몇 푼 받으면서 학급 하나를 책임지느니 그냥 안 해버리는 편이 편하기 때문이다. 업무능력이 쌓이고, 학생을 보다 잘 다룰 수 있는 선배 교사들이 정작 실전을 피해가니 현장의 질이 좋아지기 어렵다. 쌓인 호봉으로 대우는 많이 받으면서 일은 쉬운 것만 하려는 교사가 적지 않다.
따라서 학생 생활에 관여하는 상담관 제도를 보다 강력하게 시행하거나, 담임교사가 맡게 될 수업시수를 일반 교사에 비해 많이 줄여주는 방법, 몇년 주기로 필히 기피되는 학년 담임을 하도록 강제하는 등의 방식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 학생을 관리할 시간이 없다면, 학교폭력을 감지하고 해결할 시간도 없기 때문이며, 고급인력이 뒤로 빠질수록 현장도 다루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수습할 능력도 안 되면서 촌지를 주지 않는 학생을 집중적으로 괴롭히거나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방향으로 왕따나 학교폭력을 조장하는 교사가 비일비재했다. 그야말로 최악의 유형인데 현재도 그런 교사가 아주 없는 건 아니라는 것이 문제.
2.5. 여론의 제 3자 악마화
학생들은 교사와 달리 관리자, 책임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해 혹은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은 이상 학교폭력에 대한 책임을 질 의무가 없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싸움이 나면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기에도 바쁘다. 여기까지는 관심 자체가 없고 제 할 일을 하는 것이니 괜찮으며, 이들을 비난해서도 안 된다. 학교폭력, 정확히 집단 내부의 폭력은 목격자 개인이 나선다고 어떻게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다가 자신들도 결국 영향을 받는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괜히 힘써 도와주다가는 학교 이미지 떨어지게 만드는 인간이라는 식으로 같이 매도당하기도 한다.예로부터 청소년들은 성인들에게 내부 집단의 일을 알리는 것을 비겁하고 부도덕적인 행위라고 여겨 왔기 때문에,[39] 신고하는 것이 꺼림칙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들킬 경우 비겁한 배신자로서 본인이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기 있다. 다음 타깃은 네가 될 거라고 협박을 당하는 것 또한 보기 힘든 일이 아니다. 또한 사건의 공론화를 시도하면서 내부에서 조용히 지나가는 경우가 아닌 이슈화되면서 언론에 보도될 경우 1~2학년 재학생 전체는 학교 이미지 하락, 3학년의 경우 대입 준비 과정에서의 엄청난 혼란 등 피해를 보는 입장이 되고 그렇다고 교육계에서 딱히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내가 당하지 않는 한, 쉬쉬하면서 조용히 잊히길 바라는 학생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대학교에서 벌어진 사건 사례만 봐도 사건이 발생하면 가해자들이야 당연히 처벌을 받지만 하등 상관이 없는 나머지 구성원 전체가 여론의 꾸지람을 듣고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곤 하는데 초중고도 비슷하면 비슷하지 다르지는 않다.
이런 이유로 인해 내부고발은 어른들도 쉽게 못하는 일이다. 당장 성인들의 사회인 군대에서도 기수열외에 거부하면 거부자가 기수열외의 대상이 된다. 성인들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 조직의 각종 비리, 부적절한 관행, 높으신 분들의 갑질을 보고 있지만 내부고발에 나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안전을 버리고 정의를 챙길 정도로 양심적이거나 예민한 사람들은 보통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국 헌법을 무시한 초법적 도청, 감청 시스템 PRISM을 폭로했다가 러시아로 망명해야 했다. 보안사라는 이름의 종지부를 찍은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의 주인공 윤석양도 계속 숨죽이고 살아야 했다. 닫힌 사회에서 가해지는 배신자에 대한 보복은 일개 개인이 감당하기 어렵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초고속 인터넷으로 고발이 쉬워졌지만, 거꾸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면서 내부고발자가 받는 중압감은 훨씬 무거워지고 컴덕후가 내부고발자 편이 아니라면 원천차단하기도 쉽다. 동조자, 심지어 방관자나 단순 구성원도 아닌 진짜 제 3자들 중에서도 나름 합당한 이유든 그냥 감정적인 억까든 비난과 조롱을 하는 경우도 있다.[40]
'여러 학생이 단결해서 일진들을 물리쳐야지.' 같은 말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게 쉽지 않다. 학교 조직이 학폭 신고자,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는 것은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신고자 본인이 학폭의 다음 피해자가 될 것을 알고도 적극적으로 첫번째 피해자를 감싸기는 어렵다.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도 일진인 엄석대가 몰락한 건 방관하던 5학년 담임과 달리 새로 바뀐 6학년 담임 김 선생의 개입으로 인해서였으며, 학생들은 담임이 바뀌기 전까지 엄석대에게 어떤 식으로든 굴종했고 한병태처럼 저항하는 학생은 고립됐다. 해당 작품에서 김 선생이 담임이 된 이후 제 3자 학생들에게 한 행동들은 당연히 부적절하지만, 책임자로서 한 행동을 통해 5학년 담임과 빗대어 보면 비록 방법이 매우 그릇되었으나 학교폭력에 무관심한 학교 운영진에 관한 일침으로도 볼 수 있겠다.
무엇보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정치, 경제, 환경, 외교, 범죄, 법조, 안보, 전쟁, 사회, 차별, 테러리즘 같은 거시적인 문제보다는 가족, 연인, 취미, 일, 상사, 후배, 친구, 월급, 세금 등의 신경 쓸 일이 더 많아 세대나 젠더 등의 각종 갈등을 부각하는 언론의 보도와 달리 막상 싸우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고[41] 대부분은 가까운 것들에 신경쓰고,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듯 평범한 학생들에게는 자아 실현 등 사춘기에 느끼는 고민들과 공부, 대입, 친구, 연애, 방학, 미래, 스포츠, 숙제
조선일보의 기사에 따르면 학폭 목격자들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그 수준이 천재지변이나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 준한다고 한다. 학생 개인이 정의감을 가지고 있든 그렇지 않든 '다음 타깃이 내가 되면 어떻게 할까'라는 인식 때문에 그런 경향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보복이 두려운 나머지 가해자 편을 들거나 아예 관심을 거두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현상을 없애는 것에 있어 가해자가 아닌 학생들에게 '비겁하다, 치사하다, 방관도 잘못이다' 라며 비판하는 것은 절대 옳지 못한 행위이며, 학교폭력 내부고발자에 대한 강력한 보호 및 학교와 경찰 조직의 강력한 학교폭력 대처 의지, 돈과 힘있는 가해자 측 학부모들의 외압을 강력하게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너무 멀다. 가해자 패거리는 대충 합의금 준 다음 사회봉사나 반성문, 보복 금지 정도의 경징계를 받으며 학교에 남아 있고, 피해자는 끝까지 가해자 쪽 학부모들의 등쌀에 시달리다 푼돈 받고(그것조차 못 받는 경우도 많다) 전학가는 사례 등 이러한 장치 부족에 대한 경각심이 낮고, 몇몇 교육감들은 학폭 사실을 생활기록부에 적지 말 것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42] 여전히 학교폭력 가해자는 당당하고 피해자는 숨어 살고 제 3자는 아무 상관도 없는데 2차 피해를 당해야 하는 불합리한 경우가 많으며 이는 현재에도 다를 바가 없다.
2.6. 선천적인 요인에 의한 원인
ADHD, 경계선 지능 등 다양한 선천적인 정신질환에 의한 피해자가 되면 일반적인 형태와 동등하면서도 다른 스탠스를 취할 수 있다. 선천적인 정신질환은 환경적인 면에서 부모가 민감하게 집어내지 않으면 정말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에 연령대가 높아지면 CAT, 웩슬러 지능검사를 받아보기 전까지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지 못한다. 현재의 아동은 진단이 더욱 빨라지고 있기에 최대한 개입을 하는 추세에 있으며, #, # 그만큼 부모의 양육의 수준이 과거와는 다름을 시사화한다.여기서 문제시 되는 것은 세대간의 차이상 스스로의 문제점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로 환경 및 병식 없음으로 선천적인 질환을 성장 과정으로 포장하는 경우다. 위의 영상에서 나타나듯, 언어지연, 산만성, 사회성 발달 문제가 있었음에도 성장 과정으로 포장되는 살벌한 케이스가 이쪽인데, 지능지수에 따라 양상도 달라진다. 주의할 점은 학교폭력의 다양한 원인 중 하나는 선천적인 요인이면서 반대로 선천적인 요인으로만 꼽을 수 없다는 것.
이는 아래의 영상으로 일목요연하다.
이는 교권 및 교사의 능력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현대의 유아교사 및 교사는 선천적인 요인에 대해서는 잘 캐치 한다. 그러나 학교폭력에 대해서는 과도하리 만큼 발을 빼는 스탠스를 취하는 면모가 없지않아 있고 이는 문제를 꼬이게 만든 이유 중에 하나로 손꼽힌다. 즉, 선천적으로 착한 아동과 다양한 요소에 의해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아동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달 과정에서 문제점을 꼬아놓았다.
3. 폭력을 미화하는 사회문화적 요인
3.1. 싸움의 스포츠화
80년대까지는 초등학교(5~6학년), 중학교에서 주로 남학생들끼리 "누구는 싸움 잘하더라" 등으로 폭력 행위(싸움 실력)를 가지고 우열 혹은 서열을 가르는 행위가 보였다.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이 '싸움실력'이 또래 남학생들 사이에서 스포츠마냥 미화되면서 학교폭력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경우가 많았다.현재에도 미성년 학생을 다루는 창작물에서 학생들간 싸움이 발생할 경우, 다른 학생들이 싸우는 학생들을 피하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종합격투기 경기를 관람하듯 환호성을 지르며 그 모습을 즐기는 장면이 등장하곤 한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서열을 정하는 것에 있어 싸움실력이 주요한 기준이기 때문에 일진, 싸움 잘하는 학생들을 두고 다른 학생들이 서열정리 및 토론을 즐기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발이 넓은 학생들은 학교 내의 랭킹을 정리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자신들의 지역에 있는 타 학교와 타 지역의 주요 인물들의 실력 또한 탐색하고, 랭킹을 매기는 경우가 있다.
전쟁이 외교전에 있어 가장 하책인 것처럼, 싸움은 권력다툼과 서열정리의 가장 세련되지 못한 방법이다. 따라서 현대 법치국가에서는 그렇게 큰 효용은 없는 편이고, 싸움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잃을 것이 더 많은 성인들에게는 크게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다.[43] 그러나 싸워도 잃을 것이 크지 않고, 아직 성숙하지 못해 싸움을 권력 다툼, 서열 정리의 가장 주요한 수단으로 보기 쉬운 청소년들은 싸움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게 된다. 이런 이유로 인해 싸움을 말리기는커녕 야유와 도발을 날려서 안 벌어질 싸움도 크게 조장하기도 한다. 또한 학생끼리의 싸움이란 당연히 교사의 눈에 띄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미성년자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육체적으로 미성숙했기 때문에 일생에서 신체스펙이 가장 허약한 시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멋있어 보인다고 착각하면서 힘 없는 친구들을 구타하면서 자신이 강한 줄 착각하는 망상에 빠지기 때문에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망상과는 달리 힘없는 친구들을 구타해 봤자 인간성만 망칠 뿐이고 그 악행에 대한 업보는 언젠간 되돌아온다. 그럴 힘이 있으면 차라리 친구들을 모아다가 진짜 스포츠를 하는 게 훨씬 건전하고 훨씬 멋있으며 훨씬 정의롭다.
3.2. 폭력에 대한 미화, 추억 보정
철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철이 없는 거랑 폭력은 별로 상관이 없다.그나마 21세기에 들어서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아져, 비록 실효성 논란은 있지만 학폭위라는 내부 절차라도 마련되어 있는 것이지, 그 이전 시대에는 인식 부족 탓에 초등학생 연령대에서 벌어지는 학교 폭력은 묻히기가 쉬웠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는 것도 아니니 애초에 증거 확보가 불가능해서 같은 세대라 할지라도 그 시절 회고담의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다.
안그래도 가해자는 자기가 했던 일을 잊어버리기 쉬운데, 오래 전 일이면 더더욱 기억할 리가 만무하며, 본래 지난 시절은 추억 보정으로 미화되기 쉬우니, 과거에는 이러한 악질적인 범죄가 없었다고 착각하기 쉬운 것이다. 게다가 과거에는 매스컴을 통해 각종 사건사고를 접할 기회가 없어서 모르고 넘어가기 쉬웠다. 그래서 세대가 바뀔 때마다 우리 어릴 때는 저러지 않았는데라는 말이 클리셰처럼 반복된다. 이는 학교폭력뿐만이 아니라, 흉악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흔히들 나오는 이야기다.
따라서 피해자가 뒤늦게라도 가해자에게 사과를 받기도 어렵고, 그 사실을 뒤늦게 털어놨다 하더라도 우리 동네에 그런 질 나쁜 애들이 있었을 리 없다며 오히려 피해자가 관종으로 몰리기 쉽다.
어떤 면에서는 20세기가 학교폭력에 취약했다고 볼 수 있다. 국민학교의 경우 한 학급 학생 수가 지금의 2배인 55~60명에 육박했던 적도 있었으므로, 선생님이 문제점을 파악하고 최선을 다했다 해도 완전히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문제는 이를 망각하고 성장한 어른의 자녀들이 자라서 똑같은 짓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란 말이 왜 있겠는가. 이 문서에 대표 사례로 언급된 서울 숭의초등학교 수련회 집단폭행사건 가해 학생들의 학부모들만 해도 19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녔을 사람들이다. 당연히 저 시절이라고 학교폭력이 없었을 리는 만무하다.
3.3. 기성세대의 학교폭력 인식 부족
젊은층이나 자녀들을 둔 부모 세대들의 경우 학교폭력은 범죄라는 인식이 매우 강하지만 자녀가 없는 일부 중년층이나 노년층의 경우 학교폭력이 범죄라는 인식이 매우 부족한 편이다. 특히 노년층의 경우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 자체가 사실상 거의 없는 수준[44]이라고 볼 수 있다. 1959년생인 김태룡 두산 베어스 단장이 과거 학교폭력 논란으로 지명철회된 적이 있는 김유성을 버젓이 지명할 정도이니.실제로 노년층들은 학교폭력의 경우 맞으면서 크는 거다 혹은 예전에는 그렇게 해 봤다 등 구세대적인 가치관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는 학교폭력 자체를 매우 당연히 여기는 노인층들도 존재한다.[45] 그래서 실제로 조손 가정의 경우 다른 가정에 비해 학교폭력 가해자가 될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게다가 가해자를 완전히 감싸주는 반면 피해자나 학교 자체를 비난하는 노인층들도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것은 당시 자라온 환경이 영향이 더 크다. 실제로 노년층들이 태어난 1930년대~1950년대에는 일제 강점기~제1공화국으로 당시에는 인권 자체가 거의 없는 수준이였다. 학교나 회사에서도 폭력이 굉장히 심했으며 이는 군사정권 시절인 1960년대~1980년대도 마찬가지이다. 폭력적 환경에서 자라온 노인들은 학교폭력에 대한 부재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상대가 때리면 나도 맞대응하면 된다고 인식해서 그렇다. 즉 맷집을 키우거나 주먹을 키우라는 것. 특히 남학교들의 경우가 그랬다. 1965년생인 표창원의 저서 '나는 셜록 홈스처럼 살고 싶다'에 당시 분위기가 나오는데, 본인이 학교의 싸움짱들을 상대한 일화가 나온다. 결국 맞대응 끝에 화해하고 절친이 되었다는 학원물스런 결말이 나왔고, 그때 싸움짱 친구들이 맘 잡고 건실한 사회인이 되었다고 회고한다.[46]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누가 싸움을 건다고 맞대응을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었다. 부모가 아이의 학업에 더욱 세심하게 신경을 쓰면서, 아예 싸움에 휘말리지 않도록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해 학생들도 과거와는 달리, 상대가 소위 쨉이 안 된다고 인식되면 싸울 이유를 못 느끼고 안 건드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약자를 괴롭히는 쾌감을 느끼기 위해 더욱 집요하게 괴롭힌다.
표창원도 저서에서 지적했듯이, 과거에는 그래도, 싸움의 상대가 안 되는 약한 학생들은 싸움짱들이 오히려 보호해 주거나 그러지 못 해도 다들 안 건들게 하자는 불문율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선이 무너진 것이다. 그럼에도, 어르신들이 이런 시대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니, 앞서 언급된 미스트롯 출연자 진달래의 경우도 안이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1] CCTV에 걸리면 처벌 받으니까 걸리지 않는 곳으로 피해자를 강제로 끌고 간 다음 괴롭히고 증거를 인멸하는 것이다.[2] 이를 예술로서 표현하거나, 업무를 수행할 때 역량의 원동력으로 활용하거나, 운동할 때 에너지로 사용하여 심신을 단련시키거나 하는 것도 사람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것인데, 프로이트는 사람의 이러한 행동을 승화(sublimation)라고 정의내렸다. 사람은 최적의 교육 환경과 다른 이들과의 원만한 상호 작용을 통한다면 얼마든지 이러한 충동을 다른 이에 대한 폭력이 아닌 승화된 행동으로 만들어낼 가능성을 지닌다. 학교폭력을 일삼는 비행청소년 무리에게 난타를 배우게 하여 폭력성을 예술 활동으로 전환시킨 사례가 있다.[3] 사실 영장류 뿐 아니라 상당수 많은 동물들이 사납다. 정말 온순한 동물도 있지만 이런 동물들은 포식자들에게는 그저 좋은 먹잇감에 지나지 않아서 엄청난 번식력으로 커버하든 어쩌든 하지 않으면 포식자들에게 잡아먹혀 멸종될 뿐이고 악을 쓰더라도 대들어야 포식자도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심정으로 안 건든다. 예시로 라텔의 경우 체구는 같은 서식지의 포식동물에 비해 형편없지만 더러운 성질머리(거의 분조장 수준. 지나가는 온갖 동물에게 시비를 걸어서 초식동물의 경우 괜히 공격해 성기를 물어뜯어버리기도 하고 하이에나, 사자, 표범 같은 포식자를 상대로도 절대 물러서지 않아서 표범이 늙은 라텔 1마리를 잡는데 1시간이나 걸리기도 했고 늙은 사자와 라텔이 싸우다 서로 죽이고 쓰러지기도 했다.)와 포식자 입장에선 기를 쓰고 잡아봐야 얻을게 없다보니 웬만해선 그냥 피해준다. 호구 되면 나만 바보가 되니까 호구가 안 되려면 사나워질 수 밖에. 그나마 인간은 이런 '사나움'이 적은 편이다. 적어도 인간은 수백 이상의 개체가 하나의 무리를 이루어 안정적으로 살아갈 만큼은 온순하다. 그러지 않았다면 진작에 무리 내에서 다툼이 끊이지 않아 해체되었을 것이다.[4] 유전적으로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 중 하나인 침팬지는 동족포식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연계의 수 많은 고등동물 중 동족을 집단으로 습격해 포로를 먹어버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5] 다만, 우생학 논리가 아주 강한 국가에서는 평균보다 뒤떨어지는 사람들을 가차없이 제거하려고 했다. 특히 경제가 어려워질수록.[6] 실제로는 학생 입장은 내 알바 아니다로 일관하는 교사들이 더 많았다. 어차피 교사도 직장인일 뿐이므로. 정말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는 복장문제나 성적, 촌지 등의 문제일 경우.[7] 혹은 초반에 반 아이들 한테 상습적인 잘못을 저지른다든지.(ex: 반 아이들 한테 상습적인 성희롱, 성추행 및 반 아이들의 소지품을 상습적으로 훔치고 훼손하는 행위 및 상습적인 폭언 혹은 자신보다 약한 아이 다수를 번갈아 학폭하는 행위)[8] 단, 이 경우에는 기존 가해자 패거리 소속이 아닌 주변의 다른 약한 아이가 타겟이 될수도 있다.[9] 헌데 대부분의 학교에서 원활한 학폭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감안하여야 한다.[10]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양한 해결 방식이 존재할 수도 있다.[11] 자녀가 학폭을 당하는데 무작정 강제 등교 시키는 행위 자체가 엄연한 방임 학대에 해당한다.[12] 청소년 쉼터 및 학대피해 아동 지원 시설은 입소자가 원치 않을 경우 등교시키지 않는다.[13] 그리고 일부 교활한 힘숨찐 중에는 본인이 학폭하고 싶은 본인보다 약한 아이를 초반에 살살 약올려 자신 한테 공격적으로 대하게 만들고, 조금 당해주는척 하다가 정체를 드러내며 얘가 먼저 나한테 공격적으로 대하였다 라고 명분을 만드는 경우 역시 존재한다.(본인이 일방적으로 학폭하면 본인의 여론만 안좋아지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하여)[14] 이 경우에는 최종 가해자(힘숨찐)가 단독범이며 최종 학폭 피해자 보다는 힘숨찐의 잘못이 더욱 크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자녀를 강제등교 시킨 최종 학폭 피해자의 부모의 잘못은 다소 적다.[15] 장애인, 다문화가정 자녀,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일반 자녀들과 함께 일반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 체제.[16] 가해자가 삼삼오오 모여 금품 등을 갈취하는 것은 특수강도에 포함되는 중범죄다.[17] 가해자가 피해자를 협박하여 매춘과 성관계를 강요하고 금품을 갈취하는 경우. 가출한 학생들의 집단인 '가출팸'에서 흔히 발생한다.[18] 가해자의 손위 형제나 가까운 친척이 경찰대 재학생/경찰공무원 지망생인 경우.[19] UN 아동권리협약에 묶여 있다.[20] 이런 경우는 경찰이나 검찰에 넣어도 기록에 안남는 방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거나 아예 안받아주기까지 하는 등 별로 안 엮이려 한다. 무엇보다 이런 경우 정말 칼 같이 법의 심판을 적용하려 하는 순간 맞는 사람이 당장에 한 대도 안때렸다고 해도 만약 괴롭히는 입장이라면 오히려 때린 피해자 측은 유야무야 넘어가고 가해자가 덤태기를 쓰기 십상이다. 물론 정말 한 대도 안 때린 경우 일종의 거래로 피해자 측이 그 어떤 페널티도 감당하지 않은 대신에 처벌 형량이 꽤 감소한다.[21] 참고로 국내 부부의 40% 정도가 맞벌이 부부라고 한다.[22] 정인이 사건의 경우, 친딸을 방치했다는 의혹도 있다. 자신이 직접 아이를 돌볼 수 있음에도, 도우미 아줌마에게 맡기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23] 특히 기성세대 부모가 제일 심각한 수준이다. 50~60년생이 고정관념들이 매우 심각하다.[24] 예를 들면 소방법 위반이나 위생 문제, 미성년자 대상 주류 판매 등 법적인 문제나 불륜, 밝혀지지 않은 범죄 사실, 전과 같은 피해자 부모의 과거 등 개인적인 약점 등.[25] 물론 피해자 부모 입장에서는 우리 애는 피해자인데 어째서 우리 애가 등교정지를 해야되냐, 가해자들이 처벌을 받고 등교정지를 해야지 라며 원통함을 호소할수도 있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모든것이 원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때로는 암만 불합리 하더라도 상황이 안되는 경우에는 융통성을 발휘하여 긴급 조치 부터 하여야만 추가 피해를 막을수 있다.[26] 그리고 드물지만 반대 사례 역시 존재한다, 부모 입장 에서는 학폭이 너무 심각하다 생각하여 자녀를 등교정지 시키고 차근 차근 기간을 두고 해결 하자고 하였지만 오히려 자녀가 나는 피해자인데 내가 어째서 등교 정지 하여야 하냐 나를 학폭한 애들이 벌을 받아야지 그놈들 처벌 하여 달라며 원통함을 호소하는 경우 역시 존재한다.(이 경우에는 오히려 부모 입장이 골치아파 지고, 심지어는 전혀 해결법이 없다면 학폭을 감수 하고라도 기어이 출석을 하려고 고집 부리는지라 부모가 당혹 스런 입장이다.)(사실 그정도 까지 감수하고 굳이 출석하려고 하는 피해자의 심리가 보통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내가 피해자인데 지금 도망치면 패배를 인정하는 셈이고 가해자들만 좋은 꼴 보는거 아니냐 라는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27] 물론 아동 학대 피해학생이 자신의 부모를 들이받을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의 경우 유교 문화, 가부장제 위계질서 등으로 부모와 자식은 상하관계라는 구시대적인 인식이 있어 만약 학대를 받던 자식이 부모를 들이받으면 패륜아로 큰 비난을 직면한다. 따라서 아동 학대 피해를 받은 아이는 부모를 들이받지 않는 대신 일진에 가담해 학교에서 만만한 아이를 들이받는 것으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고, 성인이 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가급적 본가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특히 공단이나 산업단지 인근) 원룸이나 고시원을 구해서 다른 또래들보다 일찍 독립하는 테크를 탄다.[28] 이러한 외향적인 사람이 을의 입장(아동학대를 당하는 쪽)에 있다가 갑의 입장(학교폭력을 가해하는 쪽)에 서면 더욱 더 악랄해지는 경우가 많다.[29] 흔히 간과되지만, 힘 없는 평화가 없다는 말은 무자비한 폭력이 답이라는 말이 아니다. 물론 화가 나는 것 자체는 지극히 당연하고, 누구나 화를 낼 수 있다. 다만 무례하게 화를 내서는 안 되며 정당하고 올바르게 화를 내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30] 안전 장비 없이 오토바이를 타는 등[31] 아버지가 회사 상사에게 크게 꾸중을 들었는데 그것을 올바른 방법 혹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법으로 해결하기는커녕 아들에게 화를 내면, 그 아들은 아버지가 한 것처럼 학교에서 피해자를 괴롭히는 패턴이다.[32] 아동학대 피해자 중에서 소극적이고 내향적인 성향을 가진 아이가 운 없게 학폭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지만, 아동학대 피해자 중에서 집에서 못받은 사랑, 관심을 받고 싶어서 악의없이 착한 관종으로 생활하다가 운 없게 악한 애들한테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자세한 내용은 이 문단 참고.[33] 한국의 심의 자체가 어떤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오락가락하는 경우가 많다. 어쨌든 이렇게 한국의 심의라는 것이 어떤 일정한 기준이라기보다는 심의 당사자들의 상당히 순간적인 심미적 윤리적 감수성에 좌우되곤 하는 터라 단언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으나, 체감적으로는 폭력에는 확실히 덜 민감한 경향이 있는 것도 같다.[34] 일반적인 경우, 아동들의 싸움은 신체적인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다툼과 진심어린 화해가 계속되어 우정이 더욱 돈독해지는 동등한 친구 간의 싸움을 말하는 것이며, 그런 경우에는 저 말이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학교폭력에서의 싸움은 힘센 학생이 약한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지 군대나 병원처럼 공인된 위계질서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동등한 위치에서 하는 싸움은 더욱더 아니다.[35] 물론 그건 서로 싸울 때 얘기고, 학교폭력 같이 일방적인 괴롭힘이자 스트레스 해소엔 통용되지 않는다. 당연히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이들보다 더 강한 물리력과 힘을 가진 어른의 객관적인 개입이다. 만약 그런 식이라면 사회의 법이 있을 필요가 없다. 대다수 학교 폭력은 어른들에 방관과 회피 그리고 합리화가 여실히 보여진다. 이를 해결해야 할 선생님과 공무원의 직무유기이다. 어차피 피해자 하나만 제거하면 시끄러운 것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일하는 사람에게 너무 편하다. 그러니 피해자를 쳐내는 방식을 쓰는 것이다. 앞 주석의 주장이 바로 어른들의 잘못된 인식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왕따는 서로 싸우는 게 아니다.[36] 더욱이 두산 베어스가 저지른 김유성 지명 스캔들은 기성세대들이 학교폭력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빼도박도 못할 증거이다. 김유성을 지명한 것도 모자라 그를 두둔하고 나선 김태룡 두산 단장은 1959년생이다.[37] 원래 아픈 사람의 마음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잘 공감한다고 하지 않던가?[38] 상호신뢰관계. 교육계에선 교사와 학생의 라포 형성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39] 외부 공권력에 의존하는 것을 '비겁한 행위'로 치부하는 것은 닫힌 사회의 주요 특징이다.[40] 예시로 든 스노든의 경우, 폭로와 관련된 이유를 들어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단순히 그가 긱이라서(...), 심지어 폭로와 아무 상관 없는 외모를 핑계 삼아 비난하는 사례까지 있었다.[41] 대부분은 거시적인 문제에 대해 '아, 그런 일이 있지.' 정도만 인지하고 만일 불만이 있다면 조용히 표로써 말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여기서 더 나가면 정치극단주의가 된다.[42] 앞 기사의 주인공인 김상곤은 문재인 정부에서 첫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 내정되었다.[43] 다만 마초적 성향을 가진 업계나 실제 대인 제압, 혹은 전투 기술을 익혀야 하는 기관 등에서 일할 경우에는 어떻게든 도움이 될 수 있고, 싸움을 잘한다는 것 자체가 기본적인 호신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개인이 자신감을 얻는 경우는 있다.[44] 노년층은 학교폭력뿐만 아니라 아동 학대, 아동 성범죄에 대한 인식도 사실상 거의 없다.[45] 당장 미스트롯 2에 나왔던 진달래가 학교폭력으로 인해 하차할 당시 일부 노인 세대들의 경우 그럴 수도 있지 원래 맞으면서 커야 정신 똑바로 차린다라는 표현이 많았으며 나머지의 학교폭력 사건도 비슷한 반응이 많았다.[46] 이 책에 나온 문제학생들의 사례는 같은 세대인 배우 정보석의 학창 시절 무용담과 비슷하다. 비록 정보석은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그냥 싸움 잘하는 애들끼리 싸우고 다닌 것이지, 약한 학생을 괴롭히는 짓은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