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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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집단괴롭힘 · 사이버폭력 · 와이파이 셔틀 · 기절 놀이 | ||
용어 | 왕따 · 은따 · 일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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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목록
2.1. 학업성취도가 낮은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는가2.2. 폭력적인 오락 매체가 원인인가2.3. 서양은 개인주의 문화 덕에 학교폭력이 덜한 편인가2.4. 근현대화 이전에는 학교폭력 같은 미성년자 폭력이 없었는가2.5. 학창시절에 국한되는가2.6. 학교 안에서만 발생하는가2.7. 대다수는 일진들이 저지르는가2.8. 직장폭력같은 다른 사회폭력에 비하면 경미한가2.9. 피해자도 문제가 있는가2.10. 방관자도 문제가 있는가2.11. 왜 피해자는 저항하지 않는가2.12. 특수학교나 특수학급 학생들은 항상 피해자인가2.13. 가해자는 학생뿐인가
1. 개요
학교폭력의 원인, 경과, 사후 처리에 관련한 오해를 기재하는 문서. '정확히 알려진 통계나 전문기관에서 발표한 자료, 기사'에 근거하여 적어야 한다.2. 목록
2.1. 학업성취도가 낮은 지역에서 주로 발생하는가
학교폭력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선입견이나 그렇지 않은 경우 역시 흔하다. 저소득층 지역은 한부모 가정이나 결손가정의 비율이 높고 아이들이 부모의 관리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거친 아이들이 많이 존재하고 아이들의 폭력적인 성향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교육 환경이 좋다는 지역에서도 학교폭력은 자주 발생한다.[1][2] 오히려 고소득층 지역의 특성상 집값 하락이나 지역 이미지 하락을 우려해 사건이 발생해도 묵인하는 경우가 많다. 성적과 인성은 절대적인 비례관계가 아니며 오히려 성적이 높은 영향력 있는 학생들의 주도 하에 이루어지는 경우도 존재한다.[3] 오히려 이런 경우, 지능적/계획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단순히 육체적 폭행만 이루어지는 학교폭력 사건들보다 더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예시로 2015년, 서울시 강남구의 은광여자고등학교에서 일어난 박주원 양의 자살 사건[4][5], 2021년 강원외국어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이현섭 군의 자살 사건 등이 있다.[6] 2012년도 당시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학교폭력으로 인해 2명의 여학생이 자살해버린 대전 D여고 사건도 대전에서 언제나 5위 이내 성적을 유지하고 여학생이 갈 수 있는 학교 중에선 1~2위를 다툰다는 명문고로 유명한 둔산여자고등학교에서 발생했다.
정순신 아들 학교폭력 가해 사건도 대한민국 최고 명문고인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 발생했다. 민사고와 쌍벽을 이루는 이과의 최고 명문인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도 성추행과 괴롭힘으로 피해자가 강제 전학가는 일이 있었다. 특히 개천의 용이 나기 어려워지고 학벌이 대물림되는 현 시대에서는 공부 잘하고 명문인 학교일수록 부모의 돈이 많고 지위가 높은 경우가 많아서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고 피해자가 모든 책임을 혼자 뒤집어쓰고 전학가는 경우가 많다.
이수연, 학교폭력에 관한 연구-고등학생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집(2007)과 이인석, 학교폭력에 대한 경험과 대처방안- 서울시내 실업계∙인문계 고교생의 비교를 중심으로, 국민대학교 석사학위논문집(2001)은 공통적으로 실업계-인문계 구분과 학교폭력에 큰 차이가 없음을 말하였다.
결론적으로, 위 사실에 입각해서 성적에서 상위권에 위치해있는 일반계고나 특목고에서 학교폭력이 없다는 건 편견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제중, 강남 8학군에 있는 학교, 학군이 좋은 학교, 특목고, 자사고, 영재학교에서도 학교폭력은 생각보다 많이 발생한다 이는 수도권 중심적인 사회체계의 폐해 중 하나이기도 하다.
2.2. 폭력적인 오락 매체가 원인인가
폭력적 매체와 폭력성의 인과관계는 심리학계에서 거진 50년 동안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떡밥이다. 이에 대해서는 관찰학습 문서 및 게임 중독 문서를 참고할 것. 연구 내적으로는 가상매체 속 폭력에 대한 무감각성이 실제 폭력성으로 얼마나 직접적으로 연관되는지에 대한 타당성의 문제가 있고, 연구 외적으로는 정히 그렇다고 치더라도 과연 이 주제가 "학교폭력" 이라는 한정된 케이스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타당성의 문제가 있다. 물론 뉴스데스크 게임 폭력성 실험 사건의 경우에는, 이를 실험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일선 연구진들을 모독하는 것에 가깝다.적어도 학술적으로 말하자면 이론적인 차원에서는 아직 어느 쪽으로도 이렇다 할 결론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억지로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라는 쪽으로 일반화 및 적용하려는 일부 인사들이나 시민단체들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문제는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으로서의 학교폭력, 왜곡된 사회의 부조리가 여실히 반영되는 현상으로서의 학교폭력이라는 문제를 깔끔하고도 손쉽게 "폭력적 매체" 라는 원인으로 돌리려는 지적 안일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끝내면 학교폭력은 너무나 단순한 문제가 된다. 하지만 비판하는 측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폭력적 매체에 원인을 돌리는 측도 제정신 박힌 사람들은 이게 영향을 끼친다는 거지 이게 원인의 전부라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환경적 요인만 따져보더라도 영아기의 양육(child-rearing) 같은 변수부터 시작해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회경제적 지위(SES),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회적 호위대(social convoy) 모델, 청소년 소집단의 또래문화, 지역사회 및 학교의 역할과 청소년 비행에 대한 관습적 대처방식, 교내 문제에 있어서의 교사의 임파워먼트, 지역 치안 환경, 소년법과 같은 법적 환경, 청소년정책의 효과성, 당국의 교육철학 등등...작정하고 따지고 들어가자면 한도 끝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폭력적 매체"가 인과성이 입증된 변수라고 하더라도 변수가 너무나 많아서 효과를 측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반면, 폭력적 매체가 인과성이 입증된 변수면 당연히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역시 타당한 구석이 분명히 있다.
2000년대 이후의 학폭에서 게임은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물론 '게임을 하고 나니 사람을 때리고 싶어졌다.' 식은 아니고 게임이 연관된 사건이 학폭에서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게임 캐릭터를 키워놔라.', '폰 게임 할 거니까 와이파이 셔틀해라.', '게임 캐쉬 충전할거니까 문화상품권 내놔.' 등이 있다. 즉 게임이 학폭에서 '착취'의 한 매개체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게임의 문제점이 뭐냐면, 게임은 언제 어디서나 쉽게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진입장벽이 낮고 어느 순간부터 노가다성 요소로 충만해졌기 때문에, 과거라면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이 헤어지고 나서는 자유로울 수 있었지만 현재는 끊임없는 착취를 가능하게 하는 매개가 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옛날에도 있던 숙제 셔틀 같은 경우 그냥 숙제 하는 김에 시간 더 들여서 조금씩 바꿔 써서 숙제 하나를 완공하면 끝나지만 게임은 끝이 없다. 이건 분명히 게임의 잘못은 아니지만, 노가다성 온라인 게임 핸드폰 게임이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의도치 않은 부작용 중 하나다. 90년대에서 00년대 초까지 유행하던 철권이나 kof나 위닝, 피파, 스타크래프트 등은 아무리 대신 시켜봤자 피해 학생의 실력만 늘어나지 별 의미가 없다.
학교폭력의 원인을 폭력적 매체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다고도 타당하지 않다고도 말하기 어렵지만, 있어 봤자 그 영향력이 크지 않은 시점에서 가장 큰 부작용을 심하게 말하자면 그 정보의 수용자들은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고 맘에 들지 않는 젊은 놈들 욕이나 이참에 한 번 더 하고 잊어버려야겠다" 정도의 감정을 갖고 있다. 이 문서에도 조금 서술되어 있지만 한국의 사회문제에 관해 괜히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 쓸데없이 별 관련도 없는 일본이나 유교 같은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화풀이용 샌드백이 그 원인이므로 제거해야 된다고 실컷 때려놓고 아 정신적으로 속 시원하니 잊어버려야겠다 하며 돌아서는 정도의 효과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폭력적 매체에 관심을 쏟는 것에 관해 그 기원을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정확히 얘기하자면 이렇게 매체가 사람의 심신에 끼치는 영향에 관한 사고는 전통적으로 미학의 영역이라는 설도 있다. 전통적으로 일본을 제외한 한자 문화권은 매체가 사람의 심성에 끼치는 영향을 중요시하고 높게 봤다.
법치를 낮게 보고 덕치를 높이 보며, 교화를 최고의 수단으로 생각했으며 그 수단이 바로 노래와 소설류 같은 예술매체들이다. 한자 문화권은 이와 같은 예술 매체를 관이나 학에서 알맞은 방향으로 통제하는 것을 통해 백성들의 심성을 잘 갈고 닦아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다시 말하면 심성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예술 매체는 전통적으로 처벌과 검열의 대상이었다. 이를 또 다시 말하자면, 예와 술에 속하는 것들은 어디까지나 도를 향한 부속품 정도로, 심성을 아름답고 건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 생각하지 예술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존재가치에 대해서는 아예 인지 자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전면 부정하는 지극히 실용적인 미학관이다. 요러하기 때문에 기성세대가 매체를 대하는 자세는 지적 안일함도 아니고, 00년대 들어서 게임이 학교폭력의 주된 화두 중 하나로 떠올랐기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전통적이고 수준 높은 미학관에 근거한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그렇게 자신들이 한자 문화권의 깊은 전통 속에 서 있다고 생각하고 의식하고 검열하는 것은 아니겠지만은. 한국은 전통적으로 높은 인문학 수준을 유지했지만 동양철학 기준이고 일제 강점 이후 서양 철학과 인문학의 발달은 답보 수준이기 때문에, 현대적인 미학관의 수입 대신 전통적인 미학관을 고수하는 가운데 기독교, 그중에서도 장로교 윤리관을 조금 도입한 상태에서 검열과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조금 무리한 해석이다. 서양에서도 스테인드 글라스의 사례처럼 종교적, 사회적으로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아주 없진 않았으며 의외로 1950년대까지는 영화나 만화 심의 수준은 생각보다 엄격했다. 서양에서 현재와 같은 미학관이 갖춰진 것은 68혁명으로 일컬어지는 1960년대의 급진적인 사회 변화 탓이 크고, 동구권도 마찬가지로 1980년대 이전에는 보수적인 사회가치관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결론적으로, 학교폭력의 실체와 실태를 정확히 알려줌으로써 시각을 넓히고 문제의 다층적인 복잡성을 이해시키는 것은, 학교폭력을 "폭력물에 빠져 버린 일부 문제아들의 개인적인 문제" 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사회의 일원인 내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란 결론에 닿는다. 학교폭력이 일부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다만 학술적인 문제를 떠나 실질적으로 게임, 영화, 만화, 격투기 장면 등을 따라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의 사례가 분명히 존재하긴 하며[7], 국가에 따라서 다르지만 한국에서는 대부분 이러한 현실을 들어 미디어에 대한 검열 및 통제가 옳다고 보는 여론이 대다수다. 물론 없애다시피 심해서는 안되겠지만. 폭력적인 매체를 따라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건이 계속 발생한다면 이러한 여론이 쉽게 수그러들기는 힘들 것이다.
2.3. 서양은 개인주의 문화 덕에 학교폭력이 덜한 편인가
보통 한국의 왕따를 비롯하여 일본의 虐め(이지메), 중국의 霸凌[8], 欺凌, 欺負같은 단어 때문에 학교폭력은 공동체주의 성향이 강한 동양권이 강하고, 개인주의가 강한 서양권은 개인주의라 없거나 덜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2018년 PISA 통계를 보면 오히려 한중일 3국 모두가 학교폭력 경험률 최하위권에 들어가며, 특히 한국은 압도적인 최저치를 찍고 있다. 현재 한국은 학교 폭력에 대해 엄청 신경 쓰고 있다. 동양권에서는 그나마 싱가포르가 높은 편이다.이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올베우스(Dan Olweus)[9]교수가 있는데, 1970년대부터 학교폭력의 과학적 접근 및 해결법을 연구한 1세대 학자로 유명하며, 불링(Bullying)이라는 단어가 보편화되는 것에 일조한 사람이니 그 이름값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폭력에 대한 학문적, 제도적 접근은 서양에서 먼저 시작했다. 기실 근현대 교육, 현행 학교 제도의 기틀이 서양에서 잡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일단 학교폭력을 의미하는 영단어인 불링이 있고 다른 유럽 언어 역시 Harcèlement scolaire, Schikane, Mobbning 등의 학교폭력을 의미하는 단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학교폭력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 심각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서구권의 경우 인종주의, 총기 소유와 겹쳐 더 상황이 심각한 경우도 많다.#, #, #, # 서양과 동양의 차이는 법, 제도적 차이와 엄격함 외에는 거의 없고, 비교적 학교폭력을 일찍 연구하고 대책을 강구했기에 서양 쪽이 동양에 비해 보다 나은 편이나, 세계 최고 선진국이라는 미국조차 초창기에는 올베우스의 연구를 보고 배우기에 바빴을 정도이니 실상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니다. 이런 와중에도 미국에선 학교폭력과 무관하다 볼 수 없는 총기 난사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 오하이오 소재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 기사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미국 사회도 긴장하고 재발방지를 촉구하지만 대비책은 영 신통치 않다.
서양권 문화 영향을 많이 받은 홍콩도 학교폭력이 꽤 문제다. 아예 중학교를 무대로 한 초급학교패왕[10]라는 영화가 나올 정도. 정확히는 일본과 서양의 학교폭력 문화가 합체한 모양새이다. 오토바이 타는 폭주족도 꽤 많아 경찰과 크로스하버 터널 등에서 자주 실랑이 벌이고는 한다.
일본과 대만같은 경우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철저히 격리시킨다고 한다. 그에 비해 중국은 아직 대책이 미흡한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도 학교폭력 문제가 대두되자 빨간 불을 켜고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북미는 확실히 처벌이 한국에 비하면 확실히 세다. 그쪽은 인종이 섞여서 인종차별 문제로 끌고 갈 수도 있고 무엇보다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당연하고도 당연하지만 한국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 원칙을 잘 지키기 때문이다. 다만 고려해야 하는 것은 처벌까지 이어지는 학교폭력 수위가 매우 높다는 점이다. 애초에 위에서도 언급되었듯 학교폭력 사례 자체가 한국보다 훨씬 많기에 한국 학교폭력 사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단발적 폭행이나 폭언은 북미 내에서 문제의식이 부재하여 처벌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11] 그나마 지속적인 강한 폭행같이 높은 수위의 학교폭력 사례들에 대한 처벌은 확실히 한국보다 강하긴 하지만 사실 이 정도 수위면 한국에서도 구미권 수준은 아니더라도 퇴학등 강한 처벌이 이루어지기는 한다.[12]
당장 서양 어린이~청소년층들이 즐기는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만화들만 봐도 불량해 보이는 양아치(Bully)나 무식하게 힘만 세고 덩치 큰 운동선수, 겉모습을 예쁘장하게 꾸민 치어리더같이 상위 클리크의 좀 논다 싶은 학생들이 자기보다 만만해 보이고 약해보이는 애들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면서 괴롭히거나 가끔 캐비닛에 가두는 장면이 한번쯤은 꼭 나온다.[13] 랄프 위검을 봐도 장애인을 매우 존중한다던 선진국에서도 정신장애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은 현실에서도 있다. 많은 장애와 정신병들이 대부분 발견된 곳인 구미권 사람들도 동양보다 인식지수가 높을 뿐이지 일상적으로 정신병에 대해 무지하거나 편견을 가지는건 똑같다. 아스퍼거 증후군 같이 드물게 알려진 장애들에 대해서 서양인들도 대부분 모른다.
실사영화판 스파이더맨을 봐도 주인공 피터 파커가 학창시절 때에 나쁜 애들의 괴롭힘 때문에 아싸로 살아온 모습이 보이는데, 나중에 스파이더맨이 되고 나서 그동안 자신을 괴롭힌 놈에게 자기도 모르게 쭉빵 한대로 와장창하고 박살냈더니 오히려 주변에서 무섭다며 더욱 아싸로 몰아갔다. 이런 묘사를 보아 서구권 명문 학교에서도 왕따나 아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는 미국 혹은 핀란드처럼 총기를 소유 가능한 나라들의 경우 간간히 학교 총기난사 사건도 일어나는 막장스런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이 좋은 예로서, 학폭 피해자가 완전히 자제력을 상실하고 총기난사를 저질러 수많은 사상자를 낸 끔찍한 사건이었다.[14]
2.4. 근현대화 이전에는 학교폭력 같은 미성년자 폭력이 없었는가
학교폭력과는 거리가 있지만[15], 이 그림만 봐도 그런 소리 못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오늘날의 한국 학교에 해당하는 서당같은 곳에서는 유교 정신이 매우 깊었으므로 미성년자들간의 폭력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얼라리 꼴라리~"[16]가 언제 나온 건지부터 알아보고 잘 생각해보자. 또한, 그 시대에 나쁜 쪽으로 찍히면 또래들로부터 현대의 린치와 유사한 일도 일어났으며, 더 갈 것도 없이 그 유명한 조선왕조실록에도 성균관 생도나 하급 관리들 사이에서 신고식[17] 등으로 사람이 죽거나 병드는 일이 있었다며 처벌해야된다라고 건의한 기록이 있으며, 패싸움이나 집단린치 또한 기록되어 있다.[18] 근대도 물론 예외는 아닌 게, 동서양 막론하고 근대 기숙사에 새로 들어오는 신입에게 다구리를 날리거나 물세례를 뿌려서 괴롭히는것, 혹은 싸움 도전장을 보내서 강제로 1:1 맞다이를 까는 것쯤은 귀여운 일로 치부되었다는 것을 상기하자. 미디어가 없던 과거에는 사실상 학교폭력 수준이 아닌 중상해나 살인미수에 준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고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원시적이고 잔악한 일들이 암암리에 벌어졌다. 지금 우리가 겪는 현재는 대다수가 과거의 모습에서 개선된 것임을 항상 기억하자.
근현대화 이전은 아니지만 흔히 높으신 분들이 나 때는 안 이랬는데라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 당시의 신문기사와 TV뉴스, 시사프로그램을 보면 이 당시에도 학교폭력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1960~80년대 학교폭력 문제를 반영하는 작품으로 말죽거리 잔혹사,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이 있고, 1990년대 작품인 신세대 보고 - 어른들은 몰라요 럭키짱이나 어쩐지 저녁, 짱(만화), 핫도그(만화), 진짜 사나이(만화) 등의 인기 드라마와 인기 만화작품에서도 학교폭력이 소재로 쓰일정도로 학교폭력은 만연해있었다. 추억보정 혹은 심의문제 때문에 약간 미화되어 나왔을 뿐, 실제로는 현재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집단괴롭힘이 이루어져있었고, 패싸움도 수시로 일어났으며, 촌지를 받는게 당연했을 시절이라 돈 욕심 많은 교사가 학부모가 촌지를 안주는 학생들이 당하는 학교폭력을 외면하기도 하는 등의 부조리는 만연해있었다, 다만 심하게 체벌이 심하게 이루어지다보니까 교사한테 까불거리면 쳐맞는것이 더 많았을 뿐이었다. 물론 이렇게 체벌이 흔하게 이루어졌어도 반항하거나 싸움질을 했던 학생들은 그때도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모든 학생들이 착하다는 편견을 버리자. 또 하나의 반례로, 학생들 간의 폭력은 아니지만 학교 내에서 일어난 폭력 사건으로 청주고 야구부 사건이 있다. 현재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된 것은 당시 사회 전반적인 변질된 공동체주의 및 부실한 통신망, 구시대적인 관념 때문에 묵인했던 과거의 문제점이 인터넷 등의 전자통신매체의 발달로 인해 쉽게 드러나게 된 것일 뿐이다.
또한, 과거 학폭의 대표라 하면 다른 학교와의 패싸움을 꼽을 수 있는 반면, 1980년대를 지나면서 집단괴롭힘이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현대 학폭의 대표는 단연 집단괴롭힘이다.[19] 과거에는 '내 편 아닌 사람'에게 학폭을 가했다면 현대에는 그냥 '만만한 사람'에게 학폭을 가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 외에도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삭막해진 가정 때문에 수법이 잔인해지고 지능화되며 갈취와 착취가 더 심해지고 있다. 그래서 2010년대 들어 정부에서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대처하게 된 것이다.
2.5. 학창시절에 국한되는가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2조 1항,[20] 2항[21]에 따르면, 초ㆍ중등교육법상의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 만을 의미한다.따라서 법적으로 볼 때, 고등교육법에 해당하는 교육기관(대학) 내외의 폭력은 학교폭력으로 보지 아니하며, 미성년자 간의 폭력사건이라도 당사자가 학생이 아니라면 역시 학교폭력으로 보지 아니한다. 학생이 가해자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학생이 아니라면 이 역시 학교폭력으로 보지 아니한다. 따라서 원론적으로 볼 때, 학교폭력은 학창시절에만 일어날 수 있다.
물론 성인이 되어서도 잔인하고 악랄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도 많으나, 성인의 시점에서는 미성년자에 비해서 엄하게 형법에 의해 처벌받고[22], 소년법 및 미성년자 양형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 그 때문에 형사처벌을 받게되는 만 14세 이상이 되면 되도록이면 몸을 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23] 이따금 뒷담화, 폭력이 수반되지 않는 따돌림을 하거나 똥군기를 부리는 사례가 종종 보이지만 피해자 쪽에서 신고 및 고소하거나 목격자가 고발한다면 상해죄, 강요죄, 폭행죄 등이 구성되어 얄짤없이 처벌받는다.
2.6. 학교 안에서만 발생하는가
보통 학교폭력을 이야기할 때면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 따돌림 등이나 학교의 각종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상정하지만, 실제로 그 범위는 좀 더 광범위하다.불행 중 다행으로 학교폭력 사례 중 학교나 지역을 넘나들며 괴롭히는 사례는 없다시피 하며 있다 해도 약육강식 형태가 아닌 피장파장, 어금지금, 막상막하 식의 네가 나쁘니 내가 좋니 하는 학교나 동아리 간의 감정 싸움이나 싸움 잘하는 학생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하는 싸움이 학교폭력으로 왜곡되는 대부분이지만[24], 이것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학교 밖에서 학교폭력이 일어나는 사례는 적지 않다. 언론에 보도된 가장 극단적인 사례들 역시 야산, 공사장, 폐건물, 공원, 학원, 가해자나 피해자의 거주지, 심지어 주점 등으로 생각보다 다양한 장소가 나타난다.
학교 밖에서의 학교폭력이 훨씬 위험하고 치명적인 이유는 학교 안과 달리 보는 눈이 매우 적은데다[25] 위험한 도구를 구하기 수월하며, 학교 안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교사 역시 함부로 개입하기 힘들고, 못된 어른이 가해자에게 개입하는 등[26] 학교폭력을 넘어 진짜 폭행죄로 확대될 수 있으며 학교 밖 청소년이 가해자나 피해자로 개입되는 경우에도 학교폭력이 성립되지 않아 학폭위를 통한 가해자 처벌이나 피해자 구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7. 대다수는 일진들이 저지르는가
물론 일진들도 학폭을 많이 저지르나, 어느 정도 서열정리가 끝나면 '다들 알아서 기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학폭 사례가 줄어드는 편이다. [27] 다만 상습적인 금품갈취, 언어폭력은 계속해서 저지르기 때문에 육체적 폭력 뿐만 아니라 정신적, 사이버 폭력도 포함되며 금품갈취 역시 당연히 포함되는 학교폭력의 완전한 정의로 치면 학생들 사이에서 발언권이 강한 일진들이 학폭에서 높은 비율을 가져가는 것 자체는 사실이다.그러나 학폭은 일진들만 저지르는 것이 아니며 평범한 학생들도 일진 못지않게 많이 저지른다. 오히려 평범한 학생들이 개입되었을 때가 더 위험하다면 위험한데, 집단괴롭힘이 적용되기 때문이고, 가해자를 특정짓기 어려워 법적 처단도 어렵다.[28]
진위 여부는 논란이 있으나, 현재 논란이 되는 유명인 학투 사례들이 이런 경우다.
즉, 일진들과는 달리, 끼리끼리 치고받고 싸운 게 아니라, 한쪽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경우이며, 일반 학생으로 분류되는 애들이 가해자라서 피해자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식으로 여론몰이가 쉽다는 게 문제다. 또한 괴롭힘과 폭력에 집단적 동조와 같은 군중심리가 발생하여 일진과 같은 소수 그룹의 주도적 괴롭힘보다 증거와 증언을 구하기도 어렵고, 학폭이 일어나는지 자체를 알기가 어렵다. 피해자는 혼자고, 가해자는 다수이기 때문이다.
2.8. 직장폭력같은 다른 사회폭력에 비하면 경미한가
전형적인 피장파장의 오류이며, 미성년자는 사회적 보호와 관심의 대상임을 망각한 무책임한 발언이다. 남이 맞고 참는다고 해서 나도 그래야 할 이유도, 당위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물며 미성년자는 오죽할까. 인권은 상향평준화의 대상이지 하향평준화의 대상이 아니고, 범죄는 막아야 할 것이지 더 심한 범죄가 있다고 해서 다른 경미한 범죄가 용서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사회에서는 기본적으로 법이 보호해 주기 때문에 최소한 신체적인 폭력을 썼다가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지만, 학교폭력의 경우는 신체적인 폭력을 써도 부모나 형사미성년자 제도 등을 이용해 빠져나가는 사례도 많기 때문에 딱히 사회폭력에 비해 경미하다고 보기도 어렵다.인종차별을 당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다행이니? 나치 독일이었으면 가스실로 보냈어.', 강도 피해자에게 '야 넌 운이 좋다. 살해당하지 않은 게 어디냐?' 같은 실언을 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냥 없어져야 할 것은 없어져야 할 뿐이다.
2.9. 피해자도 문제가 있는가
상대가 학교폭력을 하기로 마음 먹으면, 그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오히려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이유로 질투를 사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애초에 학교폭력 피해자에게 문제가 있든 없든 학교폭력은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물론 학교폭력 피해자가 정말로 인성에 문제가 있거나, 과거에 학교폭력 가해자인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피해자한테 학교폭력을 가해하는건 잘못된 행동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피해자도 문제 있다.'는 말로 책임 전가 하려는 경우가 빈번하다.[29]이 글부터 본문들은 피해자가 함부로 시비나 공격을 하지 않았어도 얌전히 있었는데도 당하고 학교폭력은 갖가지 다양한 것들로 가득해서 아무런 이유들도 없이 누구에게나 당할 수도 있다는 점을 반드시 명심하기 바란다. 나뿐만 아니라 타인들도 서로 존중하길 바란다.
키가 작거나 힘이 약하거나 병이 있거나 장애가 있어서 만만해 보인다, 집이 못 산다[30], 뚱뚱하거나 얼굴이 못생겼다, 공부를 못하거나 잘한다[31], 외국에서 왔다, 부모한테 찍혔다는 등의 같잖은 이유 때문에 학폭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비교가 힘들 정도로 더 많다. 더불어 설령 상대가 저런 문제점을 가졌다 해도 폭력을 저지르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다.[32] 거기다가 이런식의 책임 전가를 하는 머리가 된다는 것은 "이딴 짓 해봤자 처벌받을 짓이니 절대 해선 안된다" 정도는 생각할 머리가 된다는 소리니 말도 안되는 변명에 불과하며 고작 피해자에게 문제있다는 이유로 학교폭력을 행사한다면, 이는 곧 가해자 자신 또한 문제가 있는 사람임을 자인하는 것이요, 결국 고작 '피해자의 문제' 때문에 아예 성폭력, 살인 등 인간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짓을 대놓고 저지르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거기다가 문제가 있는 사람을 직장상사[33]로 만났을 때 과연 대처할 수 있는가의 문제도 있는데 문제가 있는, 즉 직장 상사에 관해서 극복할 수 있는 건 사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로 인한 문제를 해쳐나올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사회에서 제일 살아남기가 유리한 건 상식이다.[34]
거기다가 피해자 문제를 빌미로 학교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들은 갖가지 핑계거리를 만들어내 필요 이상으로 가해를 일삼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피해자도 문제있다'는 가해자의 변명은 결국엔 책임 전가의 변명에 불과하다는 점을 뒷받침해준다.[35]
2018년 한 학생이 사망한 사건에서 피해자가 친모가 러시아인이고 한국인 아버지가 없는 다문화 가정이라는 것을 노리고 초등학교 때부터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괴롭히다 피해자가 사망한 사건에서도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며칠 전 가해 주동자 아버지를 욕해서 폭행했다고 핑계를 되는 등 사망한 피해자에게 사건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게 현실이다.
전세계에서도 암암리에 일어나고 있는 제노사이드(집단 학살)까지 갈 것 없더라도 장애인 등 소수자 차별 역시 가해자(가해 집단)의 이런 책임 전가 논리에서 나온 비극적이고 극단적인 문제 해결이다. 결론적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은 정당화 될수 없고 현실적으로 생각해봐도 외부의 힘과 권력에 의존해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절대로 사회 갈등을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그리고 폭력은 당하는 상대방의 존엄성과 인격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억압하는 일이며 엄연히 인권 침해이자 동시에 범죄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남의 결점을 핑계로 폭력을 일삼는 자들은 그저 인간 말종이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2.10. 방관자도 문제가 있는가
학생이라면 전혀 그렇지 않다. 어른들 역시 대학생 몇 명이 사고를 쳤다고 해당 대학의 다른 학생들이 꾸중을 들을 이유는 없고, 어떤 연예인이 잘못을 했다고 그룹 내의 다른 멤버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며, 정치인이 잘못했을 때 국민은 아무 죄도 책임도 없듯이 학생들은 관리자, 책임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해 혹은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은 이상 학교폭력에 대한 책임을 질 의무가 없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싸움이 나면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기에도 바쁘다. 관심 자체가 없고 제 할 일을 하는 것이니 괜찮으며, 이들을 비난해서도 안 된다. 학교폭력, 정확히 집단 내부의 폭력은 목격자 개인이 나선다고 어떻게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데다가 자신들도 결국 영향을 받는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괜히 힘써 도와주다가는 피해자로 전락하거나, 학교 이미지 떨어지게 만드는 인간이라는 식으로 같이 매도당하기도 한다.[36]하지만 교사의 경우에는 책임자로서의 직책을 가지고 있으며, 교사가 방관한다면 명백한 잘못이다.
2.11. 왜 피해자는 저항하지 않는가
"짐작은...간다. 모든 게 맘에 차지 않았겠지. 서울식과는 많이 다를 거야. 특히 엄석대가 급장으로서 하는 일은 어떻게 보면 못돼먹고... 거칠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게 바로... 이 곳의 방식이다. (중략) 봤지? 오늘 60명 중에 네 편은 단 하나도 없었어. 네가 꼭 석대를 급장 자리에서 쫓아내고... 우리 반을 서울에서 네가 있던 반처럼 만들고 싶었다면... 먼저 그 아이들을 네 편으로 만들었어야지. 석대가 이미 그 아이들을 휘어잡고 있어서 어찌해 볼 수 없었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너는 내게 달려오기 전에 먼저 아이들부터 먼저 네 편으로 돌려놨어야 했어. 그게 안 되니까 내게 왔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리고... 아이들이 어리석으니까 선생인 내가 고쳐 놔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틀렸어. 아이들의 그 지지란 것이 실상은 석대의 위협이나 속임수에 속아 넘어간 거짓된 것일지라도... 마찬가지야. 나는 어쨌든...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석대의 힘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어. 지금껏 흐트러짐 없이 잘돼가던 우리 반을... 막연한 기대만으로 흩어버릴 수 없기 때문이지. 거기다가... 어쨌든 석대는 전학년에서 가장 공부 잘 하고... 통솔력 있는... 모범적인 급장이다. 무턱대고 비뚤어진 눈으로만 보지 말고... 그의 장점도...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새로 시작해 보아라. 석대와 경쟁하고 싶다면... 정당하게 경쟁해라... 알겠니?"
(중략)
만약 그가 소리 높여 꾸짖었다면 나는 어떻게든 맞서 나를 주장하려 들었을 것이다. 아니 성난 얼굴이었거나 조금이라도 나를 미워하는 기색이 있었더라도 기억에서처럼 그렇게 조용히 듣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나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듯한 그 목소리와 진정으로 나를 염려하는 듯한 그의 눈길은 내게서 그런 기력마저 빼앗아 버렸다. 나는 넋나간 사람처럼 무정하고 성의 없는 담임 선생의 이상한 논리 앞에 앉았다가, 이윽고 쥐어짜다 만 빨래 같은 몸과 마음이 되어 거기서 풀려났다.
(중략)
담임 선생에 대한 기대를 온전히 거둔 뒤 나는 먼저 아버지에게 내가 빠져 있는 외롭고 힘든 싸움을 털어놓고 도움을 구했다. 그러나 무력감으로 전같지 않게 비뚤어져 있던 아버지[37]는 무정하고 성의없는 담임 선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못난 자식, 누구 일을 누구보고 해 달라는 거야? 힘이 모자라면 돌도 있고 막대기도 있잖아? 그보다 공부부터 이겨 놓고 봐. 그래도 아이들이 안 따르나..."
내가 감정을 앞세워 상황을 잘 설명하지 못한 것도 있고, 아버지가 내 일을 아이들 세계에 흔히 있는 사소한 다툼쯤으로 쉽게 여긴 탓도 있지만, 나는 아버지의 그 같은 역정에 더 어떻게 말해볼 기력을 잃고 말았다. 그래도 나를 이해하려고 안달하고 부지런을 떤 것은 어머니였다. (중략) 나는 그런 어머니에게 다시 은근한 기대를 걸어 보았지만 결국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너는 애가 왜 그렇게 좀스럽고 샘이 많으니? 그리고 공부는 또 그게 뭐야? 도대체 너 왜 그래? 거기다가 엄마에게 거짓말까지 하고... 오늘 네 담임 선생님 만나 두 시간이나 이야기했다. 엄석댄가 하는 걔도 만나 봤지. 순하면서도 아이답지 않고 속이 트인 애더구나. 공부도 전교에서 일등이고..."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게 나무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 한 반 시간을 담임 선생과 비슷한 잔소리를 늘어놓았으나 내 귀에는 그 이상 한 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나를 사로잡고 있던 것은 절망이 아닌 허탈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주인공 한병태의 5학년 담임과 부모님이 한 말.[38]
(중략)
만약 그가 소리 높여 꾸짖었다면 나는 어떻게든 맞서 나를 주장하려 들었을 것이다. 아니 성난 얼굴이었거나 조금이라도 나를 미워하는 기색이 있었더라도 기억에서처럼 그렇게 조용히 듣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나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듯한 그 목소리와 진정으로 나를 염려하는 듯한 그의 눈길은 내게서 그런 기력마저 빼앗아 버렸다. 나는 넋나간 사람처럼 무정하고 성의 없는 담임 선생의 이상한 논리 앞에 앉았다가, 이윽고 쥐어짜다 만 빨래 같은 몸과 마음이 되어 거기서 풀려났다.
(중략)
담임 선생에 대한 기대를 온전히 거둔 뒤 나는 먼저 아버지에게 내가 빠져 있는 외롭고 힘든 싸움을 털어놓고 도움을 구했다. 그러나 무력감으로 전같지 않게 비뚤어져 있던 아버지[37]는 무정하고 성의없는 담임 선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못난 자식, 누구 일을 누구보고 해 달라는 거야? 힘이 모자라면 돌도 있고 막대기도 있잖아? 그보다 공부부터 이겨 놓고 봐. 그래도 아이들이 안 따르나..."
내가 감정을 앞세워 상황을 잘 설명하지 못한 것도 있고, 아버지가 내 일을 아이들 세계에 흔히 있는 사소한 다툼쯤으로 쉽게 여긴 탓도 있지만, 나는 아버지의 그 같은 역정에 더 어떻게 말해볼 기력을 잃고 말았다. 그래도 나를 이해하려고 안달하고 부지런을 떤 것은 어머니였다. (중략) 나는 그런 어머니에게 다시 은근한 기대를 걸어 보았지만 결국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너는 애가 왜 그렇게 좀스럽고 샘이 많으니? 그리고 공부는 또 그게 뭐야? 도대체 너 왜 그래? 거기다가 엄마에게 거짓말까지 하고... 오늘 네 담임 선생님 만나 두 시간이나 이야기했다. 엄석댄가 하는 걔도 만나 봤지. 순하면서도 아이답지 않고 속이 트인 애더구나. 공부도 전교에서 일등이고..."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게 나무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 한 반 시간을 담임 선생과 비슷한 잔소리를 늘어놓았으나 내 귀에는 그 이상 한 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나를 사로잡고 있던 것은 절망이 아닌 허탈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주인공 한병태의 5학년 담임과 부모님이 한 말.[38]
만화나 영화처럼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한번 제대로 저항하면 가해자들이 건들지 않는다던지 격투기를 배우기만 하면 주먹으로 죄다 참교육시켜줄 수 있다던지 하는 것은 전부 다 픽션이다.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냉혹하고 지독하며 잔인하다. 소위 싸움 잘하는 일진들의 기선잡기가 아닌 한, 학교폭력은 처음부터 강한 폭력과 심각한 괴롭힘으로 시작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작은 장난으로 피해학생의 성향을 분석한 후에 점차 심각한 폭력으로 발전되는 것이 대다수 학교폭력의 유형이며, 가해자의 수가 다수인 경우가[39] 대부분이다. 닫힌 사회에서 벌어지는 집단범죄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피해학생은 학습된 무기력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 한편,[40] 육체적 상흔이 남는 물리적 폭행을 제외하면 증거를 수집하는 것조차 어렵다.[41] 저항한 피해자가 학교폭력 가해학생으로 둔갑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생하기도 한다.[42]
반 학생 대부분이 피해학생을 인간 쓰레기통 취급하는 지경까지 오게 되면 어지간한 수준의 저항은 '찐따의 재미있는 발악' 수준으로 격하되기에 저항 자체의 의미도 사라진다. 각잡고 중상해, 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행각을 벌여야 먹히는데, 선량한 학생은 물론이거니와 어지간히 독기있는 학생도 벌이기 어려운 일이다.[43] 외부 공권력, 언론, 단체가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고 개입하거나, 아예 더한 폭력을 사용해서 틀어막아야 하는 상황이므로 피해 학생을 겁쟁이 등으로 치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44] 애초에 주먹질로 복수한다거나 압도적인 폭력으로 다 때려엎으면 된다는 발상부터가 잘못된 건데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단 좀 더 나을 수도 있을 뿐이지 이런 방법 자체가 일종의 사적제재에 해당되며 설령 개인적인 복수에는 성공했다고 해도 그게 학교폭력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또한 애초에 주먹질과 폭력으로 모든 게 해결될 거였다면 학교폭력 문제가 이 정도로 심각한 이슈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45]
2.12. 특수학교나 특수학급 학생들은 항상 피해자인가
당연히 없을 리가 없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듯 특수학교나 특수학급 학생들이라 해서 전부 학교폭력의 피해자만 있는 건 아니다.특히 전원이 장애가 있는 학생인 특수학교에서도 학교폭력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장애가 있는 것과 학교폭력 가해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거기다가 특수학교에서도 경증 장애인이 중증 장애인을 괴롭히는 경우가 더 많다지만, 중증 장애인이 자신은 몸 상태가 안 좋아서 면죄부를 받기 쉽다는 것을 악용하여 경증 장애인을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
2.13. 가해자는 학생뿐인가
'학교폭력'이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유인, 명예훼손·모욕, 공갈,강요·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폭력 정보 등에 의해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호).즉, 학교폭력의 가해자는 학생 뿐만이 아닌 교사들을 포함한 학교 측이 될 수도 있다. 일부 몰지각한 교사와 학교측은 자신의 경력이나 명성에 해가 될까봐 일부러 학교폭력을 은폐하거나 피해자에게 책임전가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가해자나 보호자로부터 금품이나 이득이 되는 것을 대가로 가해자 옹호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개의 경험를 들면,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선생님에게 말했더니, 수업 끝나고 종례시간에 앞으로 불러 괴롭히지 말라고 공지만 했던 경험이 있을 정도다.[46]
[1] 학교폭력의 원인중 하나가 화풀이인데, 성적이 조금 낮게 나와서 부모에게 엄청 혼나거나 과외, 학원등으로 쉴시간 없이 공부에만 메달려야하는 압박감으로 얻은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학생들을 마구 폭행하는 학생들도 꽤 있는 편이다.[2] 최상위권 성적을 질투를 하거나 잘난척한다고 생각을 해서 공부를 방해하거나(교과서를 훼손하는 등.), 반대로 공부를 못하는 저하위권 성적에게도 무시하거나 괴롭힘당하기가 쉽다.[3] 주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들 역시 동참하는 경우도 존재한다.[4] 피해자 박주원 양의 부모님의 말에 의하면, 박 양은 진선여자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학교폭력을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당시에 박 양의 부모님이 진선여중에 항의를 몇 번 했지만, 계속 무시당했다고 한다.[5] 여담으로 이때 이사장은 나중에 야당 후보로 선거에 나와서 여당 후보에게 탈탈 털렸다.[6] 반 전체가 따돌림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7] 영등위의 등급 분류 기준 중에도 엄연히 모방 위험이 존재하며, 멀리 갈 것도 없이 학교폭력을 꾸짖기 위해 학교폭력을 소재로 만든 매체에 나오는 학교폭력 장면들을 가해자들이 모방하는(...) 웃픈 경우도 있다.[8] 한글로는 '패릉'이라고 읽는다.[9] 스웨덴 출신의 노르웨이 베르겐 대학 교수.[10] 악당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판사를 학창 시절로 타임머신 타고 가서 암살하려고 한다는 내용으로 학교 짱에게 괴롭힘 당하는 아이들이 나온다.[11] 북미 특유의 마초이즘과 사회성 중시 문제도 크다. 교수 자체에 대한 대우는 미국이 아시아 국가보다 한참 좋지만, 학창 시절 교수를 꿈꾸는 범생이들의 인식은 차라리 한국이 더 낫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사실 이것은 어느 나라든 비슷하긴 하지만 미국 교수들이 치어리더 같은 공부와는 거리가 멀지만 높은 사회성과 운동능력이 요구되는 일을 했던 여성과 결혼하는 사례는 없다시피하다. 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운동선수와 결혼한 여성 교수는 없다시피 하고. 오히려 엘리트랑 거리가 먼 평범한 직장인이 운동선수나 치어리더 같은 배우자를 만나는 일이 더 흔할 만큼 공부 잘 하는 엘리트들은 생각보다 학생 사회에서의 권력이 약하다. 물론 초, 중등교육 시절부터 최고 엘리트만 모인 그런 학교를 나오면 또 다르겠지만 한국에서 과고 나와서 카이스트로 진학한 야구선수, 축구선수가 전혀 없고 연예인 중에서도 그런 커리어를 가진 사람은 손에 꼽듯이 미국에서도 그런 학교 출신으로 프로 운동선수를 하는 선수는 드물다.[12] 이 때문에 학교폭력 논란이 북미에서는 잘 안 터지는 편이다. 어차피 처벌을 받을 정도로 선을 넘은 놈이면 엄벌을 받아서 운동선수나 연예인이 되기에는 갱단 출신 래퍼같은 특이케이스를 제외하면 거의 불가능하고, 처벌을 받지 않을 정도의 일반적인 학교폭력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이 전혀 없어서 오히려 피해자의 사회성이 부족해서 당했다는 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13] 오죽하면 캐비닛 제조 업체에서 비상탈출장치를 달아놓는 경우도 있다. 그래봐야 밖에서 줄 같은 것으로 고정시켜두면 나올 수 없고, 공공기관 물품은 쉽게 교체되지 않아 의사결정권자의 강력한 의지가 없으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14] 사실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의 범인 조승희는 고등학교 때 대단히 심한 학폭을 당한 것이지, 막상 대학에 진학하고 나니 그의 괴짜 같은 행동에 사람들이 그를 좀 기피했을 뿐, 다들 성인이다 보니 특별히 그를 괴롭히거나 따돌리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조승희 본인이야말로 여학생을 스토킹하거나 폭력적인 작품으로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거나 하는 등 가해 행동을 여러번 했다. 버지니아 공대 구성원들은 정말로 단지 조승희가 그 대학에 진학하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피해를 입은 무고한 피해자들일 뿐이었다.[15] 연관이 없지는 않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공부하는 아이들 중 몇이 회초리를 맞은 아이를 놀리듯 웃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16] "얼라리 꼴라리"할 때 '얼라리'가 원래 '어린 나리'에서 유래되었다. 얼나리깔나리로 생각해보면 얼추 비슷한 발음임을 알 수 있다.[17] 이를 면신례라고 한다.[18] 대표적으로 세종 24년인 1442년 유생들이 승려들과 패싸움을 한 사건이 있다.이 사건으로 해당 유생들은 곤장형에 처해졌다고..[19] 한국 학교에서 집단괴롭힘(따돌림)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 가장 오래된 기사는 1963년 5월 27일자 경향신문 기사에서 확인이 가능하며, 1972년 5월 20일에는 집단괴롭힘을 당하던 국민학생이 앙심을 품고 학교에 방화를 한 사건도 있었으며, 1981년에도 한국에서 집단따돌림으로 학생이 자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기사도 있었다. 1984년을 전후해서 집단괴롭힘이 크게 늘었다고 하며, 이미 1986년에는 집단괴롭힘으로 인하여 전학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는 기사도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으로 일본서 집단괴롭힘이 유입되었다는 낭설도 있지만, 이미 1960~70년대에도 한국의 학교에서 집단괴롭힘(당시에는 따돌림으로 통칭)이 존재했다는 기사들이 다수 확인되고 있으며, 1980년대 초중반에도 한국의 학교에서 집단괴롭힘이 만연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기에 이는 단순 낭설에 불과하다.[20] "학교폭력"이란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ㆍ유인, 명예훼손ㆍ모욕, 공갈, 강요ㆍ강제적인 심부름 및 성폭력, 따돌림, 사이버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ㆍ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ㆍ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말한다.[21] "학교"란 「초ㆍ중등교육법」 제2조에 따른 초등학교ㆍ중학교ㆍ고등학교ㆍ특수학교 및 각종학교와 같은 법 제61조에 따라 운영하는 학교를 말한다.[22] 성인은 물론이고, 만 14세 이상이 되면 형사처벌이 가능해서 소년교도소로 수감될수도 있다.[23] 성인이 된 시점에서는 폭력사건 대다수가 우발적인 사고로 일어난 일이다. 물론 피해자를 괴롭힐 목적으로 처음부터 악랄하게 괴롭히는 인간말종도 없는것은 아니지만, 초중고에 비해선 확실히 적은편이다. 그리고 수준 미달인 막장 지잡대나 전문학원이 아닌 이상은 학과 내에서 힘없는 학생들의 물품을 빼았거나 구타하고 가혹행위를 부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볼수있다.[24] 물론 아무리 동등한 위치라지만 어쨌든 무례한 싸움의 범주에 들어가기에 최근에는 좀 놀거나 힘 쓴다 하는 학생들 사이에 신경전이 붙으면 격식을 차린 체육관에서의 싸움이나 다른 스포츠 등으로 승화하는 경우도 많다.[25] 학교 안에서의 많은 평범한 학생들은 개입을 하든 그렇지 않든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인지 잘 알고 있는데다 가해자와 매일 마주치는 사이이며, 무엇보다 담임 교사가 무능할 수는 있지만 학교 내의 모든 교사가 그러리라는 보장도 없다.[26] 물론 반대로, 아무리 학교폭력 가해자라도 어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는 없다. 애초에 학교폭력 가해자들도 강약약강이라, 자기보다 약한 학생들을 괴롭힐지언정 성인, 대학생, 직장인이라는 넘사벽의 직위(그리고 경제력)을 갖춘 어른들에게는 폭행은커녕 손댈 엄두도 못 내기 때문에 육체적인 폭행이 일어나지 않으며 피해자 부모 정도를 제외하면 어른들과 접점 자체가 없기 때문에 정신적인 폭력도 일어나지 않는다.[27] 만화 크로우즈에 나오는 스즈란 고등학교 같은 사례는 일진들끼리 치고받는 것이지, 소위 '양민'에 해당하는 평범한 학생은 건드리지 않는다. 과거에 남자애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대수롭지 않게 인식했던 것도, 이처럼 싸움 좋아하는 애들끼리 서열정리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28] 특히 이런 경우는 욕설이 아닌 폭언 몇 마디나, 툭 치고 지나가는 수준, 혹은 그냥 무리에 안 끼워주고 뒤에서 뒷담화를 하는 경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행위들은 사회에서 성인들이 저지르는 경우조차도 처벌받지 않는 수준의 가벼운 범죄행위가 대부분이라(정확히는 가볍다고 무죄나 무혐의를 받는 것이 아니라, 받은 피해가 미미하기 때문에 오히려 소송비용과 소송에 걸리는 시간이 더 깨져서 법적인 공방을 거의 벌이지 않는다고 보는 게 맞다.) 실질적으로 이런 학생들을 처벌하기는 더욱 어렵다. 실제 변호사의 말에 의하면 같이 놀아주지 않고 따돌리는 것만으로는 법적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평범한 학생들이 학폭 가해자인 경우는 이런 경우가 대부분이라 더 문제가 되며, 나중에 공론화됐다고 해도 "그래서 어쩌라고? 난 그냥 도와주지 않았던 것 뿐이다." 하면서 버티고 넘어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유명인이 이런 경우는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형식적으로라도 사과라도 하지, 일반인이라면 더욱 당당해진다. 애초에 정계에 나가거나 할 것이 아니면 은따 시켰다고 해고당할 직종도 딱히 없으니..[29] 심지어 어떤 악질들은 피해자를 협박해 가스라이팅까지 시키는 경우도 있다.[30] 여기서 못 사는 것은 중하류층을 의미한다. 오히려 기초생활수급자처럼 심하게 가난한데 가정 환경까지도 막장인 경우는 제외다. 이런 아이들은 유아기부터 온갖 고난(가정폭력, 아동학대, 굶주림 등)을 겪었고 잃을 것도 없기 때문에 자신에게 공격이 들어오면 '너죽고 나죽자' 식으로 필사적으로 반격하는 경우가 많고, 간혹 가해자외 마찬가지로 마인드가 막장인 경우도 없지는 않으며, 가해자인 경우도 있다. 물론 이것도 결국 케바케고 건드려서 탈이 없을 거 같으면 오히려 더욱 집요하고 악랄하게 괴롭히는 경우도 많다. 잃을 게 없단 의미는 반대로 말하면 기대거나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단 의미가 되기 때문.[31] 공부 잘하는 사람한테 무슨 학폭? 할 수 있겠지만 스트레스 해소 등을 목적으로 하는 화풀이 식의 폭력이 주가 되는 방식이 아닌 고득점이나 입시를 목표로 상대평가 시스템을 악용하여 매우 지능적으로 벌어지는 학교폭력 사례도 있다. 여기서 교사가 개입하면 학생의 부탁, 청탁으로 인해 저질러지는 성적 조작이나 입시비리로 확대된다. 뭐 애초에 괴담 중에서 전교 2등이 전교 1등을 옥상으로 불러세워서 추락사시켰다는 괴담이 있는 것을 봐도... 실제로 2023년도 전교회장이었던 여학생도 학교폭력으로 사망했다.[32] 더욱이 앞서 서술되어 있듯이 피해자가 '자신의 행동 교정' 혹은 '자신의 질환 치료'에 노력한다고 해도 결국 가해자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반성과 개선이 자발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한 헛수고가 될 가능성이 높다.[33] 정부의 고위 공무원직 혹은 사법기관의 고위직도 해당.[34] 실제로 학창시절 학교폭력 피해자였던 이가 사회에서 가해자보다 더 좋은 배려를 받으며 살고 있는 사례와 관련된 경험담들은 종종 나올 뿐만 아니라 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선 경우이긴 해도 가해자가 징역형에 처한 경우도 있다.[35] 일진물이 비판받는 주요 이유기도 하다. 일진물 자체가 학교폭력을 미화하고 인싸=잘 나가는 일진. 아싸=당해도 싼 찐따라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 그나마 이런 인식은 20년대 이후로 학교폭력, 촉법소년, 소년법의 문제성이 대두되면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36] 이 때문에 구체적으로 폭행, 폭언, 갈취 등을 면전에서 하지 않았지만, 뒤에서는 똑같이 학교폭력 피해자를 무시하고 비난해온 사람들이 자신은 그저 같이 왕따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방관했을 뿐이라고 변명하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유명인의 경우에는 변명 취급만 받고 까이는 경우가 많지만, 애초에 공론화가 되더라도 지인들 사이에서만 퍼지고 끝인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꽤나 잘 먹히는 레파토리.[37] 서울에서 일하던 공무원인데 상관에게 아부하지 않아서 지방으로 좌천당했다.[38] 한병태는 담임과 부모님에게 엄석대 문제로 도움을 청했으나 소용없자 결국 엄석대에게 굴종하는 걸 선택했다.[39] 처음부터 여럿이 괴롭힐 수도 있으나, 맨 처음 시작한 가해학생에게 피해학생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합세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40] 정말 정신적 피해가 극심할 경우 피해자 스스로도 자기에게도 잘못이 있나 하며 가해자들의 피해자 비난을 내제화하기도 한다. 실제로 학교폭력 피해자 중엔 시달리다가 끝내는 '내가 약하지 않았더라면, 공부를 못하지 않았더라면, 생긴게 괜찮았더라면, 뭘 잘했더라면, 아님 뭘 못했더라면, 처음 당했을때 ~하지 않아서 그런가' 하는 식으로 자기에게도 잘못이 있나 하고 자기 내부의 원인을 찾기도 한다. 그리고 끝내 자기 자신에게 피해자 비난을 할만큼 자기보호의 여력이 없어진 피해자들도 있다. 피해자가 그정도까지 미치진 않아도 주변에서 2차 가해로 피해자에게도 당할만큼의 문제가 있다고 몰아가는 사례도 제법 많다.[41] 특히 정신적인 부분과 관계적인 부분을 공격하는 언어폭력이나 사이버불링, 따돌림 등은 명확한 증거가 없는 한 실제로 벌어져도 잡아내기가 어려운 편이다.[42] 앞서 말했듯이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라 언어폭력과 같은 정서적인 폭력에 참지 못해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물리적인 보복을 하여 가해자에게 상해를 입혔을때 그러한 결과가 잘 일어난다. 특히 언어폭력같은 정서적 폭력은 물증이 없기때문에 피해자에 비해 다수의 편이 있는 가해자 측이 서로 입을 맞추어서 잡아떼면 그만이고 결국 최종적으로 보복을 가한 피해자는 자신을 괴롭힌 가해자에게 향한 폭력으로 인해 물증이나 상흔이 남기 때문에 이를 증거로 학교폭력 가해자가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43] 설령 가해자에게 중상을 입히거나 살인해도 끝은 좋지 않다. 살인은 말할 것도 없이 빨간줄 확정이라 인생 제대로 망하는 거고 중상의 경우도 지금 당장이야 무시안할지 몰라도 짧은 시간내에 가해자 주변 사람들이 보복해서 죽일 각오로 패기 때문이다. 거기서 또 저항을 해서 이기더라도 전보다 더 세게 보복을 하는 등 어떻게 해서든 피해자가 당할 수 밖에 없다. 괜히 복수는 복수를 낳는단 말이 있는 게 아니고 다구리에 장사 없단 말이 있는 게 아니다.[44]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3자들이 이런 상황에 놓인 피해자에게 피해자 비난을 시전하는 이유는 2차 가해 참고.[45] 폭력이 절대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극명한 사례가 바로 삼청교육대다.[46] 물론 가해자들한테 씨알도 먹히지 않았으며, 그 학생은 괴롭힘이 5년 가까이 더 심하고, 적극적인 폭력에 시달리다가 병원에 실려가는 사태가 생기거나, 타락을 하거나, 전학을 갔다. 선생님의 학교폭력에 대한 무지가 낳은 대참사인 셈이며 어이없게도 이런 사례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수도 없이 존재했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