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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6 00:30:30

프리드리히 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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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ttachment/fromm_1.jpg
이름 Friedrich Fromm
프리트리히 프롬
생몰년도 1888년 10월 8일 ~ 1945년 3월 12일
복무 독일 국방군 보충군[1] 사령관
최종 계급 파일:Si_4a.png 육군 상급대장(Generaloberst)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주요 서훈 기사십자 철십자 훈장

1. 개요2. 군경력3.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4. 기타

[clearfix]

1. 개요

나치 독일군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 육군보충군동원사령관이었으며, 히틀러에 대한 충성과 암살 계획 사이에서 기회주의적인 처세술을 발휘하였으나 결국 의심당한 끝에 처형되었다.

최종계급은 육군 상급대장.

2. 군경력

김나지움을 졸업한 후 베를린대학교에 입학, 1906년에 육군에 포병사관후보생으로 입대하여 제55야포연대에 사관후보생으로 배속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당시에는 중위계급으로 대대장 전속부관이었다. 1916년에 대위로 진급 참모본부에 배속되었으며, 전쟁에서 프롬은 두번의 부상을 당했고 독일 제국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부터 훈장을 여러차례 받았다.

패전 후에는 의용군으로서 동부에서의 국경분쟁에 종군하였고 또한 바이마르 공화국 육군에 잔류하여 군경력을 이어갔다. 1927년 소령으로 육군총사령부에서 근무하였으며 1931년 중령, 1933년 대령이 되어 육군총국장에 취임한다. 1935년에는 마침내 소장으로 진급해 장군이 되었고, 1938년에 중장, 1939년에 포병대장[2]으로 승진하며 비교적 승승장구하더니 9월에는 육군보충국장에 취임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1940년에는 기사철십자장이 서훈되었고 동시에 상급대장으로 승진하였다. 그 후, 독일 국방군 육군 보충군 사령관에 취임하였다.

3.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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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일어난 암살 미수 사건의 주모자인 슈타우펜베르크 기병대령은 그의 직속인 보충군동원참모였고 육군총국장이었던 육군 보병대장 프리드리히 올브리히트 장군도 직속 부하였다. 프롬이 얼마만큼 관여하고 있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분명히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발키리 작전이 개시되어 새로운 정부가 생기 참여하는 것 까지는 동의하였었다.

7월 20일,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서류가방에 든 폭탄으로 히틀러에게 폭살을 시도했을 때, 빌헬름 카이텔 육군원수로 부터 전화연락을 받고 아돌프 히틀러 총통이 암살미수사건으로부터 생존했음을 확인하였다.

발키리 작전 발동을 요구하는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에게 자결을 명령, 그러나 역으로 감금당하였으나 이후 진압군 병력에게 구출된 후, 계획에 참여한 주요인사를 모두 체포한 후 즉결심판으로 총살을 명령하였다. 군 선배인 루트비히 베크 예비역 육군 상급대장에게는 자신이 직접 총살할 수 없어 자결을 권유했고, 베크 장군은 프롬 장군의 권유에 따라 권총으로 자결했다.

이것은 자신이 계획에 참여하였음을 탄로당하지 않기 위한 조치였으며 한편으론 부하였던 이들이 슈츠슈타펠에 의하여 끔찍한 고문을 당하는 것을 면하게 하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조치를 통해 스스로를 구하는데는 실패했다. 히틀러는 자신의 허락없이 프롬 장군이 제멋대로 용의자들을 처형한 것에 크게 분노하였고, 그가 계획에 참여하였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히틀러의 명령에 의해 9월 14일, 프롬 장군은 계급과 명예를 모두 박탈당하였고, 일반시민으로서 법정에 섰다. 그가 암살계획에 참여하였다는 사실이 입증되지는 못하였지만 "불고지죄"로 사형이 선고되어[3] 다음해 3월 12일 브란덴부르크에 위치한 구치소에서 총살되었다. 집행 전, 슈타우펜베르크 일행의 거사 가담 권유를 거절한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4. 기타


[1] 예비군이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예비군과 보충군은 다르다. 군관구의 보충군은 신병의 징병과 훈련, 전선 부대로의 병력 보충, 신무기 실험 등을 담당했다.[2] 독일 국방군 육군은 장군의 경우 계급 앞에 출신 병과를 붙이지 않았으나, 오직 대장 계급에만 출신 병과를 표기했다.[3] 암살 사건 이후 히틀러의 국방군 장성들에 대한 의심은 거의 병적일 정도여서,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일단 그들과 약간의 연관이라도 있다면 잡혀갔다. 에르빈 롬멜의 경우가 바로 이 케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