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Wilhelm Marschall 빌헬름 마르샬 |
출생 | 1886년 9월 30일 독일 제국 바이에른 왕국 아우구스부르크 |
사망 | 1976년 3월 20일 서독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묄른 |
복무 | 독일 제국 해군 나치 독일 전쟁해군 |
최종계급 | 상급대장 |
주요참전 | 베저위붕 작전 영국 본토 항공전 |
주요 서훈 | 푸르 르 메리트 1/2급 철십자 훈장 독일십자장 금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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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1차 세계 대전 기간 독일 제국 해군의 U보트 함장으로 전공을 올렸으며 이후 상급대장까지 진급한 제2차 세계 대전 독일 전쟁해군의 제독.2. 상세
1906년 해군 사관후보생으로 입대하였으며 1909년 소위로 임관하여 제국 해군에 본격적으로 근무하기 시작하였다. 1차대전에는 보조함 SMS 크론프린츠 빌헬름[1]에서 근무하였다.1916년에 U보트 지휘 교육과정에 지원한 후 그해 3월부터 U보트 정장으로 근무하였다. 기뢰잠수정인 UC 74정 정장 시절에는 노르웨이의 민간 상선을 중파 하는 전공을 거두는 것부터 시작하여 1917년 3월부터 11월 말 사이에 26척을 격침시키는 성과를 거둔다. 그중에는 영국의 8000톤급 병력수송선과 프랑스의 4000톤급 병력수송선도 포함되어 있었다. UC 74정에서 거둔 공훈으로 호엔촐레른 왕가 훈장, 오스트리아 철왕관 훈장, 오스만 제국 공로훈장을 수여받는다.
1918년에는 UB 105정에서 정장으로 복무하였으며 1918년 4월부터 7월 사이의 기간 동안 17척의 함선을 격침시키는 전공을 거둔다. 17척의 함선 중에서 12척이 모두 1000~4000톤급 내외의 영국의 함선이었다. 이때의 전공으로 푸르 르 메리트 훈장을 수훈 받았으며 유보트 전쟁기장을 수여받았던 유능한 잠수함 지휘관이었다. 이후 독일 제국이 패배하면서 종전을 맞이하게 된다.
전간기 동안에는 재편성된 국가해군에서 남아 군 생활을 이어갔으며, 1924년부터 1926년까지는 정찰선 판터에서 함장으로 근무하였고 1926~1930년 동안은 전함 슐레스비히홀슈타인, 1930년부터 이듬해까지는 전함 하노버에서 1등 항해사로 근무하였다. 이후 발트해 해군기지장으로 3년간 복무하였으며 1934년에 잠시 브라운슈바이크급 전함 헤센, 34년부터 36년까지 포켓전함 어드미럴 쉐어의 함장으로 근무하였다. 1936년에 소장으로 진급하여 해군최고사령부 작전참모로 근무하였으며 1937년에 스페인 내전에 함대 사령관으로 참전하여 연안지원 임무를 수행하였다.
1939년에 중장으로 진급, 함대 사령관을 맡게 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1939년 전함 그나이제나우를 기함으로 샤른호르스트함 총 2척의 전함으로 영국과 아이슬란드 사이의 페로 제도를 순찰하는 과정에서 영국 해군의 함정카드에 빠졌으나 이를 간파하여 탈출에 성공하였다. 뿐만 아니라 회피기동을 함과 동시에 영국 보조함인 라왈핀디를 고립시켜 침몰시키는 전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성공적인 임무수행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에리히 레더 제독은 해군에 최대한 교전을 피하는 방침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이 일로 되려 질책을 받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마르샬 제독은 이에 1940년 노르웨이 침공의 일환으로 그나이제나우, 샤른호스트를 이끌고 영국 항공모함 글로리어스와 구축함 아카스타, 아르덴트와 교전을 치른다. 2시간 동안의 교전에서 영국 항공모함 글로리어스와 2척의 구축함을 격침시키는 데 성공하였으나 그나이제나우 또한 구축함의 어뢰에 피격되어 항행불가 상태가 되는 피해를 입게 된다.
교전은 독일의 승리였으나 항공모함 글로리어스와의 교전을 피하라고 했던 상부의 지시를 어기고 치른 교전이었던데다 마르샬은 해군 최고사령부의 지시 사항에 이견이 항상 있었던 편이었기 때문에 그나이제나우의 피해에 대한 책임으로 함대 사령관직에서 해임되었으며 후임 사령관은 귄터 뤼첸스 제독으로 교체된다.
마샬은 1940년 여름, 한직인 해군교육 감찰관으로 물러나 2년간 감찰관 직무를 맡게 된다.
1942년, 다시 해군 지휘부 일선으로 복귀하여 알프레트 잘베히터 제독의 후임으로 서부 해군집단사령부 사령관에 임명되었으며, 서부 해군집단사령부는 서부 해군최고사령부로 개칭하게 된다. 1943년 1월에는 상급대장으로 진급한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테오도어 크란케 제독게 서부 해군최고사령부 사령관 자리를 물러주게 되며 이를 끝으로 전역한다.
남은 전쟁 기간동안 특별감찰관으로 다뉴브에서 잠시 근무하였다가 다시 예비역으로 전환되었고, 나중에 또 다시 잠깐 서부 해군최고사령부 사령관으로 복귀하였으나 종전을 맞이하면서 포로가 된다.
이후 석방된 마르샬은 1976년 서독의 묄른에서 사망한다.
[1] 나중에 미 해군에 포획되어 USS 폰 슈튜벤으로 재취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