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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히 케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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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66><colcolor=#fff> 울리히 케슬러
Ulrich Kessler
파일:2012.019.799_1.jpg
출생 1894년 11월 3일
독일 제국 프로이센 왕국 단치히
사망 1983년 3월 27일 (향년 88세)
서독 바덴-뷔르템베르크 바드 우라흐
국적
[[독일|]][[틀:국기|]][[틀:국기|]]
직업 군인
최종 계급 공군 조종대장(General der fliger)
주요 서훈 기사십자 철십자장
독일 십자훈장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1. 개요2. 생애
2.1. 1차 세계 대전2.2. 전간기2.3. 2차 세계 대전
2.3.1. U-234
2.4. 전후
3. 여담

[clearfix]

1. 개요

나치 독일 군인.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공군 장성으로 복무했다.

해군 항공대에서 시작해 공군 장성까지 오른 특이한 경력을 지닌 것으로도 유명하고 공군 장성 시절에도 유능한 면모를 보였으나, 국내외에서는 잠수함 U-234과 연관된 일화로 더 유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2. 생애

2.1. 1차 세계 대전

울리히 케슬러는 1894년 당시 독일 제국령이었던 단치히에서 태어났다.

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자 케슬러는 독일 해군에 입대해 프린츠 아달베르트급 장갑순양함 2번함 SMS 프리드리히 카를에서 라디오 운용병으로 복무했다. SMS 프리드리히 카를은 얼마 못 가 북해에서 기뢰에 접촉해 격침되었고, 케슬러는 무사히 살아남아 브레멘급 경순양함 SMS 뤼베크로 복무지를 옮겼다.

이 과정에서 파일럿이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케슬러는 1916년부터 수상기 조종 교육을 이수하여 당해에 끝마쳤고, 그 이후로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수상기 편대의 지휘관으로서 복무했다.

2.2. 전간기

전쟁이 끝나자 케슬러는 자유군단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1923년 정식으로 국가방위군에 입대했다. 해군 출신답게 그는 잠시동안 어뢰정 전단의 지휘관을 맏다가 1925년부터 27년까지는 브레멘급 경순양함 SMS 함부르크에서 복무하며 세계일주를 겸한 순항훈련에 참가하기도 했었다.

독일로 돌아온 케슬러는 바이마르 공화국 해군사관학교에서 해군 항공대 병과의 총책이 되었다. 1933년, 케슬러는 그의 수상기편대 지휘경력을 인상깊게 본 상부에 의해 정식으로 새로이 창설된 독일 공군으로 병종을 바꾸고 싶냐는 제의를 받는다. 케슬러는 이를 수락하였고, 그는 독일 해군 중위에서 독일 공군 중령으로 무려 세 계급 진급했다.

그는 30년대 내내 실무적으로 유능한 모습을 보였기에 헤르만 괴링의 눈에 띄었고 괴링은 그를 영국의 독일 공군 주재무관으로 점찍어 놓는 동시에 그에게 영국에 가서 향후 영국과의 전쟁에 관한 대비책을 마련해오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케슬러는 이제 독일이 영국과 전쟁을 벌인다면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 보았고, 이 과정에서 괴링과 마찰을 빚었다. 결국, 괴링은 케슬러 대신 다른 이를 영국 주재무관으로 보내버렸다.

2.3. 2차 세계 대전

한편 케슬러는 주재무관 대신 일선부대의 사령관이 되는데, 그는 1939년 폴란드 침공에서 제1폭격항공단(KG 1)의 지휘관으로서 활동했으며 이후 전쟁 내내 제1항공함대 지휘관, 제10항공군단 지휘관 등 여러 중요한 공군 요직을 맏는다. 이 과정에서 그는 계급도 장성급인 공군 병과대장(조종)으로 높아졌다.

그렇게 시간은 지났고 1944년, 케슬러는 다시금 주재무관으로 파견되기 위해 베를린으로 송환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이 벌어졌고, 지인을 통해 대략적으로 이 사건의 계획을 파악하고 있던 케슬러는 자신이 나중에라도 게슈타포에게 계획을 미리 알고도 신고하지 않은 점이 발각되어 잡혀갈 것을 두려워했다. 케슬러는 고민 끝에 친한 사이었던 일본 해군 장성 코지마 히데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당시 독일에서 국방무관으로 근무하던 그는 괴링에게 현 일본 주재 독일 국방무관을 케슬러로 교체해줄 수 있는지 건의했다. 지구 반대편인 일본으로 간다면, 그가 나중에 발각되더라도 독일이 망할 때까지 최소한 게슈타포에게 송환될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여하튼 이 제안은 받아들여졌고 케슬러는 일본 주재 독일 국방무관으로 내정되었다.

2.3.1. U-234

케슬러는 그렇게 1945년 10형 유보트 U-234를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당시 상황상 일본으로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잠수함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케슬러가 유명해지게 된 계기가 된 이 잠수함에는 우라늄, 망원렌즈, 기타 전략 물자, 제트전투기 등 독일이 일본에게 보낼 각종 무기와 물자들이 산재해 있었다.

케슬러는 U-234의 유일한 장성급 장교로, 무려 함장보다도 수 계급이 높았다.[1] 다만 U-234의 함장이었던 요한-하인리히 페흘러에 따르면 케슬러는 최선임자에도 불구하고 딱히 꼬장을 부리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애초에 해군 특성상 함 안에서는 계급에 관계없이 함장이 왕이고, 태생부터가 해군 수병 출신인 케슬러가 이를 몰랐을 리는 없었기에 사실 당연한 결과라면 당연한 결과지만.

다만 한가지 특이한 점은 케슬러가 카이 니슐링(Kay Nieschling)이라는 독일 해군 소속 법무장교와 자주 언쟁을 벌였다고 기록했다. 사실 이유는 간단했는데, 두 사람의 성향이 정반대였기 때문. 함장의 회고에 의하면 니슐링은 열성 나치였고, 반면 케슬러는 확고한 성향의 반나치주의자였다고 한다. 충돌이 안 생길 수가 없는 구조였던 것. 두 사람은 정말 시시건건 모든 사안마다 대립각을 세웠다고 하니 그 분위기가 어땠을 지 짐작하게 해 준다.

하여튼 U-234는 이후 독일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 곧장 미국 연안으로 가서 항복했다. 참고로 이 과정에서 케슬링은 기행을 부리기도 했는데, 항복 직전 갑자기 미군을 골려주겠다며 정복과 코트, 장갑까지 착용하고 평소에는 잘 쓰지도 않던 단안경(모노클)을 쓰는가 하면, 심문 내내 본인 성격과는 사뭇 다른 거만한 태도로 일관했다고 한다.[2] 여러모로 참 흥미로운 인물. 물론 이제 게슈타포에게 끌려갈 일따위는 없다고 생각해서 기분만은 매우 좋았을 것이다.

2.4. 전후

케슬러는 2년간의 포로 생활을 마친 뒤, 1947년 5월 10일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났다. 전후 고향 단치히가 폴란드령이 되면서 졸지에 실향민이 된 그는 서독으로 귀환해 바덴-뷔르템부르크주에 정착했고, 88세에 사망했다.

3. 여담



[1] 애초에 유보트 함장의 계급은 무조건 대위가 원칙이었다. 즉, 위관급 대 장성급이니 차이가 엄청나게 날 수밖에 없다.[2] 문서 최상단의 사진이 바로 항복 당시를 찍은 모습이다. 미군 측에서 선전용으로 촬영하고 얼마 뒤 육군 공식 잡지에 실은 사진인데, 보면 정말 쫙 차려입고 항복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