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 대전의 독일 해군 군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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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z Adalbert-Klasse Großer Kreuzer
1. 개요
프린츠 아달베르트급은 독일 제국 해군의 장갑순양함으로, 동형함으로는 프린츠 아달베르트(Prinz Adalbert)와 프리드리히 카를(Friedrich Carl)이 있다.1900년도 해군 계획에 의거하여 1903년 12월 12일에 프리드리히 카를, 1904년 1월 12일에 프린츠 아달베르트가 완공되었다.해외 식민지에서의 운용을 위해 건조된 두 함은 이전급인 프린츠 하인리히(Prinz Heinrich)의 개선형으로 만들어졌지만 예산의 제약으로 인해 장갑은 얇아지고 말았다.
2. 제원
프린츠 아달베르트급 장갑순양함 Prinz Adalbert-Klasse Großer Kreuzer' | ||
이전급 | 프린츠 하인리히급 | |
다음급 | 론급 | |
기준배수량[1] | 9,087톤 | |
만재배수량 | 9,875톤 | |
전장 | 126.5m | |
전폭 | 19.6m | |
흘수 | 7.43m | |
출력 | 16,200SHP | |
최고 속력 | 20노트 (약 37km/h) | |
항속거리 | 12노트 (약 22km/h) 순항 시 9,410km | |
동력 | 기관 | 수관보일러 14기 |
증기 터빈 3기 | ||
추진 | 3축 프로펠러 | |
승조원 | 장교 | 35명 |
수병 | 551명 | |
무장 | 주포 | 2연장 21cm SK L/40 함포 2문 |
부포 | 15cm SK L/40 함포 10문 | |
8.8cm SK L/30 함포 10문 | ||
어뢰[2] | 45cm 어뢰 발사관 6문 | |
장갑 | 측면 | 10cm |
포탑 | 15cm | |
바벳[3] | 10cm | |
갑판 | 4~8cm | |
장갑함교 | 15cm |
3. 동형함 목록
동형함 | 기공 | 진수 | 완공 | 침몰 |
프린츠 아달베르트 | 1900.04 | 1901.06.22 | 1904.01.12 | 1915.10.23 |
프리드리히 카를 | 1901.08 | 1902.06.21 | 1903.12.12 | 1914.11.17 |
4. 상세
프린츠 아달베르트급 순양함은 9,000톤급의 배수량에 126.5m의 전장으로 능파성이 좋은 구조이긴 했지만 측면 무장의 배열위치가 너무 낮아 파도에 의한 영향을 많이 받았다. 기본 선체형상은 건현이 낮은 평가갑판형 선체로, 함수아래 충각을 부착하고 함수갑판 위엔 주무장인 21cm 연장포를 1기 배치하고 그 배후에 조타 함교와 함께 일체화된 단각식의 전방 마스트가 세워졌고 상부에는 사격 지휘소가 만들어졌다. 그 뒤에는 연돌 3기가 나란히 배치되었으며 연돌 주변엔 함재정을 비치하여 각 현 1기씩의 구스 넥 크레인으로 운용하였다.3번 연돌 후방으로는 후방 마스트와 후방 함교가 있었으며 갑판 한단 아래 21cm 연장포를 후방을 향해 배치하였다. 부포인 15cm 단장포는 1, 2번 연돌 측면부에 각 2기씩 총 4기와 좌우 현측에 3기씩 각 6기를 포곽배치로 배열했는데 현측의 부포는 낮은 건현으로 인한 파도의 영향으로 거친 바다에서 운용에는 문제가 있었다.수뢰정 대책으로는 8.8cm 단장포를 각 현측에 6기씩 12기를 장비했으며 대함공격용으로는 45cm 수중 어뢰 발사관을 단장으로 4기를 배치하였다.장갑은 크루프사의 리벳접합강을 사용하여 평균 50~100mm의 장갑을 장착했는데, 포탑과 함저의 탄약고에는 최대 150mm의 장갑을 집중하여 견고한 수뢰방어를 갖추었지만, 수선하부의 장갑집중은 중량증가를 야기하여 순양함으로서의 생명인 운동성과 속력을 저하시키고 말았다.
두척 모두 프로이센의 왕자의 이름을 따왔다. 1번함, 프란츠 아달베르트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의 손자인 하인리히 빌헬름 아달베르트 이름을 따왔고, 2번함, 프리드리히 카를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손자이자 보오전쟁과 보불전쟁에서 큰 공을 거둔 프리드리히 카를 니콜라우스의 이름을 따왔다.
4.1. 운용
4.1.1. 건조 ~ 1915년
4.1.1.1. 1번함 프린츠 아달베르트
4.1.1.2. 2번함 프리드리히 카를
프리드리히 카를은 블롬 플루스 포스가 건조하였으며, 1902년에 건조가 완료되었으며, 건조식에서는 프리드리히 카를 니콜라우스의[4] 아들인 요아힘 카를 빌헬름 프리드리히 레오폴트가 연설을 하였다. 첫번째 함장은 요하네스 메르텐가 배정되었다. 프리드리히 카를은 제2전대에 배치되어, 네덜란드, 영국, 노르웨이를 여행하였다. 이후 정찰비행대의 기함이 되었고, 1905년에 훈련을 위해 발트해에 갔다. 발트해에서 난파선에 충돌하였지만,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이후 함장은 프란츠 폰 히퍼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사고로 인해 잔기간의 정비기간이 필요하였다. 1909년 히퍼는 프리드리히 슐츠로 교체되었다. 그가 부임하던 시절, 이 함을 어뢰 시험 부대의 기함이 되었다. 이 부대는 금방 해산되었고, 프리드리히 카를은 정찰대의 일부가 되었다. 이후 함장은 에른스트 리터 폰 만 운트 에들러 폰 티츨러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까지 그가 지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