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ff,#000><colcolor=#000,#fff> 제독의 연인 (2008) The Admiral | |
장르 | 전쟁, 드라마 |
감독 | 안드레이 크라프추크 |
각본 | 블라디미르 발루츠키, 조야 쿠드라 |
출연 | 콘스탄틴 하벤스키[1], 엘리자베타 보야르스카야 외 |
상영 시간 | 123분 |
개봉일 | 2009년 4월 23일 |
배급사 | 싸이더스FNH |
관객 | 45,406명 |
등급 | 15세이상 관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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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제는 '제독(Адмиралъ; Admiral)'. 실존인물인 알렉산드르 콜차크(1874~1920)가 러시아 제국 해군 제독에서 러시아 내전 당시 백군 지휘관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총살당하기까지의 일대기를 다룬 전쟁 영화이다. 한글 제목은 한국 배급사가 독자적으로 만든 제목으로, 콜차크와 연인인 안나와의 사랑 이야기를 실제보다 강조하기 위해서 바꾼 것.
2. 시놉시스
제1차 세계 대전이 진행되던 1916년, 러시아 제국 해군 장교인 알렉산드르 콜차크 대령은 다른 2척의 구축함과 함께 발트 해에서 기뢰 부설 작업을 진행한다.[2] 부하 장교인 세르게이 티미레프 중령과 담소를 나누던 중 다른 부하 장교의 보고로 밖으로 나온 콜차크는 안개를 뚫고 나타난 독일 제국 해군의 장갑순양함인 '프리드리히 카를'을 발견하고 역시 콜차크의 구축함을 발견한 독일 군함이 포격을 가하면서 전투가 발발한다. 함급의 차이로 모든 것이 불리한 콜차크의 구축함은 일방적으로 독일 장갑순양함의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고 콜차크는 혼란 속에서 피격당한 포탑으로 올라가 직접 함포를 조작하여 생존한 부상병과 함께 프리드리히 카를의 함교를 폭파시켜 시간을 번다. 이후 후퇴 준비를 하던 콜차크는 기뢰를 버리길 잘했다는 어느 수병의 말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려 스스로 설치한 그 기뢰밭으로 순양함을 유인할 생각을 한다. 유인하던 중 추격하며 포격을 하던 순양전함의 포탄에 의해서 기뢰 하나의 연결선이 끊어져 콜차크의 함선과 충돌할 수 있는 위기상황이 발생하나 콜차크는 차분하게 지휘를 하여 함선은 무사히 기뢰를 피하고 추격하던 장갑순양함은 기뢰와 접촉해 침몰한다.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소장(Контрадмирал)으로 진급[3]한 콜차크는 승전 연회에서 티미레프가 자신에게 소개했던 사진의 주인공이자 티미레프의 아내인 안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콜차크는 전쟁에서 승승장구해 중장으로 진급하며 흑해 함대 사령관이 되지만 러시아 혁명이 터지면서 콜차크 제독의 함대에서도 수병들의 난이 일어난다. 이에 콜차크는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장교들을 무장해제시키고 자신의 예도도 내놓으라는 수병들의 요구에 예도를 바다에 던져버린다. 이후 임시정부 수반인 알렉산드르 케렌스키가 콜차크 제독의 정치력을 경계하여, 그를 미국으로 파견해 쫓아내 버린다.
혼란스러운 러시아의 상황을 보고 미국에서 돌아온 콜차크 제독은 신생 소비에트 정부에의 협력을 거부하고, 백군의 지휘관이 되어 러시아 내전에 참전한다. 티미레프를 떠난 안나는 콜차크 제독과 합류하여 백군의 간호사로서 콜차크와 함께한다. 그러나 적군의 반격으로 인해 백군은 이르쿠츠크 방면으로 후퇴하고 콜차크는 안나와 체코슬로바키아 군단과 함께 열차로 철수하지만 적군과 내통한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에 의해 적군에 체포되어 버리고[4] 결국 안나와 헤어진 콜차크 제독은 이르쿠츠크 시장과 함께 총살당한 후 얼어붙은 바이칼 호에 수장된다. 역사적으로는 총살당한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세르게이 보이체홉스키 장군의 동부전선군(영화 상의 블라디미르 카펠 장군의 부대)가 이르쿠츠크 재탈환에 성공하지만 아쉽게도 제독을 구하지는 못한다. 세월이 지나 1966년에 소련에서 영화를 만드는데 다름아닌 전쟁과 평화. 그리고 이 촬영 현장에 단역 배우로 나온 안나는 촬영장의 모습에서 50년전 추억을 떠오르며 회상에 젖는다. 안나 본인이 단역 배우로 해당 영화에 나온 것 자체는 역사적 사실이다.
3. 등장인물
- 알렉산드르 콜차크
알렉산드르 콜차크 (콘스탄틴 하벤스키) - 안나 티미레바
안나 티미레바 (엘리자베타 보야르스카야)
콜차크와 사랑에 빠져서 전 남편인 티미레프를 버린 채 콜차크를 만나게 된다. 러시아 내전이 터지자 콜차크를 만나기 위해 간호사로 내전에 참가한다. 이후 콜차크와 만나게 되지만 그가 총살당한 뒤엔 소비에트 정부에게 체포되어 긴 수감생활을 했고 아들인 블라디미르 티미레프(Vladimir Timirev,1914~1938)가 총살당하는 등 비극을 오랫동안 겪어야 했다. 1950년대에서야 자유롭게 되어 이 영화의 엔딩처럼 여러 영화에 단역으로 나오기도 했다. 1975년 1월 31일에 81세로 눈을 감았다.
- 세르게이 티미레프(1875~1932)
안나의 전 남편. 콜차크의 부하 장교였으며 소장[5]까지 진급, 혁명 이후 소비에트 정부에 협력한다. 안나가 콜차크를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를 깨끗하게 포기한다. 이후 중화민국으로 건너가 상선 선장이 되었다. 안나에게 아들 블라디미르를 얻었으나 세르게이가 죽고 나서인 1938년에 억울하게 총살당했다. - 소피야(1876~1965)
콜차크의 전 부인. 혁명 와중에 콜차크와 헤어져 프랑스로 이주한다. 콜차크와는 다시는 만나지 못했으며 프랑스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의 아들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프랑스 육군에 입대, 연합군의 일원으로 싸웠다. - 블라디미르 카펠
콜차크의 부하 장군이자 실제 역사상 코무치의 지휘관. 러시아 제국 육군 중장으로서 기병대를 지휘하며 활약한다. 전세가 불리해져 이르쿠츠크로 몰린 콜차크를 구출하기 위해 진군하지만, 도중에 강에 빠지는 바람에 심한 동상을 입어 죽고 만다. - 세르게이 보이체홉스키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을 이끌었던 장군. 콜차크의 부하 지휘관이자 소장. 카펠의 부장으로서 적군과 싸웠으며, 그의 죽음 후 부대 지휘권을 물려받아 이르쿠츠크로 진군한다. 실제 역사상으론 후에 신생 체코슬로바키아군의 장군이 되고 뮌헨 협정 이후에는 지하조직에서 활동, 1945년 소련 당국에 체포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1951년 이르쿠츠크 지역에서 사망했다.
4. 읽을거리
- 러시아 영화 10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로 러시아 영화 중에서도 손꼽히는 액수의 제작비(그래도 할리우드 기준으로는 저렴한 수준인 2천만 달러)를 들여 만든 대작이다. 제1차 세계 대전과 러시아 내전 등 주요 전쟁들을 무대로 한 작품답게 각종 전투씬에 대한 묘사가 매우 사실적이다. 러시아에서만 3,813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해외로 수출되기도 하면서 흥행은 성공했다.
- 작중 나온 전투신 중에서 오프닝 후 나온 초반의 해전씬은 손꼽히는 명장면이다. 이 해전씬에서 등장한 독일 제국 해군의 장갑순양함인 '프리드리히 카를' 함은 실존했던 군함이다. # 물론 전개를 위해 각색한 부분도 있다. 프리드리히 카를 함이 러시아 해군의 기뢰에 접촉해 침몰한 것은 사실이지만 콜차크 제독의 유인 작전은 없었다. 또한 영화와는 달리 천천히 침몰했으며 전사자는 7명 뿐이었다.
- 혁명이 일어난 직후 콜차크 제독은 소비에트 정부에 협력할 것을 스스로 거부하고 잠시 추방당했다가 백군 지휘관으로 복귀한다. 본래 구(舊) 러시아 제국군 장교들은 혁명 당시 '반체제 인사'로 규정되어 숙청당하기도 했으나,[6] 러시아 내전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소비에트 정부에서 신분 보장을 조건으로 제국군 장교들을 대거 포섭했다.
그리고 숙청[7] 영화에서 티미레프가 처음엔 수병들에게 총살당할 뻔했다가 갑자기 소비에트 측에 협력해 태평양 함대로 배치되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 적군이 우라돌격을 맞고 패퇴하는 희귀한(?) 장면이 나온다. 카펠 장군이 이끄는 백군이 기관총을 설치한 진지를 차지한 적군과 교전을 벌이는데, 총탄이 모두 떨어지자 걸어서(...) 총검 돌격을 강행했다. 이를 독려하려고 카펠 장군은 군악대에게 슬라브 여인의 작별을 연주하며 함께 진격토록 한다. 백군 병사들이 계속해서 쓰러지자 부상병들을 치료하던 백군 간호사가 참다 못해 대열의 맨 앞으로 뛰쳐나가서 독려하다가 총에 맞아 쓰러진다. 백군 병사들이 경악한 것은 물론이고 적군 병사들도 '맙소사, 여자를 쐈어...'라며 충격을 받고 잠시 사격을 멈출 정도였다. 이에 백군 병사들이 분노해서 악기를 던져 버리고 칼을 빼들고 선두에 서서 뛰어가는 군악대장을 필두로 '우라아아아!'를 외치며 돌격하자 결국 적군이 패퇴해 버린다.[8]
- 러시아 혁명과 러시아 내전이라는 혼란기라서 생존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 군상들이 나올 법 한데, 특이하게도 주인공인 콜차크와 관련된 인물 중에는 배신을 하는 사람이 없다.
콜차크가 아내 배신한거 빼면 말이지적어도 러시아인(...) 중에서는 한 명도 없다. 자신의 아내를 콜차크에게 빼앗긴 꼴이 된 티미레프조차 혁명 이전에는 스스로 전출되어 깨끗하게 콜차크 아래에서 떠나기를 원했고, 혁명 이후에도 안나의 심정을 헤아리고 그녀와 콜차크를 탓하지 않은 채 포기한다. 오히려 콜차크와 협력하던 체코슬로바키아 군단 지휘관[9]이 안전 통행을 대가로 콜차크를 배신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은 붉은 군대와 싸우며 연해주까지 퇴각하여 한국 독립군 세력에 무기를 땡처리로 매각한 후 배편으로 귀국한다. 홍범도 장군의 부대가 청산리 대첩에서 사용했던 무기들이 이들에게 사들인 것들이다.
- 영화 개봉 당시 알렉산드르 콜차크 제독의 실존 인물에 대해 모여서 토론이 있었다.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는 감독, 프로듀서, 영화비평가, 역사가, 정치가 등 서로 다른 입장의 패널을 만들어 토론을 주최하였다. 토론참여자: 지리놉스키(Владимир ВольфовичЖириновский) 러시아 민족주의 정치가, 보수적 우익인사. 러시아자유민주당(Либерально-демократической партии России, ЛДПР) 당수;유리 주코프(Ю, Жуков) 역사가, 러시아 군사연구소 연구원; 데니스 코즐로프(Д, Козлов), 역사가; 아나톨리 막시모프(А. Максимов), 영화 프로듀서; 알렉세이 쉬포프(А. Шипов) 역사가, 다닐 돈두레이(Д Дондурей)영화평론가, 유명한 저널 “예술영화” 지의 편집인. 그리고 크라프추크 감독[10]“주코프: …콜차크는 국가적 반동을 개시했다. 다수인민이 총살형에 처해졌다. 몇 달 후에 지방 주민들이 콜차크의 독재에 저항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볼셰비키가 아니다. 처음에 총을 쏘았던 것은 볼셰비키가 아니란 말이다.…당신의 이 영화 때문에, 젊은이들의 머리 속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며, 당신은 판타지같은 역사해석으로 그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역사는 정직하다. 적군이 이겼단 말이다. 모든것을 이겼단 말이다….-주코프: 러시아가 죽어가고 있을 때, 콜차크는 미국으로 도망쳤다.…-지리놉스키: 그는 결코 도망치지 않는다! 1917년 혁명이 제국을 붕괴시켰고, 아무 것도 없었다. 콜차크 제독은 위대한 사람이다. (도망친) 예를 대라….-코즐로프: 만일에 우리가 교육의 측면에서 말하는 것이라면, 올바르게 교육해야 한다. 콜차크는 우수한 유형의 사람이며, 단지 그의 일생에 대한 올바른 역사는 어떠한 블록버스터보다 재미있을 것이다.(중략)-시포프: 필름이 성공했으므로, 그에 대해 논쟁하는 것이리라…우리에게는 콜차크 개인이 흥미롭다…. 만네르헤임 백작이 콜차크에게 핀란드 독립을 승인하는 척하면서 페트로그라드를 공격하라고 제안했을 때…제독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는 러시아는 “하나여야 하고 분리되어서는 안된다(Россия должна быть одиной и неднлимой)”고말했다…. 콜차크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구 러시아로 돌아가기를 원했고, 러시아를 사랑했지만, 구 러시아가 10월 이후에는 이미 사라졌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런 집단의 사람이었다. 그들도 이룰 수 없는 어떤 것을 위해 싸웠다! 내전에서, 콜차크는 자신의 조국에 맞서 싸웠는데, 러시아인들 중 대부분이 그 전선 쪽에서 있었기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의 명예와 성실함을 거부할 수는 없다.-주코프: 거부할 수 있다. 그는 영국 정보기관과 관련되었다. 증거를댈 수 있다….-지리놉스키: 당신의 스탈린은 훨씬 더 끔찍하다…그 자신이 형사범죄 경력자이다. 그런데도 당신은 그를 옹호하고 있다….-돈두레이: …우리의 영화에서 이루어진 70년 동안의 위조를 하나의 필름으로 한꺼번에 대답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필름은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낸 것 같다. 적군들이 영웅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내전은 매우 복잡한 시대였다.” [11]
영화가 미화라고 단호하게 지적하는 역사학자가 있는가 하면 다른 2명은 옹호하거나 중립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 콜차크 제독 역을 맡은 배우 하벤스키는, 보스호드 2호의 이야기를 다룬 2017년작 "스페이스 워커"에서 보스호드 2호의 두 조종사 중 한 명인 파벨 벨라예프 소련 공군 중령 역을 맡았으며[12], 동시에 8부작 드라마 "트로츠키"에서 레프 트로츠키 역을 맡았다.
5. 관련 용어
[1] 드라마 '트로츠키'에서 트로츠키 역을 맡았다.[2] 주인공이 타고 있는 함선은 페르노프급으로 보인다.[3] 2계급 특진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 제국군은 준장이 없어 장관급의 시작이 소장이다. 이름만 소장일 뿐 계급장은 별 1개이며 타국에서는 준장 대우를 받는다. 대신 중장과 대장 사이에 상장이 존재하며, 이런 계급 형태는 소련군의 군제를 답습한 대다수의 국가가 똑같다.[4] 체포되기 직전 상황을 예감했는지 콜차크는 호위 부대를 해산시키고 부하들을 집으로 돌려보낸다.[5] 영화에서는 계급이 대령이었던 시절까지만 나온다.[6] 영화에서 육지에 있던 일부 해군 장교들이 수병들의 기습적인 소총세례로 학살당하다시피 죽음을 당하고, 옛 콜차크의 부하 장교를 비롯한 다른 해군 장교들은 소지품과 제복 등을 압수당한 채 포박되어 다리에 돌이 묶인 후 바다에 수장되어 물고기들과 함께 정원을 이루는 모습이 나온다.[7] 실제로 내전 이후 제국군 출신 장교들은 소련군 장교단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지만, 이오시프 스탈린의 대숙청 때 적지 않은 수가 숙청당했다. 처음부터 공산당원으로서 혁명에 참여하고 붉은 군대에 가담한 장교들도 대거 목이 날아가는 상황에 '출신 성분이 불순한' 제국군 출신 장교들이 숙청의 칼날을 피할 수는 없었다.[8] 현대의 관객이 보기에는 왜 처음부터 뛰어가지 않는지 의문이 들 법도 한데 언덕 밑에서 위로 기어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고 과거의 전장에서 착검돌격을 할 때는 30m 이내로 접근해서부터 달려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처음부터 50m 이상의 거리를 전력질주로 달려가면 적군의 포화를 피해서 접근한다 해도 지쳐서 싸울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머스킷을 쓰던 이전 시절이었다면야 1~2번의 사격만 견뎌내면 충분히 접근할 수 있었지만 이 시대에 이르러선 기관총 때문에 대열을 갖추고 착검돌격을 감행하는 백군이 적군의 기관총에 줄줄이 나자빠진다.[9] 모리스 쟈냉(Maurice Janin, 1862.10.19~1946.4.28). 프랑스 육군 장군이다. 그는 열차로 이동하는 콜차크의 안전한 통행을 보장했지만, 결국 볼셰비키와 결탁하여 그를 배반하였다. 이 탓에 서양에서는 불명예의 장군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영화에서는 볼셰비키의 협박을 받아 굴복한 것으로 나온다.[10] 기계형. "포스트 소비에트 시대의 러시아영화에 나타난 역사적 재현의 문제들: 영화 “시베리아의 이발사” 와 “제독” 을 중심으로." 역사와경계 71 (2009): 324주석 28[11] 기계형. "포스트 소비에트 시대의 러시아영화에 나타난 역사적 재현의 문제들: 영화 “시베리아의 이발사” 와 “제독” 을 중심으로." 역사와경계 71 (2009): 325-326[12] 이 때문에, 일부 팬들이 "제독이 우주에 갔다"는 농담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