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Anton Dostler 안톤 도슈틀러 |
출생 | 1891년 5월 10일 |
독일 제국 바이에른 왕국 뮌헨 | |
사망 | 1945년 12월 1일 (향년 54세) |
이탈리아 왕국 아베르사 | |
최종 계급 | 육군 보병대장 |
주요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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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군인. 최종 계급은 육군 보병대장.1891년 뮌헨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군생활을 시작했다.
2. 군생활
1910년 독일 제국 육군에 입대하여 제1차 세계대전에 초급장교로 참전했다.바이에른 보병연대에서 2년간 사관생도로 복무한 뒤 중위로 승진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그는 소령이 되었다. 종전 이후에도 군에 계속 남아 있었으며 해외 방첩청에서 종사했다. 군생활과 동시에 그는 베를린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제2차 세계대전 개전부터 1940년 까지 제7군 참모장을 지내다가 제57 사단 사단장(1941년 ~ 1942년), 제163 사단 사단장(1942년), 제57군단 군단장(1944년 1월 ~ 7월), 제73군단 군단장(1944년 9월 ~ 11월)을 지내다가 종전을 맞았다. 종전 이후에는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
3. 전쟁범죄
도슈틀러 장군이 제57군단 군단장으로 재직 중이던 1944년 3월 22일, 2명의 장교를 포함한 15명의 미합중국 육군 특수부대가 이탈리아 해변에 다리를 폭파시키기 위하여 상륙하였다. 특수부대원들은 고문당했고 장교 한명이 그들의 임무를 실토했다. 그 이후 도슈틀러는 특수부대원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제165여단의 지휘관들은 세 번이나 이 명령을 미뤄주기를 건의했지만 묵살되었고, 그렇게 15명은 3월 26일에 처형당한다.명확히 식별이 가능한 피복을 착용한 특수부대원들의 활동은 국제법에 어긋나지 않음에도 이들을 처형한 것이, 전후 그의 최후를 결정했다.
4. 전범 재판
미 육군 특수부대를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 밝혀지자, 그는 1945년 5월 8일에 재판에 서게되었다. 최초로 사보타지 임무를 맡은 특공대 사살 명령 혐의로 미군 주최 전범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되어 사형을 선고 받았다.원래는 사보타지 임무를 맡은 상대편 특공대를 사살하는 것은 전장에 있는 군인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사실 도슈틀러 장군이 아니더라도 우리편(아군)이었으면 칭송을 받을 일이었다. 하지만 특수부대를 교전 중 사살 한 것이 아닌, 포로가 된 상태에서 고문 후 살해한 것은 엄연히 국제법 위반이다.
5. 사형 집행
1945년 12월 1일, 도슈틀러는 모자와 전투복의 국장과 총살형 집행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철제 훈장류만 빠진 온전한 독일 국방군 육군의 장군 전투복 차림으로, 이탈리아 왕국 아베르사에서 군인의 전통적 사형 집행 방법인 총살형으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사형 판결 후 집행된 군 상관들이 소련 수석판사 반대로 계급장과 훈장 등 단추 외 모든 부착물이 제거 된 군복을 착용을 한 채로 명예마저도 더럽히는 불명예 사형 방식인 교수형을 당한 것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 이었다.처형당하기 전의 도슈틀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