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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졸업식 직후 폐교의 슬픔을 함께 나누는 학생들 |
1. 개요
폐교(廢校)는 학교의 운영을 폐지하는 것 또는 그렇게 된 학교를 말한다. 유치원, 어린이집에서는 폐원이라는 말을 사용한다.2. 원인
2.1. 학생 수의 감소
폐교가 나오는 주원인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이촌향도로 인해 촌락 지역의 학교들이 폐교되는 경우가 많았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농어촌 인구가 한창 절정에 달했을때인 1960년대에는 촌락에도 학생 수가 많았기 때문에 하나의 읍이나 면 내에 국민학교(초등학교)가 2~3개 이상씩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1960년대 후반부터 도시로 떠나는 인원이 농촌의 인구증가율을 추월하면서 많은 학교들이 폐교되었다. 2018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가 아예 없는 읍면이 23개, 초등학교 단 1개만 있는 경우도 192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왔다.[1] 아직까지 잔존하고 있는 촌락 지역 학교들도 상당수가 광역통학구역으로 설정되어 인근 도시 지역 학생들을 끌어오는 형태로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형태라 정작 소재지에 거주하는 학생은 별로 없는 경우가 많고, 매년 학교들이 학생들을 한 명이라도 끌어들이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서라도 치열한 유치전을 펼치고 있어 해당 학교의 교사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2]도시에서도 신도심 조성과 주거환경 변화 등의 여파로 발생하는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인해 원도심 지역에 있는 학교들이 폐교되는 경우가 생겼고, 21세기에 들어서는 저출산이 극심해지면서 앞으로도 폐교 절차를 밟게 될 학교가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출생아 수가 30만 명 미만을 기록한 첫 세대인 2020년생이 초6이 되는 2032년부터는 폐교하는 초등학교가 증가할 가능성이 큰데, 대도시의 학교는 2차 베이비 붐 세대와 그들이 낳은 에코붐세대 사이에 급증했는데, 에코붐세대가 성인이 되어 학교를 떠나고 이들의 직전 세대인 에코세대는 나라 멸망을 걱정할 정도로 자녀를 갖지 않아 늘어난 학교 수에 비해 학생 수가 급감하게 된 것.[3]
전남광주통합특별시교육청에서는 신입생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2012년부터 거점고등학교 정책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많은 고등학교가 통폐합 절차를 밟았다.
경상북도교육청에서는 고등학교에 입학생이 없거나 심각한 미달, 일정 학생수를 채우지 못하여 학급 편성이 불가능하거나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다고 판단될 경우 그다음 해부터 바로 모집 정지를 하여 마지막 입학생이 졸업할 때 폐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4] 2017년의 경우 4곳의 고등학교가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여 문을 닫았다.
학생이 주로 유입되는 시설의 인원 감소로 사라진 경우도 있다. 부산광역시 서구 암남동에 소재했던 알로이시오전자기계고등학교는 2018년 3월 1일부로 폐교되었는데, 이 학교는 학교 특성상 부산 소년의 집에서 운영하는 가톨릭계 미션스쿨이었으며 일반 학생[5]들의 유입은 거의 없었고 부모가 없는 위탁청소년들이 주로 다녔으나, 소년의 집 아동 수가 줄어듦에 따라 자연스레 학생 정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재단에 속한 서울의 알로이시오초등학교와 알로이시오중학교 역시 같은 이유로 폐교됐으며 부산의 경우 알로이시오중학교가 2016년 3월 1일자로 이미 폐교되었다.[6] 사실 알로이시오전자기계공고는 특성화고등학교라는 특성상 학과 개편을 하고 외부 학생들을 모집하면 폐교를 면할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면 건학이념에 배치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폐교를 택했다고 한다.
대학교 역시 지금도 전체 대학교 입학정원이 학생 수보다 더 많은 추세이고 입학할 학생 수는 계속 줄어들 것이 기정사실이기 때문에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 2040년에는 대학의 절반 이상이 폐교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7]
2.2. 주변 환경 문제
산업단지 지역 같은 경우, 공해로 인한 학습권 침해로 인해 폐교되는 경우도 있다. 그 예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양시에 있는 태금중학교와 울산광역시 남구에 있는 용연초등학교가 있다.[8] 서울 강서구에 위치했던 서울오곡초등학교도 비슷한 이유로 1999년 폐교되었는데, 인근 김포국제공항으로 인한 소음공해 때문이었다. 2000년에 폐교된 부산 삼락초등학교와, 2019년에 폐교된 부산 삼락중학교도 지속적인 학생 수 감소에다가 주변 사상공업단지지역의 소음공해와 매연, 분진 등으로 인하여 학습권 보장이 불가능하자 폐교되었다고 한다.서울 화양초등학교는 해당 블럭 남부의 건대 상권이 확장되고 나머지 북부 지역은 건대와 세종대 학생 원룸촌으로 바뀌면서 지역 취학 연령 인구가 급감하며 폐교되었다.
2.3. 학교 시설의 노후화
2020년경에는 동구 좌천동 소재 금성고등학교의 형제 학교인 금성중학교가 폐교되었다. 금성고등학교와 같은 재단의 이 학교는 금성고등학교의 건물 면적과 시설이 협소하여 불편함이 많았다.[9] 굳이 폐교시키지 않고 학교를 명지국제신도시나 일광신도시 등의 다른 곳으로 이전시킬 수도 있었으나 재단에서 폐교를 결정하였다고 한다.금성중학교 폐교와 같이 해운대구 반송동 소재 반송중학교가 운송중학교와 통합이 이루어졌다. 기존 반송중학교 건물은 1970년대에 준공하여 너무 노후화되었으며 오래된 주택가 인근에 학교가 위치해 있어 교육환경도 별로 좋지 못하였고 부지도 협소하여 2015년도부터 운송중학교와 통합 논의가 진행된 바가 있다. 결국 통합이 확정되어 1990년대에 지어진 비교적 신식 건물인 운송중학교 건물을 사용하며 교명은 반송중학교의 교명을 사용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2.4. 교육청의 수요 예측 실패
2004년 3월 용인시 죽전지구 내에 있었던 청운초등학교는 수요 예측 실패로 개교한 지 6개월 만에 폐교되었다.[10] 해당 학교 건물에는 2006년에 현암고등학교가 개교하였다.대전 유성구 봉산동에 있었던 보덕초등학교는 개교 당시에는 주변 환경이 좋아 크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받았으나 2005년 단 1km 떨어진 곳에 더 좋은 학교가 생겨서 주민들의 기피로 인해 폐교했다.[11] 현재 해당 학교 건물에는 한국가스기술공사가 입주해 있다.
2.5. 학교의 위상 변화
실업계 고등학교의 경우 1960년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인문계 고등학교에 비해 그렇게 위상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고등학교는커녕 중학교 문턱조차 밟지 못하던 청소년도 적지 않았고,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중등교육이 대중화되었지만 대학진학률은 20%안팎에 머물렀으며 1990년대 초반까지도 대학진학률은 30%대 가량의 수준이었다. 즉, 대학의 문턱이 비용상의 이유나 합격률이 낮았던 연유로 인해 높았고, 3D산업은 성행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빨리 먹고살 기술을 배울 수 있던 실업계 학교의 인기가 많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대졸자 우대 풍조가 사회 전만에 만연해지면서 서서히 쇠락하게 된다.특히 산업화와 이농 현상에 따른 농업계 고등학교의 쇠락이 심하여, 많은 농업계 고등학교들이 문을 닫거나 종합 고등학교로 전환되었다. 대표적으로 전라북도 이리시(현 익산시)에 소재했던 이리농림고등학교는 한때 지역 내에서 명문으로 인정받았던 학교였지만, 농업계 기피 흐름을 이기지 못한 채 1991년 이리농공전문대학으로 승격/개편, 농고는 1993년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폐교하였다.[12][13] 폐교된 농업계 고등학교의 역할은 학력 인플레이션에 의해 사실상 전문대학이나 대학의 농업 관련 학과로 넘어가게 된다. 따라서 행정상으론 폐교지만 학교 역사, 동문, 사회적 관점에서는 이것을 '대학으로 승격'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실업계 기피 등의 이유로 멀쩡한 학교를 폐지시키려는 시도도 있었으니, 유명한 것이 동호정보공업고등학교(현 서울방송고등학교) 폐교 시도 사건###이다. 이 학교는 도심공동화 현상과도 관련 없고 잘 굴러가던 학교였다. 인근에 5천 세대 규모의 모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일정 세대 이상의 아파트를 지을 때는 건설사가 초등학교 부지를 마련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꼼수를 써서 초등학교 없이 5천세대가 입주하였다. 이후 이 아파트 주민들은 초등학교도 없겠다, 옆에 원래부터 있던 실업계 고등학교도 마음에 안 들겠다 싶어서 서울특별시교육청에 집단 민원을 넣어서 해당학교를 용산구 구 수도여자고등학교 부지로 쫓아내려 했지만 역시나 용산구민들이 반발하고, 이후에 강서구나 마포구로 쫓아내려 했지만 역시나 그곳에서도 반발하면서, 그냥 폐교 인가를 내버리고 그 자리에 초등학교를 지으려고 했는데 문제는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그것을 수용했다. 결국 이 문제가 사회문제로 커지자 폐교 계획을 백지화하고 해당학교의 운동장만 뺏어서 그 자리에 초등학교를 짓는 선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정작 초등학교가 지어졌지만, 주민들은 인근 사립초등학교에만 학생들을 보내는지, 해당학교의 규모는 시골학교 수준인 학년당 2~4학급밖에 안 된다. 여튼 멀쩡하고 학생들 넘치는 학교도 폐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2.6. 입시 정책의 변화
무즙 파동과 창칼 파동의 여파로 1968년 전국의 중학교 평준화 방안이 마련되었고, 이에 따라 1971년 신입생(1958년생)부터 전국의 중학교 입학시험이 폐지되었다. 동시에 전국의 명문 중학교들을 폐교하거나 개명하여 과열된 입시의 흔적을 지우려고 한 시도가 있다. 이때 폐교된 학교들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지속되어 6년제 중학교였다가 3년제 고등학교와 분리된 중학교들이다. 그래서 이때 폐교된 학교들은 짝을 이루는 명문 고등학교가 있으며, 이들 고등학교는 지금도 존속하여 폐교된 중학교의 학적도 관리하고 있다. 폐교된 중학교들은 1968년부터 신입생 모집을 중지하여 폐교하였다.- 1971년 폐교
- 이화여자중학교(서울 사립, 1886년 개교, 이화여자고등학교)
- 경기중학교(서울 공립, 1900년 개교, 경기고등학교)
- 경기여자중학교(서울 공립, 1908년 개교, 경기여자고등학교)
- 경복중학교(서울 공립, 1921년 개교, 경복고등학교)
- 서울중학교(서울 공립, 1946년 개교, 서울고등학교)
- 1972년 폐교
- 경동중학교(서울 공립, 1940년, 경동고)
- 수도여자중학교(서울 공립, 1946년, 수도여고)
- 인천중학교[재개교](인천 공립, 1935년, 제물포고)
- 전주북중학교(전주 공립, 1919년, 전주고등학교)
- 전주여자중학교(전주 공립, 1926년, 전주여자고등학교)
- 광주서중학교(광주 공립, 1920년, 광주제일고등학교)
- 광주동중학교(광주 공립, 1926년, 광주고등학교
- 전남여자중학교(광주 공립, 1927년, 전남여자고등학교)
- 광주중학교(광주 공립, 1958년,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15]
- 1973년 폐교
2.7. 운영주체의 경영난
사립학교의 경우 모기업의 사정으로 폐교되었고, 심지어 멀쩡한 학교가 폐교된 사례도 종종 있는데, 부산광역시 금정구에 있었던 학교였던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 청주시의 대농그룹 부설 산업체 고등학교였던 양백상업고등학교(구 양백여자상업고등학교)와 같은 산업체 부설학교가 그러한 사례 중 하나다.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의 경우는 모기업 태광산업의 경영난과 지원자수 감소를 구실로, 태광그룹 재단에 의해 폐교하였지만, 폐교 이전에 합격자수를 조작해 인위적으로 입학생수를 줄였다는 증언이 있는 등 폐교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구석도 제법 있었고, 교직원들의 마지막 요구대로 일반계 고등학교로 전환해서 제대로 운영한다면 부산에서 학군이 좋은 구서동 주거지역 특성을 이용해 명문학교로 재탄생할 수도 있었으나, 그딴 거 없이 13년 만에 폐교가 확정되어 겨우 16년 만에 폐교하였다. 그리고 해당 학교 부지는 폐교 이후에 태광인력개발원으로 활용 중이고 태광그룹 재단에서는 흑역사로 여기고 있는데, 같은 시기에 같은 재단이 운영하는 서울의 고등학교들을 자립형 사립고로 전환하겠다고 신청한 사실을 생각하면 태광여상은 충분히 살릴 수 있었던 멀쩡한 학교가 재단에 의해 방치되다가 구성원들의 의견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폐교된 꼴이었다.
이후에 부산교육청이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의 부지와 시설을 매입하여 공립 중학교(가칭 구서중학교)로 부활시키려 했지만 이마저도 부지 매입 협상이 결렬되면서 무산되었다.[16]
청주 양백상고는 대농그룹이 IMF 구제금융 체제를 전후해 무너진 가운데에서도 계속 운영했지만 경영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폐교하고 말았고 이쪽은 대농지구 재개발로 인하여 건물도 철거되어서 흔적이 남아있지 않지만 태광여상의 경우와는 달리 그 자리에 솔밭초등학교가 신설되었다.
재단에서 아파트를 짓기 위해 학생수도 1,400명 이상을 자랑할 정도로 꽤나 많고 학교 입장에서는 그런대로 잘 돌아가던 멀쩡한 사립학교를 폐교한 예가 있는데, 도심지인 부산시 연제구 연산4동에 존재했던 브니엘중학교가 그러한 예이다.
간혹 비리로 인해 학교가 폐교 조치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전라북도 익산시에 있었던 예인음악예술고등학교로, 2007년에 운영부실및 비리가 대대적으로 발각되면서 궁지에 몰리게 되자 더 이상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해지면서 개교[17]한 지 고작 7년 만에 자진해서 폐교하였고, 이쪽은 예술계열의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중에서는 처음으로 폐교가 발생한 사례가 되어버렸다.
또 다른 예로 충청남도 서천군에 있었던 정의여자중고등학교가 있으며, 2000년에 재단에서 교사 4명을 같은 재단에 속한 섬 지역 중학교로 발령한 것이 화근이 되어 소요 사태가 벌어졌고, 이로 인한 학생 수 지원 감소로 인하여 최종적으로 2001년 중학교, 2004년 고등학교가 폐교되었다. 문제의 섬 지역 학교는 인구 감소까지 겹치면서 더 2010년대까지 존속하다가 폐교되었다.
그 외에 부산광역시 남구에 있었던 배정중학교도 재단의 경영난 및 건물의 노후화로 인한 안전문제에다가, 1970년대 국유지 강제 환수로 인하여 국유지를 침범하는 데다가 국유지 사용료 체납 문제가 겹치고, 결정적으로 부산진구 개금동 예비군훈련장 근처로 이전하려던 계획마저도 완전히 무산되는 바람에 2000년과 2004년에 재단에서 폐교를 계속 시도하다가 학부모들과 동문들의 반발로 교육청에서 폐교가 불승인되면서 폐교를 보류하고 연명중인 상태였는데# ##, 2010년에 재단의 비리가 발각된 것을 계기로 결국 재단에서 배정중학교의 연명을 자진해서 포기하고 2012년에 최종 폐교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배정중학교의 폐교는 상당히 논란이 있는 사안인데, 시설이나 국유지 체납 문제가 있기는 했어도 폐교 당시 학생수가 600명대로 그런대로 돌아가던 학교였고 부산시내에서 교사 채용 비리로 폐교까지 간 사례도 전무한데도 불구하고, 배정중학교가 폐교된 것은 해당학교 재단과 부산시 교육청이 짜고 해당 학교 재단 비리에 대한 관선이사 파견이라는 사립학교가 받을 수 있는 최악의 징계를 회피하기 위해 꼬리 자르기식 폐교로 사건을 최대한 덮어버렸다는 설이 정설이다. 어차피 재단 산하에 학교도 여러 개 있어서 필요 없는 학교 하나 날려봤자 재단 입장에서는 손해볼 것도 없고 그저 애꿎은 교사들만 학교에서 쫓겨날 뿐... 결정적으로 배정재단은 이전부터 배정중학교를 계속 폐교하고 싶어했으나, 폐교 승인이 나지 않아서 그냥 억지로 떠안고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는 사실 교육청이 배정재단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면서 사학비리를 척결 하는 것처럼 보이게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한 것이었다. 오히려 배정중학교의 폐교 과정을 보면 부산시 교육청이 재단의 편의를 정말로 잘 봐줬다는 사실이 여실없이 드러났었는데, 부정채용된 14명을 제외한 과원교사 전원을 공립학교로 특채 했으며 설립자의 아들이었던 배정중학교 교장은 배정중학교가 폐교되면서 배정고등학교로 무난하게 갈아타버렸다. 폐교된 배정중학교 부지와 시설은 재단으로 회수되면서 결국 재단은 재산을 지킬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배정학원 재단은 배정중학교를 폐교하는 대가로 학교 통폐합 인센티브 57억을 받았었다고 한다. #
특이한 경우로 1960~70년대에 군사정권 시절 당시 토지 매입 절차상의 문제로 난데없이 국유지로 강제로 환수당하는 바람에 폐교되는 사립 학교도 종종 있는데, 위의 배정중학교 말고도 1980년에 최종 폐교된 부산진구 서면의 북부산고등학교가 그 예이다. 당초에는 같은 학교법인의 북부산중학교와 같은 건물을 공유하여 사용하였는데, 1974년부터 고교 평준화가 시행되었지만 북부산중학교와 건물을 같이 쓰면서 교실을 빌려쓰는 형태로 얹혀살이를 하면서 교육여건이 협소하던 북부산고등학교는 고등학교 평준화 대상으로써의 여건을 만족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새로 고등학교 건물을 따로 짓자니 국유지 문제도 있고 해서 새로 건물을 지을 수도 없는 처치 불가능한 상황이 되자 결국 학생을 배정받을 수 없게 된 북부산고등학교를 폐교하고 북부산중학교만 존치시켰다. 북부산중학교는 서면중학교로 개칭하여 현재까지도 남아있지만 이쪽도 앞서 말한 대로 학교 부지가 국유지로 강제로 환수당한 일로 인하여 북부산중학교의 후신인 서면중학교 역시도 현재로서는 한국철도공사 소유 부지를 무단 점거하고 이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코레일과 종종 마찰을 빚고 있다.#[18]
사립 중고등학교의 경우 재단이 갈리고 교사진도 완전히 갈리고 학교 이름까지 바뀌어서 사실상 폐교나 다름 없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폐교되는 경우는 단 1명도 예전 학교 관련자가 학교에 남아 있지 않는다. 21세기 들어가면서 경기도의 고교비평준화 정책이 철회되자 시설과 교사진이 미비한 학교는 아예 신입생이 안 들어갔다.[19][20] 이런 학교의 올드보이들은 사실 학교가 없어진 것과 다름 없기 때문에 학적 증명을 떼려면 해당 지역의 교육청으로 찾아가야 한다. 생활기록부 떼는 건 불가능한데 학교의 운영주체가 바뀌면서 폐기해버리거나, 창고에 곰팡이가 쓸든 말든 처박아 두고 잊기 때문이다. 더 극단적인 사례로 아시아대학교처럼 폐교 당시 증거인멸 등의 이유로 학적부까지 폐기하는 예도 있다. 이러한 사태를 막고자 2012년 한국사학진흥재단이 폐교대학 학적부 전담관리 기관으로 지정되어# 통합 증명관리 서비스를 실시, 2022년 '폐교대학 기록문서관리시설(KASFO U-Archives)'을 준공했다만 이는 주로 폐교된 대학에만 적용된다.
일부 사립학교(특히 전수학교)들은 과원교사들을 처리하기 위해 겉으로는 학교 개편이라고 하면서 뒤로는 서류상으로 학교를 폐교 처리하기도 하는데, 사립학교가 폐교되면 교사들이 교육청에 의해 공립학교 교원으로 특별 채용되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그걸 이용한 것. 과원 교사들을 학교 재단에서 마구잡이로 짜를 수가 없다 보니, 이런 꼼수를 쓴다는 것이다. 그런 학교들은 교육청에 학교 폐교를 신청하자마자 바로 이어서 신설학교 설립 인가를 제출해서 실상은 기존의 폐교신청된 학교의 건물을, 바로 이어서 설립인가를 제출한 신설학교가 이어쓰게 되는데 이렇게 하면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겉으로는 폐교가 아닌 개편 전환같아 보이지만, 법적으로는 폐교된 학교가 되기 때문에 엄연히 폐교 사례에 집계가 되고 그렇게 신설된 신설학교의 경우도 개교기념일이나 설립인가일은 아예 새로 부여받게 된다. 특히 학교총량제를 시행하는 지역에서는 이 방법이 아예 불가능하다.
그 외에 답이 없는 꼴통 사립학교들은 재단과 마찰이 있는 교사들을 털어냄과 동시에 학교의 좋지 못한 이미지와 역사를 세탁시키기 위해서 이런 식으로 서류상으로 폐교 후 재개교 라는 방법을 쓰는 사례도 제법 있다. 물론 이렇게 폐교되는 경우에도 일부 과원교사들은 교육청에 의해 공립학교로 특별 채용되기도 하지만, 특별 채용되지 못한 경우는 학원가로 흘러가는 경우도 있고, 원래 재직했던 학교 이미지가 너무 나빠 낙인이 찍혀서 학원가로도 가지 못하고 결국은 다른 일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홍하가 구속 수감되어 이홍하 소유의 학교법인인 홍복학원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치닫게 되어 현재 폐교 위기에 몰린 고등학교가 몇 있는데 그 학교들이 바로 광주광역시에 소재한 대광여자고등학교, 서진여자고등학교와 나주시에 소재한 광남고등학교가 있다. 이미 광남고등학교 이외의 두 고등학교에는 관선이사가 파견되었다.
2.8. 기타
간혹 학교를 새로 지으려니 공사시간과 부지 확보 문제가 걸리는 데다 일반계 및 특성화고등학교 개교로 인하여 중학교를 없애버리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에 있었던 해성여중이나, 고양시에 있었던 고양여중, 과천시에 있는 과천여중,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있었던 대양중학교, 사상구에 있었던 사상중학교 등. 해성여중과 사상중학교의 경우는 주변에 중학교는 남아도는데 고등학교는 매우 부족하다 보니(둘 다 근방에 남고와 여고가 없었다.) 해성여중을 폐교하고 그 자리에 해성여고를 만들거나 사상중학교를 폐교하고 그 자리에 사상고등학교를 만들었으며, 고양여중은 기피학교로 폐교 직전 당시 전교생 41명에 신입생이 8명에 불과한 유령화 되어가는 상황이라 폐교될 수밖에 없었고 폐교와 동시에 고양예고가 신설되었다. 또한 과천여중은 과천외고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폐교되었고, 대양중학교의 경우 당시 학생수는 1000명을 충분히 넘겨서 폐교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지어질 당시부터 부지가 비좁아 운동장이 거의 없는 등 시설이 좋지 못한 데다가 바로 옆에 부산남중학교가 위치하여 서로 중복되는 문제도 있고, 장기적으로 영도구 학령인구 급감이 예상되어 폐교되었다.[21]학생수는 적은데 학교가 많이 몰려 있어 특정 지역으로 편중되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 멀쩡한 학교가 폐교되는 경우도 있다. 그 예로 대전광역시 중구에 있었던 중앙여자중학교와 대구광역시 달서구에 있었던 감삼중학교와 대구남중학교가 있다. 실제로 이들 학교 근방에 상서중학교, 경암중학교, 원화중학교, 구남중학교, 본리중학교, 동본리중학교, 성당중학교 등 여러 중학교가 많이 몰려있었다. 이들 학교 중 본리중학교와 동본리중학교는 2016년에 새본리중학교로 통합했다.
1999년에는 1997년 외환 위기의 영향으로 인해 한 해 동안 무려 971곳의 학교가 대대적으로 통폐합되기도 했다. 기사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창씨개명을 거부한 학교를 폐교했다.
3. 폐교 결정 시기
유/초/중/고의 경우 학사일정과 내신 때문에 대부분 2월에 폐교/폐원하고, 폐교/폐 결정이 나와도 대부분 신입생부터이고 기존 재학생들은 졸업할 때까지 다닌 후 폐교된다. 반면 대학교는 보통 8월에 폐교된다. 본래는 유/초/중/고와 마찬가지로 2월에 많이 폐교되었으나, 수시모집 등 신입생과 관련된 문제로 인하여 8월에 많이 폐교하는 것이며 더 중요한 이유는 대학기관평가인증의 결과에 따라 폐교할 대학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게 각 대학교에서는 공포의 평가인 게 어느 대학을 폐교할지 결정하는 평가이기 때문인데 아래에서 설명하는 등급으로 여러 번 선정되면 교육부에서 폐교시킨다.가끔 초등학교/중학교가 8월에 폐교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2학기에는 인근 다른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서 보낸다.
4. 폐교 이후 시설물 활용
건물을 바로 철거하거나 다른 용도로 활용하게 되면 문제가 없겠지만, 용도를 찾지 못해 방치한다면 비행청소년이나 노숙자나 조직폭력배 등의 습격을 받아 여기저기 더더욱 낡고 지저분해지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을씨년스러운 폐교의 이미지가 완성된다. 대표적인 예가 용산구 후암동의 구 수도여자고등학교.[22] 학교가 2000년에 학교가 동작구 신대방동으로 이전한 후 구 수도여자고등학교 부지는 당초에는 쫓겨나게 될 처지의 동호정보공업고등학교를 이 곳으로 이전시키려 했지만, # 용산구민들이 크게 반발하면서 결국 무산되었고,[23], 금싸라기 땅인데도 불구하고 7년간 부지를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마땅한 용도를 찾지 못했으나, 다행히도 용도를 찾게 되어 2007년부터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시설관리사업소로 이용됐고[24] 2014년에는 조희연 교육감 당선인 인수위원회 사무실로 쓰이기도 했으나 서울특별시교육청 청사가 구 수도여자고등학교 부지로의 이전이 결정됐고, 2021년 신축공사가 진행되면서 철거되어 2026년 그 자리에 새 교육청 청사가 들어섰다.그나마 도시의 시내에 위치한 폐교는 재개발이나 재건축, 다른 공공시설의 청사용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지방, 특히 아예 인구 자체가 적은 시골의 폐교는 이러한 수요도 매우 적어 어떻게 재활용할지에 대해 난항을 겪는다. 해당 지역의 회관이나 공동 작업장, 관광용 체험 시설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며, 일부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대도시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인수하여 다른 복지 시설로 사용하기도 한다. # 대표적인 것이 서울특별시에서 전국 각 지역의 폐교 시설을 이용하여 운영하는 서울캠핑장이다.[25]
폐교 시설의 활용 방안과 그 수요가 있다 해도 지역 주민과의 갈등이 발생해 사업이 표류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시 초등학교 폐교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서울화양초등학교는 해당 부지에 정부와 지자체, 교육청에서 상생형 공공기숙사(행복기숙사) 건립을 계획하였으나 주변 원룸 임대 사업자 중심의 주민 반대에 막혀 수 년째 운동장만 임시 주차장으로 쓰이는 단계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중소기업에서 폐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사무실로 이용하기도 한다.
5. 교사 이전으로 폐교 방지
역사와 전통이 오래된 학교이거나 학교나 동문들이 폐교에 반발하고 '학교 신설과 통폐합 연계 정책'(학교 총량제), 학교 폐지 및 신설학교 설치에 관한 절차나 비용 등이 귀찮은 경우에는 폐교 대신에 신도심에 새로 지어지는 학교 건물로 학교 자체를 이전하기도 한다.[26] 대표적인 예가 광주광역시의 전남고등학교로 광주 구도심[27]에서 상무지구로 이전하였다. 부산광역시의 부산중앙중학교도 구도심인 부산진구 전포동에 있었으나 전포동의 학생수가 감소하여 폐교 위기에 처했으나, 기장군 정관신도시에 새로 들어서는 중학교 건물로 이전시켜서 폐교를 면하고, 남녀공학으로 전환했다.특이한 케이스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송동에 있던 서울수송국민학교는 1922년 개교해 1977년 2월 53회 졸업생까지 배출하다가 도심 공동화로 인해 폐교되었으나 2001년 9월 외곽지역인 강북구 번1동에 신설된 초등학교가 학교의 전통을 만든다며 구 수송국민학교의 교가 등을 복원하고 기수를 이어가서 24년 만에 서울수송초등학교로 부활하게 되었다.# [28][29]
현재 개교 [age(1896-01-01)]주년으로 전국에서 3번째로 긴 역사를 자랑하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의 신풍초등학교는, 도심 공동화[30]로 학생수도 줄어든 데다가 수원 화성행궁 복원도 할 겸 학교를 폐교하고 그 자리에 화성행궁을 복원시키고자 하였으나, 동문 및 지역주민들의 반발로 광교신도시로 이전하여 학교 이름의 명맥을 유지하려고 하였지만 등교거리 증가 및 전학갈 학교 학생들의 텃세 등을 우려한 재학생 학부모들의 반대로 결국 2013년 3월부로 본교는 광교신도시로 이전하고 신풍동 기존 교사(校舍)는 분교장의 형태로 남겨서 신입생은 더 이상 받지 않되 기존 재학생들이 졸업하는 2018년 2월까지 폐교 및 화성행궁 복원을 유예하기로 합의,# 2019년 2월 29일 신풍분교장이 폐교되었다. 또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소재의 남곡초등학교의 경우 이전 사유는 조금 다르지만[31] 위의 신풍초등학교와 비슷한 방식으로 본교는 2018년에 e편한세상 용인 한숲시티 내부로 이전하였고 기존 교사는 남곡초등학교 남곡분교장으로 개편하여 기존 재학생들이 모두 졸업하는 2024년에 폐교되었다.
이 외에도 구도심 지역에 있었다가 이전한 초등학교로는 울산광역시 중구의 울산초등학교[32], 경기도 안성시의 백성초등학교[33], 충청북도 청주시의 청주중앙초등학교[34], 제천시의 동명초등학교[35], 경상북도 포항시의 포항중앙초등학교[36], 안동시의 안동영호초등학교[37],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의 학성초등학교[38] 등이 있다.
6. 기타
- 폐교를 하는 법적 절차가 학교의 종류별로 약간 차이가 있다.
- 국립학교: 근거법령을 개정함으로써 한다.
- 공립학교: 유아교육기관, 초등교육기관, 중등교육기관은 근거조례를 개정함으로써 하나, 고등교육기관은 사립학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교육부인가를 요한다.
- 사립학교: 유아교육기관, 초등교육기관, 중등교육기관은 교육청의 폐교인가를, 고등교육기관은 교육부의 폐지인가를 받아야 하고(초·중등교육법 제4조 제3항, 고등교육법 제4조 제3항), 이를 위반하면 처벌까지 받는다(초·중등교육법, 제67조 제2항 제2호, 고등교육법 제64조 제2항 제2호).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인가를 받아도 역시 처벌을 받는다(초·중등교육법, 제67조 제2항 제3호, 고등교육법 제64조 제2항 제3호).
7. 증명서 발급
한국사학진흥재단 홈페이지에서 발급가능.8. 폐교/목록
8.1. 대학교
| 폐교된 대한민국의 고등교육기관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00; font-size: .8em; color:#ffffff;" | |
| <colbgcolor=#808080> 종합대학 | 광주예술대학교 ''' 이 · 건동대학교 · 경북외국어대학교 · 대구외국어대학교 · 명신대학교 · 서남대학교 이 · 선교청대학교 · 아시아대학교 · 한국국제대학교 † · 한려대학교 이 ''' · 한중대학교 | |
| 전문대학 | 강원관광대학교 ''' † · 광양보건대학교 이 예정 · 국립세무대학 국 · 동부산대학교 · 대구미래대학교 † · 대전성실전문대학 · 벽성대학· 부산예술대학교예정 · 서해대학 † ''' · 성화대학 | |
| 각종학교 | 개혁신학교 ''' † · 한민학교 † ''' | |
| 사관학교 | 군사영어학교 ''' 국 · 제2사관학교 국 ''' | |
| 대학원대학 |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 ''' † ·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 서울제일대학원대학교 이 ''' · 인제대학원대학교 | |
| 외국교육기관 | 네덜란드 물류대학 광양캠퍼스 · 프리드리히-알렉산더대학교 부산캠퍼스 ''' 국 ''' | |
| 사내대학 | KDB금융대학교 · 현대중공업공과대학 · LH토지주택대학교 | |
| · 사내대학은 평생교육시설이나, 대학에 준하는 취급을 받고 있으며 폐교된 평생교육시설이 미비한 관계로 같이 서술한다. 예정: 폐교 예정 | ||
자세한 사항은 한국사학진흥재단의 폐교대학 종합관리포털서 확인 가능.
8.2. 문서가 없는 폐교
8.2.1. 초등학교
8.2.1.1. 서울특별시
- 계산보성보통학교 (1905~1931)
1905년 이용익에 의해 개교, 그의 구상안에 따르면 한성부 내에 여러 개의 분교 형태로 만드는 것이었다. 원래 보성전문학교, 보성중학교와 같은 서울 전동(수송동)에 있었으며 1910년 한일합병으로 이용익의 손자 이종호가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하자 천도교로 인수, 당시 문헌에 따라 '보성초등학교'#라고도 했다. 1922년 의암 손병희 교주가 세상을 떠나고 1923년 보성중학교가 조선불교중앙교무원으로 넘어가자 송현동을 거쳐 1924년 계동 36번지로 이전, 본원사 조선개교총감부로 넘어가서 교명도 '계산보성학교'가 되고 1927년 보통학교 인가를 받았다. 1931년 대동학교[39]에 인수되어# 같은 재단 산하였던 보성심상소학교에 흡수된 것으로 보이며, 대동중-상업고등학교 동문회(현 대동세무고등학교 총동문회)가 1995년에 낸 <대동 칠십년사> 56쪽에 의하면 보성소학교(대동학원) 재학생들은 1945년 8.15 광복 후 폐교되어 서울재동국민학교로 보내졌다고 한다.
- 서울난화국민학교 (1988~1996)
난향국민학교에서 분리 개교했으나 학생 수가 점점 줄면서 다시 난향국민학교와 통합하는 형식으로 폐교했다. 1997년 이 자리에 서울정문학교가 개교했다.
- 서울남대문국민학교 (1946~1979)
1946년 일본인 학교였던 남대문공립심상소학교(1915년 개교)를 인수해 개교, 1970년 8월 태권도를 교기로 선정한 이래# 1970년대 중~후반 각종 대회에서 상을 따낼 정도로 두각을 드러냈다. 1979년 폐교 후 학적은 서울남산초등학교가 보존 중이며# 건물은 철거되어 현재 대한상공회의소가 들어섰다.
- 서울동대문국민학교 (1946~1972)
1946년 일본인 학교인 경성동대문공립심상소학교(1917년 개교)를 인수해 '서울을지국민학교'로 개칭, 1969년 '서울동대문국민학교'로 또 변경했다.
1968년경 교사 부지의 사선 부분이 (주)동화상가에 매각되어 1969년 동명의 상가가 들어섰고,#[40] 1972년 폐교되어 덕수중학교가 쓰다 1990년 그 학교가 인현동2가로 이전, 1993년 (주)거평이 부지를 인수한 후 철거되어 1996년 프레야타운(현 현대아울렛 동대문점)이 들어섰다.
- 서울방산국민학교 (1922~1970, 1992 재개교)
서울 중구 주교동 현 방산시장 자리에 위치하였던 국민학교. 1922년 '주교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여 1938년 경성방산공립심상소학교, 1941년 경상방산공립국민학교를 거쳐 해방 후 서울방산국민학교로 또 변경, 1970년에 폐교되어 학생들은 동대문, 효제, 영희, 교동국민학교 등으로 분산되었다.# 1992년에 방이동에 같은 이름의 학교가 개교하였다. 예전의 학교와 후신이 이름과 한자가 같으나, 구 방산국민학교의 이름은 중구 방산동에서 나온 것이고, 후에 개교된 방산초등학교는 방이동의 방자에 산을 붙여서 만든 이름이다. 구 방산국민학교의 학적은 관리하나 졸업기수는 계승하지 않았다.
- 서울삼청국민학교 (1940~1969)
1968년 1.21 사태와 삼청공원 폐쇄 등으로 인해 1969년 서울재동국민학교와 통폐합 형식으로 폐교.
- 서울서대문국민학교 (1945~1973)
1945년 일본인 학교였던 경성서대문공립심상소학교(1907년 개교)를 인수해 개교, 1973년 폐교 후 교사는 창덕여자중학교가 쓰게 되었는데 원래 그 학교 자리는 프랑스공사관이 있던 곳이다.
- 서울수송국민학교 (1922~1977, 2001 재개교)
구 교사 자리가 현 종로구청 위치에 있었으며 4.19 혁명 당시 시위에 재학생들이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폐교 후 학적은 서울교동초등학교로 인계되었다가[41] 2001년에 번동 옛 신진자동차운전학원 자리에 서울수송초등학교로 재개교하면서 역사는 이어가고 있으나 구 교사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니 사실상 별개의 학교다. 특이하게 현 학교가 졸업기수를 계승하고 있다.
- 서울신설국민학교 (1962~1977)
- 서울염강초등학교 (1994~2020)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2020년 1월 19일 25회 졸업식 이후 폐교 조치되었고, 재학생들은 인근의 가양초등학교, 염경초등학교로 전학갔다.
- 서울오곡초등학교 (1972~1999)
서울특별시 강서구 오곡동 551-1번지에 있었던 공립 초등학교였다. 그러나 학교가 있었던 동네가 김포국제공항 활주로 바로 옆이었고, 설상가상으로 1980년대에 김포공항 활주로가 오곡동 쪽으로 하나 더 개설되면서 소음피해가 심해졌다. 결국 1990년대 후반 공항동 쪽에 이주단지를 조성하여 주민들을 모두 이쪽으로 이주시켰고, 학교는 폐교되었다. 폐교 부지는 심형래가 불하받아 영구아트 본사를 세웠으나, 2011년 파산하면서 법원에 압류되었다. 이후 경매로 나와서 한 사업가에게 40억 원에 낙찰되었고, 2017년 기준 이 부지는 재활용품 처리 회사가 들어와 있다. 꽤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학교 건물은 큰 변화 없이 남아 있다.
- 서울일신국민학교 (1896~1973, 2000 재개교)
1896년 일본인 거류민단에서 만든 히노데(日出)심상고등소학교가 전신으로 현재의 충무로3가 60-1번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덕혜옹주의 모교로 유명하며,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인 학교로 있다가 1946년 서울일신국민학교로 개명된 후 1973년 폐교되었다. 폐교 이후 부지가 극동빌딩으로 재개발되었고,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소유주이던 극동그룹이 부도나 2003년 주력 기업이던 극동건설이 미국 론스타로 팔리자 맥쿼리센트럴오피스CR로 매각,# 2007년 웅진그룹이 극동건설을 사서 그룹 사옥으로 임차해 2013년까지 썼다. 2009년 맥쿼리가 국민연금공단에 건물을 팔아서 남산스퀘어 빌딩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2000년 성북구 종암동에 동명의 초등학교가 개교하여 구 일신국민학교의 학적은 관리하나 졸업기수는 계승하지 않았다. 빌딩 주차장 한 쪽에 구 일신국민학교 터라는 비석이 있다.
- 서울종로국민학교 (1945~1972)
1945년 일본인 학교였던 경성종로공립심상소학교(1911년 개교)를 인수해 개교, 1972년 폐교 시까지 총 27회 7,776명을 배출했으며 학적은 서울교동초등학교로 이관되었다.[42]
- 서울청계국민학교 (1895~1969, 1991 재개교)
서울 중구 수하동에 있던 학교로 1895년 소학교령 공포에 따라 '관립수하동소학교'로 설립. 도심의 혼잡함으로 인해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69년에 폐교, 학적은 서울남산국민학교에 넘어갔다가 1991년 노원구 중계, 하계동 신시가지 개발 시기 계획된 학교용지에서 서울청계초등학교로 재개교하였다.
- 서울효창국민학교 (1922~1974)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동3가 115번지에 있었던 공립 국민학교.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1974년 폐교되면서 학생들은 서울금양초등학교, 서울청파초등학교 등 인근 다른 학교들로 분산 배치되었고 폐교 부지는 숙명여자대학교에 불하되어 캠퍼스 확장 부지로 활용되었다. 현재 숙명여대 제2창학캠퍼스 및 도서관이 들어서 있는 자리이다.
- 성심국민학교 (1962~1982)
성심수녀회에서 운영하던 가톨릭계 사립학교로, 소수정예의 여학교였다. 성심국민학교뿐 아니라 초창기 성심학교들은 소수정예의 유복한 집 딸들이 많이 다녔다. 지금은 성심여자중학교와 성심여자고등학교만 남아 있다.
8.2.1.2. 부산광역시
- 부산충무초등학교 (1952~1998)
부산시 서구 토성동에 있던 초등학교로 도심공동화 현상에 따른 학생 수 감소로 1998년 인근 부산토성초등학교와 통폐합되고 현재 구 교사는 부산광역시 서구청이 그 자리에 옮겨와 활용하고 있다.
- 위봉초등학교 (2003~2020)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동에 위치하였던 초등학교. 이 학교는 특이하게도 2003년이라는 꽤 늦은 시기에 반여초등학교에서 분리되며 개교하였으나 학생 수의 심각한 감소로 17년의 짧은 역사를 뒤로 한 채 2020년 반여초등학교와 도로 통합되며 폐교하였다. 현재 위봉초등학교 건물은 반여초등학교에서 사용하고 있다.
8.2.1.3. 인천광역시
- 동검국민학교 (1947~1989)
경기도 강화군(현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동검리 589번지에 있었던 공립 국민학교였다. 섬마을의 고령화에 따른 학생수 감소로 1989년 폐교된 후에도 학교 건물은 한동안 남아 있었으나 야외 캠핑장이 들어서면서 2009년 철거되었다.
- 효열국민학교 (1965~1995)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도화동 235-9 소재. 원래 선인학원 산하였으나 1994년 공립화, 1995년 폐교.
8.2.1.4. 대전광역시
- 대전보덕초등학교 (1998~2010)
인근의 대전두리초등학교 개교와 통학구역 대폭 축소, 주민들의 지역 이기주의 현상으로 인해 학생수가 급감하여 희생양이 된 케이스. 폐교 후 구 교사는 리모델링하여 한국가스기술공사 사옥으로 사용되고 있다.
- 대전원동국민학교 (1906~1980)
당시 충청남도 대전시(현 대전광역시) 동구 원동에 있었던 공립 국민학교. 도심공동화 현상으로 1980년 폐교된 후 구 교사는 30여 년간 대전광역시 동구청 청사로 활용되었다. 동구청이 2012년 가오동으로 이전하면서 구 원동국민학교 교사는 철거되고 그 자리에 '대전청소년위캔센터'가 세워졌다.
8.2.1.5. 울산광역시
- 온산국민학교 (1926~1993, 2003 재개교)
경상남도 울산군 온산면(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대정리 113-2번지에 있었던 공립 국민학교. 주변이 비철금속 산업단지로 개발되고 주민들이 이주하면서 1993년 폐교되고 학교 부지는 고려아연에 불하되어 공장부지로 편입되었다. 이후 2003년 온산읍 덕신리에 온산초등학교로 재개교하면서 역사는 이어가고 있으나 구교사의 흔적은 전혀 없어 사실상 별개의 학교다. 이곳 역시 복교로 취급되어 현 학교가 졸업기수를 계승하고 있다.
8.2.1.6. 세종특별자치시
이하 내용은 <금남면향토지(1995)> p694~706 참고.- 금석초등학교 (1960~2003)
1950년 충남 연기군 금남면 봉기리에서 영대국민학교 산하 봉기분교로 시작해 1957년 석교리로 이전, 1960년 금석국민학교로 승격했다. 2003년 금남초등학교로 통폐합.
- 영대초등학교 (1947~2003)
1934년 영대간이학교로 시작해 1945년 금남국민학교 산하 분교로 개편, 1947년 영대국민학교로 승격했다. 이 역시 2003년 금남초등학교로 통폐합.
8.2.1.7. 경기도
- 가평국민학교 경반분교장 (1960~1984): 화전민 자녀들을 위해 칼봉산 계곡에 설립한 분교. 화전정리법 시행으로 화전농업이 금지되어 칼봉산에 거주하던 화전민들이 이주하면서 학생수가 줄어 폐교되고 이후 은행원 출신의 민간인에게 매각되어 현재는 캠핑 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 가평정희여학교 (1910~1937)[45]
- 고정초등학교 우음분교장 (1949~1997): 화성시 송산면 고정리 1250-4 소재.[46]
- 마산국민학교 어도분교장 (1953~1993): 화성시 송산면 고포리 826-1 소재.[47]
- 마산초등학교 형도분교장 (1961~1999): 화성시 송산면 독지리 산 200-1 소재. 원래 분실 형태로 시작하여 1967년 분교로 승격했으며 1999년 본교로 통폐합.[48]
- 보장초등학교 (1967~2015):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 424 소재.
- 비봉국민학교 유포분교장 (1960~1992): 화성시 비봉면 유포리 307 소재.[49]
- 수촌국민학교 (1969~1995):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산 7-5 소재. 장안국민학교로 통폐합된 후 그 부지가 국유림 지역에 속한 탓에 산림청으로 반환.[50]
- 영평초등학교 (1907~2022): 포천시 영중면 영평리 240 소재. 포담초등학교로 통폐합된 후 교사는 2025년 '포천38 문화예술창작소'로 리모델링.
- 우정국민학교 국화분교장 (1953~1995): 화성시 우정면 국화리 21 소재.[51]
- 정문국민학교 (1948~1994): 화성시 정남면 계향리 411 소재. 정남국민학교에 통폐합.[52]
- 조종국민학교 대보분교장 (1960~1995): 가평군 하면 대보리 157 소재. 1960년 상면국민학교 대보분실로 시작해 1963년 대보분교, 1970년 대보국민학교로 각각 승격했으나 학령인구 감소로 1983년 상면국교 산하 분교로 격하, 1987년 조종국교에 이관되었다가 1995년 본교로 통폐합.[53]
- 조종국민학교 상판분교장 (1954~1991): 1954년 운악국민학교 상판분실로 시작해 1967년 분교로 승격, 1991년 조종국교로 통폐합.[54]
- 조종초등학교 운학분교장 (1936~1999): 1936년 조종공립보통학교 부설 간이학교로 시작해 1943년 운악공립국민학교로 승격, 1978년 문교부 지정 급식시범학교와 1987년 가평군교육청 지정 학력향상 시범학교로 각각 운영되었으나 학령인구 감소로 1993년 조종국교 산하 분교로 격하되어 1999년 본교로 통폐합.[55]
- 청평국민학교 양진분교장 (1936~1994): 1936년 복장포공립보통학교 양진간이학교로 개교, 1943년 양진공립국민학교로 승격했으나 1983년 청평국교 산하로 격하되었다. 1994년 본교로 통폐합되고 교사는 2004년 철거 후 개수되어 청평중-공업고등학교 카누부 합숙소로 쓰다 현재 한국체육대학교 태권도교육원 및 경기도교육청 수상스포츠 꿈의학교로 사용 중.
- 청평국민학교 회곡분교장 (1962~1994): 1962년 미원국민학교 산하 분교로 출발해 1969년 회곡국민학교로 승격, 학령인구 감소로 1984년 청평국교 산하 분교로 격하되었다가 1994년 본교로 통폐합.
- 청평초등학교 삼회분교장 (1949~2001): 1949년 수입국민학교 삼회분실로 시작해 1971년 분교로 승격, 197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청평국민학교로 편입되었다. 2001년 본교로 통폐합.[57]
- 함산국민학교 (1956~1995): 화성시 서신면 장외리 2 소재. 서신국민학교로 통폐합.[58]
8.2.1.8. 전북특별자치도
- 고남초등학교 (1967~1998):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권포리 1005 소재. 1998년 운봉초등학교로 통폐합.[59]
- 능교국민학교 종성분교 (1958~1995): 능교국민학교로 통폐합.
- 부절국민학교 (1960[60]~1996):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동면 부절리 소재. 1957년 신동국민학교 산하 분교로 시작해 1960년 부절국민학교로 승격, 1971년 지역 주민들의 노력으로 부절리 마을과 학교 사이에 '사정교'라는 다리가 생겨 통학이 편해졌으나 1996년 산동초등학교와 통폐합 형식으로 폐교되었다. 교육부 측 자료에 의하면 부지는 현재 매각 상태.#
- 산동국민학교 사자평분교 (1966~1996): 일명 '고사리분교'로 1966년 산하 분실로 개교하여 1969년 승격, 1970년대 이후 산업화로 주민들이 이주하여 1979년 9명, 1984년 2명으로 줄다 못해 1년간 휴교 상태였다가 1985년 3명으로 복교했지만 1996년 폐교. 1999년 표충사의 사자평 일대 정비 사업으로 철거.#
- 산외초등학교 종산분교 (1957~1999): 구 종산국민학교. 산외초등학교로 통폐합.[61]
- 서지말초등학교 (1965~2000): 개교 당시부터 신태인북초등학교(1996년 이전 신태인북국민학교)였으나 1998년 서지말초등학교로 개칭,# 2000년 신태인초등학교로 통폐합.[62]
- 신태인중앙초등학교 (1949~2000): 이하 동일.#
- 신풍초등학교(정읍) (1960~2000): 영원초등학교로 통폐합.#
- 운남초등학교 (1963~1999):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행정리 13 소재. 1957년 운봉국민학교 운남분교로 시작해 1963년 승격, 1999년 운봉초등학교로 통폐합.[63]
- 운성국민학교 (1963~1994):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매요리 335번지 소재. 1961년 운봉국민학교 운성분교로 시작해 1963년 승격, 1994년 운봉국민학교로 통폐합.[64]
- 운천초등학교 (1942~2004):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주촌리 산55 소재. 1934년 운봉공립보통학교 부설 고기간이학교로 시작하여 1942년 승격, 2004년 운봉초등학교로 통폐합.
- 인화국민학교 대정분교 (1971~1993): 사매국민학교로 통폐합.
- 인화초등학교 (1951~1997):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사매면 인화리 365 소재. 1950년 사매국민학교 산하 분교로 시작해 1951년 승격, 1989년 벽지학교 지정 후 1997년 사매초등학교에 통폐합.[65]
- 화호초등학교 (1909~2000): 신태인초등학교로 통폐합.#
8.2.1.9. 전남광주통합특별시
- 금정국민학교 한대분교장 (1944~1992): 1941년 한대리 간이학교로 시작해 1944년 영암남공립국민학교로 승격, 1946년 '영암남국민학교'로 정식 개교했다. 1989년 금정국교 산하 분교로 격하되고 1992년 본교로 통폐합.[67]
- 금정초등학교 금정북분교장 (1946~1998): 1946년 금정북국민학교로 시작했으나 1994년 금정국교 산하 분교로 격하, 1998년 본교로 통폐합.
- 금정초등학교 청룡분교장 (1943~1999): 1934년 세류간이학교로 개교하여 1943년 금정남공립국민학교로 승격, 1989년 금정국교 산하 분교로 격하되고 1999년 본교로 통폐합.[68]
- 시종초등학교 신학분교장 (1961~2011): 1961년 시종국민학교 산하 분교로 시작해 1964년 신학국민학교로 승격, 1985년 병설유치원까지 차렸다. 1996년 신학초등학교로 개칭했다가 학령인구 감소로 2000년 시종초 산하 분교로 격하 후 2011년 본교로 통폐합.[69]
- 시종초등학교 종남분교장 (1936~2013): 1936년 신흥간이학교로 시작해 1943년 신흥리서 시종북공립국민학교로 승격, 1944년 개교했다. 1948년 종남공립국민학교를 거쳐 1949년 종암국민학교로 개칭 후, 1957년 금지리로 이전하고 1981년 병설유치원까지 차렸다. 그러나 학령인구 감소로 2006년 병설유치원을 없애고 2011년 시종초 산하 분교로 격하, 2013년 본교로 통폐합.
- 영암국민학교 학산분교장 (1960~1996): 1960년 영암국민학교 개신분교로 시작해 1967년 학산국민학교로 승격, 1984년 병설유치원까지 차렸다. 1994년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영암국교 산하 분교로 격하 후 1996년 영암초에 통폐합.[70]
- 영암동국민학교 (1945~1992): 1943년 영암서공립국민학교(현 영암초등학교) 장암분교로 시작해 1947년 영암북국민학교로 승격, 1957년 영암동국민학교로 개칭했다. 1992년 영암국교와 통폐합.[71]
8.2.1.10. 경상북도
- 공서초등학교 (1949~2013): 옥산초등학교로 통폐합.#
- 공서초등학교 성문분교장 (1948~1999): 1948년 성인 공민학교 형태로 시작해 1954년 효곡공립국민학교로 설립, 1962년 공서국민학교 효곡분교로 개편되었다가 1969년 성문국민학교로 독립했다. 그러나 학령인구 감소로 1981년 공서국교 산하 성문분교로 격하되어 1999년 옥산초등학교로 통폐합되었다.[73]
- 낙서국민학교 서원분교장 (1962~1994): 원래 내서서부국민학교로 시작해 1983년 낙서국민학교 산하 서원분교장으로 격하, 1994년 본교로 통폐합.[74]
- 내서초등학교 (1935~1999): 1987년 병설유치원도 차렸으나[75] 1999년 상주초등학교에 통폐합. 건물은 2000년 상주학생문화예술체험학습장으로 조성되어[76] 2001년 개장 후 2019년까지 사용되었고, 2011년부터 상주유아교육체험센터로도 활용 중.#
- (구)단밀국민학교 (1927~1992): 속암국민학교(현 단밀초등학교)로 통폐합.#
- 득수국민학교 (1966~1993): 상주시 모서면 득수리 187 소재. 원래 유방국민학교로 개교되어 1982년 해당 명칭으로 개칭, 1993년 모서국민학교에 통폐합.[77]
- 매호초등학교 (1945~1999): 원래 사벌동부국민학교로 시작해 1973년 해당 명칭으로 변경, 1981년 병설유치원도 차렸다.[78] 1999년 사벌초등학교에 통폐합된 후 2002년 상주예술촌으로 조성.#
- 산동초등학교 송백분교 (1936~2010): 산동초등학교로 통합된 후# 현재는 송백자연생태학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 숭인국민학교(상주) (1970~1992): 1967년 화동국민학교 판곡분교로 시작해 1970년 판곡국민학교로 승격, 1971년 숭인국민학교로 개칭했다. 1982년 병급 벽지학교로 지정되고 1993년 화동국교로 통폐합.[79]
- 영동국민학교 동성분교장 (1963~1998): 상주시 함창읍 하갈리 238 소재. 원래 금곡국민학교로 시작해 1966년 동성국민학교로 개칭, 1986년 라급지 벽지학교로 지정되고 1991년 영동국교 산하 분교로 격하되어 1996년 함창초등학교로 통폐합.[80]
- 위성국민학교(의성) (1960~1997): 구천초등학교로 통폐합.#
- 창락초등학교 (1937~1999): 풍기초등학교로 통폐합.#
- 평은국민학교 영은분교 (1965~1995):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평은리 1110-1에 있던 초등학교 분교장. 1964년 이정선 평은교회 목사 등 지역 유지들이 기성회를 만들고 충주 석씨 문중 땅을 팔아 재원을 마련해서 '영은사립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아 1965년에 개교했지만 재정난으로 1968년 공립화되어 영은국민학교가 되었다. 1994년 평은국민학교 산하 분교로 격하된 후 1995년에 본교로 통폐합되고 건물과 부지는 한동안 방치되어 있었으나, 본교가 있던 금광리 지역이 영주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본교가 영은분교 자리로 이전했다.#
8.2.1.11. 경상남도
- 사량초등학교 내지분교장 (1947~2011): 1960년 내지국민학교로 승격되었다가 1993년 산하 분교로 재격하, 2011년 폐교되어 '사량도천문대'로 활용되었지만 2020년대 이후 폐쇄.#[81]
- 사량초등학교 돈지분교장 (1946~2012): 1951년 돈지국민학교로 승격해 1985년 병설유치원도 차렸으나 1991년 사량국민학교 산하 분교로 격하, 2012년 폐교.[82]
- 사량초등학교 수우도분교장 (1946~2008): 1946년 수우도국민학교로 시작했으나 1982년 돈지국민학교 산하로 격하, 1991년 돈지국교도 사량국민학교 산하로 격하되자 그쪽으로 갔다가 2008년 폐교.[83]
- 사량초등학교 읍덕분교장 (1967~2012): 1972년 읍덕국민학교로 승격되어 1985년 병설유치원도 차렸으나, 1998년 사량초등학교 산하 분교로 재격하되고 2012년 폐교.[84]
- 설천초등학교 덕신분교 (1936~2011): 1936년 설천공립보통학교 산하 간이학교로 시작해 1943년 덕신공립국민학교로 승격, 1991년 시범 유치원을 운영했다. 1999년 설천초 산하 분교로 격하되고 2011년 본교로 통폐합.
- 원량초등학교 노대분교장 (1927~2012): 원래 노대 영흥강습회로 시작해 1945년 노대국민학교로 정식 개교, 1985년 병설유치원도 차렸으나 1996년 원량초등학교(현 욕지초등학교) 산하 분교로 격하되고 1998년 병설유치원도 폐원했다. 2012년 폐교.[85]
- 원량초등학교 두남분교장 (1946~2014): 원래 두남국민학교로 시작했으나 1984년 노대국민학교 산하로 격하, 1996년 노대국교가 원량초등학교 산하 분교로 격하되자 그쪽으로 편입되었다가 2014년 폐교.[86]
- 원량초등학교 두미분교장 (1936~1999): 1936년 간이학교 형태로 시작해 1944년 두미국민학교로 승격, 1984년 노대국민학교 산하 분교로 격하되었다가 1996년 노대국교 역시 원량초등학교 산하 분교로 격하되자 그쪽으로 편입되었으나 1999년 폐교.[87]
- 원량초등학교 옥동분교장 (1959~2008): 1961년 옥동국민학교로 승격되어 1981년 병설유치원도 차렸으나 1998년 원량초등학교 산하로 격하, 2008년 폐교.[88]
- 원량초등학교 우도분교장 (1934~2002): 처음에는 강습소 형태로 시작해 1946년 우도국민학교로 정식 개교, 1983년 연화국민학교 산하 분교로 격하되었다가 1992년 연화국교 역시 원량국민학교 산하 분교로 격하되어 그쪽으로 편입, 2002년 폐교.[89]
- 하소국민학교 소매물도분교장 (1961~1996): 원래 매물도국민학교 산하 분교였으나 1988년 매물도국교가 하소국민학교 산하 분교로 격하되자 그쪽으로 편입.[90]
- 한산초등학교 두억분교장 (1962~2003): 원래 두억국민학교로 시작해 1984년 병설유치원도 차렸으나 1997년 한산초 산하 분교로 격하, 2003년 본교로 통폐합.[91]
- 한산초등학교 매물도분교장 (1963~2005): 원래 매물도국민학교로 개교했으나 1988년 하소국민학교 산하 분교로 격하, 1999년 하소초 역시 한산초등학교 산하 분교로 격하되자 그쪽 산하가 되었다가 2005년 본교로 통폐합.[92]
- 한산초등학교 비진분교장 (1937~2012): 원래 한산공립심상소학교 부설 비진간이학교로 시작해 1944년 비진국민학교로 승격했다가 1994년 하소국민학교 산하로 격하, 1999년 하소초 역시 한산초등학교 산하 분교로 격하 후 그쪽으로 가다 2012년 본교로 통폐합.[93]
- 한산초등학교 염호분교장 (1961~2001): 1961년 여차국민학교로 개교해 1978년 염호국민학교로 개칭, 1989년 한산국민학교 산하 분교로 격하되고 2001년 본교로 통폐합.[94]
- 한산초등학교 용호분교장 (1940~2012): 처음에는 간이학교 형태로 시작해 1943년 용호국민학교로 승격, 1991년 해양수련장도 차렸으나 1998년 한산초 산하로 격하되고 2012년 본교로 통폐합.[95]
- 한산초등학교 추봉분교장 (1956~1999): 원래 추봉국민학교였으며 1981년 병설유치원도 차렸으나 학령인구 감소로 1994년 하소국민학교 산하로 격하, 1999년 3월 하소초가 한산초등학교 산하 분교로 격하되자 그쪽으로 갔다가 9월 폐교.[96]
- 한산초등학교 하소분교장 (1959~2010): 원래 한산국민학교 산하 분교로 시작해 1959년 하소국민학교로 승격, 1999년 한산초등학교 분교로 재격하되고 2010년 그쪽으로 통폐합.[97]
8.2.1.12. 강원특별자치도
- 봉덕초등학교 (1946~2005): 횡성군 청일면 갑천리 360에 있던 초등학교. 2005년에 폐교된 이후 학교 부지는 인삼 농장으로 추정되는 농업용지로 사용 중이다.
- 현천초등학교 (1942~1999):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둔내면 현천리 1103번지에 있었던 초등학교.[98] 1999년 3월 1일 둔내초등학교에 통합되면서 폐교된 후 학교 건물이 한동안 남아 있다가 철거되고 그 자리에 2015년 현천고등학교가 개교했다.
- 삼화초등학교 삼흥분교장 (1944~2001): 특수학교로 사용될려다가 무산되었다.#
- 속사초등학교 계방분교장 (1963~1998): 반공소년 이승복의 모교로 유명하며 1998년 속사초등학교에 통폐합, 이후 이승복기념관 내 부속 시설로 활용 중.
- 평창무이초등학교 (1956~1999):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무이리에 위치. 1956년 봉평국민학교 산하 분교로 개교했으며 1966년 무이국민학교로 독립, 1999년 봉평초로 통폐합. 현재는 '무이예술관'이라는 곳으로 운영 중이다.
8.2.2. 중학교
8.2.2.1. 서울
- 경기중학교 (1900~1972): 지금은 경기고등학교만 남아 있다. 한국 최고의 명문 남자중학교였다. 공부를 잘 하는 남학생은 경기중과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로 진학하는 게 당연시되었으며, 이를 KS 마크라고도 했다. 폐교 후 남은 교재와 교구는 봉천중학교로 이관되었다.
- 경기여자중학교 (1908~1971): 지금은 경기여자고등학교만 남아 있다. 한국 최고의 명문 여자중학교였다. 위의 경기중과 마찬가지로, 여학생은 경기여중-경기여고-서울대 코스가 KS 마크였다. 폐교 후 남은 교재와 교구는 강서중학교로 이관되었다.
- 계성여자중학교 (1944~1987): 학교법인 가톨릭학원(당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지재단)에서 운영하던 여중. 폐교되고 계성여자고등학교만 남았고, 명동성당 옆에 있던 계성여고는 2016년부터 성북구 길음동으로 이전하여 남녀공학으로 전환, 계성고등학교가 되었다.
- 공진중학교 (1993~2020): 학령인구 감소로 인근의 염강초등학교와 함께 폐교됐다. 기존의 재학생들은 대부분 성재중학교로 전학조치됐고, 일부 학생들은 경서중학교로 전학갔다. 폐교 소식에 대한 재학생의 인터뷰를 재구성한 기사도 있다.
- 마포여자중학교 (1968[99]~1986): 현 서울여자중학교의 옛 명칭과 비슷하나 무관한 곳으로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와 함께 한국전력학원에서 운영했으나 한국전력학원이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 운영에 전념하기 위해서 수도중학교와 함께 삼문학원(현 미림학원)에 넘겨버렸다. 하지만 대학교가 탐났던 삼문학원 측에서는 국제대학(현 서경대학교)을 학교 인가만 인수해서 중학교 건물을 대학시설로 유용하기 위해 1986년에 폐교했으나 이마저도 제대로 풀리지 않자 결국 국제대학을 명지학원에 넘겨버렸고, 그걸 넘겨받은 명지학원은 국제대학 인가만 가지고 남가좌동으로 이전시키고, 용도를 잃어버린 공덕동 부지는 매각해서 공덕 현대아파트를 지어버렸다.
- 명지여자중학교 (1969~1997): 명지중학교에 통합.
- 미림중학교 (1979~1993) : 학교법인 삼문학원(현 미림학원)에서 운영하던 중학교로 1979년에 미림여자고등학교와 동시에 개교했으나 1990년을 끝으로 폐교가 결정된 뒤 1993년 2월 28일에 마지막 졸업생들이 모두 졸업하면서 최종적으로 폐교되었으며, 폐교 이후 미림중학교의 시설은 1991년에 개교한 미림여자정보과학고등학교가 사용하게 되었다.
- 상문중학교 (1973~1975): 지금은 상문고등학교만 남아 있다.
- 서대문중학교 (1968~1992): 서대문중이 폐교된 뒤 한성과학고등학교가 개교되었다. 1968년 영천중학교로 개교하여 1972년 교명이 서대문중학교로 변경되었기 때문에, 1972년 이후의 서대문중학교는 이 학교를 일컫는다.#
- 서울중학교 (1946~1971): 지금은 서울고등학교만 남아 있다. 1951년에서 1953년까지 교명이 서대문중학교였다가 서울중학교로 다시 환원된 역사가 있어 1950~60년대 글의 서대문중학교는 서울중학교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폐교 후 남은 교재와 교구는 신림여자중학교로 이관되었다.
- 수도중학교 (1924~1984): 위의 마포여자중학교,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와 함께 한국전력학원에서 운영했으나 한국전력학원이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 운영에 전념하기 위해서 마포여자중학교와 함께 삼문학원(현 미림학원)에 넘겨버렸다. 하지만 대학교가 탐났던 삼문학원 측에서는 국제대학(현 서경대학교)을 학교 인가만 인수해서 중학교 건물을 대학시설로 유용하기 위해 1984년에 폐교했으나 이마저도 제대로 풀리지 않자 결국 국제대학을 명지학원에 넘겨버렸고, 그걸 넘겨받은 명지학원은 국제대학 인가만 가지고 남가좌동으로 이전시키는 바람에 용도를 잃어버린 공덕동 부지는 매각해서 마포 현대아파트를 지어버렸다.
- 은주여자중학교 (1981~1994): 학교법인 성한학원(현 대일학원) 산하에 속해 있던 여중. 국제대학이 성한학원에 인수되고 정릉으로 이전해 오면서 시설 확보를 위해 폐교되었다. (현 서경대학교 은주관)
- 이화여자중학교 (1886~1971): 이화여자고등학교만 남았고, 1992년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가 설립되어 이화여고와 교정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폐교 후 남은 교재와 교구는 삼신중학교로 이관되었다.
- 장훈중학교 (1907~2000): 지금은 장훈고등학교만 남아 있다.
- 진명여자중학교 (1906~1987): 지금은 진명여자고등학교만 남아 있다.
8.2.2.2. 인천·경기도
- 고양여자중학교 (1970~2006): 옛 학교법인 고양학원 산하로 폐교 후 동일 재단에 의해 고양예술고등학교가 개교되었다.
- 기흥중학교 (1990~2019):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에 위치해 있던 중학교로 1990년 개교했다. 도심 공동화로 인한 입학생 수 감소로 2019년 2월 폐교되었다. 구 교사는 리모델링을 거쳐 2021년 '기흥평생학습관'으로 재탄생했으며 운동장 터는 2022년 착공을 개시했지만 용인시와 원도급업체, 하도급업체 간 공사비 지급 등을 두고 소송과 토지 인도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은 탓에 2023년 6월부터 공사 중단 상태였다. 이에 시청 측이 원/하도급사와 다각도 검토 및 협상을 진행하여 현장 유치권 행사 중이던 하도급사가 용인시 및 후속 시공사와 합의 끝에 이를 철회, 2025년 공사를 재개하여 2026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갈중학교와 마주보고 있었으며 공세동의 기흥초등학교, 신갈동의 기흥고등학교와는 이름만 같은 기흥일 뿐 관련이 없다.[101] 참고로, 용인시에서는 그나마 역사가 있는 학교였던지라 역사를 이어가는 차원에서 기흥구 1학군 지역에 중학교가 새로 신설된다면 그곳에 "기흥중학교 명칭을 우선 부여하여 역사를 이어간다"고 한다.
- 인광중학교 (1950~1987): 인천광역시 서구 검암동의 현재 서인천고등학교 부지에 있었던 사립중학교. 1950년 '인천영화중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했다가 고려중학교를 거쳐 인광중학교로 명칭이 바뀌었다. 1984년 인광학원에서 정파학원으로 정관이 변경된 후 1985년 서인천고등학교가 개교하면서 신입생 모집이 중단되었고 이후 1987년 폐교되었다.
8.2.2.3. 비수도권
- 곡성죽곡중학교 (1971~2005): 곡성중학교와 통폐합. 이 학교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죽곡중학교 삼십년사(2001)>서 확인 가능.
- 곡성여자중학교 (1971~2004): 이하 동일.
- 광주서중학교 (1920~1972)
- 구암여자중학교 (1984~2017): 구암중학교와 통합.
- 남일중학교 (1971~2009): 농촌인구 감소로 인한 이유로 2009년 폐교되었다.
- 단산중학교 (1954~2017): 현재는 기업 연수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 아우내중학교 (1967~2005): 옛 학교법인 천안중앙교육재단 소속 사립 중학교. 인구 감소로 병천중학교와 통폐합되었다.#
- 알로이시오중학교 (1976~2016): 알로이시오전자기계고등학교와 더불어 (재)마리아수녀회[103] 소속의 중학교로 학교 특성상 외부 학생들의 유입이 없었고, 소년의집 원생이 줄어듦에 따라 자연스레 재학생 수 감소로 폐교되었으며 2년 후 알로이시오전자기계고마저 폐교되었다.
- 진해동중학교 (1952~2002): 동진중학교와 통폐합.#
- 진해서여자중학교 (1952~1987)#: 진해세화여자고등학교와 같은 학교법인 충무학원 산하 사립 여자중학교.
- 혜광중학교 (1955~1976): 부산 혜광고등학교와 같은 건물을 쓰던 중학교로 고교 평준화를 앞두고 혜광고등학교가 평준화 대상이 되면서 혜광중학교는 시설 미비로 1973년 까지만 신입생이 배정되고 1974년 이후 신입생 배정이 중단되면서 마지막 입학생들은 마지막까지 혜광고등학교 건물에 더부살이 하다가 이들이 최종적으로 졸업하는 1976년을 끝으로 폐교되었다. # #
8.2.3. 고등학교
- 경일고등학교(서울) (1968~1970):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지금의 서경대학교 자리에 있었던 사립고등학교로 1968년에 개교하여 형제학교로 경일중학교를 두고 있었으나 무리한 차입으로 인한 학교법인의 파산으로 개교한 지 겨우 2년만인 1970년 5월 11일에 경일중학교와 함께 폐교되었으며 파산으로 인하여 학기 중에 학교가 폐교된 정말 특이한 케이스이다.# 폐교 당시 학생들은 주변 학교로 특별 전편입이나 재배정이 이루어지면서 전원 구제 되었으나 교직원들은 모두 실직하였다. 그 이후로는 사립학교가 파산[104]하여 폐교된 사례가 사실상 전무하며 대부분 타 재단이나 기업으로 인수되게 중재하였다. 폐교 이후 경일중고등학교 건물은 3년간 방치되다가 1973년 성한학원이 매입하여 1988년까지 대일고등학교 건물로 쓰이다가 1988년 이후로는 서경대학교가 들어와서 쓰고 있다. (현 서경대학교 대일관)
- 명지여자고등학교 (1972~1997): 명지고등학교에 통합.
- 상주농잠고등학교 (1921~1971)
- 철도고등학교 (1967~1986): 자세한 내용은 한국철도대학 문서 참고.
- 체신고등학교 (1953~1964): 이 학교의 근원은 1897년 세워진 우무학당과 전무학당이었으나 1905년 '한일통신합동운영협정'에 의해 폐지, 한일합병 후인 1913년 조선총독부 체신국 감리과에 양성계를 설치하고 1918년 체신이원양성소로 개편했다. 이후 창성동으로 옮겼다가 1937년 용산구 원효로3가 1번지에 새 교사를 세워 이전, 1945년 8.15 광복 후 1946년 '체신학교'로 개편되었다. 1953년 4월 부산 피난 당시 고등부를 떼내 '체신고등학교'로 개편되어 휴전 후 환도했으나 1962년 체신공무원훈련소(현 우정인재개발원) 신설 후 1964년 폐교됐다.
폐교 후 건물은 그대로 국립전파연구원 사옥으로 활용되다가 전파연구원이 나주시로 이전하면서 한동안 폐건물 상태였다. 2022년부터 그 자리에 원효로3가 역세권 청년주택(효성 해링턴 플레이스)을 신축, 2026년 11월 완공을 목표로 하는 중.
- 수송전기공업고등학교 (1940~1978): 숙명여자고등학교, 중동고등학교와 함께 서울 중구 수송동에 위치했다. 중동고등학교와는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1960년에 두 학교 학생 간의 충돌(투석전, 중동고생의 담벼락 철거 시도 등)로 조선일보에 크게 보도되었다. 중동고등학교에 인수돼 중동전기공업고등학교로 교명이 변경된 적이 있다. 해당 학교법인은 이후에 대원고등학교(서울)를 설립하였다.
- 서울성신고등학교 (1928~1983): 가톨릭 신부를 양성하던 소신학교.[105] 폐교된 후 성신중고등학교의 시설은, 이웃해 있던 가톨릭계 남학교인 동성중학교와 동성고등학교에서 흡수했다. 소신학교가 모두 폐교된 후 한국 가톨릭에서는 교구마다 예비 신학생 모임을 만들어, 대신학교[106]에 입학해 사제가 되길 지망하는 남학생들과 남자 청년들을 관리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 동성고에서는 예비신학생 학급을 개설하여, 기숙사 생활을 시키고 기초 신학 및 어학을 가르치는 등, 부분적으로 소신학교 과정을 부활시켰다.
- 성요셉여자고등학교 (1962~2016): 전라남도 강진군에 있던 가톨릭계 여고. 2016년 졸업식을 끝으로 폐교되었다. 2018년에 다문화 대안학교인 성요셉상호문화고가 구 성요셉여고의 부지와 건물을 활용하여 개교했으나 2025년 폐교.
- 알로이시오전자기계고등학교 (1976~2018): 부산광역시 서구 암남동 소재. (재)마리아수녀회 산하 가톨릭계 미션스쿨로서 '알로이시오 소년의 집'으로 출발해 지난 반세기 동안 부모 없는 고아들에게 무상교육을 해왔던 '알로이시오학교'가 2018년 3월 1일부로 폐교되었다. "알로이시오 소년의 집"에서 자라온 아이들이 학교 재학생들이었는데 해마다 학생 수가 줄어듦에 따라 2018년 폐교를 결정했다고 한다.[107] 뉴스 영상 부산에서는 2004년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 이후 14년 만에 이례적인 고등학교의 폐교인데 해당 위치는 서구와 사하구를 잇는 길목에 위치해 있으며 학교 특성상 일반모집을 하지 않아서 외부의 중학생들의 진학이 거의 없다 보니 학생 수가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2018년 2월 9일 졸업식 당시 졸업생 수는 69명에 불과하였다.
- 양백상업고등학교 (1977~2006):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에 있었던 산업체 부설 고등학교로 모기업인 대농의 부도로 인해 2006년 25회 졸업식을 끝으로 폐교되었으며, 2010년에 솔밭초등학교가 과거 양백상업고등학교 부지에 들어서며 개교했다. 해당 학교와 관련된 사항은 2022년 KBS 청주방송총국이 만든 다큐 <양백의 소녀들>서 다루어졌다.
- 예인음악예술고등학교 (2000~2007):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 인수리에 있었던 특성화고이다. 인구 감소로 폐교된 인수초등학교 자리에 지어졌다. 설립 당시에는 피아노 전문 교육기관으로 명칭도 예인피아노고등학교였으나, 점차 피아노뿐 아니라 관악·현악·성악·작곡·재즈피아노·뮤지컬·가야금까지 다양하게 가르쳤다. 전국에서 학생들을 모집하였으며 2003년 2월 1회 졸업생 20명을 배출하였다. 하지만 계속 입학생이 적어지고 2007년 학교에 재학 중이던 1학년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였다. 그 이유는 교원 수 미달과 열악한 학교 시설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인근 학교로 전학을 희망하였고, 결국 학교는 폐쇄되었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시설이 상당히 나빴다. 기숙사에 쥐똥이 나오고 악취가 났다고. 그리고 어제 저녁, 다음날 아침, 점심 등 같은 급식 반찬이 나와서 학생이 선생님께 건의했으나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욕을 했다고 한다. 심지어 여학생을 뇌진탕 시키는 등 엉망이다. 교장은 비난을 직격탄으로 맞고 있다. 여기에 들어가면 이 학교의 실체를 알 수 있다.
- 백수고등학교 (1984~2000)
- 양북고등학교 (1974~2003)
- 비사벌예술고등학교 (1970~1980):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동완산동#에 소재했던 예술고등학교로, 호남 최초의 예술고등학교이자 지방에서 두 번째로 개교한 예술고등학교였다. 1970년 개교 당시에는 각종학교인 비사벌예술학교였으나 1975년~1977년경에 정규 고등학교로 승격했던 것으로 보이며, 1980년 2학기 즈음에 폐교되었다.# 폐교 이후 학교 건물은 연립주택으로 개조되었으며, 해당 학교법인은 1980년에 전주예림고등학교(현 호남제일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8.2.4. 고등교육기관
- 대전사범학교 (1943~1963)
- 상주잠업초급대학 (1965~1970): 폐교 후 상주농잠고등전문학교로 이관.
- 인천체육전문대학 (1972~1979): 인천공업전문대학으로 통폐합.
8.2.5. 각종/공민학교
- 중앙고등공민학교 (1959~1973): 옛 학교법인 성산학원 산하 고등공민학교.
- 중앙여자상업전수학교 (1966~1980): 재단 동일.
8.2.6. 특수학교
- 광주인화학교 (1961~2012)
광주 인화학교 사건 참조.
9. 창작물에서
인구 감소로 인한 폐교는 나라 막론하고 흔하기에 폐교를 소재로 한 창작물 등을 종종 볼 수 있다. 걸즈 앤 판처, 러브 라이브!/애니메이션, 러브 라이브! 선샤인!!/애니메이션, 사쿠라 트릭, 블루 아카이브의 아비도스 고등학교 등. 이로 인해 폐교 위기 학교에 대해 스쿨 아이돌 드립을 치기도 한다. 예시1 2 3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지진의 근원을 막기 위한 장소로 등장한 바 있다.
공포물의 소재로 쓰이기도 한다.
10. 관련 문서
[1] 학교가 하나도 없는 농어촌 23곳...대책 시급[2] "학교를 살립시다"... 교사·지역주민 함께 '학생 유치전' 안간힘[3] 텅텅 비어가는 도심 속 학교[4] 물론 경상북도 소재 학교만 이 방식을 취하는 것은 아니며 그 외의 광역자치단체 소재 학교도 이 방식을 취하고 폐교한 곳이 많다.[5] 그 중 한 명이 김병지였다. 학교가 축구부를 운영하고 있었고 김병지 또한 축구를 하기 위해 진학했던 것이다.[6] 부모로 학교로 50년…희망의 산실 문 닫는다. 부산 알로이시오고 내년 폐교[7] 2040년 대학 절반 이상 사라져…“정부-대학-지자체-산업계 협력체계 마련해야”[8] 그나마 용연초는 동문들의 노력으로 2004년에 야음동에서 재개교하였다. 참고로, 현재의 용연초등학교는 비슷한 시기에 개교한 야음중학교, 대현고등학교, 신선여자고등학교와 같은 자리에 모여 있다.[9] 운동장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자체강당이 없어 급식실을 자체 강당으로 쓰고 있는 형국이었다.[10] 3월 개교 용인 청운초 학생 적어 폐교[11] 주민 진학기피로 초등교 폐교[12] 그 이리농전의 후신격인 익산대학조차 2008년 전북대학교로 통합, 익산캠퍼스로 개편되었다.[13] 도에서 설립한 도립전문대학들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개교하였다. 자세히 말하자면 충북도립대학교은 옥천공업고등학교 자리에, 경북도립대학교은 예천종합고등학교 자리에, 강원도립대학교은 주문진수공고등학교 자리에, 전남도립대학교은 추성고 자리에 개교하였다.[재개교] [15] 6년제 중학 분리 이후에 만들어진 경우이나, 특이하게 당시 광주농업고등학교의 병설로 지어졌다.[16] 실제로 과거 사립학교가 있던 자리에 공립학교가 들어선 사례가 있는데, 1983년 11월에 영남상고가 사상구 주례동(現 동서대학교 디자인홀)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부산시 교육청이 舊 영남상고 부지와 건물을 매입하여 이듬해인 1984년 2월에 부산서여고가 그 자리에 들어서게 되었고 현재까지도 잘 쓰고 있다. 그리고 정읍시에 있었던 태인여자중학교도 2007년에 폐교한 후, 그 자리에 공립 대안학교인 전북동화중학교가 2010년에 개교하였다.[17] 사실 이 학교도 폐교된 부지를 활용했던 것이다. 이 학교 부지에는 원래 학생 수 감소로 폐교된 인수초등학교가 있었다.[18] 재단이 있는 사립이기에 함부로 폐교시키지 못하고 있다. 만일 공립이었으면 중학교가 필요한 신도시로 이전되었거나 진작에 폐교되었을 것이다.[19] 대표적인 예로 의왕시에 있었던 정원고등학교(현 경기외국어고등학교)와 고양시에 있었던 벽제고등학교(현 고양외국어고등학교)가 있다. 다만 정원고등학교의 경우는 조회 결과 확실히 폐교처리된 것이 맞으며, 벽제고등학교의 경우는 개교기념일과 설립일(1988년)이 고양외고로 그대로 이어진 것으로 봐서 개편쪽에 가까워 보이지만 고양외고 연혁에 벽제고등학교 시절 연혁이 아예 빠져있고 기수도 다시 1회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봐서 실질적으로는 폐교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20] 물론 사립중학교의 경우는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가는 상황은 평준화 제도가 잘 유지되는 중학교라는 특성상 거의 없으나 평준화 미적용 중학교 중에서는 정말 드물게 재단이 갈리고, 교사진도 갈리고, 커리큘럼도 완전히 바뀌면서 기존의 학교가 사실상 폐교와 다름없게 된 상황이 있는데, 2007년 이전의 부산의 브니엘예술중학교가 그러한 사례다. 2006년경 재단이 바뀌면서 2007년부터 교사진도 완전히 갈리고 커리큘럼도 완전히 갈아엎고, 교무실은 물론이고 건물조차 따로 쓰고, 당시 학교 교명도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2016년 편법운영으로 법원에 패소하면서 브니엘예술중학교로 다시 환원되었다.)로 바뀌는 등 2007년 이후로는 아예 담당 부서조차도 싹 날리고 새로 만드는 등 사실상 다른 학교가 되면서 예전 학교 관련자들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렸으며 학교 측에서도 2006년까지는 흑역사로 치고 있다.[21] 다만 대양중학교의 경우는 폐교되면서 그 대신에 설립된 일반고인 지산고등학교가 멀리 떨어진 금정구의 신축건물에 위치하다 보니, 구 대양중학교 교사는 영도구가 매입한 이후 영도 어린이도서관으로 잘 쓰고 있다.[22]
해당 건물은 뮤직비디오와 영화촬영장(영화 여고괴담 같은 경우.), 서바이벌 게임 용도로 대여되기도 했다. 2007년에 서울시 교육시설 관리사업소로 이용이 확정되면서 해당 용도로는 대여가 불가능하게 되었다.[23] 아파트 주민들이 그 부지에 초등학교를 만들기 위해 쫓아내려던 동호정보공업고등학교는 용산구에서도 받아 줄 수 없게 되자 이후에 강서구나 마포구로도 이전을 타진했지만 이마저도 강서구민들과 마포구민들도 크게 반발하면서 무산되었다. 결국은 폐교 위기에도 처했지만, 동호공고를 쫓아내려던 아파트 주민들이 역풍을 맞으면서 동호공고의 이전이나 폐교는 없던 일이 되어버리고 대신 운동장을 떼어서 서울동호초등학교를 새롭게 만드는 선에서 끝났다. 그 이후 동호정보공업고등학교는 방송영상콘텐츠분야 특성화학교로 변경되어 2008년에 서울방송고등학교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24] 서울특별시교육청교육시설관리본부는 2019년부터 성북구 종암동에 자리잡고 있다.[25] 유사하게 서울시 내 자치구에서도 휴양시설로 폐교 건물을 활용하고 있다. 영등포구의 모두휴청소년야영장, 서초구의 서초휴양소, 동작구의 동작휴스테이 등이 그 사례이다.[26] 한 예로 부산의 경남고등학교와 부산고등학교가 센텀시티 내에 개교 예정이었던 센텀고등학교와 이전 통합할 예정이었으나 동문들과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을 맞고 무산되었던 적이 있다. 경남고는 건물 연식이 건재하며 부산고의 경우 아예 건물 재건축을 했다. 부경고등학교도 이전을 추진했으나 동문회 투표 결과 반대표가 많아 무산되었다. 경남고와 부경고는 2019년 1학년 입학생 수가 200명 미만일 정도로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27] 무등경기장 인근 전남방직 공장과 붙어 있었다. 학교가 떠난 자리에는 한국아델리움 아파트가 들어섰다.[28] 원래 수송국민학교 자리에는 종로구청이 자리잡았다가, 건물이 너무 오래되어 철거 후 신축을 결정하였다. 신축 기간 동안은 대림빌딩으로 임시 이전.[29] 비슷한 케이스로 1926년에 개교해 1993년 온산비철금속단지 조성으로 폐교되었던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대정리 구 온산국민학교가 2003년 온산읍 덕신리에 신설된 초등학교에 10년 만에 그대로 옛 교가와 기수를 계승하여 부활한 사례도 있다.[30] 같은 팔달구에 있는 매향여중도 비슷한 이유로 100년의 전통을 깨고 남녀공학인 매향중학교로 전환하게 된다. 또한 이 지역에 있었던 연무중학교도 같은 이유로 2008년부터 4년간 휴교를 거쳐 2012년에 광교신도시에서 재개교하였다.[31] 신풍초등학교의 경우 원도심 지역의 학령인구 감소 및 문화재 복원으로 인한 이전이지만 이 학교는 원래 허허벌판 농촌 지역에 있었으나 근처에 대단지 아파트가 입주하며 이전한 것이다.[32] 2014년 유곡동으로 이전.[33] 2018년 옥산동으로 이전.[34] 2015년 율량동으로 이전.[35] 2013년 하소동으로 이전.[36] 2017년 우현동으로 이전.[37] 2012년 옥동으로 이전.[38] 2020년 태장동으로 이전.[39] 현 대동세무고등학교의 모태.[40] 덕수중학교가 펴낸 <덕수 칠십년사(1982)> 133쪽서도 확인 가능.[41] 출처: <교동 백년사(1994)> p602.[42] 출처: <교동 백년사(1994)> p599.[43] 이름과는 달리 광진구 군자동에 있다. 정작 군자초등학교는 동대문구 장안동에 있다.[44] 동일로를 건너 성동구 성수동에 있다.[45] 출처: <가평군 초등교육 100년사(2005)> p309.[46] 출처: <화성교육사(2006)> p698.[47] 출처: 위의 책 p693.[48] 출처: 위의 책 p699.[49] 출처: <화성교육사(2006)> p692.[50] 출처: 위의 책 p697.[51] 출처: <화성교육사(2006)> p695.[52] 출처: 위의 책 p694.[53] 출처: <가평군 초등교육 100년사(2005)> p287.[54] 출처: 위의 책 p288.[55] 출처: 위의 책 p285.[56] 출처: <화성교육사(2006)> p700.[57] 출처: <가평군 초등교육 100년사(2005)> p306.[58] 출처: <화성교육사(2006)> p696.[59] 출처: <운봉초등학교 백년사(2007)> p75.[60] 출처: 남원지(1992) p1205.[61] 출처: 정읍군사(1985) p626.[62] 출처: 위의 책, 페이지 동일.[63] 출처: <운봉초등학교 백년사(2007)> p74.[64] 출처: 위의 책 p74.[65] 출처: 남원지(1992) p1201.[66] 출처: 정읍군사(1985) p626.[67] 출처: <영암교육 70년사(2023)> p107.[68] 출처: 위의 책 p107.[69] 출처: 위의 책 p136.[70] 출처: 위의 책 p76.[71] 출처: 위의 책, 페이지 동일.[72] 출처: <상주교육사(2004)> p1291.[73] 출처: 위의 책 p1335~1340.[74] 출처: 위의 책 p1367~1370.[75] 출처: 위의 책 p1293.[76] 출처: 위의 책 p336.[77] 출처: 위의 책 p1354~1356.[78] 출처: 위의 책 p1295, 1359~1362.[79] 출처: 위의 책 p1371~1374.[80] 출처: 위의 책 p1350~1352.[81] 출처: 통영시사 하권(1999) p83.[82] 출처: 위의 책 p80.[83] 출처: 위의 책 p81.[84] 출처: 위의 책 p85~86.[85] 출처: 통영시사 하권(1999) p73.[86] 출처: 위의 책 p75~76.[87] 출처: 위의 책 p74.[88] 출처: 위의 책 p77.[89] 출처: 위의 책 p71~72.[90] 출처: 위의 책 p129.[91] 출처: 위의 책 p90.[92] 출처: 위의 책 p97.[93] 출처: 위의 책 p95.[94] 출처: 위의 책 p89.[95] 출처: 위의 책 p92.[96] 출처: 위의 책 p96.[97] 출처: 위의 책 p94.[98] 1996년 3월 1일 현천국민학교에서 현천초등학교로 교명 변경.[99] 출처: <수도전기공고 100년사(2025)> 통사편 p511.[100] 중고등학교 과정의 신학교를 소신학교,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을 대신학교라 한다.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신학교를 졸업해야 하는데, 연세 지긋하신 신부님들 중에는 대신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교까지도 소신학교(성신중, 성신고)를 졸업하신 분들이 많다.[101] 애초에 기흥초등학교는 구 기흥중 부지나 기흥고와 엄청 떨어져 있다.[102] 한국글로벌셰프고등학교 운영 재단.[103] 알로이시오 슈월츠(소재건, 1930~1992) 신부가 세운 재단으로 아동보호시설 '부산 소년의집' 운영. 1973~2019년까지 서울특별시립 꿈나무마을(구 서울특별시립 소년의집), 1981~2010년까지 은평의마을(구 서울시립갱생원)도 각각 위탁운영했다.[104] 사립학교가 파산한 사례는 서울 경일중고등학교가 파산한지 49년이 지난 2019년 8월 에서야 강원도 동해시의 광희중고등학교가 학교법인 파산선고를 받았으나, 이쪽의 경우는 서울 경일중고등학교와는 달리 공립 전환을 추진한다고 하면서, 결국 서울 경일중고등학교가 사립학교가 파산으로 폐교한 마지막 사례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105] 소신학교는 천주교 신학교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말한다.[106] 대신학교는 천주교 신학교의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말한다.[107] 2000년대에 비해 비슷한 복지시설이 부산에 많이 늘어나기도 하였으며 소년의 집 원생들이 자연스레 감소 추세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