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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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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성
2.1. 저출산 세대의 시작과 성비 불균형2.2. 청소년기부터 경쟁의 심화2.3. 정치·외교적 태도
3. 관련 문서

1. 개요

베이비 붐 세대6.25 전쟁 직후 태어난 초기 세대, 1차 베이비붐 세대인 1955~1963년생의 자녀 세대이다. X세대의 다음 세대로 1979년[1]부터 1992년생까지서울연구원통계청가 여기에 속한다. 에코는 영어 단어 echo에서 온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베이비붐 현상으로 인해 늘어난 결혼적령기 인구가 그대로 반영되어 자녀들의 숫자도 많아졌기 때문인데, 이 현상이 마치 메아리(echo)친 것과 같다고 해서 붙은 명칭이다. 이와 별개로 에코붐세대(1991년~1996년생)도 존재한다.[2] 에코붐세대는 해당 문서를 참조하자.

에코세대에 대해 통계청에서는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인구적 관계를 명확하게 밝힌 문서로 설명해 놓았으니 읽어보는 것이 좋다.통계청 즉 베이비붐세대와 함께 완벽하게 인구학적으로 정의된 세대 개념이다. 공교룝게도 이 세대가 IMF 금융위기 이후 성인이 되어 88만원 세대와 같은 사회적 의미도 지니게 되었고, 2000년 즈음하여 성인에 돌입하기 시작하여 밀레니얼 세대와 거의 겹치게 되었다.

통계청에 의하면 1차 베이비붐세대인 1955-1963년생 산모들의 자녀들이며, 이들이 전체 산모의 30% 이상을 차지한 시기를 에코세대라고 본다. 베이비붐 엄마들이 낳은 출생아 숫자는 1983년 60만명으로 가장 많았고, 1985년엔 82.73%가 베이비부머 산모로 전체 산모 중 가장 비율이 높았다. 또한 1차 베이비붐세대는 혼인연령이 지속적으로 늦춰지면서 부모세대 8년보다 더 길다. 이 세대부터 저출산이 시작되었다.[3]

에코세대 에코붐세대 명칭 이전, 1977년생부터 1997년생은 2010년대 초반까지 N세대(Net Generation)로 불렸다.##1#2#3#4#5#6 초고속 인터넷망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던 1999년 즈음부터 기존 X세대와 구분짓기 위해 매우 보편적으로 쓰이던 용어로, 당시 신(新)문물이었던 인터넷(N)을 어느 세대 보다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그들만의 차별화된 문화를 만들어 갔던 세대이다. 물론 에코세대라는 용어는 그 당시에도 존재했지만 보통은 신문기사를 읽다가 아주 가끔 나오는 정도였고, 각종 미디어에서는 N세대가 주류였으며 기업들도 N세대라는 용어를 적극 활용하여 그들을 타겟으로 한 마케팅 전략을 세울 정도였다. 이렇듯 N세대가 그 시절을 대표하는 키워드급 용어였다보니, 지금에 와서 '에코세대'라는 용어를 그들에게 들이대면 십중팔구는 "무슨 소리야? 우리 N세대였는데?"라며 의아해 할 것이다.

어려서는 오락실에서 스트리트 파이터 2 대쉬에, 커서는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디아블로 2에 열광했던 세대이기도 하다.

동생 세대로 '에코붐세대'를 두고 있으며 자녀세대로 알파세대[4]를 두고 있다. 에코세대, 에코붐세대와 Z세대 이 셋을 합쳐 한국에서는 소위 MZ세대라고 불리는데 이들 세대 중 가장 나이가 많다. 또한 우석훈 교수의 88만원 세대가 2007년에 발간되었는데 여기서 말하는 88만원 세대(~1988년생)의 특징을 짚어보면 대략 이들을 가리킨다.[5]

인구 수는 450만명 정도로 추산.

2. 특성

2.1. 저출산 세대의 시작과 성비 불균형

또한 정부 주도의 산아 제한이 한창 진행 중일 무렵의 출생자 세대이기도 한데[6] 인구 수의 경우 출생 연도 별로 차이가 극심하다. 잠시 출생아 수가 증가한 시기(1979년~1982년)는 출생아수가 80만명을 넘어가나 이해찬 세대(1983년~1985년) 때부터는 출생아 수가 급감하기 시작하였다.

이 와중에 가장 큰 문제는 당시까지 남아 있던 남아선호사상과 급격히 발달한 의학이 짬뽕을 일으킨 '아이 골라낳기'였다. 예전 같았으면 '남자애가 나올 때까지 낳는다'에서 '검사 후 여자애임이 밝혀지면 지우고 새로 낳는다'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이 문제는 주로 1986년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출산율 감소를 확대했고 극심한 남녀 성비 불균형까지 일으켰다.

2.2. 청소년기부터 경쟁의 심화

이 뿐만 아니라 수능 초창기 + 본고사 폐지 + 널뛰기 수험생 숫자 + 수시의 비중 증가 + 의전 / 한의전 / 치전 / 약대 / 로스쿨 도입으로 SKY 들어가는 난이도가 매우 높아졌다. 대입제도의 혼란상(이해찬 세대의 경우)[7] + 급격하게 상승한 대학 진학률이 시너지를 일으켜 대학 졸업 이후 다시 취업난을 겪기 시작한 사실상 첫 세대이기도 하다.

초기 에코세대의 경우 80만명 내외가 응시를 하는 등 인구집단 자체가 커서 경쟁률이 매우 치열했다. 이후에는 상술한대로 제도의 혼란으로 사실상 2차전인 전문대학원 입시라는 또 한번의 레이스를 펼쳐야 했다. 또한 메디컬 계열 - 의대, 치대, 약대 - 선호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전문직 선호, 메디컬 강세가 시삭되었으나, 그래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상위권 대학교 공대 및 자연계열과 엎치락 뒤치락하였다. 그러나 전문대학원체제로 변한 이후 오히려 메디컬 계통이 2차전을 치르고도 갈만한 곳이란 인식이 생기고, 인터넷 상의 정보 공개가 활발해지자 메디컬 선호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게다가 전문대학원에서 대학체제로 복귀까지 이루어지면서 혼란은 가중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게 92년생인데, 입시의 경우 2004년 11월에 치러진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1986년생) 이후 가장많다. 2010년 11월에 치러진 201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지원자가 71만명이며 90년대생 중에서도 숫자가 가장 많고, 2012 수능(2011년 11월)부터 수리영역 교육과정이 바뀌므로 N수생들이 엄청 몰렸다. 게다가 1992년생 남성의 경우 의대 체제 복귀로 인한 제도 변경의 피해를 뒤집어 썼다.[8]

실제로 말 그대로 '에코 세대'이기 때문에 베이비부머 세대의 인구증가에 영향을 받아 잠시간 이 세대의 인구 자체가 일시적으로 증가한 세대이다. 1984년부터 1990년까지 60만명대로 완만하게 감소추세였던 인구는 출산율의 큰 변화 없이 1991년부터 1995년까지 70만명대이다가 1996년도부터 2000년도까지 60만명대로 완만히 에코세대가 끝나가더니 월드컵이 개최된 2002년부터는 기성세대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신생아 수 40만명대와 출산율 1.3명을 처음으로 밑돈 1.18명을 기록하여 초저출산 시대로 진입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저출산 시대가 완전히 정착된다(...). 문제인 것은, 초저출산 세대가 사회진출할 시기에 베이비부머들은 은퇴를 안함 + 사회 진출을 하려는 또래들은 엄청 많음 + 사회는 경제성장률 둔화로 준수축국면으로 들어감[9]설상가상의 상황이라는 것. 한 마디로 취업난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인구통계학적, 사회적 배경을 타고난 이들이다. 실제로 에코세대를 정점으로 그 이후는 베이비부머들이 슬슬 은퇴하기 시작하고 90년대 한 때 70만대를 찍었던 세대 인구 수가 가파르게 내려와(어느 정도로 가파르냐면, 1995년 기준 신생아수가 71만 5천명인데 그로부터 10년 후 05년생 신생아 수가 43만명이다.) 취업난이 조금이라도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고, 실제로 2005년부터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에 접어들고 저출산 문제로 시름하는 일본이 겪었던 일이다.[10]

특히 에코세대는 관점에 따라 전세대인 86세대와 후세대인 에코붐 세대보다도 더한 상황에 놓여 있는데, 경제 호황 시기에 비교적 쉽게 취직하여 순조롭게 재산과 사회적 지위를 쌓았던 전자와 지독한 취업난을 마주하여 처음부터 포기하고 니트족, 욜로 등 다른 삶의 방식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난 후자와 다르게 이들은 부모세대를 따라 사회초년생 티를 벗고 사회에 정착해갈 즈음부터 후세대와 함께 고용불안과 직업 감소에 따른 경쟁이 더 심화되었다는 점이다.[11] 즉, 이들은 어려운 취업문을 뚫어서 정규직으로 취업하고 사회적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집, 자동차, 결혼 등 여러 초기비용을 들여갔는데,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경기 침체의 장기화와 자동화 등의 사회 변화로 기업들이 전반적인 T/O를 축소하여 명예퇴직 연령이 점점 낮아지면서 그만큼 상위 자리로 올라가기 위한 경쟁이 더 치열해진 것. 거기다 이런 초기비용들도 시간이 갈수록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에서 자비로 마련하기 쉽지 않아 보통 대출 등을 받아 마련하기 때문에[12] 그대로 주저앉으면 말 그대로 빚쟁이로 전락하게 된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에 태어난 에코붐 세대와 함께 한국판 '잃어버린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

2.3. 정치·외교적 태도

대북성향도 연령대에 비해서 제법 적대적으로 베이비 붐 세대들과 가장 많이 공유할 정도다. 적대적 대북관의 원인은 부모 세대의 영향과 함께 주로 미디어를 통해 경험한 북한의 참담한 실정과 대남도발 때문으로, 고난의 행군기의 북한의 실상을 각종 매체와 탈북자의 증언을 통해 목격했으며, 햇볕정책을 통해 이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친숙함을 느낄 즈음 북핵, 서해교전 등을 포함한 지속적이고 잦은 대남 도발로 인한 강한 배신감 등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소위 퍼주기 논리가 적극 작용한 바가 크다.[13] 이런 관계로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우리가 도와줘야 할 사람들'이란 논리와 함께 그들을 억압하는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매우 적대적이다.[14]

이로 인해 NL계열 운동권이 주장하는 반미 통일 노선에 대해서도 반감이 있는 동시, 되려 미선이 효순이 사건 같은 이슈에 적극 참여하는 등, 반미감정도 없지 않은 복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2002년 한일월드컵의 영향도 크다고 볼 수 있는데 월드컵의 개최와 4강 신화로 민족주의 감정이 고조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학창 시절 경험한 역사바로세우기의 영향도 매우 크다. 이들이 직장에 취업하거나 임원이 되면서 민주-한국노총 중심의 강성 기성노조 체제에 불만을 지니며 새로운 노동운동 문화를 만들려는 시도를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현대자동차그룹의 '인재존중 사무연구 노동조합', 서울교통공사의 '올바른노동조합', LG전자의 '사람중심 사무직 노동조합', 교사노동조합연맹 등이 있으며, 2021년 스타벅스 트럭 시위처럼 양대 노총의 지원을 안 받고 토스로 돈을 모아 게릴라식 시위를 하기도 한다.(주간조선 기사)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IMF 외환위기였다. 당시에는 보수 경제지까지 IMF 신탁통치라고 표현할 정도로 IMF 지원을 국가망신으로 여겼고, 사회 각 부문의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IMF와 미국 재무부의 강압적 태도는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IMF에서도 한국에 너무했다고 자성할 정도니 말 다했다. 미국 정부에서도 특히 국방부는 한국 내 반미의 심화와 북한의 오판을 우려하여 한국의 IMF행을 반대했다고 한다. 아무튼 각종 원인으로 특히 2000년대 에코세대는 미국에 대한 양가적 감정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의 분기점은 2008년이었는데 그해 여름에는 광우병 사태로 반미감정이 들끓었으나, 부시 대통령 임기 말기인 2008년 11월, 대침체 사태에서 미국이 최초로 한미통화스와프를 체결해주면서 한국이 대침체 사태를 안정적으로 넘기게 되었다.[15] 이명박 정부의 친미외교와 함께 미국이 한국 경제가 어려울 때 큰 도움이 되며 한미간 신뢰관계가 재확인되며 사그러 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 세대의 여성과 남성들은 그 전 세대에 비해 여성과 남성의 전통적인 성역할에 갇히지 않는 성향을 시작했으며, 남자로서의 이점은 누리고 싶어하면서도 데이트 비용 반반 내는 개념녀를 바라고 자기 돈으로 커피 사 먹는 여자들을 된장녀라고 욕하는 80년대-90년대생 남자들은 사실상 2015년 이후 그 세대 여성들이 대 각성하게 된 페미니즘 리부트의 숨은 공신이라 할만 하다.

2015년 메갈리아의 등장과, 2018년 이후에 더 크게 확대된 페미니즘 열풍[16], 미투 운동, 몰래카메라 공론화, 소라넷 검거사건 등에서 대학가를 버티고 있던 이들이 바로 90년대 출생 여성들로 상당수가 페미니즘과 비혼주의 등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기도 하다. 또한 메갈리아, 워마드 등 활동하고 있는 회원들도 상당수가 90년대생들이다. 90년생은 그 해에 태어나면 백말띠라 하여 바로 직전 년도인 89년생과 직후 년도인 91년생에 비해 여아 출생수가 몇 만명이 적은, 완전히 뱃속에서 학살을 당한 세대다. 90년대생의 시작인 90년, 91년생은 2024년 기준으로 한국나이 35세, 34세로 예전같으면 대부분 결혼을 했을 나이지만, 결혼을 안한 인구수가 결혼을 한 인구수에 비해 더 많다. 요약하자면 한국의 90년대생 여자는 한 국가의 여성들이 전체적으로 30대 중반의 나이에 결혼을 안한 비율이 더 높은 인류 최초의 집단이다. [17] 페미니즘은 그 전에도 있었고 실제로 지금도 읽히는 페미니즘의 고전이 한국에서 활발히 번역되던 시기는 90년대 초반이지만, 비혼을 선택하고 출생률에 영향을 미쳐 한 사회와 국가의 성격을 완전히 바꾼 영향력을 보인 것은 90년대생 부터이다.

3. 관련 문서


[1] 이들은 X세대의 맨 끝자락 세대에도 포함된다.[2] 1991년생과 1992년생은 에코세대이면서 에코붐세대에도 동시에 겁친다.[3] 1983년에 대체출산율 2.1에 조금 미달, 1984년부터는 근처도 못 간다. 출산율 1.3명 미만으로 떨어진 2002년부터는 초저출산에 해당한다.[4] Z세대인 경우도 있다.[5] 90년생을 제외한.[6] 1980년대에 제작됐던 공익광고 중에는 가족계획 실천을 권장하는 내용이 종종 나왔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축복 속에 자녀 하나 사랑으로 튼튼하게" 등의 구호도 이 때 등장했다.[7] 2000학년도 대입 수능은 86만 명 정도가 응시하며 역대 최고치를 찍었으나 출생아 수가 점차 줄어들다가 1983년(2002학년도 대입 수능 응시자) 77만 명으로 떨어지기 시작하여 1987년에는 62만 명까지 떨어지며 2006학년도 수능 응시자 수는 역대 최저치를 달성했다. 참고로 에코 부머 세대의 당시 인구는 83~87만 명 정도 된다.[8] 현재보다 상당히 낮은 점수로 약대 및 전문대학원으로 80년대생까진 이득 본 세대가 있으나, 특히 92년생 남자의 경우 오히려 피해만 봤다. 의전원의 입학을 생각한다면, 92년생은 11학번으로 4년제 들어가서 군대(2년)까지 칼 졸업하면 2017년 2월에 졸업인데, 졸업하고 준비할 시간도 없이, 대부분의 의전원들이 2016년까지만 모집하고 사라져서, 남은 강원, 건국, 차의전은 미국 명문대생도 떨어질 정도고, 이마저도 강원, 건국은 2022, 2023년까지만 모집하고 의대로 전환되었다. 차의전 한개 남았는데, 워낙 고스펙자의 경쟁이 치열해서 수능이 더 쉽다고 평가된다. 또한 2017년 3월 10일에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2017년 5월 10일부터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는데 소득주도 성장론으로 인건비가 오르면서 부담을 느낀 기업들이 채용인원을 줄이고 실업률이 상승했다. 졸업후 취준할 시간도 없이 정말 여러 모로 꼬인세대다.[9] 베이비부머 세대는 신생아 85만 시대로 절대수자체는 에코세대보다 제법 높았으나 그들이 사회진출할 때 즈음에는 한국경제가 한강의 기적이라는 미친 듯한 확대 국면을 보이고 있던 상황으로,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취업난은 그리 심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다.[10]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고령세대가 자산을 쌓아놨기에 소비여력이 남아서 내수시장을 유지시켰었음을 고려해야 한다. 만약 비생산가능인구로 진입하게 된 고령층이 자산이 충분하지 않아 소비를 극도로 줄이게 되면 내수시장은 축소될 수밖에 없고 이를 수출시장으로 땜빵하지 못하면 일자리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줄게 된다. 따라서 초저출산 세대인 2002년생 이후가 취업난에서 자유로울거란 보장은 없다.[11] 특히 이들이 취업적령기였던 2000년대는 1997년 외환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직후였다.[12] 특히 2020년에 들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여파로 인한 경제 침체와 문재인 정부의 빈번한 부동산 정책 변경이 겹치면서 이들 세대를 중심으로 아파트 공황 구매가 발생하고 있다. 비싼 집값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를 구매하기 위해 영끌 대출이란 말이 나올 정도.[13] 햇볕정책 이전부터 정주영회장의 소떼 방북 직후 일어난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 지속적으로 북한의 화전양면 전술이 적극적으로 전개된 것도 매우 크다.[14] 일반 북한 주민들마저 동정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싸그리 혐오하는 혐북과는 엄연히 다르다. 일반 북한 주민들에 대해서는 북한 공산당 정권의 압제 하에서 고통받는 피해자라고 생각한다.[15] 한편 이에 대해서 한미통화스와프가 금융위기 해결의 결정적 요인이었냐는 반론도 존재한다. 보통 이런 반론을 펴는 사람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타개의 공을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의 외환보유고 축적으로 돌린다.[16] 페미니즘이 더 크게 확대되고 정치바람을 많이 타기 시작한 것은 2018년 이후부터다.[17]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는대신 '그냥' 이라고 말한다. 말그대로의 ‘그냥’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결혼하기 싫은 사회적, 문화적 요소가 너무 많기에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어 한마디로 압축한 것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비혼은 '그냥' 선택하는 것이 되었다.[18] 가상화폐 투자 연령층 비율 중 50% 가량이 2030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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