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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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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박도)
()
Chinese War Sword / Dadao / Podao / Pudao
파일:external/www.jzhssc.com/20121104154850643.jpg
중일전쟁 당시 국민혁명군이 사용한 실전용 대도
1. 개요2. 특징3. 역사
3.1. 중일전쟁 시기3.2. 상징성과 현대의 대도
4. 대도행진곡5. 대도를 사용하는 검술6. 창작물
6.1. 대도를 사용하는 캐릭터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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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북송대부터 중일전쟁 종전시까지 군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크게 사용된 전형적인 중국도.

2. 특징

크기가 다양해서 전통적 대도 중 작은 것은 1.7 m 정도로 사람 키만 했고 큰 것은 3 m 이하였다. 무게도 제각각이라 평균을 내기 어렵다. 특히 근접전, 난전, 선상전에서는 그 뛰어난 위력을 보여 남송의 장수인 악비는 거느린 보병들한테 금나라의 중무장 기병인 괴자마를 상대로 "말의 머리는 보지 말고 말의 다리만 보고 대도로 공격하라."라고 명령하여 무적의 군대였던 괴자마를 크게 무찔렀다. 또한 명나라 장군 유정(劉綎)은 무게가 120근이나 되는 무거운 대도를 자유자재로 사용하여 '유대도'라는 별명을 얻었다. 명나라 이후에 들어선 청나라대까지 대도로 무장한 보병부대가 있을 정도였고, 태평천국 운동에서도 많은 태평천국군이 사용하여 한때 '태평도'라고도 불렸다.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이 터지는 군벌 시대에 들어서는 60~150 cm 정도로 크기가 줄어들어 휴대성이 좋아져서 앞에서 말한 것처럼 민간에서도 호신용, 무술수련용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대도의 구조상의 이점은 마치 원근감이 표현된 것처럼 날끝으로 갈수록 폭이 넓어지는 칼날의 형상 덕분에, 무게중심이 칼날의 말단부로 쏠려 베기의 위력을 크게 증가시켰다는 것이다. 이 덕분에 대도는 절단력이 놀라웠다. 다만 칼날에 힘과 무게를 실어 베어 가르는 기법에 적합하도록 무게중심이 손잡이보다는 칼날 쪽에 있음은 취급의 편의성이란 부분에선 단점이었는데, 이런 점은 일본도와도 비슷했다. 일본도 또한 생각보다 다루기 쉽지는 않았음도 무게중심이 손잡이보다는 칼날 쪽에 있어서였는데, 대도도 그러한 점에서는 약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대도의 손잡이에는 폼멜이 있어서 취급하기가 일본도보다는 조금 나은 편이다.

직봉풍전쟁, 북벌전쟁 당시 북양군벌은 병사들이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려 하면 즉시 대도로 썰어서 군대를 독전했다고 한다. 중일전쟁 당시의 군용 대도는 근본적으로 전통적인 대도의 디자인을 계승했으나 휴대성을 고려하여 길이는 심플하게 규정되었다. 국민당을 비롯하여 군벌들이 제각기 정한 교범마다 조금씩 치수는 달랐으나 대체적으로 칼날은 60 cm 전후, 손잡이는 30 cm 정도로 전체길이는 1 m를 넘지는 않는 수준을 유지하였다. 당시 중국국민당이 이끄는 정부나 군벌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나온 것도 있고 대장간에서 따로 주문해서 사용하기도 했기 때문에 실제 기록사진들을 보면 길이와 비율이 다 다르다.

손잡이가 긴 대도를 따로 박도(朴刀, Podao[1])라고 지칭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상 엄밀한 구분이라 하긴 어렵고 혼용에 가깝다. 이런 형태는 손잡이가 두손으로 잡을 수 있을 만큼 길어 쌍수대(雙手帶)라고 불리기도 한다. 중국 강남 지방에서 특히 많이 사용되었다고 하며 남파 계열의 대표적인 병장기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러한 대도 말고도 전통적인 중국도, 즉 우미도(牛尾刀)/유엽도(柳葉刀)/안모도(雁毛刀) 등의 도검 계통의 도(刀)를 사용한 사례가 확인되고 유물도 소수 존재한다.
파일:external/blogimg.hani.co.kr/22059_29669.bmp_M418W110C125A124.jpg
파일:한양대%20조선%20언월도%2082_5cm.jpg
조선시대 형정도첩에 그려진 참수용 박도 조선 후기의 언월도

조선망나니가 장비한 참수용도 역시 바로 이 대도였다. 다만, 명칭이 대도가 아니라 박도다. 손잡이는 길고 칼날 부분도 길어, 창과 도검의 중간 정도 길이와 형태를 띠고 있다. 양 손을 매우 넓게 잡고 긴 칼날을 휘두르는 무기이다. 참고로, 중국 강남의 오구도 같은 도를 가지고 술을 뿜으며 춤추는 것은 20세기 사극에서 타국의 사형 집행 방식을 섞어 창작된 것이다. 조선시대 그림에서 묘사된 대도를 든 망나니의 모습은 이와는 상당히 다르다. 박도는 조선 후기로 가면 전체적으로 짧아져서 중국 대도와 형태적으로 비슷하게 변모한 것도 등장한다. 일종의 수렴 진화. 이런 형태의 무기는 박도라 불리진 않고 반월도 혹은 그냥 언월도라고 불렀다. 추노에 나오는 송태하의 무기가 이것이다.

3. 역사

3.1. 중일전쟁 시기

파일:external/119.img.pp.sohu.com/1161a800579.jpg
대도를 장비한 국민혁명군의 모습 중일전쟁기의 대도

세월이 지나 중국국민당중국의 정권을 잡고 독일의 도움을 받아 군의 근대화에 매진하였으나 일본 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군대가 그러하였듯이 군수품의 불충분과 화력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특히 20년대 이후로 주목받은 참호전과 근접전, 그리고 기관단총이라는 분야가 그러하였다. 기관단총이라는 것이 권총탄을 사용하는 소형 기관총으로써 출발하여 참호에 돌입하여 압도적인 화력으로 청소해버린다는 개념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자연히 중국도 MP18 기관단총과 마우저 C96계열 권총을 국산화하여 이러한 세계적 기준에 따라가려 노력하였다.

그러나 실전에서 탄약휴대량이 많아야 이러한 개념을 실현할 수 있는데 중국은 이러한 개념에 걸맞은 수준의 탄약을 지급할 능력이 되지 못했으며, 자연히 근접전투 중 총탄이 떨어질 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하여 근접전 병력은 대도를 휴대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1933년 열하사변 중 활약한 쑹저위안의 29군 휘하의 대도대가 유명하였으며 1937년 이후 중일전쟁에서 많은 활약을 하여 항일대도(抗日大刀), 항전대도(抗戰大刀)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보통은 그냥 대도라고 불렸으며, 항일대도는 이 시대의 물건에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여 호칭할 때 쓰이는 단어이다.

일본군청일전쟁 때부터 중국군의 대도를 경험하여 중국군이 청룡도를 사용한다고 착각했는데, 그만큼 큰 인상을 받았다는 뜻이다. 1937년 중일전쟁이 개전하면서 일본군은 프랑스식 돌격주의를 계승한 총검돌격을 주요 전술로 삼아 중국군을 압도하는 화력, 병력의 질을 바탕으로 우쑹 전투에서 1만 명이 전사하는 피해를 내면서도 독일식 오송 요새와 상하이 요새선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자신을 얻은 일본군은 중일전쟁 내내 총검돌격을 주요 전술로 삼았다. 이러한 배경에서 일본군과 중국군간 백병전이 심심찮게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중국군의 C96 기관권총과 군용 대도의 조합은 실전성이 높았다고 한다. 전투에서 일본군은 대도의 강한 베기 성능과 기세에 큰 인상을 받았다.

중국군의 전략거점인 우한이 일본군에 함락된 이후 전선이 고착화되면서 중국군이 소규모로 침투하여 백병전을 벌이는 경우가 자주 일어났다. 이 때문에 중국군 내에서 상당히 많은 이들이 대도를 장비하였다. 주요 산업지대를 모두 빼앗긴 중일전쟁 중반 이후부터는 중국군의 화력이나 탄약 수급이 더 나빠졌기 때문에 싸고 쉽게 만들 수 있는 대도를 찾는 이들은 더욱 많아졌다. 일본 육군도 비슷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규정상으로는 도검을 소지해서는 안 되는[2] 하사관병사들도 도검 소지를 암묵적으로 허용받았다. 이른바 이종군도가 전선에서 유행한 이유였다.
대도를 훈련중인 중국군 병사

대도 자체는 화력의 강화와 함께 자연히 사라질 운명이었지만 일본군 특유의 돌격주의 신봉과 중국군의 보급 사정상 화력의 부족, 그에 따라 자주 일어나는 백병전에 필요한 근접전 장비가 필요한 상황이 맞물려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의 자료/참전자들의 증언/무술가들의 이론/현대의 모의 대련 등으로 검증한 결과, 실전에서 대도는 효용성에서 총검에게 밀림이 현대의 다수 중국인들도 인정하는 중론이다. 우선 리치에서부터 차이가 나는데다 대도를 휘두르는 동작은 총검의 찌르기에 비해 비효율적이고 체력 낭비가 심하다. 또한 베여서 난 상처보다 찔려서 난 상처가 더 깊고 아물기 힘들다. 여기에 보급이 열악했던 중국군들은 백병전에서 중요한 요소인 피지컬이 일본군보다 훨씬 딸렸고, 훈련수준이나 멘탈 역시 일본군보다 못했다.[3]

그래서 백병전으로 넘어가도 중국군은 불리한 교환비를 냈고, 그나마 전쟁 중후반부부터 병사들도 경험이 생기고 고참병이나 일본군 포로들에게서 노하우 등을 전수받으면서 나아졌다고 한다. 말하자면 겉보기에는 폼나지만 실상은 화기는커녕 냉병기인 총검, 정확히 말하면 총검의 자루 역할을 할 소총조차도 제대로 보급받지 못해서 대도로 때워야 했던 당시 중국군의 열악함을 상징한다고 할까...[4][5]

위의 알려진 부대도 정식 명칭은 권총대였고, 실제 주무장으로 활약한 것도 권총이었지만 당시 언론들에서 국민들의 사기를 고양시킨답시고 대도의 역할을 과대포장해 선전하였고, 덕분에 대도 뽕을 맞은 국민들이 전선에 대도를 다수 기증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장창도 쓰였지만 휴대성, 편의성, 화기와의 겸용성 등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총도 제대로 지급 못할 정도로 장비가 정규군들보다도 더 열악했던 팔로군이나 민병대 정도를 제외하면 널리 보급되진 못했다.

3.2. 상징성과 현대의 대도

파일:대도를 내보이는 중국인 할아버지.jpg
대도를 내보이는 중국인 할아버지

실전 투입률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던 일본 군도일본군의 상징이 되었듯, 대도 또한 중국에서는 항일무장투쟁의 상징적인 한 가지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군가 대도진행곡을 비롯하여 중국군 군장 재현자들 중에서 대도를 메지 않는 사람들이 없고, 항일참전용사 중에서도 사용하던 대도를 소장하고 가보로 대대손손 물려주는 사람들이 많다. 현대 도검계에서도 중국을 상징하는 도검 아이콘으로써 대중적인 인기와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한검·유엽도(柳葉刀)[6]와 함께 중국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해외 도검 업체에서도 대량생산하는 제품 중 하나로써 항상 라인업에서 내려오는 일이 없다.
파일:external/www.kultofathena.com/CS88CWS_4_l.jpg
미국 Cold Steel社의 대도(Chinese War sword)와 성능 홍보 비디오

4. 대도행진곡

중일전쟁에서 대도를 최초로 부각하기 시작한 부대는 루거우차오 사건으로 중일전쟁의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 허베이 지방의 29군으로 알려졌다. 작곡가 마이신(麦新)은 루거우차오 사건 후 군가 대도진행곡(大刀進行曲)을 지어 29군을 기리기도 했다. 그래서 대도진행곡의 부제도 "29군 대도대에게 바친다(獻給二十九軍大刀隊)".(#)중국에서 국민혁명군 29군은 루거우차오 사건 이전의 열하사변 당시에 일본군을 상대로 결사전을 벌인 이 대도대로 유명해서 2007년에 이들을 소재로 한 중국 드라마 "큰 칼로 왜놈들의 머리뚝배기를 부수자(大刀向鬼子头上砍去)" 가 나오기도 했다. 큰 칼... 존나 큰 칼이 필요하다...
대도진행곡
大刀進行曲

작곡(作曲) : 맥신(麥新)
大刀向鬼子們的頭上砍去,
큰 칼로 왜놈[7]들의 머리를 부수자,
全國武裝的弟兄們,
온나라의 무장한 형제들아,
抗戰的一天來到了,
항전의 날이 다가왔다,
抗戰的一天來到了。
항전의 날이 다가왔다.
前面有东北的義勇軍,
일선엔 동북(만주)의 의용군,
後面有全國的老百姓,
후선엔 전국의 국민들,
咱們中國軍隊勇敢前進!
우리 중국군대는 용감히 전진!
看准那敵人,
적을 보고 겨누자,
把他消滅!
그들을 소멸하자!
把他消滅!
그들을 소멸하자!
(喊) 衝啊!
(함성) 돌격!
(唱) 大刀向鬼子們的頭上砍去!
큰 칼로 왜놈들의 머리를 부수자!
(喊) 殺!
(함성) 죽이자!

5. 대도를 사용하는 검술

파일:대도를 이용한 검술1.gif
파일:대도를 이용한 검술2.gif
파일:대도를 이용한 검술3.gif
대도를 이용한 검술

중국군용 대도만의 특별한 검술은 존재하지 않으며 군대에서 사용된 대도술도 민간 무술가를 초빙하여 연구와 교육을 맡기는 방식으로 대도술이 정립되었다. 또 당시의 중국군대가 통합된 국군이 아니라 군벌군대의 연합체에 가까웠으므로 대도술도 독립적으로 따로 따로 정립된 경우가 많았다.

가령 1920년 허난의 펑위샹 군벌에 가담한 산시성 마씨통비문의 마봉도는 명나라 시대의 교범인 단도법선(單刀法選)의 기술을 차용해 파봉팔도(破鋒八刀)로 정립해서 가르쳤다.재현영상 형의권의 한씨 성을 가진 협객을 초빙하여 형의육합도법을 기본으로 8가지의 총검 파훼법을 창안한 것이 파봉팔도로 불렸다는 이설도 존재하며, 이 역시 펑위샹 군벌의 29사단 서북대도대에 교습되었다고 한다.

소림72예로 유명한 김은충(金恩忠)[8]은 1933년 중국 서북군 29사단 대도대의 교육을 책임지고 이 내용을 실용대도술이라는 34페이지 책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또한 응조번자권의 유법맹(劉法孟)은 1933년 광동군 19사단에서 편성된 대도대의 교육을 맡아 이를 대도술(大刀術)로 정립, 출판하기도 했다.영상 다큐멘터리 영상에서는 이들의 체계와는 확연히 다른 또다른 도법을 훈련하는 당시 영상들도 많이 나오므로, 실제로는 대도술의 종류는 사단별, 군벌별로 제각각 다양했다고 볼 수 있다.

근본 내용 자체는 평범한 중국도법이지만 파봉팔도나 실용대도술은 모두 총검을 상대로 한 내용만을 가르친다. 파봉팔도의 소스가 된 단도법선 자체가 창을 검으로 격파하는 비법을 담은 책이다. 이는 당시 실전에서 가장 쉽게 맞닥뜨리는 것이 일본군의 총검돌격이므로 여기에 대한 대비책을 빨리 교육해야 실전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봉도가 단도법선을 참고한 것도 총검을 이기는 법을 얻고자 했음으로 볼 수 있다. 다른 대도술도 그러했는지는 교범이나 관련 자료를 찾아야 확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김은충 실용대도술을 재현한 영상

6. 창작물

중국하면 떠오르는 무기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창작물에선 중국인 캐릭터들이 자주 쓰는 무기로 나오며, 비슷한 생김새와 중일전쟁 당시의 일화[9] 때문에 창작물에선 대도가 아닌 청룡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양판소판협지에서는 특유의 투박한 생김새 때문인지 영 대우가 좋지 않다. 보통 산적이나 오랑캐처럼 무식하거나 난폭한 이들이 들고 나오다가 세련된 검에 깨지거나 박살나기 일쑤. 물론 주인공이 광전사같은 캐릭터라면 이야기가 달라져서, 보이는 놈마다 다 썰어제끼는 최강의 검으로 바뀌어서 나온다.

대항해시대 3에서는 좀 다르게 생기긴 했지만 '청룡도'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명나라의 북경을 포함한 대도시에서 살 수 있다. 효과치는 68로, 라이벌인 일본의 명도장광보다 1 높으며 시장에서 살 수 있는 무기 중 두 번째로 강력하다.

6.1. 대도를 사용하는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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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화단 운동 당시의 청군 보병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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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군보병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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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 소총 스나이더-엔필드, 레밍턴 롤링블럭, 벤츨 소총, 스프링필드 M1873, 마티니-헨리 소총
머스킷 태창, 엔필드 1853
권총 마우저 C96
지원화기 기관총 노던펠트
화포 홍이포
냉병기 도검 한검, 대도, 언월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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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의 중화민국 보병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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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 제2차 세계 대전
국민혁명군보병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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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동소총 ZH-29, M1 개런드L, M1941 존슨L, M1 카빈L
기관단총 MP18, SIG M1920, 마우저 M712, MP34, 스텐 기관단총L, 톰슨 기관단총, M42L, PPD-40C, PPSh-41C, PPS-43C
권총 C96, P08, M1914, 발터 PP, M1900, 루비, 콜트 M1903, FN M1922, 브라우닝 하이파워, TT-30, TT-33, M1911A1L, M1917L, FP45L
지원화기 기관총 경기관총 Vz.26/30, 마드센 M1902, MG13, DP-28C, 루이스 경기관총, 맥심-토카레프C, 호치키스 M1922, 라티-살로란타 M/26, SIG KE7, Wz.28, FN M1930, 브렌 경기관총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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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1914) 대전기 (1914~1945) 냉전기 (1945~1991) 현대전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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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만에서는 Púdāo라고 읽는다. #[2] 일본군에서 도검은 장교의 권위를 상징했다.[3] 중국군에 비해 일본군들은 훈련도 충실한 편이고, 전쟁 포로나 점령지 민간인을 총검술 훈련용 샌드백으로 삼아서 병사들이 직접적인 살인행위에 거부감이 없어지도록 했다.(물론 학살에 해당하여 국제법상 불법이다.)[4] 총검을 제대로 보급받았다고 해도 당시 중국군들이 쓰던 중정식 소총이나 한양조 소총은 일본군의 38식 소총에 비해 길이가 짧았기에 백병전은 여전히 열세였다. 사실 이건 38식 소총이 유난히 길었던 탓이기는 하지만. 다만 7.92 mm 탄을 썼기에 화력은 앞섰다. 다만 소총이 긴 것이 반드시 백병전에 유리하진 않다. 백병전이 일어나게 되는 주요 전장인 참호 속은 비좁기 때문에 소총이 길수록 휘두르면 걸리기 쉽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참호전의 대표격인 1차 대전 참호전에서도 병사들은 백병전에 총검을 부착한 소총 대신 한 손엔 권총을 들고 반대손으로 야전삽/트렌치 클럽(네일 배트)/트렌치 나이프 등의 냉병기를 휘두르기도 했다. 후술하겠지만 한 손엔 권총, 다른 손엔 한손 냉병기(항일대도)란 중일전쟁 대도대의 무장 구성과 정확히 일치한다. 게다가 건장한 서양 병사들도 버거워 할 정도로 길고 거추장스러운 게 당대 볼트액션 소총들인데, 체격이 작은 편인 동양 병사들이 휘두르기엔 오히려 긴 소총이 불리할 수 있다. 무엇보다, 백병전에서도 약실에 총알 남은 놈이 이긴다는 현대 백병전의 대전제를 생각해야 한다. 당대의 볼트액션 소총은 리엔필드를 제외하면 통상 5연발이었고, 그나마 1발 쏠 때마다 수동으로 노리쇠 조작을 해 줘야 한다. 반면 당대에 널리 쓰인 더블액션 리볼버나 자동 권총은 보통 6발 이상은 장전되고, 별도의 노리쇠 조작이 필요 없이 방아쇠만 당기면 일단 총이 나간다. NIJ Class 3A 방탄 장구 같은 건 없던 시대이고 참호 내 육박전 상황에선 소총이 권총 상대로 갖는 사거리의 절대적 우세는 당연히 전혀 의미가 없으니, 무인지대를 돌파하여 적의 참호 안으로 뛰어들기까지의 화력 공백 문제만 어떻게든 해결되면 참호 안에선 착검한 볼트액션 소총 대비 여러모로 유리하고 융통성이 크다. 당대에 이런 전술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관단총이었고, 2차 대전 주요 참전국 중 영국/독일/소련은 기관단총 보급에 많은 공을 들였으나 일본은 기관단총을 총알 낭비라고 생각했으니....[5] 미군은 영국/독일/소련에 비하면 기관단총 사용율이 의외로 떨어지는 편이었으나, 워낙에 천조국의 물량이 물량인지라 2차대전 기간 중 기관단총의 절대적 생산 수량은 나름 적지 않은 편이다. 대신 8연발 반자동소총이나 15~30연발 반자동/자동 PDW, 짐승이나 잡는 비인도적 무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분대 지원 화기도 백병전 상황에선 써먹기 힘든 경기관총을 쓰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즉응성 높은 자동 소총을 사용하는 것으로 대응했다.[6] 베기에 중점을 둔 외날 도검으로, 전통적인 중국도 중에서는 가장 흔히 쓰이던 칼로서 보병도로서도 기병도로서도 널리 쓰였기에 여러 중국 무술 유파에서 사용법을 가르쳤던 칼이기도 하다. 대도보다는 작은 칼이지만 그래도 역시 장검이었으며, 대도와 마찬가지로 마치 원근감이 표현된 것처럼 날끝으로 갈수록 폭이 넓어지는 칼날의 형상 덕분에 무게중심이 칼날의 말단부로 쏠려 있어 베기의 위력을 크게 증가시키는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대도와의 차이는 대도가 무거운 양손검인데 비해 유엽도는 보다 가벼운 한손검이라는 점. 여담으로 유엽도의 설계가 무게중심이 절묘하게 잡혀 검술을 할 경우 손목을 이용하여 쉽게 위력을 내기 쉬워서 대도보다 더 실전적인 칼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유엽도는 혼자서 하는 투로에만 활용될 뿐 대련이 거의 없는 실정에 무기끼리 맞붙는 대결에서조차 장검, 일본도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유엽도의 실전성이 입증된 경우는 없다.[7] 鬼子(뀌쯔)는 원래 귀신이란 뜻이지만 중국에서는 일본군을 말한다. 그러므로 왜놈이라는 번역이 맞을 듯. 자세한 것은 르번구이쯔 문서 참조.[8] 조선인으로 알려졌다.[9] 전쟁 당시 일본군이 항일대도를 휘두르며 저항하는 중국의 민병대와 군벌군, 국부군들을 보며 '중국군은 청룡도를 휘두르고 다닌다'고 오해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10] 제식무장 외에 개인적인 취향의 무장인 청룡도를 장비한다. 정작 본인은 맨몸일 땐 서양식 사브르를 가지고 다닌다.[11] 주무기인 드래곤 블레이드는 청룡도와 권총으로 변형 가능하다.[12] 적소(赤霄)라 부르는 붉은 대검과 함께 SF풍의 대도를 무기로 사용하는데, 적소는 평상시엔 사용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주 무기는 대도를 쓰고 있다.[13] 과거 국민당군이었으며 정황상 대도를 들고 괴물과 싸우다 사망한다. 그를 괴롭히던 런하오 패거리도 이를 보고 군인답게 갔다고 했다.[14] 항일대도를 들고 다니면서 일본군을 마구 썰어댄다. 심지어 총보다 더 능숙하게 사용한다.[15] 아라마사라는 무기를 쓰는데, 대검처럼 보이긴 하지만 사실 대도(박도)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16] 개조스킨에서 장비하고 있다.[17] 괘할림편 이후에는 쌍계도로 같아탄다.[18] 대명부편 한정.[19] 이 밖에 투척용 바늘,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도 같이 사용한다.[20] 작중에선 '청룡도'라고 불린다.[21] 삼국지연의 시리즈와 실제 역사의 감녕을 바탕으로 창작한 오리지널 캐릭터. 1편의 하이라이트인 제갈량의 팔진도 전투에서 적이 사용하던 박도를 빼앗아서 잠시 사용한다. 잠깐이지만, 박도로 기병의 말다리를 후려쳐서 낙마를 시키는 박도 사용의 정석을 잠시 보여준다.[22] 삼국지연의를 비롯해서 삼국지를 소재로 한 미디어물들에 유명 장수들이 쓰는 무기 대부분은 후한 말기와 삼국시대에 없다가 후대에 생긴 것들이 대부분이며, 그중 삼국지연의 창작물인 진삼국무쌍 시리즈는 아예 다른 나라에서 유래됐거나 국적불명의 무기들이 태반이다.[23] 초반부에는 낡아빠진 것을 썼으며, 후반부에는 용골대에게 새 대도를 받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