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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03 12:03:17

패턴 1853 엔필드

P53 Enfield
Pattern 1853 Enfield Rifled Musket
패턴 1853 엔필드 강선 머스킷
파일:British_Pattern_1853_Rifle.png
<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종류 <colbgcolor=#ffffff,#121212><colcolor=#000,#fff>강선 머스킷
원산지
[[영국|]][[틀:국기|]][[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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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
<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역사 <colbgcolor=#ffffff,#121212><colcolor=#000,#fff>1853년~1867년
개발 및 생산 RSAF 엔필드
개발년도 1853년
생산년도 1853년~1867년
생산수 1,500,000정
단가 $20 (1861년 기준)
사용국
[[영국|]][[틀:국기|]][[틀:국기|]] (식민지 포함)

[[미국|]][[틀:국기|]][[틀:국기|]]


[[브라질 제국|]][[틀:국기|]][[틀:국기|]]

[[에도 막부|]][[틀:국기|]][[틀:국기|]]

[[일본 제국|]][[틀:국기|]][[틀:국기|]]

[[코스타리카|]][[틀:국기|]][[틀:국기|]]

[[청나라|]][[틀:국기|]][[틀:국기|]]
사용된 전쟁 크림 전쟁
필리버스터 전쟁
세포이 항쟁
제2차 아편전쟁
마오리 전쟁
남북전쟁
태평천국 운동
보신 전쟁
세이난 전쟁
3국 동맹 전쟁
기종
파생형 패턴 1861 엔필드
스나이더-엔필드
세부사항
탄약 .577 미니에 탄
급탄 전장식
단발
작동방식 퍼커션 캡
총열길이 990mm
전장 1,400mm
중량 4.3kg
탄속 380m/s
유효사거리 270m
최대사거리 1,140m }}}}}}}}}
1. 개요2. 상세
2.1. 세포이 항쟁과 엔필드
3. 파생형4. 참고자료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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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hickok45의 리뷰
엔필드 조병창이 개발 및 생산한 강선 머스킷. 19세기 대영제국전성기를 함께한 총으로, 세포이 항쟁의 원인이 된 총으로도 알려져 있다. 1866년 이후로는 탄피를 채용한 스나이더-엔필드로 개조되었다.

2. 상세

미니에 탄의 등장으로 강선식 총기의 단점이 보완되고[1] 기존의 활강식 총기 대비 사정거리 면에서 강점이 부각되면서 각국에서는 미니에 탄을 사용하는 강선 총기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머스킷에서 강선만 추가한 구조의 이 시기의 과도기적 총기를 "강선 머스킷(Rifled Musket)"이라고 부르는데, 후미장전식 총기의 발전과 금속 탄피의 개발로 도태될 때까지 19세기 후반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이 시기 우후죽순으로 개발된 강선 머스킷 중 하나였던 패턴 1853 엔필드 머스킷은 왕립 소화기 조병창1850년대에 개발했으며, 1853년 크림 전쟁이 발발하자 러시아를 꾸준히 경계해 왔던 영국이 반대편인 오스만 제국 편에 서서 참전하면서 1855년부터 영국군에 지급되어 사용되었다. 이때부터 엔필드는 영국군의 손에 쥐어진 채로 전세계를 누볐으며, 제2차 아편전쟁, 태평천국 운동, 마오리 전쟁 등에서 영국군에 의해 사용되었다.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함께한 총이다 보니 150만 정이나 생산되었으며, 영국 외에도 다른 나라들이 광범위하게 사용하였다.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의 붕괴와 미국인 용병 윌리엄 워커의 행보로 인해 중앙아메리카의 정세가 불안해지자 코스타리카가 1855년 500~2,000정의 엔필드 소총을 구입했으며, 곧이어 발발한 필리버스터 전쟁에서 코스타리카군이 사용했다.

P53 엔필드는 특히 남북전쟁에서 북부/남부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으며, 스프링필드 M1861 다음으로 많이 사용된 총기로 이름을 올렸다. 공업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아메리카 연합국에서만 영국으로부터 900,000정을 수입해 사용했으며, 전쟁기 후반 조사에 따르면 남군의 70%가 엔필드 1853으로 무장했다. 북부 또한 전쟁 준비가 되지 않았다보니 제식 무기였던 스프링필드 M1861의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엔필드 1853을 많이 사용했다. 그러나 남군과 북군 둘 다 훈련 상태가 부실했기 때문에 레드 코트들이 사용하는 만큼의 성능은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

남북전쟁이 끝나고 남군이 사용했던 수백 정의 1853 엔필드는 바다 건너 일본에 판매되었으며, 후일 보신 전쟁세이난 전쟁에서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2.1. 세포이 항쟁과 엔필드

세포이 항쟁을 다룬 인도 영화 "망갈 판데이(Mangal Pandey)"
1856년 영국 동인도 회사용병세포이에게도 지급되었으나, 이듬해인 1857년 발발한 세포이 항쟁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당시 머스킷을 장전하기 위해서는 페이퍼 카트리지를 이빨로 찢어서 카트리지 속 화약을 총구에 부어 넣어야 했는데, 기존의 활강 머스킷은 탄환이나 총열에만 기름을 도포하는 정도로 충분했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 보급된 1853 엔필드는 미니에 탄의 특성으로 인해 총알을 충분히 윤활해야 했기 때문에 페이퍼 카트리지에 대놓고 동물성 기름을 발랐고, 이 기름이 돼지의 기름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소와 돼지 기름을 입에 대는 것을 꺼리는 힌두교도와 무슬림 세포이의 반발을 사게 되어 봉기의 원인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1853 엔필드는 자신으로 인해 일어난 항쟁을 진압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항쟁을 진압하느라 호되게 당한 영국은 논란의 여지를 없애 버리기 위해 카트리지를 입이 아닌 손으로 찢게끔 장전 규범을 수정함과 동시에 기존의 장전 방식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인도군이 사용하는 1853 엔필드의 강선을 갈아 버렸다. 그러나 이로 인해 명중률 및 위력이 감소했으며, 총열이 얇아지면서 폭발사고도 빈번해져 아예 두꺼운 활강 총열 12,000개를 영국에서 긴급 공수해 왔다.

3. 파생형

4. 참고자료

5. 둘러보기

파일:Royal_Small_Arms_Factory_logo.png 왕립 소화기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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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7c7c7,#353535> 왕립 소화기 공장 생산 총기
리볼버 Mk I · Mk II · No.2
기관단총 스텐 기관단총
소총 <colbgcolor=#c7c7c7,#353535> 단발 P53 · 스나이더-엔필드 · 마티니-헨리 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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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선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총알을 헝겊 등으로 감싸서 총열에 완전히 낄 정도로 맞물려야 했는데, 이로 인해 장전 시간도 길어지고 장전봉으로 밀어넣는 데 힘을 더 많이 줘야 했다. 그러나 미니에 탄은 뒷부분이 움푹 패인 구조로 되어 있어 격발 시 연소 가스가 미니에 탄의 크기를 확장시켜 강선에 딱 맞물리게 해 주었으므로 헝겊을 감싸는 등의 번거로운 장전 과정이 불필요하게 되었다.[2] 당시 영국군은 당대 군대들 중 거의 유일하게 실탄 사격훈련을 실시할 만큼 병력의 질이 우수했으나, 남북전쟁 당시 남군과 북군 모두 훈련 기간동안 총알 한 발 안 쏴 본 채로 실전에 투입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