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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12:54:26

미니에 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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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특징4. 미니에 탄 이후의 전장식 탄환5. 관련 문서

1. 개요

Minié ball

프랑스 육군 장교 클로드-에티엔 미니에(Claude-Étienne Minié)가 개발한 전장식 라이플용 탄환.

2. 역사


강선의 등장으로 라이플의 사정거리는 늘어났지만 이런 강선의 효과를 제대로 보기위해서는 탄이 강선에 맞물려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따라서 천을 탄에 덧대어야 했는데 문제는 이 경우 꽉 맞물리기에 장전과정이 번거로울 뿐더러 불발이 일어나면 분해해서 빼질 않는 이상 써먹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장전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확장탄인 것이다.

이런 개념의 확장탄은 1848년 프랑스 육군 장교 몽고메리(Montgomery)와 앙리-귀스타브 델비뉴(Henri-Gustave Delvigne)가 개발한 원통형 탄환과 이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구조에서 비롯한다. 당시 델비뉴와 투베냉 등은 길이가 긴 원통형+공기저항을 잘 가르는 원추형 선단 구조의 탄환의 가능성을 개발하고 있었다. 현대의 탄도 공학적 원추형 탄두가 사실상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원통형 탄환은 구슬형 탄보다 길이가 길어 탄의 무게가 더 무겁고 위력적이지만, 긴 탄이 무게중심과 중력과 공기저항같은 여러 요인으로 인해 비행 중에 펄떡 뒤집히는 등[1] 그다지 공기역학적이지 못했다. 강선에 딱 맞추면 탄의 회전에 의해 탄도는 개선되지만, 강선에 맞게 탄을 밀어 넣는 것은 보통 수고가 아니었다.

델비뉴는 원통형-원추형 탄두에 타미지에 그루브를 도입했다. 타미지에 그루브는 프랑스 포병장교 프랑수아 타미지에가 개발한 강선 대포용 탄두 가공인데, 탄 측면에 고리처럼 홈을 파 두고 여기에 그리스를 발라 강선포에 포탄 삽입을 원활하게 하는 구조였다. 델비뉴의 고안은 절반의 성공이었는데, 타미지에 그루브 덕분에 공기저항으로 탄은 안정되는 경향을 보였지만, 강선에 확실하게 맞물리는 것은 오히려 저해했다.

여기에 투베냉이 조금 다른 방안을 제시하는데, 라이플을 개조해 약실 안 탄두가 자리 잡을 위치에 툭 튀어나온 말뚝을 넣어 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장전봉으로 탄두를 힘껏 때려 박으면 탄두 뒤꽁무니가 힘껏 찔리면서 부풀어 올라서 강선에 탄두가 잘 맞물릴 거라는 것이었다. 그의 발상이 도입된 스템 라이플은 어느정도 성공을 거뒀지만 문제는 말뚝 때문에 총열 청소가 더 어려워진데다 사격도중 화약의 폭발로 인해 말뚝이 파손되기도 했다.

한편 델비뉴가 원추형 탄환을 연구하던 시기, 영국 34연대 소속 존 노턴 대위는 인도에서 주둔하던 도중 원주민들의 블로우건의 다트를 보고 그 원리를 탄에 적용해보기로 결심한다. 이리하여 원추형에 뒷쪽 공간이 오목한 최초의 확장탄이 등장했으나 이론과 달리 성능은 형편없었다.

그러다 이런 노턴의 아이디어에 주목한 건스미스 W.그리너는 이를 개량해 새로운 확장탄을 개발했다. 단순히 탄의 뒷면이 오목하게 파인 노턴의 탄과 달리 그리너는 여기에 나무 쐐기를 추가해 확장 성능을 증폭시켰다. 허나 높은 단가와 조잡한 품질로 인해 그리너의 탄은 악평을 받았다.

미니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나무 쐐기 대신 금속 고깔을 삽입했다. 화약의 연소가스를 이 오목한 고깔 부분이 받아내어 부풀어 오르면서 강선에 압착한다는 의도였지만, 사격시 고깔이 납탄두를 뚫고 사출되어 납이 총열 내부에 눌러붙는 현상 탓에 고깔을 제거하고 오목한 홈만 남겼다. 이로써 확장탄의 완성형인 미니에 탄이 개발되었다.

3. 특징

기존에는 전장식 라이플 총을 장전하려면 bullet starter[2]로 헝겊을 감은 총알을 총구에 눌러 넣은 다음 꼬질대로 힘을 줘서 쑤셔야 했다. 총알을 넣는 과정이 빡빡하고 힘을 많이 줘야 해서 보통 한 발 장전하는 데에 활강식 머스킷보다 시간이 더 소요되었다.[3] 반면에 미니에 탄은 격발 시 뒤쪽 오목한 부분이 폭압으로 확장되면서 총알 가장자리가 자동으로 강선에 맞춰지는 구조로 인해 기존 총의 4배 사거리인 400야드(365m)의 놀라운 성능을 발휘했고 장전시 활강식 머스킷 수준의 장전 속도와 편의성이 장점이었다.

또한 이 미니에 탄은 인체에 명중하면 5.56×45mm NATO처럼 탄두가 깨져서 기존의 구슬형 탄환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살상력을 보였다.

이후 퍼커션 캡과 함께 미국 남북 전쟁 등에 사용되어 전쟁 사상자를 급격히 늘리는데 일조했다. 그 이전의 나폴레옹 시절의 전열 보병식 전투와는 비교도 안 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어떻게 보면 대량살상무기의 시초가 되었다.[4]

이후 이 형태는 단단한 대상물에 피격 시 납 탄두가 파쇄되어 위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막고, 발사할 때마다 총신 내부가 납으로 코팅되어 여러 발 쏘면 납으로 강선이 묻히는 것을 막기 위해 앞에 구리로 된 고깔형 탄두를 달아 풀 메탈 재킷으로 발전한다. 뒤이어 기존의 총알과 화약을 기름종이로 개별 포장해 놓은 물건에 가까운 페이퍼 카트리지에서 벗어나 화약뇌관이 달린 탄피가 달린 현재와 같은 구조의 총탄에 이르렀고, 그로 인해 비로소 실전에 쓸 만한 성능을 가진 후장식 총기가 성립되게 되었다.

4. 미니에 탄 이후의 전장식 탄환

영국에선 미니에 탄의 그루브의 적용에 부정적이었기에 크림전쟁기 그루브 없는 미니에 탄을 사용하다가 이후 독자적으로 유사한 효과를 지닌 탄을 개발하여 사용했다. 총알/탄자의 종류 참조.

미니에 탄은 당시로선 혁신적인 탄이었지만 강선 효과를 받아야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했다. 문제는 강선을 파는 것이 아주 힘든 데다 비용도 높았기에, 활강식 머스킷으로도 라이플급 사거리를 내도록 하는 네슬러 탄이 개발된다. 이 탄은 벨기에에서 개발되었지만 러시아 측 밀정이 입수해 러시아로 들여와 러시아에서 주로 사용하게 된다. 당시 러시아군 사령관 멘시코프가 칭찬할 정도로 탄의 성능은 훌륭했지만 열약한 러시아의 공업력과 사거리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당시 러시아 전장식 머스킷에 장거리 사격용 가늠쇠 같은 게 없어서 장거리 사격은 사수의 감에 의지해야 했고 네슬러 탄 생산을 대량으로 급하게 찍어내다 보니 주형틀이 변형되는 상황에서 탄약의 품질관리 없이 난잡하게 보급한 끝에 총구 크기보다 큰 탄이 나와버리거나 어떻게 넣어도 발사 시 총열에서 막혀버리고 총이 폭발하는 등 문제가 속출해 버렸다.[5]

한편 오스트리아에서는 로렌츠 탄이 개발되었다. 원리는 미니에 탄과 비슷하지만 금속 고깔이 탄을 확장시키는 미니에 탄과 달리 로렌츠 탄은 탄이 압축되면서 확장되었다. 이 때문에 로렌츠 탄은 후미의 오목한 공간이 삭제되었고, 그 결과 사거리, 탄속, 살상력 등 모든 면에서 미니에 탄을 뛰어넘었다. 그야말로 전장식 탄환의 최종형이라 할 수 있지만, 이 탄이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후장식 소총이 대세가 되었고 결국 어떠한 스포트라이트도 받지 못한 채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게 된다.

남북전쟁 당시 로렌츠 탄과 로렌츠 라이플을 남군 북군 상관없이 구입해 사용했지만 교본을 번역 안 하고 보급하는 병크와 로렌츠 라이플에 기존의 스프링필드 탄을 넣으려고 구경을 늘리는 작업을 했는데 이게 모든 총에 한 게 아니라서 전장에서는 원본 로렌츠 탄, 구경을 늘린 버전의 로렌츠 탄, 구경을 늘린 로렌츠 라이플, 원본 로렌츠 라이플이 구분 없이 보급해 버려서 매우 답 없는 상황이 나왔다고.[6]

5. 관련 문서


[1] 구슬형 탄보다는 확실히 공기역학적이지만 흑색화약의 효율이 좋지 못한 탓에 현대의 원추형 탄보다 회전이 약하기 때문이다.[2] 이 bullet starter가 망치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생긴 게 망치와 비슷하게 생겼을 뿐 절대 때리는데 쓰는 공구가 아니다. bullet starter 사진 bullet starter을 사용하여 장전하는 영상[3] Baker rifle이나 1796 m jaeger rifle 등의 군용 라이플 사수들은 bullet starter를 생략하고 바로 꼬질대로 넣어서 장전하는 경우가 흔했다. 또한 미리 천으로 감싸고 바느질한 총알을 준비해두면 장전속도를 일반 활강식 머스킷과 비슷한 수준까지 맞출 수 있었다. 다만 꼬질대로 쑤셔서 장전하기가 활강총에 비해 많이 뻑뻑하고 장전이 번거로운 건 사실이었다.[4] 활강식 머스켓의 구형 탄환 역시 제대로 맞으면 죽는 것은 매한가지였으나 맞으면서 탄두가 깨져 신체 내부를 다 헤집어 놓는 미니에탄에 비해 탄두 깨짐 현상이 적거나 없어서 나폴레옹 전쟁 시대에는 의외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전사하는 병사들의 수는 미니에탄이 쓰이던 시대에 비해 많지 않았다.[5] 네슬러 탄 자체가 땜빵식으로 채택된 것도 크다.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활강식 머스킷 탄보다 나은거지 결코 라이플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실제로 러시아 제국도 크림 전쟁 이후 네슬러 탄과 활강식 머스킷을 전장식 라이플로 교체한다.[6] 그래도 로렌츠는 양반인게 오스트리아군이 로렌츠 이전에 쓰던 가리발디 라이플, M1849 Kammerbushe Rifle은 더했다고 한다. 미군이 한번도 쓰지않던 상술했던 스템 라이플보다 이전 방식인 델비뉴식 약실 소총인데다(델비뉴의 방식은 장전후 무거운 장전봉으로 총알을 몇번 내리쳐서 강선에 맞물리게 해야한다.) 구경도 좀 더 큰 것을 고려도 안하고 스프링필드 탄을 그냥 쓰는 바람에 활강총만도 못한 명중률을 보여서 남북전쟁 최악의 소총으로 오명을 뒤집어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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