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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 작가 |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마르셀 프루스트 | |
년도 | 출처 | |
1912년 | # | }}}}}}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In Search of Lost Time | |
작가 | 마르셀 프루스트 |
국가 | 프랑스 |
형식 | 대하소설 |
장르 | 모더니즘 |
언어 | 프랑스어 |
출판년도 | 1913년 – 1927년 |
출판사 | 그라세, 갈리마르 |
쪽 수 | 4,215쪽 |
글자 수 | 1,267,069자 |
권 수 | 전 7권 (1927년, 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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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하소설. 그의 필생의 역작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소설 중의 하나다.[1]2. 특징
모더니즘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이 책은 4,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집필에만 14년이 걸렸다. 유년기의 추억, 가슴 시린 사랑, 전쟁, 시간이 앗아가는 젊음, 필생의 소명에 대한 깨달음. 이른바 ‘의식의 흐름’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면, 이 소설에서 그야말로 ‘모든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프루스트의 인생을 담은 소설이며 그의 인생관, 철학을 엿볼 수 있다. 프루스트는 무엇보다 그의 책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랐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삶의 전반적 철학을 갖고서 천재적인 수준으로 사람과 장소에 대한 묘사들을 흩뿌려놓았다.이야기는 벨 에포크 시대에 프랑스 신흥 부르주아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화자가 많은 일을 겪고 중년이 된 시점에서 시작된다. 우연히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한입 베어물면서 그 맛과 향기와 분위기에 일종의 데자뷰를 느끼며 그 데자뷰를 통해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린다.[2] 그러면서 시점은 과거로 넘어가 자신이 아직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이후 점점 작중의 화자는 이야기 속에서 성장해가게 된다. 작가로서 살고 싶었던 주인공은 몇 년이 지나도록 자신이 무엇을 써야할지 몰라 괴로워하나 7부 최후에 이르러 자신이 살아온 인생 그 자체가 드라마이며 최고의 글 소재임을 깨닫고 비로소 펜을 붙잡는다. 즉 집필에 들어가는 작품이 바로 독자가 지금껏 읽었던 주인공의 인생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책 그 자체인 것이다. 대세로 떠오른 신흥 부르주아 집단, 그리고 그런 부르주아들과 시대상황에 밀려 점점 몰락해가는 귀족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한 남자의 사랑과 이별을 통한 고뇌와 슬픔과 사랑 그 자체의 덧없음을 느끼게 해준다.
이 작품이 읽기 힘든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인데 첫 번째는 문장이 미친듯이 길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분량이 많다.[3] 통계에 의하면 긴 문장은 텍스트 전체의 3분의 1 정도다. 10행을 초과하는 문장은 전체의 18% 정도이며, 문장의 평균 길이는 3행 반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처럼 긴 문장들은 물질적이고 심리적인 현실을 껴안으면서, 그 현실의 모든 내용을 손상하지 않은 채 그 모양 그대로 형상화하고자 하는 집요한 배려에서 생겨난 것이다. 세번째이자 특히 가장 괴로운 점은 수많은 미술품과 특정 지역에 대한 모습을 빗대어 묘사한 부분이 너무 많은 나머지 예술, 특히 미술사를 따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알아듣기 힘든 묘사법으로 문장을 꾸몄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 일반적인 문장 : 노을이 진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식 문장 : 지금 이토록 슬픈 빛으로 빛나는, 마치 보닝턴이 그린 아드리아 해처럼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차차 어둠이 태양을 쫓아가는 형국의 하늘은 그 그윽한 풍광 속에서 아스라이 사라져갔다.
프루스트의 소설은 천천히, 몇 번씩 반복하여 읽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러나 반복해서 천천히 집중해 읽으면 미묘한 감칠맛과 함께 이해되는 독특한 문장들로 구성돼 있다. 또한 프랑스어 특유의 각종 관계대명사에 뒤이은 다수의 종속문들이 현재, 과거, 미래형의 복잡다단한 동사시제를 구사하면서 주절 사이사이에 크고 작은 가지를 치며 증식하는 문장구조의 전개 방식은 독자를 황홀케 하는 동시에 혼란에 빠뜨린다. 더구나 그의 문장구조는 더러 논리에 맞지 않아서 엉뚱한 현재분사 용법이 눈에 띠며, 문장 속에서 괄호가 열리면 도무지 닫힐 기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괄호 속의 문장이 장황해지고 있어 작자 자신이 길을 잃은 것이 아닌지 걱정스러운 느낌을 줄 때조차 있다.
텍스트 내용에 있어서도 특이하다. 사랑, 죽음, 예술과 같은 심각하고 추상적인, 복잡미묘한 문제들을 깊고 자세하게 분석하고 음미하기 때문에 대부분 즉각적인 이해가 쉽지 않다. 더욱 특이한 것은 줄거리다. 전통소설은 발단에서 대단원에 이르는 이야기의 ‘극적 구성’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으며, 등장인물들은 이야기에 종속돼 그 줄거리를 진전시켜나가는 데 큰 기여를 한다. 그러나 프루스트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필연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냥’ 거기서 존재해야 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작가가 말하고 있는 것은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실제 삶이 그렇듯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모든 것, 의식 속에 비쳐지는 모든 영상과 운동, 경험의 총체, 삶의 총결산 등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전체 7편으로 구성된 소설인데 주인공은 나(마르셀)다. 1인칭 고백 형식으로 부르주아 출신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 `나`는 풍부하고 예민한 공상가적인 인물로 사교계를 출입하며 인생의 어두운 이면에 절망한다. 사회적인 명성, 여인에 대한 동경 등에 회의를 느낀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마들렌 과자를 먹다가 무의식적으로 과거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자각한다. 시간의 위대함을 알게 되면서 그가 찾아낸 것은 예술적 자아다. 유추하자면 예술만이 시간의 파괴력을 이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나 할까.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코드는 시간성이다. 시간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그 이야기들이 모이는 곳은 `스완네 집` 같은 하나의 공간이다. 시간과 공간이 몽환적으로 배치되어 있다보니 줄거리를 말하기조차 모호하다. 무슨 기하학 퍼즐을 보는 것 같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시간은 전지전능하다. `나`와 주변 모든 인간들은 시간 앞에서는 그저 덧없이 흘러가는 존재일 뿐이다. 소설은 주인공이 동경했던 사람들이 늙고 초라해진 모습으로 게르망트가 파티에 참석한 모습을 길게 묘사한다. 소설에서 인생은 언제나 그렇게 `잃어버린 시간`일 뿐이다.
1913년 제1편인 ‘스완네 집 쪽으로’가 출판됐을 때 독자들은 작품 전체의 구조를 가늠할 길이 없었다. 소설에 구성이 없다는 불만을 표출했다. 그러나 프루스트는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려본 다음 판단을 내려줄 것을 주문했다. 작품의 완성이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구성하고 있는 7편의 소설, 즉 ‘스완네 집 쪽으로’, ‘꽃핀 아가씨들 그늘에서’, ‘게르망트 쪽’, ‘소돔과 고모라’, ‘갇힌 여인’, ‘사라진 알베르틴’, ‘되찾은 시간’이 모두 집필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완간됐을 때 독자들은 이 작품의 방대한 구조를 보고 크게 놀랐다. 놀라운 균형이 이 작품을 떠받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안에서 수많은 세부들이 서로 호응하면서, 작은 단초들이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1편에서 스치고 지나갔던 인물 ‘장미빛 여인’은 2권에서 ‘미스 사크리팡’으로 등장하고, 후에 스완 부인이 됐다가, 나중에 포르슈빌 부인이 된다. 오테크 크레시라는 이 여인은 처음에는 간단한 크로키처럼 등장했다가, 거듭되는 화가의 붓질에 의해 얼굴의 윤곽이 잡히면서 점차 뚜렷한 초상화로 완성된다. 이 소설을 읽을 때 독자는 소설 속에서 두 개의 ‘나’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먼저 소설 속의 주인공 ‘나’가 있다. 이는 콩브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어린이, 게르망트 부인을 사모하고, 알베르틴과 동거하는 젊은이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다. 이 주인공으로서의 ‘나’는 어린 시절서부터 어른이 된 이후까지 세월을 따라 부단히 변모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작가로서의 소명의식을 갖는 ‘나’로 등장한다. “‘시간’ 속에 있는 인간을 그려보리라”고 말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소설은 마침내 쓰여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주인공 ‘나’는 소설의 끝에 이르러 마침내 화자 ‘나’로 변신하고, 소설의 마지막을 소설의 처음으로 연결시킨다. 마치 하나의 선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다가 그 끝이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와 맞물리면서 둥근 원을 이루는 이 구조는 이 소설 구조에 있어 가장 큰 특징이다. 다만 이 지름이 너무 길어서 독자가 이 원의 전모를 제대로 굽어보기가 힘든 것이다.
시간에 풍화되어 버린 인생을 관조적으로 그리다보니 소설은 철저하게 역동적인 사건이 아닌 내적 풍경을 담고 있다. 바로 이 점이 프루스트 소설의 묘한 매력이다. 물론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집중해 읽으면 한 구절 한 구절 잠언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교향곡을 만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현대소설의 원전이라고 할 만큼 모든 소설적 실험이 숨어 있다. 무의식에 대한 탐구, 액자 형식의 시도, 회상에 기댄 의식 흐름 기법, 시간성과 공간성을 무시한 소설적 구조 등은 요즘 소설가들도 쉽게 운용하기 힘든 기법들이다. 그 모든 것을 대성당을 짓듯 한 편의 소설에 담아냈으니 그 가치는 대단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시간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또한 과거가 무의식적 기억의 도움을 받아 예술 속에서 회복되고 보존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탐구한다. 이 소설에서 그가 이룩한 혁신의 중심은 등장 인물들을 고정된 존재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정황과 지각에 의해 점차 드러나고 형성되는 유동적인 존재로 그리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완전한 예술적 전체 속으로 무너뜨리는 인생을 그려내는 프루스트의 강력한 실례는 20세기 문학에서 획기적인 영향력 중 하나였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더불어 근본적으로 소설의 형식을 바꾸었고, 소설의 여러 가지 기본 원칙들을 변화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또한 집요할 만큼 강박적으로 비전을 표현하고 전달함에 있어서 그가 개인적으로 기여한 바는 문인의 현대적인 역할을 규정해 주었다. 고려대학교 김화영 불문학 교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해 독자가 느낄 수 있는 진정한 가치에 대해 “정교한 미로처럼 꽉 짜여 진 내밀한 언어들을 따라가면서, 프루스트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이 세계를 포착해 언어로 고정시키는 방식을 느끼고, 그 극도로 섬세한 의식에 공감하며, 그 언어들이 펼쳐 보이는 풍부한 세계를 감지할 때에만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위의 극찬과 달리, 일반 독자들에겐 상당히 버거운 책이다. 당대의 독자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편지를 보냈다는 위의 언급처럼, "나 장편소설 좀 읽어봤소"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도 상당히 벅차다. 문장 하나하나가 서너줄씩 차지하데, 그 내용이 온갖 만연체에 가까운 미사여구와 비유, 그것도 당대의 문화적 요소가 강하게 들어있는 비유들로 가득하다. 한국어 문장으로 비유하자면, "그 소녀의 머릿빛은 비를 뿌리고 난 뒤의 맑은 하늘의 빛을 그대로 삼킨 근정전의 기와빛이었으며, 마치 가왕이 노래한 어느 소녀를 이중섭이 그려낸 듯한 미모였고, 늘상 석굴암의 은은한 빛 코트를 입고 다니곤 했다." 같은 문장이 작품 내내 끝없이 이어진다. 해당 요소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비유들을 잘 이해하고 높게 평가하겠지만, 21세기의 독자가 읽기에는 상당히 버거운 문장들이다. 특히 당대의 유명인, 유명 작품들을 소재로 한 비유들은 시간이 지나며 그 비유의 원본이 되는 재료들이 모두 잊혔기에 예술품에 대한 비유보다 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3. 구성 및 줄거리
원래 이 소설은 《이름의 시대(스완네 쪽으로)》, 《말의 시대(게르망트 쪽)》 , 《사물의 시대(되찾은 시간)》의 3부작 구성이었으나 전쟁으로 인해 중단된 동안 이 작품은 작가 스스로의 원고를 고치는 과정 속에서 오늘날과 같은 분량으로 늘어났다. 작가 스스로도 이 작품은 퇴고와 함께 다시 태어났다고 말할 정도.1913년부터 1927년까지 총 7권으로 나뉘어 출판되었으니[6] 엄밀히 말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이 책들의 총제인 셈이다. 1권인《스완네 집 쪽으로》의 초판은 그라세(Glasse)에서 출간하고 제1차 세계 대전 때문에 출판사가 쉬면서 연재가 일시중단되었다가 종전 후 1919년에 나머지 6권과 1권의 재판을 N.R.F 사(오늘날 갈리마르의 전신)에서 출간하게 되는데 연재를 재개하고 나서 4부를 출판한 1922년에 작가가 사망했다. 1927년까지 출판하여 7부까지 완간하였다. 각주가 농담이 아닌 것이, 이 책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자전적 소설이자 가장 아끼던 자신의 대작이었기에 자신의 경험이 풍부하게 녹아 있으며, 심지어는 죽기 직전 죽음이 무엇인지를 느끼고 인쇄 중이던 인쇄기를 멈추게 한 뒤 내용을 수정하기까지 한 책이다. 생전에 완결했다고 했으나 사실이 아니며, 5부부터 7부까지 작가 사후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1909년에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프루스트는 1922년 가을의 마지막 병으로 사망할때 까지 그 일을 계속하였다. 프루스트는 일찍부터 이 소설의 구조물을 세웠으나, 처음에 책이 완성된 후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자료를 추가했고 출판하기 위해 한 권씩 편집했다. 7권 중 마지막 세 권은 편집되지 않고 단편적이거나 다듬지 않은 구절을 담고 있는데, 이는 프루스트가 사망할 때 초안 형태로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프루스트는 언제나 이 책이 성공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 자신이 이것을 모두 완성하지 못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제일 두려워했다. 프루스트는 책의 초고를 모두 완성하고 이렇게 말했다.
"전 어젯밤 제 글의 마지막에 끝이라는 단어를 적었답니다,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이 부분의 출판은 그의 동생 로베르가 감독했다. 이 작품은 1913년에서 1927년 사이에 프랑스에서 출판되었다. 동생 로베르 프루스트는 프루스트의 <서간집>을 편집할 때 일부 관여만 했다. 그나마 이것도 나중에 나온 12권짜리 플롱 서간집에서 다 보충되었다. 동생이 원고 정리를 도왔지만, 마지막 3권을 쓰지는 않았다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초고만 있는 책을 완성하는 데에 동생과 평론가 자크 리비에르 (5, 6권을 감수한 후 7권이 나오기 전 1926년 사망)의 공이 너무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없었으면 완결은 되지 않았을 책이다.프루스트 사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관한 글
- 1부 「스완네 집 쪽으로(Du côté de chez Swann)」 - 1913년 출간.
- 1권 스완네 집 쪽으로
- 2권 스완의 사랑
- 3권 고장의 이름 : 이름
- 줄거리: (주인공이 태어나기 이전인) 예술 애호가 스완과 아주 수상한 소문이 떠도는 부인인 아름다운 오데트 드 크레시 사이의 연애담을 서술한다. 그 둘은 베르뒤랭 부인의 살롱에서 만난다. 그 살롱은 상류 시민층이 모이는 곳으로 귀족들이 모이는 게르망트 살롱과 함께 소설에서 사회적 배경의 초점을 이루는 곳이다. 스완은 오데트가 자신을 속였다고 의심하고 엄청난 질투심에 시달린다. 그의 사랑이 식었을 때 그는 오데트와 결혼한다.
1부 2권 「스완의 사랑」은 시기상 가장 먼저의 내용이다. 아마도 프루스트의 소설을 처음 읽으려는 사람이 먼저 떼어 읽어볼 수 있는 부분으로 가장 적합할 것이다. 이 부분은 그 자체로 완결된 이야기를 형성한다. 화자의 탄생 시기에서부터 시작하는 이 부분은 소설의 모든 부분들 중에서 통념적인 독자의 기대에 가장 상응하는 곳이다.
- 2부 「꽃 핀 소녀들의 그늘에서(À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 - 1919년 출간. 공쿠르상 수상작.
- 1권 스완 부인을 둘러싸고
- 2권 고장의 이름 : 고장
- 줄거리: 사춘기로 들어선 마르셀은 외교관 노르푸아를 만나고, 글쓰기 소명을 집에서 인정 받게 된다. 주인공은 샹젤리제에서 질베르트와 재미 삼아 놀던 도중 일어난 신체적 접촉으로 난생 처음 성적인 경험을 하고, 잊지 못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스완 부부는 처음에는 질베르트와 주인공의 교제를 탐탁지 않아 하였으나 어느 순간 정식으로 인정받게 되고, 스완 가족을 통해 베르고트라는 문호를 소개받게 되기도 한다. 교류가 많아질 무렵 질베르트와 심하게 다투고 갑작스런 이별을 하게 된다.
마르셀은 발베크에서 자신의 본격적인 사랑의 주인공 알베르틴을 만나게 된다. 마르셀이 그녀를 처음 본 것은 그녀가 여자 친구들과 함께 있던 해변 거리에서였다. 그는 아름답고 활동적이고 현대적인 젊은 여성을 발견하고는 아주 놀라며 이성적 호감을 가지게 되며, 친구인 앙드레, 로자문드 등의 친구들도 소개받게 된다. 처음에 마르셀은 알베르틴과 다른 친구들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아름다운 여성들로만 인식하지만, 알베르틴에게 끌리게 된다. 휴가철인 여름이 끝나고 더 이상의 발전이 없이 둘은 헤어지지만 그녀와 아름다움의 잔상이 남아 기억된다.
- 3부 「게르망트 쪽(Le côté de Guermantes)」 - 1920년 출간.
- 줄거리: 마르셀이 그의 부모와 함께 파리로 이주한다. 그들은 이제 게르망트 저택에 속하는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마르셀은 (늘 그랬던 것처럼) 먼발치에서 게르망트 공작 부인을 사랑한다. 마침내 그 부인을 만났을 때 그는 (역시 늘 그랬던 것처럼) 실망한다. 당시 사회생활의 중심인 살롱의 끊임없는 대화 소재는 유대인 대위 드레퓌스 사건(드레퓌스라는 유대인 대위가 군 당국이 조작한 증거를 근거로 국가반역죄 판결을 받았다가 혐의를 벗고 석방되자 사회에서 반유대인 물결이 일어났던 사건)이다. 드레퓌스는 1894년 이른바 모반죄라는 혐의를 쓰고 유형지인 섬으로 유배되었다. 이 사건은 당시 프랑스 내정에 위기를 불러일으켰다.
- 4부 「소돔과 고모라(Sodome et Gomorrhe)」 - 1922년 출간.
- 줄거리: 주요 테마는 동성애다. 처음에 마르셀은 우연히 샤를뤼스 남작의 동성애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된다. 남작은 이 동성애 사건으로 점차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 그 사이 알베르틴을 다시 만나게 된 마르셀은 그녀 역시 동성애적 성향이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 5부 「갇힌 여인(La Prisonnière)」 - 1923년 출간. (작가 사후 출간 )
- 줄거리: 마르셀은 알베르틴을 자기가 있는 파리로 불러들인다. 그녀는 그의 집에서 기거한다. 알베르틴이 외출하면 그는 질투심에 불타 그녀를 감시한다. 소유욕에 사로잡힌 마르셀의 태도 때문에 알베르틴은 어느 날 아침 그 집을 떠나고 만다.
- 6부 「사라진 알베르틴(Albertine disparue)」 - 1925년 출간.(작가 사후 출간)
- 줄거리: 마르셀은 친구 생 루에게 알베르틴을 수소문하여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결국 마르셀은 알베르틴이 승마를 하다 사고가 나서 치명적인 중상을 입고 결국 세상을 떠난 사실을 알게 된다.
- 7부 「되찾은 시간(Le Temps retrouvé)」 - 1927년 출간.(작가 사후 출간)
- 줄거리: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 마르셀은 게르망트 공작 저택으로 마티네를 방문한다. 그 집의 서재에서 마르셀은 문득 시간이 흐르는 것을 기억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르셀은 이런 깨달음을 오래 간직하기 위하여 소설을 쓰고자 결심한다. 그래서 프루스트의 소설은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처음으로 회귀하게 된다. 마르셀은 이 소설을 쓰게 되고, 이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는 비로소 독서를 마치게 되는 셈이다.
4. 작품에 관련된 말들
“진정으로 내게 가장 큰 체험은 프루스트였어요. 그 책이 있는데 과연 앞으로 쓸 게 뭐가 남아 있을까요? 어떻게 어떤 사람이 내 손에서는 언제나 빠져나갔던 것을 확고하게 담아내서 이 아름다우면서도 완벽하게 영원한 것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요? 책을 내려놓고 한숨을 쉴 수밖에 없군요.”
프루스트는 내 자신의 표현 욕구를 너무 자극해서, 문장 하나도 쉽게 쓸 수 없어요. ‘아, 내가 그렇게 쓸 수 있다면’ 하고 나는 외치죠. 그리고 순간 그가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흥분과 충만함 때문에 나도 그렇게 쓸 수 있다고 느끼고 펜을 잡게 되지만, 나는 그렇게 쓸 수 없어요.
내가 지금 흠뻑 빠져 있는 프루스트와 비교하면 어떻든 아무것도 아니다. 프루스트의 정수는 최고의 감수성과 최고의 집중력을 결합시켰다는 데 있다. 그는 나비의 그림자의 마지막 결까지도 추적한다. 그는 현(絃)만큼이나 질기고 나비의 피부만큼이나 섬세하다. 그리고 나는 그가 나에게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내 자신이 쓴 모든 문장들에 내가 화를 내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물론 너무 위대해서 내 자신 그것과 경쟁할 수 없습니다. 수년간 나는 그 책의 완독을 미루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내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책을 다시 펼쳐 들게 되었고, 내 서툰 문장도 제 갈 길을 가게 두었습니다. 주님, 내 책이 얼마나 구제불능으로 형편없는 책이 될까요!
― 버지니아 울프[9]
프루스트는 내 자신의 표현 욕구를 너무 자극해서, 문장 하나도 쉽게 쓸 수 없어요. ‘아, 내가 그렇게 쓸 수 있다면’ 하고 나는 외치죠. 그리고 순간 그가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흥분과 충만함 때문에 나도 그렇게 쓸 수 있다고 느끼고 펜을 잡게 되지만, 나는 그렇게 쓸 수 없어요.
내가 지금 흠뻑 빠져 있는 프루스트와 비교하면 어떻든 아무것도 아니다. 프루스트의 정수는 최고의 감수성과 최고의 집중력을 결합시켰다는 데 있다. 그는 나비의 그림자의 마지막 결까지도 추적한다. 그는 현(絃)만큼이나 질기고 나비의 피부만큼이나 섬세하다. 그리고 나는 그가 나에게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내 자신이 쓴 모든 문장들에 내가 화를 내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물론 너무 위대해서 내 자신 그것과 경쟁할 수 없습니다. 수년간 나는 그 책의 완독을 미루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내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책을 다시 펼쳐 들게 되었고, 내 서툰 문장도 제 갈 길을 가게 두었습니다. 주님, 내 책이 얼마나 구제불능으로 형편없는 책이 될까요!
― 버지니아 울프[9]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 프루스트를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만이 있다.”
― 앙드레 모루아 (프랑스 소설가)[18]
― 앙드레 모루아 (프랑스 소설가)[18]
“어떠한 작가도 이보다 더 뚜렷한 소명 의식을 가진 예가 없으며, 어떠한 생애도 이처럼 온전히 한 작품 속에 바쳐졌던 예가 없었다.”
― 앙드레 모루아 (프랑스 소설가)[19]
― 앙드레 모루아 (프랑스 소설가)[19]
“20세기의 가장 존경받는 소설.”
― 에드먼드 화이트 (미국 소설가)[20]
― 에드먼드 화이트 (미국 소설가)[20]
“프루스트 이전의 소설들은 모두 여기로 도착하고, 이후의 소설들은 모두가 여기서 출발한다.”
― E. R. 커티스 (독일 문학학자, 철학자)[21]
― E. R. 커티스 (독일 문학학자, 철학자)[21]
“프루스트는 이 위대한 소설로 소설의 용어를 다시 정의했는데, 이 소설의 영향력은 상상력이 풍부한 산문의 몸에 계속 스며들고 있는 심오하고 때로는 매우 재치 있는 걸작이다.”
― 로버트 맥크럼 (영국 문학 비평가)[22]
― 로버트 맥크럼 (영국 문학 비평가)[2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면서(즉, 그 소설을 통해 나 자신을 읽으면서), 이 책이 나를 삼키도록 내버려두면서, 항복의 대가로 자비심을 구하며 포식동물 앞에 제 몸을 바치듯 눈을 감고 독서에 몸을 맡기면서, 나는 수많은 철학자들의 말이 긴 메아리처럼 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 대부분이 프루스트가 인식하지 못했던, 데카르트, 니체, 쇼펜하우어, 플로티노스, 베르그송 등이었다. 이 소설은 천 년 이상에 걸친 많은 사상가들이 오래전부터 책임을 맡아서 보다 무미건조한 형태로 동시대인들에게 전해온 여러 가지 문제들이나 인상들, 역설들이나 찬사들로 점철된다. 수 세기에 걸쳐 내려오며 이러저러한 성격 묘사를 통해 일시적으로 활성화되는 어떤 문제의 항구성 안에는 뭔가 놀라운 것이 있다. 그런데 프루스트는 그런 것만을 다룬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우리가 답을 얻지 못한 모든 것의 집약체다.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255~256쪽[23]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255~256쪽[23]
흔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중요한 이유는 20세기 작가들에게 폭넓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이 펼쳐놓는 그 문학적 선조들과의 대화를 독자들이 폭넓게 즐겨왔다는 점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혹은 “지나간 것들의 기억”)』는 3천 페이지에 걸친 세련되고도 위압적인 “문학적 사명”의 이야기이다. 프루스트는 이 작품을 14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완성하였다. 이 작품에서 프루스트는 시간, 공간, 기억과 같은 주제들을 탐구하지만 사실은 수많은 표현, 구조, 형식, 그리고 주제의 가능성의 압축이라 할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종종 일탈의 유혹에 빠지는 야심만만한 작가 마르셀의 사라져가는 기억을 통해 1870년대 중반부터 1920년대 중반까지 부르주아와 귀족 계급의 요동치는 운명을 묘사해낸 구조적 장치이다. 이러한 기억력의 쇠퇴는 온갖 종류의 오해를 불러온다. 때로는 이런 오해들이 정정되기도 하고, 때로는 “무의식적인” 기억이 되살아나는 기쁨의 순간을 맛보기도 한다. 이러한 과거와 연결되는 순간들은 오랫동안 잃어버린 감각과 지각과 회상을 다시 깨우는 현재의 우발적인 만남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이러한 순간들이 이 소설의 독특한 구조를 가능하게 했고, 덕분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 어떤 책보다도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 읽어야 한다.
학계에서도 여전히 그 주해나 스케치를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소설은 오늘날까지도 출간될 때마다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또한 1922년에서 1930년 사이에 처음으로 영어로 번안된 이래, 여전히 새로운 번역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프루스트의 이 “글 뭉치”는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다.
―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혹은 “지나간 것들의 기억”)』는 3천 페이지에 걸친 세련되고도 위압적인 “문학적 사명”의 이야기이다. 프루스트는 이 작품을 14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완성하였다. 이 작품에서 프루스트는 시간, 공간, 기억과 같은 주제들을 탐구하지만 사실은 수많은 표현, 구조, 형식, 그리고 주제의 가능성의 압축이라 할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종종 일탈의 유혹에 빠지는 야심만만한 작가 마르셀의 사라져가는 기억을 통해 1870년대 중반부터 1920년대 중반까지 부르주아와 귀족 계급의 요동치는 운명을 묘사해낸 구조적 장치이다. 이러한 기억력의 쇠퇴는 온갖 종류의 오해를 불러온다. 때로는 이런 오해들이 정정되기도 하고, 때로는 “무의식적인” 기억이 되살아나는 기쁨의 순간을 맛보기도 한다. 이러한 과거와 연결되는 순간들은 오랫동안 잃어버린 감각과 지각과 회상을 다시 깨우는 현재의 우발적인 만남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이러한 순간들이 이 소설의 독특한 구조를 가능하게 했고, 덕분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 어떤 책보다도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 읽어야 한다.
학계에서도 여전히 그 주해나 스케치를 연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소설은 오늘날까지도 출간될 때마다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또한 1922년에서 1930년 사이에 처음으로 영어로 번안된 이래, 여전히 새로운 번역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프루스트의 이 “글 뭉치”는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다.
―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탄생과 죽음, 만남과 이별, 재회와 부활의 이야기다. 프루스트가 그리는 세상에는 공허하거나 무의미한 것은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따로 또 같이 결정(結晶)을 이룬 하나의 상징이며 수많은 사물을 소재로 지은 대성당이다”
― 민희식 (한양대학교 불문학 교수)[24]
― 민희식 (한양대학교 불문학 교수)[24]
“프루스트는 난해한 작가가 아닙니다. 프루스트는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와는 다릅니다. 화자의 의식의 흐름을 통해 전개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프루스트는 굉장히 논리 정연한 문법을 따랐죠. 그가 전위적 작가로 간주된 이유는 구조주의나 기호학 탓이 큽니다. 프루스트는 하나의 사건을 외부에서만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건이 한 사람의 내부에서 어떤 파문을 일으켰는지까지 묘사했어요. 이러한 새로운 형식을 추구한 작가로서의 면모가 부각돼서 난해한 작가로 치부돼 왔죠. 프루스트는 거창하거나 추상적인 것을 말하지 않았어요. 굉장히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체험을 썼습니다. 일상적 아픔이나 고통도 문학으로 승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작가죠. 그가 체험한 굉장한 이야기들이 화자의 예민한 시각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되는데, 너무 방대하고 미세한 묘사가 많다 보니 길을 잃기 쉬워요. 하지만 퍼즐 맞추듯 조금만 노력하면 길이 보입니다. 아버지가 의사였던 그는 몸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글쓰기를 했어요. 정신보다는 육체를, 이성보다는 감성을, 남성보다는 여성적 감성을 앞세웠죠. 그는 사소한 일상의 가치를 아는 작가였습니다. 문학작품의 생명력이 거기에 있어요. 프루스트를 난해한 작가라고 생각해서 멀리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아요. 프루스트야말로 우리 가까이에서 아픔이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작가입니다. 프루스트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따뜻하고 깊어요. 시간에 따라 인간의 마음이 변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알려고 노력했거든요. 알 수는 없지만 알려고 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프루스트를 읽으면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깊어질 거예요.”
― 김희영 (한국외국어대 프랑스어과 명예교수)[25][26]
― 김희영 (한국외국어대 프랑스어과 명예교수)[25][26]
5. 국내 번역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번역본은 동서문화사, 민음사, 펭귄클래식, 국일미디어 등이 있다.2016년 10월 26일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나온 완역본인 국일미디어(김창석 역)판과 동서문화사(민희식 역)의 가장 큰 문제는 판본인데, 가장 최신 판본이자, 가장 충실하게 반영된 판본인 1987-89년 플레이아드(La Pléiade) 전집판[27]이 아니라, 1954년 판본을 저본으로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28] 현재 번역중인 민음사(김희영 역)와 펭귄 클래식 코리아(이형식 역)의 저본은 바로 이 1987년 플레이아드 전집판이다. 펭귄 클래식 코리아에서는 이 시리즈의 총제를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라고 옮겨 놓았다. 역자에 따르면 '시절'이라는 단어가 지니는 정서적인 면모를 살리기 위해 선택한 제목이라고 한다. 출판사별 번역차이 김희영 번역은 마르셀 프루스트가 직접 쓴 1,2,3,4부는 2권씩 번역하여 나오고, 5,6,7부는 1권 분량으로 번역할 예정이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5부와 7부는 각 2권의 분량이 되어 총 13권으로 2022년 완간되었다.
가장 많이 추천하는 번역본은 민음사본이다. 번역가는 김희영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 명예교수. 40년간 프루스트를 연구한 프루스트 전문가이며 국가장학생으로 선발돼 프랑스 파리3대학에서 공부한 그는 석박사 학위를 모두 프루스트로 땄다. 번역의 평도 매우 훌륭하며 주석도 꼼꼼하다. 한국어로 어색하지 않은 문장을 만드는 데 성공했으면서도 (불어 원문의 기준에서 봐서) 정확하다. 단 민음사본에는 주석이 각주로 달려있으나 각주 내용에 스포일러가 많이 있어(!!) 학술적 연구가 아닌 소설의 목적으로 읽으려는 일반 독자에게는 그 부분이 큰 단점이 될수 있겠다. 그러나 정본으로 불리는 1987년 프랑스 플레이아드판을 번역본으로 삼았으며, 길고 복잡한 책을 문학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면서 그런대로 깔끔하게 번역했다는 장점이 있다. 민음사본은 2012년 번역이 시작되었으나 노교수의 건강문제 등 이런저런 이유로 완간이 계속 늦어졌었다. 그러나 번역가와 출판사가 2022년 프루스트 서거 100주년을 목표로 작업을 완료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으며, 번역 완료는 2022년 초 완료되었으나 워낙 방대한 내용 탓에 출판사에서의 원고검토 및 교정이 또 한참 걸렸다. 2022년 10월 28일과 11월 11일 '되찾은 시간' 1권과 2권이 각각 출간됨으로써 마침내 완간되었다. 프루스트 서거 100주년에 맞춰 끝낸 셈.
6. 여담
- 책이 출간될 때쯤, 그 당시에도 프랑스의 대문호였던 앙드레 지드가 이 작품을 보고 무려 그에게 사과를 할 정도로 감명을 받게 되어 결국 고액의 돈과 함께 갈리마르 출판사로 판본이 넘어갔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마르셀 프루스트가 공쿠르상을 받기 전이여서 무명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는 굉장한 호평이 아닐 수 없다.
- 내용이 방대한데다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에 전면적으로 영화화되거나 드라마화된 적은 없고, 소설 속의 몇 대목이 영화화된 적은 있다. 그나마 소설 전체에서 스토리라는 걸 따질 수 있는 유일한 대목인 '스완의 사랑' 은 1984년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 이 책에 영감을 받아 프랑스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이 만들어졌다. 책에서 그대로 발췌한 대목이 영화에 나온다. "약국, 화학실험실..." 이 대목은 알베르틴을 묘사하며 나오는 대목이다. "우리는 기억 속에서 무엇이건 다 찾아내게 마련이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 화학 실험실 같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어떤 때는 위험한 독약이 잡힌다." 출처
- 일본 영화 러브레터에서 주요 소도구로 등장한다. 문서 참조.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제목이 꽤 있어보이기 때문에 은근히 이를 변형한 이름을 가진 작품이 꽤 있다. 잃어버린 미래를 찾아서나 개념은 안드로메다로 문서에 나온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나 지구 속 여행의 영화판이 한국에서 개봉한 제목인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가 그 예다.
- 애니메이션 PSYCHO-PASS 1기의 최종화 마지막 컷씬에 등장하는 책이 위의 <스완네 쪽으로>이다. 이후 극장판 PSYCHO-PASS 에서는 코우가미 신야가 이 책을 도둑맞는다. 사실 코우가미도 마사오카의 세이프 하우스에서 챙긴 것이지만 말이다.
- 열화당에서 번역해 낸 만화도 있다. 그림을 맡은 건 스테판 외에. 그런데 8권까지 나왔지만 아직도 2부 정도의 분량만 출간된 상태이다. 이는 프랑스 본토에서 진척이 되지 않기 때문으로, 어쩔 수 없다. 완결하려면 아마 21세기 말까지 살아야 될 테니[29] 끝까지 보고 싶으면 건강관리를 잘 하자.
- 내용의 방대함 탓에 사실 읽는 순서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저마다 읽는 순서를 정한 것이 심심찮게 보이는데, 어쨌든 결말을 마지막에 읽으면 된다. 우선 분량부터가 상상을 초월하므로 순서를 지킨다는 것 자체가 고역일 수 있다. 전부 다 읽기는 너무 길기 때문에, 한 부분만 읽는다면 1부 '콩브레' 중 마들렌 삽화, 콩브레 묘사, '스완의 사랑' 등을 주로 읽는다.
- 1987년 새 판본이 나온 이후 세계 각국에서는 완역 작업이 활발하다. 미국에서는 이미 새 판본의 완역본이 나왔고, 중국과 일본에서도 프루스트 전공자들이 번역 중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번역 속도가 조금 빨라서 ‘소돔과 고모라’ 1부까지 발간됐고, 중국에서는 번역 도중에 번역자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7. 외부 링크
[1] 전세계 언론이나 문학 사이트에서 뽑은 '최고의 책 리스트' 들을 모두 모아 알고리즘으로 환산해 만든 리스트에서 이 책이 2위를 기록했다.출처[2] 그래서 이 소설이 마들렌 과자로 유명하며 또한 여기에서 비롯된 프루스트 현상은 이미 검증된 효과로 알려져 있다.[3]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권인 <스완네 집 쪽으로>의 원고를 읽어본 한 편집자는 원고출판을 거절하는 편지에서, '제가 아둔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이 잠들기 전에 침대에서 뒤척이는 장면을 묘사하는데 서른 페이지나 필요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라고 적었다(...).[4] 당시 프랑스의 한 독자가 출판사로 보내면서 적은 감상에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라고 적혀있었을 정도이다.[5] 당장 상기된 것과 같은 장황한 석양 묘사만 해도, 보닝턴이 어떤 화가인지만 알면 딱 그림으로 그린 듯한 바다와 석양 풍경화를 묘사하고 있음을 단박에 알수 있다.[6] 3, 4권은 1, 2부로 나뉘어 출판되었다.[7] 출처[8] 출처[9] 출처[10] 출처[11] 출처[12] 출처[13] 특히 1960년대 프랑스의 신소설[14] 출처[15] 출처[16] 출처[17] 출처[18] 출처[19] http://mobile.kyobobook.co.kr/showcase/book/KOR/9788901238777출처[20] Edmund White, "Proust the Passionate Reader," New York Review of Books (April 4, 2013), p. 20[21] 출처[22] 출처[23] 출처[24]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5321208[25] 국내에 프루스트에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학자다.[26] 출처[27] 프랑스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입지를 가졌던 판본. 현재는 출간되지 않으며 이후 갈리마르 판이 명성을 이어받았다.[28] 원전 텍스트를 많이 다루는 언어학도들은 알겠지만, 똑같은 작품이라 해도 출판사마다 편집한 것이 다르고 채택한 원고가 달라 느낌이 각기 다르다. 따라서 올바른 텍스트를 정하는 일은 연구나 학문에서 제일 중요한 일이며, 이는 번역의 질에도 직결되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29] 만화본 출간은 프랑스 현지에서 어마어마한 후원을 받고 있으며, 제작팀은 그림작가들을 교체해 가면서라도 완결을 내려고 작정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