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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4 10:34:39

알랭 드 보통

알랭 드 보통
Alain de Botton
FRSL[1]
파일:external/scottbarrykaufman.com/alaindeboton.jpg
<colbgcolor=black> 국적
[[스위스|]][[틀:국기|]][[틀:국기|]] |
[[영국|]][[틀:국기|]][[틀:국기|]]
출생 1969년 12월 20일 ([age(1969-12-20)]세)
취리히
직업 철학자, 소설가
활동 1993년 – 현재
학력 드래곤 스쿨 → 해로우 스쿨 (졸업)
케임브리지 대학교, 곤빌 앤 키즈 컬리지
(사학 / B.A.)
킹스 칼리지 런던 대학원[2]
(철학 / MPhil) (1992년)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프랑스 철학 / 중퇴)
종교 무종교(무신론)
웹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British_Council_Logo.png
서명 파일:Alain de Botton_Signature.jpg

1. 개요2. 기타3. 작품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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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나고[3] 영국에서 자란 소설가, 수필가, 철학자. 유대계로 은행가이며 예술품 수집가인 아버지를 둔 덕택에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여러 언어에 능통하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졸업했다. 이어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철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러고 나선 미국으로 떠나 하버드 대학교에서 프랑스 철학을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시작했으나 얼마지나지 않아, 대중서적을 집필하기 시작하면서 그만두었다.

스물세 살에 쓴 첫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Essays in Love》에 이어 《우리는 사랑일까 The Romantic Movement》 《키스 앤 텔Kiss and Tell》에 이르는,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이 현재까지 20여 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어 수많은 독자를 매료시켰다. 자전적 경험과 풍부한 지적 위트를 결합시킨 이 독특한 연애소설들로 그는 ‘90년대식 스탕달’ ‘닥터 러브’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또한 문학과 철학, 역사, 종교, 예술을 아우르며 일상의 가치를 발견하는 에세이 《불안》 《일의 기쁨과 슬픔》 《여행의 기술》 《행복의 건축》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뉴스의 시대》 《영혼의 미술관》 등을 냈다. 2003년 2월 프랑스 문화부 장관으로부터 문예공로훈장 슈발리에(Chevalier de L'ordre des Arts et des Lettres)[4]를 받았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유럽 전역의 뛰어난 문장가에게 수여하는 ‘샤를르 베이옹 유럽 에세이상’을 수상했다. 현재 런던에 살고 있다.

2. 기타

3. 작품 목록



[1] Fellow of the Royal Society of Literature (FRSL)
왕립 문학회 회원
[2] 졸업
King’s People - Alain de Botton
[3] 현재는 스위스와 영국의 이중국적을 갖고 있다.[4] 이를 두고 '슈발리에 드 로드르 데자르 에 레트르라는 기사 작위'를 받았다고 서술되어 있었으나, 틀린 서술이다. 작위가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5등급에 상당하는 훈장의 이름이 기사(슈발리에)일 뿐, 이는 2등급 이상에 해당하는 영국의 기사작위와는 무관하다. 기사작위라 하기에는 격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최고등급 훈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Sir'과 같은 특권성 칭호는 주어지지 않는다. 이는 문화훈장일 뿐, 작위의 성격은 애초에 띄지 않는 것이다. 공화국프랑스장관이 작위를 준다는 것부터가 넌센스.[5] 가나 대표 오취리의 인생 학교가 공짜냐는 질문에는, "우리가 자본주의의 적은 아니다." 라고 했다.[6] 유세윤은 영국 대표로 초청하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