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Symphony교향곡(交響曲)은 클래식에서 관현악단 혹은 취주악단에 의해 연주되는 여러 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기악곡을 말한다. 클래식 장르의 기악곡들 중에 가장 규모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악의 집대성이라고도 일컬어진다.
2. 구성
보통 4개의 악장, 혹은 그 이상의 악장이거나 최소한 3악장으로 구성되는게 일반적이다. 협주곡이 3악장으로 된 것이 일반적인 것과는 달리 교향곡은 4악장이 일반적이다. 1악장에 소나타형식의 빠른 악장이 나오고, 2악장에서는 노래의 구성과 비슷한 형식인 리트 형식의 느린 악장이 나온다. 3악장에서는 하이든이나 모차르트 등 고전 시대까지는 미뉴에트가 나왔지만, 베토벤이 처음으로 스케르초를 채용한[1] 이래 베토벤 이후로는 스케르초가 일반적으로 오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악장은 론도나 소나타 형식의 매우 빠른 악장으로 화려한 피날레로 곡을 마무리하게 된다.[2]이런 구성이 기초적인 구성이지만 음악가 개개인의 성향이나 의도에 따라서 느린 악장과 스케르초 악장의 배치가 바뀌거나 빠른악장-느린악장-빠른악장의 가장 기초적인 3악장 체제로 작곡하거나, 아예 악장의 구분 없이 단일 악장으로 구성되기도 한다. 낭만주의 이후의 교향곡들은 5악장 또는 그 이상의 구성인 것들도 종종 보인다.[3]
3. 악기 편성
대략 하이든부터 브람스 까지인 고전-전기 낭만주의 시대에 교향곡의 편성은 2관 편성[4]의 관현악단이 연주하는게 보통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관현악 편성이 점점 거대해져 3관 편성, 4관 편성의 교향곡들도 나타났다. 여기에 솔리스트 성악가에 4부 합창[5], 아동 합창[6]까지 가세하면 교향곡의 연주 인원은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게 된다. 하지만 관현악단의 규모와 연주 인원을 고려해서 되도록이면 연주가 가능하도록 편성을 조정하는게 일반적이다.관현악 외에 19세기 무렵부터 관악기의 발달과 함께 등장한 취주악을 위한 교향곡들도 엑토르 베를리오즈와 파울 힌데미트, 니콜라이 먀스콥스키, 앨런 호바네스, 빈센트 퍼시케티, 비토리오 잔니니, 알프레드 리드 등에 의해 작곡되어 있다. 이외에 샤를-발랑탱 알캉 같은 작곡가들은 피아노 독주를 위한 작품에 교향곡 타이틀을 붙이기도 했고, 바이올린 협주곡 양식인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이나 피아노 협주곡 양식인 댕디의 '프랑스 산촌 사람 노래에 의한 교향곡'같은 곡들도 있지만 이들 작품은 교향곡 범주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특이한 케이스로 오르간 교향곡(Organ symphony)이 있다. 이 단어는 물론 생상의 교향곡 3번 같이 파이프오르간이 포함되는 관현악 편성의 교향곡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대개 오르간 독주 만으로 연주되는 다악장의 곡을 뜻한다. 특히 프랑스에서 오르가니스트를 겸업하던 작곡가들이 많이 썼고, 샤를-마리 비도르와 루이 비에르느, 마르셀 뒤프레의 곡이 유명하다. 개중에는 피에르 코슈로처럼 악보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즉흥연주로 교향곡을 만드는 굇수급 오르가니스트 겸 작곡가도 있다.
4. 역사
4.1. 고전파 이전
중세 시대의 서양음악은 교회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기도문을 노래로 만든 성악곡이 주류가 될 수밖에 없었다.[7] 르네상스 이후, 가사를 배제한 절대음악을 숭상하는 분위기와, 궁정 음악[8]의 활성화로 점점 악기를 사용하는 기악곡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미뉴에트와 스케르초 등 다양한 종류의 춤곡이나 그에 준하는 여흥음악 스타일 등이 어우러져 교향곡의 요소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사실 교향곡을 가리키는 symphony는 중세에서는 동시에 울리는 완전협화음을 의미했다가, 르네상스 이후로는 여러 기악곡들의 명칭으로 쓰이게 되었다.일반적으로 오늘날 사람들이 아는 교향곡은 오페라의 서곡, 혹은 기악반주의 성악곡의 서주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또한 바로크 시대에 널리 유행했던 합주 협주곡들도 교향곡의 형성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쳤다.
4.2. 고전파 시기 : 교향곡 장르의 정립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서곡에서 빠름-느림-빠름의 구성을 최초로 정립했다. 비발디와 페르골레지, 하세 등 후기 바로크 작곡가들은 이를 계승해 오페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악곡들에 적용했고 소나타 형식의 발전에 기여했다.그리고 삼마르티니(Giovanni Battista Sammartini, c. 1701 - 1775)는 오페라의 서곡을 연주회용 음악으로 독립시켰는데, 빠름-느림-빠름의 3악장으로 이루어진 그의 신포니아(sinfonia)는 현존하는 서양 음악사 최초의 교향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바흐의 아들인 C. P. E. 바흐는 소나타 형식에 미뉴엣을 추가했고, 만하임 학파의 요한 슈타미츠는 다양한 관현악법을 연구 발전시키면서 고전적인 의미의 교향곡들이 양산되기 시작했다.
교향곡 양식의 정립과 발전에는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이든의 공이 크다고 볼수 있다. 하이든은 명확한 형식으로 작곡된 106곡의 교향곡을 남겼다. 또한 그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타난 모차르트는 41[9]곡의 교향곡을 남겼다. 이때에 이르러 소나타 형식의 빠른 1악장-변주곡 혹은 노래 형식의 느린 2악장-미뉴엣의 빠른 3악장-론도,소나타의 매우 빠른 피날레 4악장의 형식이 갖춰졌다. 하이든이나 모차르트 모두 초기에는 3악장 형식의 교향곡을 만들었지만 후기에 이르러서는 점점 4악장의 체제로 굳어졌다.
베토벤은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하에서 교향곡을 작곡하기 시작했지만 3번 영웅에 이르러서는 독자적인 노선으로 접어들었다. 영웅 교향곡에서 베토벤은 소나타 형식의 악장 길이를 늘렸고, 느린 악장에 장송행진곡을 도입하는 시도를 했다. 이어 5번에 이르러서는 하이든이나 모차르트가 교향곡에서는 쓰지 않았던 악기들인 피콜로와 콘트라바순, 트롬본을 도입해 음량을 증대시키고 음악적 표현의 효과를 풍부하게 했다. 6번 '전원' 에서는 표제적 음악을 시도해 [10] 후대의 리스트에 의해 활성화된 표제음악과 교향시에 영향을 미쳤으며 마지막 교향곡인 9번에서는 교향곡에 합창을 추가했다.[11] 이러한 베토벤의 다양한 시도들은 후대의 음악가들에게 그대로 계승되었다.
4.3.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
베토벤 이후의 낭만주의 시대에 교향곡은 음악가의 음악적 성취의 가장 최고봉을 상징하는 작품이 되었고, 음악가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베토벤이 시도한것 같은 실험적 시도는 크게 나타나지는 않았다. 슈베르트, 슈만, 멘델스존은 베토벤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는데, 베토벤과 동시대를 살았던 슈베르트의 경우 형식적으로 베토벤의 영향하에 놓였지만, 이후 등장한 슈만과 멘델스존은 전기 낭만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소나타 형식 등 교향곡의 기본적인 틀을 존중하면서도 조금 더 자유로운 형식을 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후배인 브람스는 4악장 형식, 소나타 형식, 2관 편성을 준수하는 보다 보수적인 성향으로 돌아갔으나 형식과 내용, 전개의 완벽에 가까운 조화로 베토벤 이후 다시 한번 교향곡 역사에 이정표를 남겼다.다른 한편으로 베를리오즈는 환상교향곡에서 베토벤 이후로 편성규모의 확대를 시작한 이래로 대규모 오케스트라에 의한 교향곡의 길을 열었다. 베를리오즈는 12대의 하프와 오르간에 400여명의 합창단, 전대미문의 초대형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연주되는 작품[12] 을 구상했을 정도로 교향곡에서 대형 편성을 추구했던 인물이었다. 또한 베를리오즈는 협주곡 같은 교향곡을 작곡하기도 했다(비올라가 독주 악기로 등장하는 이탈리아의 해롤드).
후기 낭만파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시도들이 집약되어 나타났다. 브루크너는 소나타 형식을 확대하였는데, 세 개의 주제를 다루면서도 전개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능숙한 작곡 기법을 보여 교향곡을 한 차원 더 높은 경지로 이끌었다. 그는 바그너의 영향을 받아 화려한 금관악기의 주법을 구사했으며, 오르간의 연주법에서 응용한 화성의 전개등을 선보였다.
브루크너와 바그너의 영향을 나름대로 소화한 말러는 베를리오즈가 추구한 초대형 편성의 교향곡 노선을 계승했는데, 교향곡 2번 "부활"에서 베토벤과 비슷하게 곡의 말미에 합창이 등장하는 교향곡을 썼다.[13] 중기 이후에는 조성의 체계가 점점 무너지고 점점 편성이 커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 정점을 찍은 게 천인교향곡으로 불리는 교향곡 8번. 후기에 가서는 소나타 형식과 중심조성마저 포기할 정도로 점점 현대음악에 접근해가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교향곡 10번 1악장 서두에 비올라만으로 연주되는 쓸쓸한 주제는 조성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거기에 1악장과 5악장에서는 무려 9개의 반음이 한꺼번에 울려퍼지는 충격적인 불협화음이 등장한다.[14] 그리고 말러에게 다대한 영향을 받은 아르놀트 쇤베르크와 안톤 베베른은 현대음악의 포문을 열게 된다.
한편 후기 낭만주의 시대에 동유럽에서는 국민악파가 형성되었다. 동유럽의 작곡가들도 나름대로의 교향곡들을 작곡했고 주류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기 나라의 독특한 음악적 소재들을 활용한 교향곡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동유럽의 교향곡 작곡가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게 되었는데, 독일 고전낭만주의 교향곡 형식을 존중하는 작곡가와, 이를 무시하고 민족적 선율의 반복을 강조한 국민악파 작곡가다. 드보르자크, 차이콥스키는 독일 고전낭만주의 형식을 존중하면서도 민족적 특색을 반영하여 성공적인 작품을 작곡했다. 반면 보로딘, 림스키-코르사코프, 시벨리우스, 글라주노프 등 국민악파는 고전 형식미에 집착하지 않은 채 교향곡을 작곡했다. 이런 관점의 차이로 러시아의 경우 국민악파 작곡가들과 차이콥스키 사이에 골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차이콥스키는 독일 음악을 추종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15]
20세기에 접어들고 현대음악이 등장하면서 교향곡의 위상은 낭만주의 시대와는 달리 약화되었다. 세계 대전으로 인하여 제국주의 시기 발달한 유럽의 대형 오케스트라들이 몰락함으로써 작곡가들은 거대한 규모의 교향곡을 작곡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하여 교향곡에 과연 미래가 존재하는가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나타나게 되었다.[16] 쇤베르크나 베베른은 12음 기법을 도입한 소규모의 교향곡을 내놓았고, 스트라빈스키나 프로코피예프는 신고전주의에 입각한 교향곡[17]을 내놓기도 했다.
20세기 교향곡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소련의 쇼스타코비치였는데, 고전적인 소나타 형식을 계승하면서도 근현대 음악의 어법을 최대한 활용한 절충적인 교향곡들을 내놓았다. 크게 조성을 벗어나지 않는 선율미를 보이면서도 날카로운 풍자의 멋을 갖춘 그의 교향곡들은 소련과 서방을 막론하며 대중들에게 큰 호소력을 발휘했으며, 지금까지도 그를 독특한 위치의 작곡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편으로, 20세기 후반에는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나 알프레드 슈니트케가 교향곡의 한계를 돌파할 방법을 나름대로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각기 불확정성 기법과 폴리스타일리즘이라는 개성적인 어법으로 침잠해가는 교향곡의 역사에 의미있는 돌파구를 제시했다고 여겨진다. 한국 출신의 작곡가로는 윤이상이 1980년대에 교향곡 작곡을 시작하여 다섯 편의 작품을 남겼다.
21세기에도 여전히 교향곡은 나오고 있다. 핀란드의 지휘자인 레이프 세게르스탐은 무려 200여곡이 넘는 미니 교향곡들을 내놓았고,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는 2005년에 8번 교향곡을, 필립 글래스는 2005년에 7번과 8번 교향곡을, 존 쿨리지 애덤스는 2007년에 교향곡 "원자폭탄 박사"를 내놓았다. 그러나 클래식 작곡이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지고 침체의 길을 가고 있는 만큼 쇼스타코비치의 반열을 잇는 심포니스트가 나오기에는 요원해 보이며, 무엇보다도 현대 작곡가들이 교향곡이라는 전통적 장르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 나오더라도 전통적인 형식미를 준수하는 교향곡이라곤 찾아볼 수 없으니, 사실상 교향곡의 명맥은 끊겼다고 보는 시선도 많다.
한국에서는 나운영[18]이 13개의 교향곡을 작곡했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3번 완성 뒤 14번을 구상했지만 건강 악화로 타계하면서 완성되지 못했다고 하며, 무엇보다 사후에는 거의 연주되지 않고 있다. 나운영 외에도 정윤주가 다섯 곡을, 조념이 파기 혹은 분실된 작품을 제외하고 제3번 '통일'과 제4번 '산하' 두 곡을 남기는 등 나름대로 교향곡들이 계속 작곡되고 있다. 김순남도 남북 통틀어 한반도 최초의 교향곡들인 교향곡 제1번과 합창 교향곡 '태양없는 땅'을 작곡했다고 하지만, 월북으로 인해 두 작품의 악보가 모두 행방불명인 상태다.
북한에서도 교향곡이 작곡되고 있는데, 1960년대 후반까지는 신도선의 교향곡 제1번이나 문경옥의 교향곡 제1~6번같이 전통적인 양식에 따른 교향곡들이 나왔다. 하지만 그 후 문화예술계에서 실권을 쥐락펴락하기 시작한 김정일이 쓸데없이 얕은 지식으로 감 놔라 대추 놔라를 시전했기 때문에 '모든 기악 작품은 기존의 노래를 주제로 창작되어야 한다'는 괴이한 논리가 적용되었고, 그 때문에 '피바다'[19]나 '꽃파는 처녀', '한 자위단원의 운명'같은 혁명가극 노래들을 주제로 한 교향곡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성악 종속 현상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는데, 1990년대에는 각각 김일성, 김정일 찬양 가요들을 주제로 한 '경례를 받으시라'와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같이 제목부터 손발퇴갤하게 만드는 곡들이나 영화 주제가들을 주제로 한 '내 나라 제일로 좋아', 오래된 혁명가요들을 주제로 한 '지원'과 '항일대전의 승리'등이 작곡되었다. 이렇게 기악 작품 전반이 최고 권력자의 논리에 잠식된 덕에, 1960년대 이후에는 교향곡에서든 다른 관현악 작품에서든 공통적으로 창작력의 빈곤과 강한 정치색에 따른 편곡식 작품들만이 양산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5. 파생 악곡들
교향곡이 서구 클래식의 최고봉으로 위치가 격상되면서, 다른 장르에서도 '교향'이라는 수식어를 추가로 붙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비슷하게 여러 곡을 묶어 구성하는 모음곡[20]도, '교향 모음곡(Symphonic Suite)'으로 부르는 곡들이 있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가 대표적인 예. 비슷한 예로 '교향 서곡(Symphonic Overture)', '교향 협주곡(Symphonic Concerto)' 등도 있지만, 이 쪽은 드문 편이다.그리고 이 교향 모음곡에서 발전된 형태로 곡들을 묶어 구성하나 이를 메들리로 엮은 경우에는 비공식적인 용어로 '교향 연곡'[21]이라고 부른다.
규모가 작은 교향곡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단어인 신포니에타(Sinfonietta)라는 곡들도 있고, 대개 10~20분 가량의 소규모 작품들이 주가 된다. 다만 간혹 가다가 레거나 코른골트의 작품처럼 연주 시간이 40~50분에 이르는 대교향곡을 신포니에타로 칭하는
고전 시대에는 교향곡과 협주곡의 양식을 조합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Sinfonia concertante, 협주교향곡)'라는 장르도 있었다. 대개 두 개 이상의 복수 독주악기들에 관현악이 가세하는 편성으로 쓰여졌는데,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작품들이 유명하다. 하지만 이후 교향곡과 협주곡이 점차 독자적으로 분화되고 발전하면서 이러한 창작 형태는 거의 사라졌고, 프로코피에프 등의 작곡가들이 가끔 리바이벌한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리고 리스트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에 의해 유명해진 교향시도 있다. '시' 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듯이, 문학적인 수사가 거의 필요없는 절대음악 계열의 교향곡과 달리 특정한 스토리에 의해 음악이 작.편곡[23]되는 표제음악 계열의 장르다. 대부분 악장 구분 없는 단악장 작품이지만, 슈트라우스의 경우 교향곡 형식을 응용한 30분 이상의 대작들도 많이 썼다. 가정 교향곡이나 알프스 교향곡도 이름은 교향곡이지만, 구성 방식은 교향시이므로 요즘은 교향시로 분류한다.
6. 나무위키에 있는 교향곡 문서 목록
자세한 내용은 교향곡 목록 문서 참고하십시오.7. 기타
교향곡 공연에서 간혹 악장이 끝날 때 박수를 치는 관객들이 있다. 물론 곡 중간에도 박수하는 대중음악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잘 한다는 칭찬의 뜻으로 박수를 할 수도 있겠지만, 클래식 음악에선 전혀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자칫 연주자들은 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는 것이 "더는 못 들어줄 정도로 엉망이니 빨리 끝내라"는 야유의 의미로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24] 그렇기 때문에 박수는 아껴 두었다가 마지막 악장이 끝난 후에 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다.2016년 'BBC Music Magazine'에서 전세계 저명한 현역 지휘자 151명에게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 20개를 설문조사한 결과는 아래와 같다.
No. | 작곡자 | 제목 |
1 | 루트비히 판 베토벤 | 교향곡 3번 <영웅> |
2 | 루트비히 판 베토벤 | 교향곡 9번 <합창> |
3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교향곡 41번 <주피터> |
4 | 구스타프 말러 | 교향곡 9번 |
5 | 구스타프 말러 | 교향곡 2번 <부활> |
6 | 요하네스 브람스 | 교향곡 4번 |
7 | 엑토르 베를리오즈 | 환상교향곡 |
8 | 요하네스 브람스 | 교향곡 1번 |
9 | 표트르 차이콥스키 | 교향곡 6번 <비창> |
10 | 구스타프 말러 | 교향곡 3번 |
11 | 루트비히 판 베토벤 | 교향곡 5번 <운명> |
12 | 요하네스 브람스 | 교향곡 3번 |
13 | 안톤 브루크너 | 교향곡 8번 |
14 | 장 시벨리우스 | 교향곡 7번 |
15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교향곡 40번 |
16 | 루트비히 판 베토벤 | 교향곡 7번 |
17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 교향곡 5번 |
18 | 요하네스 브람스 | 교향곡 2번 |
19 | 루트비히 판 베토벤 | 교향곡 6번 <전원> |
20 | 안톤 브루크너 | 교향곡 7번 |
No. | 작곡자 | 개수 |
1 | 루트비히 판 베토벤 | 5곡 |
2 | 요하네스 브람스 | 4곡[25] |
3 | 구스타프 말러 | 3곡 |
4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2곡 |
안톤 브루크너 | ||
6 | 엑토르 베를리오즈 | 1곡 |
표트르 차이콥스키 | ||
장 시벨리우스 |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
베토벤 이후로 작곡가들이 10번 교향곡에 도전하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완성하지 못하거나 작곡 도중 사망하는 사례들이 9번 교향곡의 저주로 언급되곤 한다. 사실 베토벤 이후 10곡을 넘긴 작곡가들도 찾아보면 꽤 있지만 대부분 인지도가 낮은 게 문제이다. 범위를 '당대를 대표할 만한 대작곡가로 널리 인정받는 사람'으로 한정하면 베토벤 이후 10곡을 확실하게 넘긴 작곡가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한 명 뿐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상기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 20개"의 작곡가에도 이름을 올렸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에 사용된 OST를 작곡가 자신이나 전문 편곡자가 클래식 형태의 악곡으로 2차 창작하는 시도도 많이 하는데, 교향곡으로 내놓은 경우는 스기야마 코이치의 교향곡 '이데온' 과 노미 유지의 교향곡 'AIR' 가 있다. 물론 전문 클래식 작곡가들의 교향곡과 비교하기는 뭣하지만, 노미의 경우 원곡 노래나 BGM의 성격을 180도 전환시켜 주제로 활용하고 전통 교향곡 형식을 준수해 굉장히 이색적이고 독자적인 작품으로 만들어 놓았다.
[1] 베토벤은 교향곡 2번 3악장에 최초로 스케르초 형식을 채용했는데, 전작인 교향곡 1번 3악장의 미뉴에트도 내용상 이미 스케르초의 기운이 감지되는 면이 있다.[2] 물론 다 그런 건 아니며 한가지 예시를 들면 차이콥스키의 6번 비창 교향곡이 있다. 느린 4악장을 가졌고 화려한 피날레가 아니라 소리가 서서히 소멸한다.[3] 올리비에 메시앙의 투랑갈릴라 교향곡은 10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미국의 작곡가 호바네스의 교향곡 9번은 한 술 더 떠 24악장으로 구성돼 있다.[4] 각 목관부의 연주자가 2명인 오케스트라의 편성.[5]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6] 말러의 교향곡 중 다수. 심지어 8번 교향곡은 스케일 좀 크게 잡으면 연주자가 1000명에 달하거나 그 이상인 경우도 있어서 '1000인 교향곡(symphony for thousand)'라고 불린다. 흠좀무.[7] 중세의 종교음악은 악기 없이 사람의 목소리로만 부르는게 일반적이었고, 대성당 하면 떠오르는 장엄한 스케일의 파이프오르간이 도입된 것은 그 이후.[8] 꼭 왕궁만이 아니라, 유력 영주들에게 고용된 관계의 음악가들이 잘 나갔다. 예컨대 하이든.[9] 사실은 위작도 있고, 누락된 곡도 있고, 자기가 일부만 쓴 곡도 있어서(37번) 정확하지 않은 숫자다. 다만 마지막 교향곡은 41번 '주피터'가 맞다.[10] 그때까지의 교향곡이 악장 첫머리에 빠르기말 정도만이 적혀있던것과 대조적으로, 전원의 각 악장은 '전원을 도착했을때의 상쾌한 마음', '시냇가의 풍경', '시골 사람들의 즐거운 모임', '폭풍우', '폭풍우가 그친 후의 즐거움과 감사하는 마음'의 설명이 붙어있다. 이는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에서 다시 한 번 계승된다.[11] 교향곡에 성악을 결합하는 시도는 베토벤 이전에도 있었다. 프랑스 혁명기의 작곡가들이었던 메윌(Étienne Nicolas Méhul, 1763-1817)이나 파에르(Ferdinando Paer,1771-1839)가 대표적인 인물. 다만 이들의 시도는 제대로 작품으로 구현되지는 못했다.[12] Te Deum. 교향곡은 아니고 일종의 종교음악이다. 편성이 너무 커서 일반적으로는 줄여서 연주한다. 지못미[13] 다만, 베토벤과 다른점은 우선 4악장이 아니라 5악장이라는 점과 4악장에서 독창이 나온다는 점 등이 있다. 실제로 말러 역시 이 곡을 작곡하면서 베토벤을 따라했다고 비판받지는 않을까 걱정했다고 한다.[14] 옥타브를 제외한 모든 반음 12개중 3개만을 제외한 것이다.[15] 이로 인해 차이콥스키는 지금도 압도적인 대중적 인기와 달리 러시아 내에서의 음악적 평가에 있어 러시아 5인조에 비해 미묘하게 박한 대접을 받고 있다.[16] 다만 제2빈악파 작곡가 모두 대형 오케스트라를 위한 무조 작품을 쓴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17] 스트라빈스키의 시편교향곡, 프로코피예프의 고전교향곡이 그 예[18] 군가 '전우'를 작곡한 사람이다.[19] 이는, 일제강점기 때의 일본에 저항,항거하는 내용으로, 지휘자 김홍재에 의해 일본 초연, 한국 전주시립교향악단에 의해 한국에서 공연된 기록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교향곡 피바다 참조.[20] Suite. 일본식 한자어로 '조곡' 이라고도 하나, 21세기 들어 '모음곡'이라는 표현으로 순화되는 경향이 있다.[21] 북한에서는 교향련곡이라고 부른다. 사실상 비공식적인 용어이나, 장룡식이 조선로동당과 관련된 노래를 묶어서 관현악 메들리로 엮은 '당에 드리는 노래'라는 곡이 교향연곡으로 조선국립교향악단에서 공연되었으며, 김정일의 호평을 받았다.[22] Chamber Symphony[23]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음악예술론에 의해서 기존의 노래를 주제로 기악작품을 창작해야 한다는 이론 때문에 기존의 노래를 주제로 교향시를 창작한다. 기존 노래를 바탕으로 특정 스토리에 의해 곡이 편곡되는 경우다. '전호속의 나의노래'나 '그리움은 끝이없네' 같은 곡들이 예시가 된다.[24] 보다 현실적으로는 전체 연주가 끝날 때까지의 집중, 몰입에 방해가 된다는 점도 있다. 그런 점 때문에 연주가 제대로 진행이 못 되면, 결국 비싼 표값과 귀중한 시간을 내서 연주를 들으러 온 청중들도 손해를 보는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25] 다시 말해서 브람스가 일생동안 작곡한 교향곡 모두가 순위권에 들어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