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10101><colcolor=#000000,#dddddd> 이방인 L'Étrange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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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알베르 카뮈 |
국가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형식 | 장편 소설 |
장르 | 철학 |
언어 | 프랑스어 |
출판일 | 1942년 5월 19일 (프랑스) |
출판사 | Gallimard (프랑스) |
쪽수 | 159쪽 (원서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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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Aujourd'hui, maman est morte. Ou peut-être hier, je ne sais pas.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그게 어제였나. 잘 모르겠다.
도입부의 첫 구절
『이방인』은 프랑스의 작가 카뮈가 1942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친구와 다투는 아라비아인을 권총으로 죽이고는 재판에서 작열하는 태양 때문에 죽였다고 진술하여 사형을 선고받은 주인공 뫼르소가 인생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행복을 느낀다는 내용으로, 주인공의 비논리적 행위를 통하여 근원적인 인생의 부조리를 나타낸 작품이다.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그게 어제였나. 잘 모르겠다.
도입부의 첫 구절
소설은 안 읽었어도 첫 문장은 들어봤다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영역본은 The Stranger, The Outsider, Foreigner 등의 판본이 있지만 주로 The Stranger로 알려져 있다.
2. 줄거리
https://youtu.be/KjAqKr8CpZo?si=eh3eBsq2V9QMyGtq
프랑스 치하의 북아프리카 알제[1]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던 프랑스인 뫼르소(Meursault)는 양로원에 보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장례식장을 가게 된다. 그는 슬픔 같은 별다른 감정의 변화를 드러내지 않는다.[2] 장례 때 어머니의 시신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고 수위가 주는 커피를 마시고, 장례를 치른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양로원에서 새로 약혼자를 사귀었음을 알게된다. 다음 날 여자친구 마리와 이야기하며 희극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고 자신의 집에 가서 같이 잔다.
다음 날에는 이웃인 살라마노 영감을 만난다. 그 영감은 같은 층에 사는 이웃이고, 그의 옆에는 그가 늘 구박하는 개가 항상 함께 있다. 그리고 또다른 이웃 레이몽이 저녁에 초대해서는 자기와 친구가 되자고 한다. 이 레이몽은 평판이 나쁘다. 본인 말로 자신은 창고업자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포주라고 한다. 그리곤 레이몽은 뫼르소에게 자기를 도와달라고 부탁하는데, 도와달라는 일인즉슨 '내게서 돈만 뜯어가고 성의 없이 대하는 여친을 좀 두들겨 패려고 하니 여친을 꼬드겨서 유인할 수 있는 편지를 써 달라'는 것. 뫼르소는 '그를 돕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고 생각해 그를 돕게 된다.
사건이 있고 며칠 후인 일요일에 레이몽은 뫼르소의 일터로 전화를 걸어 뫼르소와 마리를 해변가로 초대한다. 사적인 일로 전화가 왔으니 사장이 싫어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장은 화를 내는 대신 뫼르소에게 파리에 사업소를 차릴 계획인데 그곳에서 일 할 생각이 있는지를 물어보지만, 꽤 좋은 기회임에도 뫼르소는 무미건조하게 대답하여 사장을 실망시킨다.
저녁에는 마리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자신과 결혼할 계획인지를 물어보지만 뫼르소는 마리가 결혼을 요구한다면 자신은 그러겠다고 대답하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대답하고, 함께 외출했을 때에도 거리의 여성들을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에 더해 마리에게도 그 사실을 눈여겨보는지 물어보고 잠시 대화가 단절된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러 가지만 마리는 할 일이 있다며 가버리고, 홀로 식사를 하던 뫼르소의 자리에 기묘한 여자가 합석하고, 마치 기계처럼 이것저것 늘어놓고는 식사를 마치고 빠르게 사라진다. 뫼르소는 이에 호기심을 느끼지만 이내 잊어버린다.
그날 밤, 집앞에서 살라마노 영감을 만나는데, 개를 잃어버려 안절부절 못하며 뫼르소에게도 개를 보았는지 물어본다. 대화 주제가 개에게서 뫼르소의 돌아가신 어머니로 바뀌며 영감이 그녀를 가엾은 어머님이라 칭하지만 뫼르소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어색해하며 대화가 끝난다.
며칠 후 뫼르소는 마리와 레이몽과 함께 레이몽의 친구 마송이 살고 있는 해변으로 놀러간다. 오전시간 수영을 즐기며 마리와 단 둘이 있게 되자 둘은 관계를 가진다. 점심을 먹고 남자 셋이서 산책을 하다 그들을 미행하던 아랍인들과 마주친다. 그 아랍인들 중에는 레이몽 옛 애인의 오빠가 있었다. 싸움이 벌어지는데 아랍인들 중 한명이 칼을 휘둘러 레이몽이 다치고 아랍인들은 도망간다. 레이몽은 치료를 받고 와서 셋이 다시 해변가를 걷는데 아까 레이몽을 공격했던 아랍인들을 다시 만난다. 이번에는 레이몽이 총을 꺼내어 그들을 공격하려 하지만 뫼르소가 말리면서 총을 받아가고, 레이몽에게는 남자답게 주먹으로 싸우고 만약 아랍인이 칼을 꺼낸다면 자신이 총으로 쓰러뜨리겠다고 한다.
아랍인들이 뒷걸음으로 사라져 소동이 마무리되지만 뫼르소는 답답함을 느끼며 시원한 샘가로 간다. 그곳에서 우연히 레이몽을 찔렀던 아랍인을 다시 만난다. 서로 아까의 소동이 끝났다고 생각하여 쉬러 왔다가 마주쳐 당황하는데 아랍인이 칼을 꺼내든다. 칼날에 태양빛이 반사되어 뫼르소의 이마를 찌르고, 뫼르소는 현기증을 느낀다. 그리고 뫼르소는 '태양이 너무 눈부셔서' 자신도 모르게 품에 있던 권총을 그에게 다섯 발 쏜다(한 발로 즉사했지만 뒤이어 시신에 네 발을 연달아 쏜다).[3]
그는 처음에는 법정 등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로 끝날 것이라는 결과를 들었고, 국선변호사[4]나 예심판사[5]도 '당신의 사건은 별 볼 일 없는 정도로 취급될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6]
하지만 어이없게도 법정의 주요 화제는 아랍인 살해 건이 아니라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에 그다지 슬퍼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보였고 놀러 다니기까지 했다는 것이 된다. 뫼르소는 못질이 덜 된 관 뚜껑을 열어 어머니의 시신을 보지 않았고, 수위가 권한 커피를 마다하지 않아서, 어머니의 정확한 나이를 알지 못해서, 운구행렬동안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냉혈한 취급을 받는다. 그를 옹호하려고 단골식당 주인, 살라마노 영감, 마리, 레이몽이 법정에 나와 증언하지만 무시당하거나 오히려 뫼르소에게 불리하게 이용된다. 심지어 검사가 마리를 심문하여 사람들 다 있는 법정에서 뫼르소와 성관계한 이야기까지 공개적으로 하게 만들어 파헤친다. 게다가 판사는 이를 돕거나 방치한다. 이 이야기는 마리가 법정에서 무심코 증언한 것이었는데, 증언하는 도중에 이 증언 때문에 뫼르소가 불리해지는 것을 깨닫고 운다.
또한 뫼르소가 아랍인을 살해한 이유를 설명해야 했을 때 햇빛이 눈부셔서 그랬다[7]는 말만 하는 바람에 배심원들이 뫼르소를 별 것도 아닌 일로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로 오해한 것도 재판이 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재판이 이어지면서 검사는 뫼르소가 후회한다는 말을 단 한 번이라도 한 적이 있냐며 그를 아랍인의 살해를 사전에 계획한 사람이라 칭하고 마리는 그런 행악자의 정부라고 부르는 등 상황은 악화되기만 한다. 변호사는 뫼르소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며, 뫼르소를 <그>라고 칭하지 않고 <나>라고 칭하며 최선을 다해 변론을 하지만 뫼르소는 자신의 죄를 다루는 재판에서 자신이 동떨어진 느낌을 받는다. 무난하게 풀려나거나 가벼운 형벌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그는 어머니의 장례 건과 불충분한 자기변호로 인해 계획 살해범과 무자비한 인간으로 부풀려지며 사형 선고를 받는다.
교도소에서 항소도 포기한 채 집행일만을 기다리는 뫼르소는 거듭되는 부속 신부의 면회를 거절한다. 그러면서 어머니의 삶에 대해, 사형집행의 방식에 대해 생각한다. 종국에는 교도소의 부속 신부가 찾아와 그에게 죄를 털어놓을 것을 권하지만, 그는 신부의 위선적인 면을 꾸짖고 자신의 죽음이야말로 진실되고, 그것이 자신의 삶을 증명한다며 거부한다. 이에 신부는 그의 비정상적인 면모를 보고 불쌍한 인간이라 말하며 떠나고, 혼자 남은 그는 마침내 어머니의 삶과 세상의 애정어린 무심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자신이 가장 바라는 것은 처형되는 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증오를 퍼붓는 것이라는 것을, 그렇게 해서 자신의 이야기가 완벽하게 마무리되고, 자신이 혼자라는 느낌을 최대한 덜 받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3. 등장인물
- 뫼르소(Meursault)- 알제리에 살고있는 프랑스계 정착민이다. 3년 전부터 양로원에 살던 어머니의 죽음을 전보를 통해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뫼르소의 무관심은 자신의 환경에 대한 감정적 분리를 보여준다. 뫼르소는 또한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진실한 사람이다. 무관심으로 사회와 멀어졌지만 마리에게 어느 정도 애정을 보인다. 뫼르소의 어머니는 소설의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녀가 죽기 3년 전에 양로원으로 보내졌다. 뫼르소는 사형 집행 시간이 가까워지자 어머니도 무의미한 우주를 받아들였다고 생각하며 어머니와 친밀감을 느낀다.
- 토마 페레스(Thomas Pérez)- 뫼르소의 어머니가 요양원에 있는 동안 약혼자였다. 그는 뫼르소의 어머니를 위한 장례 행렬에서 뒷짐을 지고, 뫼르소는 따라잡기 위한 노인의 고군분투를 아주 자세하게 묘사한다. 이후 뫼르소의 재판에 증인으로 호출된다.
- 셀레스트(Céleste)- 뫼르소가 자주 방문하는 카페의 주인이다. 뫼르소의 재판에서 증언한다.
- 마리 카르도나(Marie Cardona)- 뫼르소와 같은 직장에서 타이피스트였다. 어머니의 장례식 다음날 공공 수영장에서 뫼르소를 만나 관계를 시작한다. 그녀는 한 번은 뫼르소가 그녀를 사랑하는지, 다른 한 번은 그녀와 결혼하고 싶은지 묻는다. 첫 번째에 그는 아니오라고 대답하고 두 번째에는 제안에 무관심한 것 같았다. 감옥에서 한 번 그를 면회하지만 아내가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방문이 허용되지 않는다. 뫼르소의 재판에서 증언한다.
- 살라마노- 이름으로 보아 이탈리아계로 보이며 일상적으로 개를 산책시키는 노인이다. 그는 개에게 못되게 굴지만 개를 아끼는 면모도 동시에 보여주며, 개를 잃었을 때 그는 괴로워하며 뫼르소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는 뫼르소의 재판에서 증언한다.
- 레이몽 셍테스(Raymond Sintès)- 뫼르소의 평판나쁜 옆집 이웃. 아랍인 내연녀를 구타하는 뫼르소의 이웃이다. 그녀의 오빠와 친구들은 복수를 시도한다. 그는 뫼르소를 갈등에 빠뜨리고 이윽고 뫼르소는 이들 형제 중 한 명을 죽인다. 레이몽과 뫼르소는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처럼 보이며 재판 중에 뫼르소에 대해 증언한다.
- 마송(Masson)- 레이몽이 마리와 뫼르소를 데려가는 비치 하우스의 소유자이다. 마송은 자신의 삶을 살고 행복하기를 좋아하는 평온한 사람이다. 그는 뫼르소의 재판에서 증언한다.
- 죽은 아랍인 - 레이몽의 내연녀의 형제. 알제의 해변에서 뫼르소에게 총에 맞아 살해된다. 레이몽의 내연녀, 그녀의 남동생 및 그의 친구로 추정되는 인물도 아랍인이지만 이 작품에 이름이 나오는 아랍인은 없다. 프랑스 식민지 정착민과 원주민 사이의 거리를 반영하는 묘사다.
4. 해설과 이해
삶의 부조리란 개인의 욕구와 사회의 현실의 불일치에서 오는 것이며, 이 부조리를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인간의 기본조건이라고 카뮈는 역설하고 있다. 뫼르소는 여러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고, 어머니의 죽음이나 애인과의 사랑에서도 별다른 의식을 못하고, 죽기 직전에서야 의식이 깨어나고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 이 작품의 아이러니이자, 백미, 그리고 비극적인 면모다. 마지막 장면을 통해, 뫼르소는 인간의 기본적 깨달음을 성취한다.민음사 판본 뒤 표지에는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순교자 뫼르소'라고 명시했다. 진실을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은 뫼르소의 성격에서 우러나는 것인데, 예컨대 뫼르소는 아랍인을 쏜 게 뜨거운 태양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뫼르소의 변호사는 뫼르소의 감형을 위해 최대한 말이 되게끔 맞출 것을 제안했으나 뫼르소는 "아뇨,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라며 거짓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라 뫼르소는 작중의 어떤 사건이나 서술에서도 거짓을 거부하는 정의를 따르고, 작중 모든 일반인의 시선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그 특유의 고집 아닌 고집을 부리기에 결국 사형을 언도받게 된다.
뫼르소는 세상 일에 별 관심도 없다. 어머니의 죽음마저도 대수롭잖게 여긴다. 이러한 뫼르소의 무감수성은 현대인의 모습을 잘 반영한 실존주의 문학의 면모라고 볼 수 있다.[8]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작품이 안 그렇겠냐마는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카뮈의 작품이나 철학을 해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고백한다.[9] 작품 내에 수많은 상징적 장치가 있고, 부조리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통찰이 깔려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윤리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를 그대로 읽으면 주인공은 그저 '부모의 죽음에 슬퍼하지도 않고, 살인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낄 줄 모르는 소시오패스'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사실 작품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작품의 철학적 사고관을 독자가 이해한다 한들 작중 인물이 누구나 공감하기는 어려운, 범상치 않은 느낌을 주는 건 맞다. 그러나 삶의 살과 열기 속에서 뿌리 박힌 실존의식을 감각의 가능성 및 그것에 대한 소화, 반응에 대응하는 작중의 자아의 부유하는 정체성에 감정이입을 해보면 작품의 의미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카뮈의 철학을 더 쉽게 이해하려면 여러 전문가의 서평을 참고하여 책을 해석하는 것도 좋다. 이방인을 이해하기에 가장 적합한 책은 저자의 철학 에세이인 「시지프 신화」이며 이 두 권을 같이 읽는 것이 「이방인」을 이해하기에도, 카뮈 철학을 알기에도 좋다.[10] 물론 이 에세이 역시 만만하지는 않다. 심도 있게 읽으려면 균형 잡힌 서평 혹은 해설서와 함께 며칠 붙잡고 읽거나 아예 문학을 전공한 사람에게 설명을 부탁하자. 원한다면 「시지프 신화」와 「이방인」을 엮어서 설명해 줄 것이다.
5. 장폴 사르트르의 해석
사르트르는 카뮈의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에 대한 총평과 해석을 1943년 2월에 내놓았다. 동시대에 살면서 카뮈와 철학적으로 대척점에 놓여있으면서도, 카뮈와 마찬가지로 문학가였던 그이기 때문에 서양 철학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탁월한 해석을 내놓았다.시대적으로 카뮈도 사르트르도 이성주의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고, 그 대신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에 관해서 고민했다. 이를 위해 주로 니체와 후설적인 방법이 동원되었는데,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성'이 동원되지만, 그렇게 이성을 통해서 이해가 된것은 결코 진짜 세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후설과 사르트르의 경우에는 그 와중에도 뭔가 일반화 할 만한 방법이 없는가에 대해서 고민을 했다. 반면에 카뮈는 그런 노력은 필요가 없고 그저 내 몸이 느끼는 이 오감에 기반한 현재의 삶에 집중하자는 주장을 한다. "이방인" 소설도 그러한 맥락에서 쓰여진 소설이라고 사르트르는 이해한다. 구체적으로 그가 짚은 부분들은 다음과 같다.
- 철학 : 이방인은 부조리에 관한 소설이다. 사르트르는 이 부조리라는 주제를 프랑스 17세기 고전적 회의주의에서 부터 줄곧 고민되어오던 주제라는 것을 지적한다. 그래서 카뮈가 파스칼적이이며, 프랑스 계몽주의자들과 니체, 프랑스 인식론의 맥락에서 쓰여졌다고 말한다.
- 이방인 : 사르트르는 이방인은 뫼르소를 말한다고 보면서, 이방인이란 순진함을 가지고 현재에만 사는 일종의 '백치'라고 말한다.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사회에 이변을 일으키는 저 기가 막힌 순진한 자라고 말한다.
- 설명하지 않는 책 : 사르트르는 이 소설이 설명, 증명을 하지 않으며 그저 '묘사'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카뮈가 이러한 서술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서양 철학에서의 이성의 무용성을 보여주고 대신에 오직 감각적으로 나타난 이미지 만으로 표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서 카뮈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부조리의 인간'이 어떤식으로 세상을 바라볼지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선택한 서술방법이다.
- 뫼르소는 무감정한 사람인가? :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사르트르가 보기에 뫼르소는 현재의 감각에 온통 쏠려있는 사람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서양철학에서 이원론은 오감과 감정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부분이다. 한국인과 같은 동아시아인은 감정을 독립적으로 파악하고, 중시하는 유교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서양 철학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감정 또한 신체에서 나타나는 현상에 불과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오감하고 묶어서 생각을 했다. 그래서 서양 철학에서 감정은 오감과 마찬가지로 신체적이고, 비정신적이다. 그래서 정신적인 이성이나 영혼에 비하면 무가치한 것으로 취급당했다. 때문에 뫼르소가 감각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곧 감정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는 뜻도 된다. 그럼에도 그가 무감정하게 보이는 이유를 사르트르는 관념화를 전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서양철학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관념화된 결과물이다. 때문에 '사랑'이라는 단어도 관념에 불과하지 우리가 몸으로 느끼는 것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뫼르소가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에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은 오히려 뫼르소가 강하다고 본다. 단지 자신의 몸에 그러한 느낌이 떠오를 때 느낄 뿐이라는 것이다.이 무심한 인물이 문득 맹렬하게 트럭의 뒤꽁무니를 쫒아가서 달리는 차 위에 뛰어오를 수 있을 만큼 대단한 그의 욕망을 보더라도 그렇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엄마(maman)'라는 다정하고 어린애 같은 호칭으로 자기 어머니를 부르면서 어머니를 이해하고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하기를 잊지 않는다.
6. 영향
이 장편 하나로 카뮈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으며, 20대라는 나이에서부터 노벨 문학상 후보에 거론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1957년, 44살이라는 몹시 젊은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11]또한 이 작품은 고전 명작이자 스테디셀러로서 판매량도 엄청나다. 현재까지 한국어를 포함한 100가지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전 세계 판매량이 수천만 부에 달한다. 프랑스 내에서 700만 부, 일본에서 400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7. 기타
이 소설의 제목은 알제리 현지인과 대비되는 본토 출신의 이주민(외지인)이라는 의미와, 사회에 섞이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라는 의미가 함께 담긴 중의적인 표현이다.주인공의 이름 '뫼르소(Meursault)'는 '살인(meurtre)'과 '태양(soleil)'을 의미하는 단어의 앞부분을 따 조합했다. 여담으로 뫼르소는 프랑스 동부에 있는 부르고뉴프랑슈콩테 레지옹에 위치한 코뮌의 이름이기도 하며, '벽과 같은 숲' 혹은 '쥐들의 숲'[12]을 뜻하던 라틴어 단어 muris saltu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카뮈의 다른 소설인 페스트에서 '알제에서 한 상사의 직원이 바닷가에서 아랍인을 죽였다'라며 이 소설에서 벌어진 사건이 지나가듯 언급된다. 그 관련인물 한명이 등장하기도 한다.
번역본으로는 잘 알 수 없지만, 이 소설은 문어체(단순 과거)가 아니라 구어체(복합 과거)로 쓰여진 소설이다. 그래서 그 당시 이와 같은 표현 자체만으로도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프랑스어에서는 현재와 관련 없는 과거를 표현할 때에는 단순 과거를, 현재와 관련 있는 과거를 표현할 때에는 복합 과거를 사용한다.[13] 회화에서는 단순 과거를 사용하지 않고 복합 과거만 사용한다. 결국 거칠게 말하자면 단순 과거는 문어체, 복합 과거는 회화체에 사용된다고 보면 된다. 해서 일반적인 소설은 현재와 관련이 없기 때문에 단순 과거를 사용하며, 이것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용법이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소설에서 복합 과거를 사용했다는 것은 소설의 내용이 현실과 관련이 있다는 의미가 된다. 카뮈 역시 다른 소설인 페스트에서는 문어체를 사용했다.
작품 후반부는 프랑스의 형사 사법 절차를 잘 보여준다. 프랑스는 검찰의 공소 제기에 대해 예심 재판부가 한 번 더 사건을 들여다 본 다음,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최종적으로 기소를 결정하면 사건을 공판 재판부로 넘김으로써 형사재판이 개시된다. 소설의 배경을 기준으로 프랑스 법원의 예심 기간은 오롯이 담당 판사의 재량으로 결정되었다. 뫼르소의 예심이 열한 달 동안 진행된 점은 예심 판사가 사건을 가볍게 봤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며, 법정에서 주인공을 반사회적인 인물로 규정한 검사의 공소장은 예심 판사의 판단이 반영된 결과물이다.[14][15][16]
에드워드 사이드가 대차게 깐 소설이기도 하다. 이유는 인종차별적 내용. 진짜로 인종차별적인지에 대해서는 적어도 주인공이 직접적인 인종차별 행위를 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의견이 갈린다. 주인공 뫼르소는 작중에서 딱히 아랍인을 차별하거나 멸시하진 않으며 작중 인물들의 언행에서 인종차별 의식이 묻어나오긴 하지만 당시 시대상 반영 및 카뮈가 살았던 시기를 고려해야 한다.
오늘날 알제리 현지에서 소설 이방인은 저평가된다. 작중 알제리인이 같잖게 나오는 점도 있지만 카뮈가 알제리 전쟁 당시 알제리인에게 탄압을 하지 말고 자치권을 주자고 주장했지만 결국 알제리 독립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제국주의자나 국수주의자여서 그랬던 건 아니다.
피지배 식민지인 단역이 주인공의 단순 '결단'을 위해서 희생당한 장치 하나로 소모된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는지 알제리 작가 카멜 다우드는 이방인에 대하여 살해당한 알제리인의 동생 시점으로 재구성하는 '뫼르소, 살인 사건'이란 소설을 썼다. 그러한 점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서 첫 문장도 '오늘, 엄마는 아직 살아 있네.'로 시작한다. 그리고 알제리 전쟁을 비롯한 프랑스와 알제리의 악의가 뒤엉킨 근현대사를 수 많은 '이방인'들이 희생당하는 거대한 부조리로 풀어냄으로써 많은 화제를 모았다.
더 큐어의 데뷔 싱글 'Killing an Arab'은 이 소설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제목 때문에 욕을 꽤 얻어먹었다. 결국 'Kissing a Arab'이라는 제목으로 개사되었고 첫 앨범에는 실리지 못 했다.
Project Moon에서 제작한 게임 Limbus Company의 등장인물 뫼르소는 이름부터 이 소설의 주인공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슈퍼 단간론파 어나더 2의 등장인물 하시모토 쇼바이의 과거회상 장면에서 소설의 첫 문장이 패러디되었다.[17] 재미있는 것은 작중에서 하시모토는 자신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서 거짓말과 배신을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지만, 뫼르소는 거짓을 거부하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놓는다는 것이다.
래퍼 E SENS의 앨범 이방인이 이 소설의 제목과 동일하다. 이센스는 앨범의 제목인 이방인이 소설 이방인과는 관련 없다고 하였으나 앨범의 홍보문구로 이 소설의 작가 알베르 카뮈의 명언인 "DON'T WALK BEHIND ME; I MAY NOT LEAD DON'T WALK IN FRONT OF ME; I MAY NOT FOLLOW JUST WALK BESIDE ME AND BE MY FRIEND"를 인용하였다.
[1] 작중에서 구체적인 연도는 나오지 않지만 프랑스 식민제국 시대이고 현대식 아파트, 버스, 타자기 등을 고려할 때 소설 내의 시대적 배경은 1930~1940년대 정도라는 것을 대략적으로나마 유추할 수 있다.[2] 얼마나 자신이 슬픔을 느끼지 않는지 상세하게 설명하겠단 듯이 묘사한다.[3] 뫼르소는 이를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번의 짧은 노크'라고 표현한다.[4] 뫼르소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고 또 필요를 못 느끼겠다고 시크한 태도를 보였지만 예심판사 쪽에서 법은 법이라고 선임해 줬다.[5] 이 사람을 심문하던 예심판사는 이 사람을 종교적으로(물론 기독교) 감화시키려고 하지만 뫼르소가 무신론자인 것을 알게 된 데다가 뫼르소 역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자 포기하고 나중에는 그냥 가볍게 '적그리스도씨'라고 부른다.[6] 그 당시의 알제리는 프랑스령 식민지였던지라 프랑스인이 알제리인을 죽였다는 것은 어느 정도 감쌀 수 있었으니.[7] 이 대사를 〈태양은 가득히〉 극중 마지막 대사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8] 정작 카뮈 본인은 스스로를 실존주의자가 아니라고 여겼다. 실존주의가 본질에 선행하는 실존(장폴 사르트르)을 강조했던 반면, 카뮈는 스스로의 의지로 어쩔 수 없는 존재 자체의 부조리함에 맞서는 인간의 자세를 탐구했기 때문이다.[9] 하지만 문장 자체는 간결하고 구어체로 쓰인 덕분에 어렵지 않은 편이다. 이 작품을 읽은 평범한 프랑스인들은 대부분 자신도 소설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이다. 하지만 혹자는 '이상 작품이 뜻이 어려운 단어가 많이 쓰여서 난해한 건 아니다. 까뮈같은 작품도 마찬가지다'라고 일컬었다.[10] 카뮈는 하나의 주제를 묶는 방식으로 소설과 철학책, 희곡을 썼다. 부조리라는 공통적 주제를 다루는 내용이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이고, 유사하게 집단적 반항을 다루기 위해 소설 「페스트」와 철학서 「반항하는 인간」을 썼다.[11] 역대 2번째의 연소 수상자며 최연소 수상자는 41세로 수상한 정글북의 러디어드 키플링.[12] 뫼르소에 있는 와이너리에서는 지역 홍보 차원에서 이 어원을 밀고 있다.[13] 완전히 들어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영어에서의 과거 시제와 현재 완료 시제를 생각해 보면 대충 어떤 차이인지 느낌은 올 것이다. 영어권 소설은 지금도 과거시제를 주로 사용한다. 혹은 근세 한국어 고전 소설 또는 개역개정 성경 특유의 상투적 어미인 '~하더라'와 현대 한국어 소설의 '~했다'와의 차이와도 유사하다.[14] 공판장에서 검사는 증인으로 출석한 뫼르소의 여자친구 마리에 대해서 예심기간에 출석하여 진술한 사실을 언급했다. 예심판사가 검찰의 기소요청 외 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사건이 요청된 기소 내용보다 심각하다 판단하여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는 경우이다.[15] 프랑스 예심판사제도 폐지에 관한 논의 외법논집 2017, vol.41,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연구소, 유주성[16] 프랑스의 檢察制度에 관한 硏究 법학연구 2006, vol.16, 연세대학교 법학연구원, 정웅석[17] 본 게임에서의 스크립트는 '어제 부모는 나를 버렸다. 어쩌면 오늘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