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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21:38:42

윌리엄 서머싯 몸

컴패니언 오브 아너 수훈자
Order of the Companions of Honour – (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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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전체 영어 명칭은 Order of the Companions of Honour이지만
영연방의 정부(내각), 관보(런던 가제트), 왕실 등 공공기관 웹사이트에서 약칭 Companion of Honour로 표기,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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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서머싯 몸
William Somerset Maugham
CH
파일:윌리엄 서머싯 몸.jpg
<colbgcolor=black><colcolor=white>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출생 1874년 1월 25일
프랑스 파리
사망 1965년 12월 16일[1] (향년 91세)
프랑스 니스
직업 소설가, 극작가
대표작 달과 6펜스 (The Moon and Sixpence)
인간의 굴레에서 (Of Human Bondage)
서명 파일:윌리엄 서머셋 몸 서명.png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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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white> 학력 <colbgcolor=#fff,#1f2023>하이델베르크 대학교[2]
킹스 칼리지 런던 GKT 의과대학[3]
종교 불가지론 [4]
수훈 명예 훈작 (CH)[5] (1954년)
배우자 시리 웰컴 (Syrie Wellcome) (결혼: 1917년 - 이혼: 1929년)
자녀 메리 엘리자베스 웰컴 (Mary Elizabeth We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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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어록4. 일화5. 대표작6. 몸이 뽑은 세계 10대 소설7. 서머싯 몸 상 (The Somerset Maugham Awards)8. 관련 영상

[clearfix]

1. 개요

"감사합니다. 당신의 책을 읽으며 사전을 찾아보지 않아도 재밌게 볼 수 있었습니다."[6]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현대 작가는 서머싯 몸이다. 이야기를 장식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전개하는 힘 때문에 그를 가장 존경한다."
- 조지 오웰
"영혼을 위해 하루에 두 가지 정도는 싫은 일을 하는 것이 좋다."
- 서머싯 몸

잉글랜드의 의사, 소설가극작가.

그의 시대에서 제일 유명한 작가였으며, 1930년대에는 세계에서 제일 수입이 많은 작가였다.[7]

2. 생애

프랑스 파리영국대사관에서 일하던 영국 외교관의 아들로 프랑스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영국에서 목사로 있던 삼촌에게 거둬진다. 아이를 키워 본 적이 없는 삼촌의 집에서 어린시절을 외롭게 보냈고, 13세에 캔터베리의 왕립 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급우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그러던 중 폐결핵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프랑스에서 요양하던 중 1891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청강생으로 1년간 자유로운 유학 생활을 했다. 이때 그는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후 삼촌의 권유로 공인회계사 공부를 하다가 그만둔 뒤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의과대학을 졸업, 의사 면허를 취득했지만[8] 문학에 더 큰 흥미를 느껴 작가로 활동했다.

다만 작가의 길을 걷기로 한 후 초창기 10년은 그에게 불행한 시기였다. 여러 편의 소설과 희극을 썼지만 이렇다 할 히트작은 없었다. 생활고로 돈을 위해 작품을 쓰기도 했던 그는 1907년 발표한 오스카 와일드풍의 코미디 희곡 '프레드릭 부인'이 성공하면서 경제적, 정신적 여유를 얻게 됐다. 1912년부터는 희극 집필을 그만두고 장편 소설 '인간의 굴레'를 쓰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직전에 완성한 장편 소설 '인간의 굴레'는 작가의 고독한 청소년 시절을 거쳐 인생관을 확립하기까지 정신적 발전의 자취를 더듬은 자서전적 대작으로 대표적 걸작이다. 그 외에 긴 생애에 걸쳐 많은 작품을 남겼다.

제1차 세계 대전MI6 소속 스파이러시아에서 활동한 적이 있으며 그 체험을 소설로 남겼다.[9]

더불어 당시만 해도 극히 일부에게 인정받던 폭풍의 언덕을 높이 평가하며 언론 여기저기에 크게 다루면서 이런 명작이 묻혀지다니 이건 죄악이라고 한탄했다.[10] 이런 노력에 힘입어 이 소설은 재평가되고 영국 문학에서 전설이 되었다. 또한 당시 알려지지 못한 모비 딕도 엄청 높게 평가하여 여기저기 알린 인물이기도 하다. 모비 딕에 밀려보이긴 해도, 몸이 쓴 달과 6펜스나 인간의 굴레 또한 영문학 최고걸작 50에 들어가는 불후의 명작으로 엄청난 평가를 받고 있으며 몸도 서구 영문학 연구가들에게 대문호로 인정받고 연구 중이다.

1916년 남양 여행을 떠나 타히티 섬을 방문했는데, 훗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달과 6펜스'를 발표했다. 혹자는 이 여행이 그가 정보부에서 물러난 후 개인적으로 떠난 것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정보부의 특수 임무를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미국에서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지만, 계속되는 여행으로 부인과 불화를 일으켜 결국 이혼했다.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그는 영국 정부의 요청으로 다시 정보부 활동과 선전 임무 등을 맡아 일했다.

대표작은 폴 고갱의 생애를 모델로 한 '달과 6펜스'. 엘리자베스 2세에게 명예 훈위(CH) 칭호를 받았다. 그후 1965년에 프랑스 니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대중적이고 평이한 문체로 작품을 썼지만, 정교한 플롯으로 잘 짜여진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복잡성과 어리석음을 설득력있게 제시하는 한편,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믿음에 대해 회의를 드러내기도 했다 [11]

3. 어록

Life is not long enough for love and art.
사랑과 예술을 제대로 느끼기엔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도 짧다.
The great tragedy of life is not that men perish, but that they cease to love.
인생의 크나큰 비극은 죽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를 그만두는 것이다.
People ask you for criticism, but they only want praise.
사람들은 비판해 주기를 요구하지만, 사실은 오직 칭찬만 받기를 원한다.
To acquire the habit of reading is to construct for yourself a refuge from almost all the miseries of life.
독서하는 습관은 인생의 거의 모든 불행으로부터 자신을 위한 은신처를 만드는 것이다.

4. 일화

달과 6펜스를 베스트셀러로 만든 방법

젊었을 때 인기 없던 작가 시절, 낚시질로 책을 팔았던 일화가 있다. 신문에 자신은 부자라면서 '결혼하려고 하는데 그 뭐냐, 서머싯 몸이라는 작가가 쓴 소설에 나오는 여성 같은 인물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다'는 광고를 내서 책이 잘 팔리게 했다고.

결혼 자체도 범상치 않게 했다. 제약 사업가 헨리 웰컴의 아내 시리와 불륜을 저질렀다가 걸렸고, 훗날 시리와 결혼한다. 그 후 시리의 딸인 메리 엘리자베스를 자신의 자식으로 입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불행했고 몇 년 후 이혼하게 되었는데 이는 몸의 바람기와 양성애자(혹은 동성애자) 기질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젊은 시절엔 여자들과 바람을 피웠으나 말년엔 남자들과만 관계를 유지했다. 몸 본인은 자신이 여자보단 남자에게 더 끌리는 사람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즉, 양성애자였던 셈이다.

5. 대표작

한국어 번역이 존재하는 작품만 발표 년도순으로 기재.
등 장편 20편, 단편 125편, 희곡 25편. 민음사에서 번역한 인생의 베일(The Painted Veil), 케이크와 맥주(Cakes and Ale), 단편집은 번역이 매우 나쁘니 참조.

6. 몸이 뽑은 세계 10대 소설

1954년 선정

7. 서머싯 몸 상 (The Somerset Maugham Awards)

1947년, 서머싯 몸이 제정한 젊은 문학인(만 30세 이하)들을 위한 상으로 작가 협회(Society of Authors)의 주관하에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매년 시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마땅한 작가가 없을 때는 시상을 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일례로 지난 1975년과 2012년에는 수준에 걸맞은 작품이 없다는 이유로 시상을 하지 않았다.

역대 수상자들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8. 관련 영상

<rowcolor=#fff> 1946년 인터뷰 1955년 인터뷰


[1] 재미있게도 영국 수상을 지냈던 윈스턴 처칠과 생몰년도가 같다. 다만 처칠은 1874년 11월생이고 1965년 1월경에 타계해서 실질적으로는 몸이 약간 더 오래 살았다.[2] 중퇴[3]킹스 칼리지 런던 의과대학(GKT School of Education)의 전신인 St Thomas's Hospital Medical School 졸업.[4] 출처- https://www.britannica.com/topic/Sadie-Thompson[5] Order of the Companions of Honour.[6] 몸의 소설을 읽은 독자가 그에게 보낸 팬 레터의 일부. 그가 얼마나 간결하고 알기 쉬운 글을 썼는지 잘 알 수 있는 일화다. 그래서인지 1990년대 고등학생들의 영어 독해용 교재에도 많이 실렸다.[7] 출처 - The Literature Network[8] 임상 실습 기간에 의술 수련에 힘쓰는 한편, 빈민촌에 살면서 빈민들과 가까이 지냈고, 이때의 생활을 바탕으로 자연주의 경향의 소설 '람베스의 라이자(1897)'를 발표했다. 이 소설이 지식층에 호평을 받으면서 전업작가로 갈 용기를 얻었다.[9] 어셴든, 영국 정보부 요원(Ashenden: Or the British Agent) MI6 소속 스파이들은 제임스 본드처럼 살인 면허는 없었다고 한다. 몸과 마찬가지로 첩보원 활동을 한 작가로는 이언 플레밍, 그레이엄 그린, 아서 랜섬, 바실 번팅, 존 르 카레 등이 있다. 참고로 전부 영국인이다.[10] 실제로 폭풍의 언덕의 경우 작가인 에밀리 브론테제인 에어를 집필한 언니 샬롯 브론테의 명성에 잡아먹힌 탓에 외면받기 일쑤여서 폭풍의 언덕을 집필한 뒤인 1년 후에 숨을 거뒀고 그 이후로 몸이 발굴해내기 전까진 아는 사람만 아는 숨겨진 명작 취급을 받은 채 잊혀져가는 작품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언니의 휘광에 묻혀져 작품이 잊혀져가는 상황인 만큼 몸이 이러한 한탄을 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11] 일부는 유년시절의 고통이 그로 하여금 타인들의 삶을 냉정한 눈으로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