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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8 01:03:42

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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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번역3. 역사4. 대중매체

1. 개요

Jarl

북유럽에서 쓰인 귀족 칭호. 4세기~13세기 즈음 쓰였으며, 영국으로 건너가 백작을 의미하는 Earl의 어원이 되었다.

2. 번역

Jarl은 고대 노르드어에서 족장을 가리키던 말이다. 영어에서는 'Chieftain'이나 'Prince'로 옮기고,[1] 한국어로는 보통 군장, 족장으로 번역된다.

Jarl의 다른 표기로 Iarl, Earl 등이 있었는데, 이 중 Earl은 영어로 전파되어 대륙의 Count에 대응하는 봉건 작위가 되었으나, 그렇다고 Jarl을 Earl로 옮기지는 않는데, 이는 Jarl이 부족제적 지위로서 후일 독일어 Herzog로부터 들여온 봉건제적 지위인 Hertog 등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에서 한국어 번역 역시 부족사회 및 연맹왕국 수준을 벗어나 어느 정도 중앙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이후의 국가 느낌이 짙은 백작보다는 군장이나 족장, 두령 등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3. 역사

야를은 중세 초까지 노르드인 부족사회의 지배층으로, 동유럽의 크냐즈(Knyaz) 및 보야르(특히 보이보드)나 중부유럽의 Fürst(Prince) 등과 대응되는 존재였다. 이들 야를은 프린스처럼 왕의 신하일 수도 있고 독립적인 군주일 수도 있었다. 야를은 기본적으로 귀족이기는 했지만, 주어진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평판이 떨어진다면 자유민들이 쫓아내거나 죽이고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 추대하기도 하였다.

야를은 왕에 대하여 소집에 응해 군대를 조직하고 참전하여 지휘를 맡을 의무가 있었다. 자기 신민에 대해서는 마찬가지로 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었고, 그 대신 자유민들도 야를한테 충성해야 했다. 야를은 이를 위하여 무장가신(huskarl)을 두었는데, 그 재원은 넓은 농장을 경영하여 충당하였고 일부는 다른 자유민한테 빌려주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전시 군사지도자 역할만 수행하는 게 아니라 평시에도 이런저런 역할을 맡았는데, 가령 야를은 매년 자기 영내 회합(Thing)을 열어 재판을 하거나 자유민들의 안건과 의견을 경청해야 했고,[2] 종교행사(Godi)를 주관하기도 했다.

이러한 야를 지위는 차츰 노르드 사회가 분화 및 고도화하면서 봉건제를 받아들였을 때 인접한 독일어권의 영향을 받아 공작(Herzog) 계열 작위로 대체되었다.[3] 그래도 울프 야를처럼 이를 이름으로 쓴 사례가 있었으며 인명으로서는 오늘날까지도 살아남았는데, 성씨로도 본명으로도 모두 쓰인다.

4. 대중매체


[1] Prince의 독일어 대응단어인 Fürst도 원래는 부족적 전통에서 족장을 가리키던 말이었다. 독일어권은 로망스어권과는 달리 고유어인 게르만어 낱말을 쓰기도 했고, 로망스어권에 비해서 실제 봉건제 도입 및 정착이 더 늦었기에, 종래의 Fürst가 봉건 작위화한 상태로 계속 살아남았다.[2] 이 회합 문화는 먼 훗날 현대 의회제도의 모태가 되었다. 아이슬란드의 경우 오늘날에도 국회를 Alþingi(Althingi)이라고 부른다.[3] 이때 다른 부족적 전통의 지위들, 이를테면 야를 다음 가는 자유민이었던 지주(lendmann)은 남작(baron; freiherr)으로 바뀌었고, 전사 가신인 후스카를도 기마전투문화 도입과 함께 기사(ritter) 계열로 대체되었다.[4] 작중에서는 Jarl을 한 글자인 "얄"로 음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