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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3 23:49:21

아오이 호노오/등장인물

1. 개요2. 주인공3. 주인공 주변인 및 친구들4. 기타 학교 사람들5. 호노오의 화실6. 히로인(?)들7. 다이콘 필름 (가이낙스) 관련자8. 편집자9. 만화가, 애니메이션 제작자10. 기타 인물11. 언급만 되는 실존 인물

1. 개요

만화, 드라마 아오이 호노오의 등장인물.

논픽션에 각색을 더한 작품이라 대부분 실존 인물이거나 실존인물이 모델이다.

다만 세부적인 묘사는 차이가 있다. 실제로는 시마모토 카즈히코야마가 히로유키와 친분이 있었다는데 이 만화에서는 없으며, 만화연구부(CAS)와 별로 관계가 없는 걸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그쪽 사람들과 친했었다고 한다. 쇼가쿠칸 신인 만화상을 수상할 때는 실제로는 우라사와 나오키가 같이 있었지만 이 만화에선 왠지 우라사와가 안 나온다.

이렇게 실제와 차이가 좀 있으므로 이 만화의 내용을 전부 사실인 양 믿지 않도록 하자. 애당초 이 만화의 단행본 첫 페이지의 문구부터 「이 이야기는 픽션이다.」이기도 하니.

2. 주인공

3. 주인공 주변인 및 친구들

파일:킷쨩.jpg
* 킷쨩 (きっちゃん)
호노오의 영상학과 동기이자 친구. 본명은 키시모토. 만화판에서는 어려보이는 실눈 얼굴에 항상 이빨을 드러내고 웃고 있다. 가끔씩 눈을 뜰때면 더욱 동안이 된다. 튜닉을 입고[11] 망토를 하고 다닌다. 호노오와 함께 도쿄의 출판사에 만화를 보여주기 위해 가는 등, 만화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 만화에선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으나 실제론 킷짱은 원더 마스미, 미노코와 친분이 있어서 원더 마스미에 대해 이것저것 잘 알고 있다. 이미지와 다르게 호노오를 은근히 맥이면서 호노오가 괴로워하는 걸 보면서 즐기기도 한다. '소년 킹'이라는 만화잡지의 만화상에 응모해 1차 통과는 했지만 잡지가 휴간되어 [12] 만화가 데뷔 기회를 놓쳤다. [13]
실제 시마모토의 친구였으며 그 이후론 어떻게 됐는지 시마모토가 말하지 않아서 알 수 없다. 실존하지만 만화처럼 귀엽진 않다고. 5화에 등장했을 땐 사각 턱에 미소년이 아닌 모습으로 나온다. 어쩌면 그게 실제 외모일지도.

4. 기타 학교 사람들

파일:야노 씨.jpg
* 야노 켄타로 (矢野健太郎)
오사카 예술대학 디자인학과 OB. 디자인과. 학교를 4년 다녔지만 3번 유급해서 1학년.[20]<오사카 예술대학 만화연구회 CAS>[21]라는 만화 연구부를 창설한 인물로 초대 회장을 맡고 있다. 작품을 보이고 평가를 받으려고 문을 두드린 호노오에게 "넌 만화에 목숨을 걸 각오가 있느냐. 난 3번 유급해서 아직도 1학년! 만화가 데뷔를 하지 못하면 인생 좆망한다!"는 귀기를 보여 호노오를 질리게 만들었다. 작중에서 그 말을 들은 호노오는 도망치듯 CAS의 부실을 뛰쳐나가고, 결국 해당 서클에는 들어가지 못했다.[22]
기동전사 건담샤아 아즈나블처럼 흰색 양복에 선글라스를 하고 나오는데 [23] 야노 켄타로를 아는 오사카 예술대학 출신 인물들과 친했던 오카다 토시오 말로는 "아오이 호노오 독자들이 저런 옷 입고다니는 대학생이 현실에 어딨어? 라고 하던데 야노 켄타로는 진짜로 그러고 다녔으니까." 라고 한다. 야노 켄타로 본인이 트위터에서 밝힌 바로는 드라마처럼 하얀 양복을 입고 자전거로 통학하는 건 쪽팔려서 못 했고, 가방에 흰 양복을 담아와서 학교에서 갈아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샤아를 따라한 게 아니고 원래 이렇게 입고 다녔는데 샤아라는 놈이 똑같은 걸 입고 나와서 별명이 샤아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시마모토가 기억했던 것보다 더 이상했던 사람이었다. 건담은 봤으며 좋아한다고 한다.
만화판에서는 호노오가 하려고 했던 진지한 SF 개그를 먼저 하고, 갑자기 SF에서 벗어난 고양이가 아닌 걸! 을 연재하는 등. 호노오에게 계속 충격을 주는 존재로 등장한다. 호노오는 "왜 내가 하려고 했던 걸 전부 네가 먼저 하냐고!" 라고 하면서 분노에 치를 떨었다. 실제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야노 켄타로 본인은 시마모토와 별로 면식이 없었던 관계였다고 한다. 만난지 얼마 안 되어서 데뷔해서 학교에 오지 않게 되었으므로 만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24] 그리고 출판사도 달라서[25] 만화가 데뷔 후에도 만나지 못 했다고. 다만 "만화가가 되지 못 했을 때의 미래를 생각하는 놈은 만화가가 될 수 없다!", "넌 만화에 목숨을 걸 각오가 있느냐, 난 3번 유급해서 만화가 데뷔를 하지 못하면 인생 좆망한다!" 라는 말을 했던 건 사실이며 이 말이 시마모토의 인생에 큰 충격을 줬던 건 사실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존경의 감정이 그림에 담겨서 미형 캐릭터가 되었다고.
결국 점프에 데뷔하게 되면서 대학을 때려치운다. 이 때 마지막으로 만화 동아리 회지에 “대학을 3년 유급했는데 집영사에서 연락이 안 온다”라고 자랑하는 에세이 만화를 그리고 가서 호노오를 빡치게 만든다. 야노 켄타로 본인 말로는 자랑하려고 그린 거 맞다고 한다. 이후로는 호노오의 상상 속에서만 등장.
시마모토는 면식이 없어서 "선배 내도 돼요?" 라고 메일을 보냈는데 야노는 처음엔 "아니 그건 좀..." 이라고 하다가 1화의 안노 히데아키를 멋지게 그려놓은 걸 보고는 "이렇게 그린다면 내도 돼." 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야노는 만화에 나온 자신의 묘사를 보고 충격을 먹었다고 한다. 시마모토는 사례로 MG 사아 전용 자쿠 프라모델을 보내줬다고.
100회 특집 코멘트에서는 "나는 시대가 흘러 잊혀진 작가였는데 시마모토 덕에 재조명을 받았다. 감사하다. 나는 시마모토에게 피해를 받은 것도 없고 원한도 없다." 라고 감사를 표했지만 "내가 유급한 거를 밝히면 어떡하냐! 그리고 이거랑 저거 사실과 다르잖아!" 라고 항의하기도 했다.[26] 야노 켄타로는 이 만화가 나온 뒤 자신의 오너캐를 이 만화의 디자인과 똑같은 걸로 바꿨다.

실사 드라마판은 우라이 켄지가 연기. 드라마판에서는 샤아 아즈나블 패러디가 만화보다 더욱 강해져 아예 등장 테마곡이 샤아 테마곡. # 대사도 샤아 말투로 변경. 그리고 죠의 역할을 야노 켄타로가 대신한다. 심지어 한밤 중에 호노오의 집에 들어와서 "후하하하 인정하고 싶지 않지? 후하하하" 하고 놀리고 가는 기괴한 캐릭터가 되었다. 만화에선 이 정도로 샤아와 똑같은 캐릭터가 아니었다. 야노 본인도 "아니 만화에선 저 정도가 아니었는데?" 하고 의문을 가졌다. 후쿠다 유이치 감독 말로는 시마모토 카즈히코가 "야노 선배는 샤아 말투를 섞어서 농담을 하곤 했다."라는 말을 했고 후쿠다 감독이 이걸 기반으로 부풀려서 캐릭터를 재창조했다고 한다. 야노 켄타로는 "또 시마모토 네가 범인이었냐!, 난 그렇게 말한 기억이 없어!" 라고 반응했다. 이후 만화판으로 역수입되어서 만화에서도 샤아 대사를 하게 되었다.

5. 호노오의 화실

시마모토는 어시스턴트를 여러 명 썼지만 28권 분량 기준으로 나오는 건 마운트 부시 1명. 실제로는 당시 시마모토의 화실에는 후지하라 마사유키(富士原昌幸), 미즈타니 나오키(みず谷なおき), 카츠 아키가 있었다.

6. 히로인(?)들

이 만화에 시마모토의 실제 아내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마모토는 결혼을 30대에 해서 20대 시절을 다룬 이 만화에 현재의 아내가 나올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34] 실제로 이런저런 이유로 멀어진다.[35]

7. 다이콘 필름 (가이낙스) 관련자

다이콘 필름의 멤버이며 이후의 가이낙스의 전신이 되는 그룹. 주인공 호노오의 일방적인 열등감 대상이 된다. 호노오가 도쿄로 상경한 이후로는 나오지 않는다.[44]
파일:안노 군.jpg
* 안노 히데아키
오사카 예술대학 1학년으로 호노오의 동기.
첫 과제인 파라파라 만화[45]를 시작으로 울트라맨을 저예산으로 패러디한 영상#[46] 페이퍼 컷아웃 아니메 등등, 호노오의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는 퀄리티로 호노오의 근자감을 박살내는 괴물로 묘사된다. 호노오의 눈에 보이는 안노는 무슨 수를 써도 뛰어넘을 수 없고, 자신이 생각했던 아이디어들을 먼저 가로채[47] 구현해 버리는 공포스럽고도 증오스러운 천재 동기.[48] 뒷줄에서 뻗친 머리로 입이 찢어져라 웃는 모습을 보면 거의 데빌맨이 따로없다. 시마모토의 서비스로 상당히 멋지게 그려졌지만 실제로는 맨날 피곤해서 죽을 상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초기엔 울트라맨처럼 그렸으나 중간부터 안노의 아내 안노 모요코가 그린 만화 감독부적격에 나오는 안노처럼 그리게 된다.
전설거신 이데온을 숭배했던 실존인물과 마찬가지로 방에 이데온의 포스터를 붙여 놓았다. 이 포스터는 이사를 해도 옮겨다 붙일 정도. 2년차의 애니 제작 파트에서도 모아들인 스탭에게 일단 이데온 상영회를 시작하고 볼 정도. 그외에도 자신의 명치께에 컬러 타이머 같은 원형 물체를 붙이며, 쓰러질때마다 괴수물 흉내를 낸다. 씻지 않는 습관을 표현한 것인지 항상 옷에 꼬질꼬질하게 때가 껴 있다. 친구인 야마가, 아카이와 함께 다닐 때 특히 티가 난다.
행적은 우리가 아는 그 실존 인물을 따르지만 실제로는 안노 자신의 교우관계가 만화보다 넓었고[49] 안노와 시마모토하고는 전혀 교우가 없었다. 둘이 대학 시절 같이 찍은 사진이라고 돌아디니는 사진이 있는데 그건 1985년 잡지 대담 기획 때 찍은 것이다. 즉 대학 때 찍힌 사진이 아니다. 대학 때는 친구는 아니었다고. 만화의 묘사로도 같이 노는 파벌이 달라서 친구가 아니다. 안노 말로는 자신은 애니를 진로로 정한 파벌이었고, 시마모토는 만화를 진로로 정한 파벌과 같이 놀아서 볼 일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시마모토 말로는 안노와 친해지지 못한 건 첫 수업 때 자리 배정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안노가 옆 자리 애들이랑 팀을 짜서 끼어들기 곤란했다고 한다. 따라서 안노가 호노오와 말을 섞는 사이인 것은 완전한 허구. 지인들 말로는 이 만화에서 가장 현실과 다르게 묘사된 인물이라고 한다. 시마모토는 오카다 토시오와 한 대담에서 "안노가 당시에 어떤 생활을 했고 무슨 생각을 하고 다녔는지 난 모르니까 내가 보고 느낀대로 그렸다." 라고 했다.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독자도 알 수 없게 연출했다고.
다만 시마모토는 "안노는 날 기억하지 못할 거야." 라고 생각했지만 시마모토가 워낙 특이한 사람이라[50]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안노도 시마모토란 사람이 학교에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고 한다. [51] 농구할 때 "우오오 나에게 기회를 다오!" 라고 만화 히어로처럼 외치는 게 특히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52] 이 이야기는 이 만화에도 나오며 그래서 이 만화에서 안노는 "농구할 때 시끄러워..." 라는 이유로 호노오가 다이콘 필름에 멤버로 들어오는 걸 반대하는 걸로 나온다. 시마모토가 데뷔했을 때 안노 3인조가 공통되게 한 이야기가 "얘는 이 만화보다 본인이 더 웃긴데..."였다고.
호노오가 만화가 데뷔했단 말을 듣고 찾아와서 "사인해줘." 라고 해서 호노오가 감동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건 실화라고 한다. 시마모토가 생애 처음으로 사인을 해준 사람이 안노라고. 이 장면은 안노 본인에게 연락해서 물어보고 그렸다고 한다.
키가 다른 인물들보다 머리 하나 이상 크게 나오는데 이건 만화적 과장이 아니고 고증이다. 실제로도 안노의 키는 180이 넘는다.
실사 드라마판은 야스다 켄[53]이 연기. 배우가 광대뼈가 드러나는 마른 얼굴이라 안노의 괴팍함이 한층 눈에 띄는 형태로 재현.
만화판은 안노 본인이 허가해줘서 나온 거고 연재 초기에 시마모토와 대담도 했지만 야마가, 오카다와 같이 있는 게 불편했는지 드라마판엔 출연 안 한다. 당시엔 안노가 야마가, 오카다와 불화가 있다는 걸 세상에 공개하지 않아서[54] 야스다 켄은 "안노 씨는 왜 안나와요?"라고 했었다고. 다만 드라마에만 안 나온 거고 시마모토하곤 이후로도 연락하고 지냈다. 안노는 시마모토와 대담하던 중[55] "넌 대학 때랑 전혀 변한 게 없구나. 넌 바뀌지 마라." 라고 했는데 그때 시마모토와 대담 독자들은 이 말을 크게 신경 안 썼지만 안노와 친구들 사이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하다.
파일:야마가 군.jpg
* 야마가 히로유키
오사카 예술대학 1학년. 후에 왕립우주군 - 오네아미스의 날개의 감독을 맡게 되는 인물. 아카이하고는 안노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고 한다.
첫 등장은 "난 그림을 못 그린다. 그릴 생각도 없다. 하지만, 그림 잘 그리는 사람들을 모아서 아니메로 한탕 해볼 생각이다." 라는 발언을 하며 이후 "안노랑 아카이만 잡으면 인생 날로 먹을 수 있다!" 라는 발언을 자주한다.[56] 심지어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해 아는 것도 없어서 안노를 비롯한 동기들의 눈총을 받기 일쑤지만[57][58], 리더십과 언변이 있어서 창작 욕구를 동기들에게 불어넣는 총괄 디렉터 같은 성격으로, 대학 과제도 야마가가 중심이 되어 후일 가이낙스가 되는 멤버를 모아 작업을 지휘하는 모습도 보인다. 작품에서는 안노와 같은 하숙집을 쓰고 있다는 설정. 호노오는 "솔직히 장점이라곤 하야타 신, 모로보시 단을 닮은 거 말고는 없는 폐급 인간인 줄 알았다." 라고 생각했었다고. 다만 자신의 과제물 애니메이션 '미래로의 사자'를 보고 "저거 괜찮지 않냐?" 라고 했던 유일한 인물이었다며[59] "야마가는 천재를 알아보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라고 하기도 했다.[60]
아무것도 못 하므로 주변에선 짐덩이 취급을 하는데 의외로 뭔가 시키면 또 잘 한다.
타케다 야스히로와 처음 만났을 때 딸꾹질을 참겠다고 숨을 참다가 현기증이 와서 뒤로 나자빠지는 어이없는 일화가 나오는데 실화라고 한다. 원래 타케다는 야마가는 아무것도 못하는 놈이라 안 뽑으려고 했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오카다 토시오가 "재밌는 놈이네. 불러." 라고 해서 다이콘 3 제작에 들어오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거 아니었으면 안 뽑혔을 거라고 한다.
중간에 아무것도 못 하면서 혼자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의 제작 현장으로 혼자 뛰어드는데 여기서 연출의 재능을 발견해서 호노오는 "야마가는 아무것도 못하는 폐급 인간인 줄 알았는데 이런 재능이 있었다고?" 하고 놀라게 된다.
만화에선 호노오와 별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오지만 안노 말로는 실제로는 안노 3인조 중 시마모토와 친했던 건 야마가 뿐이었다고 한다. 만화에서는 "만화가 지망생은 스토리, 연출, 작화 혼자 다 하기 때문에 내가 등쳐먹을 수 없다."는 이유로 호노오가 다이콘 필름 신작에 스태프로 캐스팅되는 걸 반대한다. 실제로도 그랬는지, 아니면 만화에서의 각색인지는 불명.
작중 명대사로는 "자신감이란 것은 말이야. 원래 근거가 없는 거야." 실사 드라마판은 후쿠다 유이치의 감독 작품에 여러차례 등장한 무로 츠요시가 연기.배우가 아닌 실제 야마가 히로유키 본인은 7화에 카메오 출연한다
만화와 드라마 출연 이후 "안노와 아카이를 잡아서 평생 놀고 먹겠다." 라고 했던게 진짜였음이 밝혀져서 순수하게 개그로 볼 수 없게되었다. 이렇게 뭔가 한심하거나 충격적인 묘사가 많은데 시마모토가 자신의 유튜브에서 밝힌 바로는 "사람들이 '저거 야마가 본인이 화내는 거 아니에요?' 라고 물어보는 부분은 대부분 야마가 본인 증언입니다." 라고 한다.
파일:아카이 군.jpg
* 아카이 타카미 (赤井孝美)
오사카 예술대학 1학년. 훗날 가이낙스에서 프린세스 메이커의 원화를 담당하며 안노, 야마가와 실제로 교우관계를 쌓으며 후에 세 명이 가이낙스을 만들게 된다.
첫 등장은 쇼커의 기지를 불라며 안노가 목을 조르는 장면. 안노, 야마가에 비하면 조용한 성격으로 묘사되지만, 하숙집 단칸방에다 특촬용 고지라 디오라마 만들어놓고 하나하나 손으로 움직여가며 제작하는 스톱모션 영상을 촬영하는 등 1세대 오타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실제로 모델이 된 인물이 특촬물 오타쿠다. 멘탈이 약하고 쉽게 절망에 빠지는 성격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혼자 구석에 들어가는 습관이 있다. 벽장 안으로 들어갔던 것도 실화. 만화에선 울고 그러진 않았지만 오카다 토시오 말로는 실제로는 아카이는 저런 상태가 되면 울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카다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이카리 신지를 봤을 때 "저거 아카이잖아." 라고 생각했다고.
만화 내용 감수에도 참가했다고 한다. 본인도 까먹었던 걸 시마모토가 알고있을 때가 있어서 시마모토의 기억력에 감탄했다고. 대학 때는 시마모토가 누군지는 알았지만 낯가림이 심해서 말을 섞어본 적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크게 얽힌 건 단 한 번으로 시마모토가 과제 애니메이션 '미래로의 사자'를 만들 때 아카이에게 애니메이션의 비결을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줬다고 한다. 만화 감수해주면서 친해졌다고. 시마모토는 요나고시 홍보와 아카이에게 은혜갚기도 겸해서 마지막화는 요나고시 극장 이벤트에서 아카이와 함께 보았다.
실사 드라마판은 나카무라 토모야가 연기. 아카이 타카미 본인도 10화에 목욕탕 할머니 역으로 카메오 출연했다.

8. 편집자

9. 만화가, 애니메이션 제작자

10. 기타 인물

11. 언급만 되는 실존 인물

작 중에서 언급만 되거나 호노오의 상상 속에서만 나온 실존 인물을 서술 한다. 데즈카 오사무는 여러 번 본편에 나왔지만 편의 상 여기에 서술한다.


[1] 한 번 소년 선데이에서 빠꾸를 먹어서 본명 쓰면 또 떨어질까봐 한자를 바꿔서 가명을 쓴 것이다. 가명 후보 중엔 시마모토 카즈히코도 있었다.[2] 첫 번째 과제부터 말도 안되는 퀄리티의 과제를 해왔고, 축제기간 모든 학년이 참여할 수 있는 1인 단편 애니메이션 상영회에서 2학년들에게 인정을 받을 만큼 교내에서 엄청난 입지를 가지게된다. 그에 반해 호노오는 그저 학생 1에 지나치 않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호노오 일행은 말도 안되는 안노의 결과물을 보면서 퀄리티는 인정하지만 퀄리티가 높을 뿐 내용은 별로 없었다면서 자기 합리화하면서 우울해한다.[3] 단점이 있으면 극복은 커녕 어떻게든 숨기려 들고, 유행작의 포인트를 맞추고도 '왜 유행하는가?' 하고 분석하기보단 유행하니까 편승하려고 든다.[4] "나 빼고 다른 놈들은 다들 얌전히 졸업을 하겠지. 그러나 예대는 프로 데뷔 후 중퇴를 해야 비로소 예대다."라고 첫 화부터 말한다.[5] 안노도 그로부터 몇 달 뒤 초시공요새 마크로스로 프로 애니메이터 데뷔했다.[6] 야노 켄타로의 장편 연재 데뷔작 '고양이가 아닌걸'과 시마모토의 장편 연재 데뷔작 '바람의 전사 단'은 1982년 작품이다. 야노 켄타로가 4년 동안 고생해서 겨우 들어간 영역을 시마모토는 1년 만에 따라잡았단 소리다.[7] 독자들이 "여자랑 같은 방 안에 있으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게 말이 됩니까?" 라는 지적을 많이 했다고 한다. 시마모토는 "난 진짜 그랬다고! 아무 일 없었다고!"라고 답변했다. 다만 만화 정도로 수시로 방에 여자가 드나든 적은 없다면서 그건 망상이라고 한다.[8] 출처: 잇폰기 반의 만화 '동인소녀 JB'.[9] 가령 가면라이더 구 1호의 컬러는 사실 녹색이 아니라 파란색이라는 등.[10] 출처: 오사카예술대학 공식 유튜브 시마모토 인터뷰.[11] 이게 원피스처럼 보여서 독자에게 여자 캐릭터로 오해받기도 한다.[12] 초인 로크가 연재되는 잡지는 폐간된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 잡지가 하필 초인 로크 연재잡지였다.[13] 잇폰기 반도 똑같이 소년 킹에 응모했던 피해자이다. 잇폰기 반은 킷짱도 같이 응모했다는 걸 알고 놀랐다고 한다.[14] 죠가 자기는 영화보다 울었는데 호노오는 안 울었다고 넌 감수성이 부족하다고 계속 긁어댔기 때문이다.[15] 시마모토는 필명이고 시마모토의 실제 성은 데즈카다. 그래서 안노 히데아키는 시마모토는 입에 안 익는다면서 계속 데즈카라고 부른다.[16] 미나미의 작품 질풍 아이언리거, 기동무투전 G건담의 분위기 만들기, 디자인 일부를 해줬다고 한다. 시마모토 말로는 사람들이 이 두 작품의 캐릭터 디자인을 한 사람이 시마모토라고 많이 오해하는데 자신이 한 건 이런 분위기로 하면 좋다고 한 것이고 최종 디자인을 한 건 다른 사람들이라고 한다.[17] 유레카 세븐 제목 지어준 사람이 시마모토다.[18] 나중에 제목을 바꿨다.[19] 드라마판에서는 미카미 신이치가 버려진 호노오의 원고를 신인상 후보로 주워갈 때 'BiG-RUN' 이라고 뜨는 좀 알기 힘든 연출이 되었다. 마지막화라 설명할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 된 것 같다.[20] 실제로도 학점이 모자라서 졸업할 수 없었고 재학 중에 데뷔해서 자퇴했다. 시마모토 말로는 오사카예술대학은 과제물 몇 개만 잘 제출하면 진급이 되는데 왜 3년이나 유급한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21] 야노 켄타로가 기초를 잘 쌓았는지 이후 프로 만화가를 많이 배출하였다. 카츠 아키, 하타 켄지로, 이시구로 마사카즈, 사토 토시유키 등이 여기 출신.[22] 다만 야노 켄타로 말로는 실제의 시마모토는 입부만 안 했지 CAS 부원들과 두루두루 친해서 사실상 부원이었다고 한다. "이놈은 왜 만화연구부에 입부를 안 하는 거지?"가 의문이었는데 이 만화 보고 톤코 때문인 걸 알았다고 한다.[23] 가르마 자비가 죽은 뒤 국장연설 들으면서 혼술하고 있을 때 이렇게 입고 있었다. 이 때 나온 희대의 명대사가 바로 '도련님이니까(부모를 잘 만나서지)...'[24] 한 번 만화 연구회에 가서 "야노 켄타로를 만날 방법이 없을까?" 라고 했는데 "너 같은 놈이 감히 야노 켄타로를 만나겠다고?" 라고 하는 분위기로 말해서 다시 만나는 건 포기했고 그 이후로 만나지 못 했었다고 한다.[25] 시마모토는 쇼가쿠칸, 야노는 슈에이샤였다.[26] 이때 본인은 호노오를 하나도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앞서 언급한 일들을 비롯해 여러 일들을 들먹인다. 본인의 캐릭터도 얼굴 윗부분을 제외하면 크툴루 신화에나 나올법한 그로테스한 모습으로 그려지는건 덤.[27] 진짜로 귀가 요다같다.[28] 특촬물 히어로의 변신 포즈는 대부분 다 따라할 수 있다고 한다. 전대 시리즈는 캐릭터마다 포즈가 다른데 그걸 다 따라할 수 있다고. 키우는 개 이름은 우주전함 야마토에서 따온 제3함교.[29] 완전히 잘못 본 것. 부시가 들어오기 며칠 전까지 보통 여자도 잘만 노리고 있었다.[30] 슈퍼로봇대전 시리즈 디자인 (슬레이드겔미르 등), 슈퍼로봇대전 동인지로 유명.[31] 후지하라 마사유키, 후지마 사유키를 비교하면 후지, 마사유키가 겹친다. 그리고 시마모토의 어시 출신 만화가 중 사무라이, 무사도란 말을 쓰는 만화가는 후지하라 밖에 없다.[32] 시마모토 주장으로는 이름 외에는 픽션이라고 한다. 다만 후지하라의 집중선 이야기는 예전에도 시마모토가 했던 것이고 부시가 좋아하는 작품도 후지하라가 좋아하는 작품이라 별로 설득력이 없다.[33] 섹스를 우주전함 야마토의 함대전처럼 연출해서 시마모토는 "이거 야마토 동인지잖아!"라고 반응했다.[34] 시마모토는 자전적 만화를 많이 그렸지만 만화에 아내가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만약 이 사람들 중 한 명이라면 최초가 된다.[35] 다만 이 당시 했던 인터뷰에서 여자 만화가와 교제하고 있다고 한 적이 있으므로 한 명 정도는 실제로 사귀게 될지도 모른다.[36] 같은 디자인과였던 야노 켄타로는 톤코가 호노오한테 왜 저런 말을 하는지 디자인과라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누군지는 잘 모르겠다고 한다.[37] 만화에선 어영부영 연락이 끊어지지만 실제로는 더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건 연락이 안 되어서 결국 못 그린 것 같다.[38] 후지타가 그리는 장르는 주로 액션물이지만 그 사이에 나오는 캐릭터간의 로맨스도 많이 신경쓰는 작가기도 하다. 가토 나루미엘레오놀이 대표적.[39] 만화에선 킷짱이 말해주는데 실제로는 나중에 이 만화 연재하고 다시 만난 마스미 본인에게 들었다고.[40] 애초에 허락을 받았으니까 드라마에서 원본 영상을 틀었을 것이다.[41]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 미유키 애니메이션 엔딩곡. 호노오는 미유키의 모든 것을 담은 불세출의 명곡이라고 평했다.[42] 지금은 개인 정보라 큰일나지만 당시 전화번호는 공공재 취급이라 아무에게나 알려주곤 했다. 전화번호부라 하여 사람들의 전화번호가 빽빽히 수록된 책이 무료 배포되었으며 114에 사람 이름을 대면 전화번호를 알아낼 수 있던 시절이다.[43] 찻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섹스하는 곳[44] 이 만화 연재 도중에 이 3명이 크게 싸우고 헤어져서 더 내기 곤란해졌고, 호노오가 학교를 중퇴한 이후론 이들과 관계가 없는 것도 문제다. 안노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도 했었고 이때 시마모토와 만난 적도 있어서 여기까지 연재되면 재등장할 가능성도 있다.[45] 페이지 별로 간단한 동화를 그려 펄럭펄럭 넘기면 움직이는 만화.[46] 이른바 <안노 울트라>로 알려진 전설을 패러디. 저예산이라 엉성한 점이 있어서 연출을 민감하게 수용하는 호노오를 제외하면 모두 웃지만, 안노는 "웃길려고 만든게 아니다! 감동시키려고 만든 거다! 다음엔 진짜로 감동시켜주겠어!" 라고 진지하게 화를 낸다. 다만 이건 이 만화의 각색으로 실제로는 이런 말 안 했다고 한다.[47] 호노오의 입장에서의 표현이고, 자기 머릿속에 있던 아이디어를 꺼내놓은 적이 없으니 제3자가 보기엔 미친 소리로 들릴 뿐이다.[48] 거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처럼 연출된다. 작중 묘사를 보면 호노오도 아예 동세대를 초월한 천재인 가이낙스 그룹보다 떨어지는 것 뿐이지, 감식안이나 데이터베이스, 도전의식의 측면에서 다른 대학 동기들보다는 훨씬 나은 수재급이기 때문에 그야마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다. 오카다 토시오도 드라마판 공식 사이트의 해설 코너에서 "쟤들은 진짜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다." 라고 했다.[49] 한국에선 왠지 안노가 음습한 오타쿠,아싸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야마가 히로유키오카다 토시오의 인터뷰에 따르면 안노는 결혼 전까지 여자친구가 한 번도 끊이지 않고 여러번 바뀌었으며 교우 관계도 넓어서 애니메이션 제작 때도 사람이 부족하면 친구를 몇명씩 끌고오던 커뮤력이 뛰어난 인싸형 인간이었다고 한다. 극중에서 나오는 동인 애니메이션 다이콘3 제작 과정 때도 작중에서는 혼자 그리고 있지만 원래는 여친이 옆에서 수발들고 챙겨주고 있었다고 오카다 토시오가 증언하고 있다. (오카다 말로는 저런 놈이 왜 여친이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고.) 그냥 시마모토하고만 별로 친하지 않은 듯하다.[50] 잘 생김. 평소 행동과 언동이 특이함. 재학 중 데뷔. 눈에 안 튈 수가 없었다.[51] 뉴타입 1985년 7월호에서 시마모토와 안노가 했던 대담에서는 안노가 "너 학교에서 유명한 놈이었어." 라고 했는데 시마모토가 "에이 그럴 리가. 난 조용하게 학교다녔어." 라고 하자 안노는 "그건 아니야."라고 했다.[52] 이 이야기는 1985년 뉴타입 대담에서도 했고, 아오이호노오 연재 기념 대담에서도 했으며 안노가 직접 만화로 그리기도 했다. 오카다 토시오 말로도 안노는 시마모토 이야기를 할 때는 늘 농구 이야기부터 했다고 한다.[53] 드라마판 감독의 작품인 변태가면(실사영화)에서 가짜 변태가면 역을 맡았다.[54] 안노와 야마가의 불화는 2000년대부터 있었다고 한다. 폭로한 건 2019년.[55] 영 선데이 잡지에 있던 대담엔 있었다. 왠지 단행본 1권에 수록할 땐 이 이야기는 빠지고 우주전함 야마토신세기 에반게리온 이야기한 것만 남았다.[56] 이것도 좀 과장된 부분으로 실제로는 상당한 노력파로 대학 졸업 이후에도 꾸준히 데셍 공부를 하면서 콘티 정도는 그릴 수 있게 노력했다고 한다. 다만 안노랑 아카이만 잡아서 평생 먹고산단 얘기는 실제로 한 적이 있어서 나온 것이다.[57] 한번은 아카이 군이 우울해서 이불장 속에 틀어박혀 있는 걸 야마가한테 들키자 '도라에몽 드립 치지 말라'고 했더니 야마가는 그게 뭐냐고 물었다. 사실 이때는 도라에몽이 그렇게까지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만화 좀 아는 사람이라면 다 알텐데 야마가는 이조차 몰랐던 것.[58] 작중에선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야마가는 영화를 더 좋아했었다. 그래서 만화와 애니를 모르는 거지 영화 연출이나 기법엔 정통했었다.[59] 다만 시마모토만 혼자 그렇게 생각한 거고 대단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았다고 한다.[60] 그러니까 호노오 자기가 천재라는 소리다(...). 늘 하던 정신 승리에 가깝지만. 이후로 여러 번 좌절하면서 이런 말은 잘 안 하게 된다.[61] 오카다의 어머니는 절세 목적으로 사이비 종교 교주를 했던 적이 있다.[62] 잘못한 건 오카다 뿐이지만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넘어가자.[63] 또한 이와 별개로 오카다는 씻는 걸 싫어해서 "땀을 안 흘리면 안 씻어도 되잖아." 라면서 더운 걸 싫어하고 에어컨을 막 트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64] 당시 소설가 겸 SF연구가 타카치호 하루카(高千穂遙)가 "우주전함 야마토기동전사 건담은 SF가 아니다. 애니메이션 중에선 미래소년 코난 정도가 제대로 된 SF이다." 라는 발언을 하고 SF 협회의 일부 회원도 이를 긍정하면서 논란이 있었다. 타케다와 친구들은 이것을 부정하려고 한 것이다.[65] 그 전에 호노오의 원고를 봐 준 가라데 도장의 여고생도 “그건 표절보다도 더 더러운 비겁한 짓 아닌가요?”라고 비슷한 감상을 남겼다.[66] 원문은 「車田のベタに学べ」로, 일본어 'ベタ(베타)'에는 여러 뜻이 있지만, 그 중 '몇 번이나 사용된 친숙한 아이디어나 묘사, 연출'이라는 의미도 있다.[67] 일본어 'ベタ(베타)'에는 여러 뜻이 있지만, 그 중 '인쇄용의 그림, 만화에서 단색(주로 흑색)으로 채우는 것'이라는 의미도 있다.[68] 순전히 시마모토 자신이 잘못한 것이라고 한다. 자신도 왜 그런 사고를 쳤는지 모르겠다고. 미안해서 이 편집자는 멋지게 그려주었다고 한다.[69] 시마모토는 "제가 잘못 기억했습니다." 라고 하고 바꿨는데 당시 선데이의 상황, 담당 작가였던 유우키 마사미가 하는 말을 보면 오쿠야마가 맞고 문제가 되어서 이름을 바꾼 걸로 보인다.[70] 루미코를 괴롭히는 장면에 나오는 6명 중 5명은 실제 쇼가쿠칸 편집자들이라고 한다. 나머지 1명은 시마모토의 친구 만화가 요코야마 유지(横山裕二).[71] 당시 소년 선데이는 "예쁜 여자애가 많이 나오는 잡지."라는 컨셉이라 작가들에게 예쁜 캐릭터를 그리라고 요구했었다고 한다.[72] 작가 타카하시 루미코는 "우연의 일치입니다.(웃음)" 이라고 주장한다.[73] 타카하시 루미코는 이후로도 더 성장해서 더 대단해져 지금은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만화가 중 한 명이다.[74] 타카하시 루미코 본인도 그걸로 유명하다.[75] 참고로 이 만화 작가인 시마모토의 주 스타일도 진지한 개그만화다.[76] 카리야 테츠의 만화 '오토코오오조라(男大空)'에서 나왔던 '신골권법' 이야기를 했던 걸로 보인다. 북두의 권이 이 만화의 구도나 설정을 많이 따라했었다.[77] 신타니가 자신의 대표 제자로 꼽는 만화가가 시마모토 카즈히코와 유우키 마사미다.[78] 호노오 말로는 신타니 선생님처럼 일해서 편집자의 원한을 샀다간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서 지킨다고 한다. 호에로 펜에서도 호노오는 철야로 그리거나 원고를 미완성으로 제출하는 한이 있더라도 마감은 지키는 편으로 나왔다. 실제로 시마모토도 그렇게 한다고 한다.[79] 시마모토 말로는 보통 편집자는 진짜 위험한 날보다 앞날로 마감을 정해놓고 그 사이에 3단계의 여유 시간을 두는데 자신은 늦어도 2단계일 때는 보낸다고 한다.[80] 고향이 어촌이라 해산물이 드글거려서 싫었다고 한다.[81] 실은 넌센스 개그를 의도한 대사였다고 한다. 이 만화 자체가 과거를 돌아보는 거니까. 호노오에게 한마디 한 후, 과장된 웃음소리와 함께 퇴장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82] 시마모토와 하라만 그런 게 아니고 CG로 커버할 수 있게 되기 이전의 당대의 만화가들은 모두 하던 고민이다. 아다치 미츠루도 책상 윗 부분만 그리거나 복도와 운동장을 주로 그려내는 것으로 학교를 그리는 걸 최대한 피했다.[83] 호노오 曰 "픽션에서만큼은 지구 정도는 구해야지! 하다못해 학원을 배경으로 한다면 투혼을 불사르는 열혈 스포츠물이어야 할 거 아니야!"[84] 이시노모리 작품은 이야기의 큰 줄기를 진행하다 갑자기 그 줄기와 관계없는 사회 비판이나 철학 이야기를 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연출력이 뛰어나고 큰 줄기는 잘 짜기 때문에 어쨌든 재밌는 것.[85] 당시엔 토미노 요시유키가 더 잘나갔다.[86] 실제로 미즈시마 신지는 야구 전문가들과 토론을 벌여서 말빨과 지식으로 이겼다는 일화가 있다.[87] 당시에도 모토미야 히로시는 "왜 내 만화를 웃음거리로 삼냐" 라면서 에구치 히사시를 비판했으며 빡쳐서 절필까지 했던 적이 있다.[88] 쿠루마다는 어이없고 과장된 묘사를 멋지다고 생각해서 하는 것이고 시마모토는 웃기려고 하는 것이다.[89] 당시 둘이 경쟁하던 아이돌이고 같은 남자를 좋아하던 삼각관계였으며 팬덤의 사이도 안 좋았다.[90] 썩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가 부양이라는 가명으로 말한다.[91] 대표적으로 위글 옥장이 투구에서 채찍을 꺼내는 장면[92] 1980년대 초 이미 코스프레 문화가 있긴 했지만 여자는 잘 하지 않는 문화였는데 노출도가 높은 라무 코스프레를 하고 동인 이벤트에 참가해서 스타가 되었다. 그때 가이낙스의 타케다 야스히로도 있었다고 한다.[93] 독자 투고 중심으로 굴러가던 애니메이션 잡지. 심심해서 코스프레한 사진을 찍어서 보냈더니 대뜸 표지에 실어버려서 깜짝 놀랐다고. 그때부터 고정 코너 만들어주고 계속 불렀다고.[94] 처음엔 둘 다 별 관심 없었는데 몇 년 뒤 시마모토가 "뭐? 잇폰기가 내일의 죠를 좋아한다고?" 내일의 죠를 좋아하는 사람 중 나쁜 사람은 없다!" 라고 해서 친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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