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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7 01:08:09

가이낙스

파일:가이낙스 로고.svg
회사명 주식회사 가이낙스
株式会社ガイナックス
GAINAX Co., Ltd.
창립일 1984년 12월 24일
창립자 안노 히데아키
사다모토 요시유키
야마가 히로유키
아카이 타카미
오카다 토시오
타케다 야스히로(武田康廣)
히구치 신지
본사 일본 도쿄도 무사시노시 고텐야마 1쵸메 4-20
직원 18명
품목 애니메이션 제작 외
웹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
2.1. 분열2.2. 신규 임원진2.3. 가이나
3. 특징
3.1. 오타쿠 기질3.2. 제작 방식3.3. 게임 개발
4. 작품 목록
4.1. 가이낙스 명의
4.1.1. 애니메이션4.1.2. 게임
4.2. 가이나 명의
4.2.1. 애니메이션
5. 관련 인물6. 가이낙스의 계보 회사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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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애니메이션 및 게임 제작사. 비상장 주식회사다.

이름의 유래는 커다랗다 또는 굉장하다라는 의미의 시마네현 동부와 돗토리현 서부 방언 '가이나(がいな)'[1]와 미지의 것을 뜻하는 X의 결합이다.

2. 역사

DAICON 3 오프닝 애니메이션.
DAICON 4 오프닝 애니메이션.
일본SF대회 DAICON(다이콘) 3, 4[2][3] 오프닝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던 동인집단 다이콘 필름의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오사카에서 도쿄로 자리를[4] 옮겨 왕립우주군을 만들기 위해 탄생한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원래 예정대로라면 왕립우주군의 제작이 끝난 후(1986년 제작은 완료되었다.) 해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왕립우주군 제작 중 투자받은 자본 이외에도 가이낙스 명의로 돈을 빌려 제작비를 충당한 상황에서, 왕립우주군은 흥행에 실패. 가이낙스 명의로 빌린 돈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고 만다. 결국 이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애니메이션 제작을 계속해야만 하는 상태가 된다. 다만 왕립우주군의 감독이자 현 가이낙스의 대표이사인 야마가 히로유키는 왕립우주군 제작 과정에서 생긴 빚보다 제작에 관여한 스태프들 중 일부가 아무리 작품이 성공을 해도 해산을 하면 다른 일자리를 얻을 기회가 없어질까봐 그대로 존속하는 것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한국판 뉴타입에서 밝힌 바 있다.[5]

이 무렵 매달 70만엔씩이나 월세를 내던 100평짜리 스튜디오에서 월세 16만엔짜리 사무실로 이사했고, 빚을 독촉하는 관련 업체들의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이렇게 커다란 오피스를 빌린 건 타츠노코 프로덕션을 동경했기 때문이다.

이후 지인들의 인맥을 통해,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을 영상화한 애플시드 등의 하청작업으로 연명하면서, 이때 새롭게 형성된 OVA 시장을 눈여겨보고 자신들의 오타쿠 성향에 충실하면서도 잘 팔릴 만한 상업용 노선으로 톱을 노려라!를 제작, 돈과 인기를 얻었다. 톱을 노려라 역시 제작비를 많이 투자한 탓에 인기는 끌었어도 이익이 별로 나지 않아 빚을 갚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말도 있었지만, 다른 OVA에 비해서 월등하게 많이 팔렸고, 숨통이 트일 정도는 되었다.

톱을 노려라 이후, 가이낙스는 하청의 하청을 받는 형태로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를 제작했다. 나디아는 여러 모로 인기를 끌었지만 하청의 하청 형태로 가이낙스가 제작한 탓에 가이낙스 쪽으로 오는 수익은 별로 없었고[6], 오히려 수천만엔의 빚만 더 쌓였다.

나디아는 NHK가 기획한 작품으로 가이낙스는 원화만 그려주면, 나머지는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미리 NHK와 한국측 애니 제작사 하청업체 사이에 계약을 이미 맺고 동화와 채색을 맡을 플랜이 이미 서 있었다. NHK측 프로듀서는 오카다 토시오에게 가이낙스 걱정하지 마라, 한국이 나머지는 다 해줄거라고 호언장담을 했다고 한다. 가이낙스는 작화부분을 맡아서 원화만 그리면 되고 동화는 한국측에서 맡고, 그 동화를 체크해서 NHK에게 넘겨주면 끝나는 간단한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돈 많은 NHK답게 동화도 원하는 만큼 마음껏 써도 된다고 했고, 한국측에서도 동화를 많이 쓰면 일거리도 더 늘어나고 돈을 버는거라 가이낙스 전체가 대환영이라는 분위기였다.[7]

NHK는 1편당 1200만 엔의 제작비를 제공했다. 이건 작화만을 위한 비용으로 성우라든가 음악이라든가 하는 음향작업비는 포함되지 않은 거였다. 예정대로라면 가이낙스는 손해를 볼 일은 없었다. 가이낙스의 사장 오카다 토시오는 다른 사람이 이미 각본을 쓴 상태이고 가이낙스에서는 그림 콘티와 원화(배경그림 포함)만 그리기 때문에 제작기간은 2달을 예상했다.

그러나 감독을 맡은 안노 히데아키가 제작 초기부터 NHK가 준 각본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각본을 무시하기 시작하더니 마구마구 폭주하고 지나치게 집착한 탓에 6개월이 더 늘어나 최종 8개월의 제작기간이 소요되었고, 그 기간만큼 제작비가 초과해 버려 빚이 늘어났다...

이 시기(1989년) 돈벌이용으로 19禁 에로 OVA도 제작한 적이 있지만 가이낙스 작품 팬들도 잘 모를만큼 대외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흑역사.[8]

당시 가이낙스의 빚을 갚은 것은 아카이 타카미[9]를 중심으로 한 게임반이 개발한 전뇌학원프린세스 메이커였다. 가이낙스는 당시 허접한 게임의 실상을 보고 이 정도라면 우리가 충분히 이긴다고 자신만만하게 게임업계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게임 사업으로 수 억엔의 수익을 올려서 애니 사업의 빚을 갚는 식이었다. 당시 사장 오카다 토시오는 가이낙스 시절 아니메 만들 때는 월급 15~17만엔을 가져갔는데, 게임이 히트하고 나서는 경영진은 월 250만 엔씩 가져갔다고 밝혔다.(#)

나디아의 제작이 끝난 뒤, 가이낙스는 자신들의 자전적인 이야기나 같은 작품인 오타쿠의 비디오[10]를 만들었고, 그 다음엔 시마모토 카즈히코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인 불꽃의 전학생을 제작했다. 해당 작품은 전대 미문의 OLA(오리지널 레이저디스크 애니메이션)이었는데 망하고 말았다. 이에 시마모토 카즈히코[11]가 자신의 자전적 만화 불타라 펜에서 비판했다.[12]

그 다음작으로 왕립우주군의 세계관을 잇는 작품인 푸른 우르를 만들려고 했지만 막대한 제작비 소요가 예정되는 상황에서 당시 가이낙스에는 그 정도 규모의 자금 동원이 불가능해 제작이 중단되자 안노 히데아키의 주도로 오리지널 로봇 애니메이션의 기획이 만들어졌고[13], 이것이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이었다. 애번게리온이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자 가이낙스는 마침내 빚더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실 수익은 대부분 제작위원회에서 다 가져갔기 때문에 가이낙스의 수익은 의외로 크지 않았다는 말도 있긴 하다. 가이낙스의 몫으로 돌아온 것은 전체 수익의 5%라는 소리가 있으니 말이다.[14] 그래도 가이낙스를 빚더미에서 벗어나게 하는데는 충분한 수익이었다.

이후 가이낙스는 예상외로 순정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인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를 제작해 제작비 절감의 묘미를 보이면서도 원작에 충실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지만 원작이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묘한 마무리를 한 탓에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99년 말, 사장이 연루된 대규모 탈세 사건[15]이 발각되는 바람에 회사가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다.[16]

한편, 역속으로 TV판 애니메이션을 만든 가이낙스는 OVA로 돌아가 신진 애니메이터들이 주력을 맡은 작품인 프리크리를 제작했는데, 프리크리는 움직임의 맛을 살린 작화와 이해하기 묘한 스토리로 호평과 혹평을 동시에 들었다. 프리크리 이후, 왕립우주군의 감독이었던 야마가 히로유키가 십수 년 만에 감독으로 복귀해서 메이드 로봇이 주인공인 만화를 애니메이션화한 작품인 마호로매틱을 만들었다.

이후 가이낙스답게 온갖 패러디가 가득한 아베노바시 마법 상점가, 프린세스 메이커의 세계관을 이으면서 소녀층을 주 대상으로 한 작품인 쁘띠프리 유시를 만들었으며, 이 추하고도 아름다운 세계, 오타쿠 소재의 개그 만화를 애니메이션화한 이 사람이 나의 주인님, 톱을 노려라의 속편인 톱을 노려라2! 등을 연속으로 제작했다.

그리고 2007년, 에반게리온 이후 가이낙스에 몸을 담은 애니메이터들이 주축이 된 작품인 천원돌파 그렌라간을 제작해 좋은 평을 들었다. 이처럼 계속 돈이 모이자 가이낙스는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시희, 하나마루 유치원을 만들었으며, 2010년 10월 팬티 & 스타킹 with 가터벨트를 방영했지만 수익은 기대 이하였다. 2011년 7월달엔 단탈리안의 서가를 제작하여 방영했다.

2.1. 분열

그런데 그렌라간 때부터 시작된 스폰서(주로 애니플렉스)와의 갈등이 심해지는 바람에 결국 요시나리 요우, 스시오, 이마이시 히로유키를 비롯한 특급 애니메이터들이 퇴사하는 일이 벌어졌다.[17] 2011년 8월 22일, 퇴사한 일원들은 트리거를 설립했고 10월 8일 공식 홈페이지를 개설했다.(홈페이지)

2011년 돗토리현 요나고시에 요나고 필름을 설립(대표: 아카이 타카미). 2014년에는 요나고 가이낙스 설립. 이어 2016년까지 후쿠시마 가이낙스(대표: 아사오 요시노리), 가이낙스 웨스트(대표: 타케다 야스히로/고베시), 가이낙스 니가타, 가이낙스 교토(대표: 타케다 야스히로) 설립. 결국 이 중 요나고 가이낙스는 독립해버리는데 성공한다.[18] 특히 가이낙스가 난장판이 되버린걸 보면 만약 독립하지 않았다면 2025년 프린세스메이커 신작은 나오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2013년, 26년만에 왕립우주군의 속편 제작을 발표했다. 지금은 사이트가 내려간 상태

과거 가이낙스를 대표하던 인물들이 나가서 만든 스튜디오 카라, 차세대 가이낙스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나가서 만든 트리거, 기존 가이낙스의 게임 개발 파트나 다름없던 요나고 가이낙스가 창립되어 독립한 이후로는 영 시원치 않은 작품들이 나오는 중이다. 끌어올 수 있는 스태프가 다 나가서 별볼일 없어졌기 때문이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역시 저작권은 물론 가이낙스가 제작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후기의 가이낙스는 우에무라 유타카사에키 쇼지로 대표되는데, 둘 다 퇴사하고 딴 곳으로 간 상태.

2016년 11월, 안노 히데아키 감독이 퇴사하며 가져간 에반게리온의 판권에 대한 대금을 지불하지 못해 소송에서 1억엔의 배상을 하라는 기소가 있었고 동년도 12월 가이낙스 측은 인정하고 사과하는 형태를 취했다. 다만 기소는 취소하지 않았고, 이 사건은 결국 2017년 6월 1억엔을 지불하는 것으로 판결이 났다. 그러나 안노 말로는 아직도 다 지불받지 못했다고 한다.

아래에 언급된 '가이나'라는 회사는 지금의 가이낙스와 별개의 회사(원래 자회사였으나 독립)로, 지금의 가이낙스는 일체의 제작활동 없이 에반게리온을 제외한 예전 가이낙스 작품의 저작권만 관리하는 회사가 되었다. 거의 바지 회사인 모양. 그나마도 사장이 성희롱 혐의로 체포되기까지 했는데 아래의 가이나와 안노는 "이 회사는 이제 우리와 관계가 없다."라면서 선을 그었다.

오카다 토시오는 '야마가 히로유키는 사람보는 눈이 하나도 없었으며 회사를 망하게 하고싶지 않다는 그의 자존심을 이용한 사기꾼들이 몰려와 회사를 강탈한 상태라고 본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여기다 안노 히데아키는 추가로 언론에다 야마가 히로유키와 타케다 야스히로가 있는 가이나까지 저격하면서 퇴직 사유를 폭로하기에 이르렀다. 요약하자면 가이낙스는 왕립우주군 제작 시절부터 경영이 방만했으며 에반게리온의 성공으로 그것이 더 심해졌다고 한다. 야마가와 타케다에게 경영권이 넘어간 이후로도 개선되질 않았다고 한다.[19] 심지어 안노에게 구걸하는 일도 잦았다고.

안노는 독립 이후 이미 회수한 에바 이외 작품의 판권 회수를 시도했는데, 다른 작품 판권은 야마가가 주겠다고 약속하고는 갑자기 6배나 비용을 올렸다고 폭로했다. 문제가 된 가이낙스 사장의 성추행 때문에 에바 관련 사업이 취소되는 피해를 입었으며, 이게 야마가나 타케다 탓이 아니면 누구 탓이겠냐는 뉘앙스의 발언도 했다. 상당히 실망하고 분노한 어조의 성명이라 안노와 카라는 가이나랑 영원히 척을 졌다고 봐야 한다. 참고 다만 카라와 트리거는 원만한 관계인 것으로 보인다.[20]

그리고 앞으로 가이낙스는 제작에 있어서 큰 위기를 겪을 게 뻔한데 트위터만 쳐도 이 안노의 폭로에 대해서 리트윗이 65000, 좋아요가 75000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애니메이터들이 이걸 리트윗하면서 안노 편을 들었다. 트위터만 친 것이고 다른데서도 비슷한 반응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가이낙스와 가이나는 대부분의 애니메이터를 적으로 돌린 것이 되었다.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터가 안 모이면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 이젠 정말 앞날이 캄캄해진 것이다.

아무튼 이 때문인지 몰라도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 개봉 임박 기념으로 일본 현지에서 재방한 TV판의 스태프 표시에서 가이낙스와 관련된 표기가 전부 사라지거나 블러 처리가 됐다.[21]#[22] 그러나 왠지 엔딩 스태프롤에 야마가 이름은 남아있다고 한다. 다만 갑자기 이랬던 것은 아니고, 2014년부터 카라만 표기되고 있었다. 안노의 폭로를 참고해보면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가이낙스와의 채무 문제가 격화되었다고 하는데, 이쯤 해서 판권을 소유한 카라나 제작위원회 측에서 모종의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히라마츠 타다시는 안노 편을 들면서 "이젠 경영으로 회사를 어떻게 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을 정도로 일본 경제가 망했다. 아베가 책임을 져야한다."라면서 아베 신조를 깠다.

2.2. 신규 임원진

2019년 12월 스캔들을 일으킨 전임 대표가 물러나고, 임시 주주총회를 열었으며, 2020년 2월 주식회사 가이낙스에 신규 임원진이 들어섰다.

신규 임원진 중 감사(회계사)를 제외한 나머지 이사 4인의 구성을 보면 대표이사가 에반게리온 저작권 관리사인 그라운드 웍스[23] 대표, 나머지 3인은 트리거 대표이사, 카도카와 애니메이션 제작 담당 임원과 킹레코드 저작권 담당 임원의 구성이다. 임원진 전원 사외이사

임원 구성에서 알 수 있듯, 현재의 가이낙스는 카라와 트리거, 그리고 관련 업계의 공동관리 체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상근 내부 임원없이 전원 외부 이해관계 업체의 사외이사인 것을 볼 때, 카라나 트리거에서 가이낙스 명의의 신규 사업을 진행하려는 의도가 있다기 보다는, 가이낙스 자체는 페이퍼 컴퍼니가 된 상태로 놔두고, 다른 애먼 사람이 가이낙스 명의를 차지하여 물의를 빚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추정된다. 이후로 스튜디오 카라 명의로 팬티 & 스타킹 with 가터벨트의 굿즈를 제작, 트리거와 가이낙스 SNS 계정에서 속편인 NEW 팬티 & 스타킹이 발표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가이낙스때 만든 몇몇 작품들의 판권이 각각 카라와 트리거로 이관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정리하자면 현재는 기존 인력과 작품들은 스튜디오 카라, 트리거, 요나고 가이낙스[24], 가이나[25]로 쪼개졌고 사외이사들이 관리하는 저작권 관리 회사가 되었다.

현재는 가이낙스 작품 관련 굿즈를 판매하거나 트리거 사의 SNS를 리포스트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또한 가이낙스 사의 애니메이션을 트리거로 판권을 옮겨 제작하는 등의 활동도 하고 있다. 이제 트리거가 사실상 가이낙스를 완전히 승계해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으며 가이낙스 본사는 과거 작품을 리마스터링하며 트리거 사의 광고 및 홍보를 지원하는 회사로 탈바꿈하였다. 심지어 트리거도 그라운드웍스, 스튜디오카라, 카도카와, 킹레코드와 함께 가이낙스에 대해 경영에 대해 간섭할 수 있으며 과거 가이낙스에서 제작하던 애니의 후속작까지 만드니 사실상 2024년 기준으로 가이낙스=트리거가 된 셈.

2.3. 가이나

파일:220px-Gaina.jpg
회사명 주식회사 가이나
株式会社ガイナ
Gaina Co., Ltd.
창립일 2014년 11월 4일
본사 일본 도쿄도 코가네이시 키치죠지혼쵸 1쵸메 12-13
자본금 10,000,000
품목 애니메이션 제작 외
웹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2018년 8월부터 실질적인 본체 역할을 하던 후쿠시마 가이낙스와 가이낙스 스튜디오가 각각, 주식회사 가이나와 후쿠시마 가이나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키노시타 그룹으로 들어간 것이 계기인 것 같은데, 사명은 가이낙스의 유래가 된 단어이기도 하고, 이로 인해 관계자들이 가이낙스를 '가이나'라고 불렸던 것에 유래하는 것으로 보인다.[26]

2014년 11월 가이낙스가 후쿠시마에 새 스튜디오를 설립했는데, 후쿠시마 재흥를 목적으로 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후쿠시마 홍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등으로 까이고 있었다(공식 사이트) 1년 후 본사로부터 독립. 도쿄에 가이낙스 스튜디오(ガイナックススタジオ)를 설립했다. 2015년 이후로 애니제작은 손도 못대는 가이낙스 본사와 달리, 그나마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던 곳. 2018년에는 피아노의 숲 TVA의 제작을 담당.

2016년 12월 가이낙스는 분리된 다른 회사들과 함께 본회사와 이미 자본관계가 없음을 밝혔다. 이는 에반게리온 소송에서, 후쿠시마 가이낙스 등의 지부는 지불의무가 없다는 뜻. 덕분에 소송 벌금을 피해갔다. 다만 후쿠시마 가이낙스의 아사오 대표는 이 시점까지 가이낙스 본사 이사도 겸하고 있어서 의심을 샀다.

2018년 7월 26일 키노시타 그룹[27]의 산하로[28] 들어가면서 키노시타 그룹의 키노시타 나오야가 회장으로 취임했다. 사장인 아사오는 그대로. 그리고 8월 9일 사명을 가이나로 변경하였다.

그나마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던 후쿠시마 가이낙스는 가이낙스 스튜디오가 있는 등 당시 실질적인 본사 역할을 하던 곳이었기에 가이낙스의 사명은 이제 가이나가 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가이낙스 스튜디오 역시 가이나 스튜디오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그런데 아직 가이낙스라는 회사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다. 또 톱을 노려라 3나 푸른 우르 신작 역시 가이낙스가 아니라 가이나를 중심으로 만든다고 공표하였다.

이쪽엔 야마가 히로유키가 있으며 사다모토 요시유키카라에서 쫓겨나고 이쪽으로 옮겼다.

2017년 7월, 신작 극장판으로 제로 세기 에메랄다스, 제로 세기 캡틴 하록, 제로 세기 메텔 3부작 극장판을 발표한다. 마츠모토 레이지의 레이지버스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2020년부터 2026년까지 순차 개봉 예정이다.(#)

2019년 안노의 폭로를 보면 주요 인물과 저작권은 다 이쪽으로 옮겼다고 하며[29] 안노와 각종 채권자가 진행 중인 소송을 피하기 위해서 만든 회사인 것으로 보인다. 후쿠시마 살린다며 그리고 안노의 폭로로 대다수의 애니메이터가 가이나에도 부정적 의견을 표출하고 있어 앞으로 기획 중인 작품의 제작이나 질적인 면에서 큰 난항이 있을 것이 확실한 상황이다.

실제로 2017년에 발표했던 제로세기 에메랄다스는 아예 나올 기미도 없고 작화감독을 하기로 한 카이야 토시히사도 다른 회사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상태가 상당히 안 좋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그렌다이저 U의 제작 소식을 알렸지만 사정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별로 좋은 얘기가 안 나온 편이다.

3. 특징

3.1. 오타쿠 기질

애초에 오타쿠 집단이 모여 만든 회사이기 때문에 회사 안에서도 오타쿠 분위기가 짙다고 한다. 가이낙스 입사 시험 문제 자체가 매니악한 지식들에 관련된 문제고 작화 쪽도 기초 실력을 깐깐하게 봐서 스튜디오 지브리, 텔레콤 애니메이션 필름과 함께 들어가기 엄청나게 어려운 회사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30] 당시 인사를 주로 담당했던 사다모토 요시유키의 말에 따르면 회사 직원들이 다 오타쿠라서 그에 맞춰 오타쿠 지식이 많고 오래 버틸 사람 위주로 뽑았다고 한다. 그러나 2000년대 와선 예전에 비해선 많이 순화되었다는 말도 있다.

오타쿠 집단이라 그런지 작품들에 대체로 좀 매니악하고 그로테스크한 발상이 들어가 있다. 정석오타쿠물에 가까운 톱을 노려라!만이 그런게 없고 나디아, 에바, 에비츄 등은 지금 봐도 상당히 기묘(...)하다.

아무튼 회사 자체에 2차 창작에 열의를 가진 오타쿠의 유전자가 새겨져 있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단지 돈벌이에 혈안이 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자사의 판권물에 대한 유연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원작의 이미지를 지키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회사는 아니라서 원작의 세계관을 비틀고 뜯어고친 관련 작품이라든가, 원작의 캐릭터를 탈의 시킨다던가 그런쪽에 비교적 관대한 듯.

가이낙스의 탄생에 원더 페스티벌을 최초 기획한 제네럴 프러덕츠[31]가 관여한 탓인지, 가이낙스의 원페 판권을 좀 널널하게 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가이낙스를 퇴사하고 트리거라는 회사를 세운 오오츠카 마사히코의 인터뷰에 따르면 회사 분위기가 너무 자유로워 설마 통과되겠냐 하는 기획조차 OK 사인이 뜬다고 한다. 그래서 반대급부로 부담감이 너무 심해서 퇴사했다고.

원래도 오타쿠집단이었고 작품들도 하나같이 좀 독특한게 많아서 신세대 덕후들에겐 여러가지 선입견이 있는 제작사이기도 하다. 가장 유명한 신세기 에반게리온만 봐도 평범하게는 안보인다. 하지만 그런 거에 비해 전체적으로 밝고 희망찬 주제를 내포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다. 대표작인 톱을 노려라!는 그냥 오타쿠 로봇 애니로 보일 수 있지만 상당히 훈훈한 주제를 담고 있고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천공의 성 라퓨타와 비슷한 외형이나 약간 괴기스러운 설정들을 가지고 있으나, 주제는 상당히 교훈적이다. 특히 가장 어둡고 비희망적일 것 같은 신세기 에반게리온도 주제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집 보는 에비츄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등도 동일.

서양 오타쿠들 사이에서 Gainax bounce 라는 용어가 쓰이기도 하는데 이는 여성캐릭터의 가슴의 물리학법칙을 거부하는 과장된 움직임을 말한다. 바스트 모핑 참조.

3.2. 제작 방식

리스크 절감을 위해서인지 가이낙스 오리지널 작품의 경우에도 공동 제작으로 만드는 경우가 잦다. 신세기 에반게리온타츠노코 프로덕션과 공동 제작이었고, 그와 그녀의 사정J.C.STAFF와 공동 제작, 마호로매틱이 사람이 나의 주인님SHAFT와 공동 제작 등.

일반적인 업계 관행을 무시하고 스폰서 물먹이기에도 일가견이 있어 왕립우주군, 나디아, 에반게리온의 경우 제작 기간 내내 스폰서와 아웅다웅했다라는 말도 있다. 단 나디아의 경우엔 충돌에 대한 소문이 과장되었다는 말도 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제작 당시 제작 스케줄은 미친듯이 빡빡해서 스태프들은 몇번이나 저승과 이승을 왔다갔다 했다고. 마기 해킹화에서 아카기 리츠코가 어머니가 남긴 쪽지를 들여다보는 화가 있는데, 그 쪽지의 문구가 죄다 '힘들어', '배고파', '감독...감독..!!'과 같은 스태프들의 절규라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

알게 모르게 하청을 받아서 작업한 경력이 화려한데 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 작안의 샤나, The Big-O, 크레용신짱, 도라에몽, 포켓몬스터 극장판 등의 제작을 일부 전담하기도 했다.

3.3. 게임 개발

회사가 애니메이션 사업으로 빚더미에 앉게 되었던 아득한 옛날, 아카이 타카미가 '작화는 있으니 간단한 어드벤처 게임은 쉽게 만들지 않을까?'라는 발상에 사장인 오카다 토시오와 함께 일부 프로그래밍과 음악 외주를 제외하고는 둘이서 전부 용돈벌이겸 벌린일이 초대박을 쳐서 그 많던 빚도 한방에 갚고, PC88/98시절에는 PC게임 제작사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전뇌학원 시리즈가 캐릭터 산업을 앞세워 회사를 빚더미에서 구원했다면, 최초로 육성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를 확립한 게임인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는 지금은 사실상 거의 게임을 만들지도 않는 가이낙스가 아직도 게임업계의 새로운 장르를 구축한 회사로써 회자되게 될 정도로 대히트했다.[32]프린세스 메이커(특히 3)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인 쁘띠 프리 유시는 한국에서도 재능방송에서 방영했다.

프린세스 메이커 이전에는 PC 98과 IBM PC로 전뇌학원 시리즈라는 15금[33] 옷 벗기기 퀴즈게임 시리즈를 만들어 상당한 히트를 기록했으며[34] 심지어 3탄에서는 자사 작품인 톱을 노려라!의 여자 캐릭터들을 가차없이 유린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가이낙스의 히로인들이 딸내미 앵벌이라 불리우며 두고두고 몹쓸 일을 당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런 몹쓸 행동은 한국 출신의 임모씨아이들이 코미케 회지를 통해 재현하고 있다 또한 이 3번째 작품은 안노 히데아키가 직접 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당시 원화로 참여했던 쿠보오카 토시유키(아이돌 마스터 캐릭터 디자이너)는 톱을 노려라!의 히로인 노리코의 에로 그림을 그려 제출했더니 "에로가 부족해!! 이런 그림으로 중딩의 **가 빳빳해질것 같애!"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35]

그러나 윈도우즈로 갈아탄 이후 만들어낸 작품들은 하나같이 망작에 희대의 쿠소게들로 정평이 나있다. 더욱 비참한 것은 그들이 사일런트 뫼비우스, 에반게리온 등 네임밸류 높은 작품들이었다는 것. 심지어 삽화가가 가이낙스 소속(아카이 타카미)이었다는 것 때문에 애먼 성계 시리즈의 게임에도 불똥이 튀었다.

현재 게임 개발 파트는 상당수가 스튜디오 카라나 트리거처럼 요나고 가이낙스로 이관되어 독립된 상태인 듯 하다.

4. 작품 목록

4.1. 가이낙스 명의

4.1.1. 애니메이션

파일:가이낙스 로고.svg
1980년대 감독
1987년 왕립우주군 - 오네아미스의 날개 야마가 히로유키
1988년 톱을 노려라! - GUNBUSTER 안노 히데아키
1990년대 감독
1990년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안노 히데아키
1991년
오타쿠의 비디오 모리 타케시
불꽃의 전학생 니시지마 카츠히코
1995년 신세기 에반게리온 안노 히데아키
1997년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안노 히데아키
1998년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안노 히데아키
1999년 집 보는 에비츄 모리와키 마코토
2000년대 감독
2000년 프리크리 츠루마키 카즈야
2001년 마호로매틱 야마가 히로유키
2002년
쁘티프리 유시 오오츠카 마사히코
아베노바시 마법☆상점가 야마가 히로유키
2004년
톱을 노려라2! - DIEBUSTER 츠루마키 카즈야
이 추하고도 아름다운 세계 사에키 쇼지
2005년
이 사람이 나의 주인님 사에키 쇼지
2007년
천원돌파 그렌라간 이마이시 히로유키
2008년
시카바네 히메 赫 무라타 마사히코
극장판 천원돌파 그렌라간 홍련편 이마이시 히로유키
2009년
시카바네 히메 玄 무라타 마사히코
극장판 천원돌파 그렌라간 나암편 이마이시 히로유키
2010년대 감독
2010년
하나마루 유치원 미즈시마 세이지
팬티 & 스타킹 with 가터벨트 이마이시 히로유키
2011년
방과후의 플레이아데스(WEB) 사에키 쇼지
단탈리안의 서가 우에무라 유타카
2012년
메다카 박스 사에키 쇼지
2013년
특례조치단체 스텔라 여학원 고등과 C3부 카와지리 마사요시
2014년
마법소녀대전 오오노기 아야노
서든데스
2015년
방과후의 플레이아데스(TVA) 사에키 쇼지
2020년대 감독
2020년 영세기 에메랄다스[36]

4.1.2. 게임

4.2. 가이나 명의

4.2.1. 애니메이션

2010년대 감독
2016년
추억의 조각[38](OVA)
마사무네 다테니클
2018년
피아노의 숲(TVA) 나카타니 마나부(시즌 1)
야마가 히로유키(시즌 2)
2019년
훌라잉 베이비즈
2020년대 감독
2020년
캡 혁명 보틀맨
2022년
보스 따님과 돌보미[39] 카와사키 이츠로
하나비 양은 늑장쟁이 카나자와 히로미츠
제작예정
그랜다이저 U 후쿠다 미츠오
푸른 우르
톱을 노려라! 3

5. 관련 인물

여기 있는 멤버들은 2000년대까지 소속되어 있던 멤버로 가이낙스란 회사가 거의 공중분해 되면서 안노 히데아키 파는 스튜디오 카라, 이마이시 히로유키파는 트리거, 니시고리 아츠시 파는 A-1 Pictures, 그 외 인물들은 샤프트에 가거나 아예 프리랜서로 독립을 해버려서 남아있는 사람은 야마가 히로유키, 사다모토 요시유키, 아카이 타카미 밖에 없다고 생각되었으나, 2020년 가이낙스 대숙청 당시 사외이사들을 앉히는 과정에서 모두 갈려나갔다.[40]

6. 가이낙스의 계보 회사

일본 3대 계보로 꼽히는 토에이 애니메이션, 무시 프로덕션, 타츠노코 프로덕션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던 아마추어들이 모여서 만든 회사로, 전혀 다른 계보로 꼽힌다.

7. 관련 문서



[1] 창단 멤버 중 한명인 아카이 타카미의 출신지가 돗토리. 참고로 돗토리를 연고로 하는 일본의 프로축구단 '가이나레 돗토리'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되었다.[2] 오사카에서 열리면 DAICON, 도쿄에서 열리면 TOKON(토콘), 지역명을 붙인다. 1981년의 DAICON 3는 오사카에서 3번째로 열린 일본 SF 대회. DAICON 4는 1983년.[3] 다이콘 4의 오프닝은 드라마 전차남의 오프닝으로 패러디된 적 있으며(배경음악인 영국의 록밴드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의 'Twilight'마저도...), 또한 가이낙스의 애니 프리크리에서도 하루코가 대놓고 다이콘 V라면서 패러디한 적이 있다. 5화에서.[4] 사장인 오카다 토시오가 불륜 스캔들을 일으켜 오사카에서는 사회적으로 매장당해 상경을 결행했다.[5] 당시 가이낙스의 사장 오카다 토시오는 왕립우주군이 끝난 후 사무실에 모였는데 스태프들이 '다음 달은 어떡할까요?'라고 물어와서 '우리 해산하는 거 아니었어?'라고 되물었지만, 한편으로는 계속 같이 일할 수 있다는 것에 내심 기분이 좋았다고 회상했다.[6] 당장 나디아 관련 저작권 표기만 봐도 ©NHK · 総合ビジョン · 東宝로 되어 있다. 즉, 저작권 수입은 제로.[7] 다만 그때 당시 안노 히데아키는 "정말인가요...?" 하면서 불안감을 드러냈다고 하는데...[8] 제목은 'ビートショット!!(beat shot)' 1989년 OVA로 출시, 일단 골프를 소재로 한 청춘만화가 원작인데, 그딴 것 필요없고 꽤나 수위가 높은 적나라한 정사씬이 두 차례 나온다. 작품 자체도 기획만 하고 나머지 실제작은 하청으로 던져버린 작품이라 전반적인 퀄리티도 떨어진다. 일본 위키피디아에도 항목 자체가 없는 진정한 가이낙스의 흑역사. 이 기획은 오카다 토시오의 생각이었는데, 당시 흥했던 비디오 대여점의 점주나 점원을 타겟으로 작품성이고 뭐고 이런 '야한 장면'이 끼어있으면 손님들이 잘 빌려갈 것이라며 생각하게 해서 팔아치우려는 안일한 기획이었다. 이에 야마가 히로유키안노 히데아키는 '가이낙스가 이래도 되는 건가'라면서 술자리에서 불만을 표출했다고 한다. 오카다는 지금 니들이 마시고 있는 그 술값이 거기에서 나온 돈이라면서 섭섭해했다고 한다.[9] 특촬과 애니메이션이 좋아서 프로의 세계로 뛰어들었는데, 게임쪽에서 재능을 각성해버려서 가이낙스를 먹여살리는 가장 노릇을 하게 되자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고, 이런 것들이 나중에 가이낙스의 분열의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10] 각본은 오카다 토시오. 실제 제작사는 가이낙스의 작화 하청을 주로 담당하는 다른 스튜디오.[11] 1961년생. 안노 히데아키, 야마가 히로유키와는 오사카 예대 동기. 대학 재학시절 만화가로 프로 데뷔했다. 이때 안노가 와서 만화책에 싸인해달라고 부탁했다는 일화가 있는데 녀석은 오타쿠라서 수집 목적이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시마모토도 안노가 재학시절 만든 튼튼한 타이어나, 다이콘 오프닝 애니메이션을 보고 충격을 받고 애니메이션의 길은 포기하고 만화가로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을 했다.[12] 시마모토는 당시에 불꽃의 전학생 OLA를 가족에게 자랑했었는 데, 문제는 가족들 중에 레이저디스크 플레이어가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결국은 VHS로도 출시.[13] 이것도 원래는 타츠노코 프로에서 재하청한 것이다.[14] 이때의 교훈을 바탕으로 안노는 가이낙스를 떠난 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을 제작과 배급 전부 100% 자비로 충당했다.[15] 도쿄국세국에 따르면 약 5억 8000만엔을 탈세했다고 한다.[16] 당시 사장의 이름은 사와무라 타케시(澤村武伺). 제너럴 프로덕츠 시절부터 관계가 있었던 인물. 오카다 토시오에 따르면 사장으로 발탁하자 오사카의 부동산을 매각한 돈 수억엔을 회사로 들고 오거나, 탈세 사건이 터지자 모든 걸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간 사나이 기질이 넘치는 인물이었다고...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재일교포라는 소문도 있었다. 2000년 사임. 참고로 가이낙스 창립 멤버 가운데 타케다 야스히로(武田康廣/한국 이름은 윤강광)는 확실한 재일교포(1997년 6월 22일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로 확인)이다.[17] 다만 트리거 창사 이후에도 창립 멤버인 스시오가 게스트 형식으로 가이낙스 공식 홈페이지 대문에 그렌라간을 그려준 걸 보면 원만하게 분리된 듯하다.[18] 이 회사는 그냥 회사가 아니라, 다름아닌 일본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의 저작권을 행사할 수 있는 회사이다. 과거 나인 라이브즈의 역할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아카이 타카미는 이전에도 독립을 시도한 바 있었다.[19] 안노 주장으로는 본인은 경영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나마 문제가 심각해진 2003년쯤 사내 상황을 확인을 해봤는데 경악하고, 체질 개선을 시도했으나 먹히지 않았다고 한다. 안노가 경악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급여의 편차가 너무 심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가이낙스를 위해 헌신한 직원들에게는 쥐꼬리만한 급여를 준 반면, 거의 놀고 먹기만 한 구성원들은 짭짤하게 한 몫 챙기는 식으로 말이다.[20] 이 뉴스 트윗을 트리거 공식 계정이 리트윗했기 때문에 그렇다.# 정황상 안노가 당했던 수난을 트리거 소속 인원들도 당한 것으로 보인다. 가이낙스 피해자 모임[21] 예를 들면 오프닝에서의 원작자 표시가 가이낙스에서 안노 히데아키로 바뀌었다거나 엔딩에서의 GAINAX SHOP이 블러 처리됐다거나.[22] 다만 넷플릭스 한국 버전의 에반게리온 애니의 가이낙스 표기는 그대로 남아있었다.[23] 카라로부터 에반게리온 시리즈 저작권 관리 위임을 받아서 관련 사업 전반을 진행.[24]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의 저작권을 관리한다. 게임 개발 파트라 보면 될듯.[25] 푸른 우르, 톱을 노려라 등 몇 작품을 제외하면 말 그대로 인력만 쪼개졌다. 심지어 톱을 노려라 판권마저도 가이낙스로 옮겨졌다.[26] 또한 과거 회사 근처(미타카시)에 집을 한 채 빌려서 직원들이 먹고 자고 하게 했는데 이를 가이나장(ガイナ荘)이라고 불렀다.[27] 1956년에 창업하여 1990년에 설립한 일본의 기업단체. 키노시타 공무점을 시작으로, 집, 주택, 부동산에서 의료, 복지, 교육, 스포츠, 엔터테인먼트까지 다 모였다.[28] 일본에 아트하우스 영화와 관련있는 미디어 그룹으로 유명하다.[29] 가이낙스가 후쿠시마 가이낙스에 대해 과거 제작 자료를 대량매각 하고, 스태프를 강제 이적시킨 것이 발각되었다.[30] 무라야마 코스케, 료치모, 사이토 켄고, 나츠메 신고 등의 애니메이터들이 처음에는 가이낙스에 들어오려 했으나 이 입사 시험에서 떨어져 다른 곳에서 데뷔했다.[31] 제네럴 프러덕츠가 가이낙스에 전념하게 되면서 주관사가 카이요도로 넘어갔다.[32] 가이낙스가 손을 뗀 것 자체는 사실이다. 현재는 게임 시리즈 저작권이 요나고가이낙스에게 옮겨졌고 지금 새로 만드는 신작도 다른 회사가 만드는 중이며 2편 리메이크도 요나고가이낙스가 만드는 중이다.[33] 당시에 이 등급을 달고 출시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였다면 빼도 박도 못할 18금(또는 19금)이지만, 일본의 경우 게임에 대한 심의 규정이 기기마다 단체마다 워낙 제각각인지라...[34] 전뇌학원 시리즈의 캐릭터 디자이너 중 일부가 아카이 타카미였다. 그의 프메 시리즈 관련 그림이 괜히 꼴릿한 게 아니다.[35] 토미노 요시유키퀘스 파라야를 디자인한 디자이너에게 한 대사를 들어둔 안노 히데아키가 써먹은 것이라고 한다. 토미노 요시유키 항목 참조.[36] 이미 2022년이 되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는 걸로 보아 제작 도중 엎어졌거나 미뤄진 듯 하다.[37] 요나고 가이낙스에게 4편을 제외한 모든 시리즈의 판권이 옮겨졌다.[38] 想いのかけら[39] feel.과 공동 제작.[40] 여담으로 아카이 타카미는 이미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의 저작권을 가지고 2014년에 회사를 따로 차려버린 상황이었다.[41]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신극장판을 만든 회사이며 현재 모든 에반게리온 작품의 저작권을 보유 중이다.[42] 현재 가이낙스 기존 작품의 후속작(!!)까지 만들고 있으며 사실상 가이낙스를 완전히 이어받은 회사가 되었다.[43] 2024년 기준으로 프린세스 메이커 4편을 제외한 모든 작품의 저작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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